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
왕청진에 거주하는 김순자는 ( 올해 72세) 지난해 43년전에 갈라진 아들 전진석을 만나게 되였다.
김순자는 1963년에 결혼하여 1965년에 아들 진석이를 봤는데 남편과 감정이 맞지 않아 1967년 2월 28일에 법적리혼을 하고 아들애는 남편이 키우기로 했다. 김순자는 애가 보고파 애와 갈라진 두달후인 4월 22일에 아이옷을 지어 가지고 아이가 있는 집을 찾아갔다.
아이의 할머니가 피하여 아이만 있게 되자 김씨는 아이를 업고 15리 상거한 집으로 갔다. 헌데 그날 아들애의 아버지는 김순자의 거처를 찾아와 아이를 빼앗아가듯 하고 김순자는 맨발바람으로 뒤를 쫓아가다가 정신을 잃고 길에 쓰러졌다.
진석의 아버지는 김순자가 또 찾아올가봐 몰래 먼 곳으로 이사했고 김순자는 다시 아들을 볼수 없게 되였다.
김순자는 학교식당에서 식모로 있었고 후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기르자 진석이와의 정이 점점 멀아져갔다.
그러다가 2006년 우연하게 진석의 삼촌을 만나 아들이 결혼하고 자식까지 보고 룡정시 안민가에서 살다가 아들내외가 한국로무를 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삼촌한테서 어머니 행방을 안 진석이는 한국에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뜻밖에 아들의 전화를 받은 김씨는 흥분되여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진석이는 지금은 바빠서 어머니 뵈러 갈수 없으니 컴퓨터로 만나자고 했다.
37년만에 컴퓨터화면으로 만난 아들은 《어머니, 과거 불쾌했던 일은 다 잊으시기 바랍니다. 전 어머님께서 저를 이 세상을 보게 한건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있습니다.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고 어머님께 효도하겠습니다》고 했다.
김씨는 그저 어머니 노릇을 못했다고 사과만 했다.
그 다음해인 2007년 4월17일 며느리 송춘화는 어머니 뵈러 한국에서 왕청으로 왔다. 송춘화를 만난 김씨는 너무도 반갑고 고마워 며느리에게 이런 말을 한다. 《며느리, 내 머리를 뽑아 신을 삼아 며느리에게 줘도 며느리효도의 마음을 갚지 못할거네!》. 며느리는 그저 자식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고 했다.
아들 진석이는 자기가 한 말을 잊지 않았다. 해마다 어머니의 생일이 되면 한국에서 보건품이랑 사보내왔다.
며느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에 김씨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낳아기른 어머니도 무관심하는 자식들이 있건만 낳아만 놓고 기르지도 않은 어머니께 며느리까지 보내여 만나게 하니 그저 너희들 효도에 목이 멜뿐이다. 나는 가슴아픈 옛일을 다시 그려보면서 아들에게 미안하고 죄를 지은 내 처사를 한탄하기만 한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희들이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나의 아들아 !》
아들 진석이는 2012년 1월 13일에 한국으로부터 어머니 뵈러 왕청으로 왔다. 김씨는 43년만에 아들과 상봉했다.
그후 진석의 내외는 어머니가 기뻐하시라고 장춘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할머니 뵈러 보내기도 하고 올해부터는 달마다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부친다.
/ 왕청 김을석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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