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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수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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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대현 수석시조 3수 댓글:  조회:5148  추천:97  2005-06-17
◈이런줄 알아주소◈탐석행 가는길에 미녀가 기다려도눈 한번 팔지 않고 갈길만 재촉하니수석에 깃든 애정이 이런줄 알아주소◈취미생활◈수석에 정이 드니 안해가 멀어지고 수석에 매혹되니 목란꽃 미워지네참으로 알고도 모를 인간의 취미생활◈일생일석(一生一石)◈돌아닌 수석이야 어드메 있을손가흔하게 돌이래도 수석은 흔치않아일생에 일석인줄 잊지를 말아주소
6    수필 - 수석 "선바위"와의 만남 댓글:  조회:5123  추천:78  2005-06-10
수 필 수석 “선바위”와의 만남 리 함 이 가을에 잡아들어 룡정향토순례차로 룡정땅 륙도하반의 명동일대에 자주 다니게 된다. 명동에 드나들려면 꼭 선바위를 지나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감 수가 새롭다. 이런 감수에 힘 입어서인지 선바위골 어구 강가와 부근에서 대자연의 걸작인 선바위 수석몇점을 탐석한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수 없다. 산과 들에 신록이 짙어가던 지난해 초여름의 어느날, 나는 유서깊은 선바위를 사진렌즈에 담을겸 탐석행으로 선바위골로 갔다. 선바위골이란 나만의 호칭인데 실상은 선바위앞에서 륙도하에 흘러드는 신동골 강물을 말한다. 말이 강이지 우기를 제외한 평소는 얌전한 색시마냥 조용히 흐르는 한낱 시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름난 수석산지여서 가끔 명석이 탐석되군 한다. 그만큼 수석인들이 발길이 가닿는 강이기도 하다. 신동골은 수풀이 무성한 골안, 서남쪽으로 한 30리 올리뻗었다고 한다. 인가가 희소한 깊은골이여서 나는 고작 가보았대야 10여리 길뿐인데 지난해 그날만은 어쩐지 둥둥 뜨는 기분이였다. 아마도 선바위에서 미쳐오는 미지의 무언의 힘 같았다. 꽤나 넓어보이는 신동골어구의 돌밭이 나를 반겨맞았다. 돌밭 두세곳을 지났을가, 저 앞은 벌써 강폭, 골안폭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하긴 수석산지가 여전한데다가 수풀이 우거지고 강물이 맑아 기분이 비할데 없이 좋았다. 물장구치려고 강물에 들어서는데 뭔가 오석같은 수석한점이 강가에 댕그라니 누워있질 않겠는가, 심장이 툭 튀는것만 같아 무작정 눈을 감아버렸다. (오, 대자연 선바위어른님, 저희에게 당신을 닮은 꼬마 수석한점 하사하는거옵니까?) 높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숨을 조절하다가 한참만에 눈을 떠보니 에누리없는 수석한점이다. 얼마전만 해도 수량이 많아 물에 잠겨있던것인데 물이 줄자 수면이 내려가면서 드러났던 모양이다. 꿈만 같았다. 그래도 덥석 잡을념을 못했다. 진짜 수석을 앞에 두고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것이 수석인의 마음인가보다. 한겻이 지나서야 나는 수석을 안아들고 이리저리 어루쓸다가 그 자리에 내려놓고 련속 샤따를 눌렀다. 기념을 남기고싶었다. 이렇게 찍은것이 이글에 올리는 강가수석이다. 재수좋은 날, 나는 탐석을 더 하다말고 그 수석을 배낭에 지고 만세소리속에서 귀로에 올랐다. 그때로부터 나한테는 귀한 수석한점이 더 늘어났다. 좌대를 깍는 사람이 마땅치 않아 수반에 놓았는데 그래도 좋았다. 어쩌면 달리는 준마의 말사등같기도 하고 어쩌면 작은 화분속에 축소시킨 대자연의 아름다운 산수같기도 하였다. 헌데 여러 수석친구들이 집에 다녀가며 괜찮다고는 해도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늘 맘에 걸리였으나 그 원인이 수석의 기본상식으로 되는 날세우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데 있다는것에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다. 수석세계에서는 수석의 날세우기를 연출이라고도 하는데 날세우기든 연출이든 같은 개념으로서 한 수석이 갖고있는 장점을 찾아내여 그것을 최고로 살리는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렇듯 중요한 날세우기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 말사등같은 하나의 산수로만 보고 가로 눕혀만 놓았으니 남들의 눈길을 끌리가 만무했다. 같은 수석이라 해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 수석개념이 다르고 수석을 즐기는 심미관이 다르다. 우리 중국에서 수석을 기석(奇石)이라고 할때 일본에서는 수석(水石)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수석(壽石)이라고 하는것이 그 리치이다. 말이 없는 돌에도 스스로의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돌에도 생명이 있다며 목숨 수(壽)자를 칭하는 한국인들의 진지한 태도에 탄복이 간다. 그네들은 중국인들이 돌에 그려진 자연의 회화라고 흔히 문양석을 선호할 때 자기들은 수석은 산수경석의 략칭이라면서 산수석에 짙은 흥미를 가진다. 산수석은 한국인들의 수석관이라 해도 무방할것 같다. 한국의 수석인들은 한점의 수석에서도 대자연의 멋을 여러가지 경치로 련상하면서 그 찡한 진미를 맛보고 즐기는데 나는 이런 특유의 심미관마저 갖추지 못했다. 말하자면 여러가지 종합지식을 요하는 수석에 입문하지도 못한 아마츄어에 불과했다. 참다운 수석인이 된다는것이 쉽지 않다면 참다운 탐석인이 된다는것도 쉬운일이 아니다. 탐석을 즐기는 수석인들은 흔히 연변의 수석탐석은 두만강에서 시작되여 두만강에서 끝을 본다고들 했다. 우리 고장의 수석산지는 무엇무엇해도 두만강이 으뜸이라는 말이 된다. 헌데 기이하게도 남들이 알아주는, 나에게서 손꼽히는 명석은 두만강이 아닌 륙도하로 통하고있으니 유서깊은 자연의 섭리라 할가.어언 한해가 흘러갔다. 또 몇달이 더 흐른 이 가을 따라 선바위에 빠지고 명동의 유적지들에 빠져 들락날락하니 명동골어구의 유서깊은 선바위가 전에없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러던 차 오늘 아침, 뭔가 뇌리를 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오랜만에 선바위골 수석을 이저리 모양새를 바꾸며 연출해보았다. 늦게나마 날세우기에 들어간것이다. 내가 한창 잔모래를 담은 깊숙한 수반에 척 세워놓고 수석의 새모습감상에 여념없는데 안해가 불쑥 대자연의 장엄한 립석이라며 찬탄을 련발했다. (립석? 그래 바로 이거다!) 나는 벌떠덕 일어났다. 그야말로 대자연이 하사한 그림같은 선바위였다. 산수미의 장엄한 세계가 저산이 아닌 내 집안에 펼쳐졌다. 대자연의 산수를 바로 눈앞에 두고 즐기는 내마음은 진짜 수석인이 된 기분이였다. 작은것에 큰 경치가 있다고 나는 때늦게야 선바위골수석한테 수석 선바위란 최고의 위치를 살려주었다. 그대로 두면 산수석이요, 엎지르면 수문석이요, 세워놓으면 선바위라 진짜 돌과 인간과의 만남, 아니, 수석과 나와의 만남이였다. 선바위라는 수석명은 이렇게 탄생했다. 즐기는 애장석에 이름을 부치는것은 사랑하는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주는것과 같은 리치로서 그야말로 뜻깊고 재미있는 일이렸다. 그런 뜻에서 우리 두만강수석회 신철호선생은 수석을 의인화하면서 《부모, 형제, 처자, 수석은 나의 혈육》이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이름을 부치니 수석의 품위가 한결 높아지고 련상의 폭이 보다 넓어진다. 이때에야 나는 수석의 이름은 말그대로 단 그 수석만의것일 때 비로소 가치가 있고 살아난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 산천경개가 삐여나고 유구한 문화를 자랑하는곳에 수석이 난다더니 조금도 그른데없는것 같다. 선바위골에서 선바위수석을 탐석한 뒤 나는 선바위북쪽 륙도하에서 차도가 있긴 하나 또 두점의 선바위를 탐석했다. 그중 내가 꼬마선바위라고 부르는 수석은 먼저의 어른 선바위처럼 가로 놓으면 망망한 바다가 바위산이요, 세로 세우면 하늘을 떠이는 립석(立石)—선바위이고 다른 한점은 말없이 명동골어구 선바위를 또옥 떼여닮은 장엄하고도 웅장한 옹근 바위산—선바위였다. 하기에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륙도하 수석 선바위 세점을 친자식인양 지극히 아끼며 사랑을 몰붓는다. 집안에 앉아 축소된 대자연의 산수경치를 감상하는 재미는 수석인이 아니고는 느낄수 없는 나만이 즐거움이다. 누군가는 돌이야말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간직한 지구우의 형성체라고 했다. 천연의 소산인 수석 한점의 형성이 수천수백만년, 그것이 미적대상인 하많은 돌중의 행운아 수석으로 이루어지는 나와의 만남과 대화, 참으로 신기하고도 멋진 일이다. (2004년 가을)
5    탐석행의 기쁨과 재미 댓글:  조회:4636  추천:119  2005-06-10
탐석행의 기쁨과 재미 김 봉 세 등산애호가들이 산을 즐기듯이 수석인들은 탐석을 즐긴다. 탐석이란 자기 스스로 수석산지를 찾아 수석이 될만한 돌들을 줏는것을 말한다. 명석품이 될만한 수석 한점을 주을 때의 그 기쁨은 한량없는것이다. 수석애호가들에 의하면 탐석행의 기쁨과 재미는 크게 아래의 몇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지 않을가 한다. 첫째는 탐석은 말그대로 려행이다. 수석은 흔히 산수가 삐여난 곳에서 나타나기가 마련인데 혼자나 여럿이 도시락을 싸들고 수석을 찾아 산좋고 물좋고 경치좋고 공기좋은 곳으로 가는 그 멋이 별멋이다. 수석애호가들에게 있어서 번마다의 탐석행은 번마다의 려행과 같다. 둘째는 신체건강이다. 등산을 견지하는 사람들에게 살까기가 되고 위병 등 여러가지 병이 나아진다는 말을 들을수 있듯이 탐석행에 자주 나서노라면 위병 등이 소리없이 물러가고 몸이 튼튼해진다. 위병으로 식사때 통증을 느끼여 식사를 별반 못하던 사람도 탐석행에 나서면 편안한대로 식미가 무척 당기고 잠이 잘 온다. 게다가 산수가 삐여난 곳에서 대자연이 베푸는 청신한 공기를 맘껏 마시니 건강에 리롭지 않을수 없다. 셋째는 온갖 잡념이 가신듯 사라진다. 탐석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하루해가 눈깜빡할새에 기울어진다. 넷째는 짭잘한 수입이다. 좋은 수석을 줏기는 품이 드는 일이나 진짜 명석이라할 때 그 가치는 몇백원, 몇천원, 몇만원, 몇십만으로 웃돈다. 소품이라도 몇십원, 100원좌우로 하니 탐석은 진짜 해볼만한 일이다. 그러나 문인수석인들에게 있어서 탐석은 매매가 목적이 아니라 소장을 주요목적으로 한다. 그들에게는 수석만큼 좋은 취미생활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수석은 마지막 취미생활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탐석은 그 자체의 기쁨과 재미를 갖고있다. 진정 탐석행에 나서서 수석을 줏는 자만이 탐석행의 그 진미를 맘껏 느낄수 있을것이다.
4    탐석활동에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 댓글:  조회:4736  추천:99  2005-06-10
탐석활동에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 한 태 익 1)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된 보호지역에서의 탐석을 금할것. 2) 강줄기가 바뀔 정도의 큰것은 건드리거나 깨지말며 산속의 수목을 함부로 헤쳐 뿌리를 상하도록 하지 말것. 3) 공공기물인 돌이나 남의 집 돌담 등에 손을 대지 말것. 4) 무리한 집단행동으로 지역 주민들을 자극하지 말고 사전에 량해나 허락을 받을것. 5) 버릴 돌은 되도록 제자리에 놓아두고 배낭에 넣어 부담없이 가져올 정도로 할 것 등이다.
3    연변서 불고있는 수석바람 댓글:  조회:4876  추천:68  2005-06-10
연변서 불고있는 수석바람 향 설 그대들은 작은 돌 하나에 거대한 자연이나 삼라만상이 담겨있다면 믿을수 있겠는가? 혹자는 머리를 가로 흔들다가도 수석가게나 기석관에 가서 진실로 거대한 자연을 담아낸 산수경석이나 돌덩이들에 나타난 온갖 그림, 신화에서나 나타날수 있는 령물들이 돌속에서 살아숨쉬듯 생동감있게 펼쳐진 현실을 정시하노라면 너무도 신기해서 대자연의 위대함에 저도 몰래 고개를 숙일것이다. 이것이 대자연이 빚은 수석의 힘이다. 수석은 크게 산수경석, 형상석, 문양석, 색채석 등 4개 분야로 나뉘여지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산수를 즐기는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수석이란 말그대로 산수경석의 략칭이기도 하다. 하나의 돌덩이에서 아름다운 산수의 경치나 산수미의 세계을 여러가지로 련상하고 맛보고 즐기게 되니 그럴수밖에 없는것 같다. 돌과 인간과의 뜻깊은 만남인것이다. 돌이켜보면 돌과 인간과의 만남은 태고의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지만 진짜 대중적 애석, 소장석, 관상석붐이 우리 나라에서 일기 시작한것은 개혁개방이 실시된후인 20세기 80년대로부터이다. 특히 최근 10여년래 수석바람은 세차게 불어치면서 대중들속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국영, 집체, 개체의 관상석회사나 기석관, 기석가게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수석바람의 한갈래는 농촌에서 나타난 기석전문호나 전문촌들이라 하겠다. 경제장성에 힘입은 한국의 경우 수석붐은 우리 나라보다 좀 더 이른 모양이다. 자료에 따르면 수석인구가 200만으로 헤아려진다. 이는 우리 나라 수석인구의 10배를 넘어선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은 산수경석을 즐기는데 우리 나라에서 흔히 기석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 수석(水石)으로 부를 때 그네들은 돌에다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수석(壽石)이라고 부른다. 수석이란 부름은 지난 90년대초로부터 우리 연변조선족들의 말밥에 소리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한국나들이가 시작되면서 부분적사람들에 의해 탐석행이 주어지고 수석동호인들이 늘어가면서 주와 여러 현, 시들에 수석인협회나 동호인모임이 나타나고 수석활동이 활발해졌다. 한때 한파의 영향으로 수석활동이 서리를 맞기도 했으나 2002년부터 주안의 여러 분야의 문인들을 선두로 다양한 탐석, 교류활동이 행해지면서 연변의 수석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있다. 현재 연길시에만 해도 수십명의 수석동호인들이 탐석이나 소장, 수석교류에 나서고있다. 그중에서도 왕성한 탐석활동을 보이며 수석문화의 일익을 담당한것은 여러 보도매체나 대학, 문화분야의 수석문인동호인들이다. 이들을 토대로 지난 7월 28일에는 연변두만강수석회가 고고성을 터치였다. 말짱 한다하는 문인수석인들로서 8월 1일에는 도문아래 신기동 두만강가에서 첫 집단탐석활동을 가지기도 하였다. 문인수석인들을 선두로 은은히 밀려드는 연변의 수석바람, 그야말로 기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주위에서 불고있는 수석붐이 연변수석문화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리라 믿으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석공간마련에 너도나도 나서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2    두만강수석회 첫 탐석활동 댓글:  조회:4904  추천:81  2005-06-10
두만강수석회 첫 탐석활동 향 설 8월 1일은 금방 고고성을 터친 연변두만강수석회의 첫 탐석활동일이다. 말짱 뜬다하는 수석동호인들로 무어진 이 두만강수석회는 지난 7월 28일 스스로의 수석동아리를 무었는데 첫 집단탐석지는 도문시아래 구간 신기동 두만강변이였다. 연변의 수석산지를 말할라치면 선참 손꼽는것이 어머니강—두만강이다. 두만강에서도 손꼽는 산지는 신기동으로 불리우는 도문시 월청진 안산촌 제2촌민소조 앞 구간이 아닌가싶다. 이곳의 두만강물은 동으로 흐르다가 조선쪽의 산들에 막혀 북으로 굽이를 틀고 다시 산에 막혀 서쪽으로 흐름을 시작하는데 큰 굽이 반도모양을 이룬 이곳 두만강변에는 곳곳이 돌밭이요, 곳곳이 수석산지로 이름이 높다. 첫 집단탐석활동에 나선 이들로는 원 연변인민 방송국 주필 김대현과 연변가무단 전직창작원이고 시인들인 김철학과 김학송(두만강수석회 부회장), 원 연변병원당위 조직부장 김봉세, 연변대학조문학부 교수 신철호, 그리고 필자 도합 6명이였다. 도문시의 몇몇 수석동호인들이 합세한데서 탐석활동은 전에 없이 생기를 띠였다. 오전 9시에 집단탐석이 시작되였는데 10여명 수석동호인들은 돌밭을 참빚질하며 수석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헌데 점심때가 되도록 누구하나 수석다운 수석을 줏지 못하여 해나른한 기분이였다. 어찌하든 강가 백양나무 수림속에 풍성한 오찬이 마련되고 1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그때에야 연길의 수석동호인들은 8월 1일 이날이 김학송부회장의 생일날이라는걸 알았다. 탐석의 오찬은 생일오찬으로 되여 대번에 흥성과 생기를 몰아왔다. 너도나도 생일을 탐석지에서 쇤다는것은 뜻있고 재미나는 일로서 수석인들만이 행할수 있는 소행이라고 열을 올리였다. 오후 탐석은 “반도”를 에도는 탐석으로 이어졌다. 생일의 여흥이 도도한 속에 어디선가 “하나 했다!”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젊은 신철호 선생이 수석한점을 들고 기쁨에 넘치고있었다. 우르르 모여가보니 전시회에 내놓을만한 보기좋은 수석인데 정면에는 오리모양의 문양이 박히고 우에는 제법 못까지 있어 산정의 못가에서 노니는 오리를 방불케 하였다. 모두의 얼굴들에는 기쁨과 웃음이 피여 올랐다. 사기가 난다고 떠들석인데 이번에는 김봉세의 웨침이다. “하나 했다!” 하나 했다—이 소리만큼 반가운 소식은 없는가부다. 서로 자기일처럼 모여 기뻐하며 축복해주는데 선바위를 방불케하는 바위단석은 이손에서 저손으로 오갔다. 신나는 오후시간은 빨리도 흐르기만 하였다. 오후 6시가 되여오는데도 누구하나 강가를 떠날념을 안했다. 귀로를 앞두고 수석합평회가 열리였는데 신철호의 “산정의 못”과 김봉세의 “바위단석”이 으뜸으로 떠올랐다. 그외에도 여럿의 산수석, 문양석, 구멍돌 등이 제나름대로 선을 보여 두만강가는 이윽토록 말소리, 웃음소리 그칠줄 몰랐다. 집단탐석으로 재미난 문인수석인들의 하루였다.
1    두만강수석회 프로필 댓글:  조회:4612  추천:83  2005-06-10
♨ 두만강수석회 프로필 연변두만강수석회는 수석을 사랑하는 연길시 문인수석동호인들로 무어진 동아리모임으로서 지난해 7월 28일 연길에서 고고성을 터치였다. 두만강수석회는 설립된 근 1년래 줄기찬 탐석활동과 교류활동을 활발히 펼치면서 제나름의 수석세계를 구축하여 왔다. 현임 고문에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원 부주필 김대현 선생이고 현임 제1임 회장에 원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국장 리흥국(현임 주심계국 국장)이고 부회장에 연변가무단 전직창작원이고 시인인 김학송, 비서장에 소인 리함이다. 아래 수석동아리를 무은 날의 일부 명구를 그대로 적어본다. ◈ 수석은 나의 영원한 동반자여라! (김대현) ◈ 수석에 미치고 수석회사람들에 미쳐 나도 수석에 미치겠노라! (김철학) ◈ 수석은 인생이다. (김봉세) ◈ 수석은 내 시정(詩情)의 자궁! (김학송) ◈ 내 애인(수석) 찾아 강따라 바다로 간다. (한태익) ◈ 부모, 형제, 처자, 수석은 나의 혈육이다. (신철호) ◈ 수석은 나의 마지막 취미생활 (리함) 두만강수석회 련계전화: 0433-2532598 2715689 13039092389 e-mail: guangren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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