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인데도 올 여름은 지지리 무덥다. 지글지글 내리쬐는 한낮의 무더위에 출근을 하느라면 서늘한 나무그늘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가로수들이 있으나 교정에는 키낮은 나무들이 많아 비끼는 그늘도 답답하기만 하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겨져 고풍스럽고 은은한 운치를 풍기는 시원한 유보도는 없을가? 한가롭게 오손도손 모여앉아 소풍과 한담을 즐기게 하던 고향집나무와 같은 서늘한 그늘은 없을가? 있다가 없어진것, 소유했다 없어진것에 대한 애수가 애잔하게 밀려오며 올봄 아카시아나무로 숲을 이뤘던 정원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곳은 시어머님이 입원해있던 병원이였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병원은 하늘을 찌를듯 우로 높이 뻗어오른, 나이를 가늠할수 없는 키 높은 아카시아나무숲속에 묻혀있었다. 때는 마침 5월이라 아카시아꽃향기가 코를 자극하며 올라가는 내 발목을 잡았었다. 긴 그늘을 드리우고 미풍에 흔들리는 아카시아숲속은 어머니의 품속마냥 편안하기만 했다. 어디선가 붕붕대는 소리들이 귀청을 건드린다. 올려다보니 하얗게 핀 아카시아꽃들에 벌떼들이 달라붙어 한창 꿀을 채집하느라 야단이였다. 정적이 흐르는 고즈넉한 숲속, 맑은 공기속에 풍겨오는 아카시아향, 리차드 크래드만의 피아노연주곡만 있다면 짜장 소풍이라도 온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곳. 이곳이 병원이 아니고 명승지라면, 아니 병원이라도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산책만 할수 있다면 하는 절박함에 어느새 눈물이 두볼을 적셨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숲속 어딘가에서 뻐꾸기의 슬픈 소리가 느닷없이 들려왔다.
어머님과 고부사이로 쌓아온 정이 십여년이다. 칡넝쿨처럼 갈라질래야 갈라질수 없게 얼기설기 엉켰던 어머님과 나, 그동안 스치며 엉키며 달라붙으며 한가족이 되였었다. 정은 유정한데 혹한처럼 매서운 병마는 무정하기만 했다. 두달전만 해도 가벼운 몸으로 팽이처럼 돌아치던 어머님이셨는데 지금 병상에 누워 의식이 흐려진 상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천둥 같이 달려갔던 이 큰며느리에게 《대학입시까지는 너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바쁜데 뭘 하러 오냐?》며 엄청난 병진단을 받은 사람답지 않게 드라마를 보며 간간이 웃으시던 어머님이셨는데 병이 무섭긴 무서웠다. 일년 남짓이 막내아들 병시중을 들며 하루하루 사라져가는 생명을 보아왔기에 어머님은 자신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듯했다.
《오늘 병원 갔다와서 너 아버지 울고있더라. 이미 뇌로 펴져있는 상태라서 치료가 힘든 모양이다. 사람의 명이 그것뿐인걸 어찌하겠니? 너희들에게 아버지를 맡기고 가겠구나. 내가 있으면 령감시중은 들어줄텐데. 네가 고생하겠구나…》
유언처럼 들리는 그 말에 코언저리가 찡해나며 두손이 자꾸 눈가로 올라갔다.
《어머님.》 하고 어머님 품에 안겨 통곡이라도 하고싶었다. 평생 자기를 모르고 오로지 남을 위해 살아온 어머님께 이게 무슨 벼락이냐고 바락바락 악도 쓰고싶어졌다. 악을 쓰고픈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회한이 몸부림치고있었다. 급할 때는 찾고 지나가면 바빠 못온다는 핑게 아닌 핑게가 대못처럼 가슴을 찌르고있었다.
딸이 없는 어머님은 딸 가진 부모들을 무척 부러워했고 며느리들을 딸처럼 대하려고 무척 신경을 쓰셨다. 그만큼 딸 같이 싹싹하지 않는 이 며느리가 섭섭도 하셨으련만 찾아와주는것만으로도 고마운지 어머님 집앞에 다달으면 창가엔 늘쌍 아카시아꽃 같은 하아얀 웃음이 내리고있었다.
작년 시아버님께서 수술을 받으셨다고 해서 바람 같이 달려갔을 때 난 쿵― 하고 무너지는 내 가슴의 소리에 스스로도 놀랐었다. 언제 구부러졌는지 폴싹 굽어진 어머님의 등은 바람만 불어오면 삭정이처럼 당장이라도 부서질것 같았다. 언제 저렇게 늙으셨을가? 아픈 아들 병시중에 가슴이 내려앉아 등이 굽었을가? 가망이 별로 없을거라며 주위에서 쉬쉬댔지만 어머님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라도 잡고픈 심정으로 신문, 잡지들의 약광고들을 이잡듯이 훑었고 교사직에 있으며 깔끔했던 사람답지 않게 우리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비법》도 신주모시듯 모셨다. 약을 달인다, 죽을 쑨다, 보양식을 만든다, 병때문에 물 넘기기도 어려워 스스로 포기하는 아들에게 힘을 내라고 눈물을 쏟던 어머님이였다.
《약이 넘어가지 않아 저도 울고 나도 운다.》
하루하루 지쳐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마음이 오죽했을가? 《차라리 사고라도 당해 없어졌어도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진 않겠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오죽했을가? 그런 와중에 아버님까지 수술을 받게 되였다.
어머님은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내비친 내 마음을 의식했는지 웃으며 위안을 주려고 하지만 웃는 그 모습이 외려 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딸이라면 힘들다고 어리광이라도 부려볼가? 힘들 땐 힘들다고 하소연하는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쪽 같은 무서운 자존심을 갖고있는 어머님은 자식들앞에서마저 힘든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셨다. 이웃들은 어머님 자식이 아파있는줄을 오래동안 몰랐었다. 바람만 불면 날려갈것 같은 가냘픈 몸으로 힘든 모든것을 혼자서 품었다. 그것이 응어리가 됐을가? 어머님은 자식을 보내고 일년만에 병상에 누우셨다. 그리고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입원하지 한달만에 간다는 말도 없이 아카시아꽃처럼 지고말았다. 병진단을 받으시고 《올 여름은 유난히 덥단데 덥기전에 갔으면 좋겠다. 가족들 고생시키며 더 끌고싶지 않은데…》하며 걱정하시더니 그 마음이 간절하여 하늘이 부르셨던가?
사람은 가고나면 순수를 남기고 향기를 남기는것 같다. 고부사이로 고까왔고 리해할수 없었고 서러웠던 기억들이 왜 없겠냐만은 그 모든것들은 무한한 우주속에 흩어져버리고 날 배려해줬고 사랑해줬던 어머님이 자꾸자꾸 그리워만진다. 그리고 슬퍼진다.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 있었댔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고부사이로만 남아있는 내 마음이 못마땅해 더 설음이 커지는지도 모른다. 날 지켜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것이 너무나 슬프다. 어머님은 나에게, 아니 가족들에게 포근하고 시원한 나무그늘이 되여주었다. 어머님이 아카시아숲속으로 덮혀있던 병원에 입원한것이 하늘의 뜻은 아니였던가 생각된다. 어머님은 너무나 아카시아나무를 닮아있었다.
한여름날 자글자글 달구는 땡볕을 몸으로 막으며 사람들에게 무성한 숲을 안겨주고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온 천하에 눈꽃 같은 하아얀 향기를 풍긴다. 찬서리에 마음까지 시려지는 계절, 세월의 인고속에 몸마저 바싹 마르면 마지막 남은 형체로 세상사람들의 방안을 덮여주는 아카시아나무, 한줌의 재가 되여 흔적도 없이 바람속에 사라지지만 향긋한 아카시아향기만은 오래오래 여향을 남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명대로 떠나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있다. 허나 떠남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깃털마냥 한줌의 재가 되여 영영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날아가버리는 사람이 있고 형체는 가되 령혼은 남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은한 향기를 풍겨주는 사람이 있다. 어머님은 사람들에게 구경 어떤 의미로 남을가? 《좋은 로친이였는데…》 애석해하며 눈굽을 적시는 이웃들의 모습을 어머님은 머나먼 곳에서 지켜보고있을가?
꽃철이 지난 아카시아나무에는 줄당콩 같은 열매가 대롱대롱 맺혀 더운 바람에 하느작거린다. 어머님이 없는 올 여름은 무덥기만 하다. 아직 삼복철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숨이 컥컥 막혀온다. 수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딸애가 더위를 먹은듯 늘쩍지근하다. 《엄마 나 답답해. 어지러워.》 딸애대신 내가 앓지 못하는것이 한스럽다. 저 애를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하나? 랭장고에서 바삐바삐 수박을 꺼내 수박즙을 내는 내게 어머니가 다가와 환하게 웃으신다. 아카시아꽃 같은 하아얀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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