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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편수의 긍지
2010년 05월 16일 16시 33분  조회:2168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도편수의 긍지

이범선

경상도에는 '서울 담쟁이'라는 말이 있다 한다. 그 말의 뜻인즉, 서울서는 담을 쌓는 인부들이 꼭 둘이 함께 다니며 담을 쌓아 주는데, 그 쌓은 담이 일꾼들이 자리를 뜨자 곧 무너질 만치 되는 대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일꾼은 꼭 두 사람이 같이 다닌단다. 담을 다 쌓고는 한 사람은 담이 무너지지 않도록 등으로 밀고 있고, 한 사람은 집 주인한테 가서 돈을 받는단다. 그렇게 돈만 받아 쥐면, 두 일꾼은 그대로 골목 밖으로 달아나고, 그와 동시에 쌓은 담은 와르르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남의 일을 그저 되는 대로 무책임하게 해 주는 사람을 가리켜 서울 담쟁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시골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의 좋지 않은 점을 익살스레 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겠으나, 어쩌면 그것은 또 사실이기도 하다.

집에서 하수도를 수리한다든가 상수도를 끌어 들인다든가 그밖에 무슨 자질구레한 일을 시켜보면, 경상도 사람들의 익살이 노상 근거 없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 번은 하수를 고쳤더니 물이 빠져 나가는 게 아니라 도리어 더러운 물이 안으로 흘러드는 것이었다. 그래 이웃에 사는 그 사람을 다시 불러 이야기를 했더니 그 일꾼의 대답이 참 걸작이다. 그거야 할 수 없지 않으냐, 토관을 묻기는 분명 묻었는데 물이 들어오는 걸 난들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다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기야 그의 말대로 물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토관을 묻은 것은 사실이니까. 하는 수 없이 딴 일꾼을 대어 파헤치고 다시 놓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물이 빠진다.

또 한 번은 어린애의 샤쓰를 사러 상점에 들른 일이 있다. 점원이 내놓은 물건이 집에 있는 어린애에게 좀 작을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 애한테는 좀 작을 것 같으니 그보다 큰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상점에는 큰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양으로 점원은 그 작은 샤쓰를 그대로 권하면서 하는 말이 참 어처구니없었다.

"아, 요거면 꼭 맞을 텐데 공연히 그러시는군요."


도대체 나로선 처음 들어간 상점 점원이 본 일도 없는 남의 어린애의 몸집을 어떻게 알고 하는 말인지 대답도 하기 싫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너무 흔하다. 무책임! 그 말이나 행동이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수작을 눈도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인간이 싫어진다. 그에 비하면 옛 사람들은 얼마나 성실했는지 모른다. 여기 지금 그런 일꾼이나 상인과는 하늘과 땅 사이로 다른 한 목수 이야기가 있다.

나의 고향집은 지은 지가 근 7,80년이나 되는 고가(古家)였다.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집은 그 당시에 상당히 이름을 떨쳤던 도편수가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바로 그 도편수의 이야기다.

그 집을 짓고 8년째 되는 가을에 어쩌다 우리 집 부근을 다시 지나게 된 그 도편수는 사랑방으로 찾아 들어왔더란다. 그런데 그는 주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 두루마기를 벗어 던지더니 추에다 실을 매어 들고 집 모퉁이로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가 따라가 보았더니, 어떤가! 그 도편수는 한 눈을 지그시 감고 추로하여 드리워진 실을 한 손에 높이 쳐들고 서서 집 기둥을 바라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 기둥이 혹 그 동안 8년에 기울어지지나 않았는가 염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둥을 검사하고 난 도편수는 실을 거두며,

"그럼 그렇지! 끄떡 있을 리가 있나."

하면서 그 늙은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띠고 기둥을 슬슬 쓸어 보더라는 것이다. 어려서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나는 그 도편수의 이야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자기 일에 대한 그 성실성, 그 책임감, 그리고 그 긍지! 부러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시대에는 그렇게 한가하게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하고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정신의 문제이지 바쁘고 한가한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우리는 어디 고적을 찾아 갔을 때마다 거기서 옛사람들의 성실성을 발견한다. 예로 불국사 앞뜰의 석가탑을 들어도 좋다. 거기 좌우에 놓인 두 개의 돌탑 그건 정말 종일 그 옆에 서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그런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어떤 위엄을 지니고 있는 석가탑, 또 하나는 그게 돌이 아니라 마치 밀가루를 빚어 만든 것처럼 부드러운 안아보고 싶은 다보탑. 그건 진정 예술품이다. 그런데 그 석가탑을 만든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전설은 또 얼마나 슬픈 일이었던가. 옛사람들이라고 해서 그저 세월 좋아 한가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또 그들대로 그 당시의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실했었다. 하다못해 무덤 앞에 망부석 하나, 성상 하나를 만들어 세우는데도 그들은 자기의 있는 힘을 다했고 성심껏 했던 것이다. 8년 만에 지나다 자기가 지은 집을 찾아드는 그 도편수의 심정.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기둥뿌리 검사부터 하는 그 책임감, 그리고 거기 이상이 없음을 보고 만면에 미소를 띠는 그 긍지.

그에 비하여 토관은 분명 놓았으니 물이 흘러내리든 흘러 오르든 그거야 내 알 바 아니다 하는 그 인부와, 또 한 번 본 일도 없는 남의 어린애의 몸집을 제멋대로 추측하며 어린애 아버지가 작겠다는 옷을 꼭 맞을 거라고 우기는 이런 상인을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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