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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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불원장래의 직업세계 댓글:  조회:1985  추천:3  2017-02-13
2016년 1월,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世界经济论坛)에서 제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면서 전 세계는 미래의 생활상에 대하여 다각적 분석을 거듭하고 있다.그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직업에 대한 여러가지 예측들인데 누가 이렇다 할 미래적 세분도표(细分图表)를 제기될 수는 없겠지만 전통 사회에 파괴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직업구조에 격변이 일게 된다는 추론만은 틀림이 없다.   세계 근현대사상의 3차례 산업혁명, 즉 18세기 후반기의 증기기관 탄생을 표지로 한 제1 차산업혁명,19세게 전반기의 전동기 탄생을 표지로 한 제2차산업혁명,20세기 후반기의 컴퓨터와 인터넷 발명을 표지로 하는 제3차산업혁명을 이름하는 것이다.이 매 한차례의 혁명은 인류 문명의 거대한 발전을 추동하였으며 세계력사를 새로운 단계에로 끌어 올리었다.제4차 산업혁명은 현재의 정보통신기술의 기초 우에 발명된 지능화 기기들이 결합되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동시에 자동화시켜 산업 현장과 생활 영역의 틀 전부를 전복적으로 세대교체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 일자리는 거의 대부분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그 존재 형태가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독일의 유명 스포츠용품 회사인 아디다스가 600여명 노동자 규모이던 중국 신발 공장을 철수하고 독일에 10명의 노동자로 연간 50만 켤레 생산량을 완수할 수 있는  로봇 공장인 스피디팩토리를 가동하였다. 사람 대신 로봇이 재단하고 3D프린트(立体打印技术)로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고 납품한다는 것이다.고객이 인터넷으로 맞춤형 운동화를 주문해도 5시간 이내로 납품한다는 참신한 경영 모델이다.그 동안 저인건비를 찾아 한국→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나라들 사이로 철새처럼 오가던 기업이 로봇으로 자기 안방에서 생산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이제 과학연구 분야를 포함하여 전통적인 모든 일자리의 인력이 대량적으로 줄고 직업 구조는 아연하게 바뀐다는 명증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려명기를 맞으며 창조와 변혁의 물결이 거침없이 몰려오고 있다. 인공지능、로봇、인공지능、3D 프린팅、빅데이터(大数据)、사물인터넷(物联网)、클라우딩(云计算) 등 제3차 산업혁명에서 탄생한 디지털 정보통신 기기들이 서로 융합되면서 산업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구조적 혁신이 전 세계를 강타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인간의 일상 생활이 바뀌우는 것은 물론 인류의 생산,류통,분배,소비의 생태계가 완연히 뒤집어지고 사회 관리시스템도 여지없이 교체되는 혁명기가 도래하게 된다.지금은 기계력과 정보력 수단으로 밥을 먹는다면 오래지 않아 정신력을 가진 기계들의 자동 운전을 뒤따르며 살아야 한다.   이 변혁의 본질은 생산수단의 고도의 압축성 융합과 결합으로 하여 자본이나 지식의 양적인 작용보다 개방、협력、교류가 훨씬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공동한 인식이다.이 무한 련결 시대에서 우리 매개인은 세계적인 네트웍 속에서 자기의 가치를 인식하고 진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기본기능의 하나는 국제적 교류、타문화와 융화、원활한 의사소통이다.일자리를 말하면 지능기기가 대체 불가능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인간 대 인간 즉 인간 중심적 사업에 투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산업세계의 변화에 따라 부동한 문화 인간과의 사교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의 폭과 깊이를 확보하여야 한다.그렇다면 교류와 연결의 매개물인 다종 언어능력 보유자와 다문화 소유자가 우선 선택이 된다는 판단이 도출된다.   결국은 미래 직업 세계에서 고급인력을 요하는 직업은 지능화 기술에 의하여 고도로 압축되고 정밀화되어 극소수의 최정예 엘리트들의 몫이 될 것이고 일반 사회의 최우선 적격자의 인프라는 언어이고 문화지식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판단이다.그러나 변화는 이러할진대 선택은 여전히 인간 자신의 몫으로서 가 된다.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시대의 주체가 되기 위해 남의 뒤를 무작정 따르며 거친 파도에 휘말리어 자기 문화를 홀대하던 우를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 좋다.어려운 시절 문화만으로 생계 걱정이 해소되던 력사가 있지 않았던가.미래의 중국 땅이란 무대에서 우리 문화를 자본으로 해야 할 고부가치 사업이 산적하여 대기하고 있다.   제4차산업혁명을 향해 중국도 한국도 세계도 다급히 발전하는 변화를 거듭한다.조선족은 천시,지리,인화(天时地利人和)의 도원경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숱하다.조한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한 조선족문화(조한융합문화),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발효하는 배양기이고 민족의 복지를 량산하는 플랫홈(平台)임을 새겨지도록 기억하자. (끝) 흑룡강신문 2017-2-13
42    정유년의 소망 댓글:  조회:2039  추천:0  2017-02-09
정유년이 박두하니 사람들이 자기의 리념과 포부에 따라 가지가지 념원을 피력하는 연례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음력설을 전통 명절로 하는 나라의 수뇌들은 대체로 국가적 념원으로서 국태민안(国泰民安)이나 부국륭성(富国隆盛)이나 평화발전을 기조로 하는 축사를 내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기맥이 상통하는 여러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가치 철학에 따라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추앙하는 숭배물이나 가상세계를 향해 절절한 희원을 설파하거나 독실한 기도를 올릴 것이다.사람마다 처한 립지나 상황이 천태만상이고 사상도 제각각이니 그 희망도 천차만별일 것은 자명한 리치이다.그러나 누구를 불문하고 행복에 대한 갈망이라는 이 범위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새 해 나더러 나라를 위해 기원하라면 아래 몇 가지다. 우선, 기준 함량에 미달된 공직자들이 인민이 준 권력을 팔아 리속을 채우는 부정부패를 더 세차게 척결하여 공직사회가 문자 그대로 인민이 주인이 된 정토락원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것이다.그리고, 가난을 떨쳐내는 발빈(拔贫) 전쟁이 대첩(大捷)을 올리고 돈이 없어 학교문을 등지는 아이들의 애처로운 눈물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다음,지난해 억울한 죄명을 덮어쓰고 법정의 기계에 생명을 잃은 몇몇 젊은이들이 오명이 소설(昭雪)되고 무죄로 평반(平反)이 되었다는 기사들이 보도되어 사람들을 희비가 교차된 사색에 몰아 넣었었다.재심하고 결백을 선고했다는 자체는 나라의 법제 건설이 진보의 길에서 질주한다는 명증이겠다.그러나 자식을 잃고 거친 비명을 지르며 피맺힌 절규를 터트리는 부모들의 슬픔을 보며 번영하는 법치사회 건설이 속도를 더 내고 이런 참사들이 다시 재연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내 나라가 개혁개방의 길에 쌓인 수많은 골칫거리들을 씻은 듯이 풀어버리고 대명천지의 태평성세를 향해 매진하는 닭해이기를 바라는 진심이다.   해마다 빌어도 그 발원이 허공 삿대질이 되는 게 있다.지극히 간단한 지배의 야망와 이데올로기 갈등이 원한의 씨앗이 되어 원쑤를 갚는다는 무차별 테로 참극이 지구촌의 구석구석에서 끊임없다는 것이다.심지어 8세되는 친딸까지 자폭에 내몰며 영웅성을 과시하는 전사도 있다하니 벌어진 입이 닫기지 않는다.피눈을 부릅뜬 열혈 전투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존 기능이 최하급수인 가련한 로약자、부녀자들과 엄마 품속의 여린 생명들이 터전을 잃고 기한에 떨다가 무참히 살해되고 아사(饿死)한다.야만시대 원시부족들의 적수 소멸 야성이 깡그리 전승되고 적나라하게 발휘되어 나와 내 무리를 위하여 네죽고 내죽는다는 판가리 싸움이 지속되고 복수극이 곰비임비(此起彼伏) 일어나는 것이다.인류 복지에 이용되어야 할 최신 기술과 문명의 리기(利器)들이 동류의 살륙에 꺼리낌없이 투입된다.잔학한 야생동물 세계에 이 같은 동종 학살이 있었던가! 대립을 대화로 바꾸고 대결을 협력으로 교체하는 지혜가 인간에게 없을 것인가!그 세월이 요원하기만 하다.   무심한 세월의 꽁무니를 숨 가쁘게 따르며 락오자 무리에 끼이지 않으려고 바등거리다 거울을 보니 어느새 서릿빛 감도는 상발(霜发)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그 사이 나름대로의 목표를 견주며 올리 뛰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고초와 인고(忍苦)의 고개를 넘으면서 희노애락의 맛들을 고루 보며 살아왔다.이젠 부질없는 번뇌나 망상을 비워버리고 엉뚱한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라는 맥락에서 나의 참모습을 다시 랭엄하게 지켜볼 심사이다.해해년년 진한 감동이나 간절한 념원을 곱씹어도 바라는 것은 묘하게도 나를 비켜가고 오는 것이란 우연히 왕림하더라는 인생 경험이 있다.그러니 는 어리석은 과욕은 가슴의 한 구석에 처박고, 목표의 성불성(成不成)은 시간과 창조주에 떠맡기고, 매일을 열심히 살며 인생의 뒷모습 치장에나 전념하려 한다.   그래도 자기 소원이 따로 있다는 진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어느 쪽에서 봐도 모난데 없고 요란한 경력도 쌓지 못한 밋밋한 인물이라 으리으리한 희망을 토한다면  분수를 몰라도 웃기게 모른다고 믓사람들이 입을 싸쥘 것 당연하다.그러거나 말거나 다만 일개의 민초 둥지인 내 일가에 그저 평안무사란 사자성어가 명실공히 도사리고 정주(定住)했으면 좋겠다. 연변일보 2017-2-9  
41    불원장래의 직업세계 댓글:  조회:2092  추천:2  2016-12-06
2016년 1월,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제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면서 전 세계는 미래의 생활상에 대하여 다각적 분석을 거듭하고 있다.그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직업에 대한 여러가지 예측들인데 누가 이렇다 할 미래적 세분도표를 제기될 수는 없겠지만 전통 사회에 파괴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직업구조에 격변이 일게 된다는 추론만은 틀림이 없다.   세계 근현대사상의 3차례 산업혁명, 즉 18세기 후반기의 증기기관 탄생을 표지로 한 제1 차산업혁명,19세게 전반기의 전동기 탄생을 표지로 한 제2차산업혁명,20세기 후반기의 컴퓨터와 인터넷 발명을 표지로 하는 제3차산업혁명을 이름하는 것이다.이 매 한차례의 혁명은 인류 문명의 거대한 발전을 추동하였으며 세계력사를 새로운 단계에로 끌어 올리었다.제4차 산업혁명은 현재의 정보통신기술의 기초 우에 발명된 지능화 기기들이 결합되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동시에 자동화시켜 산업 현장과 생활 영역의 틀 전부를 전복적으로 세대교체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 일자리는 거의 대부분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그 존재 형태가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독일의 유명 스포츠용품 회사인 아디다스가 600여명 노동자 규모이던 중국 신발 공장을 철수하고 독일에 10명의 노동자로 연간 50만 켤레 생산량을 완수할 수 있는  로봇 공장인 스피디팩토리를 가동하였다. 사람 대신 로봇이 재단하고 3D프린트(立体打印技术)로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고 납품한다는 것이다.고객이 인터넷으로 맞춤형 운동화를 주문해도 5시간 이내로 납품한다는 참신한 경영 모델이다.그 동안 저인건비를 찾아 한국→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나라들 사이로 철새처럼 오가던 기업이 로봇으로 자기 안방에서 생산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이제 과학연구 분야를 포함하여 전통적인 모든 일자리의 인력이 대량적으로 줄고 직업 구조는 아연하게 바뀐다는 명증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려명기를 맞으며 창조와 변혁의 물결이 거침없이 몰려오고 있다. 인공지능、로봇、인공지능、3D 프린팅、빅데이터、사물인터넷、클라우딩 등 제3차 산업혁명에서 탄생한 디지털 정보통신 기기들이 서로 융합되면서 산업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구조적 혁신이 전 세계를 강타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인간의 일상 생활이 바뀌우는 것은 물론 인류의 생산,류통,분배,소비의 생태계가 완연히 뒤집어지고 사회 관리시스템도 여지없이 교체되는 혁명기가 도래하게 된다.지금은 기계력과 정보력 수단으로 밥을 먹는다면 오래지 않아 정신력을 가진 기계들의 자동 운전을 뒤따르며 살아야 한다.   이 변혁의 본질은 생산수단의 고도의 압축성 융합과 결합으로 하여 자본이나 지식의 양적인 작용보다 개방、협력、교류가 훨씬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공동한 인식이다.이 무한 련결 시대에서 우리 매개인은 세계적인 네트웍 속에서 자기의 가치를 인식하고 진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기본기능의 하나는 국제적 교류、타문화와 융화、원활한 의사소통이다.일자리를 말하면 지능기기가 대체 불가능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인간 대 인간 즉 인간 중심적 사업에 투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산업세계의 변화에 따라 부동한 문화 인간과의 사교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의 폭과 깊이를 확보하여야 한다.그렇다면 교류와 연결의 매개물인 다종 언어능력 보유자와 다문화 소유자가 우선 선택이 된다는 판단이 도출된다.   결국은 미래 직업 세계에서 고급인력을 요하는 직업은 지능화 기술에 의하여 고도로 압축되고 정밀화되어 극소수의 최정예 엘리트들의 몫이 될 것이고 일반 사회의 최우선 적격자의 인프라는 언어이고 문화지식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판단이다.그러나 변화는 이러할진대 선택은 여전히 인간 자신의 몫으로서 가 된다.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시대의 주체가 되기 위해 남의 뒤를 무작정 따르며 거친 파도에 휘말리어 자기 문화를 홀대하던 우를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 좋다.어려운 시절 문화만으로 생계 걱정이 해소되던 력사가 있지 않았던가.미래의 중국 땅이란 무대에서 우리 문화를 자본으로 해야 할 고부가치 사업이 산적하여 대기하고 있다.   제4차산업혁명을 향해 중국도 한국도 세계도 다급히 발전하는 변화를 거듭한다.조선족은 천시,지리,인화(天时地利人和)의 도원경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숱하다.조한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한 조선족문화(조한융합문화),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발효하는 배양기이고 민족의 복지를 량산하는 플랫홈(平台)임을 새겨지도록 기억하자. (끝) 길림신문 2012-12-5
40    제4차산업혁명을 안아오자 댓글:  조회:2030  추천:1  2016-11-25
요지음 대졸  구직자 주류는 90년대 초반의 출생들이다. 이들은 개혁개방이 질주하고 민족의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이 생계유지와 돈부자 꿈을 이루려 이국으로 도시로 향해 지리멸렬 헤쳐지던 시기의 산아들이다. 때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으킨 정보화 물결이 세상을 휩쓸고, 민족인구의 격감이 시작되고 민족교육이 곡저에서 떨어지고 민족교육에서 아이를 이탈시키고 민족사회가 절딴난다고 울부짓던 혼돈의 란시판 이것은 그들의 요람기었고 피치 못할 불확실시대였다.   그들중 두사람과 한담의 기회를 만들었다. 한사람은 왕청의 어느 림장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조선족이 희소하고 학교가 없는 까닭으로 조선어는 백판생판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후 민족문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한국의 언어연수를 결행하였다. 현재 이 동네 외자 기업의 주력 사원으로 떠받들리며 향복(享福)을 한다. 다른 한 친구는 길림시의 어느 조선족 동네의 태생인데 유치원부터 민족 교육을 이탈해 조선어가 새까맣다. 부모들이 아무쩡에도 못쓰는 조선어는 왜 배우냐며 자초에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 차이로 양자의 취직、승진、급여、지위 등 생활에서는 천양지차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포부도 운니지차(云泥之差)로 크다. 민족문화 문맹을 벗어 내친 이중 문화인과 내 선택이 아닌 누구 때문에 민족문화를 잃은 단일 문화인, 이 두 사람의 거취로부터 유자 부모들은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내가 고민했다.   1990년대, 정보통신 산업의 흥기를 선두로 일어난 제3차산업혁명은 세계를 국경이 없는 인터넷 동네로 만들어 놓고 이 땅에 디지털(数字) 디엔에이(遗传基因)를 무차별적으로 퍼트려 인류 생태계를 마구 허지버려 놓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디지털 인공지능 기기들이 인터넷과 야합하면서 또 제4차의 산업혁명이 일으키는데 15~20년 이후면 사회는 또 상전벽해의 소용돌이에 말려 든다며 소문이 자자하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들과 약싹빠른 일본 기업들은 언녕부터 참신한 연구개발에 천문학적 투자를 퍼부으며 새 문명을 영접하기 위해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우리가 어리벙벙하는 사이에 인공지능 문명 리기(利器)들은 마구 융합되면서 새 산업 시대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사물인터넷(物联网),빅데이터(大数据),립체프린터(3D打印),로봇 등등 이름 모를 디지털 발명물과 기기들은 산업변혁의 거대한 츠나미(海啸) 를 응축하고  있는 현실이다.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 무언의 경고를 주고 있다. 맑스의 말대로라면 새 생산력은 생산방식, 경제토대, 상부구조와 사람들의 가치관 그리고 세계 구도마저 송두리채 바꾸게 된다. 비록 지구촌의 곳곳에서 억압、정복、점령、이데올로기(主义)를 위한 테로、전쟁、살륙과 대립이 끊임없이 처절히 자행되어도 매정한 력사법칙은 일체를 불문하고 자기 론리로 새 시대를 몰아온다.   그런데 어정거리는 우리들 속에서 이 앞날이 아직도 옛말처럼 들린다. 미구에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변화에 대비하여 기성 세대들과 태몽을 꾸어가는 커플(情侣)들, 더우기 민족 문화를 홀대하는 어시들은 즉각 신조류에 동참해야 하고 후손들 교육에 대해 왜곡된 미래관과 세계관을 가졌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날 근시안적 생각에 아이들을 도구시(道具视) 하던 교훈을 살려 민족문화의 긍정적에너지(正能量)를 아이들이 자력갱생하고 입신출세하는 동력원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물론 애들에게 과학、근면、사랑、희생、봉사、배려과 같은 인간 본연의 정신을 주입해야 한다. 동시에 천부적인 민족언어와 문화로서 동양미 특색을 지닌 새 력사의 인류로 키워야 한다.   인공지능을 표지로 한 새 시대가 되면 인간 로동력 중심의 산업은 막을 내리고 기존의 과학연구와 생산제조 방식에는 천지개벽이 생기게 된다. 사회는 극소수의 최정예 인력과 무수한 신형의 지능화 서비스 인재들이 결합하는 노동구조를 형성하게 되고 인간 욕구의 중심은 물질생활에서 정신생활에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면 고급 엘리트는 물론 레저,관광,오락 등 산업과 사람을 마주하는 대인 서비스 산업이 폭발적 수요를 일으킨다고 미래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이 때의 인간은 우선 자신의 언어와 문화의 깊이와 폭에 따라 활동 영역을 선택하고 점령하게 된다. 더 말하면 일반적 기능 이외에 여러 문화와 언어를 소유한 자가 남보다 한 배 되는 생활 공간과 발전 기반을 가지게 된다.   새 시대 무대에서 이중언어와 이중문화 강족(强族)인 우리 민족구성원들은 가 될 결정적으로 충분한 가능성이 주어지고 있다. 이 변곡점(变曲点)에서 후대 양성에서 내 패착으로 내 아이를 문화장애자로 만들었던 과거를 반성하면서 민족 교육에 만강의 열심과 고심을 경주(倾注)해야 한다.   새 력사를 앉아서 맞지 말고 달려가 안아와야 한다. 연변일보 2016-11-23  
39    뉴노멀시대(新常态)의 조선족 댓글:  조회:2245  추천:1  2016-10-31
메마른 일상을 되풀이하다 보면 바깥세상의 유혹에 끌려 문뜩 어디를 가는 때가 있다.지향없이 돌아다니며 길가 난전의 주전부리(零食)를 사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요용건(要用件) 물건값을 입빠이 내리깎고 사고나면 희열이 문자그대로 최고 그것이다.천자만태 구색의 류행복으로 개인성을 자랑하는 현대인들과 막품팔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우수(忧愁)에 잠긴 민초 백성들의 침울한 모습에서 세태의 무상함도 절감하게 된다.새록새록 쏟아지는 새 상품들, 길을 메우는 차량들, 땅을 차고 서있는 고층건물들, 일신월성(日新月盛)하는 도시 면모에서 세상이 소문보다 빨리 변한다는 감수를 사무치도록 받게 된다.   오늘도 원인 불명의 충동에 끌리어 발 가는대로 나갔더니 이 동네서 황금지대를 자랑하던 상업거리였다.원래 여기는 상업 겸 관광쇼핑 지역으로서 평일 휴일을 막론하고 인파를 이루던 곳이다.그런데 행인 전부라 해야 손가락셈으로 충분한데 길바닥을 채웠던 가게가 그림자를 감췄고 즐비하던 점포들에도 줄잡아 절반이 문열쇠가 잠겨있다.영업 중의 가게들 다수도 페업 덤핑(甩卖)이라며 법석을 부리는데 비어가는 너절청한 건물들은 멋갈없는 무졸장군을 련상시킨다.백화점에서 지인을 만나 장사 사정을 물었더니 경기 악화는 보는 바와 똑 같고 사장님의 고민은 란마같이 얽히어 말이 아니란다.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이것이 뉴노멀(新常态) 시대의 불가피 현상이라고 랭철하게 생각했다.   나라는 압축성장을 위하여 대량의 자원과 자금을 퍼부으며 투자,수출을 위주로 하던 량적성장으로부터 효과성을 중심으로 록색환경보호,수급평형유지,지속균형발전을 맥락으로 하고 구조개선, 소비우선과 내수진작을 골자로 하는 질적성장에로 발전 방향을 돌리었다.이리하여 기존의 방침과 정책에는 전례없는 제도적 개편이 실시되고 기업은 기제(机制) 전환의 진통 속에서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그 와중에서 불황을 헤가르고 새활로를 찾는 조선족 친구들이 있다.   한 해운물류 경영자는 불경기 한파가 불어오자 즉시 기존의 시장네트웍(网络)과 경영노하우(经营诀窍)를 들이밀고 동네의 대형항구와 련합으로 합작경영 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일본,한국,중국과 유러시아 대륙을 가로 지른 물류 코스를 구축하였다. 그들은 연선의 지역과 나라들을 상대로 해륙공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금방 시작부터 승전가를 울리며 본격적으로 운영되어 나라의 일대일로(一带一路) 건설에서 하나의 모델로 된다며 수근거린다.항구의 보스(老板)는 이라며 입이 째지고 있단다.   어느 외자기업에서 일하던 사원인데 회사가 경영부진으로 철수하게 되니 모수자천(毛遂自荐)으로 자진하여 중국 시장의 개발과 서비스를 담당하였다.그들 부부는 자택에서 시장개발을 펼치며 본사의 지시 사업을 원만히 완수해 나간다.철수한 그달부터 고객 주문을 줄줄이 받아내고 거액의 매출을 착착 실현하여 본사 대표자는 머리를 긁으며 이상해 하고 있다.제로원가(零成本)로 길을 열어가는 개척자와 버젓한 사무실에서 통역을 대동하고 와자자하면서 돈만 축내던 안하무인격 사장님과의 대비에서 뭔가 터득했을 것이다.                                                                이 두 친구들에게 무슨 묘수가 있는 지는 모르나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하나는 문화자본이다-중한 두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고 두나라 법률,정책과 사회 관습을 정통하고 두 나라의 미래에 대한 리해가 깊다. 그다음 도덕자본이다-호혜호리와 포용적 원칙을 시종 관철하는 윈윈(双赢)의 현대적 비지니스 정신의 수립자이다.다다음은 신용자본이다-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이미 내린 승낙이라면 자기 손익(损益)의 여부를 불문하고 일언중천금으로 실행한 력사기록이 있다.하여 동반자들은 너와 손잡으면 반드시 리익을 본다는 확신이 있다는 이것이다.이 친구들은 위의 3대 자본을 소유하면 어느 사회의 그 어떤 사경에서도 탈출한다고 자신한다.   ​시대는 GDP(국내총생산)을 주요 발전지표로 하던 올드노멀(旧常态)에 종언(终焉)을 선고하고  GNH(국민총행복)을 창조해가는 새 단계에 들어섰다.정보사회의 디지털화와 인공지능은 우리 삶을 뿌리채로 개변시키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신구사물의 교체가 끊임없고 새로운 기회의 출몰도 거듭된다.이러한 변천 속에서 새로운 시대감각과 사고방식으로 생존과 회생의 기회를 노리지 못한다면 전환이란 여울에서 뉴애브노멀(新非常态)의 혼돈 속을 헤매일 수 밖에 따로 없다.   변화의 물결 위에서 파도가 일고 강풍이 몰아쳐도 방향타를 굳게 잡고 사회의 맥박을 기지롭게 진맥하면서 윈윈하는 두터운 내공(内功)을 쌓았다면 그가 바로 시대의 기수가 될 수 있다.이 마당에서 조선족이 우수한 문화적 민족으로、확고한 도덕성 군체로、확실한 신용성 그룹이 되었을 때 그는 세계화적 개혁개방의 전위부대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끝) 연변일보 10월 26일자
38    막말 무단투기 댓글:  조회:2265  추천:5  2016-10-11
  사이버 공간에서 리플(评语)은 사물의 시비곡직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찬반양론을 진행하는 건설적 기능의 하나이다.그는 사이트에 오른 글에 대하여 자기 인식과 의중을 표출하는 동시에 불특정 다수 네티즌들에게도 확산되면서 상호교류와 공생발전의 거센 추진력이 되고 있다.그러나 구조적으로 조성된 은밀한 구석에 숨어서 뭔가 눈에 거슬리면 시름없이 가시 돋친 험담이나 배설물 같은 추담(丑谈)을 퍼붓거나 정의마저 스스럼없이 조롱하는 위인들이 비일비재하다.이런 부류 독설가들이 일어탁수(一鱼浊水)  민폐를 끼치는 소행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이즈음 네티즌(网民)들은 사이트에서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로서의 평등한 권익을  만끽하고 있다.각자가 보고난 어떤 글에 대하여 서로 부동한 견해을 가질 것은 물론이고 리플을 달아 자기 관점을 제시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나아가 다투는 식의 논쟁을 하거나 판이한 가치관을 궤적으로 하는 열띤 토론을 벌여도 이상할 것 없다.이런 댓글들은 각자의 지식을 공유하며 인식을 제고하고 여론을 정화하는 선플(好评)로 봐야 한다.이 중의 많은 의견들은 정부 부서에 수렴되어 착오를 시정하고 정책 방침을 제정하는 근거로 되기도 한다.인터넷에서 약동하는 이런 견해들은 긍정적 에너지로 전화되어 사회의 새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튼튼한 초석이 되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인 찬양、비판이나 선의적인 반박글 대신에 의견을 달리한 대방에 대하여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고 독기 서린 험담을 퍼부으며 사경에 처넣으려는 유언비어나 비방중상 언사들이 겹쳐나타나 민망스러울 때가 많다.거기서 격한 기분으로 격돌하거나 무심중에 꼬집는 행실은 아이들 싸움 장난으로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도덕과 사회 관행을 무시하고 대방과 양립할 수 없는 원쑤의 입장에서 싸움을 걸고드는 친구들의 언설이 말썽거리다.이러한 독선적이고 단세포적인 사고로 내던지는 세기말적 언어도단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바로잡아야 할 일그러진 단면이다.   인터넷 공간은 우리가 살아갈 또 하나의 공간임에 틀림없다.세상에 유아독존이 있을 수 없으므로 타인도 나처럼 자아를 소중히 간직한다는 이해심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 도덕심임을 명기해야 할 바이다.오늘 세상을 살아가려면 상생을 위한 공존 방식을 해아리는 지혜가 절대 필요하다. 단순한 흑백 논리와 이분법 사고로 투쟁을 벌이는 비교육적 자세는  네가 죽고 내가 죽고 공멸을 불러오는 독침일 수 밖에 없다.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제적인 윤리와 처세술이 나에게 정립되었는가 누군가 반성해야 될 것이다.특히 자기주장을 승리 깃발처럼 쳐드는 논설자나 언론인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 명지(明智)로서 순화된 소신을 밝히는 것이 책임임을 숙지해야 한다.   사이트에서 익명이 가능한 원인이 생각을 여과없이 내던지도록 부추기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의 심중에서는 대중 앞에 로출되지 않았기에 불이익이나 처벌이 면제된다는 방만한 심리가 활약하며 악플(恶评)을 달아놓는 경우가 절대 다부분이다.이러한 부류들의 내심에는 원색적 욕설과 비방을 해도 무사할 것이라는 발양망상(发扬妄想)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나라는 이런 악플의 대응으로 실명제、신고제、감독제 등 법제적 타률적 조치를 의무화로 시행하고 있으나 결코 만능약이 될 수 없었고 결국 자률적 의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요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악플을 다는 모양새가 그냥 가관이다.민족사회의 재건을 떠메고 차세대를 이끌고 갈 대인다운 모습과 정반대 방향이다.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논리로 상대방을 정복하는 정중한 모습으로 나타나도 손해날 것 없다.찬양도 비판도 옥신각신하는 설전도 다 좋은데 폭언과 육악담(肉恶谈)이나 악담 따위의 무단투기(无断投弃)만은 금물이다.손가락을 쳐들고 셈따지기 해봐야 몇이 안되는 겨례들인데 물거니 뜯거니 동종상쟁은 진소위(真所谓)  꼴불견이다. (끝). 2016-10-10 흑룡강신문  
37    조선족의 <문화 성역> 확장 댓글:  조회:2265  추천:4  2016-09-01
지난 7월1일, 이 대련에서 있었다. 회의에는 중국 각지의 조선족 경영자, 차세대 유지자들과 향항, 일본, 한국 등 나라와 지역의 사업자 600여명이 참석하였는데 란 슬로건을 걸고 인맥을 익히며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간의 미래적 발전에 대하여 진지하게 의론하였다. 그중 민족사회를 발전시키려는 공동한 의지를 확인하였다는 점이 특히 의미심장하다. 참가자들의 상당수는 제조업, 건설업, 부동산, 금융보험업, 유통업, 무역업, 의약산업 등 분야의 재력가들이였으며 한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로 진출하고 한국과 일본 기업을 인수합병하여 지평을 넓혀가는 개척자들도 있었다. 또한 중한수교 초기의 짐군으로부터 한국제품의 중국 진출을 주도하면서 자문, 수입, 류통, 최종소비까지 1인 4역(一人四役)을 거뜬하게 해내는 자수성가(自手成家) 노력가들도 수두룩하였다. 조선족들이 중국이란 광대한 시장을 발판으로 거족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회의 전반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사업 기반을 다진 지성인들이  민족사회 재건에 주력하며 지역간의 뉴대를 강화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열의가 뜨겁게 감지되였다. 그들의 노력으로 조선족의 집거지마다 이미 여러가지 협회, 교우회, 향우회, 동호회 등 모임이 설립되였을뿐만아니라 사회  공헌을 목표로 하는 공익단체들도 다수 건립되여 민족의 존재를 과시하고있다. 민족의 공동체가 해체된다는 아우성이속에서 조선족의 긍정적에너지(正能量)가 급증하고 문화 이미지업(形象提升)이 가속화되는 현실과 조선족의 경제적 유형자본과 문화적 무형자본 총량은 감소가 아니라 대폭 증가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수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만큼 경제성과를 이룬 민족이 없고 짧은 시간에 그처럼 민족사회를 공동화시킨 민족도 없다.이라며 훼방하는 량반들과 무득무실(无得无失)의  나무아미타불이라며 뒤발질하는 개그맨들도 있지만 필경 조선족은 개혁개방의 선봉대였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나라에 공헌하는 민족임이 틀림없다. 비록 오늘은 민족 리산의 고배를 마시고 있으나 이는 선진사회로 나가는 과정의 필납(必纳) 통과료일 뿐 퇴보도 후퇴도 아니다. 는 대회 호소는 전체 민족의 향상심과 사라져가는 민족영광을 원상회복하려는 념원을 표출한것이다. 우리 민족이 격변기의 역경 속에서도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원기는 민족문화 그 자체에 나온 것이다. 다민족 국가에서 형성된 민족단결의 가치관 및 공존공영의 리상, 불모지지(不毛之地)의 개척정신, 조선족 특색의 미풍량속과  문학예술, 중화민족으로서 인문적 특성 등등  정신문명은 민족의 가난을 풀어가는 였고 타민족과 영합하는 이였고 세계화로 추동하는 이였다. 특히 우리의 이중언어, 풍속습관, 도덕규범, 집단의식은 토착민의 지역주의를 초월하여 중국에서 한 민족 교두보로 되여가는  발전엔진이였다는 국제적 가치로 조명되고 있다. 민족사회의 뿌리는 전통이고 근간은 문화이다. .우리들이 전통문화를 더욱 잘 계승하고 승화시켜 지역 단체들마다 충실한 책임자가 되여야  할 것이다. 우수한 민족구성원이라는 찬양 속에서 자긍심을 키워온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문화는 민족의 정체성을 떠받친 튼튼한 지레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20세기적 사고방식을 탈피하여 자기 문화를 홀대하는 악습, 한탕치기 돈벌이 관념, 참을힘 부족의 쟁개비열정 등 고질적이라는 저급문화의 잔류물을 털어버리고 인류의 공동자산인 우리의 고유문화를 꽃산으로 번영시켜야 한다. 21세기는 문화가 선도하는 시대이다. 현재 지리적으로 표시되는 국경과 지역 계선은 인터넷 충격에 어쩔수없이 무너지고 있으며 세계는 개방과 일체화 일로로 나가고 있다.인류는 현대의 문명 리기(利器)들에 떠밀려 현실공간으로부터 전파통신 속의 가상공간 속으로 마구 끌려들고 있다. 핸드폰 화면에 지구상  임의의 지역 친구를 집결시켜 사이 버사회를 만들어 가는 이 생산력 단계에서 디지털 지능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필수(必须必需)로 되여있다. 우리는 전통사회의 지역공동체라는 질곡에서 벗어나 현실공간+가상공간 즉 혼성공간(混成空间)에서 불멸의 를 건립하는 실천의 길에 올라야 할 관두에 서있다. 문화는 조선족이 에 투자할 최고가의 주식(股票)이고 리익분배에 참가할 최대치의 주주권(股权)이다. 조선족은 견정불이하게 민족문화의 브랜드전략(品牌战略)을 실시하고  집거지마다를 우리의 로 꾸며간다면 조선족사회는 력사를 따라 일취월장(日就月将)하는 신형의 백의민족커뮤니티(共同体)로 거듭나게 된다. 이번 대회의 참가자들이 지능화 시대의 민족사회를 건설하는 최우수 전사와  최정예 부대가 되기를 바란다. 연변일보 2016-8-31
36    빈곤자의 권리 빈곤 댓글:  조회:2076  추천:5  2016-07-21
손가는 대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는데 한 토막기사가 내 가슴을 흔들었다.하북성 기주시의 한 가난한 집 부녀(父女)가 노가다 판에서 밀린 품삯을 받으려 보스를 찾았다가 또 얼떨떨한 리유를 주어대며 미루는 사절을 당했다.동반했던 13세의 딸이 그 자리에서 옥상에 뛰어올라 몸을 날리어 불귀(不归)의 길에 오르는 인생의 라스트신(最后场面)을 연출한다.속세의 단맛도 모르고 명계로 떠나는 가련한 모습을 보며 누리꾼(网民)들이 떼를 지어 탄식한다.가난이 원죄인가,누구 죄를 들쓰는 대속(代赎)인가.가난이 파생한 이런 참사의 재연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우리 나라는 2020년까지 7000만 빈곤선 이하의 인구가 가난에서 해탈한다는 정준구빈(定准救贫)의 슬로건을 들고 소강 목표를 향해 라스트스퍼트(最后冲刺)에 돌입하고 있다.난의포식(暖衣饱食)를 중심으로 하고 경제지표를 기준으로 하는 생계형 빈곤은 미구에 력사의 장막 속에 사라지게 된다.30여년의 고도성장으로 이뤄진 탄탄한  물질문화적 사회 인프라 위에서 목표의 달성이 어렵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현대화 건설의 창세적 성과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빈곤 문제는 사회의 영원한 딜레마(困境)로서 모든 사회의 자초지종(自初至终)에 속재(续在)하며 산지사방에 산재(散在)하게 된다.물질 결핍이란 절대빈곤에서 해탈한 후에는 수입의 다소로 계산되고 빈부격차 행복지수에 따라 반영되는 소비형 상대적빈곤이 존재한다. 때문에 사회가 부유하지만 누구도 빈곤자로 전락할 확률이 커지게 되며 빈곤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의 연장선에 있게 된다.이 공동 부유라는 명제로서 제기될 란마같은 빈곤은 그 현명한 해결 방법이 법제 건설이고 빈곤자의 권리 부축이다.현재 약자들이 권리에서 배제되어 빈곤에 전락하는 권리빈곤이 대두되는 현실이다.   풍요 시대의 빈곤에는 다양한 변수와 난해한 미지수가 헷갈리어 다만 부조라는 경제 카드로는 해결이 전혀 불가능하다.그러므로 지속 발효(发效)가 가능한 비경제적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고 로동,교육,의료,양로,건강 등등의 면면에서 빈곤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법체계의 건립에로 사업 중점을 전향해야 한다.더우기 립법 수단으로 빈곤자의 취약성을 보강해야 하며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약자들에게 법보호 장벽을 쌓아야 한다.서두에서 발생된 재난에서 보여주는 고용자와 로동자 관계에서의 약자가 렬세에 처하는 법적인 허점을 사전에 미봉해야 하고 피고용자 권리의식 쇠약증을 치유해야 한다.   사회보장은 헌법으로 규정된 공민의 신성한 권리이다.지난날 생계가 급하여 돌볼 겨를이 없었다면 지금은 합법적 권익이 보장되는 법제 구빈의 제방을 쌓아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매개 공민들이 법의무를 이행하고 부여된 권리를 자유롭게 추구하는 법이 주축이 된 탈빈곤 체제를 정착시켜 국가,고용자,로동자가 3위일체로 작동되는 기틀을 형성시킨다면 이것이 현대 사회의 기본 륜곽이다. 그러므로 사회보장에서 약자들 자신이 과감히 권리를 제출하는 고무적 환경을 마련해 주고 약자가 권리로서 빈곤을 퇴치하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결국 빈곤 해탈은 법적인 구조로 대응할 문제이다.공민들이 법제 무기로 자아보호를 할 수 있고 자체로 조혈(造血)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안전망 속에 집결시키고 혹세무민(惑世诬民)의 도덕불감증 경영자들과 법제를 릉멸하는 약육강식의 악덕 장사군들은 가차없이 추상같은 법도의 초롱 속에 몰아넣어야 한다.이리하여 부자가 빈자의 고혈을 짜먹는 불평등을 해소시키며 가난이 절망의 자폭장치(自爆装置)로 되는 비극의 근원을 잘라야 한다.그러면 빈곤은 희망의 자생지(自生地)가 되고 탈빈을 위해 분발하는 기폭장치(起爆装置)로 될 수 있다.권리빈곤이 잉태한13세 소녀의 불행은 영원한 력사로 되게 된다.   가난을 소멸한 극락세계는 없다.집행자의 법제의식의 결여,고용자의 법의무 외면,서민의 법리념 결여란 이 빈곤에서 해탈하는 구빈 전쟁을 전쟁을 벌여야 할 때이다.이 권리구빈(权利救贫) 사업이 사회의 조화운동으로 진행될 때,법사상이 사회 의식형태에  뿌리 내릴 때,권리가 침묵하는 다수 약자가 살아가는 비상수단이 되고  역할을 할 때 이 사회는 공정한 사회, 즉 풍요로운 태평성대이다. 연변일보 2016-7-20
35    고향이 '없는' 세대 댓글:  조회:2540  추천:7  2016-05-12
설이 박두하니 직원들은 육신만 사무상에 않혀놓고 제정신은 설쇠기에 보내버렸으니  하는 일이란 얼렁뚱땅 오류 투성이다.명절이면 생기는 명절증후군(综合征) 증세의 하나다.딱딱거리는 회사에서 갈망,고민과 방황이 헷갈린 혼돈 속을 헤매며 사고팔고(四苦八苦)의 풍타랑타(风打浪打) 고초를 겪는 생둥이들이다. 풍요로운 시대를 타고나 인간고란 뭔지 모르는 청춘들의 오금이 들뜬 행동거지에서 이것은 피곤한 생계현장을 해탈하여 잠간이나마 마음의 탕개를 풀어보려는 뭇생각의 발로라고 측은하게 생각했다.   가고파 생각에 덤벙거리는 한 고향 친구의 의중을 떠볼 료량으로 고향이 가고 싶냐 물었더니 이다.부연하여 출생 미구에 부모를 따라 내지에 가 자랐으니 고향이란 자기에게 있어서 이력서 등에 기입하는 원적지일 뿐 그 이상 의미가 없는 그저 출생지란다.아파트촌에서 태어나 금지옥엽으로 자란 외동자인 그에게 형제자매 정이란 있을리 없고 사촌형제란 말도 들어둔 잠꼬대다.말그대로 그에게는 어드메 어느 모체에서 분리되어 탈락했다는 생물학적 고향이 있을 뿐이다.고향을 잃었으나 회향(怀乡)의 향수(乡愁)도, 망향(望乡)의 동경도, 애향(爱乡)의 정감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이 친구 뿐이 아니고 유사한 력사적 원인으로 맘속에 고향이 없는 세 세대가 형성되었다.   기성세대의 인식에서는 태어나 자란 고장이 고향인데 그가 내포한 의미는 간난고초와 희노애락의 극인 장면으로 꽉 채워진 일기장이다. 하여 그 시대의 소설,시,극,영화,노래등 문예작품에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정서가 꽉 차있었고 사람들은 울적하면 고향을 읊조리였으며 매체들은 심심하면 내 고향이여!를 들먹이었다. 그 터전을 가꾸는 것이 숙명으로 되었던 우리의 령혼 심처에는 고향이 평생을 두고 고양되고 갈무리되어야 할 귀중한 존재이다. 더구나 경직된 세월을 뒹굴어온 우리에게는 시도때도없이 고향애에 휘말리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나라와 조상이 고집스럽게 건설하던 고향의 이미지는 여지없이 퇴색해 가고 자신의 삶과 고향의 뉴대성에 그냥 덤덤한 고향불감증 세대들이 한 세대를 이루고 있다. 고향! 조상! 민족문화! 같은 화두에 사명감일가 련대성마저 느끼지 못하는 세대, 이들이 민족사회의 계승자 대렬에 들어섰다는 현실이다.현직의 사회 멤버들은 고향의 상실감에 가슴앓이를 하기에 앞서 새 시대의 민족문화를 번영시키는 물결을 일으켜야 할 때이다. 이 후세들의 리상과 념원에 부응되도록 민족의 고향을 재건하여 그들의 새 미래를 열어주는 집단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   세찬 흔들림 속에서 영고성쇠(荣枯盛衰)를 거듭하는 고향의 현실을 두고 수많은 지성인들이 공방(攻防) 대안을 제시하고 돌파구를 찾으며  물심량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러나 기성세대와 가치관과 희망과 의지를 확연히 달리한 후손들이 이 사업에 동참하여야 목적을 이루게 되어있다.개방의 전성시대를 누리며 물질적 도취와 자아실현의 개성을 주창하던 자손들이 다시 집합하여야만 진정한 민족 특색의 사회학적 고향이 존속하게 된다.선제 조건이라면 고향에는 물질과 문화적 흡수력이 있어야 하고  시대화된 공공서비스 환경、경제 환경、삶의 방식、륜리와 규례、관습과 풍습 그리고 선진적 사회시스템이 고착되어야 한다.전망이 어둡고 먹을알이 없다면 오던 사람도 발길을 돌리게 된다.   나라의 장구한 전략의 수립과 진부한 호구제도개혁을 표지로 하여 도농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성시와 농촌의 2차원적 관리구조가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우리 조상들의 헌근지성과 예지가 돋보이던 마을 문화가 사라지는 것도 언녕 기정 사실로 되었다.민족사회의 이런 재분화와 재조합은 우리 민족이 도시민으로 정착하는 새로운 력사과정을 가속화하고 있다.도시화란 이 시대적 물결 속에서 우리 민족의 지리학적 고향에는 중국 특색의 민족도시가 우뚝 서야 할 것이고 설 것이다.   조선족 사회는 현재 역류를 향해 나가야하는 위기와 기회의 림계점에 처하여있다. 역류행주,불진칙퇴(逆流行舟,不进则退)이다.고향민들이 무리 단위로 고향을 탈출하여 공동체는 공동화되고 민족문화는 사막화되어 거칠기 짝이 없고 고향은 쓸쓸하기로 말도 안되는 오늘,고향의 흥망에 감흥을 잃고 무심한 전자게임 세대들에게 기성세대의 이 애절한 부르짖음이 그 고막이나 건드릴가? 맘속의 고향을 사랑하는 후예들이 그 터전을 어떻게 꾸며갈지 좀 궁금하고 수상하다.좀 불안하다.   (끝) 연변일보 2016-5-11  
34    알파고에서 본 미래의 조선족 댓글:  조회:2551  추천:2  2016-04-28
-알파고(AlphaGo-알파고바둑프로그램-程序) 인류의 진화사와 미래상에 대하여 한다하는 학문가들이 자설(自说)을 제가끔 우겨대며 내세우고 있다.그러나 인간은 어느 창조주의 피조물(被造物)로서 그의 뜻을 어기지도 말고 그 론리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원론(原论)에는 반론이 없다.여기서 류추하여 인간도 자기 제조품은 자기의 뜻에 순응하며 복종한다고 확신해 왔다.그런데 요즘 이 억만년의 불변칙이 변화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하고 리론 외곽에 균렬이 생기고 있다..   2016년 3월 15일, 한국의 바둑 9단 이세돌(李世乭)과 알파고바둑프로그램 간의 승부대결에서 1:4의 점수로 후자의 완승을 세상에 선고하였다. 알파고 인공지능(AI)의 개발자인 구글딥마인드 회사가 백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펼친 금번의 인간:AI의 각축은 인류 진화사에서의 하나의 획시기적 사건이라며 세간이 수런대고 있다.지금까지 1000번이 넘는 우승을 따냈고 국제경기에서만 18번 왕좌를 제패한 천재가 AI 앞에 무릎은 꿇은 장면을 지켜보며 구경군들은 악연하였다.인간의 생물지능이 물리지능에 패배,이것은 하나의 시대를 가름하는 제야종소리가 아니일가 본다.   인간의 최고 지능을 요한다는 바둑에서 사람을 재끼는 소프트웨어라면 이것은 그가 인간 생활의 거의 상당하 부분을 그가 대신 가능하다는 방증이고 인력만의 령역 거의를 대체하여도 무난스럽다는 례시(例示)이다. AI가 속세에 몰고 올 파장에 대비하여 사람들은 어기채기으로 화제를 만들어 탁상공론으로 올리기도 한다.각국의 수많은 기업들은 전통적 사업들을 인터넷과 결합시키는 인터넷+ 단계로부터 승화시켜 인터넷+인공지능+의 높이에서 시각을 조절하고 있다.나가는 세월과 동행해야 한다는 살아난다는 세월, AI시대에 도래할 생산、분배、소비、류통 그리고 사회구조와 의식구조를 전망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알파고의 승리는 전대미문의 기술혁명의 상징으로서 인류사상의 제4차 산업혁명으로 규정하는 위인들도 상당수이다.멀지않아 길 위의 자동차 70%가 무인차이고, 인간의 수명은 100년 이상이고, 인공지능로봇이 생활의 거의 전부를 대체하며, 재택근무로 지역 제한이 없는 취직이 가능하다는 등등  화제들과 새로운 지능 제품들도 물밀듯 나오고 있다. 보자보자하니 결국 AI가 인간의 전통 생활구조를 뒤집듯 바꿔버린다는 것이고 기존의 가치관은 뭉그러지고 만다는 이상한 소리이다. 그렇다면 재래로 내려오든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거나 양태를 바꾸며 새 서비스들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할 것인데 이것이 인간이 미구에 마주해야 할 엄연한 현실이다.   거창한 의론은 접어두고 그 때의 조선족 상을 그려본다.하늘이 땅이 돼도 인간사회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행·어(語)만은 영구불변이다.생명의 필수인 의식주행은 차치하고, 사회 구성의 핵심요서인 언어에도 심각한 변화가 도래할 것도 령락없다. 현재 구글이 개발한다는 만국번역기(万国翻译器)가 출시되면 언어 생활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편리가 조성되고 언어문화가 질적변화를 초래할 것이지만 동시에 AI에 대한 의뢰성으로 인간들의 언어 수준은 기능저하의 심각한 도전을 불러오게 된단다.그와 반대로 즉시성,무상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다원화된 고수준언어의 수요가 더욱 절박해 질 것이란다.그렇다면 태나부터 중한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조선말은 하늘이 하사한 천복(天福)이 아닐 수 없다.   알파고와 이세돌이 누가 이기든지 결국은 인류의 승리이다.세상이 천선지전(天旋地转)으로 변해도 이 세상은 인간이 주도하도록 되어있다.조선족들은 언어의 보루를 더 다지고 확고히 해야 한다.지리적으로나 국가 정책적으로나 언어 발전의 감제고지(瞰制高地)에 서있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그는 교류와 비지니스를 전개하는 값비싼 기초시설이고 막강한 민족적 소프트파워이다.결국 민족에 대해 말하면 경쟁 속에서 공방(攻防)의 검순(剑楯)이 되고,악천후 속에서 항로리탈을 막는 수호신이 되고,문화후생 생활에서는 벅찬 정신생활을 도입하는 매개물로서 작용을 하고도 남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요즘 몇몇 친구들과 한담을 나누는 중 사회가 어떤 혼선을 빚더라도 조선족들은 언어 우세로 언제나 노란자위를 선취득하는 기득권자로 될 것이라고 춰주었다.비위에 맞추려 주어대는 감언리설이 아닌 같았다.두개 나라와 민족에 동시에 향인설화(向人说话)가 가능한 언어기능,이것은 어떠한 AI도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공동한 판단이다.그렇다면 지능시대의 조선족은 조선말(중한이중언어)의 신세를 톡톡히 볼 것으로 내바다보인다. (끝) 연변일보 2016-4-27
33    미래의 아이를 키우세요! 댓글:  조회:2247  추천:2  2016-04-14
20여 년 전, 목에 목침같은 핸드폰을 매달고 바지춤엔 무선호출기(BB机)를 차고 량반걸음을 치며 영광을 과시하던 위인들 작태가 딱하여 눈을 감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그 때 값으로 만원 위아래인데 일반인의 일년 반 급여상당이니 그럴 법도 했겠습니다.사무실의 팩스기도 사치품이었던 시절입니다.세상의 변천이 빨라 이젠 손바닥 반반의 천원짜리 스마트폰에다 회사를 담고 다니며 회의,영업,통신,결제,공부,쇼핑,촬영까지 무난히 즉시처리하는 세태입니다.과학기술의 박진력은 경제,정치,군사,문화,외교 등 모든 분야와 사람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마저도 변화불측의 맴돌이 속을 맴돌게 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정보요,인터넷이요,디지털이요 하다못해 빅데이터(大数据),클라우딩(云计算,사물인터넷(物联网),립체프린터(3D打印机) 등등 신조어들이 줄줄 쏟아지는데 아닌게아니라 어리어리한 세월입니다. 머지않아 컴퓨터,스마트폰은 뒤에 밀리고 또 로봇,생물로봇이 인류 기능의 대부분을 대체하는데 무생명 기기들마저도 인터넷에서 서로 연락을 한다는 등등 인류문명사는 또 한차례의 대전환을 맞아 온다며 과학계가 법석을 이루고 있습니다.이를 지능시대 아니면 개념시대라 한다는데 그 때면 민족 국가간의 장벽과 거리는 현재의 의미를 거의 상실하고 전지구는 대개방 대융합의 력사 항선을 꼭 타야만 한답니다.어제는 탈탈걸음 일일십리, 오늘은 질보질속 일행천리인데 오래잖아 무인 승용차를 타고 어슬렁거릴 인공지능 시대,이런 판국인데 우리의 앞날 특히 우리 아이의 인생 대사는 결코 둘둘 뭉그려 조치할 일이 아니되고 있습니다.   세계 소프트웨어(软件) 우두머리 빌게이츠는 지능시대의 인간은 우선 모변모처모시(某边某处某时)에 무작정으로 존재하는 뉴스와 동정들을 집중시키고 맥락화시키면서 산재(散在)하고 점재(点在)한 쇄편(碎片) 정보들을 하듯 꿰매는 기능을 갖춰야 시세에 따른다고 말합니다.여기서 최우선 필요한 기능은 언어 수준이며 언어 기능자가 사회의 선두주자로 된다고 과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이 예언하며 긍정하고 있습니다.생산력의 눈부신 발전 앞에서 인류는 또 자기를 적응시키기 위해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하고 오늘 같은 변신과 탈피의 진통을 겪어야만 합니다.이런 물결 속에서 된고비를 무난히 넘을 행운은 조선족(이중언어자)이 타고났다고 남들이 부러워하고 있습니다.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민족어를 열심히 주입하여 물들게 하고 민족의 전통 문화에 푹 젖도록 해야 합니다.   여담(余谈)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만 전일 한국에 간 친구가 대졸생 아들의 취직을 부탁하기에 그 애가 조선어에 새까만 모습이 애처로워 뭔가 뇌까리기 싶었습니다.그는 소학교부터 조선어를 리탈하였는데 부모들이 앞으론 조선어가 쓸모없다는 판단이였다 합니다.사회에 진출하고 보니 취직의 어려움은 제외하고 생활의 곳곳에서 조선족 화자들과 엄청나 차이가 생긴답니다.그들에겐 취직 근심이란 걱정은 전혀없고 월급이 높다할가 해외 출장도 삼시 먹듯 해대고 인생의 청사진도 구성지게 그리는데 자기는 되려 먹고살기가 급급하여 고민이라 합니다.돌이킬 수 없는 현실은 철의 흐름이 그들에게 남긴 시대적 상흔이겠지만 유물사관에 대한 무지와 민족문화 가치의 오판으로 남은 가슴 아픈 회한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나아갈 뿐 돌아오지 않는 편도(片道) 렬차입니다.어찌보면 어쩔수없이 부모가 주도하는 어린 시절의 향도가 그의 남은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말이 됩니다.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위해 무슨 기적적인 처방을 탐낼 것이 아니라 뒷날 세상은 무엇을 필요하는가? 혹시 내 아이가 무엇을 가장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인식론적 혜안이 있어야 합니다.골수에 박힌 문화 유전자를 추출하고 민족어를 리탈시키는 소행은 너무 근시안적 조치입니다. 급진하는 세상에서 중한 두 언어를 병용(并用)하고 합용(合用)하는 우승자로 만드는 이것이 조선족에게 부여된 최적의 선택이며 최우선 선택지(选择肢)로 되고 있습니다.   유소년의 첫걸음이 인생에 대한 심대하고 장구한 영향은 교육 분야에서도 시시각각 긴 경적을 울리고 있습니다.아이들의 세포핵 속의 문화뿌리를 송두리째 뽑던 교훈을 살리어 어시들은 변화의 노예가 되고 훗날 판단의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당신의 아이를 사랑하라 권고한다면 두말 잔소리지만 급변하며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앞날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뒷날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두말없이 정확한 책임 리행이라는 점 경종처럼 울려드립니다.   사막의 송엽국(松叶菊)이 고결한 생명을 자랑한다고 옥토에 심으면 즉사하고, 죽순을 먹어야 하는 귀중한 판다에게 귀중 약재 인삼을 먹이면 즉살된다는 소박유물론적 리치를 언명합니다. 미래의 아이를 키우세요! (끝)   연변일보 2016-4-13
32    민족언어의 업그레이드 댓글:  조회:2875  추천:2  2016-03-07
고고성을 울리며 인류의 대렬에 가담한 순간부터 이날이직까지 조선어를 주요 언어로 듣고 배우고 활용하여왔다. 이 언어는 내가 세상 사물을 인식하고 사고하는 도구였고 사회생활을 받쳐준 버팀목이였으며 외부 세계와 호류(互流)하는 징검다리로 되어왔다. 비록 세월의 변천으로 그의 교육, 보급과 응용이 곡저에서 밑돌며 변화의 혼돈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지만 그에대한 애착과 집착만은 만고상청(万古常青)으로 한결같다. 최근 회사 직원이 한 한국 거래업체의 중한 서류 번역의 부탁을 받고 역문을 건네주었는데 그는 조선어식이어서 리해가 어렵다며 재수정을 요청하였다. 하여 중국 생활의 오랜 경험자인 한국인에게 감수를 간청하였더니 그는 별문제 없다며 약간 수정하고 다시 넘겨 주었다. 그 어른은 보는척하더니 만족이라며 함지박 입이 되더란다. 우리를 낮추보는 선입견이 속가슴에 깔린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한참 웃어주고말았다. 멸시하는것쯤은 그런대로 재롱으로 보는데 자체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무지한 배타적 관행의 발로인지라 뒷맛이 씁쓸하였다. 이 시들한 언동은 동민족 언어에 족쇄를 물리는 소행이 틀림없으나 조선어가 아직 저급수준인 현실이므로 상한 기분은 접어두고 용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 매체에서 자주 들먹이는 동의어인 등 명사가 무슨 뜻이냐고 한국인들께 물은 적이 있었는데 몇사람 모두가 그런그런 의미일것이라고 얼버무리며 명답을 내지 못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서울에서 선별없는 외래어가 분탕질하여 토착민마저도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라던 현지인들의 불만이 헛소문이 아니었다. 순수성과 교류성이 탁월한 자기말들을 소외하고 외국어로 우리말을 죽이는 행태에 시효정지를 붙혀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관행이 지역 언어사이의 이질성을 부추기고 호상간의 격의를 심화시켰다는 교훈은 명기해야 할바이다. 비록 지금은 문화격돌의 시기를 뛰어넘어 서로간의 리해도 심화되고 있지만 한국 자체의 외래어 범람이 조선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어의 한국어화 경향은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조선족이 중국의 발전과 더불어 세계로 향하는 조류속에서 민족어의 이러한 언어문화의 변화는 대세의 흐름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채로운 중국문화에 파묻힌 생활에서 조선어가 어떻게 고급화로 변신하던지 자신만의 개성을 띨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므로 전체 한민족은 언어의 지역적 차이성을 인정하고 서로간의 교류를 넓혀가는것이 력사적 숙명이고 문화발전의 큰길이란 절대적 진리를 명기해야 할것이다. 내가 주류 언어이니 네것은 전부 없애라는 편협한 관념을 포기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이란 대동 차원에서 서로 배우고 보완하며 친화적인 발전을 시도해야 한다. 남들이 낮추보며 경멸한다고 대들며 반발해도 우리 언어생활의 현실을 보면 그야말로 어깨가 축 처진다. 요즘 이 동네에서 조선어 인재를 뽑는다는 정보가 무시로 전해오는데 적격자들이 실로 드물다. 지난 시기의 인구의 격감, 인구의 대이동, 조선어의 홀대, 공동체의 공동화, 민족의 리산 등등 민족 은 오늘의 인재의 단층으로 적라라하게 로출되고 있다. 인구수가 적고 수준이 내려간데다 언어규범이 혼란한 상황도 조선어 응용의 심각한 방해요인이 된다. 언어교육의 수준을 제고해야 할 절박성이 박절히 제기되는 동시에 지역언어들 사이의 가름막을 해소하는 표준 확립도 긴급사항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조선족은 이중언어교육의 국가적인 노력에 적극적으로 합류하면서 민족언어규범을 재분석하고 그 차원을 승화시켜야 한다. 조선어는 민족문화의 캐리어(载体)이고 민족사회의 존재와 발전의 기본적 인프라이다. 우리는 중국 문화와의 공존속에서 우리말을 주류 언어의 규범이 구현되고 향토색이 짙은 민족어로 업그레이드시켜 그의 사회적 작용을 부단히 극대화해야만 무한경쟁 시대의 시류에 동승할수 있다. 첩첩한 장벽과 겹겹한 형극이 가로막더라도 우리가 주동자로 되어 민족정책을 슬기롭게 락실하면서 지구적인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사회가 조석으로 변하는 오늘은 언어생활과 언어문화에 교차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종합검진을 진행하고 집단행동을 단행해야 할 시기이다. 정확한 정책과 과학적 규범이 치차같이 맞물려야 할 이 세기적 문화창업을 누군가 주축이 되고 어느 주역이 떠메고 가겠지만 그래도 는 기우(杞忧)가 뒤따른다. 연변일보 2016-3-2  
31    그 절에 가면 그 중이 되라 댓글:  조회:2712  추천:1  2016-01-21
서울에서 래일 추석인데 뭘 먹고싶냐고 회사 어른들이 주문한다.언녕부터 있던 생각이라 가리봉동이 어떠냐고 청구했더니 그는 펄쩍 뛰며 “무슨 쪽팔리게 조선족 동네야,그 오물장 같은 곳에 가서 뭘 어떻게 먹는단 말이야!”며 무작정 끌기에 속은 꼬이지만 무가내로 따라가 한끼 퍼먹는것으로 때웠다.욕은 듣는 놈이 먹는다더라. 이 눔들이 말씀질인지 말새질인지 언설질을 해도 너무한다고 가슴이 불편해지며 래일 기어이 가보려 작심하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한국 분들을 욕한게 후회되고 말았다. 그 친구들의 악평이 좀 과분하였을뿐 말그대로 말이 말도 아니었다. 바로 눈에 띄는것은 길에 온통 널린 담배꽁초이다.어떤 길모퉁이에는 한층이 실히 깔렸는데 길청소가 어느땐지 몰라도 우리 사람들이 꺼리낌없이 마구 던져버린게 확실하다. 담배꽁초의 무단투기로 시비가 많은 서울에서 이토록 무개념적 행세를 부리니 현지인들이 한심하다고 하는 비난이 절대 그르지 않았다. 마치 죽을 각오로 마음을 풀어헤친 의 놀음터가 방불하였으니 핀잔이 란무하는 리유를 단통 알게 되였다. 그리고 구석구석과 나무밑에 버려진 냄새신경과 시각신경을 자극하는 쓰레기 주머니이다. 지정한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발작을 아껴 코앞에 던져버리는것이다. 빈곤에서 해탈하려 그 땅을 밟았으면 조금이라도 지역민들의 눈치도 보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해야 마땅한데 이처럼 무책임하고 있으니 토착민들의 심중은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구 짓밟아도 전혀 무관계인 로 치부하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악인상은 료식업체의 렬후한 위생 환경이다. 들어간 식당중 다가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가게인데 구석마다에 덕지덕지 진때가 눈에 보이고 주위 건사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중국인들은 그런대로 사먹더라도 한국인들이면 코를 싸쥐고 뭐라 할것인데 사먹는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으로 보일 것인가. 남의 땅에서 안하무인격으로 활개치는 미개한 으로 비치지 않을가. 가리봉동에는 중국인 대상의 서비스 업체들이 들어차 있다. 바로 의 발원지라 불러지는데 이 곳엔 조선족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동병상련 정보를 교환하는 집결지이기도 하다. 이런 특성으로 조선족들이 흩어져 일하다가 때가 되면 모여들어 향수를 달래고 서러움을 삭이는 만남의 장소였고 지친 팔다리를 뻗는 휴게실이기도 하였다. 하여 이 곳은 조선족, 한족과 한국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동북아 문화결집의 력동적 축소판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러나 각지 사람들이 엉켜사는 곳이라 대소 사건들이 많고 시비거리도 쉴새없다. 더우기 조선족을 반해(半解)한 한국인들 속에서는 앞말 뒤말에 쑥덕공론까지 가세하여 비하가 섞인 찬반량론이 수풀같다. 게다가 조선족 범죄가 있다하면 매체들이 대서하고 특필하며 부산을 떠는데 반지하방에서 코리안드림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선량한 품팔이꾼들은 범죄집단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불안감에 떨고 있다. 그 때마다 가리봉동은 숨을 죽인다. 거기다 추한 도당으로 백안시되어 그야말로 평판이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서는 가리봉동 일대를 조선족과 중국의 문화를 재현시키는 관광명소로 구축할 계획을 몇번이고 세웠다는 기억이 생생하다.그러나 소식이 알려지면 주민들이 왈딱 일어나 반발하여 더이상 공론화하지 않고 범죄예방시스템 적용과 주거환경을 개선해 나가는데 초점을 맞추기로하였다는 소리다. 우선 주민들 수용이 어려운 상황을 해소하고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은후 사업을 추진한다는것이다. 반대자들이 눈에 빨간 불을 켜고 덤비는 주요원인이 비위생적 생활관습이었다는 전언이다. 자기의 추락된 이미지변신을 위해 조선족 지성인들의 움직임도 열렬하게 활발하다. 그들은 가리봉동을 화합과 공존의 동포타운으로 조성하자며 대림동 곳곳을 누비며 편견깨기에 나선다.공존의 해법을 찾기에 앞서 담배꽁초 버리지 않기, 내집 문앞쓸기, 쓰레기무단투기 방지, 범죄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는 메세지다. 일상 생활에서부터 현지인들의 조류에 합류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현대인의 개명한 모습으로 한국 앞에 나선다면 적어도 절반 이상의 불편한 이미지를 불식한다고 웨치는 사람이 다수이다. 한국인의 멸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조선족의 반감 정서도 상당하다. 물론 원인은 복잡할것이나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그 땅을 밟은 우리들은 하듯 곁사람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우선 나로부터 어수선한 생활습관의 향상에 목숨을 걸고 노력해야 한다. 주민들은 가슴을 열고 포옹할것이다. 깨끗한 놈 욕하는 세상은 없다더라. 자기 사는 뜰의 가꾸기 여부에는 그 내면세계의 정서, 취향과 생활에 대한 태도가 투영된다. 정갈한 모습으로 문명한 환경정신을 내비칠때 조선족은 위상이 향상되고 가치가 승화될것이다. 조선족은 가리봉동의 환경 보전을 위해 주인다운 무한책임을 질 때이다. . 전개해 말한다면 모범 중이 되라! 결국은 돈이 될것이다. 연변일보 2016-1-20  
30    남이 본 조선족 댓글:  조회:3326  추천:3  2015-12-24
중한 자유무역협정(FTA)이 오는 20일부터 발효한다. 이 상리공생(相利共生)적 조약의 체결을 계기로 두 나라 경제문화 교류에는 전례없던 가속이 붙게 될 전망이다.중국으로 말하면 국가별 무역에서 포괄된 범위가 제일 넓고 교역액이 최고인 량자무역일 뿐만 아니라 대외경제교류 분야에서도 본보기도안과 대표적모델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그 득실에 대하여 각자위심(各自为心)으로 여러가지 견해가 있으나 두 나라 관계의 발전에 긍정에너지(正能量)가 만재될 것이란 시각만은 일치하다. 돛을 다는데 순풍인가.이 동네 보스들은 그 나라 귀빈들이 온다하면 길을 쓸어 안내하면서 지역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이 고장은 이란 부귀영화 3대 요소가 갖춰진 무릉도원인데 이 옥토에 돈씨만 뿌리면 십중팔구 어거리풍년이라고 호언한다. 셈수가 빠른 장사군들도 뒤를 따라 잰걸음하며 래빈들의 손을 잡고 파트너십(合作关系) 건립에 열을 올린다. 여기로 큰길이 지나는데 바로 유러시아대륙의 실크로드 요충지가 된다며 합작지려(合作之旅)의 슬로건을 게양하기도 한다.몸놀림이 잽싼 약보들은 두 나라 우호발전의 전성기가 도래했다며 치밀한 합동작전계획을 짜고 있다.   덩어리일감을 앞에 두고 많은 업체들이 업무를 감당할 조선족 인재물색에 나서고 있다. 항만의 한 회사는 한국 업체와 교류사업 확대에 시동을 걸었는데 기존 담당자들의 언어 기능의 미달로 업무들이 들이닥치면 임무 완성이 안되고 차질을 연이어 빚는다고 투덜거린다.어느 대외경제무역 부서에서도 중한교류 관련업무는 폭증하는데 기존 담당자들의 일처리 지연되고 착오가 빈발하는데 그 비상책으로 조선족에게 위임하였더니 맡은 일을 해버리고 놀아버린다며 실토정하였다.할일이 많아 적임자인 조선족에 눈길이 모아지는데 언어의 숙련자 물색이 어렵다 한다. 그건 그렇고,오늘의 조선족 사회는 인구격감과 문화위축으로 하여 민족존망의 고민이 깊은지 오래고 역시 현재진행형이다.90년대 초반부터 벌어진 조선족의 대이동은 인구의 격감,생육의 기피,민족어의 외면,공동체의 해체 등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민족은 몸부림치고 외부세계는 네가 살아 가겠냐!라며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력사 변화에 동반한 진통이라고 말하지만 확연히 보는 손해는 조선어 천대의 결과로 민족 인재의 단층(断层)이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언어를 위시한 민족문화의 자산을 상속할 승계인이 없다면 민족의 멸망 이외의 결과는 없을 것이다. 이런 때, 중한FTA의 체결로 조선족 사회가 가파른 하강선을 그리다 밑바닥을 치고 반등(触底反弹)한다는 기대가 부풀고 민족사회 재도약의 세기가 도래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진다.조선족이 살아가는 나라적 우세와 이미 보유한 경제력과 문화력(언어가 핵심)을 잘 결집하여 종합민족력(综合民族力)을 재형성시킨다면 FTA는 우리가 우수 민족으로 발돋음하는 새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조선족 사회가 오래동안 저조의 늪에서 헤매였다면 자유무역이 뒷바침된 국제교류에서 우리의 경제력,문화력,지정학우세란 장점은 민족사회를 이끄는 삼두마차(三头马车)로 되어 그의 혁명적 변혁을 초래한다고 인정하는 사람도 푸슬하다. 중한FTA는 민족문화 회귀의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다.동네 유일한 조선족 학교에서는 희망생들이 급증하는데 비해 시설의 태부족으로 걱정인데다 타민족마저 어거지를 쓰며 들이민다고 하소연한다.조선어를 배워두면 이익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판단이다.하물며 교학질이 높고 진학률이 높기로 정평이 나있는 데야….우습게도40대 친구가 제 골이 얼마 큰 것도 모르며 민족어 공부를 한다하기에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무정세월에 생계가 급하여 사위를 볼사이가 없었다면 오늘에 나타나는 이런 단면은 그 사회의 소생을 불러오는 조짐이 아닐가. 일전 대외교류분야에서 몇십년을 몸을 담갔던 친구와 조선족에 대해 담론한 적이 있다.그는 조선족의 언어와 문화는 중한 두 나라 교류의 마당에서 누구도 비교 안되고 대체도 안되는 보귀한 자원이라며 혀를 찼다. 조선족은 자신의 문화가치만으로 중국 내지는 세계에서 부자로 살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찬사를 쏟으며 부러움을 나타냈다.문제점이라면 제절로 제 문화의 가치를 홀시하고 자기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의지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시대는 국경선이 나날이 희미해지고 공간거리도 무의미해 지는 디지털시대이다.조선족은 자신의 고유문화 특히 언어란 무기를 잘 활용한다면 경제강족(经济强族)에다 문화강족(文化强族)으로 급격히 부상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을 발전시키고 나라에 기여하고도 남의 존중을 받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둘 것이다. 세계화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부침하는 조선족 사회에 발전의 새 전기(转机)가 열릴 것인가!  (끝)2015-12-15 연변일보 2015-12-23
29    잃은 것,잃는 것,잃을 것 댓글:  조회:2793  추천:0  2015-12-10
     김인섭   “사회발전에 동반하여 낡은 물건에 대하여 구닥다리 처분을 진행하고 새 건물을 신축하는 개발은 불가피할 것이나 선조들의 지혜와 지성이 담긴 유적 전부에 불도저를 마구잡이로 들이댔다면 이것은 력사와 문화를 산산히 짓부시는 우행이 아닐 수 없다.” 1966년 7월,선생님의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소학교 문을 나설 때 우리는 이것이 정규교육의 종막이었다는 것을 알수 없는 10대 초반 철부지었다. 이후는 10년의 문화혁명, 인생의 유일한 황금기인데 우리는 어쩔수없이 이 이벤트 속에서 방황과 혼돈의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더덜이없는 봉시불행(逢时不幸)에다 재수도 없는 타조세대라 말한다.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 허탈감으로 하여 동기생들이 모인 장소마다에서는 이 아픔을 호소하는 넋두리가 다반상담(茶饭常谈)으로 되었다.하여 소학교는 우리 맘속의 영원한 성당이고 추억을 낚아올리는 조어대(钓鱼台)로 되는 것이다. 근간에 볼일로 고향에 갔다가 모교가 문뜩 그리워져 찾아보고 말았다. 학교는 연길 서쪽의 작은 진에 있는데 1928년 설립된 유구한 력사와 수많은 후대를 키원낸 성공탑으로하여 졸업생들에게는 애시적의 자긍과 회억을 담아놓은 회고의 호수로 된지 오래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 기억을 더듬으며 보니 옛적의 모습이라면 그 때의 벽돌 한 조각도 없는 것이고 파란만장의 력사를 자랑하던 아름드리 백양나무와 운동장 주위를 감쌌던 수목들도 깔끔하게 흔적을 감추었다. 으리으리한 기세를 자랑하는 교사는 분명 유적지를 전부 잃은 현재의 학교일 뿐 맘속의 학교가 아니었다. 옛모습을 안고 떠나며 모교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는 상실감으로 쓸쓸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분명 내 유소년 시절의 희노애락이 숱하게 담겨 있었다. 사회발전에 동반하여 낡은 물건에 대하여 구닥다리 처분을 진행하고 새 건물을 신축하는 개발은 불가피할 것이나 선조들의 지혜와 지성이 담긴 유적 전부에 불도저를 마구잡이로 들이댔다면 이것은 력사와문화를 산산히 짓부시는 우행이 아닐 수 없다. 늘 되뇌이는 리치대로 말하면 도시 개발에는 력사의 보존이란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건설과 보존은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 중에서도 일반 상식일 것이다. 이것은 누구가 아닌 누구나 지켜야 할 사명임을 알아야 하는데 지내 몰라 이랬을가? 치적이나 돈에 혈안이 되어 이러이러하다면 어디가 어지간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 현재도 돈벌이를 위한 무차별 철거가 비일비재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력사와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건설 이 역시 현대화 건설이라는 점과 이는 당사자들의 신성한 책임임을 더 부르짖어야 할 때인 같다. 변혁이 목표로 되었다면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에 대한 보호도 목표중의 목표라는 이 진리를 망각하지 말아야 마땅하다. 눈앞의 리익만을 위하여 문화의 가치를 걸레쪽 같이 취급한다면 현대 하등인의 발상 이하는 아니이다. 세세대대 인민들의 노력과 세월이 쌓아온 침적물을 두두려 마슬 때 약간의 사정이라도 본다면 력사를 이어갈 후세에 무가지보의 정신 유산을 남겨줄 수 있다. 현실을 보면 도시 개발의 충동이 계속 암장마냥 꿈틀거리다가 세차게 분출하군 한다. 허나 력사를 릉멸하는 비문화적 작태가 후세들에게 전승된다면 오늘의 이 학교도 때가 되면 누가 휘두르는 함마의 강타에 배기지 못할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오늘 행실이 력사 훼멸의 악성 순환을 자초할 것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살아온 흔적을 싹 지우고 선배의 업적을 빈손 털듯 털어버린다면 이 방자한 행동에 누군가 시비를 걸고 트집이라도 잡았다면 응당하다.도시개발을 표방한 떠들썩한 파티 속에서 문화 전승과 력사의 보존이라는 현대문명의 하한선만은 지켜야 한다. 심리 상태가 일그러진 욕가마리 착상인지는 모르나 고대광실 같은 교사가 엄청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잃어버린 문화유산이 너무도 가석한 것이다. 우리 후대들은 영고성쇄의 력사속에서 우수한 것은 양기하고 저렬한 것들을 포기하면서, 숭고한 전통의 혼을 잃고 콩크리트 궤짝 같은 껍질만 움켜쥐고 살아가는 문화 가난뱅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다. 잃은 것이 아깝고 잃는 것이 안타깝고 잃을 것도 군걱정이다. 선조의 고적과 내 살던 흔적을 넘겨주기 위하여 돈에 눈이 뒤짚이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모두가 도정신해야 한다. 성야(星夜)에서 성광(星光)이 반짝이듯 사람이 사는 곳마다에 력사 모습을 감입(嵌入)시키자 한다면 터무니없는 남가일몽이라고 누가 삐쭉거릴지는 모르겠다. 연변일보 2015-12-9  
28    개천의 룡도 룡으로 된다 댓글:  조회:2917  추천:2  2015-10-15
  어려운 환경이나 가난의 설음을 극복하면서 혁혁한 업적을 일궈내고 비범한 천재성을 도두보이면 사람들은 이라고 말합니다.그런데 탈없던 이 말이 호의호식한다는 오늘에 진부한 잠꼬대라는 메시지가 자주 전해옵니다. 지금 돈이 없으면 개천의 룡은 미꾸라지 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돈이 맹위를 과시하는 때 교육과 인재 양성에서 나타나는 이상 상황을 빗대어 말하는 것입니다. 빈자와 부자 사이의 가름막이 커지고 두 계층 사이에 저지선이 형성되어 세불량립으로 고착된다는 사람들의 걱정도 모아산 만큼은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젊은 친구에게 는 속담을 설교하다가 코를 떼운 적이 있습니다.돈이 있으면 귀신과도 테거멀(铁哥们-절친)을 만들어 무소불위 행세를 할수 있고 끈끈하던 사랑도 돈이 따르지 못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세태인데 구차한 놈은 고생해도 차례지는 것은 고생바가지라며 그럴듯한 억지를 부렸습니다.이 세월엔 금전만능은 몰라도 금전오천능은 된다며 빈정거렸습니다.이것은 보이는 사실이지만 보는 시각에 큰 편차가 있다고 생각되어 무언가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확실히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돈의 홍수 속에서 몸부림치며 하나뿐인 목숨을 돈에 걸고 사는 듯합니다.고고성을 울리며 세상을 본 시각부터 돈이 나가는데 그 위력에 굽신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돈뭉치를 휘두르며 거만을 떠는 위인들도 상당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로보고 있습니다. 돈으로 사회정의마저도 마구 짓밟고 남을 해치는 음해행위도 종종 발생하여 정직한 사람들의 눈이 찌프러지기도 합니다. 돈의 힘으로 욕망과 욕정을 기껏 휘두르며 권력도 자가용 핸들 움직이듯 하는 부류들이 백일하에 폭로되어 비싼 대가를 치르게되는 뉴스도 빈발합니다. 마치 이 사회의 일상일사를 표준화 해줄 수 있는 건 돈 밖에 없는 같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짓거리들의 야비함은 발가도리 아이들도 다 아는 몰상식 행위입니다. 그래도 돈이면 다 되는 세월이 아닌 같습니다. 전일 산서성 장치시 한 산골의 극빈 가정에서 두 남매가 동시에 명문대에 입학하여 심심 산골은 흥분의 도가니에 들어갔습니다. 중병에 사로잡힌 부모님이 생사를 걸고 모은 돈이 학비 어방도 안 되는데 지역 사회에서 지원의 손길을 뻗쳤고 어느 기업의 업주가 헌금을 내밀었습니다. 가난한 촌민들도 한푼두푼 각출하여 애들이 대학 꿈을 이뤄줬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뜨거웠습니다.그 토굴막 집안을 보니 텔레비도 없었고 헌 나무조각을 무어만든 침대 위에 헌 이불 몇채가 보이였습니다. 그래도 낡은 벽을 감싼 애들의 상장이 어두운 삶에 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등교하는 날 초라한 촌민들의 환송리에 무거운 걸음을 내디디는 가난한 아이들의 뒤모습에서 이 사회의 심처에는 얼마나 위대한 인류애가 암장되었는가를 보았습니다. 이 사랑의 파도 앞에서 재부를 뽐내는 슬기럽지도 못한 짓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소행인지도 모릅니다. 사회의 복잡한 모순 속에는 인재가 나갈길이 갈래갈래로 있고 미래의 사회는 당신을 위하여 광활한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명증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축도이기도 합니다. 한 개인의 돈이란 원래 의미의 로동 소득으로서 많다적다 가타부타할 시비거리도 아닙니다. 문제는 돈으로 공공 원칙이나 권력을 사 가지고 비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돈으로 정의를 릉멸하며 돈을 받고 반칙에 눈은 감아 준다거나 심지어 두 다리로 뛰어야 할 달리기경주임에도 불구하고 모터지클로 앞지르며 리속을 챙긴다는 것입니다. 분명 해빛 그늘에서 발생하는 역류이고 음지에서 자라는 독버섯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회 물결 속의 하찮은 존재로서 인간의 지탄과 법제의 강타격을 받으며 존속하고 있습니다. 개구쟁이 동자들까지 손가락총질하는 비행들이죠. 는 본 화제로 돌아옵니다.룡이란 이름을 날리고 권력을 거머쥐거나 떼돈을 번 쪽으로 시각을 돌린다면 그 보편개념의 의미를 일탈하게 됩니다. 거물을 말한다면 몇 명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시대가 말하는 룡은 자기 기능으로 업적을 쌓았다는 인재들이고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출중하게 한다는 인걸입니다. 보검이 보검일진대 구멍을 뚫는데는 끌에 비견이 안되고 봉황이 찬란한 모습을 보여도 진드기 잡이에서는 참새와 병견이 안되는 사실입니다. 정보시대의 룡의 표준은 산데미 같은 재부를 점유하거나 이름을 날리며 불호령을 내리는 힘장수가 아닙니다. 최고 정밀도와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낸다면 바로 룡인 것입니다. 가난이 인재가 못되는 리유가 절대 아닌 디지털 시대임을 반복합니다. 현시대에서는 대소를 막론하고 그 분야의 최고라면 동일한 룡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지금 재부로 인한 기회의 불균등이 많이 화제로 되고 있습니다. 기회균등이란 어느 사회나 바라는 리상이지만 완전무결하게 이뤄진 력사나 시대는 없습니다. 아무튼 돈의 힘에 따라 여러가지 차이와 차별이 생기는 건 불가피적이고 누구나 감수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교육과 인재 문제에서의 불민한 행실은 그 독성과 악취가 아무리 진동하더라도 인재의 나갈 길을 막은 적이 없습니다.동일한 조건에서 권력과 금력이 음성적 작용을 할지라도 결국 노력 의지와 지혜가 있어야만 성공을 이뤘다는 력사였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노력이 운명을 개변시키는 무수한 사례는 두고봐야 할 귀감입니다. 개천의 룡을 룡으로 만드는 국가적 노력이 멈춰진 적이 없고 인민이 인재에 대한 기대도 작아진 적이 없으며 사회의 여러 갈래의 지원도 많아질 뿐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비록 여러가지 여의치못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력사에서 룡의 사회적 진출에 푸른등을 켜고 있다는 사실이 영구불변하였다는 사실(史实)만은 확신하여야 합니다. 뜻이 있는 자라면 는 진리를 곰곰히 새겨두고 기정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 에 나라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연변일보 2015-10-15  
27    싱거운 소리 댓글:  조회:3459  추천:0  2015-05-18
사이트에서 자색을 자랑하는 어느 미인의 과거 사진을 보고 어제오늘의 왕청같은 생김새에 놀란게 아니라 경악했다.오리를 백조로 탈바꿈시켰다는 옛말도 현실로 되는구나는 느낌을 새삼스레 받으며 창상세계의 변화불측을 직감하였다. 그런데 걱정도 팔자인 싱겁쟁이 발상인가 이런 탈바꿈식 성형이 도를 넘지않냐는 생각이 뇌리에서 굴러다녔다. 원초적인 성형은 인체 조직의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기형이나 변형을 조절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외과수술로서 인체의 기능을 제고하고 본인의 렬등감을 해소하고 그들의 사회진출을 추진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어 왔다. 이는 인간 생활에서 불가결의 의료 행위로서 과학과 사회적 면에서 일진월보를 지속하고 있으니 찬미할지언정 시야비야를 주문할리가 없다. 건데 요즘 좀 이상해지고 있다.어느 탐미(耽美)적 마니아는 의사에게 부탁하여 유명 탈렌트를 본따 시술하였는데 쌍둥이일 정도로 흡사하여 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수다한 사람들이 이른바 아름다움을 위하여 멀쩡하던 외모마저 마구 뜯어고치는 성향이 갈수록 세지고 있는가하면 이젠 사회일반에 확산되어 신신펀펀한 얼굴에 도메스를 마구 들이대는 경향이 범람하는 추세이다. 가타부타 해봐야 될일이 아닐까 본다. 성형을 감행하는 류행은 연예인들이 선두주자라는 일반적 소문이다. 그들의 상당수는 탈렌트 위치를 점거하기 위하여 거금을 쾌척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변용하며 성별전환마저도 서슴없이 단행하고 있다. 아무리 외모가 으뜸이라도 등단의 경쟁에서 외모지상주의가 관철된다면 자연미모의 후보자가 탈락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이것은 륙상경기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우승하거나 수영경기에서 모터보트를 몰고 이기는 경우와 흡사한 비정상적 불공정경쟁이 아니겠는가. 취업성형이란 말이 있다. 취직이나 사회서열의 결정에서 생김새가 우선 작용을 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실력과 외모가 버금버금하는 두 경쟁자중 성형한 상대가 뽑히게 되는데 미성형자는 기준 이외의 불합리 요소에 의하여 탈락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외모가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세상사는 부인할 수도 없겠으나 일의 효용을 무시하고 허영을 추구하는 내허외식적 가치관은 무작정 정상적 생리를 짓밟는 현상을 부추기게 된다. 일이 더 고와야 할 세월이다. 어느 나라의 미인 선발에서 승석한 얼짱의 거의 전부가 용모가 비슷하여 인조미인천국이라던 대중들의 비아냥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그 나라를 한데 싸잡아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그곳의 미인이라면 무작정 모조품이라 정평을 내리는 부정적 이미지가 이 땅에서 고착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수한 전통 문화에마저 먹물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이란 별호가 따라오고 민족적 순수미가 흐려지고 있으니 고민할바이다. 과학으로서의 성형은 건강과 행복을 가져오고 문화 향기를 뿜어내는 도구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된다. 이는 생활에서의 필수이고 인간의 천부적 추구를 만족시키는 문화 으로서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지만 개인적 합법적 권리내의 행위이다. 그러니 누가 암만 수군거리며 소리굿을 하여도 법적이나 도덕적으로 참견하거나 말릴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하물며 내 돈으로 내 몸을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야…. 사실이 이러하니 여기다 누가 빈정거린다면 자색을 위하여 광분하는 멋쟁이들과 그 서비스에서 실익을 챙기는 부류들의 면박이 앞뒤로 비거비래(飛去飛來) 할 것은 리소당연(理所當然)이다. 다만 라는 궁색한 답변뿐이다. 연변일보 2015년 5월 13일자  
26    을미 초하룻날 대담(对谈) 댓글:  조회:3065  추천:0  2015-03-06
젊음을 불사르며 고생에 생고생이 거듭되는 세고(世苦) 속을 살아오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세신(岁新) 때면 매나니 밸이 꼬이었습니다.이란 허수한 심통이었던지 원인불명의 심술이 났었습니다.그런데 이 음력설의 내가 이상해 졌습니다.차례진 밥이나 제구 먹는 주제에 밝아온 을미년을 맨발로 뛰어나가 맞아 오고 천하를 굽어보는 용맹을 부렸습니다.거기다 내밀 게 없는 빈손을 뒷등에 감추면서도 이 한 해 이 땅에서 동정식(同鼎食)하며 살아갈 지인(知人)들과 제인(诸人)들에게 축복을 보내는 허세를 부리고 싶어졌습니다. 신년의 지지(地支)에다 선조들은 청양해란 띠이름을 따다 붙혔지요. 양들은 성품이 착하고 온화하며 있는 대로 나눠먹고 추우면 도리뭉치어 차진 몸을 녹이면서 단란하게 살아갑니다.그들은 인류와 다른 갈래이지만 친목만 주장하는 평화의 신봉자로서 인간에게 각인된지 오랩니다.연유하여 양띠 태생은 어질고 유순하며 관용、성실、인내로 넘칠 인간이라 사람들은 점을 치죠.이대로 류추하면 올해의 사람 무리는 양순한 양처럼 뭉치어 상부상조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이해의 우리 세상이 함께살이 태평성세가 되라고 기원한다면 잠을 자야 보게되는 몽세(梦世)의 꿈일가요! 혁신을 거친 우리나라에는 뽕밭이 호호바다로 된 변천이 일어났습니다.사람들은 부른 배를 슬슬 만지며 호의호식 시대색을 홍두깨 같이 자랑합니다.좀 출출한 기분이라면 GDP(국내총생산)를 최고선으로 압축성장을 해온 뒤안길에 이상발효(异常发酵)의 적폐물이 적치되어 훔쳐 볼 수만 없다는 것입니다.적자(适者)만 생존한다는 생물리론을 신조화하고 인간사회에 대입하여 일부는 벼락치듯 부를 쌓았는데 그에 밀려난 근로층들이 외면당하여 빈부 갈등의 박테리아가 상생한다는 인간가치를 속식(速食)하고 있습니다. 돈에 혈안이 된 장사치들은 하늘을 희뿌였게,식수를 독스럽게,공기마저 혼탁하게 휘저어 놓는데 사욕에 무감각해 진 두손을 아직도 떼기 아쉬워합니다.무수한 성장통(成长痛) 질병들,우리는 아픔을 참고 병집을 도려내야 하며 단결애국이란 국가철학을 추켜들고 개혁의 기정 목표를 향해 나가자! 3창을 불러야 되겠습니다. 이라 흐물거리는 량반들은 철부지 잠꼬대라 코웃음을 칠 것이지만 그래도 검은손이 조금이야 떨리겠죠! 요즘 오르 듯 부패 응징의 빅뉴스들이 매일 전해와 기분이 개운합니다.음습한 그늘에서 남의 돈에 거친 손을 뻗치는 벼슬아치들을 가시눈으로 봐온지 언제던가요.이 간세지배들이 된매에 얻어맞고 눈물범벅이 된 난감한 모습도 심심찮게 보이지만 무작정 바쳐야 할 죗값이기에 용서쯤이야 잠나라에는 있겠지요.그쯤 자리에 올랐으면 뢰봉、초유록을 따라 배우라며 선량한 백성을 얼마나 몰아세웠을까요. 당신네 부패 귀족들이 로 패거리를 지어 세력을 확충하며 피운 야비한 수작은 말이 안되고 있습니다.망치가 무르면 못에 찔린다 합니다.우리는 결연한 다짐으로 시정잡배들과 세차게 부딪쳐야 되겠습니다.이 말세 인간들이 쓴 면사포를 양파껍질 벗기듯 야멸차게 까발라버려야 대동단결의 사회가 흩어짐이 없다고 선구자들이 천청만촉(千请万嘱) 하셨지요! 내 후대를 락락장송으로 키우는 건 세상 부모들의 해맑은 기대일 것입니다. 사랑 전부를 한데 달이어 애정을 고아내주고 싶은 아이들이죠. 그래도 을미년 서광이 아이들의 구석구석을 어루쓴다면 더 큰 홍복(洪福)은 바라지 마십시오. 물론 내 자식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싶다는 애자지정은 세포조직으로부터 솟아난 사랑의 엑기스입니다.오늘도 하늘 아래 어시들은 제 피땀이 후대들 내일의 선단 묘약이 되라고 쉴새없이 되뇌일 것입니다.존념(存念)하셔야 될 바라면 무모한 사랑은 쥐여짜도 별로 득이 안 될 것이고 기성세대의 뭉쳐진 뒷모습을 애들께 보여주는 것 역시 값비싼 축복이라는 조상의 당부입니다. 인간의 장수나 무고는 하늘의 소관인데도 어디서는 백세가 청춘일세!라며 어물한 노래를 만들어 냅니다.속절없이 먹는 나이를 숨기려고 상발(霜发) 머리색도 감추려 애를 쓰는 세월이니 그도 그럴 것이라 리해가 갑니다. 피애망상(被爱妄想)은 아니라도 젊음을 만류하려는 유심적 사상과 몽환은 인간의 한결같은 선천적 의지로서 사람에게 영생의 단꿈을 실어다 주고 있지요. 삶은 만들어가며 산다는 징표가 아니일가요. 우리는 생명에 반짝이는 꾸밈새를 끊임없이 감입(嵌入)하며 보기 좋게 살아야합니다. 인생길에서 어느 때 주저앉고 싶다싶으면 더 기를 쓰고 달려가 한살이 최후만찬에 참석해야만 자식들과 남들의 갈채를 받아냅니다. 천하를 굽어봅니다.신선도 못 말리는 테로 복수의 순환극이 끊임없고 질시와 반목으로 네죽고 제죽자의 살륙전이 멈추는 날 없습니다.그 수라장에서 수많은 녀인들과 아기들이 차디찬 이슬로서 사라집니다.눈에 핏발을 세운 추물들이 폭탄을 거머쥐고 으르릉거릴 때 당신의 생모 같은 어머니와 그대의 애기 같은 젓먹이들에게 털의 끝만한 련민이라도 베풀지 못할가요! 용서하면 사라질 증오이고 리해하면 삭아질 분노인데 한치의 련민도 없는 찬피동물 못난이들입니다.이 백장들을 깨우칠 절대자가 그리워집니다.천하가 굽어보는 백일하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참수하는 참극의 극작가들과 슈퍼급 하수인들의 잔학무도를 치유하는 극약은 초강도 물리력 이외 따로 없는가요! 청양의 해,양무리의 생존법칙에서 인류는 뭔가를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평화만이 이시대의 공동강령입니다.새 리념을 앞세우고 구태의연한 구각을 깨버려야 골치아픈 유아독존식 대항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공존、공생、공영이란 세기적 혁명의 길에서 새출발을 해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이를 위하여 멀리를 보되 발부리 돌을 명심하고,발전을 하되 윈윈번영을 추구하고, 립안을 하되 또박또박 실행하는 개명한 모습으로 급변하는 세월과 마주해야만 진정 잘 사는 세상이 만들어 집니다. 움직임이 만만디라고 느림보 아호(雅号)를 달았어도 제노릇이야 건뜻 해재끼는 황소처럼 의젓하게 나간다면 행복이 안 찾아올 리유가 없지요. 초하룻날의 첫 단추가 잘 끼이었는지를 재확인 하시지요. 청양해 행복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우리는 타종봉(打钟棒)을 굳게 잡고 풍진세상을 향해 자유종을 세차게 울려야 하겠습니다. (끝) 2015-03-04 연변일보
25    결혼메모리 댓글:  조회:2877  추천:0  2015-02-23
심심하니 쥐이는대로 책 하나를 빼들고 소일하다가 결혼기념일 이름을 찾아보기 싶어졌다.찰떡금슬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표현력을 길러주려 생각했다. 1주년을 지혼식(紙婚式 : paper wedding)이라고 한다. 선물은 종이로 된 그림이나 책 또는 상품권 등으로 한다. 2주년이 고혼식(藁婚 : straw wedding) 혹은 면혼식(綿婚式 : cotton wedding)이다. 상징 보석은 우애, 총명, 불변, 진리를 뜻하는 가넷(garnet)이고 선물은 무명이나 밀짚으로 만든 제품으로 한다. 3주년이 과혼식(菓婚式 : candy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청순, 순결, 건강, 장수를 뜻하는 진주(pearl)이고, 선물은 과자나 사탕 종류로 알려져 있다. 4주년이 혁혼식(革婚式 : leather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청렴, 결백, 장수, 미, 지성을 의미하는 토파즈(topaz)이고, 선물은 가죽제품으로 한다. 5주년이 목혼식(木婚式 : wooden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행운, 진실, 불변을 뜻하는 사파이어(sapphire)이고, 선물은 나무 제품이다. 10주년이 석혼식(錫婚式 : tin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영원한 사랑, 순수, 고귀를 뜻하는 다이아몬드이고, 선물은 주석(朱錫) 제품이다. 15주년이 동혼식(銅婚式 : copper wedding) 혹은 수정혼식(水晶婚式 : crystal wedding)이고 상징 보석은 열정, 진실, 사랑을 상징하는 수정이며, 선물은 동이나 수정 제품으로 한다. 20주년이 도기혼식(陶器婚式 : china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성실, 친절, 신의, 행복, 행운을 함축하는 에메랄드(emerald)이고, 도자기류를 선물로 준다. 25주년이 은혼식(銀婚式 : silver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은이며 선물 또한 은제품을 준다. 30주년이 진주혼식(眞珠婚式 : pearl wedding) 혹은 상아혼식(象牙婚式 : ivory wedding)이며 상징 보석은 순결, 청순, 건강, 장수를 뜻하는 진주이다. 이 때 선물은 진주나 상아 제품을 준다. 35주년이 산호혼식(珊瑚婚式 : coral wedding) 혹은 비취혼식(jade wedding)이며 상징 보석은 부부의 금슬, 화합을 뜻하는 산호이고 선물은 산호나 비취 제품으로 한다. 40주년이 벽옥혼식(碧玉婚式 : sapphire wedding)이고 상징 보석은 사파이어(靑玉)이며 선물은 사파이어를 준다. 45주년이 옹옥혼식(紅玉婚式 : ruby wedding) 혹은 명주혼식(明紬婚式 : silk wedding)이고 상징 보석으로 루비(鋼玉)이며 선물은 루비나 견직(絹織) 제품으로 한다. 50주년이 금혼식(金婚式 : gold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금이며, 선물은 금제품으로 한다. 55주년이 취옥혼식(翠玉婚式 : emerald wedding)이고 상징 보석은 에메랄드(綠柱石)이며 선물도 비취 종류를 한다. 60주년을 회혼식(回婚式) 또는 회혼례(回婚禮)라고 한다. 한편, 75주년을 금강혼식(金剛婚式 : diamond wedding)이라고 하며, 상징 보석은 영원한 사랑, 순수, 권력, 성공, 안정을 뜻하는 다이아몬드이고 선물도 다이아몬드 제품으로 한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잘 살려면 “3가지의 갑(甲)”을 누려야 한다고 했다. 첫째로: 60살을 살아 ‘회갑(回甲)’을 맞이해야 하고, 둘째로: 결혼하여 부부가 60년을 해로하여 ‘회혼례(回婚禮)’를 맞아야 하고, 셋째로: 과거(科擧)에 합격한 방(榜)이 붙고 벼슬길에 나서 60년 나라의 녹(錄)을 먹는 ‘회방(回榜)’을 맞는 것, 이라고 일렀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한다고 좋은 세상이라는 현실에서 이들 3가지 중에서 몇 가지나 누린 것인지 혹 누릴 것인지 잠간 생각하는 것 쯤도 유머러스한 자아도취일 것 같다. (끝) 2015-02-24일 동북아신문
24    서울행 우감(偶感) 댓글:  조회:3762  추천:0  2015-01-16
네가 가니 나도 간다며 얼낌덜낌에 서울을 오갔어도 볼 일은 본답시고 애꿎은 소주나 축내고 쫓기듯 돌아왔으니 남은 인상이란 뒤적거려도 몇 개 안 남았다.그래도 은연중 불끈거리는 생각이었다면 한국의 3D (힘들고,더럽고,위험한)업종 현장에서 희비애환이 사깔린 비화(悲話)를 연출하는 주연(主演)들과 마주하는 갈망이었다.이번 외출길에서 본 일화에 곁들이어 깜박거리던 생각의 일부를 략필(略筆)로 적어본다. 촌감1.서울의 한 친구에게 약속을 보냈더니 어언간 6、7명이 소만왕림(掃萬枉臨)하여 예고없는 친구 모임이 벌어졌다.고향에선 볼 수나 있을가 하던 친구까지 이국 땅에서 만나니 기쁨은 이를 데 없었다.이들은 모두가 계획경제의 기발 아래서 모범수상을 받아오던 지기들이다.그러나 낡은 체제의 정리에 따라 대책없이 빈곤의 골목길을 걸어야만 했던 그들, 발빈(拔貧)의 묘연한 희망을 품고 한국에로 뜬벌이를 온 것이다.만만찮은 술값을 서로 자기가 치른다고 뻐겨대며 용돈까지 호주머니에 질러주는데 보아하니 여유로운 모습이 확연했다. 이젠 돈도 얼마간 모았고 퇴직비도 어지간하고 애들도 용돈을 월부로 보내니 집에 가면 한국 부자가 부럽잖게 나날을 보내게 된단다.인젠 소일삼아 두 나라 사이를 오간다며 으스댔다. 조선족은 행운을 타고난 민족이다.삶의 으뜸인 생계 근심을 수월스레 털어버릴 수 있다면 어느 민족이 또 있을가? 촌감2. 한 친구는 조선족의 미래를 피력한다.우리는 격변기의 산전수전을 거쳐 경제상에서 중쑬쑬한 소강 단계에 들어섰다.인젠 스러지는 민족 전당(殿堂)의 재축에 힘을 경주함으로서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세계화의 물결과 중국의 발전은 조선족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게다가 한국 땅의 번영은 조선족에게 력사전환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는 항선을 선물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새로운 계단을 만들어 주고 있다.우리는 문화 이질의 갈등에서 헤매던 시기를 초월하여 상부상조하는 새 단계에로 진입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비록 민족 정체성이 요동치고 있지만 해결의 길은 더욱 헌신적으로 한국 사회에 융합하여 경제적 에너지를 확보하고 글로벌네트웍(Global Network)을 구축하면서 고향 건설에 돌입하는 것이다. 차별과 기시에 눌리어 살며 술이나 먹어대고 세상사는 뒷전인 줄로 알았는데 어물한 말재주를 부리기에 이 술고래도 진땀을 빼고 돈깨나 벌더니 사람이 되는구나!고 눈을 비비며 다시 봤다. 촌감3. 어느 명문대를 나온 30대 금실커플이다.원래 북경의 대기업에서 화이트칼라(White-collar)로 근무하다 우월한 조건을 반납하고 강남구에 간이음식점을 차리고 있었다. 종잣돈을 만들고 파트너를 찾아 중국에 본사를 두고 국제무역업에 도전하려는 꿈을 날리고 있었다.중국 사정에 정통하고 한국의 물정을 꿰뚫은 문화 밑천과 지식 경험을 무기로 인생을 빛내려는 당찬 잉꼬부부였다. 세속에서 밑바닥 산업이라 부르는 밥장사 마당에서 서비스에 전념하는 모습이 바로 새 삶을 위하여 풍상고초를 달갑게 감내하는 우리 민족의 축도(縮圖)가 아니겠는가? 식객들을 향해 깍듯한 정지경례(停止敬禮)를 붙이고 안녕、감사、다시 수인사를 련발하는 가상한 뒷모습에다 조선족의 미래상을 그려보았다.. 촌감4. 한 친구의 20대 아들은 건설 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자기는 밑천을 모아 때가 되면 고향에서 사업을 개척하려 한다고 속심을 밝히었다. 일취월장하는 시대를 바라보니 빈곤에서 벗어나고 더 상승하려면 고생은 하더라도 고향이 최적지라고 단언한다.는 게란다.간고하다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인생이 무의미할 것이니 기어이 본 때를 보이겠다는 결심이었다.청춘소년의 결단이 야무지어 말만 들어도 기특했다. 우리 후손들이 언젠가는 련어족(鰱魚族)이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고향을 현대화한 민족의 터전으로 재건할 것이라는 심증을 굳히였다.이것이 어두운 력사 터널을 헤가르며 지나오던 민족혼의 뿌리이겠다. 촌감5.한국인 친구들과 민족 사회를 화제로 올리었다.주제는 한국에서 조선족의 역할과 미래 발전이었다. 한국 친구의 말이다. 서로 소원하던 장벽을 넘어 공존공영의 전성시대를 개척한다는 력설이 공념불(空念佛)이 아닌 것만 같았다. 두만강 하류 지역의 국제적 협력、조선족 경제실력의 증장、중국의 지속적 발전 이 3대 요소는 민족사회의 새로운 구도를 형성시킬 것은 틀림없다.고향의 새 청사진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여담으로.한국 땅을 전전하는 친구들의 생존투쟁은 현재도 진행형이다.반갑다고 우쭐하는 내심은 진심이지만 발빈(拔貧) 전쟁의 최후 승리를 취득하지 못한 실상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부평들이 류리방황(流離彷徨)의 가파른 오름길을 언제까지 걸어야 하고 고향에 돌아와 허리띠를 늦추는 수수한 꿈은 어느 왕갑년(往甲年)에 이루어 질가? 볼품없이 비어가는 고향을 서울에서 바라보니 더 참담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아마도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평초같은 떠돌이 살이를 해야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가 보다.그래도 위안이라면 조선족 특색을 가진 새 민족사회의 맹아가 분명히 우저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때고 이 가물든 땅에 해춘(解春)이 찾아오면 시들하던 애기싹들이 우후죽순마냥 숲을 이루며 넘실댈 것이다. (끝) 2014-06-042015-01-08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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