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선족》 월경론(越境论)12. 월경하는 ‘신조선족’의 新生活文化圈 김문학 평론가 최삼룡선생님이 2009년 5월 ‘니카’에 발표한 ‘重绘中国朝鲜族文化地图’는 신선한 감각의 논고다. 그의 논고에서 펼친 언설적 주장은 바로 필자가 ‘개조론’이래 구상해온 ‘신조선족’사회의 전개와 一致했던것으로 필자에게는 반가운 글이였다. 최선생님은 ‘조선족문단의 劉再復’으로 불릴만큼 1980년대부터 조선족문학의 이론적 헤게모니를 거머쥔 개명파 이론가이다. 그리고 최선생님의 이 논고가 ‘니카’에 게재된 것 역시 의의가 아주 크다. 필자는 ‘21세기의 라스트 수공업자’로 自嘲할 정도로 컴맹이며 아직도 입력을 못하고 홈페이지를 볼줄 모르는 위인인데 친구의 도움으로 작년 가을경 ‘니카’의 인터뷰를 받고서부터 ‘니카’를 가끔 들어가 보게 되였다. 공정히 평가하면 국내의 모든 신문매체나 잡지가 게재, 기획하고 취급할수 없는 신사상, 신감각, 신문학, 신사조 등을 ‘니카’가 민간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신조선족’의 언설적 표징으로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젊은 ‘신조선족’의 언설적 집결지이며 근거지의 하나이다. 당연히 아직 여러가지 원인으로 그에는 많은 미숙함과 결함들이 존재하지만 ‘신생’의 인터넷지로서 앞으로 보완되고 극복해나가길 바란다. ‘니카’가 내건 슬로건 ‘境界의 소멸을 꿈꾸는 境界者들의 이야기’는 바로 경계와 국경을 넘는 ‘신조선족’의 ‘세계적인 사상, 세계적인 인식, 세계적인 시각’의 특징을 대변하는 말이 아닌가. 다시 최선생님의 논고에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여러 종류의 ‘조선족문학사’의 집필진의 멤버로 활약한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오늘날 문학사에 대한 결점을 발견한다. ‘문학발전의 공간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홀시’한 결함을 지적하면서 드디여 ‘조선족문학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신선한 결론에 이른다. 1980년대이후 조선족사회의 인구이동에 따른 신문학권의 형성과 그에 상응된 문학지도를 그리는 것은 필자의 ‘신조선족’사회의 탄생과 그 ‘異时的文化群’과 一致한 취지의 견해이다. 최선생님은 이렇게 갈파한다. “중국조선족문학의 지리적공간의 확장은 결코 문학의 표면현상의 변화가 아니다. 도시는 농촌과 다른 자연경관과 인문환경이 있으며 소도시는 대도시와 현대화수준이 다르며 집거구는 잡거구와 언어환경이 같지 않다. 외국은 중국과 통치제도와 주류의식형태가 틀린다. 이런 구별은 필연적으로 문학작품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느때부터인지 연변에 거주하는 작가들에 의하여 나온 작품과 연변외의 도시나 연해지구의 작가들에 의하여 나온 작품들이 차이가 보인다. 중국의 56개 민족중 주체민족인 한족의 문학작품을 많이 수용하는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과 한족의 문학작품을 많이 수용하지 않는 작가들에 의하여 창작된 작품들의 차이가 보인다. 한국에 자주 나들며 한국문학을 많이 공부하는 작가에 의하여 씌여진 작품과 한국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작가에 의하여 씌여진 작품의 차이가 보인다.’’ “요즘에는 미국의 뉴욕에 가서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열띤 작품활동을 벌리는 류순호의 작품과 한국, 일본에 오래 체류한 김재국의 작품, 일본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작품활동을 벌리는 김문학의 작품,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의 생활체험이 두터운 장혜영의 작품이 제나름의 특색으로 독자들속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있다.’’ “그리고 연해지구의 문학은 집거구보다 상대적으로 중국의 주체민족인 한족문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면서 아울러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인, 문화인들과의 조화속에서 생성하고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띄운다.’’ 그리고 논고의 결말 부분에서 최선생님은 조선족의 2009년 현재의 ‘문학지도’를 그려야 하는 이유를 천명하시면서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만약 누가 1945년 8월에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를 그렸다면 중국의 동북지도를 놓고 신경(지금의 장춘)과 연수와 통화와 녕안과 교하와 룡정과 연길과 조양천과 도문과 안도만 찾아놓으면 되였을것이다. 신경에는 ‘만선일보’가 있었고 최남선, 박팔양, 황건이 있었고 연수에는 류치환, 통화에는 김영팔, 교하에는 박영준, 룡정에는 윤동주, 강경애, 안수길, 김창걸, 연길에는 리욱, 조양천에는 김조규, 도문에는 현경준, 함형수, 안도에는 천청송 등이 있었다.’’ “만약 누가 1976년 10월초에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를 그렸다면 세계지도도 필요없고 중국지도도 필요없고 연변지도만 보고 연길만 찾으면 되였을것이다. 김학철, 정길운, 리근전, 김창걸, 리욱, 최정연, 황봉룡, 채택룡, 김례삼, 김철, 임효원 등이 모두 연길에서 살았다.’’ “만약 누가 2009년 4월에 중국조선족지도를 그린다면 연변지도만 가지고 안되며 동북지도만 가지고 안되며 중국지도만 가지고 안된다. 세계지도가 있어야 한다.’’ “연길, 룡정, 훈춘, 길림, 장춘, 할빈, 목단강, 심양, 대련, 북경, 천진, 청도, 항주, 상해, 소주, 란주 등 국내도시들외에 서울, 평양, 도쿄, 뉴욕, 모스크바, 베를린 등 세계적인 도시들도 찾아야 할것이다. 그 도시들에 누구의 이름을 써넣겠는가? 이 문제의 해답은 필자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중국조선족문학지도를 다시 그리는 과정에 우리 문학을 관심하는 모든 석학이 힘을 합쳐 풀이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선생님의 혜안에 의해 걸러낸 결론에는 필자도 전적으로 찬동한다. 그러면서 ‘文學’에만 구애되지 말고 필자가 이 글에서 누누히 창도해온 ‘신조선족’의 生活文化圈으로 확대하여 그 文化圈지도를 그리는 것이 더욱 요망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의 精神史를 정리하는데 지대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현재 조선족은 정착 100년의 역사에서 미증유의 이동, 변모, 변용을 겪고 있으며 이런 변화된, 또는 되가고 있는 조선족을 정신사적 조감도에 의한 이론적 정리가 필요하며 안고있는 문제점을 파악하는것과 함께 변모된 조선족사회를 재발견하고 재규명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