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들, 공사 따내려고 출혈 심한 최저가 수주 경쟁
적은 돈에서 이익 내기 위해 값싼 불법체류 노동자 고용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공사 현장에는 곳곳에 중국식 간체자가 적혀 있다. ‘순서를 반드시 지키자’ ‘내가 안전의 주역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안내판 표지 밑에는 어김없이 중국 글자가 보였다.
공사 현장은 이미 중국인이 장악한 지 오래다. 지난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건설근로자공제회 데이터베이스(DB)를 기반으로 추정했을 때 건설 현장 외국인 노동자는 17만7000명으로 전체 건설 노동자의 10.1%였다. 그러나 이 수치에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빠져 있다. 건설 현장 관계자들은 ‘오야지’(인력공급업자)의 중개로 공사 현장에 공급되는 중국인 한족·조선족 노동자가 전체 건설 현장 인력의 70∼80%를 차지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형틀이나 철근을 다루는 일처럼 내국인이 꺼리는 작업은 외국인 노동자가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6일 경기도의 한 대형 건설 현장에 들어온 전체 철근공 85명 중 74명(87%)이 외국인 근로자였다. 이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304명 중 237명(77%)은 중국 출신이었다.
하청업체는 개별 노동자가 아닌 오야지와 계약하고 일을 맡긴다. 현장 일용직 노동자 선발은 오야지가 전담한다. 현장 인부의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하청업체나 원청업체는 알 수 없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불법체류 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몰라야 자신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업의 불황이 길어지면서 불법적인 노동 공급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공사 자체가 줄어드니 하청업체들은 공사를 따내기 위해 최저가 수주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적은 돈에서 이익을 뽑아내려면 오야지들이 값싼 불법체류 노동자를 데려와 써도 눈 감을 수밖에 없다.
불법이 만연한 노동시장에서는 한국인도, 조선족도, 불법체류 한족 노동자도 모두 피해자다. 공사 현장 임금이 하향 평준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인 노동자는 임금 경쟁력이 없어 도태된다. 오야지 밑에 있는 조선족이나 불법체류자는 근로시간이 아닌 작업량을 기준으로 돈을 받는다. 많은 양의 일을 빠르게 끝낼수록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일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이들은 각종 안전조치를 요구하거나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오야지는 계약한 하청업체로부터 전체 임금을 받아 팀원들에게 나눠주는데 체불되거나 떼이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한국말을 모르는 한족 불법체류자들은 조선족 오야지로부터 돈을 못 받아도 또 다른 조선족 오야지를 찾을 수밖에 없다. 남명자 전국동포산업재해인협회 총무국장은 27일 “경찰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체불임금 상담을 위해 우리 단체에 찾아오는 경우가 한 달에 6∼7건 된다”고 말했다.
중국인 불법체류자 중심의 저비용 산업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인력시장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새벽 인력시장을 투명화할 필요가 있다”며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시범적으로 일자리 매칭 사업을 하고 있듯 공공기관과 지차체 등의 관리를 받는 인력시장을 조성해 일용직 근로자들이 실질적인 법적 보호와 정당한 임금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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