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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블랙 블랙아웃(2)
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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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옛집의 터를 마주하고있다. 그곳에는 열매가 털려간 옥수수대들이 억울하게 서있었다. 옛집은 허물어지고 밀려가도 그녀의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자리만은 확실하다. 아빠와 함께 야반도주하던 겨울밤의 추위가 항상 그녀를 따라다녔듯이 이 골목의 흙 한줌, 지푸라기 한오리조차도 그녀에게는 지워지지 않았다. 가족다운 가족이 될수 없었던 그 중심에는 소녀 희경의 자그마한 질투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사건의 모든 시작은 그녀로부터 비롯된것임을 그녀만이 알고있을뿐. 오빠가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끌려가게 되고나서 한참뒤에 떠도는 소문은 소문만이 아니였다. 오빠의 고기발 초막에서 발견된 쑈훙의 머리핀을 증거물로 경찰에 넘긴 사람이 나분이였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분을 오빠의 고기발 초막에 데리고간것도 그녀였으며 비 내리는 초막안에서 소년이 선물한 머리핀이라고 나분에게 거짓말을 한것도 그녀였다. 그해 여름방학에 방아간집 소년이 똑같은 머리핀을 갖다주지 않았다는 리유로 소년과 나분에게로 향한 미움과 질투로 충만해있었던 그녀였다. 나분의 분노, 쑈훙의 거짓진술은 오빠를 빼도박도 못하게 강간범으로 만들어버렸다. 미성년자 강간범으로.
오빠가 출옥되여 불쑥 집에 찾아들었을 때 아빠는 목공일을 나가고 중학생으로 자란 희경이 홀로 오빠를 맞았다. 오빠는 단단해졌고 희경도 자랐다. 엄마의 턱아래 보조개를 물려받은 오빠의 턱아래는 웃고있어서 슬퍼보였다. 희경은 울었다. 막 봉긋하게 부풀어 솟아오른 가슴을 오르락하면서. 기쁨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후회인지, 자책인지 희경은 오래도록 울었다. 그리고 아빠가 그동안 면회도 다녀왔구나 하는 고마움을 느꼈다. 아빠와 도주해서 이사 든 루추한 이 집을 집이라고 다시 찾아온것에. 아빠께 감히 면회 가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고 설사 아빠가 면회 가자고 제안해올가봐 두렵기도 하였다. 옥중에 있는 오빠와 마주앉을수 있는 용기가 희경에게는 없었다. 오빠는 울고있는 희경을 품안에 넣었다. 희경은 손바닥을 펴서 오빠의 등을 만졌다. 턱으로 오빠의 등을 콩콩 쫏던 그 자리를 찾아헤맸다. 분명 그 등이였지만 그 자리를 찾을수 없었다. 흔적은 쉽게 사라질수 있으니까. 오빠의 등, 오빠의 가슴, 오빠의 손 등등의 오빠의 몸을 함부로 가까이 할수 없이 자라버렸다는것을 희경은 알아버렸다. 오빠의 세계와 희경의 세계가 그동안 구축되였으며 세계와 세계 사이에는 어떤 간격이 있음을 알아버렸다. 희경은 기억해냈다. 아빠와 오빠는 닮아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서로에게 불만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쉽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것을. 아빠는 진밥타령이였으며 오빠는 된밥 투정이여서 난감해진 엄마는 언덕밥을 지었다. 엄마와 희경은 언덕의 그 가운데 있는 진밥과 된밥을 섞어서 먹었다. 그러니 가족의 평화는 엄마의 지혜가 지켜나갔다. 가족이 깨지기전까지는 그래도 화목한 가족이였음에 틀림없었다. 엄마의 부재를 채워나가는것은 희경의 몫이 되였다. 희경은 솥안에 쌀을 언덕지게 안쳐서 한쪽은 질게, 한쪽은 되게 하기로 하였다. 엄마가 하던대로. 그리고 계란 세알을 씻어서 쌀물이 많은 곳에 얹었다. 오빠는 쪽걸상에 쭈크리고 앉아서 부엌 아궁이에 토막나무와 대패질로 말려진 나무꺼풀들을 넣었다. 가끔씩 오빠께로 희경의 손끝에서 물이 떨어지면 희경은 오빠를 내려다보았고 오빠는 희경을 올려다보았다. 둘 다 웃었다. 오가는 웃음에는 다른 감정이 끼여들지 못했다. 오직 행복이라는 감정 말고는. 썰렁했던 비좁은 부엌은 김이 뽀얀 안개처럼 짙게 서려가면서 먼지가 일도록 말라가던 희경과 오빠의 가슴을 촉촉하게 젖어들게 하였다. 파리똥이 말라붙어있는 알전구는 김속에서 희뿌옇게 너울쳤다. 희경은 저녁준비를 하며 오빠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아궁이에서 비쳐지는 불빛으로 혈색이 회복된 오빠의 얼굴은 보기 좋았다. 김속에서도 얼굴선들은 군더더기 없이 선명하게 그어져있었다. 보조개가 패여있는 턱밑의 울대뼈가 만들어내는 그늘은 짙은 검은색이였다. 오빠의 인생에서 문신처럼 따라다닐, 지울수 없는 그늘. 희경은 오빠와 아빠와 함께 둘러앉은 밥상앞에서 낯선 냄새들의 흐름을 보았다. 오래된 창고를 열어젖히면 몰려오는 눅눅함을 오빠에게서. 텁텁한 나무냄새와 차거운 쇠냄새를 목공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에게서. 냄새들이 섞여지고 어울리면서 또 다른 냄새를 만들어갔다. 냄새라는것은 쉽게 슴배이고 약한것은 강한것에게 먹히우고 새로운 낯선 냄새로 재탄생된다. 그 과정을 오빠와 아빠는 굳이 밀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면 이미 지쳐버려서 될대로 되라는 무심함, 아니면 함께 하지 못한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간절함이였을가. 아빠는 단지 빚더미가 두려워 야반도주한것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희경은 문득 깨달았다. 그때부터 오빠가 출옥할후의 생활을 차곡차곡 준비했었다는것을. 아빠와 오빠는 서로가 닮아있는 부분에 불만을 느끼는것 같지 않았다.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것은 서로의 얼굴을 다시 확인할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입밖으로 새여져버리면 모든게 깨질수 있다는 념려로 희경은 생각했다.
진밥.
된밥.
된진밥.
삶은 계란의 따뜻한 미소.
진밥과 된밥은 서로를 리해하려고 리해해주려고 애썼지만 한 사람을 완전히 리해한다는것은 완전 불가능하다. 그러나 진밥과 된밥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서로의 설익은 리해를 완전 리해로 착각하게 되다보니 불협화음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 된진밥이 서뿔리 끼여들 문제가 아니였다. 삶은 계란은 다시 따뜻하게 웃어주지 않았다.
마침내, 오빠는 다시 물감옥을 선택했다. 바깥세상, 대부분 사람들이 누리고 사는 정상의 세상으로 돌아온 오빠는 예전의 그 세상을 예전 그대로 살수 없었다. 세상이 오빠를 버렸듯이 오빠도 낯선 세상을 버리고싶어했다. 결국에는, 결국에는 이미 익숙해진 단절된 세상을 선택했다. 바다물에 둘러싸인 그 감옥을. 원양어선으로 오빠가 떠날무렵 희경은 고중 2학년생이 되였다. 오빠는 타이티에서, 사모아에서 어선이 입항이 될 때면 희경에게 엽서를 보내왔다. 야자수, 파도, 푸른 물, 갈매기, 해안, 노을, 섬, 해변에 놓여있는 하얀 의자, 백사장, 바다를 끼고있는 릉선이 완만하게 굴곡져있는 산 등등 흔하지만은 모든 동경을 담은 풍경의 엽서들은 하나도 없었다. 한꺼번에 똑같은 엽서를 여러장 준비해두었던지 늘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시계들을 담은 엽서를 보내왔다.
잘 있지?
잘 있겠지.
잘 있어야 돼.
엽서 뒤면에 지극히 짧게 단마디 문안을 적어서. 희경은 엽서를 꺼내서 보고 또 보았다. 사각의 금색 시계판, 나침판인듯 작은 화살표를 담고있는 둥근 시계판, 흰색 바탕에 까맣게 수자가 선명한 시계판, 시간금을 완전 배제해버린 분침과 시침만 있는 비여있는 시계판, 크고작은 치륜이 맞물려있는 해부학도와 같은 시계의 내부구조, 영어표기로 된 시간금의 시계판 등등이 엽서 앞면에 빼곡이 채워져있었다. 시계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희경은 비여있는 오른쪽 손목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시간들, 비껴간 시간들, 돌이킬수 없는 시간을 읽어갔다. 태엽으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돌려서 일력과 달력을 무수히 번지고 되넘겨서 엄마와 아빠와 오빠가 함께 했던 그 시간으로 돌려놓고 그 시간을 그대로 고정해버리고싶었다. 사람은 떠나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은 그대로 남는다. 비록 기억이라는건 확실치 않지만은 기억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려준다. 불확실한 기억이라고 할지라도.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그냥 스쳐지나는 일과 사람들, 우연한 마주침에서 시작된 인연의 끈을 한올한올 엮어가는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는지. 먼 과거였었다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것조차도 극력 머리를 쥐여짜내야 하는 기억, 자신을 구성해온 시간들의 각질층에 내려앉은, 입김으로 불어버리면 흔적도 없이 날려가버리게 될 과거의 존재들, 자신에게는 한낱 먼지같이 가벼운 우연이였지만 어느 누군가는 바위같은 침묵속에서 그 순간들, 그 날들을 가슴에 새겨둔채로 또 다른 누군가의 인연속에서 괴로와하며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고있는것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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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거기 다녀오려 해요.
어디?
… 거기…
거기?
거기에.
…
거기에 가야겠어요.
그래, 함 가보라. 나도 가보고싶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그럴수도.
거기서 니 몫만 보고 오라.
내 몫의 기억에 오빠가 자리하고있는데도요?
기억은 오로지 자신의 전유물인것 같아. 타인이 기억해주는건 오류일지도 모르지.
내가 기억 못하는 내 기억이 있는데도요?
엄마 배속에 있었던 기억 같은, 니가 기억할수 없는 그런것도 니거겠지.
…내거겠지요.
견딜수 없어도 견뎌야 한다. 희경아.
나아갈수 없어도 나아가야 하는거겠지요.
리혼을 하고나서 정확히 일주일후, 대춘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부고를 받고나서 그녀는 강림촌으로 다녀오려고 생각했다. 강림촌으로 떠나기 이틀전 샌프랜스시코에서 살고있는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그리고 짧게 오빠와 대화를 나누었다. 미안했었다고 오빠에게 고백하려고 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위안을 얻은셈이다.
오빠, 잘 있어요?
오빠, 잘 있겠지요?
오빠, 잘 있어야 돼요.
오빠, 미안했어요.
그녀는 키 넘게 자란 누르께한 옥수수대를 바라면서 앞에 있지도 않는 오빠에게 혼자소리로 말을 걸었다. 오빠 사고의 블랙박스는 그녀가 30년을 품고있다. 블랙박스의 테이프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기억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수 있다. 그러나 오빠는 블랙박스를 찾지 않는다. 사건의 기록들을 파헤쳐서 진실을 밝힌다고 한들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어차피 살아가고 살아지니까. 그녀는 옛집이 밀려가고 옥수수밭이 되여버린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주인이 바뀌여 지금 이 자리에 옛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원 주인이였던 그녀 가족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을것이고 설령 지금 이 자리우에 누구넨가 새집을 지어올렸다 하더라도 그녀 가족들의 냄새를 지울수 없을게다. 집이 있던 자리에서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곡식이 여물고 짐승들이 드나드는 풍경이 그녀에게는 오히려 위로가 되였다. 땅이 기억해주면 그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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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머, 이게이게 희경이 아니냐?”
경악을 감추지 못한, 반가움이 묻어있는 한 녀인의 목소리가 그녀의 뒤쪽에서 들렸다. 그녀는 몸을 틀었다.
“어머머, 맞네 맞어. 희경이.”
곱게 늙은 녀인은 그녀의 손을 잡으려다 말고 어린애처럼 손벽까지 쳤다. 짝. 짝.
그녀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대체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은 짧게 목례를 올렸다.
“세상에… 그동안 어디서 지냈다냐? 날 몰라보는게구나. 그럴수도 있지. 어릴 때 여길 떠났으니. 니랑 니 아버지랑. 나 방아간집 며느리. 작은 며느리.”
녀인은 자신을 확인시키기에 바쁘다.
“아, 네. 안녕하셨어요?”
그녀는 굽석 다시 인사를 드렸다.
“참으로, 참으로 이게 얼마만이다냐? 30년이 지났지”
“네, 꼭 30년만이네요.”
녀인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방아간집 아지미는 할머니로 늙어있었다.
“아버지는 잘 계시고?”
“돌아가셨어요. 2년전에.”
“에고고. 수태 고생고생하더니만. 한 사람 한 사람 다 떠나고. 이 동네도 다 비였어. 나도 한국에서 3년만에 온거야. 그래 지금 어디 있어?”
“H시에서 살아요”
“잘됐다. 잘됐어. 이러쿵저러쿵 해도 나중에 보면 다 살게 되여있어. 니 엄마가 불쌍하지. 지금도 오리떼들을 보면 니네 생각나는거 있지. 오리부업 망했기로 그렇게 허망 목숨을 끊어버리다니. 니 엄마도 참, 지금쯤 니가 이렇게 살고있는것도 보면 좋기나 하지.”
“…”
“애는? 신랑은? 요즘은 다들 자식 둘 가지던데. 몇이냐?”
“신랑은 죽었어요. 애는 없구요.”
그녀는 녀인이 놀라서 입을 닫기를 바랐다.
“뭐? 어쩌다가?”
녀인의 목소리가 너무 높게 올라가는바람에 물음표가 나올 부분에서는 목소리가 갈렸다.
“오빠는 샌프랜시스코에서 살고있어요. 미국에요.”
그녀는 뒤따를 지루한 질문이 예상되여 묻지도 않는 말을 하기로 했다.
“미국… 그래, 그래, 니 오빠 일도… 괜찮아, 다 괜찮아.”
충격을 회복한 녀인은 딱딱한 표현을 썼다.
그녀는 핸드빽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만지작했다. 급한 일이 있음을 알렸다. 빨리 이 자리를 뜨고싶었다.
“어디 가서 좀 앉지? 나 지금 촌장네 집으로 가는데.”
그녀는 휴대폰을 흔들어보였다.
“니 일 보라. 점심에 괜찮으면 우리 집에 들르고. 천천히 얘기하자.”
녀인은 다시한번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놓았다.
그녀는 발걸음을 떼였다.
“아, 맞다. 희경아. 울 연수 니네 소식 묻던데. 깜빡했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녀인이 다시 그녀를 불러세웠다.
“연수?”
그녀는 몸을 돌렸다.
“연수 잊었어? 시내에 살던 우리 조카. 외조카. 지금은 R신문사 기자로 되였어. ”
“연. 수. 잘되셨네요.”
“자랄 때 연수 보러 울 집까지 막 찾아다녔잖니? 니가. 배포도 좋았지. 그때는. 혹시 련락하려면 R신문사로 알아보면 금방 찾을수 있을거야. 내께도 전화번호 있기도 하지만.”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그녀는 다시 인사를 드렸다. 방아간집 소년의 이름이 연수였음을 새삼 깨달았다. 나분과 그녀 사이에서 연수는 “방아간”으로 은밀히 불려져서 자기의 정체성을 잃고 그들의 기억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분의 행방을 물어보려고 녀인을 다시 불러세우려다 관두었다. 나분이도 연수도 그때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을것이다. 상처가 깊은 사람만이 오래도록 과거를 잊지 못하는 법이니까.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바람과 머리카락 사이로 가을빛은, 시간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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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라는 놈은 령리하기로 소문난 놈이지. 돌고래가 고기배에 따라붙는 날이면 우리 배놈들은 얼씨구지. 참치 한마리도 올라오지 않는거야.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건 참치대가리뿐이야. 아가미쪽까지의 고기를 말끔하게 뜯어먹고 입에 물려진 낚시가 두려워 그대로 두는 돌고래이지. 고등어랑 정어리랑 미끼로 끼워둔 놈들도 대가리만 남겨져 올라오거든. 오징어는 돌고래의 식성에 맞지 않나보더라. 묵직한 오징어만 멀쩡하게 다시 낚시와 같이 올라오는거 있지. 돌고래란 놈은 참으로 대단해. 그렇게 이틀만 어선을 따라붙으면 선장은 지럴지럴 하면서 어장을 바꾸어야만 하거든. 삼일은 공탕을 치는거지. 어획량이 제로가 되는거지. 근데 말이지. 사람이란거 참 이상하지. 이렇게 한가하게 시간만 나면 옛일이 떠오르는거 있지. 나빴던 일만 생각되는거 있지. 휘청대는 선미(船尾)에 앉아서 부글부글 괴여져 올려와서는 뒤쪽으로 흰 물길이 이어지는 밤바다, 그런 바다를 멍청히 바라볼 때면 괴로웠어. 그리워서 괴로운거겠지. 희경이 니랑 아버지랑 그리웠지. 함께 하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내가 어이없는거지. 엄마의 자살도 내탓일수도 있지. 다 털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함께 하면서 이길수 없어도 이겨내야 하는데… 그런것쯤은 다 알고있는 도리인데 안되는거 있지. 비겁한거지. 비겁했지. 별수 없지. 다들 바다는 푸른색이라고 하지만 나는 바다의 색갈을 굳이 말하라면 흰색 아니면 검은색이지. 처음으로 타이티 항구에서 배에 오르고나서 무슨 생각 했던지 알어? 비로소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왔다 하는 생각으로 힘이 나는거 있었지. 맞지 않는 세계에 억지로 자신을 맞추며 살기를 완전 포기하고나니 자신과 어울리는 세계가 눈앞에 나타났다고 해야 할가. 아무튼 그래. 배멀미로 선상 구석에 처박혀 배속의 신물까지 뽑아올리는게 몸에 남아있는, 머리에 찐득하게 달라붙어있는 찌꺼기들을 쓸어내는 기분이였다니까. 펄떡거리는 참치의 배속에 칼을 찔러넣고 내장을 끄집어낼 때면 신이 나는거지. 상어를 끌어올려서는 꼬리만 몽탕 잘라서는 챙기고는 몸뚱이채로 바다에 던져버리면 스윽 하고 배 뒤쪽으로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상어 몸체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지. 더욱 신기한건 말이지. 승선해서 8개월만에 상륙이 될 때였지. 어창에 참치 한가득 싣고 상륙하여 하역을 할 때 말이지.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서 물밖에 보이지 않다가 륙지와 가까와지면서 섬 자체의 륜곽이 바다물우에 감도는 안개속으로 나타날 때는 신기루를 보는것만 같더라. 저게 뭐지? 저게 뭐지 하면서 눈을 부비부비했지. 어떤 슬픔이 몰려오는거 있지. 딱히 뭐라고 할수 없는 슬픔,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젖어드는거 있지. 그러고보니 우리는 슬픔의 작디작은 배들이 아닐가. 먹먹한 정적을 떠돌아다니는 작은 배들. 작은 배들의 슬픔은 그리움이였겠지. 슬픔은 슬픔대로 잠간, 륙지와의 8개월만의 재회라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어. 형님, 우리 술집 가서 한바탕 즐기자고. 인도네시아 선원이 섬이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낼 때 옆에서 환호하듯 소리쳤어. 상어꼬리 말린건 팔아서 뽀나스로 배분되거든. 그런데 상륙해서 첫발을 땅에 딛는 순간, 땅은 내가 살아갈 곳이 아니라는걸 알아버렸어. 글쎄 흔들리는 어선에 이미 익숙해져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휘청휘청하는거야. 휘청휘청. 나는 이미 휘청휘청 넘어질듯 흔들려야 살수 있다는것을. 밤중에 술집에 가서도 휘청휘청, 모처럼 반갑게 맞아준 한인교회의 교회당에 앉아서도 휘청휘청, 작은 섬나라에서 시간 맞춰 울리는 교회 종소리에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묵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침묵의 시간에도 휘청휘청. 이래서 배놈생활은 나에게 적격이라는 확신이 선거였지. 선상을 떠나면 내 존재감을 잃어버린다는것을. 나 지금 술 많이 먹었어. 만취라는것도 하는건데. 사실은 술을 필림이 끊기도록 먹어보는게 소원인데 근데 그게 잘 안돼. 아예 안돼. 아버지한테서 유일하게 닮고싶은게 있다면 바로 그거야. 블랙아웃. 술을 먹고 필림이 끊겨 기억을 하지 못하는 현상인 블랙아웃. 아버지는 그래도 기억을 잃어버리는 한 순간, 아니 하루밤이라도 있은거 아니냐. 불공평하지. 어찌 보면 아버지는 은근히 블랙아웃을 즐기고있고 또 그러길 바라고 술을 량껏 드시는지도 모르지. 아무리 술 많이 먹었기로 그 정도의 생각도 안 난다는게 본인이 저지른 실수가 실수였음을 술쪽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꼼수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이튿날아침이면 당황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직감적으로 진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 참 부러웠어. 그런 아버지가. 난 안돼. 아무리 먹어도 안돼. 술을 먹고나면 머리는 자꾸 과거로 돌아간단 말이야. 미래는 없고. 그것도 찌질한 과거로 말이지. 가끔씩 기억상실증에 걸려봤으면 하는 생각도 했었지. 어이없게서리. 그나저나 희경이 니는 령리한 돌고래처럼 생겼어. 이마가 차돌처럼 단단한게 딱 돌고래 같단 말이야. 돌고래 모형을 보면 괜히 니 생각나는거 있지. 우습지. 그래서 하나 사왔어. 그리고 내께 손목을 내밀고 시계를 그려달라던 너를 자꾸 생각하게 돼. 왜 시계는 꼭 여름이 아닌 겨울에만 그렸을가고 생각도 하고. 아마도 겨울이면 손목에 그려진 가짜시계를 감출수 있어서 그랬을지도 몰라. 여름에는 대충 티 하나 반바지 하나로도 거뜬히 날수 있기에 가난을 감추기에는 여름이 좋은데, 부유함을 가장하려는 가난을 감추기에는, 례를 들면 손목에 그려진 시계 정도는 겨울에 해야 하나봐. 기억나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내가 그려줬던 시계의 시간들은 다섯시였어. 아침 다섯시이든 저녁 다섯시이든 겨울의 아침과 겨울의 저녁 그 시간대가 나는 좋았거든. 그 시간대에 머물게 하고싶었어. 널. 그 시간대는 평화로운 시간일것 같았거든.
오빠는 어선에서의 첫 귀국후 어느날인가 술을 먹고 돌아와서는 희경을 앉혀놓고는 주절주절댔다. 아마 오빠의 생애에서 제일 길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아니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빠는 잠간 2년에 한번 꼴로 귀국했다가는 다시 어선으로 복귀되였다. 희경이 대학공부를 시작하고나서는 아빠가 있는 동네로 들리지도 않고 잠간 희경을 보러 왔다. 돌고래모양의 온도계도 선물했으며 학자금과 생활비를 듬뿍 얹어주고는 또다시 떠나기도 하였다. 그러던 오빠는 어선에서 기름배로 갈아타더니 어느날엔가 미국에서 전화가 왔었다. 이젠 볼수 없을거라고. 불법체류로 미국에 정착하련다고 했다. 클대로 다 컸으니 혼자서도 자기 길을 걸을수 있을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미국이든 어디든 드디여 오빠는 땅에서 살겠다고 결심했다니 희경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가서 소식이 뜸해지더니 8년이 지나서 메일로 사진을 보내왔다. 결혼했다고, 와이프와 아이들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내왔다. 사기단지와 같이 무척 단단하고 윤기가 도는, 톡 튀여난 이마를 한껏 자랑하며 구불구불한 머리를 뒤로 올빽으로 빗어넘겨 묶은 녀인이 두 아이를 앞에 세우고 오빠의 몸에 기대 서서 활짝 웃고있었다. 녀인의 섬세하고 조각 같은 얼굴, 갈매기의 날개처럼 각진 눈섭, 쌍거풀의 왕방울눈과 작고 곧은 코, 도톰한 입술, 윤이 흐르는 밤색 피부는 건강하고 활달한 돌고래를 닮아있었다. 녀인의 이름은 라헬, 인도녀인이라고 했다. 두 아들은 오빠를 빼여닮은듯하면서도 엄마 라헬의 이국적 냄새를 뿜고있었다. 파란 가을하늘과 파란 잔디, 흐르는 공기마저 파랗게 물들여져있을듯한 날씨에 공원에 소풍 나왔다가 어느 지나가는 소년에게 카메라를 부탁했던지 오빠와 라헬의 눈빛은 조금은 아래로 내려왔으며 두 아이의 눈망울은 약간 웃쪽 방향으로 반짝거렸다. 오빠의 턱아래 보조개는 라헬과 두 아이를 내려다보고 벙그레 웃고있었다. 희경은 오빠의 행복을 빌고 빌었다. 울면서 웃었다.
혼혈이라는것은 피와 눈물이 섞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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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촌의 흙길은 아스팔트로 변해있었지만 횡단보도와 신호등은 없었다. 띄염띄염 가속방지턱은 설치되여있었다. 그녀의 별명이 아주 잠간 “횡단보도”였었기때문이였는지는 몰라도 우연히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에게 눈빛이 가게 되는것처럼 그녀는 신호등 대기시간에 횡단보도를 멀거니 바라보고있으면 즐겁지만 않은 어린 시절의 “횡단보도”를 떠올렸던적도 있다. 무수한 차량들의 바퀴회전과 바쁜 길손들의 발자욱에 희미해졌다가는 또다시 산뜻하게 색을 올려지는 횡단보도, 중국말 그대로 “줄말선斑马线”은 줄말 몸뚱이의 우아한 선의 흐름을 도로에 옮겨새겨 안전지대 혹은 금지의 또 다른 하나의 표기이도 하다. 뚫려만 있으면 길이 될수 없으며 그곳에 갖추어야 될 모든 요소를 담고있어야 도시에서는 길이라고 말할수 있으리라.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무관심한듯, 초조한듯, 짜증난듯 횡단보도를 마주하고있다. 살면서 잠간씩 쉬여가라는데 쉬는걸 부담스러워한다. 불확실한 시대에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수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삶은 또 가볍지만 않은 블랙유머들을 툭 던져준다.
길우에 선 모든것들에게는 늘 위험이 곁에 있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시골뻐스가 동네 광장앞에 정차했다. 뻐스에 오르는 사람은 그녀뿐이였다. 웃동네 한족마을에서 내려오는 뻐스였다. 뻐스안의 찐득한 공기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뻐스에는 그녀를 포함해서 승객이 셋만 달랑 올라타있었지만 꽉 차있었다. 시골과 시내의 물건을 실어나르는 짐차라 하는게 합당할듯하였다. 그녀는 환기가 되도록 차창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가느다란 한숨이 새여져나갔다. 간다, 간다. 입속으로 자그마하게 되뇌였다. 그녀의 입속에서 나온 소리는 차창너머의 허공으로 풀려나갔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를, 영원히 찾지 않을 고향.
알콜성치매로 한결 자유로와진 아빠가 양로원에서 당신의 고향친구들은 다 어디 갔냐고 투정부리면서 비여버렸다고 했던 고향.
뻐스는 조급하게 움직였다.
차창밖의 풍경은 바뀌여갔다.
가로등이 휙휙 지나고 파란 양철지붕의 화장실, 허물어진채 쌓여있는 초가집의 잔해, 그우에 웃자란 풀들이 지나갔다.
괜히 놀라서 파다닥 날개짓하는 오리무리들을 지나고.
담장밑 코스모스를 지나고.
잎과 잎, 대와 술을 서걱서걱 소리나게 비벼댈 옥수수대를 지나고.
비여버린 논밭을 지나고.
늪을 둘러싼 언덕을 지나고.
과속방지턱을 지나.
아래동네인 한족동네를 이어주는 다리를 지나.
한족동네 정거장에 잠간 멈춰서 승객 둘을 마저 태우고 한족동네의 집, 목재가공소, 작은 슈퍼, 병원, 길가에 나선 사람, 강아지를 지나.
레루우를 힘차게 달리는 기차를 지나.
뻐스는 N시에 들어서고있었다.
스쳐지나는 모든것들을 기억의 테이프에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두려는듯 흔들리는 몸을 가누면서 그녀는 피곤해서 풀려지는 눈을 안깐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크게 떴다. 눈뿌리가 아파났다. 애써 기억하려고 하는것들은 오히려 쉽게 지워지고 기억속에서 쫓아버리고싶은것들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잊고저 하는 욕망은 기억하고저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임에야.
대춘이 그녀와 갈라서면서 울었다.
마음을 열어요. 함께 하는거잖아요. 결혼을 한 이상 우리는 각자가 아니예요. 당신이 품고있는 슬픔을 나누어야 한다구요. 슬픔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고 기쁨은 나누면 배로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곁에 있어줘도 늘 외로와하는 당신, 무엇이 당신을 외롭게 하는지, 무엇이 당신을 괴롭게 하는지 알고싶어서 미치겠다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늘 혼자였습니다. 늘. 언제나. 외로운 두 령혼은 서로 보듬어줄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지요. 하지만 나의 외로움은 당신의 외로움에 더욱 외로워져갔습니다. 외로움한테 외면당한 외로움, 그 괴로움은 당신은 잘 모를겁니다. 당신은 외로움을 작정했기에 덜 외로울수도 있겠지요. 그런가봐요.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거기서 멈춰야만 하나봅니다. 너무 사랑하지도 말고 너무 알려고도 하지 말아야 하지요. 너무 알려고 한다는것은 상대방의 정체성마저 요구하는 짓이 되겠지요. 너무 잘 알아서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왔다고 생각되는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상대방은 건너편에서 멀거니 나를 바라보고있다면 절망적이지요. 절망. 누군가를 완전히 알아버린다는건 불가능하지요. 설령 깊이 사랑한다고 해도. 그래서 사랑의 적정거리라는게 있다고 하는가봅니다.
대춘은 한음절 한음절 악을 쓰듯 뱉아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대춘의 머리를 만져주고싶었다. 대춘의 보드라운 머리를 올올이 쓰다듬어주고싶었다. 마음 먼저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손을 겨우 말렸다. 그러니까 미용원 손님때의 대춘의 머리를 감겨주고는 결혼하고나서 머리를 감겨주고 머리를 맡기고 하는 행위가 없었던것을 그녀는 기억해냈다. 한달에 한번 꼴로 머리를 자를 때를 제외하고는. 대춘과 그녀 사이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원인이 머리를 감겨주지 않았기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터무니없는 후회를 하고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게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지도 알게 되였다.
대춘은 그녀의 곁을 떠났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무시한 차량의 사고로 죽었다. 짧은 인생을 마치고. 자기가 문득 어느날인가 사고를 당할수 있다고 예언을 했었던듯 생명보험을 해두었으며 그 수혜자는 “강희경”으로 되여있었다.
그녀는 N시에 도착되였다는 기사님의 웨침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뻐스에서 내리면서 그녀는 좁고도 깊은 블랙홀을 떠올렸다.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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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무렵의 N시 기차역 광장.
그녀는 기차시간을 기다리고 서있었다.
입구쪽으로 밀치락닥치락하며 북적이는 사람들.
바쁘게 급하게 종종종 사고 팔고 짐 나르는 짐군.
호객을 하는 택시기사.
울려퍼지는 기차역 소음들.
리별의 시간이 가까와지면서 애처롭게 부둥켜안고있는 젊은 련인.
막대기사탕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
외설스러운 잡지를 매대에 눕혀놓고 끄덕끄덕 졸고있는 할아버지.
포장마차에서 몰려나오는 양꼬치 구워지는 누린내와 목탄연기.
기차역 불빛.
출장 나온 남자들에게 화끈하게 즐길수 있는 곳을 추천해주는 아줌마들의 억센 목소리.
카메라 샤타가 터지고 왁자지껄하는 무리의 소녀들.
눅눅한 습기.
차닭알 삶는 냄새.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길우에 선 그녀.
오빠가 그녀의 손목에 그려주었던 그 시간대인 다섯시가 되여간다.
8초
7초
6초
5초
4초
……
출처:<장백산>2017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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