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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수기] 아픔으로 이어지는 삶(련재1) _ 김명숙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2월28일 07시45분    조회: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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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으로 이어지는 삶(련재1)

김명숙 

(룡정시북안소학교)

                                      
    삶! 그 자체가 아픔인 것 같다.
    뭐가 뭔지 모르고 겪었던 첫밗. 철없는 나이에 겪었던 그 아픔은 지금도 내 가슴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떠날 념을 않는다. 경황없이 뛰여야 했던 시간들이 어느덧 석양 무렵에 닿고 보니 오래동안 묵인된 아픔들이 겉잡을 수 없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그 속에 차곡차곡 년륜을 새겨넣고 삭풍에 부대끼는 아픔들도 소리없이 잠재워가지만 사람의 년륜의 흔적은 이처럼 겉에 새겨지고 그 색상도 갈수록 짙어만 간다. 가슴을 허비는 그 아픔들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나로 하여금 교사라는 신성한 이름의 함의와 그 사명감을 더더욱 깊이 깨닫게 한다.

 

 

첫밗 
   

    나는 그 때 겨우 열아홉살 애숭이였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들먹여지는 그 시절 그 설레임과 무관하게 가녀린 녀자애의 얼굴이 삼삼히 떠오르면서 나를 슬픔의 도가니에 깊숙이 빠뜨린다. 이제 쯤은 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엄마로도 되지 않았을가? 아니 마이크를 잡고 어딘가에서 고운 목청을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골의 작은 소학교에 취직한 그 이듬해 햇내기인 나한테 아름차게도 1학년 담임이 차려졌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학기를 마무리하고 보니 행운스럽게도 “락제생이 없는 반급”으로 뽑히게 되였다. 그 때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자랑이고 힘이였는지 모른다.

    이듬해 따뜻한 4월이 되자 그 녀자애가 내 반급에 입학하게 되였다. 11살이면 평균 나이보다 두 세살 많았지만 키가 작고 몸도 수척하여 되려 반급 애들보다 더 갑삭한 편이였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막연하게 한 건 글자를 겨우 뜯어 읽는 수준은 물론 글쓰기를 전혀 몰랐는데 연필만 쥐면 손을 바들바들 떨는 것이였다. 영낙없는 락제생이라 점찍은 나는 날마다 수업이 끝나면 그에게 뒤떨어진 학과를 단독으로 가르쳐주었는데 생각밖으로 아주 빨리 배워냈다.

    석달이 지나니 용케도 글을 줄줄 내리 읽었고 계산도 능숙히 해냈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관을 넘지 못하였다. 단어 반장을 쓰고 나면 온 얼굴이 땀벌창이 되군 하였다. 그러다가도 휴식시간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노래를 즐겨 부르군 하였는데 목청이 고왔을 뿐만 아니라 아는 노래도 많았다. 아마도 그 노래 부르는 즐거움으로 힘든 시간들을 버텨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가슴이 더더욱 저며드는 것 같다.
 

그번 학기말 시험에서 수학은 그나마 급제를 하였지만 어문은 끝내 규정된 시간내에 써내지 못하였다. 공든 탑이 무너진 기분이 들었고 락제점수로 부모들을 대면할 생각을 하니 무척 고민스러웠다. (그 때는 기말시험이 끝나면 지금처럼 학교에서 학부모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원이 시험지를 들고 학생들 집을 일일이 방문다녔다.) 하지만 내 생각과 완연 달랐다. 가족들은 락제점수와는 상관없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고 할머니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내 손을 잡고 고맙다 미안하다를 수차 반복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철없는 애나 다를바 없었다. 애가 많이 아프다는 그 말뜻을 감기로만 생각했고 할머니가 눈물 짓는 그 심정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었다. 그렇게 그 학기가 지나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였다. 10월이 되여 날씨가 추워지자 심한 류행성 감기로 애들이 자주 결석을 하게 되였다. 하지만 그 애는 용케도 계속 학교에 왔고 날마다 다른 애들이 하학후면 싫증도 내지 않고 내 곁에서 열심히 글쓰기를 련습하였다.

 

 

 

    그 날 내가 잠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애가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있었는데 온 몸에 기운이 다 풀린 듯 싶었다. 내 옷을 벗어 덮어주면서 보니 걸상 밑에 물이 흥건히 고여있었다. 그제야 불길한 생각이 들어 얼른 애를 깨워가지고 자전거에 싣고 퇴근길에 올랐다.

 

 

 

 

 

 

 

 

 

 

 

 

 

    다행으로 애의 집이 우리 마을과 이웃 동네여서 나는 날마다 애를 집까지 데려다 줄 수 있었다. 여느때 같으면 자전거 뒤에서 신나게 노래가락을 뽑았을 애였지만 그 날은 말도 없이 두손으로 내 허리를 잡고 머리까지 잔등에 꼭 박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애와의 마지막 리별일 줄 누가 알았으랴. 감기가 나으면 다시 학교로 올 거라 믿었는데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록 애는 종시 나타나지 않았다.

 

 

 

    학기말 시험을 치고 가정방문을 가면 꼭 찾아보리라 벼르고 있는데 바로 그 전날 반급 애들한테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갑자기 다리가 후둘후둘 떨렸고 목이 꽉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겨우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 그 애가…”하는 말끝을 흐렸다. 교장선생님은 단박에 알아차리고 “어서 가기요.” 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내 앞에서 부리나케 달리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교장선생님은 애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해 나는 만 스무살이였고 그렇게 첫밗을 겪게 되였다. 애처로운 통곡 속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갈피도 잡지 못하고 그냥 애처럼 목놓아 울기만 하였다. 나는 그 날에야 애가 백혈병에 걸린지 3년째라는 것 그리고 해마다 피를 바꾸어가며 버티였다는 것도 알게 되였다. 애가 하도 학교에 가고 싶어하고 글을 배우고 싶다기에 욕심을 부렸는데 젊은 선생이 꺼려하고 부담스러워 할가봐 이실직고할 수가 없었다고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비록 그 때는 그 가족들이 모두다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이 하나같이 나한테 말못한 그 마음들을.

 

 

 

 

 

 

 

 

 

 

 

 

 

    의사가 고명한 의술로 환자를 진맥하듯이 교원한테는 학생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예리한 시각과 명지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내 몫이였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나는 그 죄스러운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학기도중에 입학한 것도 그렇고 늘 연필 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자주 바지에 실수를 저지를 때는 뭔가를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글쓰기를 강요할 대신 애가 그토록 즐기는 노래만 부르게 하면서 걱정없이 뛰놀게 했더라면 하루라도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가? 그랬더라면 어린 것이 그 먼곳으로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모질게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철없는 그 때는 너무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목놓아 울었었지만 지금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애닲은 마음으로 그리고 한 인민교사로서의 경솔했던 책임감으로 자책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불타는 석양이 곧 막을 내릴 것이다. 세월을 읽는 년륜이 늘어가고 그 사이로 석양빛이 사라질 때면 내 마음의 골병도 자취를 감출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여왔다.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듯이 36년간 쌓이고 쌓인 아픔들은 짙어가는 년륜과 하냥 정비례를 이루고 있음을 나는 새롭게 감지하게 되였다. 평생 아픔과 동반하는 삶이 자식 많이 키운 부모의 운명이고 또한 필수가 아닐가?

 

 

 

 

 

 

 

    가녀린 녀자애가 떠난지도 어언 35년이 흘렀다. 그토록 힘에 부치면서도 하냥 밝은 모습으로 지각없는 내 가르침을 열심히 따라주었던 녀자애는 일찍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나한테 가르쳐주었다.

 

 

 

    그 애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교원의 삶은 글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재삼 되뇌이군 한다. 하늘의 별들이 천차만별이라면 학생마다의 개별특징은 그 천차만별 속의 하나에 속할 뿐이다. 배경이 다름에 따라 뒤따르는 욕구, 애호, 습관들은 항상 똑같은 등호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길고 짧고 굵고 가늘고 곧고 휘고… 병에 따라 처방을 내리듯이 각양각색의 여린 화초들을 하나하나 열심히 살피고 수요에 따라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풀도 뽑아주면서 밝고 예쁘고 건실하게 키워가는 것이 인민교사로서의 무마할 수 없는 숭고한 직책임을 나는 마음속에 하냥 굵직한 붓으로 짙은 선을 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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