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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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씨 수상록 95) 가능성에 넘 사활을 걸지마쇼
2015년 10월 05일 09시 39분  조회:4804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가능성에 넘 사활을 걸지마쇼
 
                                                   진 언
 
   가능성이란 무어냐? 일이 이루어지거나 실현될수 있음, 또는 어떤 주어진 문제에 대한 임의의 한 해답이 그 문제에서 가정하고있는 여러가지 제약조건을 만족하는지의 여부를 나타내는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가능성과 현실성은 객관적합법칙적 발전과정의 중요한 측면의 하나를 표현하는 유물변증법의 범주이다.
   무릇 새것은 처음에는 가능성으로서만 나타난다. 가능성이란 사물 및 현상의 발 에 있어서 그것들이 아직 현실성으로 되지 못하고 다만 발전의 가능한 경향으로서만 존재하는 그러한 상태, 그러한 단계를 말하는것이다. 현실성이란 이미 실현된 가능성이다. 형식적인 공허한 가능성을 실제적인 가능성과 구별하여야 한다. 형식적인 가능성의 견지에서는 “모든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것이 현실적이지는 않다.
   형식적 즉 추상적가능성은 그것을 필연적으로 현실성으로 전화하게 하는 실제적인 구체적 제조건에 기초하고 있지 않는 그러한 가능성이다. 어떤 조건하에서는 추상적가능성인것도 다른 조건하에서는 실제적인 가능성으로 될수 있다. 따라서 실제적 가능성은 형식적 가능성과는 달라서 그것이 실현될 객관적기초가 있고 또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필연적으로 실현되는 즉 현실성으로 전화되는 그러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가능성과 현실성을 엄격히 구별할줄 알아야 하고 그만큼 가능성이 곧 현실성인듯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가능성이 현실성이 아니듯이 필연성보다 우연성의 인소가 더 다분하다. 변증유물론은 자연 및 사회에서 지배하는것은 우연성이 아니라 필연성이라는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것은 객관적세계에 있어서 모든 본질적인것은 필연성에 의하여, 즉 객관적발전법칙에 의하여 야기된다는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낮과 밤이 교체되는것, 한 유기체의 종이 다른 유기체의 종으로 진화되는것 등등, 이러한 모든것은 객관적필연성, 즉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법칙에 의하여 일어난다.
   변증유물론은 제현상 및 과정의 본질자체에 근거를 가지고있는것, 사물간의 내적련관 및 관계로부터 흘러나오는것으로서 그 기본특징에 있어서 달리는 될수 없는 그러한것을 필연성으로 리해한다. 따라서 필연성의 객관성적성격, 즉 자연 및 사회에 있어서 필연성이 인간의 의식이나 념원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며 그것들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한다는것을 인정한다.
   이와 동시에 우연성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성을 그 자체가 아니라 부차적인 원인으로부터 흘러나오는것으로서 이렇게도 진행될수 있고 저렇게도 진행될수 있고 존재할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는 그러한것을 우연성으로 리해한다. 례하면 한알의 종자가 알맞는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싹터서 자라난다. 그러나 발아하지 못할수도 있고 움이 텄다해도 우박을 맞거나 하면 끝까지 성숙하지 못할수도 있다. 우박은 우연성이다. 우박이 없다면 식물이 무난하게 성숙할것은 필연적이다.
   물론 우연성도 역시 객관성격을 가지고있다. 그런데 우연성의 객관적성격을 부인하고 그것을 원인모를 현상에다 귀착시킨다면 커다란 오유를 범하게 된다. 사람은 앞일을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기에 많은 경우 이런저런 추상 혹은 예측을 하게 되고 하다 하다가 자칫 억측을 하는수도 있다.
   인간의 본질이 실질상 현실성과 가능성의 통일이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분명하게 정의되고 있는것은 인간의 가능성본질이다. 그래서 인간을 가능성의 존재라고도 한다. 례하여 인간은 본래부터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도 의연히 가능성이지 현실성은 아니다. 이런 상식도 모르고 누구네들처럼 대방이 잘못되기만 바라다보니 맨날 무엇이 어찌될 가능성이 어떻구 하면서 혼자 찧고 까불어대면 되우 싱겁다.
   허황한 욕망에 조급증이 불붙어 마냥 “이럴 가능성이 있다. 저럴 가능성이 있다”는 방정은 가능성판단이 아니라 희망사항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것이다. “그럴같다. 그럴것이라 생각된다”는식의 억측은 결코 가능성판단에 전제조건 일수 없으므로 맥도 모르고 침통부터 빼들기이다. 가능성판단이 객관성을 몰각한다면 하늘에 장대겨눔 질이다. 그런데도 적대감을 앞세워 허구헌날 “급변사태니 붕괴”니 하면서 오뉴월에 쇠불알이 뚝 떨어져 다 먹게나 된듯이 입맛부터 다시면 천하 바보스럽다. 
   형이상학자들은 우연성과 필연성을 서로 배제하는 개념으로 보는데 변증유물론에서는 필연성과 우연성은 서로 련관되여있으며 우연성은 다만 필연성의 보충 또는 발 현형태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우연성의 배후에는 언제나 자연 및 사회에 있어서의 발전행정을 규정하는 필연성이 숨어있는데 과학은 이 필연성을 발견하며 인식한다.
   인식은 그것이 자연 및 사회의 제현상을 그 필연성에서 인식하는 때에라야만 과학적인것으로 될수 있다. 인식은 우연성에 기초할수는 없다. 우연성은 과학의 적이다. 가능성이란 말을 쓰기 좋아하고 가능성판단을 하기 좋아한다면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화시키는데 필요한 제조건중에서는 객관적발전법칙에 대한 지식에 립각한 인간의 합목적활동이 거대한 역할을 논다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가능성원리도 모르고 무작정 가능성만 추리하려 한다면 헛다리를 짚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것이다.
   매사에 제좋은 궁리로, 자신이 바라는대로 허접한 가능성만 찾다보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기 십상이고 상상력으로도 미달이면 환상도 마다하지 않는다. 필연의 왕국에는 가능성이 많을지 모르지만 우연의 왕국에는 필연이란 없다. 누구네들처럼 남이 하려는 일을 사사건건 앞질러 예측하고싶으면 필연성과 현실성의 관계랑 잘 알고 예측하든 점을 치든 해야 헛나발이 되지 않을수 있다.
   만약 어떤어떤 가능성에 사활을 걸었다면 일반 론리학상식쯤은 가지고있어야 적게 오판할것이다. 말하자면 가언적판단같은것을 말이다. 가언적판단에서“가언적”이라는 말은 “가설적”이라는 말과 같은 뜻을 갖는데 일정한 조건하에서만 타당한 조건부로 옳바른 가설에 기초한다는 의미를 취한다. 주지하다싶이 가언적판단에는 조건판단 또는 제약판단과 순수 가언적판 두가지 종류가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크다던가? 그놈의“가능성타령”에 목이쉬다가 헛다리짚게 되면 닭쫓던 개 울쳐다보는격도 아니다. 나무밑에서 토끼가 부딪쳐 죽기를 기다리는 우직한 농부얘기는 우연히 일어난 일을 경험처럼, 혹은 필연처럼 믿다가 결국 일년농사를 망쳤다는 교훈을 주는것이다. 다른 하나는 착실하게 일하려 하지 않고 의외의 수확을 얻고자하는 허황된 생각에 일침을 가한것이다.
   농부는 가능성철학이 아니라 이른바 기대가능성에 혼신을 매달아버린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든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믿는다는것은 우직하기 짝이 없다는것을 의미 한다. 가능성판단에 흥취가 짙더라도 넘겨짚기로 숨은 야망을 만족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판단이 아니라 억측이다. 가능성 자체는 막연함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있는 상황과 외부적조건 그리고 자신이 할수 있는 력량에 대한 총체적검증을 바탕으로 가능성판단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피상적 현상에 두눈이 멀면 추상에 매달리게 될뿐이다. 어떤 돌팔이의사가“당신은 죽을 병만 들지 않으면 장수할 가능성이 있소.”라고 한다면 그보다 머절스러운 진단이 더 있을가? 옛날 농촌에서는 이렇쿵 저렇쿵 시러베같은 소리를 잘 줴치면 “에라잇, 그놈의 가능타령 그만 집어쳐라, 죽지 않으면 살소리를 뉘긴들 못할락꼬? ”하고 죽박을 주었더랬다.

                                             2015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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