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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n번방 박사' 조주빈, 피해여성 협박해 범행에도 동원
성(性) 착취물 유포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구속·그래픽)의 신상 정보를 경찰이 공개했다. 조씨는 자신의 덫에 걸려든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을 '여자 친구'라 부르며 범행에 동원한 내용이 새롭게 확인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4일 조씨에 대한 '신상 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연 뒤, 조씨의 주민등록 사진과 이름, 나이를 정식으로 공개했다. 살인범 등 강력 범죄자가 아닌 성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경찰이 증명사진 형태로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위원회는 "피의자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 유포하는 등 범행 수법이 악질적·반복적"이라며 "조씨의 범죄가 중대하고, (신상 정보 공개가) 국민의 알 권리와 동종 범죄의 재범 방지 등 공공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이른바 텔레그램'n번방'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경찰은 불법 음란물 영상을 찍거나 판매한 사람은 물론 소지·유포·조력 등 가담자 전원과 방조자까지 수사하겠다"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조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에 가담한 20대 여성 A씨를 자신의 '여자 친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여성은 처음에는 조씨 일당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피해자였다. A씨 영상도 '박사방'에서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1년 3개월 동안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최소 72명을 협박, 성폭행을 포함한 각종 학대를 당하도록 회원들에게 범행을 교사(敎唆)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A씨였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조씨 강요와 겁박에 의해 강제로 여자 친구처럼 지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에게 "피해자가 범죄자에게 정신적으로 투항해 스스로 동조하는 현상인 '스톡홀름 증후군' 아니냐"고 물었다. 답변은 "그런 상태는 확실히 아니다"였다. '일방적이고 강제적 연인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조주빈씨는 자신이 제작한 성 착취 영상 공유방에 입장하고 싶어하는 회원들로부터 비트코인 등 암호 화폐로 '입장료'를 받았다. 조씨는 회원 가운데 지정한 '인출책'을 시켜 이 입장료를 현금으로 환전했지만, 돈을 받기 위해 인출책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돈을 놔두고 가도록 지정한 장소가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 복도의 '소화전함'(소방 호스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었다. 해당 아파트는 조씨가 '여자 친구'라고 부르는 A씨 집이었다. 인출책이 돈을 두고 가면 A씨가 돈을 수거해 조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조씨와 함께 검거된 13명 가운데 5명이 이런 '인출책'이었고, 한 명은 A씨였다. 이른바 '던지기'로 불리는 전형적인 마약 거래 수법이다. 범죄자들이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거래하려고 쓰는 방식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조씨는 공범들에게조차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조씨 일당의 범행에 가담한 A씨의 처벌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A씨가 범죄에 가담한 것도 결국 조씨의 강요에 의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인지 공범인지, 조씨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법률 검토를 해야 한다"고 했다.
조씨는 자신의 채팅방 가입자들을 철저하게 '공범'으로 만들어 신고하지 못하게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불법 영상을 보는 채팅방은 회원이 낸 금액에 따라 4단계로 운영됐다. 노출 수위와 가학성이 큰 영상을 보려는 회원들은 채팅방에 올라온 불법 음란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송하고 이를 조씨에게 인증받아야 했다.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연락처를 조씨에게 보낸 회원들도 있었다. 새끼손가락과 얼굴이 나오게 사진을 찍는 구도는 조씨가 회원들에게 자주 요구하던 이른바 '시그니처 포즈'였다고 한다.
조씨는 지난 16일 수도권 자신의 주거지에서 체포됐다. 당시 조씨 주거지에서는 범죄 수익금으로 보이는 현금 1억3000만원이 발견됐다. 경찰은 조씨의 나머지 범죄 수익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주 조씨가 사용해온 국내 가상 화폐 거래소를 압수 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약 2000건의 조씨 관련 거래 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조씨가 운영한 텔레그램 '박사방'을 최소 1만명이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거래 내역을 토대로 입금자들의 정확한 신상 정보와 송금 횟수, 송금액 등을 조사하고 있다.
현행법상 불법 음란물을 소지하고 유포하면 처벌받는다. 자신의 범죄 행각을 볼모로 잡힌 일부 회원은 조씨에게 '직원'이라고 불리며 범행에 동원됐다. 이들은 피해자들을 미행하고 소셜미디어에 불법 채팅방 광고 글을 올렸다. 조씨는 직원들에게 수만~수십만원의 '심부름값'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씨 '직원' 중에는 지방의 시청 8급 공무원도 있었다.
하지만 조씨는 자신이 '여자 친구'라고 주장하는 A씨를 제외한 어떠한 공범이나 피해자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조씨의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불법 음란물을 보며 공범이 된 회원들이 조씨를 대신해 피해자를 만나고 협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처음에는 개인의 불법 음란물 유포 범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직적 범죄로 진화한 것"이라고 했다.
조씨가 중·고교생 시절부터 왜곡된 성 의식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온라인에는 남아 있다. 조씨는 중학생이던 2009년부터 고3이던 2013년까지 '네이버 지식인' 코너에 총 478건의 답글을 달았던 것으로 나온다.
조씨가 쓴 답글 중에는 성에 관한 내용이 많았고 그중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다운로드 받아도 걸릴(적발될) 확률이 낮다" "걸그룹 섹시 코드가 사람들 욕구 해소에 도움이 된다" 등이 있었다. 한 중학생이 "누나랑 같이 삼촌이랑 놀고 있었는데 삼촌이 누나 치마에 손을 집어넣었다"고 적어 올리자, 조씨가 "성폭행은 친인척 사이에 빈번히 일어난다"고 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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