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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출 할머니(왼쪽)는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에 미안해하는 취재진에게 “우리가 당한 것을 말해서 후세한테 주의를 주고 그래야지. 그래야 나라를 올바르게 지킬 수 있어”라고 말했다. 강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에서 무녀 역을 맡은 최리 학생(오른쪽)은 “영화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타지에서 숨진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혼을 불러내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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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생존자 강일출 할머니…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귀향’의
감독·주인공을 만나 탄식하고, 눈물짓고
할머니는 엄마 젖을 만져야 잠들던 70여 년 전의 기억을 여러 번 더듬었다. “12남매 중 막내였거든.” 비 내리던 날, 순사 2명이 와서 마루에 앉아 있던 16살 막둥이 일출이의 손을 묶어 보국대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며 끌고 가던 시간에서 엄마 젖의 기억도 멈췄다. “우리 엄마·아빠 얼굴도 못 보고 끌려갔어. 엄마·아빠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억울해.”
그래서 할머니는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따라갔다’거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식의 국내 극보수 인사들의 인식에 대해 “대가리에 똥을 퍼부어 대가리를 만들었나? 왜 그렇게 아픈 소리들을 하나”라고 개탄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뭘 하고 있나?”라고 꾸짖기도 했고, 극우 강경으로 치닫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해선 “마음 같아선 아베가 당장 이 자리에 와서 사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후세도 당할까봐 속이 아픈 거야”
7월4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강일출(86) 할머니를 만났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극우 역사관 논란으로 사퇴한 데 이어, 일본 정부가 최근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 당시 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이 발표)를 훼손하는 내용까지 내놓은 터라 할머니의 심기는 편치 않았다. 192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943년 16살에 중국 무단강 위안소까지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서 참혹한 생활을 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기 직전 장티푸스를 심하게 앓아 부대 밖으로 이송돼 산속에서 불로 태워지려다 조선 독립군이 구해내 탈출했다. 이후 중국 지린시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고, 2000년 영구 귀국해 나눔의 집에서 지내며 위안부 피해 증언을 하고있다.
내년 3월 개봉이 목표인 영화 <귀향>은 이런 강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어린 나이에 끌려간 소녀들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16살 무녀가 타지에서 숨진 위안부 소녀들의 혼을 불러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녀 역을 맡은 중앙대 무용과 1학년 최리(19) 학생이 강 할머니를 만나 역사가 뒤틀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심경을 들었다. 할머니는 최리 학생, <귀향>의 조정래(41) 감독, <한겨레21>기자들의 여러 질문에도 비교적 또박또박 답해줬다. “후세에게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당한 흔적은 모르고 사라진다”는 게 할머니가 건강을 지키는 이유였다.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고,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다 지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으셨을 텐데요.
“죽으면 잊어먹겠지. 그런데 내가 당한거…, 후세도 당할까봐 속이 아픈 거야. 우리가 속에 넣어두고 죽으면 이 역사 문제(위안부)는 영원히 없어져버려. 대한민국 국민, 지금의 청년들에게 이 문제를 올바르게 가르쳐주고 이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거지.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눈을 감고 못 가는거야.”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우리가 살 만해졌으니, 위안부 문제는 이제 우리가 해결하자’는 식의 칼럼을 쓰기도 해 문제가 됐죠.
“그 사람 이제 내려(사퇴)갔지? 내려가길 잘했어. 정신없는 사람 아닌가? 한국 사람 맞나? 대통령도 잘 알아야 해. 대통령이 앞장서서 이 나라를 똑바로 지켜야 하는 거야. 외국 손님들과 악수하고, 인사하고, 그게 먼저가 아니라 첫째도 이걸(위안부 문제 등)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하는 거야. 우리(위안부 피해자)가 지금 (증거로서) 살아 있잖아.”
최근 국내 교과서 왜곡 문제에서 불거졌듯, 위안부 피해자들이 강제로 끌려갔다는 것을 부인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 때문에 우리가 발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무슨 소리 하고 있어. 그것들이 대가리 에 똥을 퍼부어 대가리를 만들었나. (그 사람들 얘기가) 한마디로 우리가 몸 팔러 갔다는 거 아니야. 우리가 엄마·아빠도 못 보고 중국으로 끌려갔잖아. 엄마, 아빠, 오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본놈들한테 죄 없이 두들겨 맞고 발길로 차이고 팔도 꺾이고….지금 내 머리에 상처가 아직도 있어. 한국을 위해 끌려가 내 나라를 위해선 죽어도 돼. 그런데 일본놈에게 끌려간 거는 용서할 수가 없어. 속이 너무 답답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왜 이렇게 됐나.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하루에 10명, 위안소는 ‘지옥’
16살이면 너무 어린 나이였네요.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셨을 텐데요.
“내가 막내였거든. 내가 16살 때 엄마는 예순이 넘었고. 잘 적에도 우리 엄마 젖 만지고 잤지. 젖을 만져야 내가 잠드는 거야. 자다가 엄마가 벌떡 일어나면 나도 일어나고. 그럼 엄마가 ‘너는 오줌 누러 가게도 못한다’고 하셨지. 난 엄마가 달아날까봐.
2000년 (귀국을 위해) 한국에 들어오니 다 죽었어. 오빠도 없고, 아무도 없어. 오빠들은 곶감 같은 거 팔러 장에 가면 꼭 (내가 신을) 신발도 사가지고 오고 그랬거든. 엄마·아빠 산소에는 가봤어. 중국에서 제일 좋은 술 사갖고 와서.”
엄마·아빠도 못 보고 끌려가신 거군요.
“내가 학교에 갔다와서 밥을 먹고 마루에 앉아 있는데 순사들이 왔지. 경북 상주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갔어. 역마다 여자들이 계속 타고.”
이 무서우셨을 텐데요.
“눈물이 나도 참아야 했어. 울면 발길로 차고 때리고.”
보국대에 간다고 했다는데, 그게 뭔지 아셨나요.
“끌려가면 좋을 게 없다는 건 알았어. 큰 오빠도 (징용으로) 끌려가 죽었거든. 그러니 일본놈이 끌고 갈 때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알았지.”
일본은 위안부 중에 미성년자가 없었다고 주장하는데요.
“거짓말이지. 나는 초경도 안 했을 때인데. 내가 있던 중국 무단강 위안소에는 나보다 어린 사람이 한 명인가 둘인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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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출 할머니(왼쪽)는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에 미안해하는 취재진에게 “우리가 당한 것을 말해서 후세한테 주의를 주고 그래야지. 그래야 나라를 올바르게 지킬 수 있어”라고 말했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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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얘기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의 시나리오에 는 위안소를 지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여자들이 한 30명 넘게 있었어. 하라는 대로 해야지. (내가 어리다고) 애기처럼 하면 또 두들겨 맞아. 일본말 거역하면 다 때리는 거야. 전쟁(전투)이 없을 때는 군인들이 하루에 10명 정도 (나한테) 들어왔어.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어. 대가리(윗사람)한테 말해야 갈 수 있고. 도망도 못가. 도망가다 잡히면 맞아 죽어. 우리가 (도망가더라도) 어느 곳에 일본 군대가 많이 있고 없는지를 알 수가 있어야지. (그때의) 일본놈들은 사람의 인골을 썼다고 사람이 아니야.”
타지에서 위안부 피해 소녀들이 많이 돌아가셨겠군요.
“그럼 많이 죽었지. 제사도 못 지내고. 너무 무서운 거야. 일본 군대가 총을 들고 눈깔을 이래가지고 다가오면.”
뒤통수 ‘탁’ 때리고 싶은 아베 총리
할머니가 해방 직전, 위안소에서 병을 심하게 앓았을 때 트럭으로 이송해 치료를 해주려는가 싶더니 일본군들이 산속으로 끌고 가 구덩이에 넣어 불로 태우려고 했었죠. 그때 독립군이 나타나 구해줬고요.
“(독립군한테 업혀 맨발로 도망갈 때) 너무 힘이 드는 거야. 내 속으로 ‘살았나? 죽었나?’ 생각했지, 너무 놀라가지고.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지.”
본은 1993년 자신들이 발표한 ‘고노 담화’가 한-일 양국 간 ‘정치적 타협 결과’라고 하면서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훼손하는 검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또 최근엔 사실상 일본이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일본 헌법의 해석을 변경했습니다.
“전쟁을 할 수 있게? 다른 나라는 바보들인가? 그러면 안 돼. (전쟁하러) 못 들어오게 해야 돼. 그렇게 하면 안 돼. 난리가 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그간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습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를 만나신다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세요.
“처음에는 말도 안 하고 뒤통수를 딱 때릴 거야. 그리고 ‘니네 윗대에서 너무 잘못해서 우리가 강제로 일본 사람한테 끌려가서 우리 엄마·아빠도, 형제도 못 봤다’고 해야지. 저쪽에서 사죄해도 마음이 잘 안 풀리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사죄해야지. 그래야 우리 후세도 좀 숨을 마음대로 쉴 거 아닌가. 내 마음이야 당장 이 자리에 와서 아베가 사죄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진 안 할 것이고. 그래도 사죄하면 감사하다고는 해야지.”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다시 없어야 한다는 것, 우리 여자들에게도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젊은 사람들이 나라를 올바르게 지켜야 해. 못 지키면 우린 눈을 번쩍 뜨고 가는 거야. 우리는 힘이 없어. (위안부 문제) 증언하라면 하긴 하지만, 속에서 상상도 못할 눈물이 나.”
힘이 없다는 할머니는 7월21일~8월6일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87) 할머니와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워싱턴·뉴욕을 방문해 증언 활동을 한다. 8월5일 뉴욕에선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생존자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한다. 지난 5월에도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을 위해 미국을 다녀온 강 할머니는 “아이고 비행기 타고 미국 가는데 잘 가다가 싹 내려가는 거야. 난 죽는가 했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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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출 할머니(왼쪽)가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에 대해 얘기하며 농담을 하자 최리 학생이 환하게 웃고 있다. 최리 학생은 “할머니, 영화 이 만들어지면 꼭 보러오세요”라고 부탁했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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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말씀을 들은 최리 학생은 “할머니가 16살 때 엄마·아빠도 보지 못하고 끌려가셨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하룻밤에 (일본군) 10명을 상대하시기도 했다는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죠”라고 했다. 최리 학생과 이날 만남의 참석자들이 할머니께 마지막으로 여쭈었다.
“엄마·아빠, 춤을 추면서 만나겠지”
할머니. 제가 영화 마지막에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넋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기도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시게 하는 춤도 추고요.
“그러면 좋지, 좋아.”
영화처럼 (굿을) 해서 누구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분을 만나고 싶으세요? 엄마, 아빠?
“죽으셨는데 어떻게 만나. 그렇게 만난다면 얼마나 좋아. 춤을 추면서 만나겠지.”
할머니는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나눔의 집 텃밭에 오이, 상추 등 채소도 가꾼다. 엄마·아빠도 모른 채 끌려간 ‘16살 막둥이 일출이’의 원통함이야, 그렇게 풀릴 리 없겠지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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