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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강아지와 좋은 글
나는 메리를 좋아했다. 나는 메리를 사랑했다. 나는 메리를 필요로 했다. 메리가 있어서 나는 살아 있었다. 그가 존재함으로 내가 호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찾을 수 없다. 그는 나를 남겨두고 알 수 없는 곳으로 갔다. 나한테 미움만 잔뜩 지고서 말없이 떠나갔다. 울어도 불러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죽었던 이유를 알았을 땐 나를 용서하라고 하긴 너무 늦었다. 그의 세대로 치면 세월은 흘러 몇 세대가 훌쩍 지나갔건만 메리만이 나의 사랑이요 나의 영원한 기억이다. 만질 수 없는 그대 사랑스런 그대.
내가 메리를 처음 만난 때는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다. 알맞은 키. 새까만 눈동자의 진주 같은 눈빛. 윤이 반들 반들하고 황금빛이 몸 주위에 보석처럼 번지고 돌지만 동전만한 까만 점들이 알맞은 자리에 정확하게 박힌 외투. 사랑스럽고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고은 발걸음. 적당한 위치에 가지런한 젖들.
그 당시에 엄마 아빠는 나를 남겨 두고 잠시 어디로 갔기에 나는 친척집에 얹혀 지내야 했다. 그때 내가 만난 메리는 그 집의 개였다. 토종개 치고는 영리했고 나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나의 엄마였고 친구였다.
어쩌다 땅에라도 앉을라 치면 먼저 꽈리를 틀며 나를 보듬는듯한 포옹, 우리는 형제였고 부부였다. 자기 새끼들에게 젖을 먹일 때면 옆에서 젖을 만지게 했으며 가끔 아무도 없을 때는 자기만한 나를 태우고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싫으면 나를 까뒤집어 놓고서 발로 나의 가슴을 가볍게 누르며 응앙거리는 눈속임 눈가림. 내가 뭐 아이스 켓키라도 되듯 나의 얼굴을 혀로 공격한다. 메리 꼬리를 잡고 서면, 저는 내 손을 물려고 돌고, 돌고 도는 팽이 놀이. 놀다가 지치면 부둥켜 한고 한참 있기도 하고. 좋은 하루. 기쁜 순간.
그러던 어느 날 메리는 병이 들어갔다. 눈에는 누런 눈곱까지 끼고 털도 뭉실뭉실 빠지기 시작했다. 간호도 해보고 이것 저것 먹여도 봤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둘이 앉고 울어도 보고. 몰골이 흉물스런 모습으로 점점 바뀌어 가자 나는 메리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발로도 차보고 저리 가 소리도 질러 보고 언제 내 너를 좋아했느냐 하듯 사랑이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미움으로 바뀌어 나의 분노를 샀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메리가 사라졌다. 온 골목을 뒤지며 온 동네를 헤메였지만 메리를 찾을 수 없었다. 며칠 동안 내가 잘못 했어 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 바닥 저 바닥을 다 찾아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도 없는 공허한 외로움과 서러움이었다.
메리의 응앙거림은 점점 이제 귀에서 썰물저가는 잔잔한 파도 소리처럼 사위어 갔다. 그 소리가 멈추었다고 생각했을 때.
마지막 헤어짐이 생각났다. 눈맞춤. 몇 발자국 가다가 쳐다보고 또 몇 발자국 가다가 뒤 돌아보고 그는 그렇게 준비하면서 마음 속에서는 슬픔의 소나기를 뿌리며 그는 서서히 물러갔다. 아픔도 모르는 척 숨기며 그렇게 사라져 갔다.
한 두주쯤 지났을까, 수세식 변소가 매우 흔한 시절이라 변소를 치시는 분이 큰 소리쳐 가보니 변소 뒤쪽으로 변 소치는 조그만 문안에 메리가 죽어 있었는데 그 배에는 회충이 가득 했다. 메리는 회충들에 먹혀 죽은 것인 데 주인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몰래 변소 안에서 죽어간 것이다.
어떻게 닫혀진 조그만 변소 뒷문으로 들어갔는지는 지금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내가 메리를 부를 때 내가 울 때에 그는 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나를 두고 미움의 배만 가득 안은 체로 메리는 그렇게 나를 떠나 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당시의 초등학교에서는 대변 검사를 일년에 한 두 번씩은 했다. 담임 선생님이 호랑이 선생님이어서 약정한 제기간까지 비닐 봉투 안에 변을 제출하여야 했다. 한 번은 내 변으로 그날 변을 안 가져온 친구들 것을 변소에서 모두 넣어야 했는데 무슨 변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공짜로 넣어주었다.
급하게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론 주위에서 주운 막대로 변을 넣어 주었는데 여기저기 마구 흘리며 변 잔치를 치루었다. 대변 결과를 발표하는 날에 무려 20여명의 학생들의 결과가 똑같아 아이들은 누구 똥인지 알아서 키득거렸지만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왜 웃나 꽤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변 배급 잔치. 메리를 기억 하는 회충 배급 파티였다.
그로부터 또 몇 년 후 드디어 우리 집에서도 개를 기르기 시작했을 때 나한테 개 이름을 지을 기회가 주어졌다. 메리라고 지을 수는 없었다. 그 새로운 개는 수컷이었기에. 쫑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영어로 죤이란 이름인 것 같았다. 순 한국 표현은 없을까, 편하게 부르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은 무엇일까,
연구에 연구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상품 브랜드들 중 괜찮은 것이 무엇인가 조사하여 보니 쏘니가 제일 순위였다. 그 이유인즉 전세계 사람들이 쏘니라고 발음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사람들도 쉽게 발음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현대라는 브랜드는 어떤 외국 사람들은 현다이라고 부른다. 현대는 너무 어렵다. 삼성도 비슷하게 들리지만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라디오나 텔레비죤도 아닌데 개를 쏘니라고 부를 수도 없고 쏘가리라고 부르자니 물고기 같고 하여 싸리로 결정하였다. 싸리버섯, 싸리비 등이 있지만, 또 엘인지 알인지 리자 발음이 문제될 것도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싸리라는 이름은 나의 동네에서 대 성공이었다. 많은 동네 개들이 나의 개 이름에서 한자도 바꾸지 않고 똑같이 불리어 졌다. 도대체 개들은 자기 이름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어 주인 목소리를 따라야 했다. 이름 혼돈 그 자체였다. 싸리라는 이름의 전성시대. 그래도 조금 독창적인 사람들은 자기 개들을 사리 바리 보리와 같은 이름들을 사용했다.
그 다음 세대의 우리집 개 이름은 늘 싸리였다. 한번은 도사견도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송아지만해 그 개를 보는 것만으로도 누구든 주눅이 들 터인데 사실은 그 반대였다. 개가 주인을 닮아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조금 모르는 사람이라도 방문하면 무서워서 마루 위로 올라오곤 했다. 어떤 때는 방문한 사람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고, 도사견도 무서워서 도망가고 하는 모습도 지켜보았었다. 참 별일 이었다. 양쪽이 다 서로 무서워서 그러하니.
그러나 이름이 원래 지워진 채로 우리집에 온 개 이름은 어쩔 수 없었다. 덩달이란 개도 있었는데 이름 때문에 그런지 덜렁거리더니 덩달이는 집을 나가 버렸다. 딸아이는 통곡을 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양털 옷을 입은 조그만 예쁜 개였다. 이제는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기회도 남들에게 아이들에게 빼았겼다. 아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메리가 들어차서 다른 개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메리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나도 내가 아프다면 조용히 떠나야 하는 것 일까, 미움의 곡선이 나의 목을 누르기 전에 아무도 모르게 떠나야 하는 것일까, 아픔이 몸을 감기 전에 메리에 관한 추억이 나를 무엇인가 준비하게 한다.
미움의 닻을 영원히 내리고 사랑을 찾아 동물들을 본다. 인간도 그렇게 사랑을 나누어 주며 살며시 문을 닫고 긴 여행을 떠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벌써 정신을 차리고 준비한다면 이제 심장의 고동소리는 점점 약하게 내려와 땅속으로 흐른다.
어쩌면 동물들은 사랑의 교본내지는 교과서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의 사랑을 받고 크지만 아이들은 동물을 통해서 사랑을 연습할 것이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통하여 대화하며 고양이의 그렁거림을 통하여 미소를 배우며 개의 꼬리침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해 아이들의 사랑이 커가는 것을 본다. 그 사랑의 무늬가 파도처럼 번져가는 것을 보며 기뻐한다. 밤에는 불꽃놀이처럼 멀리멀리 펼쳐지는 것 또한 보노라.
우리의 여행은 원래 고독한 여행일진 데 이 여행이 끝나기 전에 사랑의 고운 비늘로 서서히 당신을 채워감을 보노라. 이런 사랑을 추억함으로 인간은 죽어도 쓸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결코 나을 수 없는 훈훈한 마음의 전염병이다.
* 김학두/ 호주한국문학협회 섭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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