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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추억을 간직하고 살지 않을 사람이 있을가? 아침이슬과도 같이 반짝이는 추억들은 새별과도 같이 수시로 떠올라 무심하고 단조롭던 생활에 빛을 주고 새힘을 얹어주군 한다. 어쩌다 푸근해지는 봄날씨같은 겨울날, 그런 날을 맞으면 내 마음속의 그리운 김장철은 바다마냥 시원하게 펼쳐지군 한다.
추억속의 김장철은 생각만 해도 감미롭다. 김장철만 되면 괜스레 마음이 바빠지군 했었다. 결혼전 혼자서 김장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였기에 생각만 해도 아득하고 막막했다. 직장에 나가도 한다는 소리는 김장철얘기였다. 김장철이 힘겨웠던건 나같은 햇내기뿐만이 아니였다. 어머니와 같은 나이지긋한 분들도 마치 김장을 담그는 일이 딸시집보내는 일만큼이나 성스럽고 아름찬 일로 여기는것 같았다. 고추가루나 배추를 사는것을 보면 사위물색이나 하듯 대단했다. 시장에 고추가루가 흔했지만 잡것이 들어있다고 시골에 부탁하기가 일쑤였다.
김장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직장에서 차와 사람을 파견하여 시골에 내려가 직접 배추를 사다가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배추나 파를 사러 시장에 간다고하면 그것은 아주 당연하고 떳떳한 리유이기도 했다. 만나서 한다는 인사들도 고추가루 샀냐, 오늘 본 배추가 알도 차고 값도 싸다느니 하는것들이였다.
그것은 한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족들은 쏸차이를 담그느라고 우리 조선족 못지 않게 김장철준비에 신경을 쓰군 했다. 정성껏 준비한 김장을 담그는날은 명절을 쇠는 기분이였다. 그날만은 아파트뜰안에 어른, 아이할것없이 떠들썩하다. 아이들은 올리뛰고 내리뛰며 그저 좋아 야단들이다. 한족어른들은 밖에다 벽돌장과 나무막대기로 림시부뚜막을 쌓아 그우에 물을 가득 부은 한족벌떡가마를 얹고 불을 지핀다. 배추를 더운물에 넣었다가 건져내여 소금물에 절여 쏸차이를 만든다. 김장하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며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것이 하나의 풍경으로 안겨와 사람사는 맛을 물씬 풍기게 한다. 조선족의 월동음식이 김치라면 한족은 바로 쏸차이다.
지금 시장에서 파는 쏸차이는 그 맛이 옛날 집에서 하던 쏸차이맛에 못미치고있다. 갓 결혼하여 내가 살았던 곳은 조선족이 거의없는 한족아파트동네였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인데다 자기네와는 민족이 다르고 직장이 달랐던 우리가 어딘가 신비로운데가 있었는가 보다. 그 점은 김장철 때 잘 드러나군 했었다. 아파트 1층이여서 베란다가 없었기에 우리는 집앞에 있는 자그마한 뜰에다 움을 파고 김치를 저장하군 했었다. 이웃한족들은 어딜 나가다가도 다가와서 김장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군 했었다. 양념에는 뭘 넣느냐, 배추는 어떻게 절이느냐, 조건김치는 참 맛있는데 자기들은 할줄 모른다면서 입맛을 슬슬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시어머님은 별로 잘 되지 않는 평안도억양의 한족말로 손짓몸짓 곁들이며 알려주느라 극성이였다. 한데도 이듬해 김장할 때면 한족이둣들은 똑같은 물음을 또 물어온다. 알려준대로 김치를 했는데 조선김치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은근슬쩍 시어머니가 김치만드는 노하우를 감춘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도 비쳐지군 한다. 꼭같은 양념도 손맛이 다름에 따라 김치맛이 다르다는것을 한족들은 좀 리해하기 힘들어했다. 김치를 담는 날 시어머님은 딴살림을 하면서도 어김없이 찾아오군 하였다. 비좁은 주방에서 시어머니와 난 납버치(아주 큰 양재기)를 마주하고 앉아 김장을 하였다. 《양념을 듬뿍 넣어야돼. 그래야 맛이 우러나. 잘 절궈지지 않는 배추속엔 소금을 살짝 뿌려줘야 돼. 배추속에 뿌리는 소금은 굵은 소금보다는 절구에 빻은것을 뿌려야 돼.》 김장에 서툰 며느리를 탓하지 않고 시어머님은 차근차근 깨우쳐주신다. 하지만 제사상보다 제밥에 관심이 있다던가! 노오란 배추속을 보면 군침부터 돈다. 어릴적 배추속에 양념을 발라 입에 넣어주던 친정엄마를 떠올리며 《어마니 이 이거 맛있어보여요.》하면 시어머니는 철없는 며느리가 어이없으신지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래. 김장하면서 먹는 배추속은 별미지.》 시어머님 눈치를 살짝 보며 남편입에 얼른 넣어주면 남편의 눈빛은 금시 따스해진다. 못본체하는 시어머니얼굴에도 느슨한 미소가 어린다. 말하기 즐기고 인정많은 시어머님과 함께하는 김장은 즐겁기만 했다.
시어머님은 아들어릴적의 얘기, 가족얘기, 친척들얘기, 직장얘기들로 김장이 끝날 때까지 구수한 얘기는 계속되군 했다. 양념을 넣은 김치를 독안에 차곡차곡 넣는것은 시어머님의 몫이였다. 갓 시집온 며느리가 혹시 실수라도 할가봐서인지 시어머님은 며느리에게 그 《권리》를 절대 넘겨주지 않으셨다. 김치를 움에 넣은후에는 온겨울 김치가 얼지 않게 움덮개를 장만해야 했다.
시골에서는 벼짚이영을 엮어 덮거나 벼짚단을 그냥 덮으면 그만이였지만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골치거리였다. 그래서 남편과 난 저녁만 먹으면 시장거리를 돌면서 포장용으로 썼던 가마니를 주으려다녔다. 밤날씨는 매서울 정도로 추웠지만 남편과 함께 하는 가마니줏기는 재미만 있었다. 누가 많이 줏냐고 내기를 하며 시장을 돌아칠 때면 하늘에 떠오른 달도, 별도, 스쳐부는 찬바람도 모두 내것이 된것 같았고 그 모든것들에는 사랑의 이슬이 맺혀있는것 같았다.
김장을 끝내고나면 온몸은 수시로 아파났지만 마음만은 큰 일을 해낸듯 뿌듯하기만 하였다. 신혼부부가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만 시어머님은 김장배추는 꼭 200근은 담가야 한다고 우기셨다. 어이없어하고 당신의 뜻을 못알아봐주는 아들며느리에게 《너네만 먹겐. 이웃들이랑 신세졌던 사람들이랑 좀 갖다줘야지.》라고 하시며. 혼자만 살아선 살아선 안된다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시어머님은 우리 부부를 앞세우고 설날인사를 참으로 잘 다니셨다.
남들처럼 값진 물건을 들지도 않고 김치만 갖고가는 인사를 난 좀 부끄럽게 여기였다. 김치선물을 난 좀 하찮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였다. 갖고갔던 김치를 내놓으면 한족이웃이나 친구들은 대번에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야단들이였다. 설날에 보내주는 김치는 그 한족이웃이나 한족친구들에게는 아마 최고의 선물인듯 싶었다. 어쩌면 김장김치는 한족이웃, 한족친구들과의 정을 이어놓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놀았는지도 모른다. 김장김치가 우리 집의 외교김치가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에 혼자 웃어도 본다.
하동의 넓은 아파트로 이사올 때 이젠 움도 없고 놔둘데도 없다고 우린 자그마한 독하나만 들고왔다. 김장이라야 열댓포기 배추정도였다. 그런데도 시어머님은 김장철만 되면 우리 집에 오시군 했다. 《이건 김장하다가 마는것 같다.》고 섭섭해하고 허전해하시며. 그 자그마한 김치독이나마 심양으로 이사올 때는 가져오지 않아서 김장철만 되면 난 김장몸살을 앓군 한다. 직장에 나가서 김장하는 얘기만 들어도 나의 김장병정서는 좀 푸근히 가라앉을지도 모르나 젊은 세대들이 많은 직장에서는 김장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김장을 담그지 않아 일신이 편안해진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서탑시장이나 슈퍼에 가면 맛갈좋은 김치를 얼마든지 사먹을수 있다.
하지만 사먹는 김치에는 풋풋한 인정과 정서가 없다. 힘든 로동속에서 느꼈던 희열과 보람도 없다. 담백하고 시원하고 입맛좋던 그 움안의 김치가 그립고 시어머님, 남편과 함께 했던 김장철이 그립고 이웃들과 나눠먹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내가 그리워하는것은 옛날의 생활자체인것이 아니라 그 생활속에 스며들었던 정서이며 그속에서 느꼈던 따스한 인정이다. 삶의 뒤안길을 되돌아볼 때 힘은 들었으나 그 힘든 일속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삶의 보람을 느꼈을 대 추억도 더 깊어지는듯 하다.
사근사근 일을 가르치시던 시어머님의 구수한 말소리가 들려오는듯 한다. 소리없는 평화속에 오고가는 인정이 묻어날것만 같은 김장철 정서, 그 추억속에서 난 또 새로운 나의 추억을 만들어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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