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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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씨수상록 64 )글농사 어려우이
2016년 03월 05일 16시 07분  조회:4591  추천:1  작성자: 최균선
                                               글농사 어려우이
 
                                                       최 균 선
 
    대저, 글짓기 전업인을 치켜세우면 문필가이고 낮춰 말하면 붓쟁이 혹은 글쟁이라 하는데 글짓기를 글농사라고도 한다. 농사는 작황이야 여하튼 뿌린대로 거 두지만 뜻대로 안되는 자식농사처럼 심은대로 거둘 수 없는게 글농사이다. 하얀쌀밥을 뼈밥이라 하듯이 벼농사는 뼈농사인데 글농사도 힘들기로 뼈농사라 할 것이다.
    절실한 느낌, 생각들을 토해내고 싶은것은 글농사를 짓고싶은 욕망이요 선재는 종자고르기라 할 것이요 글감에 따라 체재를 바꾸어 쓰는 것은 왕년 콩밭에 조를 심고 조밭에 콩심는 그루바꿈이요 때론 생각이 떠오는대로 써놓는 것은 마치 “대뚜박” 을 두드려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음이요 처음부터 또박또박, 단락을 분명하게 나누며 써내려 가면 마치 호미로 폭폭 찎어 콩씨나 감자싹을 묻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다써놓은 글에서 군더더기를 가차없이 지워버리는것은 씨솎음과 같다고 할 것이 요 가담가담 무언가 보충하는 것은 보식하는 것과 같다할 것이요 글을 윤색하는 것은 한포기 한포기 보듬으며 김매고 북을 돋우어주는 것과 같다할 것이요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여기저기 손을 대는 것은 큰풀잡이와 같다고 하리라. 농사와 글농사는 근원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농사는 품앗이를 할 수 있지만 글농사는 아니다. 내 글밭은 내 능력껏 가꿔야 한다. 투고한후 편집이 도끼질, 대패질하는것은 딴 문제다. 
    이러한 글농사일진대 주로 시를 쓰면 시인이요 소설이 전업이면 소설가요, 평론 이 전문이면 평론가요, 수필로 성가하면 수필가라하고 글밭을 많이 가꾸면 다산작가 라 하는데 차차 다종경영을 하는 사람도 많다. 쥐도 한모 뚫어야 성공한다거나 우물 을 파도 한곳을 파라는 속담대로라면 자칫 뛰여난 글농사군이 못될 수도 있다.
    아무튼 농사는 나만 먹자고 짓는게 아니듯 내 글농사이지만 혼자 향수하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 글밭은 개방하게 되여있다. 공동히 향수하는 글밭이라 아무나 들어 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달인”이 가라사대 밭을 많이 다루면 쭉정이농사가 되 기십상이니 글을 너무 많이 쓰는게 능사가 아니라 한두편 써도 “예술진품”을 만들 라고 충고한다면 맞는 말일가? “맞구요, 맞습니다”이다.
    헌데 맞으면서도 맞지 않기도 하다. 아이들의 글짓기지도를 해본 사람은 먼저 남의 글을 많이 읽게 하면서 많이 써보게 하는 것으로 입문하게 한다. 처음부터 잘 쓰는 아이는 없다. 넘어질가봐 걸으려 하지 않는 아이는 걸음을 배워내지 못하며 넘어져도 자꾸 걷는 아이가 마침내 잘 걷게 되고 나중에 잘 달릴 수 있다는 도리와 같고같다. 어른의 글짓기도 이 도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습을 쓰지 않고 구석에 팽겨치면 녹이 쓸듯이 필봉도 날마다 수시로 갈고 련 마하지 않으면 무디기마련이다. 기성붓쟁이라도 자꾸 써봐야 붓놀림이 쇠퇴하지 않는 다는것은 상식이다. 글을 많이 짓느라면 어떻게 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제나름의 묘리를 깨닫게 된다. 평시에 전혀 달리지 않던 사람을 갑자기 장거리를 달리게 하면 어떨가? 처음엔 기세좋다가 얼마 못가서 헝헝거리며 맥을 못출 것이다.
    당초 걷지도, 달리지도 못하는자라도 씨엉씨엉 헌걸차게 걷는 제모습을 상상할수 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손대면 예술진품을 써낼 것이라고 환상하겠지만 실천의 벽을 못넘을 막연한 희망사항이다. “일책명작주의”라는 말을 하는데 “시시한 글”은 쓰지 않다가 일단 써내면 명작이고 다시는 더 쓰지 않는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일생에 처녀작이자 마자막인 명작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람마다 일책명작주의 작가가 될 수는 없다.
    밭을 많이 다루면 죽정이많은 농사가 될가봐 맨날 하나의 밭뙈기에 매달리여서 은나락금나락 많이 수확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농사군도 아니다. 지금 농촌에는 수 십백쌍을 부치는 전문호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밭을 그리 많이 부쳤다가 쭉정이농사를 하면 어쩌는가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농사를 모르는 사람이라기보다 생각머리가 형 편없는 사람으로 여길것이다. 글농사군도 글밭을 다양하게 가꾸어 다산하려 한다면 그의 취향이니 곁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못된다.
    하긴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는 속담처럼 글을 많이 쓰노라면 죽정이도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북데기속에 알이 있다고 “너른마당쓸기”이면 얻는 것도 많다는 도리를 모른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맹꽁이다. 그렇다고 졸작이 될가봐 아시당초 쓰지 않는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그는 격이랄가? 누구나 혼자 달리면 늘 일등한다, 여 럿속에서 달려봐야 자기 실력이 확인된다. 문단에 필마단창과는 다른 얘기이다.
    많은 글밭을 다루기와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사람의 얼굴은 그대로 드러나지만 말하거나 글을 써내지 않으면 속생각이 드러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거나 글을 많이 쓰면 이런저런 생각, 지식수준이 드러나고 그와중에 사 고의 미성숙성, 틀린관념, 가치관도 드러나고 사상경향, 주요관심사(주제의식), 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울지 않는 아이와 늘 울어싸는 아이가운데 누가 더 활기찰가?
    시종 입다물면 실언이 없고 글을 쓰지 않으면 졸작이니 걸작이니 하는 평판받을 계제도 없다. 남의 말을 그저 듣기만하고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보기만 하면 내속이 드러나지 않아 지자인지 무재(无才)인지 드러나지 않아 좋고 구설수에 오를 념려가 없어서 좋지만 주체적생명활동에 표현능력이 결여되여 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걸음 물러나서 말한다면 글짓기가 창조적활동이기전에 취미생활일 수도 있다. 사람은 맹꽁이라도 나름의 취미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터에서 물러나와 석양길 을 걷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며 만년을 보내기에는 나머지 세월이 너무 길고 무료하 다. 갈길이 촉박해도 생명을 불태워야 한다면 취미생활일 수밖에 없다. 그 취미가 고급스러운 운필이면 금상첨화이다. 잘쓰든 못쓰든 글짓기가 자발적이고 미치도록 몰입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의의로운 생명활동이 없을것이다.  
    벼농사는 뼈농사로되 땀흘린 보람으로 알알이 염근 벼이삭이 무겁게 고개를 숙 일수 있으나 아무도 시작부터 주욱ㅡ풍작만 거둘수 없는 글농사요 장마다 망둥이나 랴, 하듯이 써낸 글마다 말이 쉬운 “진품”이 될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글을 지나가 는 말로 한두마디 평판하는 일만큼 쉬운 일이 없다. 입가볍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명문장가라는 기약은 없다. 혹은 앉음뱅이가 달리기를 론하는격이 될수 있으니말이다.  아니면 자동차는 몰고싶은데 운전기술이 없는격이거나…
    글짓기를 좋아한다는것과 글짓기에 몰두한다는것은 별개이다. 좋아하는것은 취향 이고 몰입한다는것은 공공에의 헌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정신이 쉴줄 모르는 것은 인생의 최후의 정취이다. 청춘이 후회를 모르는 것은 아름다운 생명의 한단계 이기 때문이듯 인생만년에 후회를 안고 조급한 마음을 달리는 것도 아름답지 않으랴,
    무릇 글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일반에 대하여, 가능껏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과 사색에 대하여 말한다면 독자들이 작자의 슬픔에서 자신의 슬픔을 느끼고 작 자의 내심세계에서 자기 정신을 비춰본다면 그보다 더 보람찬 일은 없을게다. 물론 글농사는 다수확농사와 다를수도 있다. 드문히 발표하더라도 읽을 가치있고 깊이와 무게와 감동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두의 지향에 그칠 수 있다. 글농사는 그만큼 어렵기때문이다. 대충 써레질한 논에 훌훌 산종을 뿌리듯 하는 글농사는 아무 도 짓지 않는다. 뼈무르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한걱정일뿐이지.
                               
                                        2014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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