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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와 ‘우주 개’들
2015년 01월 02일 15시 46분  조회:2700  추천:0  작성자: 라라

미소 냉전이 쏘아올린 ‘떠돌이 개’의 죽음…라이카와 ‘우주 개’들
 

1950~60년대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개, 원숭이, 침팬지 등 동물들을 우주에 쏘아올렸다. 1957년 생명체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모스크바의 떠돌이개 ‘라이카’도 우주여행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발사됐다.
그 이후 스미레는 마음속으로 뮤를 ‘스푸트니크의 연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스미레는 그 말의 메아리를 사랑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라이카견(犬)을 연상시켰다. 우주의 어둠을 소리 없이 가로지르는 인공위성. 작은 창문을 통해서 들여다보이는 한 쌍의 요염한 검은 눈동자. 그 끝없는 우주적 고독 안에서 개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생명체는 인간이 아니라 개였다. 그의 이름은 ‘라이카’. 옛소련 모스크바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잡종 떠돌이개였다.
1957년 11월3일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를 실은 로켓이 굉음을 울리며 창공을 갈랐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궤도 진입에 성공한 지 한 달 만에, 볼셰비키혁명 40주년에 맞춰 준비된 이벤트였다. 무게 508㎏의 작은 캡슐에는 라이카가 앉아있었다. 태양광선과 우주선(宇宙線), 온도와 압력을 체크하는 간단한 기기들과 두 개의 라디오 송신기 그리고 라이카가 소비할 수 있는 얼마간의 산소와 음식과 함께. 영국 <비비시(BBC)>는 이날 지구 생명체 최초의 우주여행을 이렇게 전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지구 약 1500㎞ 상공에서 초속 8㎞의 속도로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약 1시간42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돈다…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소련은 라이카를 지구에 귀환시킬 것으로 여겨진다.”
동물 우주영웅의 탄생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튿날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은 “두번째 인공위성의 개 생존-소련 당국, 귀환할 것이라고 암시”였다. 전세계는 소련이 거둔 우주여행의 성공에 놀랐고 들떴다. 이른바 ‘스트푸니크 쇼크’였다. 소련 정부는 라이카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소거하는 생명유지장치와 먹이공급장치를 인공위성에 장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라이카를 위한 귀환 조처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원래 라이카는 모스크바의 길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최초의 무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에 고무된 소련은 한달 안에 생명체를 실어보낼 계획을 세웠다. 치명적인 방사능과 살을 태우는 고온, 무중력 상태, 거친 진동 등의 악조건에는 애완견보다 길거리 개가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작은 캡슐형 인공위성에 태울 정도의 6~7㎏의 무게를 지닌, 무중력 우주복과 위생처리가 용이한 암컷 길거리 개를 찾았다. 몇 마리의 개가 훈련을 받았고 라이카가 최종 선정됐다.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생명체는
모스크바의 잡종 떠돌이개였다
용감한 우주대원, 고결한 희생자…
사회주의 영웅으로 추앙됐지만
라이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낭만적 영웅 탄생의 실체는
우주개를 이용한 동물실험
1950~60년대 미·소 냉전시기
50여마리 개를 쏘아올렸고
원숭이와 침팬지도 희생됐다
 


라이카의 우주여행이 알려졌을 때 모든 사람들이 우주영웅의 신화만을 본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전국애견보호협회(NCDL)는 매일 라이카를 위해 1분간 묵념하자고,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런던의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모여 항의하자고 주장했다. 뉴욕의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유엔 건물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피켓에는 “우리의 친구, 개들에게 공정하게 대하라” “우리는 인간의 친구들이다. 우리를 적절하게 대하라”라고 써있었다. 라이카가 언젠가 굶어 죽거나 산소 부족으로 숨질 것이라는 예측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당시 소련의 한 잡지에는 개 대신 낙타를 우주에 보내야 한다는 제안, 개 대신 자신이 직접 우주비행에 나서겠다는 이들의 주장도 실렸다.
발사 엿새째 라이카는 산소가 바닥나 숨졌다고 소련 당국이 발표했다. 그러나 헌신적인 희생과 비극적인 결말은 영웅 드라마를 강화하는 법이다. 라이카는 미소 냉전시기 미국보다 앞선 사회주의의 우주과학 기술을 상징했다. 사회주의 인민의 영웅을 넘어선 인류의 우주시대 개척자였다. 라이카가 훈련받은 거처에는 곧바로 “여기 지구궤도 위성비행에 성공한 개 ‘라이카’가 여기 살았다”는 청동 기념판이 붙었다. 1958년 소련에서 최초로 생산된 필터 담배에는 그의 그림과 함께 ‘라이카’라는 상표가 붙었다. 루마니아, 알바니아, 폴란드, 북한 등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라이카에 이어 우주여행에 나선 개 ‘스트렐카’와 ‘벨카’는 지구 궤도에 24시간 머문 뒤 귀환에 성공했고, 흐루시초프는 두 마리가 낳은 강아지 한 마리를 미국 케네디가에 선물로 줬다.
러시아 역사학자인 에이미 넬슨 미국 버지니아공대 교수는 우주개 열풍의 이면에 사회주의 반려견 문화가 자리잡고 있음을 주목한다. 개 키우기는 부르조아 계급의 사치 문화로 볼셰비키들에 의해 낙인 찍혔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국가체제가 확립되면서 개를 키우는 가정이 조금씩 늘어난다. 동시에 군견, 사냥견, 목양견 등 개는 사회주의 재산을 지키는 파수꾼이나 노동자로 묘사됐다. 라이카도 인간을 위해 일하는 묵묵하고 충실한 노동자이자 노동영웅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넬슨 교수는 분석한한다.

1961년 우주여행을 마친 침팬지 ‘햄’이 수거된 우주선에서 발견돼 미국 배에 오른 모습.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파블로프의 우주실험’
하지만 이 낭만적인 이야기의 실체는 딱 하나, ‘동물실험’이다. 이를테면, 영국 신문 <가디언>의 과학칼럼니스트 저스틴 핸킨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개를 우주에 올려보낸 과업을 짧게 요약하자면 동물실험이다. 토끼의 눈에 샴푸를 떨어뜨리는 것보다 특별히 더 영예로운 일이 아니다.”(<가디언> 2004년 3월20일)
좀더 인용하자면 이렇다. “동물실험 반대를 주장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그저 단순한 생체실험의 희생자가 선구적인 로켓 과학자로 묘사되는 현상이 궁금할 뿐이다.”
왜 하필이면 개였을까? 이는 ‘실험동물로서의 개’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킨 소련의 과학적 전통과 관련이 있다. 살아있는 개를 수술해 타액이 밖으로 나오도록 한 뒤 사육사의 발소리를 듣자 개가 타액을 흘린 현상을 포착한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의 ‘유레카의 순간’ 이후 소련에서 개를 통한 동물실험은 과학의 토대가 되었다. 소련 정부는 파블로프 실험연구가 유물론적 세계관을 공고히 한다며 개 실험을 아낌없이 지원했고, 파블로프는 소련 과학아카데미 부속 생리학연구소장 등을 맡으며 사회주의 과학의 중심에 섰다. 소련 과학계에선 조건반사, 소화작용, 신경계 등 개에 대한 생리적 지식이 급속도로 확장됐다. 사실 지구 최초로 우주여행을 ‘시도’한 동물은 원숭이였다. 미국은 1948년 브이(V)2 로켓에 원숭이 ‘알버트’를 실어 보냈으나 질식사했다. 그 뒤 몇 마리의 원숭이들을 쏘아올렸으나 큰 성과는 올리지 못한다. 반면 개에 대한 동물실험 지식이 발달한 러시아는 몇 차례의 우주개를 로켓에 쏘아올린 뒤, 라이카에 이르러 우주 진입에 성공한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2002년 10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국제우주항공연맹 회의에서 옛소련의 우주과학자 드미트리 말라센코프(Malashenkov)는 양심선언을 한다. 스푸트니크 2호에서 라이카를 지구에 귀환시키기 위한 어느 조처도 고려되지 않았으며 알려진 바와 달리 라이카는 고온과 스트레스로 인해 최대 7시간 밖에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라이카가 본 푸른 지구는 불과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푸트니크 2호는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관이 되었다. 이 우주관은 발사 다섯 달 후인 1958년 4월14일 바베이도스 상공에서 폭발해 사라졌다.
우주개는 어떤 이에게는 ‘용맹한 우주대원’이나 ‘충성스런 하인’이었지만, 어떤 이에게는 우주여행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실험동물’이었다. 1950~60년대에만 소련은 50여마리의 개를 우주에 쏘아올렸다. 어떤 개는 죽었고 어떤 개는 살아돌아왔다. 바스와 리쉬카(Lisichka)는 1960년 7월28일 발사 28.5초만에 로켓이 폭발해 숨졌다. 벨카와 스텔카는 그해 8월19일 우주에서 하루를 보내고 지구에 귀환해 라이카를 잇는 영웅견으로 떠올랐다. 치요르카(Pchyolka)와 무쉬카(Mushka)는 그해 12월1일 우주에서 하루를 보내고 우주선이 고장나 숨졌다. 미국은 주로 원숭이와 영장류를 쏘아올렸다. 1961년 1월31일 침팬지 ‘햄’은 약 6분30초 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고 지구에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우주여행을 처음으로 경험한 영장류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내 소련에 추월당했다. 석 달 뒤인 4월12일,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를 갔다왔다. 더이상 우주의 동물영웅 이야기는 창조되지 않았다.

남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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