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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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필]문은 열려라(정호원) 댓글:  조회:1413  추천:48  2008-09-04
문은 열려라정호원동기생 창일의 생일파티로 자택에 초대되였다. 눅눅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풍경구에 위치한 160평방메터 호화형살림집은 오피스텔을 방불케 하였다. 리비아, 일본, 한국, 아르헨띠나 등 나라의 로무길로 귀국하더니 금의주행(锦衣昼行)이였다. 거실이 으리으리하여 왕후나 귀족들의 고대광실을 련상시켰다.   그런데 옥의 티랄가 아니면 미중부족이랄가 하는 유감미련에 찜찜할줄이야… 집에 돌아온후 떠들썩한 베란다밖 소음에 문득 얼마전에 본 기사가 떠올랐다. 꽁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공을 비행하던 구형려객기의 문이 갑자기 열려 승객 160명이 사망한것으로 우려된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사건은 2003년 5월 8일 밤(현지시간), 수도 킨샤사를 리륙해 제2도시인 남동부의 루붐바시를 향해 가던 옛 쏘련제려객기가 리륙한지 45분이 지나 고도 7000피트(약 2200메터)에서 갑자기 기체압력시스템이 고장나면서 일어났다. 플러터(flutter) 같은 고장으로 뒤쪽 램프(lamp)와 문들이 망가졌고 강한 압력차이로 승객들이 기체밖으로 빨려나갔다고 BBC는 전했다. 공화국당국은 인명피해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있지만 AFP통신 등은 사망자가 160명,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은 사고기에 탑승했던 129명 승객 대부분이 사망한것 같다고 피로했다.  특별히 문이라는 구조물에 대해 집착으로 사고하게 된다. 문은 이렇게 잘못 열려지니 재화불행을 초래하는거다. 문으로 화복이 들어오기도 나가기도 한다.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세계에서 주로 사용했던 초기형태의 문은 가죽이나 직물로 만들었다. 영구재로 된 단단한 문은 기념비적인 건물과 함께 등장했는데 중요한 방의 문은 보통 석재나 청동으로 만들었다. 바닥과 천장을 피벗으로 련결한 석문은 주로 무덤에 리용했다. 아우구스투스황제시대무렵에 있었을것으로 추정되는 패널로 장식된 대리석문은 봄베이에서 발견되였다. 토이기의 랑가자에서 발견된 200년경의 그리스 문이 이스땀불의 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 문과 사람은 불가분리의 의존체이다. 상호작용과 호상관제를 주고받는다. 지금 많은 주거환경이 문을 차단하여 정상적래왕이나 우호통상을 저애한다. 일례로 친구 창일네 집 같은 경우의 봉페식관리나 경호써비스가 깃든 주택이였다. 화원식이요 엘레베터요 하면서 그 품위를 자랑하나 분명 괴리되고 감금된것 같은 제약성은 기일수 없다. 자승자박으로서 어디까지나 고독과 적막을 동반하는 무드가 다분한 페쇄적공간이였다.  나들수 있도록 열려져야 할 문이 모조리 닫기니 통행금지이다. 손님이나 이웃, 친척친우들의 방문을 거절한다. 울타리를 만들어 금지구역을 넓힌다. 초롱과 감옥을 이웃에 거느린듯싶다. 류치장이나 집중영은 백색테로의 소산물인데… 범골에서 상경한 사촌누님이 종일 문을 열수 없어 점심식사마저 굶은채 돌아섰다는 사실은 지극히 페단적인 봉페아빠트의 빌미였다. 호위를 맡은 담당보안일군이 신원확인에서 신분증이나 공작증을 휴대하지 않았다는 리유로 그녀의 입장을 불허했던것이다. 물론 주인이 출근후라지만 그래도 농촌 같으면 옆집이나 뒤집에 부탁하여 갖고 온 땅꽈리와 줄당콩은 맡기고 갔을것이였다. 시내라는 도시의 린색함이였다.  문은 보통 한 장소와 다른 장소를 련결시키는 접점에 위치하므로 담, 벽 등의 경계요소와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문의 종류는 기능, 위치, 재료, 형태, 양식에 따라 성문, 대문, 현관문, 방문, 창문, 세간문, 목재문, 철재문, 유리문 등 여러가지로 나누며 지역적특성이나 문화적인 성격에 따라서도 그 용도, 성격, 양식 등이 상이하게 분류될수 있다. 집, 마을, 도시 외곽의 경계에 문을 세우는것은 방어수단, 권세과시, 장엄화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특히 사찰이나 궁전의 문은 다른 장소와 구분시키고 성역화하거나 위엄을 부여하려는 전형적인 실례이다.  세계엔 특수한 형태와 공능을 지닌 다양한 양식의 문이 생겨났다. 현재 건축물에서 사용되는 문들은 개페방법에 따라 여닫이문, 미닫이문, 미서기문, 접문, 주름문, 회전문, 샤타문, 행거문 등으로 구분하며 구조 및 재료에 따라 띠장문, 판자문, 양판문, 플래쉬문, 완자문, 유리문 등으로 구분된다.  조상님네는 전통적으로 대문의 위치 및 좌향을 중시했다. 거주자의 수복강녕(寿福康宁)과 부귀다남(富贵多男)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주장에서였다. 집주인의 계급에 따라 대문의 양식이 달랐다. 통일신라시대의 가사규제에서 계층별로 제한을 두던것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민이 사는 농가나 초가에는 사립문을 달았다. 기와집에서는 몸채나 행랑채와 같은 지붕밑에 평대문양식으로 판자문을 달았다. 사대부 주택의 솟을대문은 대문이 설치되는 행랑채보다 대문채의 지붕을 더 높이고 초헌(舌轩)이 드나들수 있도록 凹형의 문턱을 설치하거나 혹은 문턱을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오늘날 목조, 벽돌조, 철근 콩크리트조, 철판조, 금속재로 문을 꾸민다. 문등(门灯), 초인종, 우편물받이통, 기발꽂이, 고비 등을 설치한다. 그것보다도 철근그물이나 쇠창살을 부대적으로 설치하는 층집을 볼 때면 문우에 문이 달렸고 집안에 집이 있다는 구조발견에 당혹스럽다. 정녕 평화스럽고 간극이 없다면 자물쇠나 카텐이라는 시설물이 필요할가 하는 반문에 저으기 사이비를 감지하게 된다. 또한 방도문, 경보기, 밀페감시회로 등 부대물의 조속한 철거도 기대할만한 일이다. 노크해본다. 빌딩이나 마천루가 우후죽순마냥 일떠서는 건설공사장을 보면 착잡해진다. 신분표방의 기호였던 문의 전통문화가 고급스러워짐을 애석해할가부다. 통함을 막던 봉건세습이 악성순환으로 알류(斡流)하는가! 호화형문장식은 탐탁하며 액색하다. 북경 고궁에는 도합 9999개 반의 방이 있다. 하다면 그만큼한 문이 있어야 할게 아닌가! 이렇듯 문은 자가당착의 복잡성과 함께 일반적인 도적방지, 안전보호, 난방효과 등 기능을 약화시킨채 미궁처럼 입을 다물었다. 환경도 인간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다 바꿀수 있는 방법은 내 생각을 바꾸는것이다.  빗장의 련대성으로 열쇠가 발명되였다. 처깔은 문고리를 도태시켰다. 사람이 문을 만들고 문이 사람을 가둔다. 집안에 갇히고 문안에 얽매인다. 장벽은 허물어라. 창구는 개방하라. 문은 열려라. 나갈 때다. 구름의 입문이다. 구제비도 들어오라. 월계화는 공기를 마시자. 어항금붕어는 산소를 청하자.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고 다른 방, 다른 곳에서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우리 삶에는 열리고 닫히는 많은 문들이 있다. 당신이 바꿀수 있는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이다.”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중에서)  문은 집의 귀이다. 닫히면 안식처가 롱자(聋者)이다. 부실구조의 에러(error)를 클릭하여 업데이트할가부다.                                                                2003년 6월 18일 <<연변문학>> 2008년 8월호
5    알피니스트 (정호원) 댓글:  조회:1386  추천:43  2008-06-17
알피니스트정호원알피니스트(alpinist)란 등산을 잘하거나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세계적인 등산붐으로 알피니스트는 생소한 외래어나 신조어가 아니다. 어디 가나 등산이 활발하고 등산화제가 일고있다.  등산용품전매업체를 비롯한 슈퍼마케트따위 체인점들이 속출하고 등산지식들이 핫이슈로 떠오른다. 그만큼 우리는 등산스케줄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과연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등산가―적격자―를 손꼽으면 누구를 지목할가?  텐징 노르가이는 1914년 5월 15일 네팔 솔로쿰부에서 출생하여 1986년 5월 9일 인도 다르질링에서 타계했다. 2006년 5월 9일은 텐징 노르가이의 타계 20주년이다. 그는 네팔의 셰르파족등반가로 세인의 흠모를 한껏 자아냈다.  가난하고 문맹인 텐징에게 있어서 산은 생명과 유기적인 내연을 지닌 성물이였다. 미지와 공포의 세계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했던 알피니즘의 모험전기는 텐징과 힐러리의 등반으로 시작되여 화려하면서도 파격적인 히트로 막을 내렸다.  텐징 노르가이는 뉴질랜드의 E. 힐러리와 함께 세계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8,844.43m) 정상을 최초로 정복한 세계급 엘리트 알피니스트이다. 귀족출신과 수도승들이 지배하는 히말라야에서 몹시 미천한 신분인 그가 처녀등정가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것은 인간기적의 승리이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 두 파트너들은 알파니스트라는 동반자로 결성되여 살을 에이는듯한 혹한, 포효하는 돌풍과 성긴 산소를 인고하며 등반에 성공했다. 옆구리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용케 헤쳐오르기를 5시간 대가를 치렀다. 텐징은 “어떤 새도 넘을수 없는 산”이라고 어머니가 말했던 해발 8,844.43m의 에베레스트산정을 발바닥도장으로 싸인하는 기적을 창조했다. 텐징도 힐러리도 모두 그 순간 계기때문에 슈퍼스타로, 폭발적인 인기인물로, 속세의 간세지재로 태여났다.  텐징은 등반에 능숙한 티베트인의 분파인 셰르파족출신으로서 소년시절에 에베레스트 남쪽지역의 셰르파거주지역에 있던 집에서 도망나왔다. 셰르파(Sherpa)란 원래 네팔동부 히말라야산속에 살고있는 티베트계의 한 종족이다. 라마교를 신봉하고 농업, 목축업, 상업 따위에 종사하며 히말라야등산대의 짐을 나르고 길을 안내하는 인부로서 유명했다.  최근 히말라야에서 등산안내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단순 가이드나 짐군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있지만 셰르파의 역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등반을 위한 전반적인 준비는 물론 등정루트선정부터 정상공격시간의 최종설정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조언하는 히말라야산악 등반안내인이다. 산을 손금보듯 장악하고있는 이들은 설붕(雪崩)이 일어날듯한 장소와 그 시간마저 직감적으로 알 정도라고 한다. 그들은 항상 산과 더불어 살아가고있기때문에 산정세에 누구보다 익숙하고 선관(仙官)마냥 신출귀몰로 선견지명을 군림한다.  텐징은 셰르파(히말라야고산지대 티베트계 네팔인)로 알려져있지만 국적이나 출생조차 확실치 않다. 그는 정의감과 자비심이 강한걸로 알려졌다. 그는 기시를 받으면서 길잡이의 통바른 인격을 시종일관 잃지 않았다. 탁월한 심페기능을 갖춘 천부성과 극빈, 인종차별에서 발로된 반발적인 오기가 더 지배적이였다.  인도의 서벵골 다르질링에 자리를 잡은 텐징은 1935년 에릭 십턴 경이 이끄는 에베레스트조사대의 부지군으로 동행했다. 그후 수년동안 다른 등반가보다 에베레스트탐험에 많이 참가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후에는 짐군조직대장신분으로 많은 탐험대에 가담하는 기회를 가졌다.  네팔인과 티베트인에게 있어서 하늘 향해 솟은 산은 회색 안개의 전모를 억천만겁으로 은닉해온 신령의 탑으로 토템 봉작을 받아왔다. 1952년 스위스탐험대는 남부 등반로를 따라 두차례의 에베레스트정복을 시도했는데 텐징은 두번 다 짐군조직대장으로 참가했다. 이 시기가 바로 그의 인생전환점이기도 하다. 목동과 야크가 방울을 달랑달랑 울리며 걷던 산길에서 신화적인 현대전설이 잉태하였다.         그는 19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탐험대에 하담인(荷担人) 대장으로 참가하여 힐러리와 함께 제2정상등반조를 이루었다. 동남부 산마루 해발 8,506m 지점에 설치한 텐트를 떠난 두사람은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 마침내 에베레스트정상에 올랐다. 그는 그곳에서 15분에 걸쳐 사진을 찍고 박하빵을 먹은후에 독실한 불교도로서 제수를 남겨놓고 하산했다. 텐징은 수많은 네팔인과 인도인들에게는 전설적인 영웅으로 인식되였다. 영국의 조지십자훈장과 네팔의 타라훈장을 비롯해 많은 훈장과 메달을 선후하여 받았다. 자서전으로는 제임스 램지 울먼과 공저한 《에베레스트인 Man of Everest》(1955)이라는 책자가 있다. 《에베레스트정복이후 After Everest》(1978)는 텐징이 에베레스트등반이후에 했던 려행과 다르질링에 있는 히말라야산맥등반훈련원의 지도자로서의 생활을 담고있는데 이 책은 1954년 인도정부에 의해 세상에 공개출판되였다. 텐징은 에베레스트정상 눈구뎅이에 딸이 건넨 색연필을 묻어 “산꼭대기에 등정기념품을 남겨달라”는 딸의 소망을 들어줬다. 그는 “가족이야말로 내 첫째 관심사이자 최고기쁨”이라고도 표했다.  그의 패기는 세인을 감탄시켰다. 결단력과 친화력 그리고 인내성을 비범하게 보여주는데로부터 등정의 성공을 예시했다. 고용인을 위해 폭풍속에 혼자 텐트를 세울 신실(信實)도 구전해 능히 자립할수 있었다. 그의 고백 역시 아주 소박하고 진실하다.  “나는 일곱차례 에베레스트등정을 시도했다. 원쑤를 물리치는 병사의 기력이 아니라 어머니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을 갖고 매번 산을 찾았다… 허다한것들이 정치와 국적의 명목으로 치러지지만 산에서는 그렇지 않다. 산에서의 생명은 너무 현실적이다. 죽음은 너무나 근거리이다. 인간은 오로지 인간일뿐 다른것이 될수 없기에 어디까지나 그 자체가 전부이다.”  위인을 두고 시야비야 론의도 많았다. 사실 그는 셰르파족이 아니라 티베트인이였다. 1935년부터 셰르파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강인한 체력과 고용인들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불굴의 투지 및 랑만적인 성격으로 뭇국가들의 원정대에 셰르파로 인정받았던것이다. 그는 맹목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등반하지 않았고 후에 히말리야등반학교에서 후진들을 양성하는 일에 진력했다.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출신의 양봉업자 에드먼드 힐러리(영국 국적)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지의 땅에 인류의 첫발을 창조적인 자취로 남겼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리기 위해 힐러리는 정상에서 단 한장의 력사적인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포토에 찍힐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뿐이였다. 사진속에서 맹렬한 바람에 기발이 흩날리는 피켈을 높이 쳐들고 서있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의 모습은 후세의 흠앙을 받기에 너무나 족하다. 산소가 담긴 호흡기를 둘러쓰고 강풍에 부서지는 기발을 추켜든채 인간의 극한 의지를 만방에 웅변하는 프로필이다! 등산에서 텐징과 힐러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세계적인 범주에서 등산의 획기적인 창시자이자 출중한 척후병이며 또한 정예한 알피니스트인데야…  작은 메나 산봉에 오르고도 으시대면서 야호를 복창하는 아마츄어등산가들이 없지 않다. 거룩한 불굴의 투사들이 비겁쟁이를 조소하면서 질타하는 음성이 구천에서 들려오는듯하다. 아부로 굽실거리는 한치보기들은 비실비실 게걸음치며 후퇴할것이다. 대의를 버리는 시정아치들에게 있어서 알피니스트의 풍도는 얼마나 름름하고 거창한가!     나도 언젠가는 쵸몰랑마봉에 오르련다. 기이어 내 생애의 숙지를 달성하려 한다. 윽벼른지 벌써 몇십년 된다. 중학교때 지리과에서 그 정상을 노리던 일이 아직도 선하다… 나는 중국조선민족이다. 장백산줄기를 타고 뻗어내린 오봉산과 선바위 사이의 네드렁봉기슭 촌락인 하오동에서 태여난 이민 3세이다.   곰을 잡으려면 큰곰을 잡고 매를 맞으려면 큰 매를 맞으라는 말이 있다. 산에 오르려면 쵸몰랑마봉에 오르라고 나는 웨치고싶다. 나는 믿는다. 내가 그런 경험자 내지 경력자로 조만간 현실을 감오할것이라고. 장백산이나 태산에 올랐던 감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의 미지가 나를 기다린다. 내 오를 주봉의 처녀지에 쏠리는 호기심은 인생의 한부분으로 나를 조련질한다.                                                                                          2006년 5월 25일 <<연변문학>> 2008년 3월호
4    [수필] 카리스마(charisma)는? (정호원) 댓글:  조회:1371  추천:55  2008-03-28
카리스마(charisma)는? 정호원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 3. 30 네덜란드 쥔데르트~1890. 7. 29 프랑스 파리 근처 오베르쉬르우아즈)는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폭넓게 인정받았으며 현대미술사의 표현주의사조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형태를 통하여 그를 자살까지 몰고 간 정신병의 고통을 인상 깊게 전달하고 있다. 고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자주 일으켰다. 그는 미술품 거래를 싫어한데다가 1874년 런던 태생의 한 아가씨에게 실련을 당하면서 인생관이 암울해졌다. 인간적 애정을 얻고 싶은 욕망이 좌절되자 짙은 고독이 평생 지속되었다.   1888년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 즉 성탄절의 전날 저녁인 12월 24일 저녁에 반 고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일으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랐다. 그는 정신병원에 12개월 동안 갇혀 있으면서 되풀이되는 발작에 시달리고 평온한 기분과 절망적인 기분의 양극을 배회하면서도 이따금 화필을 놓지 않았다. 1889년부터 1890년 사이 그의 작품을 지배한 주된 특징은 현실과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일종의 비애이다. 오래 동안 정신병원의 독방이나 정원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주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데다 자신의 영감이 직접적인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을 되살려 그림을 그려야 하는 현실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강렬한 색채를 부드럽게 만들고 좀 더 차분한 그림을 그리려고 각고했다. 그러나 흥분을 억제할수록 상상력이 더욱 넘쳐서 구성요소들의 극적인 효과에 몰두하게 될 줄이야!···그는 역동적인 형태와 힘찬 선에 바탕을 둔 표현양식을 개발했다. 후에 그는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채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다가 결국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자살했을 때 반 고흐라는 이름은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천재적인 화가 고흐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신경과민증, 정신분렬증, 다중인격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놀라운 예술성을 가진 작품을 그려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로 천하기적이다.   정신질환의 화가들이 상상을 초월한 미술작품은 또 다른 일화에서 더 체크할 수 있다.    요세프 하인리이 그레빙의 작품 ‘로마’는 상당히 걸출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을 작게 그리고 대신 건축물을 그려 넣어 로마를 표현했다. 이 환자는 종이쪼각과 화장지를 모아 도화지를 만든 뒤 그 우에 바로 그림을 그렸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들의 놀라운 예술성에 대해 “이들은 아성적 사고가 일정 정도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 내면의 욕구를 그대로 분출한다”며 “이 같은 욕구 분출이 그림에 반영되면서 작품에 예술적 깊이를 더하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다면 정신질환의 영향력과 창작사유의 민감성은 모순성을 보이기보다 부동한 측면의 공감대가 존재하지 않나 하는 의혹의 대목이기도 하다.     과연 정신이상의 상태에서 미술작품을 완성한다는 사례의 반증은 무엇인가? 인간의 정신영역에는 아직도 미개발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정신질환자의 미술작품을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시켰다는 평가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와중에 우리는 미술작품의 형태에 숨어진 과학의 함량을 다소 의심할 수밖에 없다. 긍정과 통하는 비결은 향후 타진할 몫이다.     잠재된 인간관능의 작용은 리비도(libido)를 포함한 인간내적의 발로를 무시로 수시로 발산하지 않나 하는 현념을 던져온다. 예술분야만 아닌 생활이나 사회활동에서 인간은 신령적인 영험을 연출하는 우연의 일치가 있나보다. 미신이나 봉건유독과는 별개의 이질적인 앙케트(enquête)를 가지고 싶다. 정신병환자의 자화상 같은 작품세계가 보여주는 힌트는 무엇일가? 우리는 영검이나 신험(神驗), 신통의 하모니를 신봉하지 않는다. 요술이나 마술은 눈속임이라고 여긴다. 무형의 독존세계는 어느 면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체의 궤도를 운행한다. 식물에 소리가 있고 무기물에 언어가 교류되고 공기 속에 화면이 흐른다면 누가 믿을까? 그렇다고 또 그것의 부정면도 입증이 미미하다.     반상 적이라는 정신질환 환자들의 작품들에서 숨은 예술성을 발견해낸 것도 역시 인간이다. 그렇다면 분렬증 환자의 그림에서 예술성을 읽어내는 감상자 역시 예술적 심성을 지닌 심미관인 것은 또 무엇으로 해석하면 원만한지? 우주탐측, 인간비밀은 첨단만 아닌 기초교육에서도 진일보 한결 중시할 바이다. 신비의 유혹은 인간을 촉발하고 자연의 철학은 이지를 숙성시키고 신기루동네는 그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른다.   카리스마(charisma)란 예언이나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이다. 신의 은총을 뜻하는 그리스어 ‘Khárisma’서 유래하였다. 다른 뜻으로는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을 말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가 지배의 세 가지 유형으로 합리적 지배, 전통적 지배와 함께 카리스마적 지배를 든 이후로 일반화하였다. 현대는 ‘권위’로 순화되면서 통칭된다. 하다면 구경 누가 카리스마인가? 우리는 자연을 창조하고 우주를 다스리고 이제 나노기술도 개발하였다. 나노(nano)는 1/1,000,000,000(10-9)을 의미하는 접두어이다. 나노라는 말은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는데 지금은 아주 미세한 물리학적 계량 단위로 사용된다. 나노세컨드(ns)는 1/1,000,000,000초, 나노미터(nm)는 1/1,000,000,000m를 가리킨다. 1nm는 머리카락 굵기의 1/100,000 정도의 크기로 보통 원자 3~4개가 들어간다. 나노는 전자현미경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아주 미세한 세계인데 이러한 나노 과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 주사원자현미경이 개발되면서부터이다. 나노기술은 처음에는 반도체 미세 기술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전자 및 정보통신은 물론 기계, 에너지, 화학 등 대부분의 산업에 응용할 수 있다. 나노기술이 의미를 갖는 것은 물질의 최소 단위까지 인간이 통제할 수 있게 되였다는 엄청난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인류문화지식보다 이제 더 개발할 미지의 탐구시장이 더 무한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했다. 지금은 구상유취(口尙乳臭)가 아니래도 어디까지나 발전단계에 머무른 우리 자신들이다. 미숙한들 그래도 궁극적으로 소신해야 할 적임자는 인간이다. 억겁이 흘러도 최후의 카리스마(charisma)는 물론 인간이다. 명약관화한 결과임을 재삼 단정한다. 작금은 다만 시기상조일 따름이다.
3    날개짓 (정호원) 댓글:  조회:1268  추천:41  2007-12-21
날개짓 정호원무형의 귀객들이 줄레줄레 모여들다 유형의 혈육들이 삼삼오오 떠나가다 해살은 오늘도 창가에서 금노을 샘플을 전시하고 당숙은 어제도 흑송동 간이역에 트렁크 운송하고 청산이 아픈건 비릊던 멍으로 독을 쓰는 탓 강물이 넘친건 증발의 위기로 발악한터 이상한 꿈들이 기발 들고 완행차처럼 지나가다 결코 사이비 아닌 종루의 탑이 고개를 주억거리다 향관(鄕關)은 지금 몇시더냐 돌각담 년륜은 지워졌다 장독대 곰팡이가 분침처럼 피여나 다행스럽다 썩어서 향기로운 유허지로 락엽은 발동 걸다 숲속의 숲 빌딩의 집 그 안채로 족보장이 번쩍거리다 <<연변문학>> 2007년 11월호
2    찢어진 채찍(정호원) 댓글:  조회:1119  추천:41  2007-12-21
찢어진 채찍정호원 꽃을 심으며 물을 준다 북도 돋구고 재자국도 밟는다 담장 넘어 하늘에 넘칠 복욱한 향기 들판 지나 진동할 염려한 빛깔 무수한 나비 지천의 꿀벌 웃는 아가 새물새물 찬찬히 보는 할머니 싱글벙글 물초롱 기울일 정원사 팔을 끼고 미소할 신랑신부 주고받을 발렌타인데이의 정표 촬영사의 활동피사체 화가의 모델샘플 꽃을 심으며 물을 준다 구뎅이를 판다 이번에는 나도 심는다         <<연변문학>> 2007년 11월호
1    록색화라지 (정호원) 댓글:  조회:1369  추천:49  2007-11-26
록색화라지 정호원  (E―mail:za723@hanmail.net )  국자가라는 연길시 도심에는 신흥가 명휘거 23조가 있는데 간칭은 신흥가 162―1―10호이다. 내 아파트가 부동산건물수속처에 등록한 번호는 22042이다. 베란다 바로 앞은 병원건물인데 북경 중남해처럼 붉은 칠을 한 2층짜리 집앞에 화제의 포커스(focus) 주인공― 유표한 매너의 버드나무가 서있다. 별로 희귀한 나무도 아니고 상록수는 더구나 아니다. 언제 반했던가싶게 눈길을 끄는 포인트를 소유한 정원수이다. 아마 무비의 포용력이라도 지녔나부다. 매번 버드나무옆을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별도로 끈적거린다. 마치 내가 륙주비전(六注比廛)을 소풍하지 않나 하는 착각이 방불하다. 로무시장을 옆에 끼고 정좌정립의 차렷자세를 취한 정가(庭柯)의 포즈가 너무나 안쓰럽고도 위풍이 도도하다. 왜냐 하면 원수(園樹)의 시처우가 상처와 오염으로 얼룩진 까닭에서이다.  바로 록색화라지배경이다. 푸른 색과 희나리의 깡마른 색조를 통합해 하나의 모자이크(mosaic) 라벨(label)을 조립한데는 그 자체의 이중성때문이다. 버드나무가 서있는 공간이야말로 소요의 천국이요, 잡음의 독천장이다. 마치 다모아김밥, 돈까스, 오징어덮밥, 야채볶음밥, 카레볶음밥, 쫄면, 라볶이, 쫄쫄짬짬, 수제비매운볶음, 오뎅국, 참치김치찌개, 오무라이스, 샐러드김밥, 누드김밥, 다모아김밥, 새우볶음 등 메뉴가 다종다양한 식단을 방불케 한다. 음식목록은 구미를 당기게 하나 소음이 번잡한 도심속의 버드나무는 질식과 희박을 감내하지 않을수 없다. 더군다나 병원의 혼탁한 오염대기, 병균악취를 맡으며 허리를 편채 고개를 쳐들었으니 거창하지 않을수 없다. 나는 정원수를 찬미하는데만 그치지 않았다. 한것은 나무의 생존섭정이 특별히 이색적이였기때문이다. 여느 식물들은 대개 상록수처럼 초록을 통일로 름름하나 정원수만은 언제 보나 고갈과 엽록소를 동시에 거느렸다. 일목료연케 하는 부위는 바로 정수리이다. 구부정하면서도 헌칠한 식물 전체에 풀빛이 함치르르하다. 그러나 좀더 시선을 목청(木靑)에 유심히 팔면 바로 우듬지에서 푸른 빛과 메마른 장작개비가 공존하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희나리같은 불구가지야말로 록빈홍안(綠鬓紅顔)이 아닐가? 가로수와 정원수는 도시풍경과 미화에서 한몫을 담당한다.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신도시개발때 나무와 록지면적의 비례와 분포를 합리하게 전망계획에 결부시킨다. 나무와 록지가 없고 포장도로와 고층건물만 있는 도시는 사막과 같다. 2004년 8월, 연길시에만 해도 병든 가로수가 무더기로 죽어 쓰러졌다. 하루밤새에 병목도수(竝木道樹)들이 지천으로 널브러졌다. 이른바 《천우》라는 병에 걸려 유충분비물인 《톱밥》이 나무밑둥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물매미만큼 크고 색상이 까만 죽은 천우성충들은 보기에 모골이 송연했다. 주야로 분무기로 약을 뿌리고 점적주사를 놓느라 야단을 떨기도 했다. 물망에 오른 가로수생존이다. 콜레라, 홍역 등 전염병은 인류의 과학수단에 의해 전승됐으며 페결핵과 문둥병과 같은 악질적인 질병도 인류를 위협할수 없다.  최근에 또 《사스》, 《조류독감》 등 새로운 재난과 질병들이 쇄도하지만 역시 퇴치로 종막을 내렸다. 그러나 내 집앞에 서있는 버드나무라는 록색화라지는 인위적인 퇴치를 피해 자체의 면역력으로 생존을 치른다. 얼마나 장한가!  줄기의 초리를 따라 해살이 호듯호듯 날리며 바레무를 추느라 아양을 떤다. 잎새를 흔들면서 명주바람이 나무겨드랑이를 부쩍 간지럽힌다. 밑둥을 에돌아 개미행렬이 분주히 계절을 지게에 담아 퍼나르며 드나든다. 그늘진 록음속에 청초한 평화가 부들부채를 내젓는다… 비록 랑만에 나붓기는 원수의 춤사위이나 머리우에 떠인 상처는 측은하고 불행하다. 그런대로 나무는 하늘을 떠이고 대지를 부감하면서 옹근 몫에 충정을 고인다. 주변이 떠들던 곪아터진 생채기에 피가 흐르건만 짐짓 모르쇠를 대면서 태연자약하다. 피가 마른 상흔의 허물을 감추려는듯 거창하게 쳐든 고개짓은 지고무상의 위상을 지어냈다. 두가닥으로 갈라진채 해달을 떠인 력사를 만방에 토파하나싶다. 간단없이 턱인사를 전송하는 률동이 그래서 더 다감하다.  뉘라서 이런 강자의 형상앞에서 창유(瘡痏)로만 비애를 자아낼것인가! 턱없다. 생존경영기법과 생활성공비결 그리고 연찬고심의 자세를 현시하는 나무의 지향인지도 모른다. 학자적인 학술탐구를 조형미로 나타낸 발견이길래 내 흥심을 한껏 자아낸것이다. 득실을 배당하려 서두르는 뒤채임… 사익의 편린보다 공리의 편향을 아집한 축소판… 말없이 태를 갖추어 속세를 정화하는 푸른 기상… 보이는 상처를 보이지 않게 감추려고 몸짓을 섞어가는 률동… 그래서 아픔보다 희망을 발산하는 에너지가 산소와 함께 천하에 발산되는것이 아닐가! 입향순속(入鄕循俗)이란 다른 지방에 들어가서는 그 지방의 풍속을 따름을 칭하는 뜻이다. 《회남자》의 《제속편(齊俗篇)》과 《장자》의 《외편(外篇)》에 나오는 말이다. 비록 태고연한 원시림이나 무성한 삼림을 떠났지만 천부적인 속성을 떨쳐온 속성은 여전하다. 인간세상이라는 동네복판에서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활력을 뽐내는 나무청춘은 마냥 벅차다. 진대나무나 고목의 편린을 떠인 부식투성이나 나무는 물이 오를 때면 자양분을 한껏 흡수하고 열매를 익힐 때면 탁갑성을 고고성처럼 터뜨렸다.  그런데 나무는 왜서 상처를 떠이고 그처럼 도도하게 그토록 점잖게 생존의 기발을 휘날리는것일가? 나는 5층짜리 남향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2006년 10월 1일부터 부감을 시작했다. 사색을 굴리였고 의문을 빈발했었다. 출퇴근길에 지나면서 감탄부호를 떠올리기에 습관되였다. 뭇별이 잠든 고요한 밤, 책을 읽다가 피곤하면 곧장 가로등아래 희부연 형체를 현신한채 버드나무의 압축판을 구경한다. 2006년 10월 1일 국경절을 맞으며 새로 이주한 아파트단지를 《서식지》로 정한 이 범상치 않은 정원수와 인생을 교감한다. 입향순속의 순리를 금시 새삼스레 절감하면서 삶의 애환을 새로 터득하고 경업의 희비를 정리한다. 아픔과 재생의 희로애락은 처처에서 둥지를 털며 계절을 륜환한다. 나는 주기적이면서도 돌발적인 생업의 질서를 수긍하고 나를 그 와중에 존속시키는것으로 자아완수를 위안한다.  남몰래 혹은 공개창으로 보이는 포토파일처럼 드러났으나 깊이 인고한 동통은 그만의 체감이 아닐것이다. 자꾸 곁눈질로 여겨보는 나무의 화라지가 내 가슴에 멍을 돋친다. 푸른 청춘의 꽃인지도 모른다. 소중한 할애의 몫으로 피여난 불멸의 혼이였으면 좋겠다. 일훈일유(一薰一莸)란 바로 향초와 냄새 나는 풀을 한데 놓으면 좋은 냄새는 없어지고 악취만 난다는 뜻으로 좋은 일은 잘 잊혀지나 나쁜 일은 오래도록 전하여 내려옴을 이르는 말이다. 때론 착한 사람의 세력은 악한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는것을 이르는 말로 통하기도 한다. 반대로 일훈일유를 풀이하면 록색화라지의 이중풍경은 나에게 일희일비로 반복되는 현대일상을 감내하게 하는 좋은 프로필이다. 내 인생의 살아숨쉬는 리정비요, 추억의 향기로운 상록수이다. 매번 나무와 치르는 상우례(相遇禮)가 그래서 멋지고 즐겁다. 신랑이나 신부가 처가나 시가의 친척과 정식으로 처음 만나 보는 례식―상호례가 이보다 더 좋을수 없을것이다. 애훼골립(哀毁骨立)처럼 앙상했으나 나에게는 적어도 활력의 무궁한 힘을 주는 정신기둥인 까닭에서 풋풋하고 싱싱하고 풍만하다. 잎이 마르고 가지가 죽어버린 나무라면 상우방풍(上雨旁風)을 련상케 한다. 저항하다가 지친 오만상 같기도 하고 수능하면서 감내해온 오망부리의 표정 같기도 하다. 죽은 잎과 마른 잎 그리고 생엽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하늘공간에서 나무는 그로서의 무대를 두개 가진 셈이다. 생사오페라의 활극을 가장 선명하게 가장 진실하게 그리고 가장 극대화한 장면을 연출한다.  나무는 부족한 영향으로 계속 자라려고 나무의 안쪽 90%를 죽이고 껍질부분 10%만 살아있다. 하여 나무는 오래 살고 고초기를 용케 버틴다. 자연의 규률을 따라배워 인간도 고통을 죽이고 희망을 새움으로 돋구는것이다. 인식의 변화에 따라 생체를 돋구어 위력을 보여주기에 너무나 충분한 나무의 존재가 그래서 삶의 길동무로 가능하다. 블랙유머는 스릴이 짜릿하다. 강한 설득력의 지배처럼 버드나무의 위치를 생존모식처럼 받들가 한다. 도능독(徒能讀)의 타산지석은 새로 깨여난 출발의 계획이고 조연배우의 데뷔신청은 새 야망의 라스트를 노린 파악에 비롯된다.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자면 환경여하, 조건우렬을 론하기 앞서 스스로의 타진이 우선이다. 활력과 탄력을 돋구고 대리만족기능보다는 첨삭의 신축성을 발굴함이 요긴하다. 그러자면 속물근성을 삼가하는 한편 자아편달로 통하는 가교역할의 외교관이 되여야 하지 않을가 기대한다. 버드나무는 개천이나 습지를 버리고 도심에 심어졌다. 좌천(左遷)은 낮은 관직이나 지위로 떨어지거나 외직으로 전근됨을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 중국에서 오른쪽을 숭상하고 왼쪽을 멸시하였던데서 유래한다. 식물의 좌천은 그래서 인류의 창조적인 편승에 힘입었다가 결국 자기실천을 다그치는중이다. 록색화라지라는 정원수의 욕창(褥瘡)은 그 촉매작용으로 시다림을 주고 인고를 받는다. 나무의 껍질이라는 피부가 병상에 닿아 짓물러서 생기는 종기를 하늘에 거풍하고 새로 태여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허상의 일탈에서 내면에로 귀환한다는 숨결이 씩씩하다.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로 나무는 섰다! 시련의 닻을 내린 빈 둥지는 바람에 날려가고 이제 새 출항의 돛을 또 꺼내든다. 허울속의 허상이 가려주는 내막, 숭숭 뚫린 구멍, 조금 발가벗기고 허물을 수납한 자세, 떳떳한 독립을 지켜온 인내, 용케 버틴 지레대! 어쩌면 병들고 구새 먹고 좀먹은 불구가지가 활력의 송신기였고 통합의 안테나였다. 어쩌면 옹근 일색으로 무장한 상록수가 아니길래 더 유정하고 더 돋보이는지 모르겠다. 홀로 서있는 원수의 이미지는 무엇일가? 세상을 멀리하고 결국 속세 복판을 독천장으로 정했다. 고소득의 정착금, 불멸의 서식지, 청춘의 상속인 록색의 계승자, 거듭나는 부활… 지참금 일전 없이 로자 한푼 없이 장도에 오른 구척장신이 도회라는 기착지에서 다리쉼 하나부다. 계절마다 곡물상의 수확을 계산하는 궁냥은 진작 세월을 앞당겨왔다.  나는 슬그머니 나무를 에워싸고 원을 그리는 동작을 환상한다. 해살이 무더기로 쏟아져내려 황금테를 둘러주고 담 넘어 애들의 웃음소리가 초리를 얼싸 껴안는다. 년륜에 정적이 기지개를 켜다가 잠들고 잎새마다 저력이 꿈을 묻힌다. 혼잡한 거리를 물러서고 후원별채 자리 잡은 버드나무를 눈동자에 옮겨온다. 화신은 과연 무엇인가? 농익은 천고마비가 녹아 흐르는 계곡의 감참나무도, 너럭바위를 위시해 돌틈에 숨은 로승도, 계를 받은 녀승의 차잔을 윤기 나게 닦는 모습을 기다리는 초피나무도, 유원지의 록화조경을 돕는 정향나무도 아니다. 그렇다고 또 밤나무, 잣나무, 감나무, 대추나무따위의 유실수도 아니고 산타클로스와 상징적으로 련상하는 크리스마스―트리는 더욱 아니다.  그런데 초토화의 피페상내지 활량함과는 대조적이나 매력은 은은하고 여전하다. 안침지고 유축진 뒤안길에 취한 포즈가 또한 눈길을 끌고 발목을 잡는다. 주목이 덧붙여지고 애정이 새록새록 날개를 젓는 내 추억의 모퉁이요, 집착심의 발상지다. 우수를 띠고 서있는 나무 전체가 고동이 금방 울린 부두의 돛을 방불케 한다. 인위적 식수라기보다 지향의 선택과 환경의 적중을 포착한 하모니(harmony)같다. 악어떼가 우글거리는 늪지대의 고목과는 상태적으로 다르나 락엽의 무리를 거느린 풍경신세는 근사하다. 고급레스토랑의 석가산뒤에 껑충하게 솟은 인조 홰나무는 객적다. 조명과 무대와 열창의 굿판이 그 보조배경이다. 그러나 버드나무는 현실로 살아가는 행인들의 활동체로 생명 그 자체를 확보한 공간식솔이다. 대자연의 기능상실인것 같으나 기실 그로부터의 확장발전진화농축정화세련의 거듭나기이다. 자존심을 내걸고 고요히 숨죽인 심연의 산소가 금방 색조를 달리한다. 언젠가 꿈에 버드나무를 두고 엉뚱한 환상을 했다. 완전히 미친 자의 몽유병이였다. 내가 글쎄 정원수를 통째로 뽑아 메고 연룡도를 뛰여다니지 않겠는가! 정원수가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 둔갑해 나의 슬로건을 표방하는 로천생방송광고였다. 어즈버, 고목생화(枯木生花), 고목발영(枯木發榮)은 내 거주지로부터 재생하는가! 나는 뿌리를 두고 무언가를 잃었고 또 뿌리를 찾아 무언가를 얻었다. 하늘을 도로 심었다. 태양도 함께 묻었다. 땅이 부스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비상한다. 만물이 태동한다.                                  2007년 2월 27일 <<연변문학>> 200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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