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금 서있는 곳에서 행복을 빌어요
김영분
7월에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일행은 해발이4000메터나 되는 서녕지역으로 문학탐방을 떠났다. 척박한 서녕땅에는 청도에서 활발히 창작활동을 하셨던 리홍철작가 일가족이 분식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유목민족의 후예라고 하는 우리 민족은 몇천년이 지난 지금도 유목민의 유전자가 남아 있어서인지 유독 떠돌이를 좋아하고 또 어느 곳을 가든 적응을 퍼그나 잘하고 현지에서 자신만의 문화를 고스란히 고수해가면서 차곡차곡 잘 살아가고 있다.
연해 지역은 그래도 조선족들이 집거해 있어서 도시안에 소형 조선족동네가 형성되여 우리가 살기에는 불편한 점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서녕은 그렇지 못했다.
해발3200메터 우에 떠있는 거대한 염수호-청해호를 품은 서녕,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노란 유채화가 띠를 두른듯 물결치는 그곳의 인구는 240만명이다. 그가운데 조선족 가정은 겨우 리홍철작가네 뿐이였다.
그래도 전혀 기 죽지 않고 퉁소소리처럼 굵고 여운있는 목소리를 내며 삶을 가꿔가고 있었다.
조선족은4,50년대에는 한반도에서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해왔고 8,90년대에는 한국, 일본 등 지역으로 로무수출을 떠났다. 90년대부터는 중국 개혁개방의 세찬 물살을 등에 업고 연해지방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중국내 이주 1세인 현재 구성원들은 자신의 피타는 노력으로 연해지역 곳곳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자식들도 성공적으로 해당 주류사회에 편입하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부평초처럼 떠도는 생활은 양파 속 헤치듯 파헤치고 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생활력이 아무리 강해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과 가지런히 풍류를 즐기려면 몇배 심지어 몇십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심신을 수없이 닥달하고 채찍질해야 타향에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압박감에 정서적으로 항상 긴장하다. 내쳐지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강박감에 자기에 대한 요구를 더 높이게 된다.
생존을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이다보면 자연적으로 정신적 향수는 뒤전일 수 있다. 돈은 많이 벌어도 행복감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헌데 다행히 우리는 태생적으로 즐기면서 지내는 민족이다. 생존이 아무리 급박할지라도 마음의 향수를 먼저 달래주고 쓰담아주면서 다음날 활기찬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아마도 조상들이 유목민이여서 이런 락천적인 성격을 말고삐 꿰차듯 꼭 잡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가시에 손이 찔려야 장미를 꺾을 수 있고 떠돌아 다녀야 새로운 길이 트인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가.
옛말에 길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고향땅과 수천리가 떨어진 곳, 소수민족 잡거 지역이면서도 해발이 높은 지역으로 두주먹만 믿고 머나먼 서녕땅을 밟은 리홍철작가는 처음에는 고산반응과 현지 사람들과의 문화 차이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망과 비난대신 오래동안 한결같고 담백한 입맛과 허심하고 부지런하고 유모아적인 분위기로 분식집은 이웃들의 마음을 차츰 사로잡았고 지금은 친하게 지내는 몇몇 장족친구들도 생겼다고 한다.
지금 서있는 그 곳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세상 어디를 가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이 있다. 리홍철작가는 거칠고 척박한 서녕땅이였지만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에너지를 100프로 쏟아붓는 후회없는 노력을 했기에 행복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이틀동안 리홍철작가는 우리 일행과 함께 한집에서 밥을 해먹으며 고산반응을 무릅쓰고 청해호며 차카염전이며를 목이 쉬도록 안내했다. 양고기의 진미를 맛보여 주었고 장족의 혼례문화와 장막문화를 생생하게 현장에서 설명을 해주었으며 회족의 이슬람사원에 대해서도 라마승들의 오체투지(五体投地)에 관해서도 몸소 발로 뛰면서 닿는데까지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하늘과 맞닿은 끝자락에서 제일 행복한 안내를 받았던 것이다.
이틀이라는 소금처럼 알찬 일정은 금방 지나갔다. 청해호의 아름다운 일출을 뒤로한 채 메마르고 외로운 서녕에 리홍철작가와 두 아들을 남겨놓고 우리 일행은 떠나야 했다. 상봉의 희열도 잠시이고 리별의 슬픔은 스멀스멀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기여들어오고 있었다. 공항에서 잘가세요 잘계셔요 라는 리별의 인사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모두 목이 꺽 메였다.
드넓은 청해호 우에 햇솜과도 같은 구름처럼 아쉬움과 그리움은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아무리 락천적인 사람들일지라도 리별의 순간은 쓰라렸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찡해났다. 모두가 서둘러 태연한척 눈길을 이리저리 돌리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려 애쓰고 있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마음으로 확인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수행해야 할 삶의 고뇌가 있다.서로가 가야 할 길이 있기에 따듯한 눈물로 애석함을 달래야 했다. 뜻이 있고 인내가 있기에 뜨거운 눈물을 쓰윽 닦고나면 또 가던 길로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삶의 종점에는 아무것도 없다. 고향을 떠나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지금 서있는 곳에서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오늘 하루가 제일 소중한 것이다. 있는 그곳에서 오늘을 충실히 보내는 것이야 만이 우리를 성공과 행복이 그득한 그곳으로 데려다 준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에 아무리 험난한 길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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