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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수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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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나의 소장석-거북(호피석) 댓글:  조회:5025  추천:45  2010-03-13
276    나의 수석 세계 (2) 댓글:  조회:4615  추천:40  2010-03-12
                    나의 수석 세계 (2)
275    나의 수석 세계 (1) 댓글:  조회:4425  추천:42  2010-03-06
                     나의 수석 세계 (1)
274    상해 대도시에서의 우리 만남 댓글:  조회:4483  추천:30  2010-02-18
              상해 대도시에서의 우리 만남   --한국 “수석문화”사장님과의 인연을 두고   오늘 아침 상해란 대도시 날씨도 령하 2도--3도로 떨어진다. 아침식사후 최성호사장님의 안내로 택시로 상해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고물성으로 가는데 택시기사가 보던 “양자석간”신문이 눈에 띈다. 첫 잡혀오는 기사가 강소 태흥시에서 어제 새벽 5시 남짓하여 길달리던 승용차 한대가 뜻하지 않은 눈길에 그만 강물에 떨어져 세명이 사망, 그중 한살짜리 아기에 그 엄마 속하니 아기엄마는 아기를 품에 꼭 안으며 모성애를 보였더라나. (끔직도 하구나. 강소 남경과 그 일대에도 큰눈이 내린 모양이지?!) 내가 안타까움을 내비치니 택시기사는 자기는 사천 성도 사람으로서 상해에 와서 택시를 몰고 있고, 음력설—춘절기간 버스를 몰던 고향의 친구가 섬서땅에서 눈길에 갇혀 이틀, 지금도 눈이 계속 내려 숱한 차들과 더불어 오도가도 못하고 당하고 있단다. 그러니 이달 8일 이후부터 산동, 화동 대지를 망라한 대면적 땅에 큰눈이 아니면 폭설이 내릴거라던 중앙TV의 일기예보가 그른데 없다. 말그대로 하북, 산동, 산서, 섬서, 감숙, 녕하, 하남, 안휘, 강소 들 9개성과 자치구들에 한파를 동반한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중국 북부지방 59년만의 최대 폭설이고 수년만의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할까. 그 한파 영향으로 어제 오후 상해도 제법 싸락눈이 내리며 낮기온을 령하로 떨구어 놓은거였구나. 그래도 만나야만 하는 한국 김성호사장이였다. 택시는 어언 속에 상해 모구역 고물성에 이르렀다. 여기 주변 호텔에 투숙한 한국분들을 기다리는 사이 바깥을 서성거려 보니 혹독한 날씨는 얼어죽을 놈은 나오란다. 우리의 만남, 우리의 인연은 2월이란 강남 추위속에 이어가야 하니 두고두고 옛말할 만남이요 인연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상해 호화 고물성안에서 한국 수석인들을 다시 만나 수석가게, 도자기 공예품 가게 들을 돌아보는 속에 몸이 훈훈해 온다. 그 잠간잠간 사이 “수석문화”김성호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노라니 김사장님은 아직 젊음과 정열, 패기가 넘쳐나는 41살의 한창 나이. 지난 90년대 초반에 서울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오고, 사회 관련 분야를 두루 거치다가 “수석문화”월간지 기자로 뛸 때는 20대 중반의 젊은이였단다. 그후 세월 일개 기자로부터 수석문화 월간지 사장으로 뛰기까지도 7-8년 세월, 젊음의 한창 나이를 “수석문화”와 인연을 맺으며 한국의 수석세계에서 뛰고 또 뛰니 “수석문화”와의 년륜만도 14 춘하추동. 그동안 수석세계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며 고민과 스트레스도 고스란히 감내하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오늘은 상해에서 이렇게 최성호님에 이어 이땅의 겨레수석인을 또 만나니 진정 기쁘다는 김성호사장. 우린 구면처럼 스스럼없이 얘기를 주고받았다. 둘사이 나이 10여년 격차임에도 서로 구속을 몰랐다. 우리의 애기는 자리를 바꾸어 다시 보타구의 최성호님 성심수석관에 이르러서도 끊어질줄 몰랐다. 난방이 없는 강남 대도시의 실내는 찬기운이 그대로 감돌아 걸상에 앉은 무릎 아래우가 찬기운에 떨어야 했으나 서로를 향한 얘기는 뜨거웁게 흘러간다. 서로의 흘러간 세월 어렵던 사업얘기도 가끔 튀여나와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놓았다. 김성호사장이 서로 몇년전에 만남을 가졌더라면 더 좋았을거라고 할 사이였으니 그 정도를 가늠할수 있으리라. 젊은 김성호사장님의 진지한 얘기—   기마다 수석문화 전문 페지를 내여 드릴수도 있으니 리교수님, 연변두만강문인수석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기대하여 봅니다.   감사합니다. 연변두만강문인수석회 홍보에, 귀 수석문화 월간지 무궁한 발전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잇따른 결연한 약속에 우리의 두손은 굳게 잡아졌다. 우린 또 연변과 강남땅에서의 서로간  이후 탐석활동과 연변에서의 수석교류를 두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재응 사장님과 리상동 회장님도 동참하며 상해 성심수석관과 연변과의 수석교류를 활발히 벌리고프다며 말을 건넨다. 상해  최성호사장을 믿으니 그 친구들인 우리네를 믿고 싶다며 믿음을 주는 그네들이 그지없이 고마왔다. 오후 늦은 오찬을 마치고 나는 사사로 그네들 먼저 귀로에 올라야 했다. 올 4월 상해 수석전시회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수석문화 김성호 사장님과 상해 성심수석관 최성호 사장님의 덕분에 이번 상해행에 김사장님이 몸소 갖고 온 한국 정통수석문화의 정론지 “수석문화” 2009년 11호와 12호, 2010년 1호와 2호 네 잡지를 갖고 귀로에 오르니 바깥 상해 날씨가 의연히 차가우면 어떠랴, 나의 마음 새봄의 훈풍 안은듯 후더워만 가니 김성호사장님이 이후 “수석문화”를 정기적으로 보내 주겠다니 더욱 그러하다.   2010년 2월 12일, 강남땅 두앵원에서                  
273    다시 보는 최성호 수석인 댓글:  조회:5487  추천:52  2010-02-15
                 다시 보는 최성호 수석인     상해 성심수석관 최성호 수석인을 통한 2월 11일-12일, 상해행은 수석에 푹 취한 수석인 나로 말해 잊을수 없는 행인것 같다. 상해행을 통해 한국 “수석문화”김성호 사장과 안재응 사장, 리상동 회장 등을 알고 인연을 맺았으니 잊을수 없고, 최성호 수석인에 대해서도 새 인상을 받았으니 잊을수 없는 행이 아닐까. 2월 10일, 최성호 수석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무척 기뻤다. 구정을 앞둔 최씨와의 두번째 만남이여서 그러하고 한국 “수석문화” 사장을 만날수 있다니 그러하다. 2월 11일, 모든 일을 제쳐놓고 소흥ㅡ상해행 쾌속버스로 상해로 달려가니 서두에 언급한 한국 수석인 세분이 이미 성심수석관에 와 있었다. 고마운것은 최성호 수석인이 그분들한테 나라는 수석인을 소개하면서 “수석문화” 김성호 사장을 보고 “이교수님은 사장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불원천리 300킬로미터밖 소흥에서 달려왔어요.”라고 동을 단것. “그래요, 저를 보고요,  300킬로미터 밖에서 달려왔다구요?” 김성호 사장은 믿기가 어려운듯 거듭거듭 되뇌이면서 반가와마지 않는다. 최성호 수석인의 이 한두마디가 나와 김사장님과의 사이를 10만 8천리에서 한치밖으로 당겨주었고 믿음이 믿음을 나아갔다. 이세상 인간관계에서 믿음만큼 소중한것이 있을까. 믿음이 믿음을 낳는다고 처음 만난 김성호 사장과 나 사이엔 흘러간 사업얘기를 두고 고민과 스트레스, 인간관계를 두고 못하는 말이 없었다. 이 다리를 잘 놓아준것이 바로 상해 성심수석관 최성호 수석인이였다. 지난해 11월 하순, 상해에서 최성호수석인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최씨는 이땅의 우리 겨레사회 수석인들 가운데서도 앞서가고 있는 수석인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오늘의 세상에서 수석을 모르는 민족은 그만큼 타민족에 밀리기 마련입니다.” 최성호 수석인의 명언이다. 수석세계가 지구라는 이 행성의 나라나라들에 펼쳐지고 교류되고 있을 때 수석을 모른다면 그 민족은 어떠할까, “그만큼 타민족에 밀리기 마련”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한 그날의 최성호 수석인이 오늘은 한패의 한국수석인들과 스스럼없이 수석을 교류하며 돋보이고 있지 않는가. 최씨는 “수석은 서로 교류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갖고있는 수석은 시간이 흐르면 그 대부분에 싫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남들과 교류하며 새것을 받아들이면 이 아니 좋아요.” 라고 말한다. 또 하나의 명언이라 하겠다. 2월 11일과 12일 이틀사이, 한국 이상동 회장은 밖에서도 그러하고 최성호 수석인한테서도 소중한 수석 몇점을 사들이였다. 그에 따르는 소품류 진귀한 수석들까지면 10여점은 족히 되고 소중한 수석 몇점의 값만 해도 인민페2--3만원은 잘 된다고 보아진다. 오늘과 같은 한국 수석의 저조기에 이같이 소장품으로 사들이는 이가 있다는 자체가 충격으로 안겨온다. 그속에 자유자재로 수석을 교류하는 최성호 수석인이 돋보이기만 한다. 최씨는 수석교류만이 아니라 수석 수반도 한국분들과 주고받는데 그 전망이 대단히 밝은것으로 합의된다. 최성호 수석인은 또 한국의 화분상을 맞아 강소 의흥산 도자기화분 거래를 한다. 아마도 숱한 화분을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계약같다. 이같이 최씨는 해마다 얼마나 많은 화분을 콘테나로 한국에 내보내는지 모른다. 최성호 수석인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이같은 최성호수석인를 친구로 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한사람의 한생에 친구다운 참다운 친구를 몇 사귈수 없다고 할 때 최씨를 수석친구로 인연을 맺은것은 나 인생길의 행운이 아닐수 없다. 이번 상해행도 최씨를 통해 한국 “수석문화” 김성호 사장 등을 알았다면 이들 한국수석인들을 통해 서로의 탐석활동과 연변 두만강문인수석회와의 수석교류를 두고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전망이 무척 좋으리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을 절강월수외국어대 교수아파트에서 쓴다. 글을 쓰는 나에게는 최성호 수석인이 우렷이 떠오르고 우리 겨레 수석의 미래가 환히 펼쳐여진다.   2010년 2월 14일 설날 아침                  
272    한국 수석인 상해 수석시장 안내기 댓글:  조회:4671  추천:42  2010-02-13
          와--2월의 강남 날씨 이리도 춥나                              --한국 수석인 상해 수석시장 안내기   2010년 2월 11일 오후, 나는 상해  성심수석관 최성호선생의 부탁으로 한국서 온 한패의 수석인들을 안내하여 상해 보타구에 자리잡은 상해 호태기석화훼시장을 돌아보게 되였다. 찬비가 내리며 비바람 몰아치는 상해는 어찌나 추운지 말이 아니다. 2월 8일 절강 소흥의 날씨는 17도, 2월 9일은 28도, 그야말로 우리 북방의 한여름을 련상시킨다. 봄동백꽃, 붉은 매화도 일시에 와그르르 피여나 꽃피는 봄이 성큼성큼 다가선다. 그러던 날씨가 때아닌 한파의 강타로 2월 9일 한밤중에 무더기비가 쏟아지는 속에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올해 첫 천둥이 울어치더니 2월10일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령상 10도 이내로 곤두박질하며 비를 그치지 않는다. 이날 오후에 상해 성심수석관 최성호선생의 전화를 받았으니 한국서 “수석문화”월간지 발행인 등 몇몇 수석인들이 온단다. (“수석문화”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수석인 전문잡지가 아니던가!) 나는 백사불구하고 오늘 오전 10시 소흥—상해행 쾌속버스에 올랐는데 오전 늦게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한 을씨년스러운 봄비는 한 강남대지를 이루는 상해에 이르도록 그칠줄 모른다. 오후에 이르러서는 날씨가 보다 떨어지며 찬비에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그런 속을 안내하며 다니여야 하는 나의 상은 어떤 상일까, 어거지 상일 수밖에 없지. 처음 찾아보는 상해호태수석화훼시장은 크기가 엄청. 이 가게가 끝나면 저 가게요, 이 골목이 끝나면 저 골목이다. 어서 끝나 주오소, 속으로 빌고빌어 보지만 이 가게 저 가게 도무지 끝날줄 모른다. 그만큼 수석구입에 나선 한국수석전문인 충북협회 안재응 부회장이나 한국 국회 환경포럼 자문위원이요, 광주광역시 5대 광역시의회 시의원이요, 가든 주류(주)대표이사요 하는 리상동님은 지궂게도 가게마다 그저 지나치질 않는다. 나와 한국 "수석문화"월간지 김성호사장님은 동행친구 역할을 잘 놀아야 한다. (어쩔수 없는 일이지. 최성호선생의 부탁인데 열성을 보여줄수 밖에 없잖아.) 괘씸한 것은 조화를 부리는 저 하늘, 이번에는 찬비 찬바람도 모자라 싸락눈마저 마구 퍼부으며 기승을 부린다. 낮날씨가 그만큼 0도이하로 떨어졌다는 말이된다. 강남에서 날씨 0도 이하면 몹시도 추운 날이 아니던가.  이 겨울에 들어서서 언제 한번 이다지도 추운 날이 있었던가. 더구나 금방 꽃피는 새봄을 맞이한 강남대지가 꽃샘추위런듯 북방날씨와도 같은 한겨울 추위에 떨어야 하니. 업친데 덮친다고 우산 든 손이 시려 이손 저손을 부지런히 바꾸어 주어야 하는데 발까지 시려나 어거지 상에 울상이 겹친다. 신은지 얼마 안되는 새 구두신에 이놈 혼나봐라고 비물이 스며든 모양이다. 그런 속에 시간이 흐르며 돌아갈 시간도 되여온다. 한국 수석인 안사장과 리회장도 마음에 드는 수석들을 골라잡고 내심의 희열을 감추지 못한다. 안사장은 길이 한미터쯤, 너비 30-40센치미터쯤, 높이가 그닥 높지 않은 중국 복건산--호수에 봉우리 여러개가 박힌 산수석 한점을 골라 잡았으니 오후 수석시장 돌아보기는 헛일이 아닌가부다. 나도 헛수고만은 아닌것 같다. 수석가게마다 놓치지 않는 한국 수석인들의 끈질긴 구매태도에서 배운바가 크다고 할수 있지. 가장 큰 수확은 어떤 류의 수석을 즐기냐는 한국 수석인들의 취향이라 하겠다. 한국 수석의 저조기에 보여준 구매열성에서도 느끼는 바가 크다. 그뿐인가, 강남으로 말해 모진 추위속을 거치는 가운데서 얻은 바도 크니 헛걸음은 아닌 셈이구 말구. 또 한국 수석인 “수석문화”발행인 김성호씨와도 인연을 맺게 되였으니 오늘 오후 수석안내가 잘된 일인것 같다. 상해의 2월 11일 늦은 오후 비는 계속 내리고 찬바람은 그칠줄 모른다. 온 몸이 얼어드는것 같은 속에 보고듣고 느낀 점도 많아 훈훈한 마음이기도 하다.   2010년 2월 11일 밤 상해 보타구 한 호텔에서          
271    수석교실---단층석 댓글:  조회:4363  추천:39  2010-02-07
   단층석은 산수경석 범주에 속하는데 두 세개의 단층과 그 층계마다 평면이 형선된 돌이 단층석이다. 강물이나 파도의 침식, 지각의 변동, 토양의 변화 따위로 층계를 이룬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 깎아지른 벼랑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평지가 반복되는 자연의 모습은 해안에서 볼수 있는것이다 . 수석을 가까이 하고 지내고 있노라면 째임새가 간결하고 단순하게 생긴 평석, 단층석 수석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   하기에 3단석과 같은 단층석은 귀하고 품위가 있는 수석이므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  이 기회에 두만강 수석협회 전체 회원들이 새해에 석복을 기원하며 우리 협회를 지지하고 관심 해 주신 해내외 애석인들께  새해에 만복을 기원합니다 .
270    기석의 고향 - 광서 류주시 댓글:  조회:7386  추천:60  2010-02-07
류주시에서  규모가 큰 기석시장--마안산 기석성, 하서 기석시장. 류주 기석성, 묘포 기석시장이 있다 .   기석 경영 업주 가운데 절때 대부분은 본지 기석 전문인이고 기타 소수는 귀주, 호남, 사천, 복건, 신강, 대만 등 지역에서 온 기석 전문인들로 구성되였다. 업주들이 경영하는 대부분 기석은 홍수하의 대화석. 래빈석, 대완석이고 기타 귀주 오강석; 광서 삼강석;내몽골, 신강의 풍력석; 대만 남전석, 철정석 등 이다 .  업주들이 경영하는 가운데 홍수하의 채색 대화석은 류통도 잘 되고 애석인들의 인기가 매우 높다 .  헌데 청석, 청오석, 오석은 찾아 보기가 매우 힘들다. 오직 대만의 남전석만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끌었다 .  류주시에서는 해마다 정부 차원에서 국제적인 기석 전시회를 진행하는데 국내외의 애석인들이 많이 모여와 기석 문화의 교류를 추진하고 기석 류통의 호황기를 맞는다고 한다 .  
269    연변 고장성이 흐른 소팔도구를 찾아서(10.1.12) 댓글:  조회:4301  추천:56  2010-01-12
두리봉서골- 소팔도구 서쪽주봉에서 남으로 산발을 타고 하산후 고속도공로를 건너 다시 서남으로 산발을 잡아타고 올랐다.
268    수석--상해서 만난 우리 문인들 댓글:  조회:4255  추천:53  2009-12-19
              수석--상해서 만난 우리 문인들   지난 11월 27일과 28일, 강남땅 상해와 절강에서 활동하는  방룡남과 최성호, 홍순범, 리광인 등 문인들이 상해 성심수석관에서 만나 회포를 풀거나 새로 인연을 맺았습니다. 수석을 통한 인연들이였습니다. 먼저 글들에서 선을 보였기에 오늘은 그나날의 만남 사진들을 올려 봅니다.
267    수석특강 연길서 댓글:  조회:4575  추천:45  2009-12-14
지난 12월 11일 연길시정향관에서 수석특강이 있었다.한국의 수석전문가 김태수석인이 수석의 기초지식에 대하여 강의를 했다.김학송 등 연길시 부분적 수석인 10명이 이번 특강에 참가했다.
266    최성호수석인--수석에 취해 10여년 댓글:  조회:5251  추천:46  2009-12-11
          최성호수석인—수석에 취해 10여년     상해 성심애석관에서, 저녁 술상에서 웃고 떠들다나니 상해에서의 취재는 이튿날 오전에야 이루어졌다. 알고보니 최성호수석인은 1984년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생으로서 중국화보사 조선문 편집번역으로만 장장 18년을 보낸 경력자였다. 그러던 그에게 있어서 지난 90년대 중반과 후반은 삶의 좌표가 휘딱 바뀌는 갈림길 시기였다. 90년대 중반인 1996년 그때로 말하면 중국화보사 조선문은 수난의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조선을 주요대상으로 출판되던 조선문판이 발행부수가 끊기고 할일이 없어졌다. 바로 이해 최씨는 전문 수석을 경영하는  한국인을 알게 되고 그들 가이드로 나서서 연변의 왕청 십리평이요, 화룡 평강벌이요, 돈화판이요, 두만강이요 등지는 물론 수석의 고향이라고도 불리우는 멀리 광서 류주, 사천 로주, 황하 락양구간 아니 다닌데가 없었다. 이는 1996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최씨는 단순한 안내자 가이드로부터 수석인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1998년에는 아예 직장에 적을 두고 하해(下海)해 버렸다. 2000년부터는 꼬박 4년을 광서 류주에서 수석가게를 운영하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최씨는 수석세계에 빠지니 약이 없더라고 웃어준다. 수석암에 걸려도 단단히 걸려버린 최씨다. 와중에 최성호수석인은 수석과 이어지는 도자기화분에 빠지여 중국 도자기의 고향으로 불리우는  강소 의흥에 제집다니듯 다니게 되였다. 강소 의흥행만 8년 세월, 이속에서 광서 류주의 수석가게를 그만두고 도자기화분으로 삶을 바꾸더니 어떤 달은 화분을 몇 콘테나씩 한국에 내보내기에 이르렀다. 도자기 수반도 직접 경영하는 수준을 갖추었다. 수석과 도자기화분 경영속에 한국손님들이 많아졌다. 상해서 250킬로미터쯤 떨어진 강소 의흥에 자리잡은 사무실로는 모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에따라 최씨는 올해 2009년 6월에 북경집의 수석을  가져다가 상해에 성심애석관을 꾸려놓았다. 손님들과 같이 차를 마시며 수석을 감상하는 쉼터를 마련한 것이였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가까이에 또 “성심도예”를 차리고 자기만의 수석과 도자기, 화분 세계를 꾸미였다. 취재중 내가 수석에 빠진 감상을 물으니 최씨는 중앙민족대에서 문학을 배운것이 수석입문에 도움이 컸다고 말한다. 예로부터 수석은 삶의 여유를 가진 문인들의 세계로 되기가 일쑤였으니 수긍이 가는 말이다. 여기에 중국화보사 편집번역으로 있던 10여년간 사진촬영에 손을 대며 사진구도에 많이 접하니 수석에 도움이 크더라고  동을 단다. 의미심장함은 “수석을 모르는 민족은 타민족과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는 최씨의 일가견이라 할까. 다행히 연변의 우리 겨레사회에도 허다한 수석인들이 활동하고, 우리 문인들 중에는 두만강문인수석회까지 있으니 시름이 놓인다는 최성호수석인이 그지없이 돋보인다.                                                2009년 12월 5일                     
265    상해행과 성심수석관 댓글:  조회:4448  추천:38  2009-12-06
                    상해행과 성심수석관   절강도로 리정표를 보면 소흥과 상해는 269킬로미터여서 고속도로 따라 쾌속버스로 달리면 세시간 미만에 상해 남역에 이를수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오후,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어과 방룡남박사와 모처럼 시간을 내서 상해행에 올랐는데 12시 30분 발차 쾌속버스는 상해시 외곽지대에 이르러 게걸음을 친다. 처음에는 비내리는 날 도로수금소에 의해 차량들이 나가지 못하더니 다음은 도로수리 구간이 끝이없다. 쾌속버스가 한번 서버리면 떠날줄 모르니 이거 야단이지. 상해서 이 시각 두 사람이 기다린다. 한사람은 상해서 수석관을 꾸린 중앙민족대 한해 후배인 방룡남박사의 친구 최성호수석인이고, 또 한사람은 상해서 사업을 벌린 홍순범문인이다. 버스가 뒤뚱이니 어인 영문인가고 두 사람이 엇갈아 핸드폰이 걸려 온다. 미안하기가 그지 없다. 우린 길에서 거의 5시간을 지체했어야 상해에 이를수 있었으니 지난 수년간 상해행에서 처음 당해보는 일이렸다. 상해에 이르러 먼저 최성호수석인을 만나 보기로 했다. 택시는 상해 남역을 떠나 보타구를 바라고 달린다. 이 구간이 퍼그나 멀어 보이는데 택시운전사는 주말이면 차량들이 밀치기 마련이라며 도로수리가 아니라도 날을 잘못 잡았다고 한다. 그도 그런것 같았다. 아무렴은 어쩔까, 이 시간밖에 리용할수 없는 우리들인데야. 택시값80여원을 팔며 보타구에 이르니 우리와 만나기로 한 최성호수석인이 벌써 길가까지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최성호수석인으로 말해 나와는 초면이지만 방룡남박사와는 선후배 사이로 지내는 지기였다. 지난 10월 국경연휴에 방룡남박사의 중앙민족대 친구 리군선이 상해에서 소흥으로 놀러 오면서 상해의 최성호수석인과 동행했을 때 나는 그들을 몰랐다. 게다가 대학간 쌍둥이 딸애들이 오고 밖으로 돈데서 우린 서로 만남의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후에 상해의 최성호씨가 수석인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방룡남박사를 얼마나 들볶았는지 모른다. “나도 우리 조선족사회서 수석을 안다하는 사람이고, 연변 두만강문인수석회 제2임 회장까지 해본 사람인데”하고 말이다. 애매한것은 방룡남박사. 오래간 서로 소식 두절에서 최성호씨가 상해에 있고 수석인인줄 모르는데다가 서로 걷는 길이 다른데서 내가 수석에  빠진줄을 잘 모르고 있었으니 나와의 만남의 주선까지 이르지 못했는데 쌍둥이와 려행길에 오른내가 어디 시간이 있었던가. “허허, 수석인 당신을 만나지 못한 분풀이를 나한테 하는거여. 별수있나. 그빚에 끌려 여기 상해까지 온거지.” 반죽좋은 방룡남박사가 최성호수석인과 너스레를 떤다. 우리 셋은 웃고 또 웃었다. 상해행버스 억망이여도 우리 만남은 오랜 지기를 만난 친구의 기분이다.   상해 보타구의 한 거리에서 최성호수석인을 만났을 때는 어스름이 깃을 펴는 때다. 길가의 맞은켠에 기석성이란 대형광고판이 보이여 기분이 붕 뜨는데 이어 “상해람령화조시장”이 우릴 반기여준다. 최성호수석인의 소개에 따르면 여기 화조시장은 갖가지 꽃류들과 새류, 기석을 경영하는 대형전문시장이고 그의 수석관은 람령화조시장내 기석성 81호에 자리하고 있었다. 놀란것은 나와 방룡남박사라, 최성호수석인의 수석관은 재미있는 “성심애석”이름으로 되여 있는데 수석관내는 희한한 수석들로 넘치였다. 장강 수석으로부터 광서 류주 수석에 이르기까지 품종이 다양했으니 우리 연변이 아닌 상해란 대도시여서 선호하는 수석풍격은 서로 판이하게 달라도 진렬수석마다 수석인의 애호와 심혈이 깃들어 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인상깊은 것은 부처님 모양의 크고작은 수십점의 수석이다. 우리 두만강수석회의 제3임 회장 김봉세수석인이 부처님 수석을 특히나 즐긴다고 하니 최성호수석인은 부처님 수석만 108개를 모를 타산이란다. 수호전에 나오는 두령이 108명이라고 할때 수자 108에는 대단히 심오한 함의가 깃들어 있다. 지난해 여름방학 귀교시 심양을 거치며 청나라 시조 누르하치를 모신 심양 동릉—청복릉을 답사할 때 청복릉의 평안과 안녕을 기탁하며 황제황권의 신성함을 보여주는 108계단길을 걸어보던 때가 어제런듯한데 상해서 처음 만난 수석친구가 수석, 그것도 부처님수석 108에 뜻을 두고있으니 수자 108을 통해 우리 사이는 대뜸 가까와졌다. 나를 감동시킴은 최성호수석인의 수석관이 팔고사는 의미의 수석가게가 아니라 친구나 손님들과 더불어 수석을 감상하는 쉼터이고 취미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최성호수석인을 만나기 전까지만도 나는 최씨를 상해서 수석가게를 꾸리며 수석을 경영하는 수석인으로 리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최성호수석인은 수석경영인이 아닌 수석인으로, 도자기화분에 빠진 사람으로 안기여 들었다. 그럴 때 최성호수석인을 도와나선 동생벌이 되는 젊은 친구가 다가왔다. 그는 얼마전에 이 수석관에서 상해 아들집에 온 두만강수석회 김봉세회장 부부간을 만나 보았다며, 수석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분이더라고 력점을 박았다. 최씨는 그때 한국행이여서 김회장님을 대하지 못했다며 자못 아쉬움을 토로했다. 내가 이들 부부가 지금 광서 류주에 갔고 한동안 지낼 것이라 하니 만남의 그때를 기대한다고 터놓는다. 이윽고 상해서  로밍액스업을 벌리는 홍순범문인이 들어섰다. 조선족의 수석관을 처음 본다는 홍씨는 흥분에 겨운 나머지 자기가 지금 흑룡강신문 특약기자로 있다며 취재하고 싶다고 내비친다. 마침 잘 되였다. “길림신문 기자인 내가 길림신문에 내고 당신이 흑룡강신문에  내면 얼마나 좋소!” 우린 웃고 떠들면 야단을 부려 보았다. 거기에다 자기도 한때는 연변일보 기자요, 길림신문 기자요 해 보았다며 방룡남박사가 가세한다. 언녕 수석에 빠진 그는 수석세계가 이리도 유혹적일줄을 몰랐다고 한다. 최씨의 성심애석관은 우리 문인들만의 세상으로 차고넘친다.                              2009년 12월 5일, 강남 두앵원에서   
264    성심수석관 댓글:  조회:4039  추천:76  2009-11-18
김봉세님, 성심수석관의 최사장님께서 어제저녁 비행기편으로 귀국하여 지금 상해에 계십니다.여러분께서 성심수석관을 찾아주신데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속한 기일내에 만나뵜으면하는 부탁을 남겼습니다. 여러분들의 뜨거운 상봉을 기대합니다.
263    [re] 성심 수석관을 찾아서 댓글:  조회:5489  추천:52  2009-11-02
봉세선생님,최사장님께서 한국에 출장중이여서 만나 뵙지를 못하신 같구먼요,제가 깜박하고 잊어버리고 말씀드리지 못했는데요 최사장님은 지난24일에 한국에 출장간다고 했으니깐 아직은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그날 만난 분은 최사장님의 외사촌동생되는 박선생입니다.만약 사진의 분이라면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262    제5회 한민족 큰잔치 개최 댓글:  조회:4407  추천:37  2009-11-01
  제5회 한민족 큰잔치는 11월1일 상해 홍첸루 협화 쌍어 학교에서 개막 되였다 .  개막식에서 상해 한국 상회 정한영 회장, 대한 민국 주 상해 총영사관 김정기 총영사 , 상해 화동 지역 재중 동포 김민달 대표 축사가 있은 뒤 문예 공연,운동대회, 무역상담이 이어졌다. 개막식 이어 중국인 한국 노래 경연, 청소년 장끼마당, 상해시 조선족 로인 협회 공연, 한중 모델 공연,초청 연예인 공연으로 이어 졌다 .특히 초청 연예인 김상희, 현숙 가수의 정채로운 표현이 제5회 한민족 큰잔치를 고봉으로 올렸다 .  실로 계려의 마음을 흥분켜 하는 대형 모임이 였다
261    천만원짜리 백발 머리 기석 댓글:  조회:4371  추천:42  2009-10-31
  상해 란링 수석 시장에서 우연히 백발 머리 기석을 흠상 하니 마음이 울렁 거렸다 .중국 관상석 간물에서 보았지만 직감으로 보기는 처음 이였다
260    성심 수석관을 찾아서 댓글:  조회:4156  추천:47  2009-10-31
  문선 선생의 소식을 접하고 오늘 성심 수석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레의 얼이 담겨 있는 수석관에서 차향기,돌향기 맡으며 박선생과 함께 돌 이야기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  참으로 국제 도시 상해에서 수석 문학의 발전에 기여 하는 그 모습 대견 스러웠다 .이 기회에 문선 선생께 감사 보내며 우리 두만강님도 반갑습니다 .
259    [re] 상해 세계 박람회 맞이 수석 전시회 일각 댓글:  조회:4262  추천:51  2009-10-30
죄송합니다.몇차례 시도를 해보았는데  글도 뜨지 않고 사진은  더욱 안되네요.성심수석관은 선생님께서 가셨던 란링화스 D43호에 가셔서 제 이름을 대고 최사장님을 찾으면 반갑게 맞을 겁니다
258    길림운석 세번째로 새집들이 (신승우 기자) 댓글:  조회:5369  추천:55  2009-10-28
  길림운석 세번째로 새집들이 기자: [신승우] 래원: [본사소식] 발표: [2009-10-15 오전 7:27:56]   길림시 중점문화건설공사중의 하나인 길림시박물관 확건공사가 바야흐로 마무리돼가고있는 가운데 이색적인 설계풍격으로 건설된 새 《길림운석진렬전시관》이 앞서 9월 28일 오전 10시 30분에 손님들을 맞았다. 33년전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청객》― 길림운석우가 이번까지 세번째로 새집들이를 한것. 길림시박물관의 사회효능을 더욱더 잘 발휘하여 길림시 도시형상을 제고시키며 날따라 높아가는 사람들의 정신문화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올년초 길림시정부에서는 길림시운석진렬전시관과 길림시박물관 확건결정을 내렸다. 면적이 2200평방메터나 되는 새로 일어선 길림운석진렬전시관 전시청의 높이는 18메터, 전시청내는 기둥 하나 없이 설계되여 관중들로 하여금 무한히 넓은 우주공간에 몸을 둔 감을 느끼게 한다. 60여명의 관중을 수용할수 있는 직경이 13메터, 높이가 9메터나 되는 구막연시청(球幕演示廳)안의 구막방영(球幕放映)수직시각은 180도, 수평시각은 360도. 관중들은 특별히 만든 의자에 누워 길림운석우가 내리는 과정을 관람할수 있다. 길림운석진렬전시는 1976년 5월 23일부터 길림시박물관에서 손님들과 대면, 선후로 세차례의 큰 수정을 거쳐 2003년 《길림운석전시》는 제5회 《전국10대진렬전시정품상》을 획득했다. 세상의 주목을 받고있는 《길림1호운석》은 오늘까지 연인수로 500만명의 손님들을 영접하였는데 여기에는 강택민, 오방국 등 당과 국가 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타이공주 등 국외의 벗들도 있어 대외문화교류에도 큰 기여를 하고있다. 《길림1호운석》은 전시청의 중심에 위치, 자동승강과 회전수단을 채용하여 관중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전방위적으로 무궁한 매력을 가진 《길림1호운석》을 감상할수 있게 했다.                                                           인터넷 길림신문에서
257    통일교육원의 가을 댓글:  조회:4011  추천:41  2009-10-27
  금년 10월 초에 나는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등 행사에 두루 참가하려고 서울로 갔다. 내가 투숙한 호텔은 북한산 기슭에 자리 잡은 아카데미 하우스였다. 우연하게도 이 호텔은 7년 전 내가 투숙한 적이 있는 통일교육원과 이웃하고 있었다. 7년 전 나는 연변대학 지도부 일원으로서 한국 흥사단과 함께 중학생 작문 백일장을 치르고 20여명 수상자들을 인솔하여 서울에 가서 중한청소년친선교류 행사에 참가하였다. 그때 우리는 통일교육원에 투숙하였는데 그 주변의 아름다운 환경에 매료되었고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었다.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있은 이번 초청교육은 일정이 아주 빡빡하여 좀처럼 통일교육원에 가 볼 틈을 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어느 점심시간을 잠깐 이용하여 통일교육원을 둘러보면서 옛 추억을 되살리었다. 마침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철이어서 나의 기분은 한결 가벼워졌고 저도 모르게 예쁜 가을 정취에 취해버렸다. [통일교육원의 정원에는 특이한 돌로 비석들을 세웠기에 나는 외람된 줄 알면서도 조글로 ‘수석’코너를 빌어 이 글과 사진들을 실었으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256    증봉산-로리커호 종주(09.10.16~18) 댓글:  조회:4549  추천:45  2009-10-19
2박3일 증봉산-로리커호 종주: 증봉령 올라서니 사방은 묘연하고 산아래 천둥번개 산우는 백설세계 대자연 포응속에서 발자국 남기네 심산속 원시림해 준엄한 종주의 길 차디찬 백설세례 이한몸 식지않고 미지의 힘겨운 로정 발밑에서 끝나네
255    상해 세계 박람회 맞이 수석 전시회 일각 댓글:  조회:3917  추천:49  2009-10-16
상해 세계 박람회 맞이 수석 전시회 일각
254    장백산기석문화성 락성 (최창남) 댓글:  조회:5225  추천:47  2009-10-06
장백산기석문화성 락성 기자: [최창남] [2009-10-04 오전 8:00:28] 《룡흥사관》에 전시된 가치가 1억 3000만원인 《중화룡》기석 9월 27일 장백산기석문화성이  백산시 강원구에서 락성되였다. 장백산기석문화성 부지면적은 8만 2000평방메터이고 건축총투자는 1억 949만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문화성기석시장과 지질박물관 그리고 기초시설조립이 포함된다.  문화성기석시장은 도합 308세대의 상품전시매대를 설치, 건축면적은 4만 3000평방메터이고 총 투입은 8530만원에 달한다. 주요하게 성내외의 갖가지 기석과 공예품을 경영하며 점차 광석채굴, 설계, 조각, 포장, 판매를 일체로 건설후 동북최대의 기석집산지와 공예품집산지로 부상된다. 지질박물관은 총 4층으로 건설, 건축면적은 7700평방메터, 총 투입은 2419만원에 달하는데 강원의 력사와 만족문화, 송화석산업, 지질연구를 일체로 건설후 동북지역최대의 전문성 지질박물관 및 과학연구양성기지로 부상될것이다. 이날, 장백산기석문화성이 락성되면서 북경, 산동, 호남, 내몽골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 온 300여세대의 송화석상인들이 기석, 조각 등 멋진 예술공예품들을 내놓았다. 이날 박람회에서 32가지 투자대상이 체결, 체결총금액이 34억 2000만원에 달했다.                                                           인터넷 길림신문에서
253    와룡 천리봉(09.10.2) 댓글:  조회:4160  추천:52  2009-10-02
북경에서 돌아 오신 태극님,허경리,김교수님 설산님,공원 5명은 6시30분 차로 서성에 도착하여 차를 갈아 타고 8시20분에 천리봉산밑 마 을인 어랑촌에 이르러 잠간 쉬고 곧바로 산발을 타고 등산.주봉에서흔적을 남기고 남으로 천수동림장골에 내려섰다.오다가 산머루 좀 뜯고 와룡강창을 지나 연길로 향한뻐스를 잡아타고 돌아왔다.
252    마반산(09.9.30) 댓글:  조회:4388  추천:54  2009-10-01
가을의 마반산에서
251    오봉산을 다시 찾아서(09.9.27) 댓글:  조회:4261  추천:68  2009-09-27
허경리,설산,공원 3명 참가.
250    라법산(09.9.26) 댓글:  조회:4013  추천:55  2009-09-26
도로찾은나 팀과 함께
249    오봉산에 다시 올라 (09.9.20) 댓글:  조회:4042  추천:44  2009-09-21
형제자매팀과 함께
248    석인저수지 부근의 뾰족산을 찾아서(09.9.17) 댓글:  조회:4397  추천:54  2009-09-17
7시반 이란진정부 소재지에서 출발.  리민-뾰족산 남비탈-등산-587주봉-서비탈로 하산-저수지뚝건너-서남쪽으로 몇개 산을 넘어 남계 형원산장-  2시반 리민촌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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