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한국에 가 일하고싶어도 어린 아들과 년로하신 부모님때문에 갈수가 없어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어도 참아야죠.”
수더분하게 생긴 김철호(43살)씨는 아들(김준걸)과 로모와 함께 지낼수 있어 어려운 살림에도 힘든줄은 모르겠다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룡정시대소과수농장에서 연길에 들어와 고정직업이 없이 닥치는대로 일을 하다보니 여태껏 세집생활을 이어오고있는 그는 현재 연길시 북산가두의 한 단층집에 살고있다.
10년전에 안해와 리혼한후 네살배기 아들을 거느리고 힘들게 살아온 그는 남들처럼 놀러도, 술 마시러도 다니지 않고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눈치밥을 먹을가봐 근 10년 세월이 흐르면서도 재혼이란 두 글자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던 그는 아들이 유일한 희망이자 즐거움이고 행복이였다. 효성이 지극한 그는 아들을 돌보는 한편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2년전에 돌아가고 어머니마저 담낭수술에 이어 얼마전에는 직장암수술을 하는바람에 경제적,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는 부모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효심으로 어머니를 돌보고있다.
그의 영향하에 아들 준걸(연길시10중)이도 어려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할아버지가 돌아간후 할머니가 힘들어할가봐 그는 할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어주고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여 그의 속을 풀어주기도 했다.
“손주가 없으면 어떻게 살겠어유. 그가 어엿한 대학생이 될 때까지 살아야겠는데…”
여러번이나 수술을 하여 몸이 허약하고 허리가 구부정한 준걸이의 할머니는 어린 손주가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어려운 가정형편때문에 손자의 뒤바라지가 걱정스럽다.
“할머니,걱정마세요.공부를 열심히 하여 대학에 붙고 나쁜 사람들을 다스리는 어엿한 경찰이 되겠어요.”
사기를 당하여 울분을 토하는 아버지를 본적이 있어서인지 준걸이는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를 지켜나서는 경찰이 되겠다고 꿈꾼다. 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꼭 휼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아들을 바라보며 김철호씨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띠운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사랑하는 아들과 로모가 있어 행복합니다.”
김철호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서인지 숙제공부도 스스로 알아서 하고 학교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아들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다. 학교선생님이 품성이 바르고 착하다면서 아들을 치하할 때마다 그저 감사할따름이다.
“다만 여느 아이들처럼 먹고싶은 음식이나 입고싶은 옷을 마음대로 사주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울뿐이예요.”
고모가 한국에 가면서 그의 집에 호구를 붙이는바람에 최저생활보장금도 향수받지 못하고있는 그는 그저 아껴 먹고 아껴 쓰며 모은 돈으로 로모를 보살피는 한편 아들의 공부뒤바라지를 착실히 해나가고있다.
아직은 아들이 어려 돈이 들어가는 일이 크게 없어 괜찮다면서 위안의 미소를 짓는 그는 앞으로 아들의 뒤바라지를 어떻게 이어나갈지가 걱정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로모를 위해 한국행도 포기한 김철호씨의 갸륵한 자식사랑과 부모사랑이 언젠가 아름다운 결실로 맺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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