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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제25대 충렬왕때 최석이라는 청렴한 관리가 있었다. 순천부의 부사로 임관해있으면서 최석은 매사에 공명정대함을 원칙으로 하여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3년후 최석은 영전되여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당시 순천부에서는 사또가 임무를 마치고 그곳을 떠날 때 좋은 말 여덟필을 주어보내는 풍속이 있었다. 그런데 관속이 골라준 말에 짐을 싣고 순천부를 떠나 서울의 본가에 도착한 최석은 말에서 짐을 부리고나서 말이 할 일은 끝났으니 말을 끌고 돌아가라고 한다. 마부가 황급히 이 말들은 이제 사또의 소유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순천부에 부임했던 사또들이 모두 여덟필씩 말을 가져간 관행이 있으니 그 관행을 깨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이 말을 듣던 최석은 준렬히 마부를 꾸짖는다—그건 잘못된 관행이다. 관청의 소유물을 누가, 무슨 권리로 구관에게 함부로 준단 말이냐? 최석의 단호함에 여덟필의 말과 오는 도중에 낳은 망아지까지 모두 순천부로 보내진다. 감복한 순천부의 백성들은 관행을 깬 최석의 청렴함과 공덕을 높이 칭송하여 팔마비(八马碑)라는 비를 세웠다고 한다.
예전부터 관례에 따라 행하여지는 일을 관행이라 일컫는다. 세상인심은 무릇 관행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대체로 받아들여지는쪽으로 가닥을 잡게 되여있다. 순천부의 오랜 관행으로 되여있는 여덟필의 말을 최석이 자기 소유로 하여 가진들 누가 시비 걸 일은 없다. 하지만 그가 잘못 된 관행을 깼기에 순천부에는 맑은 정치가 안주하고 관청과 백성이 가까와질수 있는 새로운 관행이 설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 면면에서 볼수 있는 수많은 관행은 그 표현형태여부를 떠나 오랜 봉건력사에서 유래되여온것이라 할수 있다. 몇천년을 내려오면서 정권교체가 수없이 이루어지고 국가제도가 천지개벽의 변화를 안아왔지만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보다 색다른 형태로 포장되면서 일종의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잡고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관행이든 일단 도를 넘어 당과 정부의 이미지를 더럽히고 백성의 근본리익에 심각한 해를 입히며 사회풍조에 악영향을 끼칠 때 이런 관행은 척결해야 마땅하다.
당중앙 새 지도부가 한달 남짓한 사이에 차례로 깨고있는 관행은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을것이다—
11월 15일,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모습을 드러낸 자리에서 습근평 당총서기는 “빈말과 상투적인 말”을 자제한 20분간의 신선한 취임연설로 부드러운 인간매력을 과시한다. 11월 26일과 30일 리극강부총리와 왕기산 규률검사위원회 서기는 두 좌담회에서 각각 회의참석자들에게 준비한 발언원고를 읽지 말고 중점문제만 내놓고 토론하자면서 새로운 회의풍조 정착을 예고한다.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습근평 당총서기의 광동사업고찰시 도로차단이 전혀 없고 차대는 공공뻐스, 택시, 자가용과 병행하여 질주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심수 련화산공원에서 등소평조각상에 헌화할 때도 양탄자를 펴지 않고 삼엄한 안전경호도 없이 총서기와 군중들이 자유자재하게 서로 악수를 나누며 면담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져 백성들의 갈채를 받는다.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 그런데 웃물이 맑아도 아래물이 오염에 로출되여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례를 우리는 가끔 보아왔다. 때문에 우만 쳐다보지 말고 스스로의 정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아래물도 웃물의 원천적인 맑음을 이어내려가면서 량성순환을 할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일전에 최국철작가가 쓴 “주덕해평전”을 읽으면서 “웃물과 아래물”의 력학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주덕해는 웃물의 맑음으로 아래물의 정화를 이끌어내는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전”에는 간부와 군중이 주덕해를 극찬한 이런 말이 있다…
“주덕해서기는 하향하면서도 판공실에서 절대로 자신의 행차를 당지 정부에 알리지 못하게 했고 접대하지 못하게 비밀리에 행차하군 했소.” “주덕해서기는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서 벌려놓고 제기되는 무수한 곤난을 제때에 잘 해결해주었지만 경축장소에 나서기 싫어했고 경축연설도 많이 피했소.” “주덕해는 시골에 내려오면 절대루 색다른 음식을 못하게 하고 숙주집 식구들과 한밥상에서 식사했수다.”
“조선족의 모든 삶의 씨앗을 뿌린 사람”, 연변 초대 주장 주덕해의 삶은 연변의 새세대 지도자들이 대를 이어 전승해야 할 소중한 정신유산으로, 기관작풍의 관행으로 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길 서북쪽 송림속에 우뚝 솟은 주덕해기념비는 이 지역 틀린 관행의 척결과 옳은 관행의 안주를 위한 튼튼한 수호신으로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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