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 어딘가에 슴배여 꿈속에도 그리워했던 인사동, 이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이기고 또 찾아왔다. 처음 고국이라고 찾아와 40분 정도 돌았던 인사동.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순한국적인 정서에 반해버렸던 인사동, 그리움 한자락을 끄집어내면 영상마냥 조용히 떠오르는 남자가 있는 인사동, 이곳에 내가 또 왔다.
경복궁의 매표시간이 5시까지길래 걸음을 다그쳐야 한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사동을 거저 지나치기가 아쉬워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렸다. 이곳이였을가, 저곳이였을가, 내 마음은 이년전 커피잔을 샀던 그 가게를 찾고있었다. 동그란 단지모양에 하얀 꽃송이를 피워올리는 밤색의 커피잔. “이 커피잔이 선생님 정서에 어울릴 것 같아요”하며 사주었던 그 사람. 인사동은 내가 이년전 그리움을 심어놓고 간 곳이다.
한 고장을 좋아하게 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고장 특유의 특산물이 좋아서일수도 있고 분위기와 정서가 좋아서일수도 있다. 허나 무엇보다도 어떤 사람을 만났었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인사동 역시 나에게는 그때 함께 했던 그 사람이 좋아서였는지 모른다. 인사동처럼 전통의 정서와 문학의 향기가 조용히 흐를 것 같은 분이다. 썩 가까이 다가선 사람은 아니지만 인사동만 떠올리면 점잖은 미소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감미로워진다.
인사동은 참으로 추억을 낳는 곳이기도 하다. 두번째로 온 인사동, 내옆에는 태백문협의 정연수시인, 서울의 이기애시인, 대만에서 온 장국치시인, 그리고 한 고장에서 온 문학회동인들이 있어 흥겨로움이 더해졌다.
경복궁을 돌고 재다시 찾아왔을 때 인사동에는 감실감실한 어둠이 내려오고있었다. 가게들마다 새여나오는 불빛들이 돌로 만든 거리의 바닥을 아늑하게 해주고있었다. 거리의 량측에는 돌로 된 화분통들이 드문드문 있는데 거기에는 어렸을적 논밭에서 봤음직한 이름모를 잉크빛의 꽃들이 피여있었다. 그리고 길옆 네모반듯한 돌에는 력대 유명한 시인들의 시구를 새겨넣었다.
문전박대 해질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 주인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쫓는구나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 김병연(김삿갓)
길옆 돌에 새겨놓은 시가 하도 신기해 한수 베낀 것이 바로 이 김삿갓의 “문전박대”라는 시이다. 시내용과는 달리 인사동은 우리 일행을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이기애시인님과 정연수교수님의 안내하에 인사동 쌈지거리에 들어섰다.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되여있는 쌈지거리는 이년전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건물이였으나 지금은 인사동을 대표할수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층계는 없고 서서히 웃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1층을 첫걸음길, 2층을 두오름길, 3층을 세오름길, 4층을 네오름길, 지하를 아랫길이라고 우리 말로 쓰고있다. 각종 골동품, 도자기, 액자, 수공예품, 보석류, 장신구, 등 볼거리들이 눈을 현란하게 했다. 인사동의 전통과 정서, 그리고 그리움을 담아가고저 복주머니와 보석주머니를 샀다.
약정된 식당- 지리산으로 찾아가는 길은 좁은 골목거리였다. 넓은것만 좋아하는 중국사람들 사이에 끼여 살아오다보니 인사동 골목길이 어딘가 답답해보였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그 어떤 정서에 감염되는 것 같았다. 어거리풍년, 보리고개 찻집, 사색의 여름향기, 인사동 그 찻집, 흥부가 기가 막혀, 지리산, 초록비, 풍경소리, 들깨마을 맷돌순두부, 순 토속적인 한국말로 된 식당표말들이 어딘가 이색적이면서 가슴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뻣뻣하고 경직된 우리 말을 보아만 왔기 때문일까?
감동은 또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유명한 시 “귀천”을 쓴 천상병시인을 기리는 “귀천”이라는 카페가 이 골목길에 있었다. 골목 어디에선가 천사병시인의 환한 웃음이 실려나올 것만 같았다. 한생을 청빈하게 살면서도 저 세상에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겠다는 천상병시인의 마음가짐, 인사동은 그야말로 문화와 전통, 예술의 정서가 녹아있는 곳이였다.
어느 가게나 뜰은 좁았지만 푸른 자연의 싱그러움에 둘러싸 있는듯 했다. 뜰앞마다 고추며 화초며 나무들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갔던 지리산이라는 식당도 몇평 안되는 뜰이였지만 뜰안에는 큰 감나무가 자라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감나무아래에는 고추들이 심어져있고 그옆에는 호박넝쿨이 드리워져 있었다. 뜰좁은 도심에서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자연에 살고있는 인사동사람들의 지혜를 보는 듯 하였다. 그날 밤 지리산식당에서 막걸이 동동주를 높이 들며 서울의 밤이 둥글어갈 때 인사동에서의 새로운 추억과 그리움도 깊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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