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tmjssh 블로그홈 | 로그인
두만강수석회

홈 > 전체

전체 [ 637 ]

97    시집 “초록빛 남방편지” 출간 댓글:  조회:4764  추천:110  2006-12-22
시집 “초록빛 남방편지” 출간15년간 중국 동북과 서남을 오가며 써 온 시를 모아 저의 첫 시집 를 출간했습니다.12월 12일 오후 6시 곤명 '한강'에서 곤명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시집의 특징은 작가가 중국 여러지역을 다니며 직접 촬영한 사진을 곁들여 시와 사진이 만나는 독특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으며 순수문학에 바탕을 둔 시로 15년간 중국 생활에서의 애환이 그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시집은 서울대형서점에만 있습니다. 교보, 영풍문고, 인터파크서점, 세종문고전화주문도 받습니다.(02-3474-6661, 010-9970-8224 김규진) <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12_22_00_59_42_hj.bmp width=600 height=420>
96    뜨거운 열기속의 “한.중 우호의 밤” 댓글:  조회:4173  추천:106  2006-12-13
뜨거운 열기속의 “한.중 우호의 밤” 초연지난 12월 2일, 중국 최남단 운남성의 수도 곤명시 한복판에서는 한인들의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뱅크호텔(BANK HOTEL) 4층 연회석에서 곤명한인회(회장/안원환)가 주최하고 곤명한문화원(원장/김부식)이 주관한 제1회 이 막을 올렸는데 공연 2시간 전부터 관객들의 방문이 시작되어 뜨거운 열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놀랍게도 행사 30분 전에 이미 만석이 되어 준비한 600석이 모두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12_13_17_01_29_61203_029-3-1.jpg width=540 height=400>
95    곤명의 한중 우호의 밤 댓글:  조회:3752  추천:110  2006-12-06
곤명의 한중 우호의 밤초연 중국 최남단 운남성의 수도 곤명에서이 준비되고 있습니다.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최고의 출연진으로 모두 무료 출연해 주십니다.보람된 시간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12_06_21_51_51_yn7.JPG width=500 height=700>
94    추석인사 올립니다 댓글:  조회:4274  추천:109  2006-10-06
추석인사 올립니다두만강두만강 수석회 여러 동호인들과 두만강 수석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께 남방에서 삼가 추석인사 올립니다. 부디 편안한 국경추석연휴 되소서!
93    초연님께 드리는 글 댓글:  조회:3974  추천:107  2006-10-06
초연님께 드리는 글두만강안녕하십니까, 보내온 추석글과 시를 두만강수석회 코너에 올리였습니다. 머나먼 운남땅에서도 수석회를 잊지 않고 모처럼 진지한 글과 시를 보내준데 대하여 깊은 사의를 드립니다. 리함으로도 통하고 연우미디어에서는 두만강으로도 통하는 이 리광인은 남방 절강에 와서 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 교수를 하고있습니다. 9월 2일에 연변을 떠나 어언 한달이 지났고 두만강수석회 회장은 김봉세씨가 맡아 나섰습니다. 이제 두만강 수석회 코너에 올릴 글은 계속 저한테로 보내주면 됩니다. 너무 바삐 뛰는것 같군요. 장애인 치료안마 훈련원도 꾸릴라, 장애인 공예공장을 운영할라, 운남 최초의 한인의 밤을 준비할라~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아무쪼록 몸을 돌보면서 힘에 어울리게 일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은 추석날이라 몇 가정이 함께 식사를 나눈다니 시름이 놓입니다. 이 두만강은 남방에 왔기에 가족 단란이 모일수 없고 연변서 같이 온 일행이 모여 추석의 밤을 지내게 됩니다. 10월말에 한국에서 시집을 출간한다니 진심의 축하를 보냅니다. 이제 여기 련계주소와 전화 등을 메일로 알려드릴테니 시집 한권을 부탁합니다. 두만강수석회에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두만강수석회와 이 두만강과의 우정이 변함 없기를 기원합니다. 편안한 추석 연휴 되소서!
92    김부식님이 보내온 추석글과 시 댓글:  조회:3781  추천:109  2006-10-05
김부식님이 보내온 추석글과 시올해도 여전히 여름은 가을을 물고 누웠습니다. 바람이 가을임을 알게하지만 이곳은 그렇지만은 않답니다. 단풍이 없는 가을~ 하늘이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 가을~ 바람이 가슴팤에 싸늘하게 들어오지 않는 가을~ 이곳 가을 풍경입니다. 저는 요즘 새로운 음악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좋은 훈련이 기대가 되고 그 분의 뜻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치료안마훈련원도 진행이 되고 있고 지금은 장애인공예공장을 세워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새로이 회사(륵)가 건축을 시작하고 모두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12월에는 완공할 예정입니다. 제가 틈틈히 쓴 시가 10월말에 한국에서 출간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11월말에는 곤명에서 최초로 한인의 밤을 개최합니다. 모든 기획과 진행을 제가 책임지게 되었고 한인, 중국인 2000여명이 동원되는 대규모의 행사가 될 것입니다. 녹내장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매일 긴장하며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늘 기도해주시는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내일 맞는 추석은 다른해와는 달리 복된 만남이 있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몇 가정이 함께 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시 한수를 보내드리며 추석명절을 축복합니다. 용광로 / 김부식 녹슨 세월 허물어진 숨결을 씻어버리자 헛딛은 발목에 걸린 허한 몸둥이 가슴 덜렁 젖힌 덩어리 하나 오늘 고열에 숨질망정 무거운 심장 박동을 멈춰 무릎을 꿇자 다 내어놓자 더는 머뭇거릴 수 없는 구습을 벗어 기진한 생애를 벗자 혼음의 너의 가슴마저 덮어 녹여내어야 질긴 실타래를 풀어 녹여내어야 나의 화려한 초상화에 찌든 망상도 녹여내어야 맑은 가슴으로 빚어내어야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초록빛 남방편지 김부식원장 *86-13888-488-224 *http://www.iwad.net *http://cafe.daum.net/iwad
91    두만강문인수석회 문집 편집교정 마무리 댓글:  조회:4084  추천:102  2006-08-25
두만강문인수석회 문집 편집교정 마무리 남방으로의 교수진출을 앞두고 두만강문인수석회 문집 편집교정까지 마무리를 짓고나니 마음이 그지없이 후련하다. 돌이켜보면 연변의 조선족수석사는 1990년 전후로 잡아보지만 두만강문인수석회 행보는 2004년으로 거슬러진다. 이해 7월 28일, 두만강문인수석회는 세상에 고고성을 터지며 떠올랐다. 그때 이미 독실한 수석인으로 뛰고있던 나는 동료들인 시인 김학송, 김봉세씨 등과 수석회결성을 두고 자주 얘기를 주고받다가 김학송씨가 모임을 마련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고고성을 터친것이 문인들의 동아리모임—연변 두만강문인수석회이다. 초대회장에 리흥국씨, 부회장에 김학송씨, 내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두만강문인수석회는 2004년 8월 1일에 두만강 신기동구간에서 첫 집단탐석을 펼친 이래 2년 남짓한 기간 수십차의 크고작은 탐석활동과 잦은 교류활동을 펼치면서 연변의 수석문화의 보급과 교류에 제나름의 기여를 하여왔다. 지난 6월 8일에는 리흥국씨의 주선으로 연변박물관과 손잡고 제1회 두만강수석전시회를 성황리에 펼치여 연변수석을 연변안팎에 널리 홍보하기에 이르렀다.전시회는 8월말까지 내내 이어졌다. 두만강수석회는 또 문인수석회의 특점을 살려 연우미디어에 전문 수석코너를 설치하여 수석회의 갈피갈피를 글로 잡아두어 이채를 띤다. 오늘 이 글들을 묶어놓으니 제법 그럴듯한 책이 무어져 붕 뜨는 기분이다. 두만강문인수석회 제2임 회장으로서 수석회문집을 책으로 펴내게 된다니 감회가 새롭다. 두만강수석회는 계속 행보를 이어 갈것이고 수석문화의 보급과 교류에서 한몫을 담당할것이다. 그래서 보다 마음이 후련한지 모르겠다. 두만강수석회의 보다 창창한 래일, 연변수석의 보다 휘황한 래일을 기대해본다. 2006년 8월 21일
90    【수상소감】 력사연구 외통길에서 허우적이다가 댓글:  조회:4061  추천:118  2006-08-21
【수상소감】 력사연구 외통길에서 허우적이다가 리 함 이 두어달 저의 마음은 그지없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졸저 강경애에 대한 연구평론이 올해 윤동주문학상평론본상 수상작으로 뽑히였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부터였습니다. (나의 평론이 어찌 윤동주문학상평론본상으로 될수 있단 말인가, 여느 문학평론가들에 비해 아직 학문적으로나 연구깊이나를 막론하고 그닥지가 않은데…) 정말이지 불안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력사연구 외통길에서 20여년이나 허우적거리고있는 사람입니다.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나왔다는 사람이 어쩌구려 전공과는 다른 분야인 력사공부에 살손을 댔으니 운명은 조롱이라도 하듯이 저를 력사공부에로 떠밀기만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28년전이라고 보아야겠지요. 1978년에 저는 소원성취하여 연변대학 조문학부 78년급학생으로 되였습니다. 시를 즐기였고 1979년 12월호 《연변문예》에 조시 《인삼장에서》를 처녀시로 발표하기도 한 문학도였으니 유망한 시인의 길을 걸어야 마땅하다고 할수 있지요. 하지만 피어린 조선족의 항일투쟁사와 접하면서부터 력사장편소설을 써내고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그만 력사속에 빠져버리고말았습니다. 허구에 의한 력사창작품이 아닌 진실한 력사를 쓰고만싶었지요. 하여 저는 대학 재학시절에 항일사 관련글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82년 여름 대학졸업후 저는 일터를 력사연구분야로 잡아버렸습니다. 연변일보사 편집기자로 뛰다말고 연변력사연구소로 아예 옮겨앉았지요. 이 기간 민간 력사연구소를 꾸려보려는 야망에서 하해하여 수년간 바닥인생을 살아보았고 아직도 살고있지만 조선족력사연구는 저의 평생의 집념과 추구였습니다. 저는 력사학자의 길을 걷고저 묵묵히 지나간 력사파헤치기, 어찌보면 따분한 연구를 거듭하기만 했습니다. 저희 발자취는 국내 멀리는 관내 광주, 서안, 연안 등지에까지, 국외로는 조선, 일본에 이르기까지 또렷이 찍히면서 수십편의 론문이 섞힌 수백만자의 글을 써내고 조선족소년렬사전, 조선족인물항일투쟁사(전 4권) 책출판을 망라하여 300여만자의 글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허나 믿기 어렵겠으나 문학분야도 아닌 고독한 력사분야여서 물론 설치한 상도 거의 없지만 이러루한 상은 저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2004년 봄이후 저는 조성일선생님을 회장으로 하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일원으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조문학부 출신이고 기자출신이라 조선족력사에 대한 깊은 리해로 문학연구에 뛰여들었고 2년여기간 강경애, 윤동주 연구를 비롯하여 20여편의 문학론문을 써내고 대학학보와 신문, 문학지 그리고 인터넷에 발표를 하여왔습니다. 그러던중 북향회관련 강경애연구론문이 《연변문학》에 실리고 오늘 덕분에 윤동주문학상 평론본상 수상작으로 당선되였군요. 진정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력사연구에 빠져버린 저로서는 문학연구와는 거리가 형편없이 먼 인간인데 저에게 평론본상의 영예를 안겨주다니, 그냥 애쓴데 대한 격려로 감사히 받아들입니다. 또 그러면서도 인생 반백을 살아오면서 처음 받아보는 문학상, 문학상과의 첫 인연이라 전혀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한테 문학상과의 첫 인연—윤동주문학상 평론본상을 안겨주신 《연변문학》편집부 여러 선생님들과 여러 평심위원님들 진정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진지한 사랑과 배려 가슴 뜨거이 받아들이지만 여러분들과 애독자님들도 저의 평론이 수상작의 영예와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저의 진정을 헤아리시고 받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앞으로나 저는 삶을 다 할 때까지 숙명으로 되여버린 력사연구 외통길에서 허우적거려야 할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격려로 문학연구, 더우기 광복전 조선족문학연구의 성스러운 길에서도 뛰고 또 뛰여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도 하여봅니다. 2006년 5월 31일
89    리광인씨 또 우수도서상을 댓글:  조회:4328  추천:112  2006-08-19
리광인씨 또 우수도서상을수 석 회사학가이고 수석가인 두만강수석회 리광인씨는 8월 16일 윤동주문학상 평론본상 수상에 이어 또 하나의 우수도서상을 수상했다. 8월 18일, 연변동서방문화연구회와 한국 학술정보(주)의 주최로 풍경이 수려한 만천성 천성호락원에서 “조선문 도서출판 2주년 기념회 및 우수도서 시상식”이 펼쳐졌다. 시상식에는 연변의 해당 도서작자와 작가, 예술인, 학자 등 7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지난 1년래 연변동서방문화연구회의 편집과 한국 학술정보(주)에 의해 출간된 연변 여러 작자님들의 128종의 도서들중, 시인 리근영, 교수 우상렬 등의 9종이 평심위원들의 엄격한 선정을 거쳐 우수도서상으로 떠올랐다. 9종 수상중의 하나가 리광인씨의 “인물조선족항일투쟁사”(전 4권)이다. 이 책으로 리광인씨는 우수도서상 수상자로 되여 수상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리광인씨의 또 하나의 수상—우수도서상, 이는 어제 8월 18일 만천성에서 전해온 수상뉴스이다.(2006년 8월 19일)
88    수석의 미 댓글:  조회:5445  추천:88  2006-08-19
수석의 미 김봉세 <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08_19_15_39_02_83-5.gif width="545" height="400">왼쪽 첫 사람이 본문의 작자 김봉세씨. 수석 자체는 소위 진위(真伪)가 없는것이다. 그러나 수석의 흠상가치와 류통가치가 높아가고있고 애석인들이 날따라 늘어나고 수석래원이 점차적으로 고갈되는 상황에서 수석시장에는 주요하게 돌의 자연미에서 문장을 지어 가짜를 만드는 형상이 나타나고있다. 즉 소수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인 가공을 거쳐 조형석을 만들고 화학적인 방법으로 문양석, 문자석을 만들어 시장에 흘러보내 자연석으로 류통시키고있는것이다.이것은 수석의 물질적속성 즉 자연미를 벗어난것이며 천인합일(天人合一) 기본원리를 위반한것이다.2. 수석의 유일미 소위 유일미란 세상에서 형, 질, 색, 문양이 완전히 상등한 두개의 돌이 있을수 없다는것이다. 이는 기타 소장품과 구분되는 중요한 표징이다.모든 예술품들은 가히 다시 쓰고 다시 그리고 다시 조각하고 다시 만들수 있지만 오직 수석은 자연계의 천변만화의 산물이기때문에 재생할수 없는것이다.때문에 어느 수석을 물론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것이다. 이 표준을 위반하면 그것은 수석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가공된 한낮 석공예술품에 불과한것이다.3. 수석의 영구미 어떠한 예술품의 소장은 세월의 제한성을 받아 몇십년, 몇백년, 몇천년이 되면 점차적으로 소실된다. 그러나 수석은 수억년의 년륜속에서 형성되여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앞으로도 백년, 천년, 만년의 흐름속에서도 수석미는 영원히 변치 않는것이다.때문에 우리 애석인들은 석질이 단단하고 밀도가 높으며 손느낌이 좋은 수석감을 선호한다. 만약 석질이 단단하지 않으면 세월의 흐름속에서 침식되여 소실되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수석은 영구미의 특성을 구비하지 못하여 좋은 수석감으로 되지 못한다.아마도 우리 수석계에서는, 한 수석의 형성은 오랜 세월을 거쳤고 또 영구히 존재할수 있다는 생명의 의미에서 수석(寿石)이라고 하는가 보다하나의 돌에서 만약 자연미, 유일미, 영구미의 특성을 구비하였을 때 그 수석은 보기좋은 수석일것이며 그 흠상가치, 소장가치, 경제가치가 높은것은 당연한것이다. 또한 이 3대미(三大美)는 어떠한 예술 소장품도 비길바가 못된다. 오늘날 수석이 날따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애착되고 또한 사회발전에 따라 수석문화가 흥기하는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을가. (2006년8월12일)
87    곤명에 떠오른 장애인안마훈련원 <엘림원> 댓글:  조회:4640  추천:108  2006-08-17
곤명에 떠오른 장애인안마훈련원 국제장애인복지회(대표/김부식)는 지난 14년 동안 장애인직업기술훈련에 역점을 두고 장애인들이 무료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직업기술훈련센터를 세워 이미 길림성에서 1,500여명, 운남성에서 300여명의 장애인들에게 직업훈련을 시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번에 운남성 곤명시에 조그만 훈련기지 “엘림원”을 준비하였습니다.취업을 원하는 운남성 거주 장애인들에게 안마훈련을 하게되는 “엘림원”은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이 되길 원합니다. 운남성 각 현 소재지에 매년 1개 이상의 장애인안마원을 세워 많은 장애인들에게 직업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이 사역이 아름답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엘림원”에서는 장애인들에게 발맛사지와 전신안마 등 직업훈련과 함께 다음과 같은 직업훈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장애인 수공예품 / 도예, 목공예, 미술공예, 족자 및 중국화 장애인미용원 / 피부미용, 전신맛사지가내공업 /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가내공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아래사진은 개원때 상황입니다.곤명의 한인들과 CBMC회원들이 함께 축하하였습니다.<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08_17_12_18_07_zzzzzzz.bmpwidth="546" height="409">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초록빛 남방편지 김부식원장 *86-13888-488-224 *http://www.iwad.net *http://cafe.daum.net/iwad
86    김학송 리광인 윤동주문학상 본상 수상 댓글:  조회:4437  추천:108  2006-08-17
김학송 리광인 윤동주문학상 본상 수상2005년 제26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이 어제 8월 16일 오전, 백산호텔 국제회의청에서 성황리에 열리였습니다. 두만강수석회의 김학송과 리광인이 각기 시 본상, 평론 본상의 영예를 받아 안았습니다. 윤동주문학상은 "연변문학"월간사에서 주최하고 한국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후원하는, 중국조선족 문단의 권위성있는 문학상입니다. 이런 문학상은 본상과 신인상으로 나뉘는데 김혁의 소설 "불의 제전"이 소설 본상을, 남복실의 수필 "가을, 성숙, 녀자 그리고..."가 수필 본상을, 김학송의 시 "청보리"가 시 본상을, 리광인의 평론 "북향회와 강경애 고문의 활약상"이 평론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신인상으로는 권중철의 소설 "아, 넋의 자취여", 류광철의 수필 "'감자싹눈'으로 읽는 인생살이", 모동필의 시 "거꾸로 흐르라, 두만강아!", 서채화의 평론 "예민한 감수성과 남다른 안목"입니다. 백산호텔 국제회의청은 연길과 각지에서 모여온 조선족문단의 200여명 작가님, 해당님들로 넘치였습니다. 아래 연우산악회 회장 리경호가 찍은, 제26회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서의 사진을 올리오니 여러 분들의 감상을 기대합니다. 2006년 8월 17일< src=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YzYU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NzEuanBnLnRodW1i&filename=71.jpg width="546" height="409">
85    【시】돌속의 뜻 댓글:  조회:3848  추천:107  2006-08-07
【시】돌속의 뜻김봉세누실엔 다만 수석 뿐인데 참된 말씀어디서 들리는가?고요히 바라보며그윽한 경지에 드니돌속에참 삶의 뜻이었네.
84    【시조】수석정 댓글:  조회:3863  추천:100  2006-08-07
【시조】수석정김대현수석에 정이들어 흐른세월 몇해던고손꼽아 헤여보니 열여섯 춘하추동어허허 수석과 더불어 내 인생 즐거웠네배낭을 등에 지고 탐석행 떠날때면신바람 절로나서 코노래도 흥얼흥얼아무렴 수석인 그마음 변함이 있을소냐두만강 가야하에 기울인 일편단심자연에 동화되여 티없이 맑았으니어화라 이벗이 좋아 젊어지는 내인생
83    곤명서 날아온 한문화원 글과 사진 댓글:  조회:4460  추천:129  2006-07-23
곤명서 날아온 한문화원 글과 사진저의 1966년 입암초등학교 3학년때의 일이 기억납니다.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가던 중입암장터 한가운데서 흘러나오는 마이크 소리는호기심 많던 저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07_23_22_10_56_13.bmp width="370" weight="278">바람을 타고 내린 그리움 가슴 깊이 자리한 기다림 *^^* 초록빛남방 부시맨 *86-13888-488-224 *http://www.iwad.net *http://cafe.daum.net/iwad 한국인 김부식선생이 보내온 글과 사진을 그대로 두만강수석회코너에 올립니다.
82    【언론매체】(5) 이채띤 제1회 두만강수석 전시회 댓글:  조회:4771  추천:98  2006-07-21
이채띤 제1회 두만강수석 전시회(원제: 제1회 두만강수석 전시회 연길서) 윤운걸 기자 제1회 두만강수석 전시회가 6월 8일에 연변박물관에서 열려 수석(기석)문화가 연변에서 점차적으로 번창할 전망을 보이고 있다. 이날 전시회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정협 손흥개 부주석, 연변두만강수석회 이흥국 회장, 한국수석애호가 박식선생 등 국내외 손님 60여명이 참석했다. 이흥국 회장의 개막사에 이어 각계층의 인사들은 이날 축사에서 “두만강변과 장백산맥에는 수많은 수석들이 있는데 이는 수석문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둘도 없는 자연자원이다.”고 했다. 한국 수석애호가 박식선생은 이날 축사에서 “수석은 눈으로 줍는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어야 한다.”고 수석문화의 의미를 짙게 했다. 연변에서는 연변방송국 전임 부주필 김대현(수석회 고문)씨를 비롯한 수석애호가들이 10여년전부터 수석 수집을 하기 시작했고 지난 2004년에 연변두만강 수석회를 구성, 현재 10여명의 수석애호가들로 결성했다. 이날 전시회에는 각양각색의 수석 134점이 전시되여 참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2006년 6월 18일~24일DN—2 흑룡강신문 주간지
81    【언론매체】 (4) 제1회 두만강 수석전시회 연길서 댓글:  조회:4429  추천:127  2006-07-21
제1회 두만강 수석전시회 연길서 윤운걸 기자 제1회 두만강 수석 전시회가 지난 8일 연변박물관에서 열려 수석(기석)문화가 연변에서 점차적으로 흥기할 전망이다. 이날 전시회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정협 손흥개부주석, 연변두만강수석회 리흥국회장, 한국수석애호가 박식선생 등 국내외 손님 60여명이 참석했다. 리흥국회장의 개막사에 이어 한국 수석애호가 박식선생이 축사를 했다. 그는 축사에서 “수석은 눈으로 줏는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어야 한다”며 수석문화의 의미를 짙게 했다. 연변에서는 김대현 수석회 고문을 비롯한 수석애호가들이 10여년 전부터 수석을 수집했고 2004년에 연변두만강수석회를 구성, 현재 10여명의 수석애호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날 전시회에는 도합 각양각색의 수석 134점이 전시되여 참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2006년 6월 10일(1)부 흑룡강신문 일간지
80    【언론매체】(3) 제1회 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 댓글:  조회:4491  추천:100  2006-07-14
< src=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6-6/9/200669122340356.jpgwidth="500" height="355">《제1회 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 연길에서 기자 김걸8일, 《제1회 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가 연변두만강수석회의 주최로 연변박물관에서 진행되였다. 수석문화는 문학과 철학 광물학 지질학 암석학을 포함한 종합적인 문화로서 그것은 천인합일의 동양사상에 근원을 둔 문화적 함량이 매우 높은것이라고 볼수있다. 수석은 흠상가치 경제가치 소장가치로 많은 애석가와 사회의 주목을 받고있다. 연변은 량질의 수석산지라고 볼수 있는바 두만강 가야하를 비릇한 여러 강이나 하천에서 좋은 수석이 많이 발견되고있다.이번에 펼쳐진 수석전시회에는 연변두만강수석회 회원들이 2년 남짓한 동안에 수집한 연변의 향토석을 위주로 전시하였다. 인터넷길림신문 2006년 6월 9일
79    【언론매체】(2) 수석-령적인 《돌》들의 이야기 댓글:  조회:4934  추천:114  2006-07-13
< src=http://www.koreancc.com/bbs/icon/member_image_box/2/51151015.jpg width="600" height="770" td="center"> 수석—령적인 《돌》들의 이야기 제1회연변수석전시회—자연과의 교감을 이룬다 연변일보 강정숙 기자감정이 무디고 무뚝뚝한 사람을 우리는 흔히 목석(木石)같은 사람이라 하고 미련하고 아둔한 사람의 머리를 가리켜 《돌대가리》라고 비하해 말한다. 하지만 그 무뚝뚝하고 《미련》한 돌에 바로 인간의 지혜로는 창조할수 없는 령적인 신비함과 오묘함이 깊이 깃들어있음을 보아내고 읽어내는 사람은 오직 수석인들뿐이라 하겠다. 6월 8일, 연변박물관에서 제1회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가 펼쳐졌다. 천태만상의 아름다운 자연을 축소하고 인간의 령혼을 형상적으로 닮은, 연변의 방방곡곡에서 모여온 150여점의 령적인 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간과의 문화적인 교감을 이루는 시간을 가졌다. 수석은 풍화나 침식 등 자연적인 작용으로 이루어진 여러 모양의 작은 돌, 또는 이렇게 형성된 돌을 수집, 완상하는 취미를 말한다. 리백, 두보, 백거이, 소동파 등 옛 문인들이 다 애석가였을만큼 수석은 그 력사가 오래다. 연변의 수석은 이제 금방 10여년, 연변두만강문인수석회는 2004년에 설립되였고 대학교 교수, 작가, 기자들로 이루어졌다. 수석회가 설립되기전에는 개별적으로 탐석하였으나 수석회가 설립된후로는 회원들이 집단적으로 도시락을 싸들고 일년에 몇차례씩 두만강과 가야하 등 강변을 누비며 《돌채집》에 다녔다. 일반인들한테는 그냥 《돌채집》으로 통하겠지만 수석회 김대현고문은 《수석은 자연의 미를 발견하는 활동이며 수석하면 자연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면서 수석은 일종 자연과 인간이 가까이하고 대화하는 문화현상으로 순 천연적이고 순 자연적인 자연과의 교감을 이룰수 있다고 말한다. 돌을 들여다보면 산의 정체가 보이고 자연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수석은 돌의 형상과 유래에 따라 산수경석, 물형석, 문양석, 색채석 등 몇가지로 분류하는데 이번 두만강수석전시회에는 산수경석이 위주, 95%가 연변돌이라고 한다. 8년간의 수석경력을 갖고있는 김봉세씨는 두만강은 중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청오석을 갖고 있다면서 오묘한 변화를 나타내는 청오석은 두만강외에 압록강과 청해성의 황하상류에서만 찾아볼수 있다고 한다. 연변의 돌은 석질이 단단하고 윤기가 있으며 색이 짙은 수석의 조건을 갖추고있다면서 연변은 천연적인 수석산지라고 자부심을 나타낸다. 수석경력이 15년된 시인 김학송씨는 수석은 문학, 미술, 지질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이 복합적으로 포함된 문화함량이 매우 높은 학문이라고 하면서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냥 돌로 보이겠지만 수석인의 눈에는 보물로 보인다고 한다. 늦게야 돌의 오묘함을 발견한 신철호씨, 아직은 수석경력이 짧지만 공사장에 가서도 이리저리 건축용석재를 두리번거린다고 한다. 하여 수석회회원이나 곁사람들한테 돌에 미친 남자라고 통할 정도로 첫사랑에 혼을 빼운 총각처럼 돌에 온 혼신을 다 뺏겼다. 한국 수석가 박식씨는 《돌에는 생명이 있다. 돌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있지만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하는것이 아닐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한계가 있지만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넓고도 넓다. 수석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한다.》고 말한다. 수석을 하면 마음이 깊고 높고 커지며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인간을 성숙시킨다. 이 또한 수석인들의 한결같은 경험이다. 돌은 말이 없지만 돌은 인간에게 자연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오묘함을 깨닫게 하고 돌은 눈이 없지만 세상을 넓게 보는 마음을 키우게 한다. 연변일보 2006년 6월 9일 B1 문화면에서
78    【언론매체】(1) 석두기- 돌과 교감하는 사람들 댓글:  조회:4606  추천:88  2006-07-12
조선족 여가취미생활의 현주소 (1)석두기(石头记): 돌과 교감하는 사람들 ... ... 대천(大川)이 그 품에 있고 명산이 그 속에 있고 너의 주소는 과거와 미래의 영원속에 있음을 알겠다 시인 김학송씨의 한 구절이다. 이처럼 돌에 대한 례찬을 아끼지 않으며 돌에 현혹된 사람들이 있다. 연길시의 지인들로 이루어진 자발적 모임단체—다. 는 원 연변라지오텔레비죤 총국 국장이였던 발기로 2004년 7월 28일에 고고성, 10여명의 지인들이 뙤약볕을 이고 강가에서 돌서덜밭을 누비며 활약상을 펼쳐왔다. 천리 두만강으로부터 수백리 가야하에 이르기까지 가지 해란강, 구수하, 봉밀하, 부르하통하, 륙도하 기슭을 누비며 벌린 집단탐석과 합평회만도 해마다 근 20차에 달한다고 한다. 발부리에 걸채이며 흔한것이 돌이다. 범인(凡人)들은 작은 돌 하나가 품은 거대한 자연이나 삼라만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수석가게나 기석관에 가서 온갖 자연물상을 담아낸 산수경석이나 인공적인 회화 조각으로도 비하지 못할 살아숨쉬듯 생동감있게 펼쳐진 령석을 정시하노라면 소스라쳐 신기함을 느끼며 대자연의 위대함에 저도 몰래 고개를 숙일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석의 신묘한 매력이며 조용한 힘이다. 돌이켜보면 돌과 인간과의 만남은 태고로 거슬러 올라갈터지만 대중적인 애석, 소장석, 관상석붐이 일기 시작한것은 개혁개방이 실시된후인 20세기 80년대로부터이다. 닫혔던 국문이 열리여 외국나들이가 시작되면서 견문하고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수석이라는 낱말이 떠올랐고 동호인들이 결성, 연변의 여러 현, 시들에 수석인협회나 동호인모임이 나타났고 따라서 탐석행이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돌에 현혹된 그들에 따르면 탐석의 기쁨과 재미는 -첫째는 려행, 수석은 흔히 산수가 삐여난 곳에서 나타나기가 마련인데 죽이 맞는 지인들끼리 도시락을 싸들고 산좋고 물좋고 경치좋고 공기좋은 곳으로 가는 그 멋이 별멋인바 수석애호가들에게 있어서 번마다의 탐석행은 번마다의 려행과 같다. 둘째는 건강챙기기, 탐석행에 자주 나서노라면 산수가 삐여난 곳에서 대자연이 베푸는 청신한 공기를 맘껏 마시니 건강에 리롭지 않을수 없다. 셋째는 잡념의 해소, 탐석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하루해가 눈깜빡할새에 기울어지고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된다. 맑은 물 흐르는 계곡에서 록수청산에 몸을 맡기고 탐석의 즐거움을 맛보느라면 과연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지는줄도 모른다. 대자연속에서 만사를 잊고 마음을 비운채 오로지 탐석에만 열중하는 그 즐거움이란 말로 이루다 표현할수 없다. 그러다가 형태나 문양, 색상이 좋은 멋진 돌 하나를 줏기만 하면 그날은 그들에게서 그날이 곧바로 명절이나 다를바 없다. 마음에 드는 수석 하나를 발견했을 때면 기쁨을 억누를길 없어 산천이 떠나갈듯 환성을 지른다. 이처럼 수석은 높은 흠상가치 경제가치 소장가치를 지니고 있음으로하여 문화생활백미중의 장가락 꼽히는 취미로 애석가와 사회의 주목을 받고있다. .연변은 량질의 수석산지라고 볼수 있다. 두만강 가야하를 비릇한 여러 강이나 하천에서 좋은 수석이 많이 발견되고있다. 따라서 돌에 대한 에 빠져든 이들이 속출, 현재 연길시에만 해도 수십명의 수석동호인들이 탐석이나 소장, 수석교류에 나서고있다. 《돌 하나에서 그 아름다움과 그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것이야말로 이 아닐수 없습니다. 탐석은 다름 아닌 자연미의 발견이고 천연예술품의 발견입니다. 수석은 이처럼 인간과 자연을 가장 가까이 할수 있게 하고 자연과 이간을 적절히 조화시켜주는 대자연의 걸작이자 연분은 맺어주는 이지요.》밤에도 깨여나 한 두번씩 어루만져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애석생활경력 10년인 수석회 명예회장 김대현씨의 지론이다. 수석문화는 또한 문학과 철학 광물학 지질학 암석학을 포함한 종합적인 문화로서 그것은 천인합일의 동양사상에 근원을 둔 문화적 함량이 매우 높은것이라고 볼수있다. 이들의 일껏 탐석해낸 수석을 보노라면, 신주대지의 형국을 닮은 (현임회장 리함 탐석)을 펼쳐 놓고 무릉도원을 방불케하는 (리흥국 탐석)에 이르는가 하면 , 천지간에 은빛 비단을 드리운 듯한 (리흥국 탐석)도 볼수 있고 풍년을 기약하며 초가지붕에 소복히 내린 (김대현 탐석)을 맞기도 하며 (김봉세 탐석)의 무상함에 감개를 머금게 된다. 수석은 이처럼 인간과 자연을 가장 가까이 할수 있게 하고 자연과 인간을 적절히 조화 시켜주는 대자연의 걸작이자 연분을 맺어주는 《오작교》이다 .수석은 변화하지 않고 말없이 산수의 정취나 각양각색의 형태를 나타내기에 듬직하고 믿음직스럽고 아무리 자주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바로 수석의 이런 불변성과 무언성에서 진실과 소박함을 배우게 되고 참고견디는 인내성을 배우게 된다. 이한 것이 그들이 돌에 심취되는 리유이리라. 돌에 빠져든 동아리들을 두고 연변텔레비 《고향의 아침》에서는 해당기자들을 탐석에 동행시키면서 수석회의 활약상을 담은 전문프로를 제작하여 방영하였다. 이제 수석특강도 연변대 조선한국학학원 공동과강의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 3월, 수석팀의 주요맴버인 신철호씨가 연변대 조선한국학학원 신문전공의 학생들이 첫 수석강의를 했다수석한짐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교단에 나섰고 그리도 생동하게 특강을 끌고나갔고 학생들의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이미 수석특강을 신청할것을 학교지도부에 건의, 수석의 공동과의 현실화를 기대하고 있다.인터넷 뉴스전문사이트인 sck미디어에도 수석회코너를 특별히 만들어 수석문화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탐석에 좋은 호시절인 6월에는 연변박물관은 연변 수석문화의 대잔치. 제1회 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가 막을 올렸다. . 수석회와 연변박물관에서 공동주최로 펼쳐진 수석전시회에는 문화부문의 지도일군 보도매체와 수석에 애호가 있는 이들로 모여들어 첫 시작부터 자못 열기를 띠였다. 전시회에는 두만강문인수석회의 열혈맴버들이 다년래 두만강, 가야하 등에서 탐석한 연변의 수석 135점과 내지 수석이 곁들어 전시되여 풍성한 식각의 향연을 마련해 주었다. 연변수석문화의 대잔치는 8월 말까지 계속 전시를 이어가게 된다. 송나라때 돌을 무척 사랑한 미불이란 화가가 있었다. 한번은 마음에 드는 수석을 찾아내고는 바닥에 무릎꿇고 마주 앉아 라고 하며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이처럼 가장 무정한 듯한 돌은 그들에게서 오히려 심미적 향유의 대상이 되였고 알아주는 자에 의해 교감의 극치인 물아일체, 무아지경의 경계를 나타내게 되였다돌은 자연의 리듬을, 그 원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돌은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이다. 형상을 생성시키는 자연의 률동적인 힘 그 자체이다. 인공으로는 도저히 창조할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것이 수석, 수석에는 자연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오묘가 응축되여 있다. 그래서 간단한 자연물에서 더듬어낸 미학을 통해 그들은 을 가질수 있었던 것이다. 수석과 정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에 감탄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는 이들 왕성한 탐석활동을 보이며 수석문화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동인들이다. 다각적인 문화생활의 여백에 그들이 써내려가고 있는 그들만의 를 감흥과 기대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sck미디어 기자 김혁
77    한국인이 읊은 《수석정》 댓글:  조회:4006  추천:101  2006-07-06
한국인이 읊은 《수석정》 두 만 강 오후 3시경에 한국인관광객 6~7명이 수석전시관에 들어섰습니다. 연변박물관의 혁명사전시청을 찾아보다가 들어선 걸음이였는데 50대로 보이는 녀성분 두분이 전시관에 전시된 시문 《수석정》,《수석찬가》를 소리내여 읊기 시작했습니다. 두만강 가야하에 기울인 일편단심 자연에 동화되여 티없이 맑았으니 어화라 이 멋이 좋아 젊어지는 내 인생 ——《수석정》 (김대현) 너의 눈은 미지이다 너의 입은 미지이다 대천이 그 품에 있고 명산이 그속에 있고 너의 주소는 과거와 미래의 영원속에 있음을 알겠다. ——《수석찬가》 (김학송) 《, — 참 실감나는 시들이야 !》50대 녀성 두분의 우러나오는 찬사이다. 그네들은 전시된 수석을 기꺼이 감상하다가 문가에 마련된 《안내문》을 읽어내려가더니 또 찬사를 터놓는다. 《두만강수석회라 향토내가 물씬하네!》 《연변에도 문인수석인들이 뛰고있구나!》 한국인들이 읊은 수석정, 수석찬가에 안내문, 그네들은 이에 깊은 사랑을 쏟으며 소리내여 읊은 첫사람들이다. (2006년 7월 6일)
76    연우산악회 전시관 찾았습니다 댓글:  조회:4886  추천:109  2006-07-06
연우산악회 전시관 찾았습니다 두 만 강 7월에 잡아든지도 며칠 잘됩니다. 그러니 제1회 두만강수석전시회가 열린지도 한달이 되여온다는 말이구요, 평소 수석에 짙은 흥미를 보이며 댓글도 곧잘 올리던 연우산악회 회장 상공님과 이슬비님, 봇나무님이 솔선하여 수석전시관을 찾아주었습니다.< src=http://cfs10.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YzYUJAZnMxMC5ibG9nLmRhdW0ubmV0Oi9JTUFHRS8wLzkuanBnLnRodW1i&filename=9.jpg> 자하연님에 이어 수석전시관을 찾아준 연우산악회의 상공님, 이슬비님, 봇나무님이 그지없이 고마왔습니다. 두만강수석회에 대한 힘찬 성원이 아닐수 없습니다. 마음은 내내 흥분속에 도취되였습니다. (2006년 7월 6일)
75    김부식선생을 환송 댓글:  조회:3829  추천:112  2006-06-30
김부식선생을 환송 리 함 6월 21일, 연변장애자련합회에서는 운남 곤명으로 떠나는 한국우호인사 김부식선생을 위해 전문 환송의식을 가지였다. 한국우호인사 김부식선생은 1992년 방문차 연변에 왔다가 연변장애자사업에 뜻을 두고 연변서 처음으로 연변장애인기술훈련센터를 꾸린 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변의 장애인기술훈련사업은 령이나 다름없었다. 십여년의 노력, 아낌없는 100여만원의 투자를 거쳐 연변의 장애인직업기술훈련사업은 전국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하는 수준에로 올랐다. 이에 연변장애자련합회에서는 연변장애자 사업에 대한 그의 혁혁한 공로를 기리여 황수봉회장으로부터 모처럼 감사패를 증정하였다. 30대 중반에 연변으로 와서 연변서 십여년을 장애인직업기술훈련사업에 몰두한 50대초반의 김부식선생, 지금은 운남 곤명에 가서 장애인기술훈련원을 꾸린다지만 두번째 고향인 연변을 잊지 못한다는 김부식선생이다. <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06_30_18_01_48_60616026.jpg>두만강수석회의 리함씨와 김봉세씨 김부식선생과 기념사진을 남기다 김부식선생은 1996년도 초창기 “해란강여울소리”를 장장 7년이나 경제적으로 후원, 남희풍선생을 주필로 하는 “가사문학대전”도 경제적으로 후원, 또 독실한 수석인이여서 연길의 문인수석인들과 끈끈한 인연을 맺어왔다. 그 인연으로 6월 21일의 환송식에 리함, 김봉세, 한태익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사진제공에 김부식
74    오늘도 20여명 다녀가다 댓글:  조회:4060  추천:101  2006-06-30
오늘도 20여명 다녀가다 두 만 강 제1회 두만강수석전시회가 첫 전시를 가진지도 어언 20여일에 나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침없다. 오늘도 20여명이 다녀가며 연변수석에 대한 짙은 흥미와 사랑을 보여주었다. 워낙 두만강수석회에서는 제1회 두만강수석전시를 4~5일간으로 끊으려고 했다. 그러던 전시회가 연변박물관의 깊은 중시로 8월말까지 이어가기로 결정되였다가 지금은 진짜배기 수석관으로 장기화전시로 이어질 전망이다. 했으나 박물관 2층홀 동쪽 전시관은 벽을 두르지 않은 휘넓은 공간이여서 두만강수석회에서 륜류로 매일 직일을 서야 했다. 그간 연변박물관에서는 전문 조치를 대여 간벽을 두르고 이어진 미닫이문을 설치한데서 수석전시청은 명실공히 짜장 한다하는 수석관으로 떠오르면서 다음 주일부터 정식 연변박물관 전시운영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연변박물관의 전시운영체제를 앞두고 수석회 수석고문 김대현선생의 소장민속품들이 박물관의 배려로 수석전시관의 한면을 이루었다. 수석과 민속품의 어우름이다. 어제 김대현선생은 김봉세씨 등의 도움으로 소중히 간직했던 100여점의 민속품을 전시관으로 옮기고 필요한 전시를 마치였다. 일에 쫓기였던 필자는 3일간이나 자리를 비우다가 오늘에야 수석전시관을 찾아보았는데 오전시간에만도 선후 20여명이나 찾아드는데서 잠간 다녀오려던 전시관 미닫이문을 내내 잠글수가 없었다. 20여명 손님들가운데는 10명에 달하는 연변밖 한족관광객들이 있는가 하면 연변내에서 모여든 근 10명의 조선족단체객들도 있고 70대로 보이는 조선족로인내외분도 있었다.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매 하나의 수석을 일일이 감상하는데 30대로 보이는 한 조선족녀성이 인상적이다. 그는 동행한 두분의 남성분에게 여기 수석들이 참 눈에 익다고 하더니 수석인 김대현선생을 안다고 했다. 또 김부식선생도 가끔 떠올린다. 흥미있는 녀성이다. 필자가 김대현선생을 아는가고 묻자 연변방송국 주필이고 수석인이라고 하더니 자기는 또 김부식선생의 제자로서 10년간의 인연을 갖고있다고 한다. 그 이상 필자는 더 묻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무얼하며 경력담이며 말이다. 김대현선생을 알고 김부식선생을 알면 수석과 인연이 있는 녀성임은 틀림이 없는데이다. 오늘도 20여명 다녀갔다. 그것도 오전시간에만, 모두가 수석세계에 푹 잠기여본다. 하긴 “뭐, 볼것이 없구만”하고 힝 코방귀를 끼며 돌아서는 무지한 30대 남자도 없지 않다. 오직 이 남자 하나뿐, 그러는 남자를 두고 동행한 몇몇 남성분들은 “저 자식, 모르면 모른다고나 할것이지!” 하며 혀를 끌끌 차더니 연변만의 수석이 인기도가 높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2006년 6월 30일)
73    가야하는 또 골탕을 먹이다 댓글:  조회:4411  추천:110  2006-06-26
가야하는 또 골탕을 먹이다 두 만 강 가야하 만천성 땜아래 삼도구 구간은 이름난 수석산지여서 연길수석인들의 발길이 자주 가닿이는 고장이다. 일전에 이곳 집단탐석에 나섰다가 인공호수의 물을 터뜨린데서 탐석도 못하고 골탕을 먹었던 우리는 오늘 6월 26일 다시 가야하에서 골탕을 먹어야 했다. 오늘 탐석행은 김대현선생에 김봉세씨, 필자 셋만의 동행이다. 가야하의 붇고쪼는 허실을 알수 없은데서 셋만이 선발대로 나섰는데 여느때와 같이 뻐스타고, 택시타고 석현과 삼도구를 지나 근 200리밖의 수석산지에 이르니 가야하의 물은 평소보다 수량이 많다지만 탐석에는 별로 영향을 미칠것 같지 않았다. 헌데 택시에서 내려 가야하 물가에 나서니 사정이 달랐다. 돌밭인 강복판지대 두드러진 곳을 제외하곤 주위가 모두 물판이여서 흐르는 강물을 건너야 했다. 워낙 강곬이 아닌데다가 현재 흐르는 강물 또한 무릎팍을 넘을 정도여서 선참 바지를 걷어올리고 출렁출렁 건느다가 물속에 박힌 바위돌에 걸려 하마트면 넘어질뻔 했다. 게다가 바위돌가에 깊숙한 홈이 패인데서 물은 급속히 허리를 질러 졸지에 하반신이 물참봉이 돼버렸다. 뜻하지 않은 골탕에 바지가 후줄근히 젖어 말이 아닌데 혁띠에 걸었던 핸드폰까지 물의 세례를 받아 페물로 될줄이야. 하긴 여러해 쓰던 핸드폰이여서 바꿀때도 되였다지만 필경은 가야하에 당하는 두번째 골탕이였다.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셋이 두드러진 강복판 돌팥에서 금방 탐석을 벌리는데 김대현선생이 물이 붙는것 같다고 하였다. 이곳 지대 웃켠은 강폭이 넓은 잔잔한 지대여서 물이 붇는것이 알리지 않았다. 강가에 이르러서야 물이 눈이 뜨이게 붇고있다는것이 드러났다. 급기야 도로 물을 건너 서쪽의 강대안에 올랐지만 오늘 탐석행은 또 접어야만 했다. 먼저번과는 비길수는 없어도 수석산지는 전부가 물에 잠겨 버린 상태였다. 때는 정오와는 거리를 둔 시점이다. 그대로 귀가길에 오를수는 없었다. 다시 김봉세씨의 핸드폰으로 택시를 불러 60~70리밖의 도문아래 두만강반의 신기동에 갔어야 새로운 탐석에 나설수 있었다. 가야하에서 두만강에로, 수년간 탐석사에서 하루사이에 탐석지를 두강에로 이어간다는것은 처음 있은 일이다. 우리 수석인들을 부르는 가야하이고 가끔 수석다운 수석을 선사하던 가야하는 본의 아니게 선후 두번이나 우릴 곤경에 빠뜨려놓았다. 2006년 6월 26일
72    김부식씨 수석회를 찾다 댓글:  조회:4246  추천:104  2006-06-21
김부식씨 수석회를 찾다 두 만 강 한국인 수석가 김부식씨가 연변에 온지도 어언 14년이 된다. 연변에 와서 연길시에 연변장애인기술훈련센터를 꾸리며 장애인 기술훈련으로 뛰다가 지금은 운남 곤명시에 가서 장애인기술훈련원을 경영하고있다. 독실한 수석가이고 시인인 김부식씨는 연변행차에 연변의 문인석우들에 의해 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가 열리였다는 소식을 입수하고 연변박물관의 수석전시관을 수차 찾았다. 6월 16일에는 문인석우들과 더불어 가야하탐석행에 나서기도 하고 6월 21일에는 주장애자련합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였다. 아래 두만강문인수석회를 찾은 김부식씨의 사진 몇장을 두만강수석회의 수석코너에 올리는바이다.<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06_21_09_37_27_60612034.jpg width="800" height="600">수석전시관에서 왼쪽으로부터 리함, 김대현, 황상박, 최문섭, 김부식 제씨
71    【인터뷰】《중국백석흔상》에 오른 사람 댓글:  조회:4017  추천:97  2006-06-20
【인터뷰】 《중국백석흔상》에 오른 사람 두 만 강 연변에는 뜬다하는 수석인들이 적지 않은것 같다. 연길시수리국의 박성룡국장도 그런 수석인의 한분인데 오늘 연변박물관의 수석전시관에 들어서자 《중국백석(百石)흔상》한책을 내놓았다. 《두만강수석회에 드립니다.》 《예? 우리를 주는 겁니까?!》 정교하게 만들어진, 채색수석도편들로 묶어진 《죽국백석흔상》은 첫 인상부터 필자를 강하게 끌어당기였다. 책은 섬서인민출판사에서 올해 2006년 3월에 출판한, 신식채색도편 200여폭과 명수석가 109명의 애장석을 묶어 내놓은것인데 박성룡씨도 109명 명수석가의 한사람으로 인물사진과 함께 수석세점이 올랐고 수석가 소개에는 이렇게 밝혀져 있었다. 박성룡, 길림성 연길시사람, 1953년생. 현임 연길시수리국 국장, 연변수석협회 고문, 《중국백석흔상》편집위원. 1994년부터 수석을 소장하기 시작하고 국내외 수석전시회에 여러차례 참가하여 1등, 2등, 3등상을 획득… 소장석 1000여점. 《대단하십니다.》 《뭘요.》 박성룡씨는 연변두만강수석회의 신임고문답게 겸손한 자태가 그대로 얼굴에 씌여져 있었다. 얘기를 주고받으니 《중국백석흔상》의 편집위원으로, 109명 명수석가의 한사람으로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만큼 중국수석계에서는 중국관상석협회 리사이기도 한 박성룡씨를 알아주고있었다. 알고보면 박성룡씨의 수석사는 1994년으로 거스르고있다. 처음에 친구들한테서 수석이 여차여차하게 좋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차를 몰고다니며 장난하는데 그치였단다. 말그대로 운동삼아 다녀본것인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쑥 빠져버릴 줄이야, 수석하며 보니 몸단련에 좋고 마음이 유쾌한데 특이한 문화현상을 이루는 대자연의 소산물은 그토록 매력적이였다. 몇년후의 박성룡씨는 진짜배기 수석인이다. 2000년 5월에 연변국제무역청사와 함께 모아산의 민속촌에 연변의 첫 수석전시관인 《국제무역민속촌수석관》을 꾸리고 대소 100여점의 수석을 전시하기에 이르렀는데 그중 20%는 연변의 수석이였다. 그만큼 박성룡씨는 연변수석문화의 보급과 제고에서 큰 몫을 담당하여 나섰다. 《인젠 한다하는 수석가로 떠올랐군요.》 《아직도 수석이란 뭔지를 잘 모르고있습니다. 계속 배워야지요.》 역시 겸손한 스타일의 박성룡씨다. 《중국백석흔상》에 올랐어도 수석을 잘 모른다는 박성룡씨, 박성룡씨의 수석의 미래가 보다 휘황하고 밝으리라는것을 믿어마지 않는다. (관련사진은 곧 올리게 됩니다.)
70    【스케치】수석도 하나의 세계구만 댓글:  조회:3627  추천:105  2006-06-20
【스케치】 수석도 하나의 세계구만 리 함 거개가 연변수석으로 된 두만강수석전시회는 어언 열세번째 날을 맞이한다. 그간 연길을 망라하여 화룡, 룡정, 도문, 왕청, 훈춘 등지의 수백명 수석애호가들과 관련분들이 다녀갔다. 여러 날이 지나자 그 발길들이 점차 뜸해지는것 같더니 오늘은 30여명 사람들중 룡정서 온 로인 8명이 무척 인기를 모았다. 여느때와 같이 수석관직일에 나섰는데 때이른 오전시간에 벌써 로인 8명이 연변박물관 2층홀에 나타난다. 안로인 7명에 바깥로인 1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새로 전시된 연변박물관의 《동북조선민족항일투쟁사전시》관을 찾더니 연변특산품 전시관도 찾는다. 그중의 바깥로인 한분이 참 눈에 익다. 알고보니 바깥로인은 10여일 사이만도 여기 여러 전시관을 수차 찾은분이였다. 바깥로인과 잠시 얘기를 나눠보았더니 로인의 성함은 최상화이고 올해 75살이란다. 최로인이나 동행한 안로인 7명은 모두 룡정시 사탕술회사의 당지부 로당원들로서 우리 력사로 된 항일투쟁사가 도편으로 전시되였다니 찾아온분들이였다. 항일투쟁사 도편 상당수가 룡정관련 투쟁사라며 짙은 흥미를 보이는 그네들이다. 이런 분들이 최상화로인의 안내하에 수석전시관에 들어서더니 또 짙은 흥미를 보여준다. 로인 1: 야, 돌에도 이런 볼거리가 있다니?! 로인 2: 이거, 손을 댄것이 아닌가? 로인3: 손을 대면 수석이라 하는가, 이런 수석들은 티끌하나 가미되지 않은 자연석들이오. 로인 4: 정말 대자연이 묘하구만, 연변에도 이런 《돌》들이 있다는것이 신기하기만 하오. 로인일동: 이 수석이 중국지도 아니오?! 옳구만, 중국지도요! 로인들은 중국지도 수석을 보고 또 본다. 그러는 로인들은 수석세계에 빠져들기만 한다. 《어떻소? 연변박물관에 와 볼만하지?》 《수석도 볼만한 하나의 세계구만!》 《그러게 말이오.》
69    가야하 물사태에 어정쩡 댓글:  조회:4091  추천:100  2006-06-17
가야하 물사태에 어정쩡 리 함 6월 16일은 금요일이요, 두만강문인수석회에서 두번쨰로 조직한 집단탐석일이다. 그러던 일행이 가야하 만천성 땜아래서 뜻밖의 물사태에 어정쩡해졌으니 생각할수록 웃음이 절로 난다. < src=http://www.ckywf.com/ybywforum/up/mount/2006_06_18_15_57_36_60614067.jpg width="700" height="700">김부식님과 김학송시인 가야하 물사태에 어정쩡했던 우리, 뜻밖의 물사태로 탐석행을 접어야만 했던 우리—올해 두번째로 이어진 집단탐석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갔다. 이상의 사진 촬영에 김부식 2006년 6월 17일
68    어디서 이런 돌 얻어옵니까 댓글:  조회:3931  추천:83  2006-06-13
어디서 이런 돌 얻어옵니까 리 함 오전시간이다. 수석전시관을 찾는 사람들이 오늘따라 뜸해지는데 70대의 로인부부가 다가온다. 룡정에서 온다는 이들 로인부부는 금방 전시된 《동북조선민족항일투쟁사전시》를 보고서 연변박물관에 왔다가 수석관을 찾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연변에도 이런 “돌”들이 있는가고 연신 찬탄을 금치 못하다가 묘하다고 흥분에 둥둥 뜬다. 그러다가 수석 《오리》앞에서 하시는 말씀: —어디서 이런 묘한 “돌”들을 얻어옵니까 70대 로인내외간, 그들은 오늘도 수석관을 찾은 20~30명 가운데의 두분이시다. 2006년 6월 13일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