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복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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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시와 먼 곳의 전야
2021년 06월 24일 07시 44분  조회:15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수필

시와 먼 곳의 전야


채복숙
 


이쁘장한 젊은 녀자가 그림을 보고 있다. 세련된 초록의 원피스를 입고 검은 핸드백을 든 채 머리를 20~30도의 각으로 살짝 들어올려 오른쪽 우,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있다.

녀자는 대략 7:3 비례의 장방형 구도 안에 서 있다. 명도를 살짝 떨어뜨려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색감의 연두색 풀무늬 벽지 우에는, 역시 살짝 우울해 보이는 낮은 하늘과 머리를 풀어헤친 나무를 그린 풍경화가 있다. 녀자는 아마 갤러리 속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리라. 백열등에 직접 조명을 받은 듯 얼굴 피부는 눈처럼 희고 깨끗하다. 그러나 두 볼은 오히려 발가우리하다. 눈은 속쌍거풀이고 입술은 작고 도톰하다. 미인이다.

미인은 가슴이 깊게 파인 원피스 안에 하트형 깃의 다홍색 스웨터를 입었다. 하트형 깃의 끝에는 작은 금속고리가 걸려있고 그 고리에는 하얀 진주 패물이 걸려있다. 그뿐이 아니다. 하트형의 스웨트 깃은 량옆을 돌아가며 같은 색상의 남홍(南红) 마노 구슬로 치장했다. 백조의 목같이 희고 예쁜 목에는 가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는데, 그 목걸이는 또 무늬가 보이락말락하다. 이미지는 세밀함이 극치에 달한다.

사진일가?

사진이 아니라 ‘동경’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그림이지만 사진이 울고 갈 지경으로 리얼리티하다.

나는 한때 신문의 ‘예술살롱’란을 담당한 적 있다. 그때 예술평론이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스스로는 느낌이 그럴 듯한 감상문들을 꽤나 썼었다. 우의 그림도 그때 만난 것이다. 나는 그림을 보며 세밀화의 극치가 이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에 혀를 내둘렀다.

중국에서는 회화의 전통 쟝르로 공필화라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신과 기품, 경지를 중시하는 화파가 우선시되였고 사진과 똑같게, 혹은 사진보다 더 세밀한 그림은 근래에 많이 흥기하기 시작한 것 같다. 현재 중국 회화 시장에서는 세밀화가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가격이 천문수자인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서방 미술계는 여러 화파들이 돌고 돌아 슈퍼리얼리즘이라는 경향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예술은 또 다른 추구가 있는 것 같다.

사진이란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베낄 사에 참 진이다. 참을 베낀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피사체를 그대로 베낀다는 뜻으로 리해해야겠다. 초기의 사진은 결코 미술의 령역이 아니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디지털 기술로 다양한 사진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런 기술들이 사진의 개념을 완전 바꿔 버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지금 사진은 당당히 예술의 한 분야로 되여,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 않고, 낯설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 사진작가들은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또 다른 극치의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그러고 보면 미술작품은 사진화 되고, 사진작품은 미술화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은 타자를 배척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거의 비슷한 나날들의 중복이다. 단조롭고 따분하다. 서로 다른 시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에 가깝게 똑같은 일상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매일매일의 비슷한 일상에서 도망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홀로의 려행, 먼 곳에로의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홀로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안정된 환경과 따뜻한 가족이 그립다고 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령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는 것들이 많이 류행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생활은 눈앞의 구차한 일상만이 아니야, 시와 먼 곳의 전야도 있어’라는 꽤 근사한 노래도 있었다.

대략 7~8년 전, ‘시와 먼 곳의 전야’를 위해 교사직을 그만뒀다는 녀교사의 일화가 전 중국을 들썩이게 한 적도 있다.

이 일화의 주인공 녀교사가 썼다는 사직서는 단 한줄로 된 “세상은 저렇게 크고 나는 그것을 보러 가고 싶다”이다. 그런데 심심한 네티즌들이 그것을 대련(对联)으로 만들었으니, 그중 가장 이름난 것이 “돈지갑은 요렇게 작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이다. 거기에 횡서(横批)로 “출근이나 잘해라”고 달았다고 한다.

사람은 항상 리상적이 되여 보이는 다른 누군가가 부럽고, 예술은 늘 상반되는 령역에로 꾸준히 파고 들어가는 것 같다. 자아에 대한 불만이 새로운 자아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가.

요즘도 꽃은 피였건만 일상은 단조롭다.

그래서 나도 시와 먼 곳의 전야가 한결 더 그리운가 보다.

일상을 탈피할 수 없다면 그리운 시와 먼 곳의 전야를 내가 직접 만들어낼 수밖에 없겠지…

다시 한번 ‘동경’이라는 그림을 들여다본다.

그림 속의 그녀도 시와 먼 곳의 전야를 보고 있는 것이리라.

격조가 살짝 우울하지만 눈빛이 례사롭지 않아 동경이라는 것이 더 돋보인다.

《도라지》2021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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