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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김규식, 양세봉...만주에 남은 후손들의 삶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9월3일 15시22분    조회:2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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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개항박물관 1층 입구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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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개항박물관 광복 71주년 특별전 '만주 아리랑-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이 광복 71주년을 기념해 인천개항박물관에서 '만주아리랑-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하고 있다. 8월 10일부터 시작한 이 전시회는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이 전시회를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류은규(55·사진) 중국 연변대 교수다. 류 교수는 본인이 수집하거나 제작한 것을 한중문화관에 대여했다. 전시회 기획 또한 한중문화관 학예사와 공동으로 했다.

류 교수를 지난 8월 21일 인천개항박물관에서 만났다. 전시품을 관람한 후 중구 신포동에 있는 관동갤러리로 옮겨 인터뷰했다. 류 교수의 부인이 관동갤러리 관장을 맡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2부로 구성됐다. 인천개항박물관 1층에서 전시하고 있는 1부는 1800년대 중반부터 만주지역으로 이주한 한인(韓人)들의 삶과 역사를 다뤘다. 2부는 만주지역에서 활동한 항일독립투사들의 유가족을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인천개항박물관 2층에 마련돼 있다.

이 특별전은 공식적으로는 1·2부가 끝이 나, 류 교수와 인터뷰하면서 비공식적으로 전시돼있는 3부까지를 봐야 한다는 걸 알았다. 3부는 류 교수가 1993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만난 동북 3성(길림성·요녕성·흑룡강성) 조선족 마을에서 만난 그들의 생활상을 사진으로 찍은 게 전시돼 있다. 이를 관동갤러리 2층에서 만날 수 있다.

관동갤러리 2층에 오르니 조선족 노래가 흘러나왔다. 류 교수에게 무슨 노래인지 물으니, '조선족 자치주 50주년 행사 영상'에서 나오는 노래라고 알려줬다. 2층 한 쪽에 영사기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관람객들에게 조선족의 역사를 더 잘 이해시키려는 그의 배려였다.

"흑과 백이 있으면 회색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중국과 한국의 완충지역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곳이 연변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후에도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우리와 단절한 채 그곳에서 정착해 살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만날 수 있었다. 류 교수는 1993년에 처음 중국 땅을 밟고서 가장 먼저 조선족의 사진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귀중한 사진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족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유품이나 사진을 모두 태워버리는 관습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렇게 모은 사진이 5만여장이고 이번 특별전에서 일부를 볼 수 있다.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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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의 딸인 김현태 할머니. 김현태 할머니는 류은규 교수가 1994년에 사진을 찍은 뒤 2년이 지나 돌아가셨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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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는 중국의 동북지역을 말한다. 그 중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 지역은 우리 선조들이 경제적이나 정치적 이유로 이주해 정착한 곳이다.

간도 또는 북간도로 불렸던 현재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와 흑룡강성·요녕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그들인데, 낯선 타국에 정착한 지 150여년이지만 조국의 말과 글, 문화를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이는 인천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모습과 닮았다.

"동북 3성이지만, 성마다 우리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출신지역이 달라요. 가령 두만강과 백두산이 인접해 있는 길림성은 함경도 사람이 많이 이주했고, 요녕성 서간도 쪽은 평안도 사람이, 흑룡강성은 두 성에 정착한 사람이 많아지자 그 외의 지역 사람이 많이 갔습니다."

19세기 중엽 처음 이주를 시작한 배경은 대기근이었다. 자연 재앙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이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여 살기 힘들었던 이들이 경계를 넘었다.

"그때를 1차 이주라고 볼 수 있어요. 그 후 1910년 한일합병이 되면서 독립운동세력들이 연해주나 간도 등으로 이주했죠. 그때가 2차 이주입니다. 만주에 조선족이 많이 살다보니 일본 군대는 못 들어가고 경찰이 들어와서 간도파출소를 세웁니다. 그때 친일파가 만주로 들어오는데 그게 3차입니다. 만주사변 후 일본은 '개척'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 민족을 만주로 강제 이주시켰고요."

해방 후 만주에 남기로 한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정착한 그곳이 고향과 같았기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1949년 9월, 중국은 한인을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인민으로 인정했다. 이후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성립됐고 1955년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칭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별전 1부에서는 한인의 만주 이주와 개척의 역사, 국외 독립운동의 거점인 만주에서 항일독립투쟁의 기록, 재만한인(在滿韓人) 역사를 사진이나 당시 사용한 물품으로 만날 수 있다. 류 교수는 일본 사람이 찍은 것과 조선족 등이 찍은 사진들을 동북 3성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모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70% 이상은 공개되지 않은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중국과 수교한 후 만난 조선족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죠. 우리나라에 온 조선족도 여전히 3D 업종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 이유도 있는 거 같습니다. 중국에서는 민족의 개념으로 '조선족'이라 부릅니다. 차별하자는 게 아닌 거죠. 그들은 어디에 있든 조선족입니다."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 2부와 3부

사진작가이기도 한 류 교수는 1993년부터 중국 동북지역을 오가며 조선족의 생활 모습과 항일독립투사 유가족들의 흔적을 찾아 자료를 모으거나 사진을 찍었다.

"1부는 1945년 해방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2부는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 사진을 전시했고, 관동갤러리에는 개항박물관에서 못 담은 사진을 전시했습니다. 조선족도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얼굴이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을 '한인면모(韓人面貌)'라는 제목으로 전시했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3부로 볼 수 있죠. 박물관 안내데스크에 계신 분한테 관동갤러리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이곳으로 오시는 분이 많습니다."

2부에는 항일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손 6명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양세봉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의 셋째 제수인 김화순 할머니, 김좌진 장군의 다섯 번째 부인의 딸인 김산조 할머니, 민족교육자 김중건 선생의 딸인 김정완 할머니, 봉오동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안병호 선생의 이복동생 안긍설 할아버지, 1920년 북로군정서를 조직했고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으로도 활약한 김규식 선생의 딸 김현태 할머니와 지금도 현존해 있는 항일투사 리민 여사의 사진이 그것이다.

이들은 리민 여사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제대로 된 보상이나 대우를 받지 못해 어려운 삶을 살고 있고, 중풍 등의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고인이 된 분들도 있다. 류 교수는 사진으로라도 기록을 남겨 다행이라고 했다.

류 교수는 "그들과 단절된 세월 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들의 역사는 잊혀갔습니다. 이미 많은 흔적이 없어졌지만 그들을 이해하려면 단편적 기억과 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더 사라지기 전에 옛 사진을 모으고 찍는 게 사진가의 할 일이라는 사명감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라고 한 뒤, 말을 이었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연변대 사학과 교수나 강만길 고려대 교수 등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어요. 중국이 공산화가 돼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탄압 당하면서 자료가 많이 없어졌어요. 99개가 진짜인데 1개가 거짓으로 드러나면 모두 거짓으로 판단해, 검증이 중요합니다. 역사 관련 책을 엄청 읽었는데,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도 검증하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관동갤러리에는 조선족 아이들의 웃는 얼굴, 가정에서 요리하는 주부의 얼굴, 거리에서 만난 촌부, 할머니와 손자손녀들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인천은 영원한 디아스포라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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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규 교수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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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규 교수는 상명대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980년대 지리산 청학동을 촬영한 후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의 부인 도다 이쿠코씨는 일본인이다. 한·중·일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이 부부는 조선족을 만나러 지난 1993년,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중국엘 갔다.

"처음에는 두려웠어요. 공산당에 대한 편견과 어둡고 폐쇄적으로 보이는 분위기가 그랬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체제에서도 사랑과 행복과 웃음, 가족이 있는 걸 알았죠. 항일운동가의 후손을 찍으러 갔는데, 일반인을 더 많이 만났어요. 그들이 조선의 역사를 모르는 게 속상해 부인과 합의한 게 그들의 사진을 찍어서 모아보자는 거였어요. 조선족이 어떻게 한반도에서 이주해왔는지를 모아서 사진으로 역사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거였죠."

1993년에 흑룡강성 하얼빈에서 지냈던 류 교수는 1995년부터 연변대 민족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족 사진작업을 시작했고, 2000년부터 연변대 사진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사진으로 보는 조선족 100년사'를 책으로 묶었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류 교수가 인천에 정착한 지는 4년 정도 됐다. 그는 예전부터 인천에 오고 싶었다고 했다.

"한·중·일의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작업을 하다 보니 인천이 살기에 적합한 거 같습니다. 연변대 교수로 중국에 가기도 편하고, 개항지이다 보니 한·중·일이 어울려 사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 바로 인천입니다. 역사적으로 1883년 개항지로서 인천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배나 비행기로 우리나라를 처음 만나는 곳이 이곳이고 우리가 이 나라를 떠나기 위해 닿는 곳도 인천이라, 여전히 인천은 개항지이며 디아스포라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고 싶은 게 이곳에는 많아요. 부인도 인천에서 근현대의 역사를 찾을 때마다 재밌어 합니다. 인천에서 살고 있는 것에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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