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운전하는 사람은 멀미하지 않는다
김영분
쉽지 않게 생긴 휴가를 즐기기 위해 두 애를 데리고 해변가로 소풍을 떠났다. 썬글라스를 코에 걸고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내 키를 훌쩍 따라잡은 두 애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두눈을 지긋이 감은채 흥심 없는 표정으로 후줄근히 늘어져있었다.
차는 미끄러지듯 시원하게 트인 아스팔트길을 따라 씽씽 달렸다. 창밖은 자연이 파티를 하는듯 흐드러지게 피여나는 사쿠라꽃이며 매화꽃이며 개나리로 눈이 즐겁다.
“얘들아, 저걸 봐. 길옆 꽃들이 너무 예쁘잖아?”
“오. 괜찮네요. “
들뜬 나의 목소리에 비해 애들의 대답은 심드렁했다.
순간 내 몸안에서 풍선처럼 부풀렀던 열정이 김빠지듯 새여나갔다. 나혼자 즐기려고 나온 바다구경도 아닌데 같이 박자를 맞춰 즐겨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에 애들이 야속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부모와 어울리기를 질색하는 애들이다. 내가 시키는 일은 무조건 거부감을 보이면서 연예인이며 노래며 영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녀석들이다. 닭에게는 보석이 보리알만 못하다더니 좋은 여행을 다녀오자고 해도 한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낸다.
아침에도 어쩌다 맞이한 휴가이니 머리를 쉬우고 바다바람도 쐬우자고 건의를 하자 큰 애가 먼저 자기는 집에서 쉬면서 혼자 있는것이 더 좋다고 투덜댔다. 작은 애도 덩달아 친구들과 영화보러 가는것이 더 좋단다. 그래도 휴가를 이대로 흘려보낼수 없다며 윽박지르듯 나들이 길에 끌고 나왔다.
“얘들아. 핸드폰 다 내놔. 놀러 나왔지 노래 들으려고 온거 아니잖아. 노래 들을거면 집에서 들어야지.“
나는 엄마로서의 위엄을 지키고자 곧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제는 지시를 안 따르는 경우가 많기에 실패한 지시로 끝나지 않기를 조심히 바라면서 말이다. 애들은 마지못해 입을 삐죽이며 이어폰을 귀에서 뽑아냈다. 핸드폰은 빼앗기기 싫다는 표정들이다.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이 날고 뛰여봤자 아직은 내 손바닥이지.)
그런데 한참후 큰 애가 멀미가 난단다. 속이 미슥거리고 머리가 어지럽단다. 아주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두눈에 정기마저 잃어갔다. 마른침을 연신 삼키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전혀 거짓말 같지가 않아서 나는 서둘러 차를 세웠다.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도 멀미를 하지 않던 애가 갑자기 멀미를 하다니?
혹시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차안이 갑갑해서 그럴가?
아들애는 식은 땀만 흘릴뿐 두눈도 뜨기 싫어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메슥거린단다. 조금만 움직이면 속에서 무언가 나올거 같단다.
아뿔사. 바다에 도착도 못했는데 이걸 어쩐담.
딸애는 연신 오빠가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바다로 가기에는 무리라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종알거렸다. 괘씸한것이 도움은 못될망정 초를 치려고 잡도리를 한거였다.
아들애는 물을 좀 마시고 차에서 내려서 시원한 바람을 좀 맞았더니 서서히 괜찮아졌는지 두눈에 정기가 다시 돌았다.
“거봐요. 나 오늘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가 자꾸 해변에 가자고 하니까 내가 멀미 하잖아요. “
아들은 볼멘 소리를 한다.
난 애들이 힘들게 공부를 하니 휴식하는 날을 리용해 바다로 산으로 데리고 가서 자연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을뿐이였다. 바다나 산에를 다녀보면 학교에서 배울수 없는 우직한것들이 더러 있었다. 나는 그런것들이 애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될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연과 아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앞으로 심신을 자연에 맡기고 힘든 인생과제를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애들은 전혀 달갑지 않아 했다.
평소 애들은 휴일만 되면 엄마 아빠는 뒤전으로 하고 홀로 집에서 컴과 폰에 파묻혀 있지 않으면 친구들을 찾아 밖으로 나간다. 이번에는 내가 애들이 더 크기 전에 한번 바다구경이라도 함께 가고싶어 억지를 부리고 설득도 거듭해서 어렵게 떠난것이였다. 개구쟁이일적에는 매일 부모 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애들이 이젠 부모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전혀 안하던 멀미까지 하겠는가.
그래도 이미 뽑아든 칼이니 무라도 베야지 하는 심정으로 해변으로 강행을 했다.
바다에 도착해서도 애들은 어렸을때 그렇게 좋아하던 모래성 쌓기도 하지 않고 사진을 찍자고 포즈를 취하라고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쁘게 입을 삐죽거리지 않으면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바다물에 발을 담그기는커녕 멀찌감치 서서 밀려오는 파도만 구경하면서 어른거리는 물결에 머리가 어지러워 멀미 난다며 이마살을 찌프린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애가 느닷없이 사람들은 왜 멀미를 하냐고 물어왔다. 나는 열정이 식어 아무렇게나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음 그러니까 말이야. 뒤좌석에 앉은 사람은 차가 빨리 달릴지 늦게 달릴지 그리고 언제 급정거를 할지 차선을 바꿀지 잘 모르니까 몸안에 감지하고 있는 위치와 실제로 차가 지나가는 위치가 오랜시간 일치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멀미를 하게 된단다. ”
“그런데 왜 운전하는 사람은 멀미를 안해요?”
아들이 신기한듯 또 물었다.
“글쎄. 운전하는 사람은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그리고 속도를 빨리 해야 할지 늦게 해야 할지 혼자 속으로 다 알고 있으니 내 마음속의 위치와 실제 차가 이동하는 위치가 일치하니까 멀미를 하지 않는단다.”
나는 생각나는대로 대답하다가 느닷없이 속이 뜨끔해났다.
내가 오늘 무슨 일을 저질렀지. 오기 싫다는 애들을 데리고 내가 지정한 바다에 혼자 편한 시간에 애들을 강요하다싶이 데리고 나왔으니 애들이 멀미가 안나면 도리여 궤변이지.
내가 아낌없이 주었던 사랑이 아이의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눈짓이 되고 몸짓이 되여야지 멀미로 남게 해서야 되겠는가.
운전하는 사람은 멀미를 안한다. 하지만 동승하는 사람은 멀미를 할수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애들을 억지로 내 차에 태우려고 하지 말고 애들 혼자 결정해서 멀미나지 않는 길을 가도록 도와줘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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