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은 한국의 그 시기에 가장 우수한 단편소설작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의 풍격과 기교는 모두 모파쌍과 체호브의 풍격과 비슷하였다. 현진건은 식민지체제를 체험한 작가이다. 그 식민지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많지 않은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바이며, 한국인의 단편소설하면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한국의 대표적 작가 이기도 하다. 빙허(憑虛)현진건은 근대 단편 소설과 본격적인 리얼리즘의 문을 열었다.
또한 한국문학사에서 근대문학 초창기에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바탕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빙허 현진건은 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조선의 얼굴을 직시하여 민족의 모습을 똑바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였 으며 빙허 특유의 허무의식으로 빙허만의 단편소설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마무리를 항상 어떤 혁명이나 계몽이 아닌 죽음이나 떠남 등으로 맺으며 현진건식 단편소설을 형성했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관통된 사실주의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본 논문의 취지이다.
키워드: 개척, 사실주의 문학, 근대문학, 양식
차 례
1.서론
1.1 연구 목적과 의의
1.2 선행 연구사 연구사 검토
1.3 연구 범위와 방법
2. 본론
2.1 문제의 제기
2.2 작가의 생애
2.3 문학창작활동
3. 현진건의 작품 세계
3.1 현진건 창작 사상
3.2 현진건 소설의 특성
3.3 현진건 문학의 의의
3.4현진건 소설의 한계
4. 결론
감사말
<참고문헌>
1. 서 론
1.1연구 목적과 의의
빙허(憑虛) 현진건은 근대 단편 소설과 본격적인 리얼리즘의 문을 열었다. 빙허의 수많은 작품은 1920~30년대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감으로 다가왔고,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한국 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문학적 가치 그 이상의 중요성을 가진다.
이광수「무정」의 추상적, 낭만적 비현실성을 거부하면서 현실에 기반 한 문학을 창작하려는 작가들의 반성과 함께 20년 대에 오면 사실주의 문학에 눈 뜨게 되는데 특히 현진건은 20년대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연구는 현실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1.2 기존 연구사 검토
사실주의 작가, 단편문학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온 현진건 문학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들은 해방이전 의 기법을 중심으로한 인상비평의 단계, 문학사적 의미 속에서 종합적 작가연구가 시도되던 60년대, 다양한 방법으로 현진건 문학세계를 파악한 70년대 이후의 경향의 세 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3 연구 범위와 방법
단편소설에서의 성과와 함께 사실주의 작가로 평가하는 선행 연구 방향 을 넓게 수용하여 현진건 그의 사실주의 창작의 문학사적인 공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진건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해서는 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질과 가치를 밝히고 나아가서 현진건의 문학적 특질과 가치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려한다.
2. 본 론
2.1 문제제기
현진건 소설은 그 변모 과정을 살펴볼 때, 크게 3단계로 구분되는데, 첫째, 지식인이 보여주는 무력감과 우월의식,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사회 에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빚어지는 지식인의 사회에 대한 부적응과 갈등, 좌절,양상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둘째, 식민지 정책이 본격화되는 상화에서 궁핍하고 소외된 하층민들이 현실에 절망 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과 성격 특징에 대해 조명한다. 셋째, 위선적 이고 이중적인 인간상이다. 여기서는 불건전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 현실에서 속물근성을 지닌 인물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조명된다.
2.2 작가의 생애
현진건은 1900년 대구의 한국의 전통적인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격동 기에 개화 지향적인 주변의 영향을 받고 성장했다. 정치, 사회적으로 어렵고 혼란된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가까운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대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립했다. 열한 살 때 생모를 여의고, 열여섯에 부호 집안의 딸과 결혼하고,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도쿄 세이조중학 4학년을 중퇴하고 중국 후장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 하다가 1919년에 귀국하였다.
그는 생활에 절도를 유지했고, 문단의 세기말적 분위기에 초연했다. 조혼 한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여성관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 출옥 후 살림이 기울었고 부암동에서 양계를 하기도 했으나 1943년 향년 44세 때 폭음에 의한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2.3. 문학창작 활동
현진건이 작품 활동을 한 시기는 1920~ 1940년대라고 말할 수 있다. 1920년 11월에 발표된 처녀단편 「희생화」로부터 1941년의 장편소설 「선화공주」까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 작가 생활 20여 년 간에 걸쳐 보여준 그의 작품량은 단편소설 25편, 장편 소설 6편인 것으로 집약된다.
현진건은 한국 근대문학의 초창기에 해당되는 1920년대 초반, 『백조 (白潮)』파의 일원으로 소설 <희생화 (犧牲花)>를 발표해 문단에 데뷔한 후 근 20여 년의 작가 생활에서 혁혁한 문학적 성과를 남겼다. 그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는 한결같이 리얼 리즘 문학의 선구자, 또는 그 공로자로서 뚜렷한 작가임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현진건의 문학 활동은 대체로 3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등 일련의 자전적 양식의 소설을 발표했던 초기이다. 이때 작품에는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사회의 과도기적 상황 을 문제 삼아 탐색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진입한 조선사회에서 지식 인의 자의식과 갈등·좌절을 통해, 근대 사회의 중요한 요건인 사랑과 가족, 직업과 돈 문제를 추구했다. 이 시기 작품에서는 자아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적 자아가 덜 확립된 지식인의 모습을 통해 변동기 지식 인과 그 사회를 탐구하고 있다.
44세란 극히 짧았던 생애를 통하여 그가 내놓은 문학은 민족적 비애로 충만된 민족의 수난과 역사를 성실히 증언하는 사실작가로 일관했음을 잘 알려주고 있다. 처녀작 「희생화」는 황석우에게서 혹평을 받았으나, 1921년 빈곤 속에서 나타나는 아내의 따뜻한 애정을 그린 「빈처」와 암담한 현실을 탈출하는 길이 술밖에 없음을 보여 준 「술 권하는 사회」 를 발표함으로써 당당한 소설가로서 인정받았다.
그는 한 시대의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는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문화적으로 서구 취향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의 전통적인 선비의식을 지탱하면서,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모순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대처하여, 생활과 문학을 하나로 일치시켜 살았던 작가이다.
그의 문학사적 위치와 선구적인 공적은 그가3.1 운동 이후에 전개된 한국의 근대문학운동에 헌신한 중요한 작가의 한 사람이라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에는 그가 근대문학을 전개시킨 선구자의 한 사람이라는 것,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최초의 중요한 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문학에 있어서 기교의 가치를 보여준 최초의 작가라는 것 등 그의 선구적인 공적이 그대로 그의 문학사적인 위치이기도 하다.
3. 현진건의 작품 세계
3.1 현진건의 작가의식
문학은 그 시대의 모순을 작가 자신의 문제로 파악하고 그 모순의 본질을 올바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문학인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임을 강조한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통하여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소설에서 이러한 작가의식은 주로 작중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 즉 작가는 작중 인물이 ‘그 시대의 사회 현상을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시대적 인식을 표출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백조>는 당시 3대 동인지 <창조>나 <폐허>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경향이 짙었지만 현진건 같은 백조파이면서도 그들과는 달리 어두운 조국의 현실에 대하여 짙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선언하고 있다.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치 못하는 것이다. 달나라의 소요도 그만둘 일이다. 구름바다의 유희도 그칠 일이다. 조선 문학인 다음에야 조선의 땅을 든든히 디디고 서야 할 줄 안다.”
이것을 보면 그의 작가적 의식은 다음과 같이 개괄된다. 그는 사회적 역사적 현실을 증언하는 리얼리즘의 길을 선택했으며 둘째로 그는 민족 주의적 자각이 투철했고 민족의 당면 현실을 외면한 어떠한 문학도 거부하 고 있었다. 그의 이런 면을 그의 대표작 <운수 좋은 날>(1924) 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때 김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주인공인 인력거꾼 김첨지는 돈벌이를 위해서는 빈사직전의 아내의 애원도 이렇게 뿌리치고 만다. 가난이 이 같은 비정과 냉혹함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그 같은 외면적인 표현과는 달리 내면적으 로는 아내에 대한 동정이 깔려있다.
그리고 허기진 배로 온 종일 빗속을 철퍼덕거리면서도 아내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인력거를 끌고 달리다가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날 마침내 아내를 위해서 설렁탕 한 그릇을 사가지고 들어가지만 아내는 이미 죽어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건을 통해서 작자가 보여준 것은 일제하의 가난한 한민족의 고통이며 특히 하층계급의 인간들에게 행운의 기적도 있을 수 없다는 냉혹 한 현실을 입증하려 한 것이다. 왜냐하면 김첨지는 그날 운수가 좋아서 오랜만에 돈 몇 푼을 벌게 되었지만 그날 이미 아내는 세상을 떠나버리고 다시 비극에 말려드는 것이 작품의 종결이기 때문이다.
한편 <술 권하는 사회>(1921)는 지식인의 고통을 표현한 것으로서 대조 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주인공은 매일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온다. 아내 는 남편이 일본 유학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매일 보는 것은 혼자서 고민하고 술 마시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술 마신 동기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낯면이 없이 말하는 ‘사회’의 낱말 뜻조차 모르고 있다. 그래서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한다.
“그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①
이래서 작가가 표현하는 대화 속엔 꽤 심각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아내는 이 집안의 아내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사회의 어리석은 모든 민중을 상징하는 교육받지 못했고 가난하게만 살아온 민중이다. 그리고 이 같은 민중을 이끌어 나갈 책임자는 바로 여기서 남편으로 등장하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민중은 몽매하고 지식인은 무능할 뿐이다. 또 지식인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서로 단결하지 못하고 작당과 파벌의 분열만 일삼고 있다.
작자는 이처럼 민중과 지식인들 양쪽을 다 같이 비판적인 안목으로 바라 보면서 우리들의 암담한 현실을 고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정을 지적하면서 도시와 농촌의 그 같은 ‘구체적인 참상을 목격할 때에 우리의 감회가 어찌 천연할 수 있으랴,“하고 호소하고 있다. <술 권하는 사회>는 이 같은 기록과 대조해 볼 때 당시의 암담한 현실을 누구 보다 정직하게 작품으로 증언하고 고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립 정신병원장>에서 더욱 끔찍한 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926년 작인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군은 낙천가요 어떤 고통도 웃고 넘기며 참아낼 수 있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므로 딴 작품들의 경우처럼 타고난 비극적 성격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웃음으로 끝낼 수 있는 인간형 임에도 불구하고 비극으로 끝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비극의 깊이가 따르게 된다. 그는 뼈를 저미는 추위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배가 고파도 웃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성격도 결국은 무의미하게 된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요정에서 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음식을 주워 담다가 기생과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굶주리는 처자식 때문에 굴욕을 참고 찌꺼기를 주워 담던 그는 조롱을 받다가 격분해 버리고 정신이상 자가 된다. 그래서 자식들을 기둥에 묶어놓고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그 동안 정신이상자를 감시하고 간호하던 자신이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는 당시의 한국 민중이 얼마나 처참한 굶주림에 빠져 있었으며 가족을 거느린 부모들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또 이와 달리 그의 대표작으로서는 농촌 현실을 말해주는 <불>(1925) 이 있다. 작자는 무지몽매한 민며느리제도가 저지른 한국농촌 사회의 비극 성을 폭로하고 있지만 그 같은 비극성의 근본적인 원인도 가난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된다다. 딸자식 하나를 먹여기를 수 없을 만큼 가난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남의 집에 민며 느리로 보내는 것이요, 자식이 노총각이 되도록 장가들일 밑천이 없기 때문에 그런 어린애를 민며느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린 주인공 순이는 노예처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그것보다 더욱 가혹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 미성년자로서 이 집 노총각 으로부터 당하는 그 짓은 견딜 수 없는 질곡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마침내 그 짓을 매일 당하던 방에 방화하게 된다.
<사립 정신병원장>에서도 그랬듯이 작품의 종말은 방화로 맺어지며 그것이 비극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 같은 민중의 고통을 좀 더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과 직접 적으로 관련시켜서 작자가 마무리한 작품이 있다고 한다면 <고향>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 작품은 단편으로서의 기교면에서는 큰 뜻이 없다. 왜냐하면 단편의 구성의 묘미나 표현의 기교를 살려나간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열차 속에서 만난 한 사내의 이야기를 그대로 서술한 형식이다. 그렇지만 작자는 당시의 가난했던 백성이 일제의 식민지 체제하에서 그들의 수탈 행위로 말미암아 농토를 잃고 얼마나 처참한 역경을 헤쳐 나갔는지를 생생 하게 기록문학 형식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열차 속에서 만난 인물은 17세 때 이역만리 간도로 떠났던 인물이다. 조선 백성이 조선 땅을 버리고 남의 땅을 찾아간 건 일제에게 조선 땅을 빼앗겼기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거기서 끝없는 육신의 혹사와 굶주림이 이어진다. 그래서 부친은 병을 얻어 작고한다. 홀어머니는 그 후 역시 병들어 ‘흰죽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아사한다. 다음에 주인공은 부모의 유골을 버리고 현해탄을 건넌다. 역시 남의 땅이다. 규수 탄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후 다시 그곳을 떠나서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향은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황폐해 있다. 우연히 꼭 하나 아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녀는 유곽으로 팔려가서 시달리다 성병을 얻고 늙어버린 폐물로서 지금 은 일본인 집의 하녀로 있는데 바로 그녀가 옛날엔 그의 아내가 되려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26년 3월에 발행된 그의 단편집 <조선의 얼굴> 맨 뒤에 수록되어 있다. 단편집의 이름을 <조선의 얼굴>이라고 했고, 이런 표현이 단편집에서 사용된 것은 오직 <고향>에서 단 한번뿐이었으며 이 작품이 이 단편집의 맨 끝에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작자는 자기문학의 결론적인 의미를 이 작품에 담았다고 짐작된다.
3.2 현진건의 문학적 특성
현진건은 식민지체제를 체험한 작가이다. 그 식민지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많지 않은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바이며, 한국 인의 단편소설하면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현진건은 그 문학적 기법도 사실주의적이었으며 그의 작품 내용도 대부분 빈곤, 사회적 모순, 지식인의 고뇌 등을 다루고 있어 사회의식이 강한 작가이었음이 분명하다.
현진건 소설은 김동인 이후 주도적인 양식으로 등장한 단편소설의 기법 적인 완결을 추구하여 소설적 미학의 확립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초기 소설에서 ‘나’라는 일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소설 속에서 성격의 초점과 서술의 초점을 일치시키면서 인물의 내면 분석의 가능하게 하였는바 문학에 있어 기교의 가치를 보여준 최초의 작가이다.
이재선은 현진건의 문학사적 위치와 그의 문학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적 단편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의 한 사람 인 현진건의 작품의 특성은 단적으로 아이러니의 틀 속에 20년대의 한국사회의 파라다임을 창조하고 있는 점이다. 그는 김동인의 단음적인 직선 구조나, 진공적 언어와는 달리 아이러니와 현실의 언어군으로써 이 땅의 근대적 사실주의 문학의 머릿돌을 놓은 작가다.
현진건의 또 다른 가장 큰 특징인 눈물로 얼룩 진 1920년대 현실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리얼리티가 충만하게 그려냈다는 것인데 그 대표작으로「운수 좋은 날」과「고향」을 들 수 있고, 극단적으로 식민지 조선인들의 궁극적 고통을 참지 못해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많은 비윤 리적인 행동, 곧 비극을 비극이 아닌 것처럼 일상을 그려내듯 써낸 「서투 른 도적」,「정조와 약가」,「신문지와 철창」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같 은 소설에서 항상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서사의 핵심이 있다.
조선의 얼굴을 드러내는 소설,「고향」은 정말 뛰어난 소설적 구성을 가졌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짧은 시간 동안 기차에서 주인공과 ‘그’가 나눈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마지막에 ‘그’가 읊조리듯 부른 노래는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현진건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1인칭 화자의 고백 형식을 통하여 작가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토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운수 좋은 날」 이후의 작품에서는 3인칭을 도입하여 작중 인물의 삶을 좀더 치열하게 묘사하였는데, 그의 대표 단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운수 좋은 날」, 「불」, 「B사감과 러브레터」.「고향」 등이 여기에 속한다.
3.3 현진건 문학의 의의
현진건은 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조선의 얼굴을 직시 하여 민족의 모습을 똑바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였으며 빙허 특유의 허무의식으로 빙허만의 단편소설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마무리를 항상 어떤 혁명이나 계몽이 아닌 죽음이나 떠남 등으로 맺으며 현진건식 단편소설을 형성했다.
오로지 자신의 경험밖에 쓸 줄 모르는, 장편은 안 되고 단편만 쓰는 작가라고 비판도 받았지만 그것은 현진건의 소설만이 가진 수많은 장점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다. 일제 강점기에 순수문학이 아닌 현실을 그려내고 묘사하는 문학으로 작가의 위치를 굳건히 하였고 <동아일보>에 재직하면서는 일장기 말살 사건과 연루되어 감옥 살이도 하고 직업도 잃게 되지만 그는 끝까지 통속 소설을 쓰거나 친일을 하는 등의 행위를 전혀 하지 않고 꿋꿋이 양계나 쌀장사를 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그도 변변치 않았는데 그래도여기서 드러나는 그의 선비정신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그의 삶과 문학은 대부분 일치 하는 경향을 보이며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과 가치 있는 문학을 제공하여 주는데 여기서 독자로서, 중국의 독자로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참 많다.
3.4 현진건 문학의 한계
현진건의 소설은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고 또 탐구해볼 수 있다. 그의“憑虛御風”에서 憑虛御風란‘허공에 의지하고 바람을 타다.’라는 뜻으로 평소 빙허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 에서 드러나듯 빙허는 현실을 허무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 경향도 있다.
그의 생애부터 시작하여, 문학관, 한계와 고민, 개별 작품을 통한 지식 인의 세계를 향한 갈등과 고민. 그것은 동인지 시대를 맞이하며 급격히 성장하던 수많은 작품의 경향 중 현진건만의 차별화된 성향이었으며, 그것을 한 가닥의 끈으로 이으려는 힘든 작업을 시도하였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 된 그가 택해야했던 글쓰 기의 고민은 그의 작품 결과보다도 더 치열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쓰인 이들의 소설에서 돋보이는 것은 한마디로 사실주의적인 면모였다. 현대의 정신을 망각한 채 과거로만 몰입하는 민족주의 문학이나 각종 문예사조를 모방하는 당시의 문학 풍토에 대한 반성과 함께 현진건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학을 주장한다. 바로 그의 이런 작가적 의식과 창작태도가 그의 문학사적의 위치를 굳게 자리잡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운수좋던 날”이 그토록 노동자의 고통을 표현한 것으로서 이 작품의 발표연대는 프로문학이 대두되던 시기이며 그것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급적인 대립관계를 나타낸 적절한 소재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작자는 그 같은 입장을 떠나서 다만 고통 받는 계층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였을 뿐 프로문학적인 입장은 나타내지 않았다.
3. 결 론
빙허 현진건은 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조선의 얼굴을 직시하여 민족의 모습을 똑바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였 으며 빙허 특유의 허무의식으로 빙허만의 단편소설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마무리를 항상 어떤 혁명이나 계몽이 아닌 죽음이나 떠남 등으로 맺으며 현진건식 단편소설을 형성했다.
오로지 자신의 경험밖에 쓸 줄 모르는, 장편은 안 되고 단편만 쓰는 작가라고 비판도 받았지만 그것은 빙허 현진건의 소설만이 가진 수많은 장점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다.
일제 강점기에 순수문학이 아닌 현실을 그려내고 묘사하는 문학으로 작가의 위치를 굳건히 하였고 끝까지 통속 소설을 쓰거나 친일을 하는 등의 행위를 전혀 하지 않고 꿋꿋이 양계나 쌀장사를 하며 살아갔다. 여기서 드러나는 그의 선비정신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빙허 현진건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하며, 나는 빙허 현진건은 한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그러한 작가였고, 있어주었기에 앞으로도 그 이름은, 그 작품은, 그 삶은 영원히 기억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학은 그 시대의 모순을 작가 자신의 문제 로서 파악하고 그 모순의 핵심 또는 본질을 올바로 파헤칠 수 있어야 한다.
작가는 한 시대에 대한 고통 스러운 지성만 작용하는 것도 아니며 문학적 언어에 대한 예리한 감성만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한 시대를 바라보는 고통스러운 지성은 나타나 있으되 그것이 문학적 언어로 잘 빚어져 있지 않으면 문학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줄어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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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곽순애, 「1920년대 전반기 소설의 현실 인식 방법 연구
감사의 말
논문집필 과정에서 최균선 선생님의 사심없는 지도를 받아 순리롭게 완성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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