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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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조선족의 異時代的文化群 (김문학) 댓글:  조회:4570  추천:39  2010-05-13
 《신조선족》 월경론(越境论)4. 조선족의 異時代的文化群 김문학1988년 ‘조선족문화의 반성’이란 논고에서도 필자는 우리 조선족을 조감하여 ‘연변을 하나의 중심으로 탈중심적인 선형(扇形)으로 조선족 文化圈이 형성’되며 그 문화권을 구별화시켜 분석조명하고 ‘입체적인 조선족의 全体像’을 포착해야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조선족사회를 ‘동질성’이란 관념의 틀에서 넘어서서 타자화시켜 바라보고 여러 ‘문화권’으로 分化시켜 상대화하여 바라보는 것이 필자가 창도하는 ‘방법으로서의 조선족’방법이다.‘무지개이론’이란 개념이 있다. 무지개는 보통 칠색령롱한 색채로 매우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선을 끌고있다. 하지만 그것은 멀리서 바라볼때만 있는 모습이다.좀더 가까이에서 접근하면 사실 그것들은 한방울 한방울의 미립적인 물방울이다. 이것은 물방울을 보기 위해서는 근접적거리에서 치밀한 분별작업이 요망된다. 예와 같은 원리로 조선족이라는 이 무지개의 근원적인 본질을 인식할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아릿다운 그 ‘무지개’를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면 화려한 모습이 아닌 물방울을 체감할수 있듯 조선족을 연변, 흑룡강, 길림, 장춘, 심양 그리고 대련, 청도, 북경, 상해, 심천 지어는 절강, 해남도 … 그리고 해외 여러 나라 … 이렇게 文化圈, 生活圈을 분화시켜 바라보고 점검하는 方法이 필요하다.1990년 이전 특히 2000년대에 형성, 고착화 되고있는 ‘多元的 조선족 사회권’을 냉철히 比较分析하는 시각과 方法이 절박히 요망된다. 최삼룡선생의 ‘조선족 文化地图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논고는 바로 이러한 절박한 상황을 아주 적시적으로 간파한 무게있는 글이다. 그 역시 경계를 넘는 조선족의 새로운 사회양상을 혜안으로 포착하고 그에 따른 분석, 대응의 일환으로 이점을 지적했다. 안일하게 반박할수있지만 그러한 방법은 지금의 다원적 조선족양상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2010년 현재에서 区分化하여 바라본 조선족사회는 그 특점을 필자는 ‘共時적 이질문화권’이라고 지칭한다. 즉 연변과 심양, 대련, 청도, 장춘, 하얼빈, 북경, 상해, 서울, 뉴욕, 동경, 파리 … 이런 文化圈속에 삶을 영위하고있는 조선족의 중층 다원적인 空间은 이미 원래 전통적의미의 조선족으로 일괄하기에는 무리이다.時間적으로 日歷적으로 共時적 삶이지만 그 空间적, 즉 生活圈, 文化圈의 조선족의 ‘文化的落差’는 共時적이 아닌 양상을 노정하고있다. 지극히 단적인 예를 들어 연길, 훈춘의 문화와 북경, 뉴욕, 동경의 문화는 큰 낙차가 실존하며 근대 (지어는 전 근대적 요소도 있는)적 시간과 후근대적 시간 및 공간의 낙차가 엄연히 존재하며 또한 그속에서 사는 조선족일지라도 그 사고양식과 가치관을 보면 이질적인 면이 다소 존재한다.물론 ‘민족’적인 겨레로서의 음식, 감정전달 양식과 같은 요소는 통하지만 고차원의 文化的요소에서 큰 격리감을 생성시킨다. ‘조선족 개조론’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공방전을 전개했던 배경에는 바로 연변의 일부 전근대, 근대적 사고양식과 기타지역 조선족 文化圈의 근대적, 후근대적 사고양식의 상식적인 대결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이리하여 필자는 오늘의 조선족사회를 ‘조선족의 異時代的生活文化群’으로 그 낙차를 표징하는 표상으로 지칭하고저 한다.따라서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선족이 아주 이질적인 ‘이시대생활문화군’을 이루면서 이질성을 보이므로 그에 상응한 구별化, 상대化시키는 方法으로 인식을 다시하고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2    3. 방법으로서의 조선족 (김문학) 댓글:  조회:4142  추천:46  2010-05-11
 《신조선족》 월경론(越境论)3. 방법으로서의 조선족 김문학우리가 우리 자신 조선족에 대하여 향해지는 또는 구사하는 인식론 그 자체(여러 형태로 접근하여 수많은 연구 업적을 쌓았으며, 특히 우리 조선족의 연구의 제1인자 황유복선생을 비롯한 학자와 연변의 지식인, 작가, 언론인들 연구실적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가 모종의 결함을 지니고 있음을 우선 필자는 지적하고자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방법은 삶에 있어서 방식이기도 하며, 삶의 기술로써의 "방법" 그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만갈래 길이 로마로 通한다"는 말은 로마로 가는 길. 즉 그 방법이 여러 종류 있는데, 그 종류에 따라 로마에 도달하는 시간적 효과가 천양지별의 차이로 이질적인 것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길"을 곧 "방법"으로 치환할수 있다. 좀 더 근접적 거리에서 환언하면, 삶의 방식(생활방식=방법)은 그 사회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 하나의 동질적 방향으로 흘러 생활양식 (방식)=문화를 형성한다. 이 같은 "방식"은 목적보다 더 중요하며, 또한 목적이 없는 방식도 있을수 없다. 그런데 "방법으로서의 조선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먼저 이 말부터 해석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直言하면 이 같은 제목은 조선족을 바라보는 방법, 인식론을 제시하기 위한 장치로서 명명한 타이틀이다. 그 어떤 신비로운 고명한 견해도 아니라는 것을 미리 얘기하고 싶다. 이것은 일본의 동아시아를 바라본 학자들이 제시했던 방법을 필자가 원용한 것이다. 1961년 일본의 저명한 노신연구자이며 중국학 연구의 중견 학자인 타케우치 요시미(竹內 好)가 그의 논고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에서 제시한 일본인의 아시아인식, 중국인식에 대한 비판의 장치로서 사용된 것이다. 그 "방법"이란 것은 일차적으로 무매개(無媒介)나 무비판적인 몰입도 아닌 또 한편 "실체화"와도 이질되는 "아시아, 중국"에 대한 인식, 대응방법인 것이다. 다케우치에게 있어서 아시아나 중국을 유럽적 "세계"와 객관적인 상대화시키는 "방법"이며, 근대 유럽, 일본을 상대화시키는 "방법"론적 관점을 정립하는 의미였다. ("일본과 아시아" 1966) 이 시점을 이어서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란 현대 중국사상연구가는 "방법으로서의 중국" (1989년) 이란 책을 출간한다. 미조구치는 다케우치의 관점을 비판적 계승을 통해, 일본의 중국 인식에서 노정된 유럽과 일본보다 열악하다는 기본인식의 틀을 깨고, 단순히 어떤 목적을 위해 중국을 인식하는 차원에서 오히려 어떻게 중국을 인식할 것인가는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중국학"을 창도한다.                         일본인은 중국인식에서 근대 명치유신후로부터 고심해왔으며, 국가주의적 중국인식이란 목적론도 전쟁시기 창궐했지만, 지식인의 일그러진 인식을 탈피하는데 노력해왔다. 필자의 체험이나 근대 일본의 중국인식사를 섭렵해보아도 알수 있는 것은 국가차원에 이용되는 "중국인식"은 전후에는 크게 인기를 상실했으며, 그 민족적인 진지함에서 비롯된 진지한 연구를 거듭해오고 있는 것은 필자도 체감할수 있었다. 따라서 한편 중국인의 일본인식은 전후 60여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적 이데올로기의 맥락에서 규정당하는 치명적 결함에서 큰 탈피를 못하고 있는 점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환언하자면, 근대사를 포괄하여 중국은 일본을 "왜국"으로 폄하, "소일본"의식으로 가볍게 비아냥거리는 근대적 의식에서 여전히 이탈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그 자체의 결함인 동시에 자신들에게 "대방을 아는" 인식에 있어서는 지대히 불리적인소로 되돌아오게 된다. 최근 북경의 지식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필자는 그런 결함을 많은 지식인들도, 정부에서도 이미 깨달음과 동시에 "일본 재인식"에 박차를 가하고 일본과 새로운 우호관계를 맺고 지적 공유(知的共有)를 토대로 한 "공동체"의 길 모색에 가열중이라고 들었다. 이는 한중일을 "지적 공유"로 이어놓을수 있는 21세기 새로운 "동양화합"의 대안을 모색하는 결실로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한화 휴제하고, "방법으로서의 조선족"으로 되돌아오자. 우리 조선족 지식인이 조선족을 바라보는데는 많은 효과적인 방법과 시각을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적 프리즘에는 큰 결함, 함정이 있다는 것을 필자는 "발견" 했다. 즉 환언하면, 우리는 언제나 "조선족"을 하나의 지대한 동질성을 구현한 "동일체"의 덩어리로만 간주하고 "조선족" 그 카테고리에 대한 동일성속의 "이질성" 팩터에 대해 거의 무시했거나 방치해왔다는 점이다. 물론 감성적 인식으로는 연변이나 안쪽사람으로 구별되는 낱말에서 나타내는 뜻의 "이질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문적 고차원적인식으로 그것을 구체화시켜 분별화시키는 노력이 결핍했다. 그 이유는 "연변 VS 안쪽"의 대립구도를 안일하게 대립시킨다는 인식으로 일축당할 편향성을 두려워 했던 것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조선족 개조론"에서 구별화를 제기했다가 "조선족을 분열시킨다"는 일부 식자들의 지대한 반발을 사기도 했던 체험을 하기도 했던 장본인이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1    1. 신조선족의 탄생 (김문학) 댓글:  조회:5860  추천:76  2010-05-06
 《신조선족》 월경론(越境论) 1.신조선족의 탄생 김문학금년 (8월)은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중대한 역사적 의미의 해이다. 청말로부터 시작된 우리 조선동포의 중국 이민이 본격적인 피크를 이루는 것은 바로 100년전 일제 강제합방과 때를 같이 한다. 조선족의 100년 (물론 청말의 이주를 포함하여 150여년), 이를 계기로 우리 조선족의 삶과 그 정신사(精神史)를 비롯하여 100년에 걸쳐 변화, 변모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현대의 넓은 시야와 프리즘으로 바로보는 것은 매우 필요하며 심원한 의의를 갖고 있겠다. 특히 1980년 대륙의 개혁개방후, 1990년대 초반 한중수교이후의 조선족의 인구이동에 따른 생활권, 문화권의 변동과 사고양식과 세계인식적 가치관 등의 지대한 변화는 오늘도 세계로 이동을 추진중인 우리의 참모습을 점검하는 중요한 팩터이다. 그중에서도 2000년 새천년에 들어서 오늘까지의 10년은 조선족 정신사에 있어서 전례없는 생활권, 문화권의 다원(多元)적 형성은 "신조선족"을 탄생시켰다는 의미는 아주 지대하다. "신조선족"은 필자가 명명한 명칭이다. 이 신조어의 특징은 "조선족"이란 우리를 가리키는 지칭 앞에 "新"자가 붙은 것이다. 하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마디로 용이한 해석을 하면 새로운 생활문화권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새로운 의식과 가치관, 시각을 갖춘 조선족의 새로운 패턴(型)의 탄생을 말한다. "신조선족"은 국내에서는 대도시, 연해의 근대화문화, 산업의 도회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젊은 조선족 (물론 나이와는 상관없이 중, 장년, 노인도 포괄), 그리고 해외 세계 각 대도시들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또는 정착하여 삶을 이어가고 있는 조선족들, 이들은 국경을 넘은 越境者들로써, 신형의 디아스포라로써 "경계"를 살아가면서 문화적 창조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들 "신조선족"은 조선족이 낳은 전례없는 신형의 디아스포라의 모델이다. "디아스포라"의 개념이나 그 가테고리에 대하여서는 이 글속에서 뒤에 자상히 소개하기로 하고, 이들은 해외 포스트 근대국가들, 미국, 일본, 한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제국(諸國)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패턴의 조선족을 파생, 그 조선족의 위상을 세계에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신조선족"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뒤로 미루기로 하면서 2000년 이후 10년의 조선족의 양상을 정신문화적 궤적에서 고찰, 조감하면서 우리의 변화된 양상, 또한 변하지 않은 양상이 무엇인가부터 발견하고자 한다. (계속)일본 히로시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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