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간부로서 조직의 배치에 따라 어느 한 땅을 밟았으면 흔적을 남겨야 한다.”
이는 화룡시 서성진당위 신응호서기의 사업신념이다. 이런 소신으로 신응호서기는 지난 5년 반 동안 피타는 노력으로 서성땅에 놀라운 변화를 이룩하였다.
“진달래민속촌”이 전국에 이름을 떨치기까지 중앙털레비죤방송국에서는 지난해에 5차나 “진달래민속촌”을 취재하고 3차의 보도를 하였다. 18차 당대회 기간에도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이 촌의 활기찬 민족민속문화사적을 보도하였었다… 2010년에 있은 “7.28”특대홍수에서 “진달래민속촌”의 전신인 명암촌은 막대한 재난을 입었는데 100채의 농가가 홍수에 밀렸거나 파손되였었다.상급에서는 땅이 얼기전에 새 벽돌집을 지어 리재민들을 배치할 엄령을 하달하였다.
신응호서기는 이를 관광산업의 변혁을 이룩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간주하였다.명암촌은 봉밀하와 쟈피꺼우하의 합수목에 위치하고 있고 뒤에 진달래동산을 등지고있는데 산천경개가 아주 수려한 고장이다.그리고 이 촌은 국내외에 이름이 높은 항일명장이였던 김책과 그의 형님이 근거지로 삼았던 유서깊은 고장이고 “소미츄린”으로 소문난 우리 민족의 저명한 원예가 최일선선생이 평생토록 생활하고 사업하였던 고장이기에 인문자원도 아주 풍부했다. 신응호는 수해복구사업을 기회로 차원이 높은 관광민속촌을 건설하기로 작심하였는데 당위성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진당위의 결책으로 통과되였다.신응호는 심한 압력에서도 건설의 차원을 높이기 위하여 전망계획부문의 대폭적인 지지하에 총체적전망계획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사업을 실속있게 추진시키였다.
새 마을을 원 마을에서 남쪽으로 200메터 상거하고 연화도로에서 100메터 상거한 지점으로 옮기고 이 마을의 개척자들이 조선 성진군의 달래동에서 집단이주를 하여온 력사를 존중하는 동시에 진달래동산을 끼고있는 지리적위치를 고려하여 마을을 “진달래민속촌”이라고 개명하였다. 땅이 얼기전에 85채의 통일적인 양식과 규격으로 건설된 “진달래민속촌”이 세상에 나타났다.
이 마을의 락성식에 참가한 원 주정부 리룡희주장은 “내가 연변으로 올 때 차원이 높은 조선족민속촌을 건설할 꿈이 있었는데 동무들이 이 꿈을 이루어주어 참으로 기쁘다”고 하면서 높은 평가와 지지를 주었다. 신응호서기는 지난해말까지 선후로 2700만원의 자금을 관광산업건설에 투입하였다.35채의 한옥식주택을 더 건설하였으며 모든 주민가정에 통일적인 규격으로 돌과 벽돌로 된 전통적인 담장을 둘러주었다. 지난해 이 촌에서는 시진달래민속절축제, 상해귀향지식청년련환모임, 중국관광회사리사장포럼 등 20여차의 대형활동이 전개되였다. 지난해 이 촌을 찾은 관광객은 연인수로 20여만명에 달하였다. 올해에도 이미 연인수로 5만여명을 넘기였다.
촌마다에서 “일촌일품”의 “특색촌”을 건설하기까지 이 진의 갑산촌은 기후가 한랭한 등 원인으로 알곡농사가 잘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촌에서 감자만은 잘되고있다. 신응호서기는 이 촌의 농민들을 이끌어 감자산업을 힘껏 발전시키였는데 지난해에 이르러 이 촌에는 250헥타르의 감자기지가 일떠섰다. 그리고 농민들의 감자판로해결과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80만원의 자금을 쟁취하여 이 촌에 감분가공공장도 세워주었다.지난해에도 이 촌의 인당 감자순수입은 1만원을 넘기였다. 올해 이 촌에서는 감자농사에서 인당 1만 2000원의 순수입을 전망하고있다.
와룡촌은 리용할수 있는 림간초지자원이 비교적 풍부하다. 이런 우세에 근거하여 신응호서기는 이 촌에서 소사양업을 크게 발전시키도록 힘껏 부축해주었다. 림업부문들과의 관계를 소통시켜 농민들에게 보다 많은 방목지를 마련하여주었다.지금 이 촌에는 리용할수 있는 림간초지자원이 3000여헥타르에 달한다.방목장건설에 선후로 200여만원의 자금이 투입되였는데 500마리 이상씩 방목할수 있는 대형방목장만도 7개에 달한다. 품종개량에 큰 힘을 기울이였는데 해마다 종자수소와 종자암소 구입에 투입한 자금은 30여만원에 달한다. 하기에 최근년간 이 촌의 소사양업은 거족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올해에 이르러서는 년간발전마리수가 3000마리를 넘길것으로 전망되고있다.
이외에도 화안촌은 “식용균재배전문촌”으로, 룡포촌은 “유기벼재배전문촌”으로, 이도촌은 “남새재배전문촌”으로, 진달래민속촌은 “민속관광전문촌”으로 특색을 갖추었는데 진산하의 7개 촌이 촌마다에서 모두 “일촌일품”의 특색을 형성하였다. 이런 특색촌 건설에 힘입어 이 진에서는 지난해에 “만원촌건설”활동을 벌리였는데 6개 촌의 인당 순수입이 모두 만원을 넘기였고 성남촌, 화안촌 등 촌은 인당 순수입이 2만원에 달하였다.
신응호서기는 창의의 리념으로 간부 관리와 사용을 틀어쥐였다.모든 일터에서의 간부사용은 일률로 경쟁기제를 도입하였다. 지난해에도 진당위와 진정부의 13개 중층지도일터의 책임자들을 통일적으로 면직시킨후 경쟁기제를 통하여 다시 임명하였는데 년령이 어리지만 사업열의가 높고 실제능력이 있는 4명의 젊은 간부가 중층지도일터에 새롭게 등용되였다. 농촌의 실제사업은 촌간부들을 통하여 시달되기에 새농촌건설중에서 촌간부들의 역할은 당과 정부의 사업시달의 승패에서 관건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헌데 신응호가 갓 부임되였을 때 진산하 7개 행정촌의 촌간부들은 상당한 사람들이 합격되지 못하고있었다.
이런 실정에서 신응호는 촌간부의 등용과 사용에서 대담한 개혁을 진행하였다. 신응호서기는 진간부들을 촌에 파견시켜 임직시킴으로써 촌의 사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실제사업중에서 단련을 받도록 하였다. 신응호는 2010년에 당시 진무장부 부장이고 현임 진정부 부진장인 양병림을 갑산촌의 당지부 서기로 파견하였다. 양병림은 진지도부의 지지하에 촌에 3000메터의 포장도로를 건설하고 자연툰마다에 새롭게 수도를 놓거나 개조하였으며 전화, 유선텔레비죤이 집집마다에 들어가도록 하였다. 다른 농사는 잘 안되지만 감자가 잘되는 특점에 근거하여 감자생산을 주도산업으로 확정하고 기지건설을 추진하였는데 기지면적이 250헥타르로 늘어났다. 지난해 이 촌의 인당 순수입은 1만 5000원에 달하였다. 이런 토대에서 조화사회구축사업에도 큰 힘을 기울이였는데 지금은 신소사건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신응호, 이 충직한 공산당원은 오늘도 자기가 밟은 땅에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빛과 열을 깡그리 쏟아가고있다.
연변일보 박수산 조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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