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복숙
http://www.zoglo.net/blog/cbs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수필/칼럼/론문

전체 [ 8 ]

8    수필 - 어버이의 마음, 그리고 효란? 댓글:  조회:227  추천:0  2022-02-22
수필 / 채복숙   어버이의 마음, 그리고 효란?       꽃잎이 떨어진 채 어지러운 감탕 우에 스러져가는 련꽃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그네들도 흰 볼에 붉은 연지 바르고 화사하게 웃던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네들도 몽실몽실 귀여운 봉오리를 가진 사랑스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립추가 지난 지 며칠 안된 것 같은데, 그처럼 줄기차게 쏟아지던 폭염이 거짓말처럼 가뭇없이 사라졌다. 계절이 다른 한 륜회의 길 우에 올라선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건 잘 알지만 스러져가는 련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한 기분이 된다. 계절의 륜회 우에 올라선 사람도 저 련꽃들처럼 스러져가겠지…   인간의 생로병사는 진시황도 어쩌지 못했다고 하지만, 로쇠를 막고 싶은 건 인간의 영원한 욕심일 것이다. 그나마 희던 얼굴에 검은 버섯들이 서서히 피여나갈 무렵, 나는 지나가는 풍문에 들은 대로 미국제 나이트크림이라는 걸 샀고, 몇날 며칠을 두고 온갖 정성을 다해 얼굴에 두텁게 칠을 해댔다. 하느님이 그 노력을 가상하게 여겼던지 그 날 저녁도 세수를 하며 거울을 보니 눈가에 있던, 온 얼굴에서 가장 큰 검버섯이 진짜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과연 신통하구나— 한통 더 사야겠는 걸. 아니, 엄마에게도 한통 사드려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나는 금방 흠칫하고 말았다. 이건 생각이 빗나간 게 아닌가? 엄마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잖은가.   엄마는 꼬박 1년 반 정도 몹시 아프다가 다른 세상으로 갔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총망한 걸음이였다. 아프면서 엄마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가끔씩 아주 말짱하게 제법 엄마다운 말을 하군 했다.    “나도 이젠 오십견이 오나봐, 어깨가 결려—”    곁에 있는 동생과 한 말인데 령혼이 없는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있던 엄마가 갑자기 께끼였다.    “벽에 기여오르는 동작을 해야 한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봤다. 혹시라도 제정신이 돌아왔나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텅 빈 눈길이여서 실망감이 썰물처럼 밀려들었었다.    엄마는 제정신이 아니면서도 그렇게 본능적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옛날에 어느 한 시골에 엄마와 아들이 살았다. 아들은 장날이 되면 나무를 해서 시장에 가져가 팔군 했다. 그 날도 엄마는 저녁밥상을 준비해놓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아들이 들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해가 뉘엿뉘엿 지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걱정되여 도무지 그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장에 나가 누군가와 다툰 건 아닌지, 길에서 강도나 도둑을 만난 건 아닌지… 엄마는 끝내 동구 밖에 나가 큰 나무 우에 올라서서 아들이 언제 돌아오나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았다고 한다…   바로 그리하여, 나무 목(木)자 우에 올라서서(立)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보았다는 견(見)자가 합치여 한자 번체자의 친(親), 어버이라는 글자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무심결에 본 것이지만 어느 결에 머리속에 각인이 되여버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지 않는가?   머나먼 나라로 아들애를 떠나보내던 날, 나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들애에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가 쑥스러워 있는 힘껏 참고 있다가, 아들애가 공항 보안검색대 안으로 사라져서야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다 어른이 된 아들애이지만 이역만리에 보내고 나니 별의별 걱정을 다하게 되였다. 밥은 끼니마다 챙겨먹는지, 날씨가 차가와지는데 옷은 잘 껴입는지, 인종차별시를 당하지는 않는지, 코로나 감염 위험에 로출되지는 않는지… 지인들은 내게 이 어수선한 세월에 애를 볶아댈 필요 없이, 학업을 끝낼 때까지 귀국하지 말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나는 아마 마음속 동구 밖의 커다란 ‘나무’ 우에 천번 만번은 더 ‘올라서서’ 눈이 흐릿해질 때까지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어버이의 마음은 자신이 어버이가 되여서야 안다. 엄마도 이 딸을 밖에 내놓고 얼마나 애틋하게 그리웠을가.   동구 밖 나무 우에 올라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한없이 바라보았다는 엄마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들은 나무를 다 팔고, 그 돈으로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도 사고 하다보니 결국 늦어서야 돌아오게 되였는데, 동구 밖에까지 나와 기다리는 엄마를 보게 되였다. “다리도 아프고 불편할 텐데, 왜 집에 계시지 않고 나와 계시오.”하더니 훌쩍 둘쳐업고 집에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한자에서 효도 효(孝)는 늙을 로(老)자 밑에 아들 자(子)자가 있다. 년로한 어버이를 등에 업고 가는 그 모습이 그대로 굳어져 효(孝)자가 된 것이리라.   세월이 실버시대에 들어서며, 로년기에 대한 아름다운 격언들이 많이 생겨났다. 노을처럼 우아한 로년을 보내야 한다든지, 나이가 드는 것이란 늙음이 아니라 붉게 익어가는 것이라든지 등등… 로년 생활에 대한 지침도 많아서 운동은 여차여차하게 해야 하고 음식은 여차여차하게 먹어야 한다는 등등 리론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활기차고 우아하게 로년을 보내자고 해도 몸이 안 따라주면 도리가 없을 것이다. 스러져가는 련꽃을 바라보는 듯한 씁쓸한 기분은 자신이 체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리라.    그럼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엄마에게 진정 효를 행했던가? 1년에 한두번뿐인 명절에 내가 돌아오기를 고대하여, 엄마는 마음속 동구 밖 ‘나무’ 우에 수도 없이‘올라가 서서’ 내가 오기만을 ‘고대했을’ 건데, 그런 엄마를 두고 나는 노을이요, 익어감이요 하는 아름다운 언어로 얼렁뚱땅 넘어가지는 않았던지?   가족이란 늘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할 수 있을 때에야만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된다. 또한 그렇게 함께하는 것이 가족간의 진정한 행복이다. 세상이 지구촌이라고 하지만, 혹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지만, 어버이의 마음을 알고 나면 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도라지》2021년 5기  (계정)
7    바람이 잦지 않네요… 댓글:  조회:145  추천:0  2021-12-17
바람이 잦지 않네요…   ▣ 수필 / 채복숙   번화한 시가지 한 복판에 사람들의 눈에 잘 띄이지 않는 작은 골목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건물들 뒤로 뻗은 소로길이나 별로 다름없는 골목이였습니다. 음습하고 루추했습니다. 맹인안마방이며, 소액대출회사며 그러루한 간판들을 대충 내다 건 가운데로 아침녘에만 들어오는 해볕을 쬐러 우중충한 로인들이 맨 층계에 앉아 어쩌다 지나가는 길손을 구경하는 그런 거리였습니다. 골목 이름이 뭐였던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골목 이름 같은 건 알아보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골목을 나는 매일 아침 걸어다녔습니다. 출근하는데 있어서 정말로 필요한 지름길이였기 때문입니다.    음습하고 루추하고 소외된 골목이였지만 가을이면, 특히 가을 아침이면 진짜 아름다웠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한그루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키도 훤칠하지 않았고, 몸매도 풍성하지도 않은, 별로 희한하지 않은 나무였습니다. 하지만 봄이면 흰색의 자잘한 꽃들을 피우면서 얄포롬한 향기를 풍겼습니다. 여름이면 2분이면 건너갈 수 있는 골목에 자그마한 푸름의 우산을 선사했습니다. 겨울이면 골목의 찬바람이란 찬바람은 혼자 다 막으려는 듯한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유별나게 붉디붉은 단풍옷을 입군 했습니다. 더구나 찬란한 아침 해살이 나무 전체에 오렌지색 빛무리를 만들어줄 때면 너무 황홀해서 눈이 다 부실 지경이였습니다.   “넌 왜 이렇게 아름답니?”   어느 날 아침 나는 잠간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에게 물었습니다.   “너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나무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투명한 해살들에 정면으로 부딪친 단풍잎들은 메마른 맥락을 훤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습니다. 지난 밤 찬 서리를 견디느라 단풍잎들도 안깐힘을 썼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쩐지 살짝 안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마워.”   나는 총망히 발길을 옮기려 했습니다. 함께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지만 시간이 급하니까요, 그리고 이튿날에도 단풍나무는 거기에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단풍잎 하나가 작은 바람에 하늘하늘 떨어지더니 내 발치 와서 딱 멈추는 것이였습니다.   “넌 왜 내 발치에 떨어지는 거니?”   “신발이 얇구나. 발이 시리겠다.”   단풍잎이 말했습니다.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냥 여기에 서 있을 수는 없는 거죠. 서둘러 가야죠.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수월할 수는 없잖아요. 나도 출근을 해야 먹고 살 게 아니예요. 하여튼 이튿날에는 집에서 1분이라도 좀더 일찍 나와야지, 그러면 1분이라도 더 나무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 테니…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바닥에는 벌써 락엽들로 만들어진 레드 카펫이 쫘악 깔려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르락, 사르락”하는 가벼운 음조들을 토해냈습니다. 바람이 살짝 불었습니다. 그러자 레드카펫은 다시 형태를 바꾸어 한잎, 또 한잎의 붉은 꽃잎이 되여 내 발치를 뱅뱅 돌아쳤습니다. 내가 가는 걸음, 걸음마다에 조그마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내 발길을 감싸려는 듯싶었습니다. 시인은 서리 든 단풍잎이 2월에 피는 꽃보다 더 붉다고 읊조린 적 있지요. 그러니 나는 한잎 두잎 붉은 꽃잎보다 더 붉은 단풍잎을 밟으며 나가는 게 아니겠어요. “사르륵 사르륵”하고 밟으며…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도 나는 또 그 1분을 앞당겨 나오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흩날리는 진눈깨비에 우산을 찾을라, 지난번 사뒀던 예쁜 스카프를 꺼내 두를라, 그리고 또 두터운 신발을 찾아신을라 그만 또 그 1분을 다 써버렸습니다. 그래도 단풍나무를 잊지는 않았습니다. 이 진눈깨비에 단풍나무는 잘 보내고 있겠는지 하며 은근히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골목 어귀에서 나는 그만 당혹스러운 광경을 보게 되였습니다. 나이 든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비자루를 쳐들고 단풍잎들을 툭툭 털어내고 있었습니다.   “지금, 뭐하고 있어요? 이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당신 같은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언제 한번 나무를 손질이라도 했나유? 나는 그냥 락엽을 쓸 뿐이에유, 오늘은 바람이 세서 락엽이 많이 졌어유. 바람이 세서…”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비자루를 내리우며 말했습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말을 인증이라도 할 세라 쌩―하고 코끝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츨츨하게 젖은 락엽들이 우수수 하고 떨어져 내렸습니다… 한잎, 두잎, 세잎, 네잎… 얼마인지 미처 헤아릴 수조차 없게 떨어졌습니다.   나는 한결 앙상해진 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가여웠습니다.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괜찮아, 어서 가봐야지, 출근이 늦어지겠다.”   나무가 말했습니다.   나는 서둘러 발길을 옮겼습니다.    ‘나무는 항상 여기에 있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나는 혼자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겨우내내 그 골목을 지나다니지 않게 되였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차를 타고 다니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는 거기에 있을 거고, 봄이면 또 하아얀 자잘한 꽃을 피울 테지요, 그리고 얄포롬한 향기를 풍기며 내 코끝을 간지럽힐 테니까요…   하지만 이듬해 나무는 그 하아얗고 자잘한 꽃들을 피우지 못했습니다. 얄포롬한 향기를 뿜어내지 못했습니다. 나무는 끝내 찬바람과 추위와 외로움과 아픔을 이기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생로병사는 자연의 피할 수 없는 법칙이라 하지만, 나는 결국 그 나무에게, 그 아름다운 단풍에게 마지막 사진 한장 남겨주지 못했네요.    내 생명에서 이렇게 리별한 것은 나무뿐이 아니였습니다.   봄날에 나는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지난 겨울 고향에 찾아갔을 때에도 어머니는 파킨슨병으로 굳어진 얼굴에 안깐힘을 써가며 미소를 띄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너네 집에 나도 데리고 가니?” 친지들이 다 말렸습니다. 다들 출근하는데 누가 돌보냐,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데 어떻게 차에 타냐, 냄새가 나는데 젊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이제 봄이면 와서 데려가겠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봄이면, 날씨가 따뜻해지면 어머니를 데려와 얼마 동안 함께 있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면 아빠트 뒤에 새로 선 공원에 손잡고 산책을 가야지, 일요일이면 좋아하는 송화강 배놀이도 시켜야지, 활짝 핀 라이라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야지… 그렇게 많은 것들을 계획했습니다. 그것들은 작지만 행복한 일들이였습니다.   하지만 기차역으로 가는 나를 바래러 나온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 마지막이 되였습니다.   “춥겠다, 어서 차에 타라.”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아― 나무는 고요하게 있고 싶어하나 바람이 잦지 않네요, 바람이 잦지 않네요, 바람이 잦지 않네요, 바람이 잦지 않네요, 바람이… 《도라지》2021년 1기(계정)
6    [수필] 인생은 색갈의 강이야- 댓글:  조회:207  추천:0  2021-06-24
수필 인생은 색갈의 강이야- 채복숙   출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휴일의 성소(圣所)는 침대’라는 말이 있다.(출처를 알 수 없으니 일단은 본인의 명언으로 치자.) 더구나 해빛 따뜻하고 나른한 봄날 주말이면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산만함이 나처럼 게으르지만, 매일 아침 꼬박꼬박 제시간에 출근해야 할 출근족에게는 황금 같은 휴식일 것이다. 그런데 전번 휴일에는 아침부터 급히 나가 돌아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속으로 ‘알파카’라는 동물의 한어 속칭을 몇번이나 외우기는 했지만 별 수 없는 일이였다. 바로 며칠 전, 사월 중순임에도 눈을 퍼부은 이 곳 북방 도시는 아직도 우중충했고, 나는 선잠에서 깬 아이처럼 기분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온 오전 시간을 할애해 해야 할 일들을 다 하고 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거리에 나서니 아침에 올 때까지만 해도 그냥 텁텁한 다갈색으로만 인식되던 사위가 갑자기 연분홍 물결에 설레이고 있었다. “어? 언제 꽃이 폈지? 아침에는 못 봤는데?” 그렇다, 아침에는 꽃이 핀 걸 못 본 거다. 선잠에서 깨여 떼를 써야겠는데, 떼를 쓸 수 없는 어른은 눈앞의 풍경도 선택적으로 본 것이였다. 거리 전체가 연분홍의 물결이 되여 흐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바람에도 그 연분홍들은 솰솰 설레이였다. 긴 어둠의 겨울을 지나 드디여 봄이 온 것이였다. 봄은 연분홍이다. 젊은 시절 나는 연분홍을 되게 좋아했다. 옷장 전체가 연분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체격이 가녀린 나에게 연분홍 옷은 이래저래 잘 어울렸다. 친구들은 나와 같이 쇼핑을 나가면 분홍색만 봐도 “저기 네 스타일이 있다”고 소리칠 정도였다. 스스로도 연분홍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친구들이 “참 예쁘구나”고 할 때면 저절로 입이 함박만 해졌다. 나는 그렇게 나이가 꽤 들 때까지 그게 인사적인 칭찬일 수도 있다는 걸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 심성이 단순해 빠진 건 확실하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고, 나는 리유 없이 마냥 빨간색이 좋은 시간을 보낸 적 있다. 온 여름 빨간 반팔티에 빨간 핸드백을 메고 사처로 쏘다니군 했으며 이래저래 사람을 웃기는 사고도 적잖게 쳤다. 그때의 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참여했고, 또 그 모든 것들에 신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 우에 놓인 빨간 계혈석 팔찌가 싱겁게 바닥 우로 굴러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비싼 것은 아니였지만, 그것은 내가 유난히 아끼는 것이였고, 여름 내내 나와 같이한 것이였다. 미신이라 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주인을 대신해 액을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신대로라면 나는 그것을 종이봉투에 담아 어디엔가 고이 매장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되여 그냥 쓰레기통에 담아버렸다. 그 날 저녁, 나는 한창 빨갛게 피고 있는 월계화 가지를 쑥덕 잘라버렸다. “난 아직 자를 때가 안되였단 말이야!” 월계화는 이렇게 소리치며 내 손가락을 덥석 물었다. 뾰족하고 단단한 가시에 찔린 손에서는 찔끔―하고 새빨간 피방울이 배여 내왔다. 몇년 동안 잘도 꽃을 피우던 월계화는 이젠 내 기억에서 가물가물 사라져 간다. 가을이면 나는 락엽과 똑같은 색갈의 가벼운 재킷을 입기 좋아했다. 박봉을 받는 내가 백화점에서 일개 재킷 하나를 월급의 1/3을 주고 산다는 건 무리긴 무리였지만 나는 눈 한번 깜빡 안하고 그것을 사들이였다. 그것은 밝은 노란색 우에 흰색의 반투명 막을 친 것처럼 선명하면서도 뽐냄이 없고, 발랄하면서도 진중함이 있는 색상이였다. 재킷은 락엽처럼 가벼웠지만, 가을바람을 제법 잘 막아냈다. 그 시절 나는 자연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오후의 밝은 해살을 받으며, 락엽이 덮인 소로길을 걷노라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했다. 그것을 두고 나는 인생을 누리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때 나는 자연 속에서 많은 것들을 주어왔다. 다친 자국이나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락엽 한장은 좋아하는 시집 속에 끼워 넣었고, 탑처럼 정중한 모양을 가진 솔방울은 서가 우에 잘 세워 두었다. 그리고 맑은 하늘 아래의 산이며 들이며, 물이며 등 가을 풍경들은 사진으로 고화되여 내 기억 속과 클라우드 속에 동시 저장되였다. 북방의 겨울은 매섭기는 하지만 짜장 청정한 기운이 있다. 그 청정한 기운은 특히나 감청색의 하늘빛에서 선연하게 안겨온다. 감청색은 또 바다의 색갈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람보석의 색갈이기도 한다. 그것은 온갖 희열과 슬픔, 분노, 사랑과 미움이 인생이라는 용광로에서 단련되여 나온 것처럼 단단하고 순수하다. 그 단단하고 순수한 감청색을 옷으로 만들어 입으면 고상하고 신비스러운 멋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컨트롤하기 쉬운 색상은 아니다. 나는 겨울이면 감청색의 깃 높은 스웨터를 입는다. 그것을 입고 나면 쌀쌀맞고 랭정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묻어난다. 그 쌀쌀맞고, 랭정하면서도 순수한 시간들에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의 편린들을 손 가는 대로 잡히는 종이장에 아무렇게나 적어놓는다. 그 종이 조각 우의 글자들은 철학가의 고상한 언어들처럼 두서가 없지만 또한 내 삶의 단증이 되기도 하다. 그리고 봄이 왔다. 나는 연분홍과 감청색으로 짜깁기를 한 스카프를 둘렀다. 연분홍과 감청색은 천생연분인 것처럼 잘 어울린다. 발랄하면서도 랭정하고, 순수하면서도 고급스럽다. 나는 봄바람 속에서 스카프를 날리며 꽃이 핀 것을 본다. 연분홍꽃들은 여전히 아름답고, 봄날은 여전히 단순하다. 해빛이 내리쬔다. 투명한 해살은 온갖 색상들을 품고 있다. 애기풀의 화사한 연두색이며, 오래된 건물의 진중한 암회색이며, 지나가는 회사원의 깔끔한 하얀색이며… 세상은 색갈의 회합이고, 인생은 색갈의 강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으로 밝은 해살이 가득 들어와 침실은 명정한 분위기가 난다. 금전운이 좋으라 친 베이지색 카텐이 유난히 럭셔리한 감을 준다. 편안한 침대에 몸을 뉘였지만 생각은 제멋대로 쏴쏴― 흐른다. 올 봄에는 아까 보았던 아방가르드한 아가씨처럼 머리카락을 보라색으로 염색하면 어떨가? 그러면 계절의 륜회처럼 마음에도 또 새로운 색상들이 흘러들겠지…   《도라지》2021년 3기
5    [수필] 시와 먼 곳의 전야 댓글:  조회:157  추천:0  2021-06-24
수필 시와 먼 곳의 전야 채복숙   이쁘장한 젊은 녀자가 그림을 보고 있다. 세련된 초록의 원피스를 입고 검은 핸드백을 든 채 머리를 20~30도의 각으로 살짝 들어올려 오른쪽 우,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있다. 녀자는 대략 7:3 비례의 장방형 구도 안에 서 있다. 명도를 살짝 떨어뜨려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색감의 연두색 풀무늬 벽지 우에는, 역시 살짝 우울해 보이는 낮은 하늘과 머리를 풀어헤친 나무를 그린 풍경화가 있다. 녀자는 아마 갤러리 속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리라. 백열등에 직접 조명을 받은 듯 얼굴 피부는 눈처럼 희고 깨끗하다. 그러나 두 볼은 오히려 발가우리하다. 눈은 속쌍거풀이고 입술은 작고 도톰하다. 미인이다. 미인은 가슴이 깊게 파인 원피스 안에 하트형 깃의 다홍색 스웨터를 입었다. 하트형 깃의 끝에는 작은 금속고리가 걸려있고 그 고리에는 하얀 진주 패물이 걸려있다. 그뿐이 아니다. 하트형의 스웨트 깃은 량옆을 돌아가며 같은 색상의 남홍(南红) 마노 구슬로 치장했다. 백조의 목같이 희고 예쁜 목에는 가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는데, 그 목걸이는 또 무늬가 보이락말락하다. 이미지는 세밀함이 극치에 달한다. 사진일가? 사진이 아니라 ‘동경’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그림이지만 사진이 울고 갈 지경으로 리얼리티하다. 나는 한때 신문의 ‘예술살롱’란을 담당한 적 있다. 그때 예술평론이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스스로는 느낌이 그럴 듯한 감상문들을 꽤나 썼었다. 우의 그림도 그때 만난 것이다. 나는 그림을 보며 세밀화의 극치가 이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에 혀를 내둘렀다. 중국에서는 회화의 전통 쟝르로 공필화라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신과 기품, 경지를 중시하는 화파가 우선시되였고 사진과 똑같게, 혹은 사진보다 더 세밀한 그림은 근래에 많이 흥기하기 시작한 것 같다. 현재 중국 회화 시장에서는 세밀화가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가격이 천문수자인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서방 미술계는 여러 화파들이 돌고 돌아 슈퍼리얼리즘이라는 경향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예술은 또 다른 추구가 있는 것 같다. 사진이란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베낄 사에 참 진이다. 참을 베낀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피사체를 그대로 베낀다는 뜻으로 리해해야겠다. 초기의 사진은 결코 미술의 령역이 아니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디지털 기술로 다양한 사진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런 기술들이 사진의 개념을 완전 바꿔 버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지금 사진은 당당히 예술의 한 분야로 되여,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 않고, 낯설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 사진작가들은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또 다른 극치의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그러고 보면 미술작품은 사진화 되고, 사진작품은 미술화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은 타자를 배척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거의 비슷한 나날들의 중복이다. 단조롭고 따분하다. 서로 다른 시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에 가깝게 똑같은 일상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매일매일의 비슷한 일상에서 도망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홀로의 려행, 먼 곳에로의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홀로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안정된 환경과 따뜻한 가족이 그립다고 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령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는 것들이 많이 류행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생활은 눈앞의 구차한 일상만이 아니야, 시와 먼 곳의 전야도 있어’라는 꽤 근사한 노래도 있었다. 대략 7~8년 전, ‘시와 먼 곳의 전야’를 위해 교사직을 그만뒀다는 녀교사의 일화가 전 중국을 들썩이게 한 적도 있다. 이 일화의 주인공 녀교사가 썼다는 사직서는 단 한줄로 된 “세상은 저렇게 크고 나는 그것을 보러 가고 싶다”이다. 그런데 심심한 네티즌들이 그것을 대련(对联)으로 만들었으니, 그중 가장 이름난 것이 “돈지갑은 요렇게 작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이다. 거기에 횡서(横批)로 “출근이나 잘해라”고 달았다고 한다. 사람은 항상 리상적이 되여 보이는 다른 누군가가 부럽고, 예술은 늘 상반되는 령역에로 꾸준히 파고 들어가는 것 같다. 자아에 대한 불만이 새로운 자아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가. 요즘도 꽃은 피였건만 일상은 단조롭다. 그래서 나도 시와 먼 곳의 전야가 한결 더 그리운가 보다. 일상을 탈피할 수 없다면 그리운 시와 먼 곳의 전야를 내가 직접 만들어낼 수밖에 없겠지… 다시 한번 ‘동경’이라는 그림을 들여다본다. 그림 속의 그녀도 시와 먼 곳의 전야를 보고 있는 것이리라. 격조가 살짝 우울하지만 눈빛이 례사롭지 않아 동경이라는 것이 더 돋보인다. 《도라지》2021년 3기
4    [수필] 색즉시공(외2편)-채복숙 댓글:  조회:343  추천:0  2019-07-18
 채복숙   색즉시공 할빈의 봄은 해마다 꾸물거리며 늦게 찾아온다. 산동에 있는 친구는 벌써 위챗에 꽃잎이 떨어지는 사진을 올려놓으며 으시댄다. 그렇게 봄을 기다리기에 지쳐있을 때, 봄 같지도 않은 봄이 야윈 가슴을 드러낸 채 내 곁에 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야위여서 봄 같지 않은 봄, 짜증나는 봄, 뭐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 봄이다. 그 무렵, 동생에게서 련락이 왔다.  5.1련휴에 딸애를 데리고 할빈에 놀러오겠다는 것이다. 조카가 오면 봄나들이를 해야겠는데, 얘는 아직 어려서 명승이요, 고적이요 하는 것에는 통 흥취가 없고 다만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점찍어놓은 곳이 할빈의 문화공원이다. 아들애가 소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로 수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공원이다. 할빈에서는 놀이공원으로 유명하다. 거리는 아침부터 차와 행인들로 북적이는데 봄이랍시고 높고 푸른 하늘과 따뜻한 해볕마저 그 행렬에 가담해 세상은 온통 혈기왕성하고 시끌벅적하다. 봄바람에 풍선이 기우뚱거리며 춤을 춘다. “웬 사람이 이렇게 많냐?!” “와! 룰러코스터! 멋있다!” 공원은 온통 인파로 하얗게 덮여있었다. 놀이기구를 타려는 사람들은 구불구불한 긴 대기 행렬을 만들어놓았고, 아이들은 그 사이로 뛰여다니며 좋아했다. 그렇게 줄서기를 하여 차례가 다가왔지만 정작 룰러코스터가 멋있다고 한 조카는 점점 더 겁이 난다는 표정이다. 같이 탄다고 대답은 해놓았지만 거꾸로 놀이기구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볼 경황없이 비명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정확히 1분 43초 동안, 1초라도 더 거꾸로 매달려 있으면 질식할 것이라고 여겨지던 그 시각 놀이가 결속됐고, 나는 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면에 내려올 수 있었다. 지면에 내려서고 나니 ‘오, 이걸 두고 스릴이라 하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금방 스릴을 만끽했으니 다음번에는 좀 쉬운 걸로 놀기로 했다. 마천륜이였다. 바로 공원 문어귀에 있었지만 아까는 그냥 스쳐지나온 거였다. 룰러코스터가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거라면 마천륜은 늦은 속도를 추구한다. 속도가 느릴수록 차 안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팽팽해진 신경을 느슨하게 풀어줄 수가 있다. 게다가 온 시내의 전경을 천천히 다 구경할 수가 있어 좋다. 그러니 이것도 역시 다른 방식의 스릴이다. 정상에 올라갈수록 땅 우의 사람들은 개미처럼 작아지고 지나다니는 차량들도 아이들 장난감 같다. 더구나 바로 이웃에 있는 극락사의 내부가 분명하게 보인다. 평소 향객이 많기로 이름난 극락사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이 몇이 보이지 않았다. 인간이 바글거리는 공원과는 어쩐지 대비를 이루며 한산한 느낌을 준다. 극락사는 동북3성의 4대 명찰로 불리우는데, 사찰 내 7층 보탑이 명성 높다. 또한 이 7층 보탑과 키를 같이하는 황금색 대불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마천륜에 앉아서 사찰을 굽어보니 대불상의 부처님 꼬불꼬불한 머리가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사찰 내에서는 부처님이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발밑에 선 중생들을 굽어보는데, 여기서는 우리 같은 중생들이 부처님을 굽어보니 불경스럽기 그지없다. 극락사는 지난 세기 20년대에 지어진 사찰로, 어찌하여 문화공원과 이웃하게 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또한 건국 후에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문화공원이 어찌하여 극락사 옆에 자리를 잡게 되였는지도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한쪽에서는 중생들이 온갖 스릴을 다 추구하여 기이한 놀이기구를 만들어놓고 이리 흔들리고 저리 쏠리고 하는 감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푸르스름한 분향 연기가 피여오르는 가운데 참배자들이 숙연하고 진지하게 부처님에게 기원을 한다. 불교에 색즉시공이라는 말이 있다.  불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략적 뜻은,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서 잠정적으로 그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며, 독립적인 존재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존재의 실상은 공이라는 것이다. 몸의 감각적 즐거움을 찾는 곳과 정신적 의탁과 즐거움을 찾는 곳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도 역시 인연은 인연이리라. 수십년을 그렇게 이웃하여 왔으니 그 인연 결단코 보통의 인연이 아니리라. 다시 지면에 내려왔다. 인파가 그냥 말 그대로 파도가 되여 들씌워진다. 그래도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있는 것이 가장 마음이 든든한 것 같다. 문득 여기서는 마냥 짜증스럽고 봄 같지도 않은 봄이 사실은 자연의 것이 아닌 인간의 열기로 봄이 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그러할진대 짜증내서 더 뭘하랴? 놀이공원과 이웃하고 서 있는 부처님도 짜증을 내지 않고 있는데… ▣ 수필 / 채복숙   복장 아미산 금정. 올라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요즘 말로만 들어온 보현보살이 머리우 푸른 하늘에 비늘구름을 쫘악 펼쳐놓은 채 높이높이 앉으셔서 금빛찬란하게, 사면팔방, 아래우에서 동시에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쯤 내리깐 눈으로 중생들의 놀란 모습을 굽어보는 보살님의 입가에는 알릴락 말락 느긋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찬란함의 극치였고 화려함의 극치였다. 잠간 넋 나간 사람처럼 보살님을 쳐다보며 와아― 를 련발하던 중생들의 발길이 빨라졌다. 다투어 사진 찍기 좋은 자리를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광지들은 항상 사람이 개미처럼 바글바글해 사진 찍기 좋은 자리를 고르려면 눈치가 빠르고 행동이 민첩해야 하며, 얼굴에는 철판을 깔아야 한다. 그래도 여기 금정에서는 중생의 고민을 잘 아시는 보살님이 사면팔방, 아래 우로 모두 얼굴을 볼 수 있게 계셔서 그나마 사진찍기가 쉬웠다. 부지런히 샤타를 눌렀다. 코끼리 우련화대 높은 곳에 단정히 앉아계시는 보살님, 날아갈듯 처마가 번쩍 들린 금전, 금빛찬란한 대웅보전… 인터넷에 널리 류행되는‘바가지 잘 씌우는 중국 9대 관광 명승지’인 세번째 순위로 이름을 올린 불교 명승지 아미산, 이 가이드북에 따르면 아미산에서 분향하는 건 그냥 돈을 태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과연, 아미산에 오기 전부터 가이드 언니는 관광객들을 모아놓고 불교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강의에 이어서는 생년월일을 놓고 운수를 보는 일대일 상담이 이어졌다. 나는 살이 끼었다고 했다. 운수가 불길하다고 했다. 그러니 아미산 고승이 개안공양을 하는 불상을 모셔야 하고, 방생도 해야 하고, 분향도 해야 하고… 물론 이 모든 것은 자원적이라고 했다. 가이드 언니의 상냥한 미소와 친절한 상담에는 벌써부터 돈냄새가 팍팍 풍기고 있었다. 각설하고, 아미산에 와서부터 가이드 언니는 불상을 함부로 사진 찍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물론 이러한 상식 쯤은 나도 알고 있다. 과학적으로 풀이한다면 주로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이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불상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리유는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다. 가이드 언니의 해석에 따르면, 불상이나 보살상을 함부로 사진 찍는 것은 부처님이나 보살님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며, 또 다른 일설로 ‘부처님을 모셔오기는 쉬워도 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정의 보현보살은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는 것이였다. 복장(腹藏)을 하지 않았기에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것이였다. 여기서 새로 알게 된 것이 바로 복장이란 불교 용어다. 복장이란 불상의 내부에 사리나 보화, 경전 같은 것들을 봉안해넣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간이 오장륙부가 있고 령혼이 있는 것처럼 복장을 하면 부처님이고 보살님이지만, 복장을 하지 않으면 그냥 불상이고 보살상일 뿐이라고 했다. 가이드 언니의 말을 들으며 묘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령혼이 있어야 인간이고, 령혼이 없으면 그냥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찬란하고 화려하지만, 또 사진에 아름답게 나왔지만, 어쩐지 숭엄한 분위기가 결여된 듯한 느낌,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좋은 향수를 치더라도 인간의 마음과 령혼에서 풍겨나오는 내면의 향기를 따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여기 금정으로 올라오는 길에서 잘생긴 승려를 만났었다.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배우가 되지 않은 것이 아깝구나 할 정도의 미남이였다. 신도들인지, 현지인인지 잘 알 수 없지만, 곁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투어 길을 비키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 승려 또한 친절하게 웃으며 겸손히 답례를 했다. 그리고 역시 길을 비키는 것이였다. 그렇게 서로 겸양하며 바람결처럼 잠간 옷깃을 스쳐지나갔지만, 따뜻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고승의 고매한 풍채가 돋보이는 대목이였다. 그러고 보면 불교는 참으로 묘한 종교이다. 처처에서 인연이 따른다.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의 돈나무가 되여주기도 하고, 속인들이 돈을 내고 마음의 위안을 얻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또 심오하기 이를데 없는 철학이기도 하고, 깨달음의 높은 경지에 이르러 초탈을 얻게 하기도 한다. 찬란하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보현보살을 우러르며 내 마음의 복장에는 무엇을 넣어두어야 할가를 다시 생각했다. ▣ 수필 / 채복숙   세상의 밖 “쾅당― 나무아미타불― 쾅당― 나무아미타불―” … 끝내 세상에서 멀어진 것 같다. 혹은 세상 밖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 있는듯 없는듯 고요히 흐르는 단조로운 불교음악, 그리고 그 사이로 가끔씩 끼여들어서는 쾅당― 하고 존재감을 알리는 바람… 그래 멀어졌어. 당연히 멀어져야겠지. 하늘의 끝에도 다녀왔을라니… 이른봄, 오후의 해볕이 황갈색 나무가지 사이로 흔들리며 얼른얼른한 그림자를 만든다. 바람은 그 나른한 해볕과 나무가지 사이를 넘어서 덜 닫긴 문고리를 당긴다. 그리고 쾅당― 소리를 지르고는 언제 그랬냐 싶게 스르르 자취를 감춘다. 그러면 그 자리에 “나무아미타불―”의 단조로운 곡조가 스멀스멀 집안에, 아니, 내가 앉아있는 자죽원 안에 기여든다. 반복이라는 그 하나의 방법만으로 사람을 세뇌시키려고 단단히 준비한 음악이다. 이 자죽원은 공원이 아니라, 식당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찰 내의 채식 식당이다. 여기는 중국 산동 영성, 오늘은 불교 관광지 적산이다. 자신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마음이 힘들다는 리유로, 아니, 사람들에게는 내놓고 말할 수 있는 그럴듯한 리유를 만들어놓고 나는 여기 영성에 와 있다. 이른봄, 꽃이 피지 않은 영성은 어디나 한적하다. 그 한적함과 더불어 한가하고 한적해보이는 내가 홀로 사진기를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나는 워낙 외계인이라는 딱지가 붙었는지라, 어디서나 눈총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오전에 이 관광지로 올라올 때 앉았던 불법택시의 기사는 아예 “웬 녀자가 홀로 구경을 다니느냐?”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뭐 그래도 다른 나쁜 시도는 없어 그나마 여기 민풍이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관광지 안에서 홀로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나니 점심을 거르게 됐고 시간은 오후 2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별로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자죽원 정원 문앞이 하도 고요해서 그 안에 들어서면 인간계를 벗어날 것 같은 느낌에 무작정 문턱을 넘었다. 내가 마침 정원의 문턱을 넘어서는데 식당의 반쯤 열린 문을 밀고 웬 뚱뚱한 녀자가 나왔다. 나이는 오십대 쯤인데, 펑퍼짐한 체격에 벌겋고 큼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냥 구경 온 관광객으로 생각하는지 밥 먹겠는가 묻지도 않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먹을 게 있나요?” 녀자는 아예 나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비수기여서 관광지에 손님이 별로 없으니 식당이라고 잘될 리 없었다. 랭동 만두가 있다고 했다. 냉이소 만두로 메뉴를 정했다. 식당 안은 텅텅 비여있었다. 트럼프 타워도 울고 갈 휘황찬란한 황금색으로 도배되여있는 식당이였다. 불교사찰의 채식 식당이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무도 없다는 그 한가지가 퍼그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갈증이 몰려왔다. 더운물 한잔 청해서 마시며 앉아있으니, 저 바람이 알은 체하고, 저 불교음악이 끈질기게 나를 세뇌시키려 든다. 이미 찍은 사진들을 두루 들여다본다. 음악광장에 높이 앉으신 보살님은 보살님답지 않게 너무 아름답다. 보살님이 음악과 분수에 맞춰 빙빙 돌 때면 정병에서 감로가 흐른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나는 보살님에게 내 마음도 청정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보살님은 듣지 못하셨는지 그냥 한결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조금은 서운했다. 그렇게 해주마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셨으면 내 마음이 즐거웠을 건데. 더 높이 앉으신 명신은 역광이여서 얼굴이 시커멓다. 너무 높이 앉으셔서 그런지, 역광이여서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내 마음에는 와 닿지 않는 신이다. 장보고기념관 내부는 고적함을 넘어서 살짝 음산한 기운까지 돌았다. 다행히 기념관 밖은 해빛이 짱짱해서 좋았다. 어제 가본 하늘의 끝에는 고적함이 가득 흘렀다. 물가에 홀로 선 바위가 고적했고, 선연하고 아름다운 단청과 황금빛의 유리기와를 한 궁정 같은 건물도 고적했다.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소형 장성은 더욱 고적했다. 덕분에 사진 찍기에는 안성맞춤이였다. 나 같은 아마추어의 렌즈에도 길게 잘 잡혀줬다. 이윽고 음식이 들어왔다. 직경이 30cm는 잘될 듯한, 얼핏 보기에도 접시가 아닌 대야에 물만두가 그득 담겨있다. 15원 어치의 음식이다. “너무 많습니다. 이건 랑비입니다.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한그릇이 워낙 그렇습니다.” 나의 항의에 녀자는 이렇게 한마디만 했다. 그리고 스스로 상냥해보일 것이라 여겨지는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나가버렸다. 딱히 무슨 맛이라고 할 수 없는 만두이였지만, 그럭저럭 거의 절반을 먹어치웠다. 그것도 녀자에게 한결 친근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위속이 그득 차고 나니 온몸이 따뜻해졌다. 다시 인간계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바람소리도 음악소리도 그냥 바람소리요, 그냥 음악소리가 되여 별 볼일 없이 내 귀가를 맴돌았다. 아― 인간의 삶이란 아무래도 정해진 우리를 떠날 수 없구나. 세상 밖 어디에도, 심지어는 하늘의 끝도 결국은 인간의 우리이다. 그런데 나는 어찌하여 외계인의 마음을 지녔을가?  
3    [수필] 이방인 (채복숙) 댓글:  조회:404  추천:1  2017-08-28
수필 이방인 채복숙 ‘닭은 모래에 목욕을 하고 학은 바람에 목욕을 하지만 사람은 정에 목욕을 한다.’  우연히 읽은 어느 한 수필에서 나오는 첫 마디이다. 작자는 이 것이 《시경》에 나오는 시구라고 했다. 나 같이 지극히 평범한 독자로서는《시경》까지 일일이 알 수가 없지만 머리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지난 련휴에 친정에 가니 큰외삼촌이 연변에 왔다고 했다. 큰외삼촌은 10여 년을 아르헨티나에 가 있다가 올해 중국에 돌아온 후 역시 딸애가 자리를 잡은 광동성에 자리를 잡았고 이번에 친척들이 그리워 연변으로 왔다고 했다. 큰외삼촌의 소집에 따라 그날 우리는 도문의 어느 한 식당에 모였고 그간의 하고 싶던 얘기, 바깥 세상 돌아가는 얘기, 사람 사는 얘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얘는 사춘기여서인지 내 말이면 무조건 반대로 나가자고 합니다.”, “유미, 들었지? 이제 아빠에게 다 대줄 거다.” “아, 속이 타다.” 동생이 말 안듣는 딸을 두고 친척들 앞에서 궁시렁거린다. “뉴러우 후러(牛肉糊了)?”  그래도 한옆에 점잖게 앉아있던 나의 아들애가 자기 외사촌동생 얘기를 하는 눈치는 알고 한마디 끼여들었다. 소고기? 무슨 소고기? 소고기가 왜 타는데? 동생도, 조카도, 친척들도 그리고 나까지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소고기는 무슨 소고기? 소고기료리를 시키지 않았는데… 식당 주방의 탄 냄새가 여기까지 오는가? 그래도 아들의 말에는 내가 리해력이 빠르다. 하하, ‘속이 타다’를 ‘소고기가 타다”로 들은 거다. 한족학교에 다니는 아들애로 놓고 말하면 ‘속이 타다’를 ‘소고기가 타다’로 알아들은 것만 해도 우리 말 실력을 꽤나 잘 발휘한 셈이다. “네 발음이 그닥잖아서 우리 아들이 속이 타다를 소고기가 타다로 들은 거다.” 내가 동생을 놀렸다.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자, 한잔씩 마시자.” 오늘의 주인공인 큰외삼촌이 아르헨티나 관방용어라고 하는 스페인어로 뭐라고 웨쳤다. 그 말에 따라 다들 잔을 들었다. “둘째외삼촌은 미국에서 돈을 잘 번다고 합니까?” 내가 물었다. 둘째외삼촌은 내가 작년에 연변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안해를, 그러니까 나의 외숙모를 미국에 보낸 채 중국에서 두 아들을 거두며 보내고 있었다. 둘째외삼촌은 원래는 한 국유기업에서 꽤나 잘 나가고 있었는데 후에 기업이 망하면서부터는 별로 할 일이 없게 된 사람이다. 그래도 안해가 돈을 잘 벌어 경제적으로는 유족했지만 은근히 안해 덕에 먹고 산다는 딱지가 싫은 모양이였다. 게다가 두 아들의 공부성적이 그닥잖아 말썽이 많았다. 그러다가 끝내는 두 아들까지 데리고 미국에 가게 된 것이다. “목수일을 하는데 돈은 아마 괜찮게 버는 것 같다. 그런데 일하는 도구나 기계가 몽땅 영어여서 영어공부를 하는게 죽을 지경이라더라.” 이모가 대답했다. 둘째외삼촌이 영어공부를 하느라 애를 먹는 것과는 반대로 연변에 있을 때에는 공부를 못한다고 말이 많았던 둘째외삼촌네 두 아들이 미국에서는 아주 우수학생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둘째외삼촌네 두 아들은 워낙 미국체질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니 중국조선족체질인 둘째외삼촌의 영어공부가 은근히 걱정된다. 딸애와 나란히 앉은 이모는 유달리 얼굴이 검어 보인다. 젊은 시절 이모는 여기 시골에서는 참으로 미인이였다. 피부가 얼마나 희였는지 보는 사람마다 부러워했다. 그동안 이모는 한국에 가 식당에서 일했는데 일솜씨 하나만은 대단하여 가끔은 손님들이 주방에까지 찾아와 료리한 사람을 칭찬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 것도 이모의 자랑이라면 자랑이고 자부심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모는 손님들의 물음에 웬간해서는 대답을 안하고 미소만 짓는다고 했다. 한족학교를 다닌 이모는 한어 악센트가 섞인 연변 말을 한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말을 적게 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곱던 얼굴이 시커멓게 된 걸 보며 이모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모와 외삼촌들 중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은 막내외삼촌이였다. 막내외삼촌은 나보다 나이가 한살 어리다. 학교시절에는 아래 학년을 다니는 그가 항상 나를 “조카야” 하고 부르며 다녔다. 어린시절에는 친형제 같이 보내던 막내외삼촌을 본지도 이제는 까마득하게 오래 전의 일 같다. 막내외삼촌은 한족 녀자와 결혼하고 온 가족을 데리고 일본에 가서 살고 있다. 식당을 경영하는데 은근히 잘된다고 했다. 우리가 떠들썩하게 얘기를 했지만 마가을 말라버린 호박잎처럼 쪼글쪼글해진 외할머니는 별로 즐거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제 보름쯤 지나면 외할머니의 생신이여서 친척들이 다 모여 생신을 쇠련다고 이모가 말했다. 그 생신을 쇠고 이모는 다시 한국으로 가게 된다. 이때 동생의 전화가 울렸다. 한국에 있는 동생의 남편이 오늘 모임이 있는 줄을 아는지라 전화를 걸어 문안인사를 하는 것이다… 지구는 이제 우리에게 그야말로 작은 마을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우리의 마음은 왜 이렇게 힘든 걸가? 친지들끼리 정을 나눌 기회가 너무 적어서일가, 새로 자리잡은 터전에서 생활이 록록치 않아서일가… 련휴도 끝나고 나도 내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왔다.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으며 역시 중국어실력이 뛰여난 아들애더러 앞자리에 앉게 한다. 만약에 내가 기사 옆에 앉아 단 몇마디라도 대화를 나누게 되면 상대가 “너는 남방사람인가?”고 묻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구구히 내가 왜 이방인이 아닌지를 설명하는 게 싫었으며 내가 이 곳에서 이미 20여년을 살아왔음에도 역시 이방인인게 싫었기 때문이다.   연변일보  2017년 8월 24일 
2    [미니수필] 가로등 목에 비스듬히 걸린 저 달 댓글:  조회:486  추천:0  2015-08-14
간만에 현성에 출장나왔다. 조선족이 모여사는 동네답게 거리가 깨끗했고 넓적글자들속에 다문다문 조선어간판이 보여 기분 좋았다. 공식적인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쉼 쉬고나서 우리는 공석에서는 하기 어려운 얘기도 나눌겸 술 한잔 더 걸치고싶은 마음에 꼬치구이집 나들이를 했다. 웬걸, 꼬치구이가 이렇게도 크단 말인가? 큰 꼬치구이를 본적 없는건 아니지만 이건 완전 대짜가 아닌가… 술에 취하고 꼬치에 취하고 사람에 취해 거리에 나서니 둥근달이 가로등목에 비스듬히 걸려있다. 중국말에 “십오야 밝은 달이 십륙일에 둥글어”라고 한다. 금방 보름이 지난 시점이여서인가, 달이 크기도 하지만 또 밝기도 하다. “어, 여기는 벌써 가로등이 다 꺼졌네.” 누군가 한마디 한다. 그 말에 다시 쳐다보니 진짜, 가로등들이 한결같이 눈을 감고있다. 이 현성 유일의 번화가라는데, 대낮에는 그래도 오르내리는 차들이 꽤나 보이던데, 저녁 10시인 이 시각에 활보하는 사람이란 반바지차림의 우리뿐이다. 그리고 어느새 가로등이 꺼진것이다. 현지인이 한마디 보탠다. “여기서는 10시면 가로등을 끈다네…” 가로등은 꺼졌지만 달이 밝아서 좋다. 달이 밝아서 좋기도 하지만 꼬치구이도 별미였다. 게다가 인품도 넉넉하지, 넓적 글자들속에 우리 글자들도 보여서 좋다.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에는 이곳 같은 현성이 안성맞춤인것 같다. 다시 달을 쳐다본다. 가로등에 낮게 걸린 달이 씨익 웃어준다. 연변일보 2014-8-14  
1    고슴도치(채복숙) 댓글:  조회:1701  추천:0  2011-07-26
고슴도치  채복숙     겨울의 리허설이 끝났다.하늘이 당금이라도 얼어터질듯이 새파란 얼굴을 하고있다. 바람이 빌딩 사이사이를 전전하며 흑흑 느낀다. 그러다가 오랜 리별끝에 친지라도 만난듯 저 못생기고 벌거벗은 나무들을 끌어안고 몸부림을 친다. 아니, 그냥 바람의 차거운 정열에 나무가 몸부림을 하는거다.  바람은 왜 나무를 몸부림치게 하는걸가, 아니면 바람의 몸부림에 나무가 몸짓해주는걸가? 추워보이는 저 지붕들이 서로 끌어안으면 어떻게 될가? 따뜻해질가? 아니, 집이 무너지는것이 정상이지. 손끝이 시려온다.나는 따끈한 커피 한잔을 탔다. 그리고 컴을 켰다. 메신저가 부팅한다. 누가 온라인이나? 리스트를 쭉 훑었다. 토요일임에도 나처럼 컴에 붙어있는 사람이 꽤나 있었다. 날씨가 추워 모두들 집에만 붙어있나? 아님 모두들 컴에 붙어서 온기를 취하고있는걸가? 올리훑고 내리훑어도 심심풀이로 집적거려볼 사람이 별로 없다. 모두 친하지만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들이기때문이다. 전번에 가입하고 여직 들여다보지 못한 카페에 들어갔다. 썰렁하게나마 가입인사 한마디 하고 이리저리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한산한 카페다. 철학도 있고 문학도 있고 뭐 또 심리학도 있다. 아마 그래서 한산한것 같다. 격이 너무 높으니까. 뒤적거리다가 우화 한편을 보았다. “고슴도치” 라는 우화였다.추위에 떨던 고슴도치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기 위해 바싹 다가붙었다가 서로의 가시에 찔렸다는것, 그러다가 나중에 적정거리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볼수 있는 그러루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올린 이는 우화에 관한 생각까지도 적었다. 서로 찔리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유지할수 있는 적정간격이 정중함과 례의라고 했다. 그리고 내적 따뜻함을 지니고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고통과 괴로움을 받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져있기를 좋아한다는것이다. 과연 인간은 고슴도치인가부다.인간은 서로서로를 필요로 한다. 따뜻한 정을 바라는 욕망, 그것은 현대의 인간에게 지금까지 퇴화되지 않고 마지막 남은 원초적 생리인것 같다. 그러니 적정거리에 있는 인간들은 영원히 결핍감을 느낄것이다. 도시인들의 수양과 례의, 그리고 그에 걸맞는 직업적인 혹은 도덕적인 미소가 적정거리를 유지한 고슴도치들이 취할수 있는 그런 따뜻함이라면 과거 시골사람들의 싸울 때는 과격한 몸싸움까지 하다가도 정 줄 때면 활활 타오르는 화로불 같던 “지나친 친절함” 이 서로 찔리고 아파하는 그것이리라. “달깍”  하고 카페에서 나와버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추운 겨울이면 차겁게 언 내 손을 홀홀 불어주며 동에 닿지도 않는 내 말을 듣고도 히히호호 하고 같이 웃어줄수 있는 사람이 곁에 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할일 없이 얼어붙은 저 송화강우를 함께 걸으며 희희락락 할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너 이거 틀렸어” 하고 스스럼없이 말해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곁에는 적정거리에 서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버렸다. 죄다 정중함과 례의를 지키는 고슴도치들뿐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언제나 춥다. 겨울뿐아니라 여름에도 춥다. 옷을 얼마나 많이 껴입었는지 비대한 펭긴같이 보이는데도 춥다. 흐흐, 그럼 나는 내면이 많이 따뜻한 사람이였던가? 아마도 내가 깍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네들에게서 한발자국씩 멀어졌던것이리라. 그래서 항상 추운것이리라. 마음의 에너지가 사그라졌기에. 내 가시로 찔러도 피해 가지 않을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사무치게. 추워보이는 창밖에서 나무는 아직도 몸부림을 하고있다. 조금은 처절해보이기도 하지만 어쩜 나무는 그것을 즐기고있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없다면 나무는, 저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는 그냥 꼿꼿이 서있을수밖에 없을것 같다. 찌르기도 하고 찔리우기도 하면서 사는 그런 화끈함이 부럽다. 마음의 충전을 시작해야겠다. 한발작 다가서야겠다. 찔리우더라도 다가서야겠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