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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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 93)래일은 아직 오지 않았니라
2015년 09월 29일 18시 45분  조회:470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래일은 아직 오지 않았니라
 
                                     진 언
 
   래일이 언제냐? 아이가 명창한다.“한밤자고 나면 래일이지요.”그래 맞다. 오늘을 기준으로 다음에 오는 날이 래일이다. 래일의 본질은 바야흐로 존재할수 있지만 아직 존재로 되지 못한 그 부분의 시간이다. 무한정 엇바뀌는 래일, 스멀거리며 밝아오는 려명처럼 보이는것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것도 아닌것이 바로 래일인가,
   그런데 졸문에서의 래일은 미래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의미로 쓴다. 생각이란 바로 정신체험의 표현이므로 래일에 대한 생각은 래일 자체에서는 기원될수 없다. 미래란 유형의 현실이 아니므로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관념속에만 있다. 일상으로 보면 오늘이 어제같고 래일도 오늘같은 나날이지만 래일에는 래일의 태양이 솟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연구한다 해도 생각에 국한될뿐 미래자체가 아니다.
   대저, 세상사란 불가예측이거늘 뉘라서 계획대로 래일을 영위할수 있으며 계획서 두루말이처럼 펼쳐지는 인생을 살것인가? 밤이면 꿈속에서는 천갈래 길을 질주해도 낮이면 한갈래길에서 오고간다. 래일이 보다 나을수도 있고 오늘보다 더 역경일수도 있다. 래일이 보다 나을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기다리지만 래일 어찌될지도 모르니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진행형처럼 상상하는것은 시간과 정력랑비이다.
   추구가 인간의 본성이지만 래일을 두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듯 점치고 억측을 하느라 골머리를 짜낼 하등의 필요가 없다. 정답은 래일에 닥치고 보라는것이다. 래일 우뢰가 울면 들을수밖에 없는것이요 비오면 우산을 찾을수밖에 없는 취약한 인간이다. 래일 생뚱같이 벌어질 일에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수선피워봐야 호들갑일뿐이다. 예언가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
   미래의 허무성의 각도에서 말하면 미래란 근본적으로 없다. 미래란 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수 있는가? 흔히 미래를 실체로 가정하고 토론하지만 미래란 바로 실제적으로 일이 발생한 그 시간대이므로 미래란 실제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눈으로 볼수 없지만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생각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지선각(先知先觉)과 이른바 미래을 준비한다는 헛개비들을 믿게 하는것이다.
   기실 미래가 우리에게 내주는 지식도 없거니와 아무것도 약속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래일에 대해 확신할수 있는것은 오늘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것이다. 산은 옛산이요 강물은 그냥 흐르고있다. 사람들의 생각이 돌변할수 있을뿐 사물의 변화는 진행 형이지만 그렇듯 완만하다. 때가 돼야 천천히 다가오는 미래처럼 말이다.
   과거와 미래는 련속성을 가지고있는데 첫째로 존재의 련속성 즉 시간의 추이에 따른 사물의 변화성이다. 두번째로 변화의 련속성이다. 모종 사물에 변화가 시작되였 더라도 일정한 시간 지속되면서 또 다른 련속성으로 체현된다. 우리가 일단 일종의 지속적변화 혹은 추세를 확인하였을 때 가히 장래 어느 한 때 거대한 변화를 예상할수는 있다. 례하여 이 몇십년래 중국의 관광산업이 신속하게 발전했으니 20년후에는 지금보다 려행객들이 더 많다고 단정하는 등, 그런데 이것은 상식문제이다.
   셋째로 모식의 련속성이다. 수많은 변화는 모종 모식에 붓쫓는다. 시간의 추이에 따라 비슷한 모식의 변화가 다시 발생하는것이다. 옛사람들이 태양의 하늘에서의 운행궤적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련계시켜 관찰하여 계절의 변화를 추출해냈다.
   네번째로 관계의 련속성이다. 변화의 근원은 앞에 조건 혹은 원인으로서 이러한 관계는 잘 변하지 않는다. 이런 련계성을 확인하고 특정조건에 부합될 때 우리는 가히 어떤 사건의 발생을 예측할수도 있다. 만약 현실세계에 이런 기본원리의 련속성이 없다면, 만약 우리들이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면 철저히 망연자실해질수밖에 없다.
   우리가 방금 흘려보낸 시간은 영원히 과거에 귀속되고 다음에 올 시간도 의연히 미래속에 잠재해 있다. 하기에 작금에 여하하든 지속기(持续期)란 없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과거로부터 미래를 맞게 된다. 영원히 지나가버린 세계에서 존재해 본적이 없는 다른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는것이다. 아무튼 기지의 존재와 변화, 모식과 인과관계의 련속성이 미래세계의 상황에 대해 생각할수 있는 기초를 제공할뿐이다.
   불확실한 미래라는 제기법은 공연한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신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미래의 불확실성때문에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별개로 인생이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그러한 불확실성때문에 선인들이 모두 무기력했거나 미래를 두려워했다면 고도의 물질문명의 현재의 세상이 없었을것이다. 불확실하더라도 리상을 가지고 자신있게 자신의 삶을 엮어나가야 한다는 지향과 래일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각에서 래일이란 아직 오지 않은 날이다. 래일에 발생할수 있는 일은 래일에만 알수 있다. 그런데도 미루어 예측인지 추측인지 한다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애써도 예측할수 없는데 전문이란 미명을 앞세우고 남의 일을 두고 이렇쿵 저렇쿵 하는것은 기실 할일 없는 시러베들의 탁상공론이다.
   례컨대 장차 벌어짐즉한 사건에 대해 관측을 낳았다고 하더라만 관측이란게 기상, 천문 등의 자연현상을 관찰하여 그 움직임을 측정함인데 보이지 않은 현상을 관측한다는 말이 아닌가? 너무 억지를 쓰려니 무형의 현상도 관측되는가? 알아도 병, 몰라도 병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아는게 병이라는것은 과거에만 적용되는 말로서 미래지 향적이 아니다. 미래에 대비하라는 말을 잘 쓰지만 어떻게 대비한단 말인가? 100% 확실한 정보란 없다. 그리고 그건 정보이지 현실이 아니므로 전혀 필요없다.
   근일에 서울의 어떤 교수씨가 “통일후 행정체제구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를 열고 아직 오지도 않은 래일, 발생할지도 미정인 허상을 내놓고 시왈비왈 열을 올리였는데 탁상공 론전문가라 그런가? 설계도는 건축물이 아니며 동경은 현실이 아니다. 항간에는 다해놓은 기장밥도 먹어야 먹은것으로 된다는 말이 있다. 움안에서 떡함지를 받으려는 생각은 갸륵하지만 어디 번번이 있는 일인가? 
   미래는 언제나 시간의 편이지 인간의 주관욕망의 편이 아니다. 래일 하려는 일에 어떤 준비같은것은 필요하다. 례하여 탐험가들이 모지방으로 탐험을 떠나기전 당지 상황에 비추어 가능하게 일어날수 있는 돌연적인 변화를 예상하고 주밀하고 주도하게 준비하는것은 기본자세이다. 그러나 이런 준비는 국내외의 어떤 정치형세의 변화에 미리 대비한다는 허무한 궁리와는 전혀 딴 문제이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음지와 양지가 언제든지 바뀔수 있는것처럼 세계정국도 필경 불확정적이다. 상황에 따라 주동이던 자도 피동이 될수도 있다. 풍운조화란 인간이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신비하다. 명색이 전문가라면서 호들갑떠는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 래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상상도 건덕지가 없으면 바라는대로 억측을 해댄다. 억측을 하는데는 높은 지상수가 수요되지 않지만 리성사유는 필수적이다. 환상가는 기특한 면이 있겠지만 망상가는 도무지 귀한데가 없다.
   손에 땀을 쥐고 걱정해도 발생할 일은 기어코 발생할것이요 반대로 원쑤의 이웃집에 재난이 덮치라고 비난수해도 발생하지 않을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욕심만으로 환상을 현실로 만들수는 없다. 현실적기반도 없이 망상에 매달려 혼자 흥분해도 결국 참대나무로 물긷기(竹藍子打水一場空)와 같다. 그런데 왜들 그런 허황한 환상에 매달릴가? 매양 제멋에 아전인수하지 말고 순리대로 도는 세상사를 두고봐야지! 
  
                                    2015년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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