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의 풍선에 소원을 담아요.
일요일 오후부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하는 대부분 길이 통제되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 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올해 기념식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마련됐습니다.
바로 희망의 풍선 날리기인데요,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에 설치된 풍선 7천 개에 소원을 적어 동시에 함께 날리는 겁니다.
● "25주년을 맞은 베를린이 세계를 향해 인사합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풍선을 잡고 있는 어린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11살에 이름은 제픽.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무슨 소원을 적었을까? 마이크를 대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25주년을 맞은 베를린이 세계를 향해 인사합니다." 둘로 갈라졌던 베를린이 하나로 합쳐진 지 25년. 25살 생일을 맞은 청년 도시 베를린이 이제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인사드린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 "베를린장벽 붕괴가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25년 전 동독의 한 중산층 가정의 가족사진입니다. 사진 맨 오른쪽 빨강 멜빵과 나비넥타이를 한 18살 청소년 타이히만은 당시 철도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철도 설비 관련 직업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독의 철도 회사가 부도가 나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고민하던 무렵,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그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습니다. 서독에서 마련한 새로운 직업교육을 이수했고, 한 초등학교에 사회복지사로 취직했습니다.
타이히만씨는 이제 43살의 중년,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사회복지사 본업 외에 틈틈이 배우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25년 전, 18살 때를 기억합니다. "갑자기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어요. 처음으로 장벽 너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그땐 생각도 못 했어요."
● 통일 독일의 고민 "오스탤지어"
"그때가 좋았다?" 통일이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독일 언론에 가끔 등장하는 단어 중에 "오스탤지어"란 말이 있습니다.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와 향수라는 뜻의 노스탤지어를 합친 말인데, 과거 동독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말입니다.
동독지역의
GDP가 통일 당시 서독의 33%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66%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분명 통일 이후에 살기가 좋아졌는데도 상대적 빈곤감, 자본주의 체제의 부적응으로 통일 독일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합니다.
과거 동독 공산당에 뿌리를 둔 정당 지지율이 10% 안팎으로 높은 것도 이 같은 오스탤지어 현상을 반영한다고 독일 언론들은 전합니다.
●1989년 11월 9일...베를린장벽 붕괴
다시 25주년 기념식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 1989년 11월 9일. 25년 전 동베를린 시민들이 자유를 찾아 베를린장벽으로 몰려오던 바로 그 시간이 됐습니다. 7천 개 풍선이 환호성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를린장벽이 서 있던 자리, 일렬로 서 있던 풍선들이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장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마음의 장벽을 허물자
통일 25년. 막대한 통일 비용으로 지금까지 독일은 2조 유로. 2천6백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통일연대세금도 따로 거뒀습니다. 독일 정부가 마련한 구 동독지역의 도시 재건 사업을 오는 2019년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통일 이후 10여 년간 독일은 통일 비용 등의 후유증으로 유럽의 환자로 휘청거렸습니다. 그래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이제 유럽, 나아가 세계의 강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허물어진 베를린장벽 대신 '오스탤지어' 현상으로 대표되는 마음의 장벽, 차별의 장벽 같은 또 다른 벽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통일 독일 사람들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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