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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유미리 "문학 통해 한일 가교 역할 꿈 꿔"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8월20일 08시55분    조회: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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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작가 유미리
“나는 한국과 일본의 경계인… 문학 통해 가교役 꿈 꿔”
 
‘가족에서 민족과 사회로, 부정과 죽음에서 긍정과 삶으로.’ 그의 문학은 크게 바뀌어 있었고, 그 태 자리가 된 삶도 변해 있었다. 우리가 알던, 아니 내가 이해했던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수많은 경계에서 작고 소외받는 이들을 향한 연대의 눈길이 더욱 강해진 ‘풍성한 유미리’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柳美里·46). 도쿄 근교의 가마쿠라(鎌倉)역이 한눈에 보이는 찻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집은 자전거로 10분 거리라고 했다. 감청색 원피스는 나이와 함께 불어났을 몸매를 가리기에 적당했다. 귀쪽에 은거한 흰 머리들은 그가 이미 중년임을 시위하는 듯했다.


 
29세에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그는 올 초 장편 ‘JR우에노역공원입구’를 펴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2쇄를 판매 중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18개)은 물론 미국(1개) 중국(7개) 프랑스(5개) 등 9개국에서 번역됐다.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출판금지 파문 등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레몬이 컵에 걸린 홍차를 옆에 두고, 우리는 문학과 삶의 언저리를 배회했다. 때론 에드거 앨런 포와 도스토옙스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가 동행했고 때론 가족과 이지메 등이 난입하기도 했다. 더위가 작렬하던 지난 13일, 우리는 3시간30분 동안 세상의 모든 풍문을 조소했다.

―장편 ‘JR우에노역공원입구’는 어떤 얘기인가요. 후쿠시마 출신 노숙인을 그린 듯한데.

“소설을 구상한 것은 12년 전이었습니다. 도쿄의 우에노(上野)역 공원입구에 홈리스가 많아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죠. 대체로 중학교 졸업 후 돈 벌기 위해 도쿄에 와서 젊은 때는 육체노동을 했다가 나이를 먹어 육체노동을 할 수 없어 고향에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는 도호쿠(東北)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소설은 쓰지 못했죠. 그러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2011년 3월 일어났고 원전 반경 20㎞ 이내는 계획구역으로 폐쇄된다고 해 주민들이 소개되기 전인 4월 둘러봤어요. 2012년 3월부터는 후쿠시마 지역 재해방송국에서 주 1회 방송하며 많은 사람과 얘기를 나누게 됐죠. 그때 원전 사고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우에노역 홈리스와 겹쳐졌어요. 그래서 돈 벌러 도쿄에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홈리스와 원전 사고로 집을 잃은 사람을 연결한 이야기가 된 것이죠.”

―이번 작품에 대한 일본 내 평가나 반응은 어떤가요.

“(이념적으로) 좌측의 ‘아사히신문’에서 우측의 ‘산케이신문’까지 일본의 모든 종합지가 인터뷰와 책서평을 게재했는데, 그것은 매우 진귀한 경우이죠. 전혀 다른 곳에서 (좋은)평가를 받은 것은 저 정도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 아사히신문은 “어두우면서 무거운 여운이 언제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소설”이라고 지적했고, 주간분슌(週刊文春)은 “소리없는 소리의 한을 들으려는 작가의 청각이 예민하다”고 평가했다.

―2012년 3월부터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南相馬)시 재해방송국에서 매주 금요일 ‘두 사람과 한 사람’이라는 30분짜리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50명 이상의 얘기를 들어왔어요. 크게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이야기와 원전사고로 집을 잃은 경우 두 가지가 많았습니다. 후쿠시마는 2011년 3월 지진과 쓰나마, 원전 사고까지 겹친 다중재해를 받았거든요. 쓰나미로 부모가 휩쓸리고 3명의 어린이만 살아남은 얘기가 인상에 남습니다. 가족은 해안가 소마시에 살았는데, 아내가 인공관절 다리여서 대지진 당시 혼자서 대피할 수 없었어요. 남편은 우선 세 어린이를 높은 곳의 피난소에 대피시키고 아내를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간 것이죠. 동생이 형의 아이들 3명을 자신의 자식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지금도 욕탕물과 바다를 무서워합니다. 죽음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고 죽은 자와 함께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그 아이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의 불행과 학창시절 이지메 속에서 삶의 끈을 잡아준 것이 문학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소풍에서 아무도 나를 그룹에 넣어주지 않아 선생님과 밥을 먹었을 정도로 철저히 배제됐죠. 수업 중에는 버틸 수 있었지만 쉬는 시간이나 휴식 시간엔 참을 수 없었어요. 그때 책을 읽으며 ‘괜찮다’고 생각했고, 독서는 나를 지키기 위한 벽이 됐죠. 책과의 만남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피난처, 긴급 피난처’였던 셈이죠. 초등학생 때에는 에드거 앨런 포, 중학교 때에는 도스토옙스키,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일본의 대표적 근대작가)가 좋았죠.”

―사춘기 시절 소위 ‘다자이병’을 앓았을 것 같은데.

“15세 때 다자이가 자살한 곳과 가까운 도쿄 미타카(三鷹)시의 젠린사(禪林寺)에서 그를 추모하는 모임(시노부카이)이 있었어요. 우연히 모임에 참여하게 됐고, 술을 먹게 됐죠. 한 평론가가 “지금의 젊은이들은 다자이 문학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어요. 그때 화가 나 마이크를 잡고 “나는 안다”고 말했지요. 그날 술을 너무 많이 먹고, 기절해 절에서 잤습니다. 다자이의 묘 앞에서 울었죠.”

―26세에 등단한 뒤 초기에는 가족 해체나 붕괴 등을 많이 다뤘는데, 유미리 문학에서 가족은 무엇입니까.

“29세 때 ‘가족 시네마’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을 때 기자회견 후 선정위원회에 인사하러 갔어요. 그때 나를 뽑은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고 반대했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 지사 등 2명만 남아 있더군요. 인사를 했더니 이시하라는 “당신의 가족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다”며 “지겹다”고 말하더군요. 얼마 후 신문에 “가족 이야기를 쓰지 않는 소설이 있느냐”고 반론했죠. 인간을 그리고 싶기에 앞으로도 가족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2004년 ‘8월의 저편’은 가족문제만이 아니라 민족과 사회문제로 시야가 확장되고 형식도 크게 바뀌는데, 무슨 변화가 있었습니까.

“본래 첫 작품인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쓰기 전에 쓰려고 했지만, 당시엔 20대 초반이어서 힘들었어요. 소설의 주인공은 외조부인 양인득씨인데, 그의 인생을 쓰려면 일본과 한반도의 역사문제를 피할 수가 없었죠. 개인이 사는 시대, 국가와 국가 관계를 피하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죠. 특히 일본군위안부 묘사를 놓고 ‘일방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거나 ‘일본 병사를 나쁘게 말하지 말라’는 등의 비판 투서가 쏟아졌어요.”

―30대에 첫 소설의 출판금지 판결 등 고통이 이어졌는데.

“30대에는 우울증으로 약을 계속 복용하거나 잠에 빠진 듯한 상태가 계속됐어요. ‘8월의 저편’을 낸 이후 첫 소설에 대한 판매금지 판결이 나오고 아이마저 이지메를 받으며 힘든 상황이었죠. 소설은 6, 7권 정도를 냈지만, 제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작품을 쓸 수 없었어요. 작가를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우울증 약복용을 그만둔 것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였어요.”

―‘8월의 저편’부터 약자에 대한 연대의 시선이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초기 작품은 가족의 문제나 개인 고통에 집착해 썼던 것 같아요. 현실에서 구원받지 못한 것을 이야기로 쓰는 것을 통해 자신이 구원된 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대의 한 독자가 저를 찾아와 “유미리씨, 죽지 마세요” 말할 정도로 초기에는 삶과 인생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고통받은 사람, 자이니치(在日) 한국인, 집이 없는 사람 등을 향해 써왔는데, 이제 그 부분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살 곳 없는 사람이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라고 생각될 정도의 책을 쓰고 싶어요. 후쿠시마 사람 250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인생을 긍정하고 싶은 게 바뀐 것이죠.”

―자신의 정체성을 언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아쿠타가와상을 받았을 때 ‘문학에서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다’고 했는데.

“‘나’라는 정체성은 역시 배제됐을 때, 뭔가 빼앗겼을 때 갖는 게 아닌가 생각돼요. 어릴 때 사는 곳이 없었을 때, 초등학교 때 이지메를 받았을 때, ‘조센징’이라고 들었을 때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다는 입장을) 피하더라도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일본인 작가보다 아름다운 일본어를 쓰겠다는 자부가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자락으로 향할 무렵,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 이야기를 해줬다. 유미리 문학이 마이너리티와 추방된 자, 경계인 등을 위무하는 새로운 문학이 되길 기원하며. 그는 다음의 글을 써줬다. “삶은 멀리에서 바라보고, 죽음은 가까이에서 본다.” 그는 무더위를 뚫고 자전거를 타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도쿄=김용출 특파원 kimgija@segye.com

■작가 유미리는…

▲1968년 이바라키(茨城)현 쓰치우라(土浦)시 출생
▲1984년 요코하마공립학원고교 중퇴
▲1984년 극단 ‘도쿄 키드 브러더스’ 가입, 1987년 극단 ‘5월 청춘당’ 창립
▲1988년 희곡 ‘물 속 친구에게’로 극작가 데뷔
▲1994년 소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신초(新潮)’에 발표하며 등단
▲‘풀 하우스’(1996) ‘가족시네마’(1997) ‘골드 러시’(1999) ‘루주’(2001) ‘8월의 저편’(2004) ‘비와 꿈 뒤에’(2005) ‘야마노테선내 돌아보기’(2007) ‘온 에어’(2009) 등 발표
▲제37회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 희곡상(‘물고기 축제’) 제24회 이즈미 교카(泉鏡花) 문화상(‘풀 하우스’) 제3회 기야마 쇼헤이(木山捷平)문학상(‘골드 러시’) 등 수상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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