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손님과 주인이 꾸는 꿈은 다르다
김영분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너희들 장차 커서 리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언 손등으로 코를 쓱 닦으며 커서 과학가가 되겠다는 애가 있는가 하면 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경찰이 좋다는 아이에 의사가 되어 할머니 병을 치료해주겠다는 친구에 그야말로 꿈이 각양각색이였다.
그때 유치하게도 심심산골에서 살고 있던 나의 간절한 소망은 소학교 교과서에 중요한 과목으로 선정된 북경 천안문광장에 한번 가보는 것이였다. 그 소원은 어른이 다 되여서 출장이나 관광으로 여러번 다녀와서 풀었지만 어렸을 때 간절히 원해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 첫 장거리 여행마저 일순위로 북경을 다녀왔다. 시키지도, 초대해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나의 자연스런 발상으로 천안문앞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다.
긴 세월이 흘러 아이들하고 함께 하는 천안문구경이였지만 어릴 때의 그 간절함은 거짓말처럼 또 살아났다. 인파를 비집고 국기 게양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꼭두새벽에 일어나 내 두눈으로 보고야 직성이 풀렸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간절하게 소장하고 이루고 싶은 꿈의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돌아오는 계절은 항상 나에게 희망을 주듯이 그런 소박하지만 꿋꿋하게 지킬 수 있는 꿈이 마음 한구석에 도망가지도 않고 온천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든든하고 행복했다.
왜 그랬을가? 때 묻지 않은 첫눈처럼 하얀 마음속에서 자라난 싹이여서 그런 것일가. 어른이 되여서도 꿈을 많이 꾸고 가꾸었다. 사업을 잘 해서 큰 집도 마련하고 아이들 류학도 보내고 싶고 무엇보다 남편과 아이들을 통해 좋은 안해, 훌륭한 엄마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았다.
아이들이 다 큰 지금은 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내여 당당하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되고 싶다. 여러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싶고 더 나아가 잘난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은 마음이였다.
희망은 풍성하지만 현실은 겨릅대처럼 허약하기 일쑤다. 어른이 되여 가진 꿈이여서 그런지 씨엉씨엉 달리다가도 밧데리가 자주 나가는 핸드폰처럼 시도 때도 없이 빨간 신호가 깜박거렸다.
아이들은 내 마음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주지도 않았고 선생님한테서 호출받기를 거듭했다. 이럴 때마다 힘이 빠진다. 아이들이 곱다가도 미웠고 썰물과 밀물처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나의 꿈을 괴롭힌다.
그뿐인가. 사업도 순탄하지는 않다. 바이어들은 카멜레온처럼 색갈을 바꾸어가면서 회사의 인내와 능력을 시험 보며 좀처럼 마음을 느긋하고 편하게 내주지 않는다. 빡세게 당기면 주저앉고 손을 놓으면 날아가는 연줄과 같았다.
요즘 새로이 꿈을 가져본답시고 시작한 글쓰기도 엉망이다. 힘들게 짜내는 고름처럼 눈꼽만큼씩 나오다가 그 자리는 멍투성이가 되기가 일쑤다. 쓰여지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애꿎은 키보드만 부여잡고 구상을 한답시고 커피만 축낸다. 글을 써서 무얼 어쩌겠다는지 말 한마디에 답을 찾고자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내가 글쓰기에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해 의심이 들기도 했다. 족제비를 만난 수탉처럼 기가 푹 죽기도 한다.
정녕 개미가 궁전을 지을 수 없고 참새가 설산을 날아넘을 수 없듯이 쳐다보지 말아야 할 나무를 쳐다본 것일가. 어른이 되여서 가진 꿈은 왜 다 이렇게 흔들리는걸가.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반딧불인양 잠간 유용하게 쓰이다가도 자칫 잘못하면 아주 예리하고 아프게 내 살을 찌른다.
천안문에 가보고 싶은 꿈은 한번도 흔들리거나 괴로운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어렸을 때의 천안문은 내가 진정 보고 싶은 꿈이였기에 오래동안 간직하고 수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다 되여 품은 꿈은 내 꿈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꿈이 아닐가. 그래서 힘들고 괴로웠던 것일가.
그렇다면 잘남보다는 나다움이 더 중요하다. 한집에 들어있는 손님과 주인처럼 품은 꿈이 다르다. 잘남은 체면을 지키느라 화려하지만 빛아래 그림자가 따르듯 불안과 괴로움이 동반하는 손님이다. 하지만 나다움은 주인이다. 주인은 마음이 한결같고 넉넉하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발란스를 맞출 수 있고 집도 편안하게 가꾸고 자신도 편히 쉬면서 성장할 수 있게 리드한다.
어른이 되면서 주인으로부터 어느새 손님으로 바뀌여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처럼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되여 아프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하고 단단한 자신만의 꿈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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