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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처럼 느껴지는 것(2)
조원
&
열려진 창이다. 목화솜 구름이 밀려간 새파랗게 질려버린 하늘은 실크쪼각 같이 흐늘대고 있었다. 구들에 누워서 강희수는 가을하늘을 오래도록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책 없는 자유와 비여져있는 시간이 몰고 오는 외로움이라는 걸 강희수는 언뜻 느꼈다. 굳이 싫었던 공부는 아니였지만 굳이 공부를 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강희수의 자퇴의 의지였다. 그렇다고 꼭 뭔가를 하고 싶은 소원 같은 것도 없었다. 강희수는 어제부로 학생의 신분으로부터 사회인의 자유를 얻었다.
“뭐가 어쩌고 저째? 공부 안한다고? 왜? 공부해야 이넘의 촌구석을 벗어나지. 니 외할아부이 때문에 열네살에 밭에 끌려나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게 분한데 니까지 여그 산골짜기에 처박히겠다고? 되지도 않을 소리. 낼 당장 핵교 가야 한다. 내 죽는 거 볼라면 핵교 가지 말고. 핵교 안 가고 일한다고. 니 할일 집구석에 없다. 밥만 퍼멕여줄 거니까 차라리 놀아라. 놀리는 게 니한테 내리는 벌이다.”
강희수의 자퇴선언을 듣고 나서 조순재는 악을 쓰듯 웨쳤다. 조순재의 격한 반발을 예상치 못했던 강희수는 벽에 기대고 앉아 입을 대합조개처럼 닫아버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아부지는 공부 적게 해서 농촌에서 이러고 있담까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었다. 그러면서 담배쌈지에서 초담배를 꺼내서 신문지에 말고 있는 강필두를 힐끔힐끔 곁눈질하였다. 어쩌면 강필두의 침묵은 폭풍전야의 무시무시한 공포일 거라고 강희수는 숨을 죽이고 고스란히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조순재는 자기 분을 삭일 수 없없던지 바둥거리며 베개에 엎드려 울었다. 긴 시간을 들여서 눈물의 무게에 눌리워서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눈물이 거쳐간 마음은 씻겨서 안정을 찾았다. 조순재는 베개수건으로 코를 팽 풀면서 다시 일어나 앉았다.
“어이구, 답답해라. 희수 아부지. 말 좀 해보시라구요.”
조순재는 강필두를 닥달했다. 조순재는 희미하게나마 강희수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예감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강희경은 앉은뱅이 걸음으로 엉덩이를 강희수 쪽으로 밀어붙이면서 강희수의 옷깃을 당겼다.
바깥으로부터 청량한 저녁 가을바람이 방안으로 불어들어왔다. 그러나 그 바람은 고열로 치닫고 있는 강씨네 식솔 사이에서 흐르는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강필두의 마른 입술 사이로 뿜어져나오는 매캐한 골초냄새가 흐를 뿐.
“답답해라. 강씨네 이 고집을. 닮을 건 꼭 못된 것만 쪽집게로 집어서 옮긴다고 하더만. 에이구, 아들 애비 하는 꼴 보라구. 닮아서 불만 있나? 가타부타 지쪽 선언만 하고. 희수 아부지 속 터져요.”
조순재는 강씨네 두 남자에게로 엉거주춤 거리를 좁혀갔다.
“차라리 잘됐다.”
강필두가 드디여 침묵을 무섭게 깼다. 재털이에 담배를 비틀어눌렀다. 힘껏.
조순재는 억장이 무너져내려 휘청하면서 뒤쪽으로 물러나앉았다. 강희수는 뒤통수 한방 얼벌하게 얻어맞은듯 강필두를 건너보면서 덜덜 떨리는 무릎을 가슴으로 껴안았다. 강희경은 더 무서운 벼락이 떨어질 것을 예감하고 가슴 쪽으로 두 손을 모아쥐였다.
강필두는 눈을 슴벅이였다. 천정을 바라며 한글자 한글자 뱉어냈다. 자신에게 홀로 하는 고해성사처럼, 일인분의 고통은 일인분의 고통으로 끊어야 한다는 선언을 하듯이.
“그래, 차라리 잘됐다. 하기 싫은 공부 해봤자고.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직하고 녀자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삶이란 게 별거더냐. 아예 끈을 끊어. 연을 끊으라. 머리 밀고 절에나 가라. 산에 들어가라.”
“아부지.”
예상치 못했던 어이 없는 강필두의 제안에 강희수는 고함 질렀다. 무릎을 풀면서 두 주먹을 쥐고 바르르 떨었다. 가난으로 얽히고 설킨 강필두의 얼굴은 평온하였다. 걱정이나 불안을 부리우고 난 비여있는 얼굴이였다.
조순재의 통곡이 뽑아졌다. 온 집안이 들썩이였다. 조순재가 뽑는 통곡의 소리보다 곡과 곡 사이에 이어지는 추임새의 숨소리가 처량하게 밤공기를 타고 창밖으로 흘러나갔다.
“지네 멋대로 혀바. 혀보랑께. 아그 적게 낳아 잘 키우자고 한 게 누긴데. 까까머리 중대가리 맹글라꼬 논길에서 희수 자를 내싸질렀노?”
조순재는 격한 발언을 하게 되면 억양이 변해졌다. 강희수와 강희경의 앞이 아니라면 강필두의 의식적인 체외사정까지 들먹일 태세였다.
이튿날 아침, 조순재는 식사준비는 물론 밥상에도 앉지 않고 반나절 앓아서 누워있었다. 오후가 되여서야 바람 쐬러 마실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강희수는 아침밥을 거르고 고방문을 걷어걸고 오후가 다 가도록 가을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강희경이 친구들과 떠들어대고 있었으며 할일 없는 거위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땅 따먹기 놀이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강희수는 일어나서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찌르는 가을해볕에 눈이 부셔서 어지러웠다. 강희경과 동네 소녀들이 마당에 쪼크리고 앉아있었다. 놀이판을 수양버들이 그늘로 대각선으로 덮고 있었다. 놀이판에는 들쑥날쑥의 금이 그어져있었다. 금이라는 선, 금이라는 경계를 만들고 있는 소녀들의 익은 얼굴들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이미 확보한 자기 쪽 령토에는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검정고무신의 코끝, 어른용 끌신, 비누물을 채 빼지 못한 누르께한 운동화가 놀이판의 세 방향을 고집스레 지키고 있었다. 넷이서 놀이하는 것 같았지만 신발 한컬레는 놓여있지 않았다. 어른용 끌신이 놓여진 쪽은 이미 저 앞으로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어서 최다 령토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 령토는 강희경의 자존심이였다. 놀이에서는 목숨 걸고 덤벼드는 강희경은 무릎을 꿇고 병마개로 만든 공격무기를 조준하고 있었다. 얼굴은 거의 땅에 붙이고서. 문득 분홍색의 산다루 하나가 강희경의 막 튕기려 하는 손가락 옆에 다가섰다. 강희경은 이쁜 분홍색 산다루를 따라서 원피스자락을 따라서 웃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나분이였다. 넷중에서 유일하게 맨발을 거부한 나분, 유일하게 이쁜 신발로 발을 감싸고 유일하게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나분이였다. 나분의 얼굴은 우유빛갈로 빛났고 야물차게 다문 입가에는 불만이 비쳐있었다. 밀려서 거의 한뼘 정도 뿐인 자기가 따놓은 령토를 빤히 곁눈질하며 나분이 말했다. 그만 놀래. 강희경은 억울한듯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매차의 놀이에서 늘 그래왔다는 듯한 대책 없는 수긍을 하는 무가내한 표정이였다. 계급의 차이는 자세였던가. 서있음과 땅에 엎드림, 맨발과 산다루가 꿰여진 발, 굳이 신발로 자기 령토를 표기해두지 않아도 되는 여유, 반바지와 츄리닝과 원피스, 무작정 놀이를 끝낼 수 있는 ‘그만 놀래’로 패배를 패배로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강희수는 강희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가슴 속으로 찔려오는 아픔의 그 정체를 시간이 썩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가난이 주는 패배.
“희경아 오빠랑 저기 밭에 나가볼가?”
강희수는 강희경을 불렀다.
고방문을 열고 나오는 강희수를 보더니 강희경은 이내 평정을 회복하며 환하게 웃었다. 나머지 두 소녀는 나분과 함께 마당을 빠져나갔다. 대문 문고리를 잡고서 나분은 고개를 돌려 강희수와 강희경을 째려보고는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몸짓을 부러 지으며 대문을 나섰다.
강희경이 땅 따먹기 놀이판을 다 지우기를 기다렸다가 강희수는 강희경을 데리고 대문을 나섰다. 강희경은 강희수의 손에 슬그머니 감자가 섞인 누룽지를 쥐여주었다.
“오빠, 먹어. 엄마 모르게 숨겨놨던 거야. 빨리 먹어.”
강희경은 애써 어른 티가 있어보이도록 강희수의 손을 다시 잡았다 놓았다. 강희수는 입에 누룽지를 넣었다. 서둘러 씹지 않고 침이 젖어들 때까지 누룽지를 입에 물었다. 입 안에서 곡식들이 구수하게 부풀어올랐다. 곡식들의 단물을 목구멍으로 빨아들이고는 씹기 시작했다. 바삭바삭 약간 타들어갔을 감자가 씹히고 밥알이 씹혔다. 누룽지를 고소하게 씹는 강희수의 입을 강희경은 으쓱해하면서 올려다봤다. 강희수는 칭찬을 애타게 구걸하는 강희경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강희경의 얼굴은 갓 구워낸 도자기의 미소가 어렸다. 강희수는 강희경의 한쪽 손에 들린 납제의 소래와 몽둥이를 나꿔채서 들었다. 논밭으로 새 쫓으러 가는 길이였다. 골목을 에돌아 왕얼네 집 대문과 가까워지면서 강희경은 강희수의 몸 뒤쪽으로 숨으면서 옷깃을 손아귀에 쥐였다.
“무서워, 오빠.”
등뒤로 숨어버리는 강희경을 보면서 강희수는 허허 웃었다.
“왜?”
“쑈훙네 집 마당에 뱀들이 우글거려.”
“왜?”
“쑈훙 오빠 간질병 고쳐준다고 쑈훙 아부지 뱀잡이 다녀. 저번에 뱀들이 우글우글 초롱에서 빠져나와 란리났댔어.”
“그래? 빨리 가자 그럼.”
강희수는 강희경의 손목을 잡고 걸음을 빨리했다. 왕얼네 대문을 스치면서 강희수는 호기심에 대문 너머로 앞마당을 목을 빼들고 기웃거렸다. 출입문 쪽에는 길죽한 막대기를 지붕 웃쪽으로 올려서 맨 끄트머리에는 강희경이 말하던 초롱이 묶여져있었다. 강희수는 멈칫 서버렸다. 파란 그물로 둘러싸인 초롱 속에는 뱀들이 징글징글 엉겨있었다. 학학 숨을 몰아쉬는듯 혀를 빼물고서 대가리를 빳빳이 곧추 세운 뱀들도 있었다.
“오빠, 뭐해? 빨리 가잔데.”
강희경이 멈춰선 강희수를 앞으로 잡아당기더니 귀청을 찢는 비명을 질러댔다. 왕얼네 대문을 거의 지나는 골목에서 왕얼이 번들대는 웃통을 드러내고 나타났다. 왕얼의 손에는 파란 망태가 들려있었다. 그 속에는 뱀이 미끌대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강희경을 보면서 왕얼이 파란 망태를 들어올리면서 “이놈이 이번 해의 마지막 놈이야.” 하면서 음흉한 웃음을 던지고는 대문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이미 혼이 반쯤 나간 강희경은 뱀의 혀바늘에 찔린듯이 몸을 떨었다. 강희수는 강희경을 둘쳐업고 골목길을 에돌아 마을 밖 들길로 나섰다. 강희수는 간간이 어른들 술자리에서 곁들었던 말을 가슴 속 깊이 새겨넣고 있었다. 문화대혁명 때 왕얼이 강필두를 밀고한 자라고, 강필두의 교원시절의 과오를 파헤쳐서 반혁명으로 몰아갔던 자도 왕얼이라는 것을. 강희수의 기억에는 없었지만 조순재가 아끼고 쓰던 쌀독에 붙여놨던 황색 그림이 화근이 되였다고 한다. 강희수는 그 황색 그림의 정체가 무지 궁금했지만 어느 누구하고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아마도 그렇고 그런 그림이겠지 하고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들길에 들어서면서 강희경은 신이 나서 나비처럼 팔랑팔랑 강희수의 앞에서 뛰여갔다. 단발의 새까만 머리는 튀여나온 뒤통수에서 찰지게 흔들렸으며 짱구머리에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긴 목은 코스모스처럼 뽑아져 올라가있었다. 도로 량옆으로 멀리로 아득하게 펼쳐진,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의 자람새는 가을의 풍요와 땅의 도고한 자태로 뽐내고 있었다. 강 너머로는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산의 릉선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유연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길섶의 가시를 품고 있는 짙은 밤색으로 반짝이는 도깨비풀, 탱글탱글한 작은 고슴도치를 품고 있는 도꼬마리, 강아지풀이 뽑아올린 개꼬리 등등은 환영받지 못했던 서글픔에서도 어엿하게 자랐다면서 곡식들에게 도전적인 표정을 보내고 있었다. 하찮은 것들의 만족은 들판의 곳곳에 널려있었다. 가을은 서로가 어우러지면서 너그러워지는 계절이랄가. 무르익고 있는 강희경의 기분에 전염되여 강희수는 비여가던 가슴이 메여지는 충만함을 느꼈다. 들길을 걸어 언덕에 올랐다. 언덕 양지 쪽으로 구절초가 하얀 얼굴을 곧추 들고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얼굴의 중심에는 노란 연지를 짙게 찍고.
“우와, 저건 엄마꽃이야.”
강희경은 언덕 경사면을 따라 달려내려가 구절초를 꺾어서 오른쪽 귀바퀴에 끼우고는 강희수를 향하여 구절초의 소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음력 9월 9일이면 채집한대서 이름이 구절초라고 명명된 꽃이름 가을이면 강필두는 구절초의 풀 전체를 채취하여 엮어서 처마 밑에 매달았다. 겨울이면 건조된 구절초를 달여서 조순재의 산후병 약으로 썼으니 강희경이 엄마꽃이라고 떠들어대는 데는 그럴 만한 리유가 있었다.
“곱지?”
“엄마꽃 머리에 피니 디게 곱다.”
“나분이보다 곱지?”
“∼ 그럼. 나분이는 비교도 안될 정도지. 니가 세상서 젤 곱다.”
“히히. 처마 밑에 걸어놓으면 그 냄새 디게 좋댔어.”
“누가?”
“그런 애 있어.”
“누군데? 나분이?”
“칫. 나분은 말라비틀어버렸다고 보기 싫대.”
“그럼 누군데?”
“그런 애 있다니까.”
“보자. 누굴가? 내가 알고 있는 애?”
“알 수도 있지.”
“아하. 그 집에 애∼”
“어찌 알어? 오빠. 방아간집 손자.”
“흐흣. 그 애였구나.”
“오빠, 미워.”
“그 애가 겨울방학에 놀러 오면 냄새 맡게 해야지. 구절초 마른 냄새. 그 애가 말인데 구절초 자꾸 나보구 따오라고 그랬어.”
“니가 좋아하는구나.”
“좋아하긴. 그 애가 구절초 핑게로 나하고 말 걸어 그렇지. 칫.”
“오. 갸가 우리 희경일 좋아하는구나.”
언덕을 따라 걷는 강희경과 강희수의 머리 우로는 나비 두마리가 가벼운 몸짓으로 선회하였다.
강 옆으로 펼쳐진 강필두네 논밭에 이르렀다. 강희수와 강필두의 기척에 놀라서 벼밭에 앉아있던 참새들이 일제히 깃을 치며 날았다. 새떼들이 새까맣게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낮게 날아서는 옆집 밭으로 옮겨서 자리를 잡았다.
타다당. 타당.
훠이. 훠이.
소래 두드리는 소리와 하늘을 찌르는 새 쫓는 소리가 숲 속에서 들려왔다.
“누기얏.”
강희경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숲 저쪽에서 타다당, 타당 소래를 두드리며 왕얼네 쑈훙이 숲 속에서 일어섰다.
“가스나, 벌써 왔네.”
강희경은 눈쌀을 찌프리더니 강희수의 손에서 소래와 방망이를 나꿔채서는 투다탕, 탕탕 미친듯이 두드려댔다.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는 새들의 무리는 량쪽 집 벼밭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벼밭 우를 낮게 날아옜다. 강희수가 논뚝에서 몽돌을 주어서 새떼들을 향하여 돌팔매질을 날렸다. 소래 두드리는 소리에 겁 먹지 않던 새떼들이 날아오는 돌멩이에 놀라서 멀리로 날아갔다. 강희경은 신이 나서 소래를 북 두드리듯이 세차게 두드렸다. 옆 밭의 쑈훙도 지지 않을세라 소래를 두드렸다. 논밭에 서있던 허수아비가 그 소리에 깨여지기라도 하듯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흐느적거렸다. 춤판에 끼여들고 싶으면서도 수줍게 먼발치에서 가벼운 몸짓으로 가락을 타는 춤사위로 허수아비는 손끝에 오리오리 드리워진 빨강 실가락으로 벼이삭들을 어루쓸었다. 소래 두리는 소리는 풍년의 축제의 메시지를 가을 창공으로 날려보냈다. 새들은 멀리로 날아가고 희경과 쑈훙의 소래 두드리는 소리도 수그러들었다. 갑자기 내려앉은 들녘의 정적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한 비밀스러운 데가 있었다. 쑈훙이 일어나서 이쪽으로 바라보는 듯하였다. 멀리에 있었지만 쑈훙의 눈길은 자기가 아닌 강희수에게로 향한다는 것을 강희경은 직감했다.
“오빠, 저것들 우리 벼알 훔쳐먹었으니 겨울이면 저넘들 우리가 잡아먹자.”
강희경이 강희수에게 히쭉 웃으며 말했다.
“가스나 못하는 말 없네. 가스나들 새고기 먹으면 공기 깨는 거 몰라.”
“서나들만 입이게? 서나들 지네만 먹자고 만든 되지도 않는 소리. 엄마가 그랬어.”
“가스나가 그렇게 영악하믄 못 써.”
강희수는 강희경의 뒤통수를 탁 때렸다. 강희수는 강희경과 가지런히 풀섶에 앉았다. 머리 속에서는 조순재의 엎드려 울던 등허리가 지워지지 않았다.
“오빠, 뭐해?”
강희경이 옆구리를 쳐서야 강희수는 정신을 차렸다. 돌팔매질로 개운해지려던 몸이 끈적거렸다.
“여기서 새들이나 열심히 쫓고 있어. 난 저기 강가에 가서 몸이나 씻고 올게.”
강희수는 강희경에게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논뚝을 걸어갔다.
“강물이 차. 조심해.”
강희수의 등뒤로 강희경의 소리가 들리더니 둥둥 소래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희경은 강희수가 떠난 뒤, 논두렁에 앉아 볕조임을 하다 깜빡 잠들어버렸다. 새떼들의 소란스러움도 없었다. 왕얼네 논밭으로 새떼들이 몰려있었다. 쑈훙은 어디로 갔는지 소래도 두드리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소래를 엎어놓고 그 우에 앉아서 하늘로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강희경은 방아간집 외손자의 코끝을 떠올렸다. 마른 구절초를 대고 냄새를 맡던 그 아이의 코끝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방학이면 외할머니 집으로 놀러오군 하던 그 아이, 나분이와 함께 일부러 찾아가서 보았던 그 아이, 이야기에 능한 그 아이, 나분에게 은근히 마음이 쏠려있는 그 아이∼ 강희경은 그 아이만은 나분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지었다. 나분의 미모와 나분의 총명과 나분의 부유와 나분의 재능과 겨룰 자기의 빈약을 느꼈는지 모른다.
강희경은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하자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목욕하러 간다던 강희수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건너쪽 쑈훙도 조용하였다. 강희경은 논두렁을 따라 쑈훙이 앉았던 자리로 걸어갔다. 소래와 방망이만 던져져있었고 쑈훙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강희경은 쑈훙네 벼끝에 매달려 배불리고 있는 참새들을 놀래우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논두렁길을 걸었다. 참새들이 까먹어서 비여진 벼이삭에는 벼알 속에서 흘려진 흰 진액이 말라서 붙어있었다. 강희경은 잘코사니를 부르며 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츄리닝자락으로는 도깨비 가시가 박혀왔고 도꼬마리가 말려왔다. 손목으로는 서걱대는 벼잎이 스쳐서 쓰렸다. 강가로 거의 다달을 무렵, 강희경은 논두렁에 납작 엎드린 어떤 사람의 뒤모습을 발견하고 살금살금 다가섰다. 격하게 몰아쉬는 숨 때문에 엎드린 쑈훙의 어깨는 들썩이고 있었고 머리는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옆에 강희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가슴에는 뭔가를 품고 있는 듯하였다. 강희경은 숨을 죽이고 쑈훙의 시선을 따라 논두렁 아래로 눈길을 주었다.
어떤 남자의 웃통을 벗은 모습이 갈대잎 사이로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해빛에 그을리지 않은 새하얀 남자의 어깨와 팔뚝이 보였다. 강희경은 콩닥대는 가슴을 누르며 목을 빼들었다. 남자의 굽혀진 반들반들한 허리가 보였으며 아직 로동으로 단련되지 않은 엉덩이가 나타났다. 다리 사이와 엉덩이골 사이로는 강물에 닿을듯 말듯한 자두모양의 것이 떠있었다. 남자가 웃통을 씻는 몸짓에 따라서 몸의 근육들은 우아하게 움찔거렸다. 엉덩이골 사이의 자두는 어떤 리듬을 타며 강물에 떠서 숨쉬고 있었다. 남자가 손바닥으로 강물을 퍼담아서 등허리 우로 뿌렸다. 강물이 뿌려지면서 남자의 몸은 생생히 살아서 부풀어오르는 듯하였다. 남자가 몸을 틀어버리는 순간, 강희경과 쑈훙이는 폴짝 놀라서 엎드렸다. 강희경과 쑈훙은 전라의 남자의 몸을 보게 되였으며 강희경은 그가 강희수라는 것을 알아본 뒤였다. 땅에 엎드린 두 소녀의 시선이 부딪치면서 놀라버린 것은 쑈훙이였다. 언제 자기 곁에 와있었는지 모를 강희경을 보자마자 쑈훙은 가슴에 품고 있던 것을 내팽개치고 정신없이 논두렁을 따라 뛰여갔다. 벌떼들의 포위공격에 내빼는 미쳐가는 사람처럼. 새들이 놀라서 날개짓으로 날아올랐다. 앞으로 뛰던 쑈훙은 논두렁에서 떨어져내려 벼밭에 뒹굴었다. 그렇게 떨어지고 기여오르고 뛰기를 반복하며 쑈훙은 강희경과 멀어져갔다. 쑈훙이 버리고 간 것은 강희수의 운동화였다. 강희수의 운동화를 품에 안고 쭈크리고 앉은 강희경은 이를 뽀드득 갈았다.
가스나. 몹쓸 놈의 왕가네 가스나. 아주까리 가시에 칵 찔려버려라. 울타리 너머의 아주까리씨 몇개 뜯었다고 지랄발광하던 가스나. 똥구린내 나는 니 머리에 기름 칵 처발라라. 누길 넘바. 가스나.
돌아오는 길에 강희경은 강희수의 등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뒤에서 거리를 두고 걸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서 한결 개운해진 강희수는 휘파람을 불었다. 모든 시름을 강에 부리고 와버린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강희수와 강희경이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조순재는 소쿠리에 담긴 깨잎을 손질하고 있었다. 강희수는 엊저녁 그 란리가 지나고 나서 처음으로 보게 되는 조순재였다. 강희수는 조순재에게로 다가갔다.
“엄마, 뭐해?”
약삭바른 강희경이 먼저 끼여들었다.
“어, 깨잎 절구려구.”
조순재는 고개도 들지 않고 소쿠리에 담긴 깨잎을 주어들었다. 깨잎을 탁탁 털어서는 안쪽으로 길게 뻗은 줄기를 손톱으로 똑 끊어냈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가지런히 포개여 얹은 깨잎 우에 얹었다.
“희경아, 여그 실로 이거 묶어.”
조순재는 포갠 깨잎을 말아쥐면서 실을 강희경에게 넘겼다.
실을 건네받은 강희경은 조순재의 손 사이로 깨잎을 돌려 묶었다. 조순재는 이로 실을 물어서 끊고는 곁을 지켜주고 있는 오지독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깨잎을 또 쥐였다.
“이거 돈이라면 좋겠다. 한잎 두잎 흔하게 주을 수 있고 포갤 수 있는 돈이라면 좋겠다.”
조순재는 깨잎을 한잎 한잎 포개면서 말했다. 저녁 무렵의 어스름 속에서 조순재의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어렸다. 그 때까지 조순재는 강희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하아, 돈. 오지독은 돈 담는 저금통이구.”
강희경은 물개박수를 쳤다.
강희수는 고개를 떨구었다.
“너네 입에 시퍼런 돈잎을 쑤셔넣고 싶구나.”
조순재는 한숨을 내쉬면서 반복되는 작업을 이어갔다.
강희수는 조순재에게로 다가섰다.
조순재는 깨잎을 부채살처럼 펼쳐서 자신의 시야를 차단하고 말했다.
“어, 희수. 니능 동삼에 군대 가라 이. 이 땅서 살민서 가슴 한번 뻥 뚫리게 쭝국말 함서 살아야제?”
깨잎으로 가려진 조순재의 얼굴을 강희수는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솜털이 덮여져있는 엽맥이 손금처럼 뻗어있는 깨잎, 곧고 바른 줄기와 톱날로 안전거리를 확보하려는 듯한 깨잎, 그 깨잎들을 보면서 강희수는 자퇴의 합당한 리유를 만들었다.
돈을 벌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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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수는 열살 때 겨울밤의 어둠 속에서 번뜩이던 강필두의 눈을 기억하고 있었다. 살의에 찬 그 눈길을. 옆집에서 닭을 잡아먹는다고 우리도 닭고기 먹자고 찡찡대던 강희수를 데리고 강필두는 새잡이에 나섰다. 달도 없는 겨울밤의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개털모자를 눌러쓴 강필두의 머리 쪽에서는 흰김이 씩씩 뿜어져나왔다. 그 뒤쪽으로는 왕바신을 신고 솜옷과 솜바지를 꿍쳐입은 강희수가 플래쉬를 비췄다. 뒤뚱뒤뚱하는 강희수의 걸음에 따라서 플래쉬 빛도 어지럽게 흔들렸다. 집 뒤쪽으로 가서 사다리를 찾던 걸 포기하고 강필두가 흙벽을 짚고 쭈크리고 앉았다. “어깨를 밟고 올라탓.” 강희수는 플래쉬를 강필두에게 넘기고 강필두의 어깨에 한쪽 다리를 올렸다. 곰 같은 동복차림이라 한쪽 다리를 마저 올리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쭈크리고 앉은 강필두의 재촉은 연속 터져나왔다. 강희수는 겨우 두 다리를 어깨에 올리고 강필두의 머리를 두 다리 사이에 끼우고 벽을 잡았다. 강필두가 벽을 잡고 허리를 펴면서 강희수의 머리가 처마 밑에 닿았다. “거기 보이는 구멍에 빛을 쬐고 손을 집어넣어.” 이영을 얹은 사이로 구멍이 나져있었다. 강희수가 구멍에 대고 플래쉬를 비추었다. 강희수의 눈동자와 참새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뙤록뙤록하는 참새의 눈알을 보고난 강희수는 플래쉬를 허망 떨궈버렸으며 참새가 후다닥 날아가버렸다. 구멍 바꾸기를 다섯번째에 이르러 강희수의 손에 참새가 쥐여졌다. 이미 강필두의 있는 욕설 없는 욕설 다 먹고 난 강희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영 사이 구멍으로 손을 쑥쑥 들이밀었다. 그렇게 해서 잡은 참새는 다섯마리. 참새가 손에 쥐여지는 순간, 강희수는 참새의 몸에서 나는 온기를 느꼈으며 참새의 팔딱거리는 심장이 몸으로 퍼졌다. 몸의 피를 데우는 것이 아니라 피를 차겁게 식히는 것이 새들의 내한법이라고 강필두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그 새들의 몸에서 나는 온기와 새털이 주는 안온함을 느끼면서 강희수는 어떤 련민이 생겼다. 집 주위의 처마 밑을 한바퀴 샅샅이 뒤져도 겨우 다섯마리를 잡았다.
“안되겠다. 따라와.” 강필두가 대나무 비자루를 들고 1소대 우사간 옆의 창고로 강희수를 데리고 갔다. 문을 열기 전 강필두가 강희수에게 단단히 그루를 박았다. 겁 먹지 말고 플래쉬를 창고 공간에 정신없이 휘두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빛에 새들이 눈이 멀어 방향감을 잃고 날뛴다고, 그렇게만 플래쉬를 무질서하게 냅다 비추라고 했다. 문을 열고 창고에 들어섰다. 창고 안은 먹물 까막통이여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공동묘지의 적막이 흘렀다. 시작! 강필두의 신호가 떨어지자 강희수는 플래쉬를 켜고 휘둘렀다. 창고 공간에서 푸드득, 파닥 소리들이 살아서 일어났다. 굉장한 소란이 일어났다. 쥐들이 방방 사처로 날뛰였으며 참새들이 공중에서 파다닥 날개를 쳤다. 그 서슬에 거미줄이 먼지와 함께 천장에서 벽에서 떨어져내렸다. 언뜻거리는 플래쉬 빛에 만들어진 그림자들은 더욱 공포스러웠다. 차거운 공간에서 이어지는 소란에 질려버린 강희수는 무서워서 눈을 감아버리고 머리 우로 플래쉬를 강필두의 말대로 냅다 돌렸다. 강필두가 휘두르고 내리치는 대나무 비자루소리가 씨이익, 퍽퍽 하는 소리도 들렸다. 타다닥 새들이 벽에 머리를 찧는 소리, 투두둑 비자루에 맞아 떨어져내리는 새들의 소리에 강희수의 고막은 터져나갈 듯하였다. 강희수의 공포는 고조가 되였으며 선 자리서 빙글빙글 돌며 손에 들려진 플래쉬를 정신없이 휘둘러댔다. 플래쉬 빛이 번뜩이는 공간에서 미친듯이 대나무 비자루를 휘두르는 강필두의 몸짓, 먼지가 풀썩이고 거미줄이 얼굴로 떨어져내리는 장면을 후날이 되여서도 강희수의 기억에 살아남았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한 어느 공포영화의 액션장면처럼 가슴이 벌렁거리기도 하였다. 어둠 속에서 뿐만 아니라 가끔씩 열어둔 창문으로 집안에 들어와서 들어온 곳을 찾지 못하고 유리며 벽에 좌충우돌하면서 머리를 쫓고 할딱거리는 참새들의 무지를 보면서 그 날의 공포를 강희수는 떠올렸다. 강희수는 무작정 뱅글뱅글 돌기만 하여 어지럼증을 느껴서 잠간 정지한 채로 간절히 감았던 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강필두의 눈빛이 부딪쳐오는 순간, 강희수는 플래쉬를 떨구고 말았다. 살의에 찬, 서슬이 퍼렇게 갈린 눈빛은 무엇을 베여내려고 낫날처럼 날이 서있었던가. 순수한 분노를 넘어선 증오의 그 눈빛, 세상을 향한 저주의 그 눈빛, 단순한 방어가 아닌 반격의 그 눈빛은 플래쉬 빛 속에서 강희수에게로 비수가 되여 날아들었다. 강희수는 어둠 속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해버린 강필두를 보고 있었다. 다른 집 아버지들보다 약질로만 보였던 강필두가 내밀하게 숨기고 있던 광폭스러움에 강희수는 얼어붙고 말았다. 강희수의 손에서 굴러떨어진 플래쉬는 바닥에서 흔들렸다. 빛의 묶음으로 만들어진 플래쉬의 빛기둥을 타고 바닥에 널려져있는 새의 주검들이 강희수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목이 꺾이고 머리가 터지고 부리가 빠지고 눈알이 터지고 날개죽지가 비틀린 새의 주검들이 지저분했다. 강필두는 강희수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강희수에게 그 웃음은 지금껏 강희수가 보아온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웃음으로 기억되였다. 강필두는 강희수의 손에 플래쉬를 쥐여주고는 새들을 비자루로 쓸어모았다. 먼지냄새에는 피냄새가 진동했으며 먼지빛에는 피빛이 어려 번뜩이였다. 강필두는 바닥에 있는 새끼줄을 집어들고는 새끼줄들의 틈 사이를 벌려서 새들의 목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새들의 목은 새끼줄의 틈사이로 끼워져갔다. 고추가 매달리듯 데룽데룽 주렁주렁.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네마리.
다섯마리.
여섯마리.
일곱마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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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봄, 강필두가 오리사양부업을 하게 된 것은 강희수가 무심히 던졌던 말 한마디로 비롯되였다. 그 전해의 봄, 옥수수밭이랑 싸움이 있고 나서 강필두는 농사가 아닌 다른 무엇을 해야 된다고 고심하고 있었다.
1983년 봄의 어느 아침이였다. 강필두는 밭갈이 농기구를 싣고 강희수와 대문을 나섰다. 땅이 집집마다 나뉘여지면서 대문이 있게 된 것이다. 길이 되여있던 이웃 사이의 마당은 울바자로 담장이 만들어지면서 대문이 생긴 것이였다. 담장은 한번 만들어지면 허물기 어려웠으며 그 담장에 자그마하게 구멍을 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로 되였다. 점심찬 보따리를 들고 집에서 나오던 조순재는 담 너머 이웃네의 밭일을 떠나는 소란스런 소리를 들었다. 대문을 나서는 부자의 뒤모습을 보면서 조순재는 말이 없는 3형제라는 말을 떠올리며 머리를 흔들며 웃었다. 소와 강필두와 강희수. 점심찬 보따리를 소수레 우에 싣고 강희수와 나란히 소수레 뒤를 따랐다. 강필두와 강희수는 서로를 닮아있으면서도 서로를 너무 닮았다는 리유로 서로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듯하였다. 간혹 거울 속에서 낯선 타인의 모습으로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매일 보게 된다는 부담이였을가. 하찮은 일에서 둘은 대적을 하였으며 큰일에서는 서로를 양보하는 타입들이였다. 식성에서는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대적하고 나섰다. 강필두는 진밥, 강희수는 된밥. 그래서 조순재는 언덕밥을 지었다. 솥 안에 쌀을 언덕지게 안쳐서는 손등으로 밥물의 물금을 잘 재면서 진밥과 된밥을 만들었다. 소수레 트럭 우에서 흔들리고 있는 도시락의 밥도 각자의 식성에 맞게 싸여져있다. 진밥, 된밥, 진된밥.
옥수수밭에 도착하여 보습과 농기구를 부리고 나서 밭을 한바퀴 둘러보고 온 강필두는 황소숨을 몰아쉬며 저 멀리 끝의 밭지경에 대고 소리질렀다.
“왕얼, 이 새끼. 빨리 오지 않어. 쥐새끼 같은 넘. 밭이랑 반도 아니고 통채로 너거들 밭으로 댕겨가. 빨리 오지 못해.”
조순재는 왕얼네와 김씨네 사이에 끼여있는 밭고랑수를 세여보았다. 해마다 갈아엎는 규칙을 어기고 왕얼네가 밭고랑을 더 퍼갔던 것이다. 조순재도 주먹을 쥐며 한판 붙어볼 태세였다.
왕얼이 먼지바람을 일구며 밭고랑을 타고 강필두와 조순재와 가까워져왔다.
“왕얼, 야, 니는 산 사람 코 베여갈라고 그러냐. 이게 뭐야?”
강필두는 다가선 왕얼에게 갈아서 엎어간 밭고랑을 가리켰다.
“이상할 건 없는데. 난 규칙대로 했을 뿐이야.”
“뭐야. 동네 사람 불러놓고 판단해보라 해라. 규칙이 뭔지.”
“내 땅 내 갈아엎는데 뭐가 잘못됐는데. 자네가 흑심이면 다 까만가 하잖아. 강선생.”
“야, 왕얼, 흑심? 내가 연필이게? 속 새까만 넘은 니다.”
왕얼은 강필두를 때릴 기세로 가까워져왔다. 옆에 섰던 강희수는 강필두를 뒤를 당겨서 물러세우고는 왕얼과 마주섰다. 조순재도 팔을 걷어올리며 합세해서 왕얼의 코밑으로 다가갔다. 너 죽고 내 죽고 하는 각오를 하고 나선 조순재였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고 했다.”
발톱을 세운 암코양이처럼 독을 쓰면서 조순재가 소리쳤다.
“집에 불을 질러서라도 빈대를 없애야 한다.”
뒤로 밀려진 강필두가 기름에 불을 붙였다.
세 얼굴과 한 얼굴의 대결.
불이 당겨지려는 순간, 왕얼의 뒤쪽으로 쑈훙이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웨쳤다.
“아버지, 오빠가 또 발작을∼”
왕얼네 아들이 밭갈이하다가 밭에서 간질병에 발작한 게 틀림없었다. 쑈훙은 왕얼의 손목을 끌고 가면서도 강희수를 힐끔 곁눈질을 하였다. 쑈훙의 눈빛에는 부끄러워서 죽겠다는 표정이 력력했다.
“벌 받능 거여. 벌.”
멀어져가는 왕씨네 부녀간의 뒤모습을 보면서 조순재가 한마디 던졌다.
“돈도 되지 않는 땅 갖고 씨름하지 말고 다른 부업 하면 안됩니까?”
보습날을 땅에 박으며 강희수는 벗어던지는 옷 같은 말을 강필두에게 툭 던졌다.
보습날에 땅이 갈아엎어지면서 입을 벌렸다.
-무식하고 외롭고 볼품 없고 제멋대로이고 리기적인 인간들아, 하지만 너희들이 있음은 서로에게, 가족에게, 땅에게도 축복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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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진과 강림촌이 소속된 N 시 사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빈의관殡仪馆에서 강필두의 장례식은 끝났다. 강필두가 남긴 유언에 따라 강필두의 골회는 빈의관 굴뚝의 연기와 바람과 함께 허공으로 날려갔다. D진도 N 시에 있는 강림촌도 자신이 태여난 곳도 강필두는 고향이 아니라고 했다. 강필두에게는 고향이 없었기에 타향이라는 개념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향이 없다고 고집하는 자체가 고향 콤플렉스로 한생을 허비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몇 안되는 문상객들을 일일이 배웅해서 보내고 료양원 원장님과 리태수와 강희경이 국도변에 서있었다. 원장님은 D진행 뻐스를 기다렸으며 리태수는 반대쪽 N 시행 뻐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희경은 그 가운데 무력하게 서있었다.
“희경씨, 이걸 받아요.”
원장님이 강희경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축의금과 그동안 미국에서 희경씨 오빠가 보내온 남은 생활비 그리고 장례비에서 남은 돈입니다. 내역서도 들어있습니다. 호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편하게 가셨다고 생각하십시오. 힘 내세요.”
강희경의 어깨를 다독이며 원장님이 말했다. D진행 뻐스가 왔고 원장님은 리태수와 악수를 나누고 강희경에게 손을 저어보이며 뻐스 안으로 들어갔다.
“희경아, 왔던 김에 강림촌 들르지 않을 거니? 남방에서 한번 걸음하기도 쉽지 않을 건데.”
산길을 에돌아 사라져가는 D진행 뻐스를 멀거니 보면서 리태수가 강희경에게 말했다.
강희경은 묵묵부답이였다. 국도변 건너편의 미끈하게 뻗어올라간 봇나무의 꼭대기를 헤아리려고 머리를 들고 있었다.
“하긴, 강림촌에 가도 반길 사람도 없겠는데.”
리태수는 괜한 말을 건네고 난 뒤의 어색함을 수습했다.
“마음정리가 되면 그 때 강림촌으로 갈게요. 할아버지. 고마웠습니다.”
봇나무에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강희경은 리태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드렸다.
“그래, 한번 다시 꼭 보자.”
N 시행 뻐스에 올라타면서 리태수는 강희경을 꼭 안아주었다. 강희경은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을 N 시행 뻐스가 봇나무 숲길에서 소실점이 되여갈 즈음에 흘렸다. 강희경은 고개를 돌려 흐릿한 시선으로 빈의관의 굴뚝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생명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강희경은 D진의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걷고 싶었다. 혼자서 걷고 싶었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는 게 더 외로울 것 같았다. 친구도 필요없었다. 한 사람을 더 외롭게 하는 것은 적이 아니라 친구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의 상처는 개인의 상처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였다. 강희경은 흰 봇나무들을 한그루 한그루 세면서 걸었다. 20메터 족히 하늘로 솟구친 봇나무들의 흰 몸통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윤이 나게 건강했다. 건강한 봇나무 사이에는 간혹 허리가 꺾여진 채 삐죽삐죽 몸의 상처를 드러난 그대로 보여주는 애된 봇나무도 있었다. 허리 꺾인 봇나무의 마지막 비명이 지나가고 나서야 처연한 적막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걷고 걷다가 강희경은 톱질에 잘려나간 봇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강희경은 고아라는 말을 얼핏 떠올려보았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고아로 남았다. 대춘을 만나서 가정이라는 걸 만들면서도 고아라는 고독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대춘과의 리혼과 더불어 대춘이 교통사고로 죽었고 강필두도 죽었기에 강희경은 이젠 온전한 고아로 남게 된 것이였다. 견딜 수 없어도 견뎌야 하는 삶의 하중,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서 어쩔 수 없이 흔들려야 하는 소외, 어디로 가든 속에 따라붙는 랭기로 얼어붙는 단절, 상실이 리득이 되여 풍요롭게 되는 기억의 아찔함 등등은 혼자의 몫이였다. 고아의 몫이였다. 어쩌면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고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강희경은 깔고 앉은 봇나무 그루터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루터기는 안쪽으로 썩어들어가서 하늘을 향하여 가운데가 구멍이 뚫려있었다. 강희경이 앉은 곳은 그루터기의 테두리였다. 발이 놓여진 밑둥에도 구멍이 나있었다. 강희경은 일어나서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 그루터기에 뚫린 구멍 안을 한참을 굽어보다가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려 그루터기를 껴안았다. 자신의 텅 빈 마음을 껴안듯이. 봇나무 그루터기가 속에서 뱉어낸 말이 메아리가 되여 울렸다.
-말을 너무 삼키면 속이 썩는다. 속으로 뭉쳐 삼킨 말들이 몸을 썩게 하는구나.
강희경은 강희수가 파출소에 끌려가던 그 날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짓 안했습니다. 쑈훙을 다치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새파랗게 질려 뒤쪽으로 물러서는 강희수, 차겁게 밀고 들어오는 공안일군의 모자채양의 번뜩임, 곧 쓰러져버리려는 몸을 지탱하면서 강희수를 몸 뒤에 숨기며 공안일군과 대적하는 조순재, 어쩌지도 못하고 기둥처럼 붙박혀 서있기만 하는 강필두, 집안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서 출입문과 창문으로 모여있는 동네 사람들의 얼굴들. 이 모든 걸 공포 속에서 두리번거리며 구석으로 뒤걸음치는 강희경. 열네살 강희경의 머리 속에는 강간이라는 알듯 말듯한 단어가 맴돌았다. 강간을 단지 남자의 몸이 녀자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적인 겁탈이라는 것 쯤의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 범죄일가 하는 호기심도 품고 있었다. 강희경의 머리 속에는 2년 전 논두렁에 옆드려 강희수의 전라의 몸을 훔쳐보며 들썩이던 쑈훙의 어깨가 스쳐갔다. “아니예요. 오빠가 한 짓이 아닙니다. 쑈훙이 오빠를 넘본 겁니다.”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미처 내뱉지 못한 채 마른침과 함께 삼켜져버렸다. 삼켰으나 넘어가지는 못하고 목구멍 안에 머물러있는 생선의 가시처럼 찌르는, 가시에 체한 아픔을 강희경은 감내해야 했다. 강희경은 무서웠다. 공안일군이 꺼내든 쑈훙의 나비머리핀, 강희수의 고기발 초막에서 수색된 나비머리핀을 보면서 강희경은 무서웠다. 그토록 아름답고 눈부신 조그마한 큐빅이 박힌 나비머리핀이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고 간다는 것에 강희경은 몸서리를 쳤다. 피해자 쑈훙은 인정을 했고 물증과 사건현장도 확보된 완벽한 범죄라고 공안일군이 말했다. 팽팽한 집안 분위기를 풀리게 한 것은 “불이야.” 하는 웨침이였다. 동네 누구네 집에 루전으로 불이 붙었단다. 마당과 집안에 몰려있던 동네사람들은 일제히 화재현장으로 뛰여갔다. 구경군들이 빠져나간 마당으로 강희수는 끌려 찌프차에 떠밀려 올라갔다. 파출소 찌프차의 배기구멍이 내뿜었던 그 기름냄새는 기억의 구석구석에 슴배여들어가 강희경의 기억들을 풍성하게 했다. 강희경에게 냄새가 주는 그 기억은 세련된 폭력이였으며 우아한 폭력이며 정의로울 정도의 뻔뻔한 폭력이였다. 구경에 바쁜 동네사람들의 관심은 화재현장으로 쏠렸으며 강희수의 사건은 화재사고로 덮어져버렸다. 때로 너무나 무거운 사건은 돌발사고 앞에서 뉴스가 될 수 없는 법이였다.
강희수가 파출소로 끌려간 이틀 후에 밝혀진 사실은 강희경을 더 큰 충격으로 내몰았다. 물증인 나비머리핀을 제공한 자는 나분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범죄 물증이 발견된 범죄현장을 제공한 자도 나분이라는 것을. 강희경은 충격으로 앓아누웠다. 강희경은 옷보따리 속에 숨겨둔 나비머리핀을 생각하고 있었다. 방아간집 소년이 나분에게 전해달라며 강희경에게 주었던 그 나비머리핀의 존재로 강희경은 오한으로 떨었다. 강희경은 그것을 갖고 싶었고 그것만은 나분에게 줄 수 없었다. 많을 걸 갖고 있는 나분에게는 그것의 있고 없음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그것은 방아간집 소년이 자신 강희경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나분에게 자랑할 수 있었다. 비 내리는 고기발 초막에서 나분에게 자랑했던 그 뻔뻔함으로 진저리를 쳤다. 그러니까 강희경의 질투와 나분의 질투 사이에서 벌어진 억울한 강희수 사건, 이 모든 걸 강희경은 이날 이 때까지 스스로 가슴 속에 삼켜서 품고 있었다.
강희경은 봇나무 그루터기를 껴안고 얼굴을 그루터기 뚫려진 구멍에 들이밀었다. 좀 먹어가는 나무의 냄새와 축축하고 찌린 땅의 기운이 코구멍으로 몰입해들었다. 강희경은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어둠 속에서 수백마리의 오리들의 뻐드러진 랑자한 죽음의 현장과 조순재의 목을 졸랐던 바줄이 클로즈업으로 나타났다. 강희경은 눈을 감지 않았다. 떠오르는 대로, 보여지는 대로 모든 기억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30년 전,
그 나비머리핀을 나분에게 곧바로 전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나분과 그 소년은 결혼을 했을 수도.
강희수는 감옥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며 원양어선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며 미국으로도 가지 않았을 수도.
조순재도 자살을 하지 않았을 수도.
강필두와 강희경은 강림촌에서 야반도주하지 않았을 수도.
강필두도 타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하지 않았을 수도.
강희경은 삶에 따르는 우연과 삶의 가능성을 재고 있었다. 우연이라는 사소하고 하찮은 존재들이 삶을 무자비하게 흔들어버렸으며 가능성이라는 일말의 기대조차도 매장해버렸다. 어쩌면 우연은 필연의 또 다른 형태의 존재였는지도 몰랐다.
휴대폰 벨소리가 가방에서 울렸다. 강희경은 땅에 주저앉은 채 휴대폰을 꺼냈다. 강희수의 미국의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희경, 괜찮아?”
강희수는 강필두의 장례를 언급하지 않았다.
“∼”
“잊고 살어. 다 잊고 살자.”
강희수의 무가내하면서 짧고 낮은 목소리가 강희경의 귀전에서 울렸다.
“오빠, 보구 싶어요.”
강희경은 끝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강희수에게 나직이 말했다.
“니 마음 다 알 수는 없지만 미안하구나. 희경.”
강희수의 목소리는 떨렸다.
“용서라는 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겠지요? 오빠.”
강희경은 강희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용서. 용서라고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부터 용서는 용서로 남아있는 거겠지.”
강희수가 말했다.
“그렇겠지요?”
강희경이 말했다.
“하지만 용서는 개인의 것만은 아니기도 할 것 같아. 세월이 인간에게 해야 될 용서도 있지. 세월이 인간에게 구할 수 없는 용서의 그 아픔을 우리는 속수무책이 되여 어찌됐든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 쉽지 않은 세상은 버티라고 생겨난 것일지도 몰라.”
강희수의 말들은 오가는 뻐스와 트럭들이 무책임하게 만들어낸 소음과 먼지와 기름냄새에 실려 아득하게 봇나무 숲길로 멀어져갔다.
강희경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면서 휴대용 스테인리스 보온물병을 보았다. 뚜껑을 돌려 열고 뚜껑에 더운 물을 따랐다. 뚜껑을 그루터기 우에 얹고는 커피봉투와 프림봉투를 꺼냈다. 커피봉투를 찢어서 더운물에 커피가루를 떨꾸어넣고 휘저었다. 커피 거품이 일었다. 커피 거품이 잔의 가운데로 올라왔다. 맑은 날씨를 기대할 수 있었다. 커피거품으로 날씨를 구별하는 지혜를 강희경은 알고 있었다. 프림을 타기 전 커피 거품이 잔 가장자리를 향해 떠오르면 저기압이 흘러서 흐린 날씨라는 것을. 강희경은 잔 가운데로 떠오르는 커피 거품에 프림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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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필두가 누워서 죽어간 침대 매트 밑에는 나무로 깎아만든 나비가 깔려있었다.
목제 나비는 날개를 부채처럼 펼쳤음에도 날 수 없었다.
날개에는 촘촘한 나비무늬까지 그려져있었다.
평면으로 책갈피에 끼워둔 나비표본처럼 얇고 가벼워보였다.
치매증상이 거쳐가고 나면 강필두는 료양원 뜰 안에서 볕쪼임을 하면서 목제 나비를 손바닥에 오래도록 받쳐들고 있군 하였다.
목제 나비의 환생을 바라는듯 강필두는 노곤한 오후 세시의 여름 해볕에 나비의 몸을 말려주었다.
강필두가 D진의 목공소에서 날품팔이하면서 깎아만든 나비는 강필두에게 할당된 짧고 구체적인 시간들을 고요하게 나누어가지고 있었다.
목제 나비는 이사 들게 될 침대의 새 주인을 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강필두의 안부를 물으면서.
화를 막아준다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깎아만든 나비가.
출처:<장백산>2017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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