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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써야 하는 리유
2005년 07월 07일 00시 00분  조회:6476  추천:74  작성자: 연우포럼
조선어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써야 하는 리유

정인갑


금년 2월 중순 한국 국어연구분야에서 활약하는 모 학자가 필자를 찾아와 한국에서는 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쓰자는 견해와 섞어쓰지 말자는 견해의 대립이 팽팽한데 정교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는 주제로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 학자는 인터뷰의 내용을 조선족 신문에 꼭 실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한국 두 파벌 외의 제3자의 견해라는 의미에서 아주 필요하다며 말이다. 하여 <흑룡강신문> 일요특간 2월 20-26일 22면에 인터뷰의 全文이 실렸으며 그것을 다시 연우포럼에 퍼옮겼다.

그런데 최균선 선생님께서 필자의 행위를 “남의 제상에 감놔라, 배놔라”하며 “강건너 꾸짖기로 손짓발짓”한다고 하였다(본 사이트 포럼마당글 NO309 <조, 한문 혼용설에 대하여> 참조). 너무나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학술문제에 ‘남의 제상’이 있는가! 그것도 지구촌 시대에 쫍은 바다 하나 사이둔, 비행기로 한시간 미만의 거리인, 같은 민족, 같은 문화, 같은 언어, 같은 문자의 한국인데 말이다. 학술문제의 서로 다른 견해의 토론을 ‘손짓발짓’ 한다고 풍자하면 有傷斯文也!.
최균선 선생님의 관점상, 논술상, 방법상, 풍격상의 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면 토론의 大道로부터 빗나갈 위험이 있으므로 차후에 천천히 취급하기로 한다.

필자의 문장은 한국을 상대로 쓴 글이였으므로 중국 조선족의 출판물에도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는 리유를 밝히지 못하였다. 본문에서는 이 문제를 이야기해 보련다.

1. 섞어 쓰는 것이 오히려 우리말 지키는데 리롭다
어떤 사람은 섞어쓰면 우리 민족 언어의 순수성을 파괴하고 나아가서 민족언어를 상실케 하는 비행을 자초한다는 우려를 표시하였다. 사실은 섞어 쓰는 것이 오히려 우리말을 지키는데 리롭다.

지금 우리민족은 언어동화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언어동화의 표현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그 중의 한 가지가 한자를 우리말로 읽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金鑫’, ‘盧春艶’이라는 이름을 ‘김신’, ‘로춘연’이라 부르는 것을 보고 ‘김흠’, ‘로춘염’이라 시정해준 적이 있다. 그러니 상대편이 오히려 "웃기지 말아, 우리학교 선생, 조선어, 한어 선생들도 다 이렇게 부르며 이미 20여년 불러왔는데 틀릴소냐"며 대드는 것이였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그들 앞에서 필자는 아연실색할 뿐 할 말이 없었다. 선생들도 이렇다니 학생을 원망할 수 있으랴!

고유명사를 이렇듯 틀리게 부르는 것은 이해한다 치고 일반 언어의 표현도 엉망이다. 아래의 례문을 보자.

징차가 따이부해갔어. 스녠 판했대(경찰이 체포해 갔어. 십년 실형이대).
선양에 쌍발해. 한국 허즈치예서 미수한대. 궁즈 꽤나 높다더라(심양에 출근해. 한국 합자기업에서 비서한대. 공자 꽤나 높다더라).
링다우구 나발이구 터수화할줄만 알았지 췬쭝 쿤난 알기나 알아?(령도구 나발이구 특수화할 줄만 알았지 군중 곤난 알기나 알아?)

우리민족들 사이에서 상기와 같이 말하는 것을 너무나 흔히 목격하게 된다. 만약 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쓰고, 소학 때부터 이런 훈련을 받아 왔으면 한자어에 부딪칠 때마다 그 한자의 한어발음과 조선어 발음이 동시에 머리에 떠오를 수 있다.
그러면 상기 ‘警察, 逮捕, 十年, 合資企業, 秘書, 工資, 領導, 特殊化, 群衆, 困難’등을 자연스럽게 ‘경찰, 체포, 십년, 합자기업, 비서, 공자, 령도, 특수화, 군중, 곤난’으로 말할 수 있으며 ‘징차…쿤난’ 등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자를 섞어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민족 언어의 순수성이 파괴되고 나아가서 민족어를 상실케 하는 비행을 자초하는 화근이 생기게 된다.

①단우이(單位)에 반처(班車)가 있어 쌍발(上班), 쌰발(下班) 다 뻰리(便利)해. (②직장에 출퇴근 차가 있어 출근, 퇴근 다 편리해 / ③ 단위에 반차가 있어 상반, 하반 다 편리해.)

①즈예(職業) 주츌(足球) 찡싸이(競賽) 볼만해. 그런데 찡싸이창(競賽場)의 츄미(球迷) 쯔쉬(秩序) 란타우(亂套)야(②프로축구 경기 볼만해. 그런데 경기장의 축구 팬들 질서 란잡하더라 / ③ 직업족구 경새 볼만해. 그런데 경새장의 구미들 질서 란투야)

위의 례문 ①은 조선족들의 입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말이다. 문법 외에는 거의 한어에 동화된 말이다. ②처럼 말해야 비교적 표준적인 조선어 표현이다. ③에 사용된 ‘반차, 상반, 하반, 족구, 경새, 경새장, 구미, 란투’ 등은 해당 한자의 조선어 발음으로 표현했을 뿐이므로 엄격히 말하면 조선어가 아니다. 그러나 새로 창조한 한자어라고 하면 조선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자어란 우리민족이 수천년간 한어로부터 입수한 차용어라고 할 때 지금은 입수할 수 없다는 법은 없을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써 매개 한자에 대한 우리말 독법에 익숙하면 적어도 ③처럼 ‘반차…란투’로 발음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만하면 우리말이다. ‘반처…란타우’로 발음하는 것에 비해 우리말을 지켰으며 동화되지 않은 셈이다. 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쓰면 적어도 ③정도는 되므로 우리말을 지키는데 이롭다는 결론에 떨어진다.

2. 섞어 쓰는 것은 한어를 장악하는데도 리롭다
사실 한자어의 존재는 우리가 한어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말 에서도 한자와 빈도 높게 접촉하면 한어 문자관을 넘는데 퍽 쉬워질 것이며 한자어를 기초로 하면 한어 단어를 익히는데 크게 편리하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외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역시 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써야 이런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우선 오자(誤字)를 없애는데 리롭다.
‘絶對正確’에 ‘絶’인지 ‘決’인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우리말로 ‘절대정확’이지 ‘결대정확’이 아니므로 당연 ‘絶’이 맞다. ‘向領導反映問題’에 ‘映’인지 ‘應’인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우리말로 ‘반영’이지 ‘반응’이 아니므로 ‘映’이 맞다. ‘甚至’인가, ‘甚致’인가? 우리말로 ‘심지어’이지 ‘심치어’가 아니므로 당연 ‘甚至’가 맞다. 이런 글은 한족들도 틀리기 쉬우나 우리민족은 절대 틀리게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한자들의 조선어 발음을 모르거나 익숙히 장악하지 못하면 이런 득을 볼 수 없다.

다음은 어음을 장악하는데 리롭다.
그중 한 가지 례로 한어에는 권설음(卷舌音)과 평설음(平舌音)의 구분이 있으며 이를 구분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북경사람 외의 한족들도 골칫거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자어 발음이 있기 때문에 쉽게 장악할 수 있다.

‘즈, 츠, 스’처럼 발음하는 한자(知子, 持此, 詩思 등)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이런 한자의 조선어 발음이 ‘지치시’면 권설음이고 ‘자차사’면 평설음이다.
예: 지치시:支指止紙知志脂智祉之, 治置値致齒恥稚峙侈緻, 時市施詩始示視試侍尸
―이상은 권설음

자차사:自子資字咨姿紫, 雌次此慈瓷磁刺, 思四死絲私司辭寺似斯 ―이상은 평설음, 단 ‘社事史使士師’ 6자와 이들을 변으로 하는 글자만은 ‘사’로 발음하지만 례외로 권설음.

북경인이 아닌 한족들도 북경에 반평생 살며 권설음과 평설음을 구분하기 힘들다. 그런데 일부 조선족이나 한국인은 필자에게서 한 시간 정도의 보도와 훈련을 받고 적지 않은 글자들의 권설음과 평설음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한자어음에 익숙하지 않은 자에게는 도저히 이런 보도와 훈련을 시킬 가능성이 없다.

3. ‘도우미’ 좋은 방법 아니다
한글 전용이면 아무래도 쉬운 말을 골라 쓰게 되고 풀어쓰게 되며 문장이 길어지고 지저분해진다. ‘백문불여일견’을 풀어쓰면 ‘백 번 들은 것이 한 번 본 것보다 못하다’로 되어 6자가 15자로 되며 띄어쓰기까지 합치면 23자가 된다. 문장의 품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에 주는 감도 달라진다.

어떤 사물이나 특정된 시공(時空)하에 존재한다. 경극 무생(武生) 연예인이 1미터 거리 안에서 열 번 공중전을 하는 것과 2미터 거리 안에서 열번 공중전을 하는 것은 관중에게 주는 예술적 감이 다르다. 수박씨에 새긴 룡을 수박 껍질에 옮겨놓으면 역시 그 감이 달라진다.

다른 문체에도 이런 구별이 있겠지만 문예 작품, 특히 문학 작품은 언어 예술인바 예술 형상을 부각하는데 어떤 말을 썼나, 그 말을 몇 개 음절로 표현했나에 따라 독자에게 주는 예술적 형상이 달라진다. 적지 않은 작품이나 특정적인 표현 단락에 한자어를 쓰는 것이 예술 형상 창조에 퍽 이로울 때가 많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한글로 쓰고 괄호안에 한자를 ‘도우미’로 써넣어도 무방한가? 이를테면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다. 마치 먼저 들러리를 써놓고 다음 주요인물이 나타난 듯 하다. 마치 가수가 마이크에 대고 입만 벌리고 사전에 잡아놓은 록음을 스피커로 내보내는 듯 하다. 6자가 12자로 되었고 괄호까지 합치면 편폭이 배 이상으로 불었으므로 템포도 느려졌고 보는 사람의 시각, 듣는 사람의 청각에 주는 감도 6자만 못하다. 만약 이것이 시(詩)나 연속 겹친 음절수가 같은 배비문(排比文)이면 예술적 형상이 더 엄청나게 떨어진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류의 언어사나 문자사를 보면 절약, 간소화가 철의 법칙으로 관철되여 왔다. 개념 표달에 문제가 되지 않는 전제하에 되도록 말마디 수를 줄이고 문자의 획을 줄인다. 우리말의 배아미→배미→뱀, 가히→가이→개는 말마디를 간소화한 전형적인 례이다. 뎡(鄭)→졍→정, 쟝(章)→장은 어음수 및 글자의 획수를 간소화한 례이다. 한자의 수천년에 거친 간체화는 문자 간소화의 례이다. 한자의 經→经, 東→东 등 많은 간체자는 글씨를 빨리, 헐하게 쓰기 위하여 간소화한 초서에서 따온 것이다.

전 인류의 언어와 문자가 간소화하는 방향의 규률에 따라 변화하고, 담은 한 음절, 한 획을 아끼느라 고심하고 있는데 우리가 6자를 12자로 펑펑 늘여쓰는 것이 된 말이냐! 인류의 언어, 문자의 발전 규률에 역행하며 우리 조상에게도 미안하다. 만약 부득이한 경우라면 몰라도 완전히 피면할 수 있는데 말이다. 소학교부터 한자를 섞어 쓰면 괄호안의 ‘도우미’는 완전히 필요 없는 군 살이다.

필자는 신문 <베이징 저널>에 칼럼 문장 305편을 쓴 경력이 있다. 판면 제한 때문에 1,200자로 국한된 칼럼이였다. 제한된 편폭안에 심도 깊은 내용을 싣기 위해 매 한자 한자를 다듬어 써야 했으며 금싸라기처럼 아껴 써야 했다. 그러나 한자어 뒤에 괄호를 치고 ‘도우미’를 적어야 하므로 한글, 한자 혼용의 80% 내용밖에 표달하지 못하는 고민을 하여야 했다.

중국 조선족 출판물은 한국이나 조선의 출판물에 비하여 한자를 섞어 써야 할 리유가 더 충분하다. 한국도 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는 견해와 섞어 쓰지 말자는 견해의 사람이 거의 반반이며 그 대립이 팽팽한데 중국 조선족이 출판물에 한자를 섞어 쓰자는 견해를 완전히 외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물론 우리는 간체자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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