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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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
2016년 11월 20일 17시 27분  조회:3610  추천:1  작성자: 최균선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
 
                                                             최 균 선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라는 말을 보면 대뜸 로신의 소설 “공을기”에 풍속화같 은 장면을 떠올리게 될것이다.
    “몇번인가 이웃애들이 웃음소리를 듣고 구경하러 몰려와서 공을기를 둘러쌌다. 그러면 그는 아이들에게 회향두를 나누어 주는데 한아이에 한알씩이다. 애들은 콩을 먹고서도 가지 않은채 눈으로 모두 접시를 기웃거린다. 공을기는 당황해서 다섯손가 락을 펴서 접시를 덮고는 허리를 구부리고 말한다.
    “이젠 없다. 얼마남지 않았어!”
    허리를 펴면서 슬쩍 콩을 보곤 고개를 흔들고 말한다.
    “이젠 없다! 없어!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 그제야 한떼의 아이들은 모두 깔깔대며 헤여져 달아난다…공을기가 한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는 기실 공자가 자한에게 한 말이다. (“君子多乎哉?不多也!”ㅡ《론어. 자한(论语.子罕)》
    공을기는 큰 마음을 먹고 산 회향두가 점점 줄어드는것이 애석해서 한 말이지만  욕망의 미달에서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라는 개탄이라 할수 있다. 이 물욕, 점유욕, 권력욕, 명예욕, 색욕, 등 온갖 욕망을 두고 “적을소냐? 너무 많도다” 라고 말할 사 람은 거의 없다. 자족의 문을 닫고 자기안에서 이런저런 생활의 꽃수레를 만들어가는 것도 나름대로의 행복이련만 인간은 욕망의 노예라는 숙명을 타고났다.
    이 점에서는 인간이 벌레보다 더 나을것이 없다. 연구에 의하면 바퀴벌레는 평소 필요이상의 음식을 많이 먹지만 그들만의 “생존법”에서 기인된것이다. 바퀴들은 생 애의 반을 굶고도 너끈히 견딜수 있다고 하니 가히 경이로운 생물이라 할것이다. 만약 인간도 그것들처럼 본래부터 생애의 반을 안먹어도 살수 있는 동물이였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무지경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온갖 파렴치와 비인간적 범죄를 저지르고 “많을소냐?많지 않도다”를 고창하며 발버둥치지 않을지 모른다.
    동물왕국의 왕이라는 사자도 배가 부르면 곁에 맛난 먹이감인 토끼와 사슴이 어슬렁거려도 욕심내지 않는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아흔아홉개 가진놈이 백개를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는 리기주의(에고이즘)에서 영원히 해탈될수 없다. 그래 서인지는 몰라도 쇼펜하우에르는 인간은 욕망의 복합물이라고 칭하였다.
    인간이 자기의 능력으로 자신의 수요를 만족시키려는것이 곧 욕망일진대 인류문명의 진보를 추동하였으며 만가지 선의 원천이라고 보고있다. 문제는 무지경의 탐욕이다. 로자가 자기를 찾아온 공자에게 한 말이 아주 교훈적이다.“食於苟簡之田, 立於不貸之圃. 逍遙, 无爲也. 苟簡易養也. 不貸无出也. 古者謂是采眞之遊. 以富爲是者, 不能讓祿. 以顯爲是者, 不能讓名. 親權者, 不能與人柄. 操之則慄, 舍之則悲, ”
    “식어구간지전”은 자기 먹을 정도의것만이 생산되는 땅을 가지다이고, “립어불대 지포”는 먹고 남을것이 없는 정도의 채소밭만을 가꾸었다이며 “소요무위야”에서 소 요한다는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이다. “구간”은 자기 먹을것만을 생산한다이고 “이양야” 몸을 보양하기 쉬움을 뜻한다. “부대”는 먹고남는것이 없을 정도란 말이고 “무출야”는 남에게 내놓지도 않음을 뜻한다고 했다. “고자위시채진지유”란 옛날에는 이것을 ‘참됨을 취하는 노닒’이라 불렀다고 하였다.
    “이부위시자” 부를 좋은것으로 아는 사람을 이르고 “불능양록”은 남에게 재산을 사양하지 못하며 “이현위시자”는 출세를 좋은것으로 아는 사람이고“불능양명” 이란 남에게 명예를 양보하지 못하고“친권자”란 권세를 가까이하는 사람을 말하며 “불능 여인병”은 남에게 권력을 맡기지 못한다는 말이며 “조지칙률”은 그것들을 가지고 있자니 두렵다이며 “사지즉비”는 버리자니 슬퍼질것이라는 의미이다.
    비록 성현들이지만 필경 2천여년전에 사람들로서 현대인에 비하면 많이 개명하 지 못하였다고 할것이다. 그러나 로자가 한 말은 경제동물로 다 되여진 현대인들의 머리로서는 생각할수도 없는 사상이다. 탐욕자들은 이런 만고의 경세지언을 우습게 여기며 가지지 못한자의 막무가내한 푸념이라 생각할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을 가히 악성탐욕자들이라 이름할수 있다. 악성탐욕은 사악의 대명사로서 문명재난의 제조자들이다. 몇백만원씩 하는 주택을 몇백채씩 차지한 자들에게 묻는다면 필시 “많지 않도다”할것이요 한병에 천원도 넘는 모태주를 만병이상이나 후무려둔 자에게 “그만하면 평생 취할수 있지 않냐?”하고 물어도 필경 “많을 소냐? 많지 않도다”하며 성차하지 않을것이다. 최근 락마한 서녕시 모씨는 서부광업 리사장일 때 월급이 153만원이였다는데 그냥 “많지 않도다”를 짓씹으며 승천하였다가 최근 일패도지 하였으니 그놈의 “많지 않도다”가 야단이 아닌가?
    물론 모든 사람들의 내심세계에 욕망과 탐욕이 병존하는것은 아니다. 다만 진정으로 탐욕과 등진 사람이 극히 소수일뿐이다. 배가 부두에 이르면 건져올릴 기회도 없고 차가 역에 도착하면 주어들일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을소냐? 적지 않도다”라고 할대신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를 곱씹으며 자기를 말아먹었다. 정당한 욕망이 탐욕으로 번지여 령혼을 점거하고 종당에는 구렁텅이로 밀어넣는것이다.
    력사가 증명하다싶이 인간의 화는 자족을 모르는데서 오는것이요 탐욕심이 강하면 필시 남을 해치고 남을 해치고나서 결국 제잡이가 된다. 세상에 아무런 욕망도 없는 사람이 있으랴만 가령 있다면 그는 천하에 제일 행복한 사람일것이다. 탐욕심이 강한 사람은 모종면에서 강자라 할수도 있다. 옛글에 고기는 미끼만 보지 낚시는 볼줄 모르며 사람은 리익만 보지 해될줄은 볼줄 모른다고 하였다,
    맹자가 량혜왕에게 왕이 리익을 추구하면 그밑에 제후들도 자기 리익만 추구할것이고 더 아래로 내려와 온 국민들이 모두 그렇게 되여 서로 자기 리익을 챙기는 아귀다툼이 벌어질것이라 하였는데 이를 상하교정리 “上下交征利” 라고 했다. 서로 밥그릇 차지하려는 아귀다툼이 벌어질것이란 말이다. 아귀다툼은 바로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라는 심리바탕에서 시작되는것이다.
    자족이야말로 쾌락의 원천이요 행복의 기성품이라 할것이다. 자족할줄 아는 자는 늘 즐겁고 수시로 멈출아는자는 평생 수치스러운 일이 없으며 자족할줄아는 사람은 인생이 진미도 안다고 했다. 예나제나 자족은 일종 심리상태이면서도 몸에 익히기 어려운 일종 처세철학이기도 하다. 너무 배부르게 먹으면 농촌말로 “저웁다”고 한다. 역시 너무 넘치도록 가지면 여러모로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지는 도리와 같고같다.
    고금중외에 온갖 탐욕속에 매장된 사람들이 얼마였던가? 욕망의 만족은 만족이 아니다. 인간의 가장 큰 비애는 유한한 인생인데 무한한 재부욕을 추구하는데 온 악 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를 “적을 소냐? 적지 않도 다”라는 절제성적인 심태로 바꿀 때 그는 크게 행복하지 않더라도 일패도지하는 일이 없고 평범하나 불행하지는 않은 삶을 살리라.
    행복은 모순의 결과물이다. “많을소냐 많지 않도다”를 끝없이 중얼거린다면 마음은 점점 더 검어질것이다. 인생은 경영하지만 계획서대로 진행되는것이 아니며 행복은 느끼는것이지 비교에서 오는것이 아니다. 세사는 금삼척이요 인생운 주일배 (事 世琴三尺,人生酒一杯)이고 인생무상인데 행복인들 절대적이랴. 사람마다 애써 가꾸 는 인생의 상록수는 저마다의 눈물과 땀을 먹고 자란다는것을 체험할것이다. 


                     2014년 4월 20일               (2016년 송화강 7기에 발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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