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tmjssh 블로그홈 | 로그인
두만강수석회

홈 > 전체

전체 [ 637 ]

127    【김봉세특집】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 (4) 댓글:  조회:4137  추천:100  2007-11-19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 (4)
126    【김봉세특집】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 (3) 댓글:  조회:4574  추천:100  2007-11-16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3)
125    【김봉세특집】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 (2) 댓글:  조회:4380  추천:122  2007-11-15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2)
124    【김봉세특집】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 (1) 댓글:  조회:3993  추천:68  2007-11-15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1)   【편자의 말】오늘부터 우리는 몇회에 나누어 "김봉세와 그의 두만강수석원"을 소개한다. 제1회는 김봉세 프로필과 자화상, 두만강수석원 소개, 김봉세 부분 동료들과의 사진들로 무어졌다.     김봉세는 현임 두만강수석회 회장이고 중국 관상석협회 회원으로서 수석에 대해 일가견을 가진 이름난 조선족수석인이다. 두만강수석원이 인사 드립니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산들바람처럼 애석인 여러분들의 가슴을 적시는 수석공간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중국 연변 두만강수석원이 그 동안의 해내외 애석인들의 성원에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연변에서 태여나 고향을 사랑하다보니 어느덧 고향의 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연변은 양질의 수석산지라고 볼수 있구요, 두만강 ~ 가야하를 비롯한 여러 강이나 하천에서 청석, 오석 등 질좋은 수석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런 향토애를 바탕으로 10여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탐석하고 모아 온 애장석이 200여점이 됩니다. 애장석 가운데는 고향산천을 연상케하는 산수경석, 삼라만상의 형상을 볼수 있는 형상석, 물형석, 자연의 조화인 문양석, 문자석, 추상석, 화석, 특종석도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소장한 내 고향의 돌을 애석인 여러분들 앞에 조심스럽게 풀어놓습니다. 애석인 여러분들의 진지한 흠상을 기대합니다. 여행길에 중국 연변에 오시면 저의 두만강수석원에 부담없이 들려주시어 많은 고견이나 조언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소: 中国吉林省延吉市       新兴街丹风委13组 141 – 2 – 15 전화:  0433 – 2532598 (자택)        138 – 43391088 (핸드폰)                                 중국 관상석 협회 회원                               연변 두만강 수석협회 회장                                김 봉 세     프로필   김봉세, 1951년 7월 화룡 출생. 대학학력, 화룡시위 조직부 조직과 과장, 시 문화국 당위서기, 연변대학 의학원 당위 위원 역임. 현재 중국 관상석 협회 회원, 연변 두만강 수석회 회장.   자화상                               1997년 초겨울에 우연한 기회에 수석과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쭉 수석에 혼신을 빼앗겼다. 10여년간 연변의 산과 들, 강과 곬은 물론 선후로 조선의 함흥만, 중국의 황해와 길림 송화호반, 압록강변에 두루 탐석의 자취를 남기었다. 현재 알짜 소장석이 200여점, 그 대부분은 두만강, 가야하에서 주은 오석, 청석 질의 산수경석이다. 지금까지 시종 자연적 산수미를 주창, 후세에 영원한 사랑을 남기려는 이념을 지니고 수석장석에 몰두하여 왔다. 이 몇년간 연변 두만강수석의 수장과 흠상수준을 올리기 위해 힘을 다하고 있다. 일찍 매체를 이용하여 작품을 선보이었고 탐석기, 시, 논문, 감상상식 등을 발표하였다. 제때에 온라인하여 국내외 현대적 관상석의 발전추세를 요해하고 서로 교류하고 서로 정보를 소통하면서 연변 특색의 수석 문화산업의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2006년 6월 6일, 연변 두만강수석협회와 연변박물관에서 공동주최한 “제1회 연변 두만강수석 전시회”에 22점의 수석 정품을 전시하여 해내외 애석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123    절강~안휘 접경지대서 문양소품 세점도 주어 댓글:  조회:3855  추천:106  2007-11-14
 절강~안휘 접경지대서 문양소품 세점도 주어   11월 2일, 안휘 접경지대인 절강 룡강에 갔다가 문양석 소품 세점도 두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잠시 좌대가 없이 아빠트 집안에서 찍어 보았습니다. 모두 뜻대로 찍히지 못했군요. 다시 역사질하기 싫어 그대로 올리니 이해부터 기대합니다.
122    제3회 상해 수석전시회와 맞띄워(2) 댓글:  조회:3891  추천:97  2007-11-12
          제3회 상해 수석전시회와 맞띄워(2)
121    제3회 상해 수석전시회와 맞띄워(1) 댓글:  조회:3748  추천:70  2007-11-12
         제3회 상해 수석전시회와 맞띄워(1)     지난 10월 2일과 3일 , 겨레발자취 답사차 상해로 갔다가 면바로 상해 사천북로 다론로 명인거리에서 펼쳐진 제3회 수석 거리전시회와 맞띄웠습니다.     우리 연변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격의 수석전시회였지만 제눈으로 남의것을 볼수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날의 거리 수석전시회 사진들을 두번에 걸쳐 올리여 봅니다. 저녁무렵이여서 사진 리해를 기대합니다.
120    이번엔 절서대협곡에 빠져버렸지 댓글:  조회:3991  추천:90  2007-11-12
이번엔 절서대협곡에 빠져버렸지   1   절강 룡강지역의 대규모 탐석지는 나를 놀라게 했다. 하루 묵으며 재차 탐석에 나서 보기로 했는데 고속도로휴계소 보안원 왕씨는 룡강대협곡에 가보았는가고 넌지시 말을 건네온다. “룡강에 대협곡이 있어요?” “있다뿐이겠습니까, 대단한 대협곡입니다.” 나의 물음에 왕씨는 긍정적인 답을 주면서 한번 가볼만하다고 퉁겨준다. “사실은 림천하에 가서 탐석하기로 했거든요.” “아이유, 대협곡바닥엔 흔한것이 강돌이랍니다.” “그래요?” 나는 벌써 룡강에 있다는 대협곡에 젖어들었다. 황차 대협곡팬인 나로서는 탐석지로도 된다니 한번 나서보기로 작심했다. 잠자리는 고속도로휴계소 호텔에 정해졌다. 시간도 있고하여 탐석기 한편을 쓰고나니 겨우 저녁 아홉시다. 나의 눈앞에는 수석에 못지않게 대협곡들이 둥둥 떠다닌다.                                                         2   선참 떠오르는 것은 내고향 연변의 대협곡이다. 이 대협곡들은 내고향의 자랑—장백산에 분포되여있는데 연변측 백두산 북쪽비탈의 대협곡과 무송측 서쪽비탈의 금강대협곡이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길이가 80~90메터, 너비가 200~300메터, 길이가 무려70킬로메터에 펼쳐졌다는 금강대협곡, 대자연의 경이로운 창조물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 모두를 끝없는 경탄속에로 끌어간다.  2005년 7월말~8월초에 나는 두패의 한국손님들을 모시고 백두산행에 오르게 되였고 서쪽비탈의 금강대협곡에도 가보았다. 그때 여행을 즐긴다는 한국의 한 대학교수는 미국에 가서 한동안 교편을 잡으며 미국 아리조나주 그랜드 캐년을 여행한적이 있는데 세계 7대 불가사중의 하나요, 4억년의 루루 세월속에서 콜로라도 강의 급류가 만들어냈소, 길이만도 446킬로메터에 달하오---이 그랜드 캐년의 대협곡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감회에 젖어있었다. 그래도 백두산의 금강대협곡이 볼멋이 다르고 더 친절하고 더 정이 간다고 한국교수는 덧붙혔었다. 그러노라니 1983년과 1988년에 조선 삼지연을 통한 백두산 등반과 우리측 장백현 백두산 남쪽비탈로의 등반시 압록강대협곡을 보았던 일이 눈에 선하다. 알고보면 장백산은 여러 곳에 대협곡이 있는데 그중 연변측 북쪽비탈의 대협곡, 무송측 서쪽비탈의 금강대협곡, 장백현측 남쪽비탈의 압록강대협곡이 유명하다. 이 세곳에 대한 대협곡답사로부터 지구상 대협곡에 대한 나의 리해는 날과 더불어 깊어만 갔다. 절강에 온후에는 황산의 대협곡이 발아래에 펼쳐졌다. 그 와중에 황산의 서해대협곡, 서장의 야루쟝대협곡, 천산의 신비대협곡, 귀주의 남강대협곡, 운남의 란찬강대협곡으로부터 대만의 태로각대협곡, 일본 제일의 구로베대협곡, 아프리카 동부 고원지대를 가로지나는 대협곡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나의 맘속에 자리를 잡아 갔다.      3   이틑날 11월 3일 아침, 수석탐석을 후날로 미루고 보안일군 왕씨를 찾으니 그는 오토바이로 나를 몇리밖의 룡강진에 안내하였다. 해살이 퍼지기전의 시간이라 찬바람이 온몸을 엄습하여 나는 때아닌 추위에 덜덜 떨어야 했다. “룡강의 아침이 이리도 추워요?!” “한랭기후의 영향으로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습니다.” 나와 왕씨와의 오토바이 두어마디 대화다. 룡강에서 나는 다시 오토바이를 바꿔타고 뒤에앉아4~5리 떨어진 절서대협곡 입구로 달려야 했다. 우리 연변의 한겨울 혹독한 추위를 방불케 하는 찬기운이 기승을 부려 정말이지 나는 동태가 될번 했다. 그속에서도 대협곡바닥에는 돌밭들이 쭈욱 깔리여 나는 넋이라도 잃을 지경이였다. 언젠가는 룡강을 흘러내리는 림천강을 망라한 대협곡바닥을 샅샅이 훓으리라고 다져도 보았다. 절서대협곡 입구에 이르니 대협곡의 관광지는 여러 갈래로 나뉘여지고 내가 가기로 한 룡강--백마애구간은 대협곡 길이만도 18킬로메터, 입장료가 60원, 전용뻐스표가 14원으로 나타났다. 뒤미처 안바이지만 절서대협곡은 절강~안휘 접경지대의 청량봉(11월 2일, 림천강 탐석시 보았던 해발 1800여메터의 주봉) 국가급자연보호구내 대협곡으로서 산은 황산의 여맥이요, 강물은 전당강이 원류였다. 이곳 대협곡은 80여킬로메터의 길이를 이루면서 자림포, 검문관, 로대계, 백마애 등 4대 풍경구와 120여개 관광점, 10여개 려행객 참여항목으로 이루어졌다. 한데서 생각밖으로 대협곡입구는 아침인데도 관광객들로 붐비였는데 상해, 강소, 소주, 무석, 항주…  등지에서 모여든 전용관광뻐스가 수없이 많았다.         4   동반자가 없는 나는 강소에서 왔다는 한 태평양보험회사 사람들과 섞이였다. 대협곡관광구에서 전용중형뻐스는 한패의 우릴 싣고 대협곡구내 아스팔트길로 달리더니 한구간에 이르러 원길에서 벗어나 오른쪽으로 꺽어들었다. 대협곡의 첫 풍경구로 되는 자림포 폭포가 우릴 기다리고있었다. 이 구간부터는 대협곡의 폭이 좁아지면서 협곡 내측이 층암절벽들로 이루어져 대자연이 빚어낸 장엄한 신비미를 맘껏 느끼게 하였다. 자림폭포는 좁은 골안따라 흐르던 물이 갑자기 10여메터의 수직낭떠러지를 만나 아래로 내리꼰지면서 형성된 자연폭포였다. 수량은 많은 편이 아니나 절서 대협곡의 대표적인 폭포로서 바위에 따라 상하 두개계단을 이루며 아래로 떨어져내려 환성을 자아냈다. 관리구내 전용중형뻐스는 다시 원길에 들어서서 대협곡따라 때로는 협곡바닥가로, 때로는 산중턱길로 한참 달리더니 로대계라고 불리우는 풍경구에 살짝 멈추어섰다. 산중턱이라 계단길따라 대협곡바닥에 내려야 했는데 대협곡을 가로지른 수십메터 허궁다리가 반겨맞아주었다. 사람들이 올라서자 허궁다리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데서 녀성들과 나이지숙한 분들은 다리를 옮겨디딜 엄두도 못내고 괴성을 질러댔다. 허궁다리를 건너서는 관광소로길이 협곡 오른쪽따라 몇리를 뻗어올랐다. 이구간은 협곡의 폭이 넓어지고 협곡량측이 경사진 산비탈이여서 대협곡의 기분이 나질 않았다. 장백산 서쪽비탈의 금강대협곡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5   로대계풍경구에서 이색적인것은 로대계서쪽가에 일어선 널다란  “결혼육아문화풍정원”이라 하겠다. 이곳의 건축물과 시설들은 모두 결혼과 육아란 주제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다면 “벼짚사람광장”의 뚱족가무표현은 자못 인상적이였다. 가무표현무대에는 뚱족차림의 처녀애들이 긴 참대로 땅바닥을 치며 소리내는 뚱쪽의 참대무를 표현하기에 바쁘다. 처녀애들의 절주있는 참대무에 따라 몇몇 처녀애들이 참대가지 사이를 살짝살짝 뛰여넘으며 성수나게 놀아주는데 흥이 난 관광객들도 그속에 어울려 돌아간다. 참대무가 끝나면 뚱족처녀애와 관광객총각의 “맞선”이고 처녀총각은 다정히 손잡고 잘 꾸며놓은 “신방”으로 안내된다. 장백산 서쪽비탈의 금강대협곡에 비하면 별거아니라지만 자연관광과 인문관광을 조화롭게 결합한 이곳 절강사람들의 지혜, 그러면서 연변의 관광개발에 어쩔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내고향 천혜의 백두산 폭포가에도 우리 민족의 인문민속관광을 곁들이여 장백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겨레민속향수를 안기며 관광수입도 올리면 얼마나 좋을가…    텔레비에서나 보아왔던 소수민족의 참대무---이런 참대무를 절서대협곡에서  제눈으로 보는 멋이 별멋이기만 하다. 이구간을 지나면 다시 산을 타고 오르다가 기다리는 뻐스를 타고 대협곡으로 내려간다. 그다음부터는 대협곡을 가로막아 생겨난 맑은 협곡호수가 몇리에 뻗어있고 내리오른쪽 수직절벽에는 바위중턱을 가로 탄 관광소로길이 내내 펼쳐져 그야말로 선경에 들어선듯한 기분이다. 절강 서북부에 자리잡았다하여 절서라 불리우는 절강 룡강의 대협곡—관광전문가들은 80킬로메터 길이를 이루는 이 대협곡을 “화동제1관광협곡”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 련휴일이면 절강주변을 중심으로 한 국내외관광객들이 까마득히 몰려드는걸가. 절서대협곡 2대풍경구의 주요경관들을 둘러보는속에 서너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대협곡바닥은 인공호수구역들외 전부가 수석인들이 찾아볼만한 희한한 돌밭세계여서 내 마음은 그냥 둥둥 뜨기만 한다. “대협곡의 아름다움에 취하며 탐석하는 재미 제법일거야!” 나는 대협곡 내내 탐석의 아름다운 꿈을 꾸고 또 꾸어보았다.   (2007년 11월 9일)    
119    【탐석기】 절강에서의 첫 탐석 성수 났다오 댓글:  조회:3735  추천:88  2007-11-08
절강에서의 첫 탐석 성수 났다오   한차례 안휘 황산행에서 연도의 희귀한 수석탐석지를 보아냈지만 절강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어떻게 가야 할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한동안 끙끙 앓다가 소흥 중심뻐스부에 가서 알아보니 안휘 황산쪽 장거리뻐스는 있었으나 그들도 내가 가야 할 절강 림안시 룡강을 거쳐가는지는 몰랐다. (에라, 내친김에 부딪치고 볼판이다!) 나는 종내는 룡강 가까이 절강 창화까지 가는 아침 7시반 뻐스표를 끊고말았다. 2007년 11월 2일의 뻐스표. 헌데 일어나니 아침 6시 10분이다. 늦잠에 든 안해도 세상모르고 자고있다. 급기야 한해를 깨웠지만 밥을 지어먹고 떠난다면 령락없이 뻐스를 놓치고 말 판이다. 다행히 안해가 교정의 학생식당 길가에서 간이음식를 사주었기에 하루주림을 면할수는 있었다. 가고저하는 탐석지는 안휘를 코앞에 둔 근 400리 밖 절강 룡강땅이다. 안휘 적계행 장거리뻐스에 오르니 운전사는 이 뻐스가 룡강을 거치여 간다고 알려준다. 이보다 기쁜 소식 또 어디 있을까, 잔뜩 흥분한 나의 눈앞에는 벌써부터 뜬다하는 수석들이 둥둥 떠다닌다. 어제까지도 오스스 날씨가 오늘은 해빛찬란한 날씨여서 기분이 진짜 짱이다. 안해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푸념이지만 이 사람은 기분이 하도나 좋은데야. 소흥을 떠난 장거리뻐스는 어느덧 항주 서호가를 벗어나 안휘와 절강 접경지대를 바라고 쉬임없이 달린다. 목적지 룡강—절강안휘 고속도로휴계소에 이르니 벌써 정오 12시를 앞둔 시점이다. 좋이 4시간을 달려왔다는 말이되나 나는 개의치를 않았다 .룡강 고속도로휴계소에서 이름도 모르는 강가 탐석지까지는 1킬로메터도 되나마나한 거리이니 웃음이 절로 난다. 고속도로휴계소에서 점심을 에때우고 부근의 고속도로 다리밑에 이르니 황산행관광뻐스에서 본바와 같이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흐르는 강바닥에 보이는것은 온통 돌들세계이다. 문양이 박힌 돌들도 보이고 구멍이 관통하다만 돌들이 가끔 나타나는걸로 보아 어디에선가 “나 여기 있소!”하고 소리치며 수석이 불쑥 나타날것만 같다. 허나 수석인들은 알수있듯이 수석다운 수석을 탐석한다는것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벌써 여러점을 잡아 보았으나 이것이 흠 아니면 저것이 흠이여서 아쉬운대로 놓아버려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꼭 1년하고도 두어달이 더 지난 후, 내고향 길림 연변도 아닌 머나먼 6000리밖 절강땅에서 이곳 첫 탐석에 나선 기분이 그리도 좋을수가 없다. 산수가 삐여난 곳에서 강남의 청신한 공기를 마이며 타향의 정취에 젖어봄도 좋은 일이렸다. 그러는 강물우에 100여마리도 넘어보이는 중오리떼가 나타난다. 인기척에 놀란 중오리들이 저마다 날개를 퍼덕이며 한쪽으로 몰키는 모양은 하나의 동화세계를 방불케 한다. 강서쪽에는 애어린 대나무숲이 강따라 길게 펼쳐지고 그 너머로 하늘을 떠이기라도 하는 웅장한 산체가 시야에 안겨드는데 평지에서의 직접고도가 700~800메터는 될상 싶었다. 후에야 안바이지만 해발이 1800여메터에 달하는 이 일대 최고높이의 산—청량산, 사면이 모두 희한한 푸르른 산으로 둘러싸여 그림같이 아름답기만 하다. 코노래가 저도모르게 흘러나오는 속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휴대폰을 보니 어언 오후 3시가 되여온다. 두어시간 사이 점점이 검은 점이 박힌 소품 2점을 주어들고 문양석 한점이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과는 달리 리상적이지는 못하나 헛걸음은 아니였다. 그것도 절강땅에 와서 주어든 첫 소품이고 문양석이니 소중할것만 같았다. 다리 아래우 넓은 공간을 휘잡아가노라니 산기슭을 에도는 남쪽 저 아래에 또 넓은 돌밭이 펼쳐진다. 배낭을 둘러메고 강따라 아래 구간에 이르니 검은 점이 오구구 재미있게 박힌 소품 하나가 또 나를 빤히 올려다 본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를 넘어간다. 탐석을 마무려야 할 시점이라 아쉽기도 하지만 여기 강은 내내 돌밭의 연장이여서 탐석지로서는 안성맞춤이였다. 마침 귀로의 강뚝에서 한 중년사나이를 만나 말을 나누니  이강은 림천 (林泉) 강이라 부른단다. 이름모를 때는 룡강하(龙岗河)라 지어 수없이 불러 보았지만 이제는 강이름이 나져 시름을 놓았다. 절강에서의 첫 탐석으로 보낸 하루, 성수난 탐석의 하루는 빨리도 흘러간다   (2007년 11월 2일 밤, 절강안휘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118    농가식 한증막 별멋이였소 댓글:  조회:4196  추천:115  2007-08-12
      한국인 박식선생은 연변에 온지 10년이 잘되는 두만강수석회 고문입니다. 몇년래 연변일보에만도 일상을 재치있게 그린 글 100여편을 발표하고 시집도 몇권 발표한 유능한 문인, 화가, 연길시안에 제법 규모의 음식점을 경영하는 한편 천년송마을에 특이한 농가식 음식점--한증막을 경영하기도 하는 기업가이기도 합니다.      8월 5일 점심, 두만강수석회 님들은 천년송마을 한증막에서 식사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였습니다.
117    천년송밭에 고목 참나무도 섞이여 댓글:  조회:4116  추천:88  2007-08-12
      천년송밭에 수령을 알수없는 고목 참나무도 몇그루가 있어 이채롭습니다. 적게쳐도 100여년, 혹은 수백년?누가 알리오?
116    천년송마을에서 회포를 풀다 댓글:  조회:3602  추천:109  2007-08-12
         두만강수석회 회원님들 오랜만에 천년송마을에 모여 회포를 풀었습니다.
115    보람있었던 신기동수석탐석 댓글:  조회:5338  추천:108  2007-05-15
       보람있었던 신기동수석탐석                                     ---남근석과 옥문석의 만남---       두만강수석회에서는 지난해 년말총화를 하면서 해마다 5.1절과 국경절을 정기 수석탐석일로 정하고 5.1절과 국경절에 정기 수석탐석을 하기로 정했다 .올해 5.1정기수석탐석은 도문 신기동에 가 탐석하기로 하였다.미리 통지한 결과 시조시인이신 김철학 선생이 오신다고 하다 감기몸살로 불참하엿고 우리 두만강수석회 특별회원이신 박식시인이 참여하시겠다고 흔쾌히 대답햇다 5.1황금관광성수기대목이여서 몸을 뺄수없는 연유로 참석못했다.이분은 중국연변에 오신지 10여년이 너머 되는데 연길 개장거리에 <<고향에 봄>> 한식집과 쑈허룽에 백두산한증별장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연변을 두번째 고향으로 간주하시는 분이다. 연변일보 아침해살코너에 수십편의 글을 발표하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보이고 신문사의 표창을 받으신 분이시다.     우리 일행은 수석회 고문인 김대현,수석회회장 김봉세, 그리고 김학송,석문주,한태익,새로 입회한 박수의사님 등 제씨들이였다. 아침 출발은 7시에 로뻐스부에서 만나기로 했다.우리는  7시 20분에 훈춘으로 출발하는 뻐스에 몸을 실었다.돌주으러 간다는 우리 일행의 대답에 신기해 하는 뻐스손님들이다. 천렵놀이가는거는 자주 보아도 돌주으러 간다는건 처음 본다는것이였다.그것도 명절인 5.1절에 간다니 수석탐사가 신기하긴 한 모양이다.    한시간 남직히 달려 신기동 어귀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뻐스에서 내려 두만강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모두다 신나는 표정이였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만이 신바람이 나는가부다.흐릿한 두만강은 제법 큰물을 담고 흐르는것이 유유히 흐른다는 표현이 제격일거 같았다. 두만강건너 조선마을의 집들이 한눈에 안겨  오고 동네 산기슭에 피여난 진달래는 말그대로 진붉은 꽃동산을 방불케 하였다. 조선에서도 진달래축제를 한다면 저곳에 하면 적격일거다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필자는 탐석하기전에 신기동마을 서쪽에 지어놓은 2층집을 찾아 들어가 살펴 보았다. 한때 가라오케이를 했던 이 건물은 기막힌 절경이 있는데 지은것이기에 펜션으로 사용하기에 안맞춤한거 같았다.주인이 돌보지 않아 창문을 다 뜯어가고 몸체만이 남아 그제날의 황홀했던 영화를 쓸쓸히 담고 있었다. 필자는 사진몇장을 몇장을 남기고 탐석하기 사작하엿다.     온 오전 열심히 탐석하다 필자는 금자탑같은 소품석 한점을 건졌다.꽤 마음에 들어 주은후 박수의사한테 보이니 금자탑같다고 평해주어 흐믓했다. 김시인은 탐석도 잘 하지만 즉흥 수석평을 잘해 함께 탐석하는 초보자에겐 커다란 도움이 된다. 김시인은 남근석과 옥문석을 주었다. 그분이 남근석을 은근 슬쩍 자신의 거기에 대고 휘두르는 모습이 웃겹기도 하지만 남근석의 모양새가 일품이라고 생각되였다. 옥문석은 손바닥에 놓고 높이 쳐들고 이리저리 살피며 진지하게 관찰하는 모습이 산부인과 의사가 저리 가라는 폼새였다.김시인은 수석은 신이 인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라며 탐석에 대한 열정이 시창작못지지 않다.이전에 오석으로 된 남금석을 등산팀회식모임에 가지고 와서 여러분들께 자랑을 하기까지 했다.여러 남성분들은  이리저리 만지며 떠들썩하게 한두마디씩 품평하니 여성분들도 흥미가 부쩍 동해 어깨너머로 눈요기하면서 두손으로 입을 싸쥐고 웃어 주는것이였다.아무렴 좋은 예술품은 남녀를 가리지 않거늘 그것이 남근이면 어떻고 녀성라체면 어떠하랴!  흔쾌히 어느 녀성분한테 선물하는거 같던데 그 남근석은 주인을 제대로 만났으리라 생각된다.   같은 신기동돌밭에서 수천년 잠자며 있어도 서로 인연이 없던 두돌이 김시인이 남근석,옥문석으로  불러주며 소장함으로써 비로서 서로 짝을 이루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게 되였다.꽃도 꽃이라 이름지어  불러줄 때 그 아름다움과 향기가 좋듯이 돌도 수석가에게 의해 발견되고 합당한 이름으로 불리여질 때만이 그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다. 근데 어떤 사람들은 돌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왜 주어 오나며 수석가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수석탐사에는 발견의 미학이 있다.심산속의 백옥도 캐서 다듬어야 되듯이 수석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탐석하고 양석하고 돌에 문화의 향기를 불어 넣을 때만이  한낱 돌에 지나지 않던 돌이 수석의 생명을 가지게 된다.2차 두만강 수석회나 기타 수석출품회에 신기동남근석과 옥문석이 가지런히 수석애호자들과 대면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정심때가 되는데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자 우리 일행은 마을로 발걸음을 향했다. 찾아간 집이 바로 김시인이 친구집이였다. 그 친구는 로모를 모시고 있는데 올해 아흔셋이란다. 년세가 많으신데 도 매우 정정하신 것이 백세넘어까지 장수하기는  념려 없을거 같았다.그림같은 동네서 효성하는 자손들과 같이 만수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후 언제 신기동에 수석탐사를 다시 오면 장수하신 할머니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    가지고 온 도시락과 감주,포도주,약술을 내놓고 한잔했다. 각자 주어온  수석을 품평하고 마시는 술맛을 수석인이 아니고는 알수 없으리라.우리 수석인들  술맛은 모태주나 분주 그리고 양주도 저리가 저리가라다. 술맛은 누구하고 마시는가에 따라 기분이  좌우된다.    김시인의 친구가 이전에 동물과 흡사한 돌을 주었단다. 누가 200원에 팔라는거 안팔고 가지고 있었는데 가지고 놀다 부주의하여 그만 깨버리고 말았단다. 옥이 주인을 잘못 만나 부서진것같아 아쉬웠다. 옆에 듣는 우리도 아쉬운데 주인의 마음은 우리들 돌사랑을 보고 건사를 잘못한 자책감에 모대기는것같았다.주인도 우리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석평하는 모습을 보며  그 돌에 대한 미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정심식사를 한후 우리는 또 신기동강변하류를 향해 수석탐사를 떠났다. 그리고 세시반좌우에 시간을  맞추어 길 나왔는데 아침에 탄 뻐스가 3시 50분경에 우리 일행을 지나치며 정원이 넘어 나서 세우지 않아 우리는 할수 없이 택시를 불러 세우고 10원에 도문기차역까지 왓다. 때마침 4시18분 도문대련행 기차가 있어 우리 일행은 기차로 즐거운 귀가길게 올랐다. 비록 날씨는 스산했지만 좋은 수석탐석의 하루였다.                                                            락     동     강                                               2007.5.3
114    초연--조선족문단 방문 댓글:  조회:4480  추천:166  2007-04-18
  지난 4월 10일 연변조선족자치주인 연길에 저희 부부가 같이 방문했습니다. 15년간 두터운 정을 쌓아 온 조선족 문인들과 오랜만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제2의 고향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던 연길...명절때 찾는 설레임으로 왔습니다. 이번 방문은 조선족문단에 순수시문학지인 <시혼>을 출간하여 기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곁들여 저의 시집 <초록빛남방편지> 기증과 <시가 있는 사진전>도 함께 열었습니다. 100 여명의 조선족 문인들이 함께 한 축제는 매년 1차례 가지게 되는데 내년에는 <시혼>시집출판기념회와 더불어 '시 낭송회'  그리고 '음악회'  '시화전'이 열립니다. 최고 원로시인이신 리상각 시인과 조성일 평론가를 비롯한 모든 문인들이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113    【뉴스】초연님이 초대합니다 댓글:  조회:4242  추천:116  2007-04-02
늘 평안하시지요? 운남에서 복된 걸음을 계속하는 가운데 4월 10일 행사를 위해 연길에 갑니다. 바쁘시더라도 함꼐하시길 소원합니다. 초대: 중국조선족순수문학지 <시혼> 창간호 출간기념회 및 김부식 시집 <초록빛남방편지> 출판기념회 장소: 연변출판사 회의실 일시: 4월 10일 오전 9시 30분 주최: 연변작가협회, 연변시인협회, 시혼편집위원회 협찬: 김부식 이날 행사에는 100 여명의 문인 및 관계자들이 참여합니다. 저는 그날 <시가 있는 사진전>도 함께 개최할 예정입니다. 저희 부부는 5일간 연길에 머문 후 광주와 심천에 한문화원 강의를 위해 출발합니다. 봄을 여는 시간에 행사장에서 뵙기를 원합니다. 건강과 평안을 기도합니다. 운남 곤명에서 김부식 올림 올 한해도 복된 걸음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 홈페이지 http://www.iwad.net 한국 / 011-9134-7001 (핸드폰) 중국 / (86) 13888-488-224 (핸드폰)
112    님들과의 상봉 댓글:  조회:3945  추천:113  2007-03-18
2월 5일 두만강수석회 님들이 연길서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아래 부분적 사진들을 올리여 본다.
111    세계 최대의 나무화석군(6) 댓글:  조회:3973  추천:146  2007-01-28
세계 최대의 나무화석 사진 마지막 회 입니다.규화석--나무화석에 대한 이해가 따른다면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110    세계 최대의 나무화석군(5) 댓글:  조회:4190  추천:137  2007-01-27
절강 나무화석 사진 (5)로 이어집니다.
109    세계 최대의 나무화석군(4) 댓글:  조회:4140  추천:114  2007-01-26
세계 최대의 니무화석 사진 연재(4) 입니다.
108    세계 최대의 나무화석군(3) 댓글:  조회:3782  추천:87  2007-01-25
세번째로 이어지는 절강 신창의 세계 최대의 나무화석 사진들입니다.
107    세계 최대의 나무화석군(2) 댓글:  조회:4293  추천:117  2007-01-24
이어지는 규화목 사진들입니다.
106    세계 최대의 나무화석군(1) 댓글:  조회:4582  추천:90  2007-01-24
절강성 소흥시 신창 대불사 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나무화석군--신창 규화목 국가지질공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30여 그루의 거대 나무화석이 전시되여 있는데 신창의 안계--왕가평 일대서 출토되였다고 합니다.2001년에 이미 상해 기네스북에 의해 대세계 기네스 제일로 되었구요. 1월 20일 절강 연우산악회에서 신창 대불사를 산행답사할 때 찍은 사진 근 30장을 오늘부터 몇기에 나누어 올리게 됩니다.여러 분들의 감상을 기대합니다.
105    또 하나의 유감--신창 수석관 댓글:  조회:4170  추천:126  2007-01-24
남방에 온후 수석세계에서의 첫 유감이 12월 9일 소흥의 후산풍경구에 갔다가 후산수석관내를 관람하지 못하고 온것이라면 또 하나의 유감은 신창대불사에 갔다가 천취근석예술관을 보지 못하고 온것이라 하겠다. 신창대불사 산행답사를 마치고 가까이 시내 뻐스정류소에서 뻐스를 기다리는데 길 건너 저쪽에 나무뿌리 수석 예술관이 보이지 않겠는가,때는 오후 4시가 금방 넘어섰고 4시 내의 어느 뻐스인가 타고 소흥으로 귀가해야기에 뻔히 건너다 보면서도 어찌할수가 없었다.시내 저쪽에서는 뻐스가 오고있었다. 별수없이 꽤나 먼데서 당겨다 찍은 외경사진을 올려본다.소흥일대서도 수석세계를 엿볼수 있음을 알리자는데 그 속셈을 두어본다.
104    소흥 후산에도 수석관이 있어 댓글:  조회:3576  추천:123  2007-01-21
지난해 12월 9일 우린 소흥평원 속 외홀로 솟아오른 울부짖는 산 풍경구--후산에 갔다가 풍경구내에 설치된 수석관을 보았습니다.마침 문이 잠기여진 수석관이여서 들어갈수도,안을 들여다 볼수도 없었습니다.유감이였습니다. 오늘 수석관 외관사진을 올리여 봅니다.
103    축하합니다~리흥국 선전부장님 댓글:  조회:4038  추천:124  2007-01-19
인터넷을 통해 연변주 심계국 리흥국국장이 1월 10일~12일 열린 연변주 제9차 당대회에서 주당위 상무위원으로 당선되고 1월 18일 제11차 상무위원회 사업분공에서 주당위 선전부장으로 확정되였다는 정식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실 주당위 선전부장은 어제 오늘의 새소식이 아닙니다.지난 12일 주당위 상무위원 당선은 선전부장을 의미하니깐요.이는 또 며칠전 연변과의 전화통화에서 실증되였구요. 기쁨니다.리흥국 신임부장은 우리 두만강수석회 제1임 회장이였습니다.지난해 6월 8일에는 또 제1회 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를 연변박물관에서 박물관과의 합작속에서 성황리에 펼치도록 해주시여 그지없이 고마왔습니다.연변 수석문화의 대잔치였습니다. 함께 다니던 두만강이요 ~~ 탐석의 나날 그립습니다.언제면 또 두만강으로,가야하로 탐석행에 나설는지,그날이 기대됩니다. 리함 두만강이 축하 드립니다,진심어린 축하드립니다,신임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 리흥국 선전부장님!!! 남방 절강에서 2007년 1월19일 [사진설명] 2006년 6월 8일 제1회 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 개막을 선포하며 연설하는 제1임 리흥국회장님
102    남방 정원석 2점 보여 드립니다 댓글:  조회:3847  추천:90  2007-01-16
1월 13일 서시고향 진주사냥 갔다가 서시전이 자리잡은 저라산풍경구에서 남방 정원석 2점을 사진 찍었습니다.두만강수석회 한겨울철 너무 조용하지요?!수석사진 보면서 무얼가 상상해 보시죠!!!!!
101    리회장 그간 안녕하시오?! 댓글:  조회:4016  추천:114  2007-01-02
리회장앞! 그간 안녕하오? 머나먼 남방에서 몸 건강히 잘 지우리라 생각하오.새해 인사를 보내오! 지난달에 수석회총화을 지었다오. 참가한 분들은 김회장,김대현,신철호,김철학,송철남,한태익이고 초대손님으로 고향에 봄 박식사장이 참가하였소.리흥국국장은 사연때문에 참가못하고 김학송씨는 독감이 걸렸다고 불참하고 석문주씨는 근무중이라 참가못했소. 전임회장들과 회원들이 수고한 보람으로 제1회두만강수석전시회를 가진것은 연변수석탐석사에 획기적인 일이라 사료되오. 지난해 리회장이 남방으로 떠난후 국경절 날 왕청 수석탐석과 10월 5일날 개산툰 사이섬에 가 수석탐석을 진행하였다오.새해에는 5.1절기간과 국경절 기간을 공동수석탐석기간으로정하고 활발한 수석탐석을 진행하기로 했소.그외에도 시간나는대로 개별적으로 자주 수석탐석을 하기로 했다오. 김회장한테서 메일주소를 알고 늦게나마 메일을 보내오. 그곳에 가 교수사업은 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방학이 되여 오면 수석회 분들이 다정히 모여 앉아그곳의 소식도 듣고 싶구만. 아무쪽록 머나먼 타향에서몸건강히 잘 지우길 바라는 맘이오.수석코너 사이트에 글이나 사진 올릴줄 모르니 새해에 그곳에 글이나사진을 보내면 많이올려 주길 바라오. 방학이 언제인지 기다려지는구만.몸건강히 만나는 그날까지 잘 지우기를 바라며 금돼지해에 하시는 일이 뜻대로 되고 만복이 깃들기바라오. 안녕히. (2007년 1월 2일)
10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댓글:  조회:4314  추천:106  2006-12-3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지나간 2006년 정다웠고 밝아올 2007년 희망에 넘칠거예요.두만강수석회 여러 회원님들과 매매 사랑의 손길로 지켜봐준 네티즌님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99    정다운 2006년 댓글:  조회:4207  추천:123  2006-12-31
또 하나의 희망과 행운으로 부풀어오를 새해 2007년을 하루이틀 앞두니 돌아보는 2006년이 그리도 정다울수가 없다. 2006년은 두만강수석회로 말하면 희망과 행운으로 넘쳐난 보람찬 한해였다.이 한해 두만강수석회는 천리 두만강,가야하를 오르내리며 대소 20여차 탐석행에 "중국지도"등 수십점의 수석을 받아안은 행운을 지니였다. 그중 4월 1일의 두만강 신기동 집단탐석,6월 16일의 가야하 만천성 땜아래 집단탐석은 잊을수없는 흥나는 탐석으로 자리 잡았으니 집채같은 가야하 난데없는 물사태에 어정쩡 밀릴번 했던 6월 16일은 더구나 잊을수가 없다. 또,두만강수석회는 이해 2006년 6월 8일에 연변박물관과 함께 연변박물관에서 제1회 연변두만강수석 전시회를 성황리에 가지고 6월~~12월 내내 두만강수석전시관을 움직여 왔으니 수석전시관을 돌아본 이는 무려 1000여명에 이른다.이 소식,이 성황,이 전시는 연변일보,흑룡강신문,길림신문 등 보도매체와 인터넷 여러 사이들에서 뜨고뜨며 연변수석문화의 대잔치,연변만의 두만강수석이 만방에 널리 알리여졌다. 외부의 보도매체,인터넷매체만을 바라지 않았다.연우미디어를 통한 두만강수석회 코너를 성과적으로 운영하여 좋은 효과를 보고있다.이에따라 수석회코너에 오른 글들을 모아 편집해 놓으니 제법 훌륭한 책이되여 새해 정식 출판하게 된다. 이미 알려진 바와같이 두만강수석회는 연변의 지성인들로 무어진 자발적모임으로서 대학교수,학자,기자,작가 등으로 활약하는데 이에따른 성과들도 수두룩하다.김철학님이 노래 "우리는 중국조선족"으로 2006년 연변텔레비 음력설문예야회 대상을 수상했다면 리광인,김학송 님은 올해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평론상,시상을 수상했고 리광인님은 또 한국서 출판된 "인물조선족항일투쟁사"(전4권)으로 우수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해당 시집,학술저서를 펴낸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9월이후의 탐석 등 활동도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국경연휴일에 김대현,김봉세,신철호,한태익,석문주 등은 가야하 만천성 땜아래 탐석으로,김봉세,김대현,신철호,한태익,송철님,김학송,석문주 등은 두만강 사이섬 탐석에 나서 한다하는 수석 여러점을 주어 싱글벙글 한다.12월 19일에는 김대현,김봉세,신철호,한태익,김철학,송철남,박식 사장 등이 한자리에 모여 행운으로 보람찬 2006년 한해를 총화하고 새해 새출발을 다짐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는2006년은 실로 희망과 행운으로 이어온 보람찬 한해였다.밝아오는 새해 2007년은 두만강수석회에 보다 희망과 행운을 가져다 주리라!!!
98    복된 성탄 되세요~~ 댓글:  조회:4513  추천:111  2006-12-24
2006년 한해 보내주신 사랑~ 참으로 감사합니다
‹처음  이전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