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복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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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방인 (채복숙)
2017년 08월 28일 16시 07분  조회:405  추천:1  작성자: 문학닷컴

수필

이방인

채복숙

‘닭은 모래에 목욕을 하고 학은 바람에 목욕을 하지만 사람은 정에 목욕을 한다.’ 

우연히 읽은 어느 한 수필에서 나오는 첫 마디이다. 작자는 이 것이 《시경》에 나오는 시구라고 했다. 나 같이 지극히 평범한 독자로서는《시경》까지 일일이 알 수가 없지만 머리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지난 련휴에 친정에 가니 큰외삼촌이 연변에 왔다고 했다. 큰외삼촌은 10여 년을 아르헨티나에 가 있다가 올해 중국에 돌아온 후 역시 딸애가 자리를 잡은 광동성에 자리를 잡았고 이번에 친척들이 그리워 연변으로 왔다고 했다.

큰외삼촌의 소집에 따라 그날 우리는 도문의 어느 한 식당에 모였고 그간의 하고 싶던 얘기, 바깥 세상 돌아가는 얘기, 사람 사는 얘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얘는 사춘기여서인지 내 말이면 무조건 반대로 나가자고 합니다.”, “유미, 들었지? 이제 아빠에게 다 대줄 거다.”

“아, 속이 타다.”

동생이 말 안듣는 딸을 두고 친척들 앞에서 궁시렁거린다.

“뉴러우 후러(牛肉糊了)?” 

그래도 한옆에 점잖게 앉아있던 나의 아들애가 자기 외사촌동생 얘기를 하는 눈치는 알고 한마디 끼여들었다.

소고기? 무슨 소고기? 소고기가 왜 타는데?

동생도, 조카도, 친척들도 그리고 나까지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소고기는 무슨 소고기? 소고기료리를 시키지 않았는데… 식당 주방의 탄 냄새가 여기까지 오는가?

그래도 아들의 말에는 내가 리해력이 빠르다. 하하, ‘속이 타다’를 ‘소고기가 타다”로 들은 거다. 한족학교에 다니는 아들애로 놓고 말하면 ‘속이 타다’를 ‘소고기가 타다’로 알아들은 것만 해도 우리 말 실력을 꽤나 잘 발휘한 셈이다.

“네 발음이 그닥잖아서 우리 아들이 속이 타다를 소고기가 타다로 들은 거다.” 내가 동생을 놀렸다.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자, 한잔씩 마시자.”

오늘의 주인공인 큰외삼촌이 아르헨티나 관방용어라고 하는 스페인어로 뭐라고 웨쳤다.

그 말에 따라 다들 잔을 들었다.

“둘째외삼촌은 미국에서 돈을 잘 번다고 합니까?” 내가 물었다.

둘째외삼촌은 내가 작년에 연변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안해를, 그러니까 나의 외숙모를 미국에 보낸 채 중국에서 두 아들을 거두며 보내고 있었다. 둘째외삼촌은 원래는 한 국유기업에서 꽤나 잘 나가고 있었는데 후에 기업이 망하면서부터는 별로 할 일이 없게 된 사람이다. 그래도 안해가 돈을 잘 벌어 경제적으로는 유족했지만 은근히 안해 덕에 먹고 산다는 딱지가 싫은 모양이였다. 게다가 두 아들의 공부성적이 그닥잖아 말썽이 많았다. 그러다가 끝내는 두 아들까지 데리고 미국에 가게 된 것이다.

“목수일을 하는데 돈은 아마 괜찮게 버는 것 같다. 그런데 일하는 도구나 기계가 몽땅 영어여서 영어공부를 하는게 죽을 지경이라더라.” 이모가 대답했다.

둘째외삼촌이 영어공부를 하느라 애를 먹는 것과는 반대로 연변에 있을 때에는 공부를 못한다고 말이 많았던 둘째외삼촌네 두 아들이 미국에서는 아주 우수학생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둘째외삼촌네 두 아들은 워낙 미국체질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니 중국조선족체질인 둘째외삼촌의 영어공부가 은근히 걱정된다.

딸애와 나란히 앉은 이모는 유달리 얼굴이 검어 보인다. 젊은 시절 이모는 여기 시골에서는 참으로 미인이였다. 피부가 얼마나 희였는지 보는 사람마다 부러워했다. 그동안 이모는 한국에 가 식당에서 일했는데 일솜씨 하나만은 대단하여 가끔은 손님들이 주방에까지 찾아와 료리한 사람을 칭찬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 것도 이모의 자랑이라면 자랑이고 자부심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모는 손님들의 물음에 웬간해서는 대답을 안하고 미소만 짓는다고 했다. 한족학교를 다닌 이모는 한어 악센트가 섞인 연변 말을 한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말을 적게 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곱던 얼굴이 시커멓게 된 걸 보며 이모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모와 외삼촌들 중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은 막내외삼촌이였다. 막내외삼촌은 나보다 나이가 한살 어리다. 학교시절에는 아래 학년을 다니는 그가 항상 나를 “조카야” 하고 부르며 다녔다. 어린시절에는 친형제 같이 보내던 막내외삼촌을 본지도 이제는 까마득하게 오래 전의 일 같다. 막내외삼촌은 한족 녀자와 결혼하고 온 가족을 데리고 일본에 가서 살고 있다. 식당을 경영하는데 은근히 잘된다고 했다.

우리가 떠들썩하게 얘기를 했지만 마가을 말라버린 호박잎처럼 쪼글쪼글해진 외할머니는 별로 즐거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제 보름쯤 지나면 외할머니의 생신이여서 친척들이 다 모여 생신을 쇠련다고 이모가 말했다. 그 생신을 쇠고 이모는 다시 한국으로 가게 된다.

이때 동생의 전화가 울렸다. 한국에 있는 동생의 남편이 오늘 모임이 있는 줄을 아는지라 전화를 걸어 문안인사를 하는 것이다…

지구는 이제 우리에게 그야말로 작은 마을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우리의 마음은 왜 이렇게 힘든 걸가? 친지들끼리 정을 나눌 기회가 너무 적어서일가, 새로 자리잡은 터전에서 생활이 록록치 않아서일가…

련휴도 끝나고 나도 내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왔다.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으며 역시 중국어실력이 뛰여난 아들애더러 앞자리에 앉게 한다. 만약에 내가 기사 옆에 앉아 단 몇마디라도 대화를 나누게 되면 상대가 “너는 남방사람인가?”고 묻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구구히 내가 왜 이방인이 아닌지를 설명하는 게 싫었으며 내가 이 곳에서 이미 20여년을 살아왔음에도 역시 이방인인게 싫었기 때문이다.

 

연변일보  2017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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