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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바오로 2세와 마하트마 간디
2009년 04월 30일 08시 57분  조회:4637  추천:41  작성자: 이승률
 

여덟 번째 이야기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온 위인들에겐 몇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종종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 모든 덕목들이 지향하는 것은 늘 하나의 가치다. 그것이 바로 상생이다.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가야 할 시대적 소명을 요구받은 우리도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의 흔적을 따라 가보려 한다. 


요한바오로 2세와 마하트마 간디


1978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즉위한 지 34일 만에 선종 고해성사를 하고 죄가 없는 상태로 죽음을 맞음 하자 콘클라베 캐톨릭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최고의회 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여덟 번의 거듭된 투표 결과, 455년만에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주교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 당시 공산국가였던 폴란드 출신의 그가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이유는 단 하나, 냉전시대와 함께 위기를 맞은 교회를 이끌 지도자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27년간 ‘행동하는 순례자’로 불리며 세계인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을 받게 되는데, 그가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그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고국 폴란드를 선택했다. 공산주의 압제에 시달리던 폴란드 국민의 자주노조를 지지함으로써 동유럽 해체에 물꼬를 텄다. 카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진화론을 인정했고, 지동설을 부인한 교황청의 4백 년 전 잘못도 공식 사과했다. 카톨릭 교회의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고, 99년에는 티벳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광주 사태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죽어간 직 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을 비롯해 백여 개 국가를 다니며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갔다.


2000년도엔 가톨릭 사상 처음으로 참회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십자군 전쟁과 종교재판, 유대인 박해 등 가톨릭의 실수에 대해 진심어린 용서를 구했다. 또, 다른 종교에도 진리의 씨앗이 있음을 인정했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을 야기시켜 종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록 여성사제 임명과 낙태, 동성애 등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 입장이어서 진보적인 사제들의 저항을 받기도 했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 쇄신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데 치열하게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2005년 4월2일,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례식은 100여 개국 정상 및 타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몰려든 40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교황, 용서와 화해의 큰 목자였던 요한 바오로 2세. 그의 존재를 영국의 타임지(誌)지는 이렇게 평했다. 


 “2천년 교황청 역사 중 그만큼 강력한 목소리를 낸 교황은 없었다. 그는 도덕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이 시대를 향해 선한 인생의 비전을 제시하고 세계가 이를 따르도록 몸소 먼저 실천했다”


요한 바오로 2세 못지않게 성자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인물이 있다. 인도의 문호 R. 타고르가 ‘마하트마(Mahatma:위대한 영혼)’라고 칭송했던 인도 건국의 아버지이자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인도를 독립시키고 인도인을 각성시켰던 위대한 지도자 간디다.


1870년 인도의 서부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대에서 법률을 공부한 간디는 인도로 돌아와 변호사가 됐다. 그러던 중 자신이 맡은 소송사건 때문에 남(南)아프리카 연방의 더반으로 가게 됐는데, 이 여행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놓았다. 당시 남아프리카에는 약 7만 명의 인도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백인에게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들의 인권보호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간디는 이후 남아프리카 연방 당국에 대항할 인종차별 반대투쟁 단체를 조직, 1914년까지 그 지도자로 활동했다.


투쟁에 있어 간디가 택한 방식은 ‘아힘사(ahim  sā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불살생)’이었다. 이곳에서 전개한 ‘인종차별과 압박에 대한 투쟁’(사티아그라하:satyagraha)과 자아실현을 위한 인격도야와 수양의 노력은 훗날 간디가 인도에서 전개한 독립운동의 모형이 되었고, 또한 인도인의 정신개조계획의 기초가 됐다.


그로부터 약 8년 동안 간디는 인두세(人頭稅)를 비롯한 갖가지 인도인 차별법 철폐를 목표로 타이아그라하 행진을 계속했다. 특히 1913년에 간디가 선두에 서서 나탈주(州)에서 트란스발주(州)까지 걸어갔던  ‘사티아그라하 행진’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간디를 비롯한 행진 참가자 4,000명은 남아프리카 당국에 체포되었으나, 악법을 반대하는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운동은 세계의 여론을 감동시켰고 결국 당국을 굴복시켰다. 이후 인도인에 대한 차별법은 모두 폐지됐고, 간디는 남아프리카의 간디에서 일약 세계의 간디가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자신의 할 일을 끝낸 간디는 1915년에 조국으로 돌아온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인도독립의 약속을 어기고 반란 진압법까지 선포하자, 간디는 사티아그라하 운동으로 이에 맞섰다. 납세거부·취업거부·상품불매 등을 통해 영국에 비폭력 저항을 전개하는 한편 인도인의 자아각성을 촉구했으며 61세가 되던 1930년부터는 소금세 신설 반대운동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은 인도의 동의도 없이 인도인을 전쟁에 투입했다. 이에 대대적인 반영불복종운동을 전개하던 간디는 73세의 노령으로 체포돼 1년 9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전쟁 후에는 팔순이 가까워오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힌두·이슬람의 화해를 위한 연설을 하며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1948년 반(反)이슬람 극우파인 한 청년의 흉탄에 쓰러진 것이다. 간디의 죽음을 전해들은 세기의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을 걸어 다녔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요한 바오르 2세와 마하트마 간디, 이 두 사람은 비록 종교는 달랐지만 주어진 삶을 통해 ‘성자’의 반열에 들었던 점에서 공통점이 많은 인물이다. 이런 성자들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상생의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성자의 ‘다른 꼴 상생’의 삶 속에는 ‘닮은 꼴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간디가 지목한 ‘일곱가지 사회악’과 요한 바오로 2세가 제시한 ‘일곱가지 리더십’이다.


일곱가지 사회악과 일곱가지 리더십


인도 뉴델리의 야무나Yamuna강변에 있는 간디 추모공원 라즈 가트 Raj Ghat를 흔히 간디의 묘지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간디의 유해는 힌두교 관습에 따라 화장을 했고 이곳은 그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곳엔 마치 병풍처럼 간디의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화강암돌벽이 있는 데 그 위에 간디의 ‘7대 사회악’이 새겨져 있다. 이 ‘7대 사회악’은 간디가 인도의 지도자로 부상할 무렵인 1925년, <영인디아Young India>라는 신문에 처음 실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칙없는 정치 (Politics without principle)

  둘째,   노력없는 재력 (Wealth without work)

  셋째,   양심없는 쾌락 (Pleasure without conscience)

  넷째,   인격없는 지식 (Knowledge without character)

  다섯째, 도덕없는 사업 (Commerce without work)

  여섯째, 인간없는 과학 (Science without humanity)

  일곱째, 희생없는 신앙 (Worship without sacrifice)


이와 함께 교황 바오로 2세가 일생을 통해 실천했던 7가지 덕목을 살펴보자. 이는 교황 선종 그 이듬해 USA투데이가 실은 특집기사 ‘Business leaders can learn from pope’에서 소개됐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희생(Sacrifice)

        모범적인 최고경영자(CEO)나 대학총장, 지도자치고 개인적 만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교황은 자신의 죽음과 그 죽음을 위엄있게 처리하는 방법에서조차도 희생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둘째 : 진심(Be genuine)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는 리더가 이성에만 의존하는 리더를 이기는 법. 많은 사람이 교황과 의견을 달리했지만 교황의 정직과 관심은 반대를 완화시켰다. 그의 온화함과 인정미는 도덕적 권위를 더해줬다.

셋째 : 용기(Be courageous)

        교황은 자신에 대한 암살 미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에서부터 자본주의까지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그의 도덕적 용기 때문이었다.

넷째 : 솔선수범(Lead by example)

        교황은 타인에 대한 공감, 신뢰, 자기절제를 솔선수범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실행하는 사람이었지, 바티칸에 지시나 하는 행정가가 아니었다.

다섯째 : 탐구(Be knowledgeable)

        교황은 윤리학 교수였으며 극작가요 시인이었다. 두개의 박사학위를 받았고 폴란드가 나치에 점령됐을 때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지적이었고 자신의 핵심 신념과 그 신념대로 사는 데에 필요한 행동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여섯째 : 소통(Communicate)

        교황은 중부 유럽의 잠재적 민족주의와 소통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전달자였기 때문에 냉전을 종식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영혼 대 영혼으로 말했다.

일곱째 : 영감(Be inspirational)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지 못하거나 그들이 자신보다 큰 무엇의 일부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 못하면 감동적일 수 없다. 교황은 영혼의 관대함과 겸손함의 모범이었다.


간디의 ‘7대 사회악’과 요한 바오로 2세의 ‘7가지 리더십’엔 분명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양자로부터 제기된 일곱개의 항목들을 나열해놓고 서로 뜻이 통하고 의미가 부합되는 항목을 연결해보면 알 수 있다. 즉, 간디의 비판적인 부정문(negative form)에 요한 바오로 2세의 긍정적인 용어를 연결하면 일곱 개의 새로운 문구가 완성되는데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원칙없는 정치 + 용기 ⇒ 용기있는 정치(Politics with Being courageous)

2) 노력없는 부 + 솔선수범 ⇒ 솔선수범하는 부(Wealth with Leading by example)

3) 양심없는 쾌락 + 진실성 ⇒ 진실성있는 쾌락(Pleasure with Being genuine)

4) 인격없는 지식 + 지식 ⇒ 인격있는 지식(Knowledge with Character)

5) 도덕없는 상거래 + 소통능력 ⇒ 소통능력 있는 상거래(Commerce with Communicate)

6) 인간성없는 학문 + 영감 ⇒ 영감있는 학문(Science with Being inspirational)

7) 자기희생없는 신앙 + 희생 ⇒ 희생하는 신앙 (Worship with Sacrifice)


마치 간디의 ‘7대 사회악’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요한 바오로 교황이 실천한 일곱가지 덕목을 통해 우리에게 해결책(solution)을 주는 것 같지 않은가? 종교와 시공을 뛰어넘는 두 성자의 삶 - 동서양의 만남, 힌두교와 카톨릭의 만남-이 참다운 인성에 눈 뜨게 하고, 인류공영을 위해 우리가 경쟁해야 할 일곱가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첫 번째로 ‘용기있는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를 ‘인간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립을 조정하여 통일된 사회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모든 행동’이라고 정의할 때, 이 정치적 행동에는 각 사회마다 대원칙이 있다. 용기란 바로 그 원칙이 무너지거나 누군가가 침해할 때, 올바른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헤 소리를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이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또한 이는 정치지도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 결정자의 위치에 선 사람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직면하게 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자신의 결정 하나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앞에서 지도자는 절대고독을 체험한다. 절해고도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 그때 그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용기다. 용기란 부담을 지는 것을 함축한다.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용기이며, 그 부담을 기꺼이 지겠다는 것이 용기다. 이것이 곧 주역에서 말하는 지도자의 덕목인 ‘강인함’이며, 석가가 말한 지도자의 덕목 중 ‘앞장섬’인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용기있는 정치가 한 사람이 사회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링컨과 간디가 그랬고, 처칠이 그랬으며, 세종과 정조가 그러했다. 지금도 우린 절실히, 그리고 간절히 그런 정치와 정치가를 기대하고 있질 않은가.


두 번째로 ‘솔선수범하는 부’란 두말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올바른 가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부유층’을 말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 형성에 기여하는 덕목이다. 땀 흘리지 않고 편법과 불법적인 거래로 부가 형성되는 사회는 건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개인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솔선수범하는 부란 사회의 빈곤과 소외와 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있는 자가 솔선수범하여 나눔과 희생의 삶을 사는 것, 바르고 정직하게 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것까지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성실하게 자기 삶을 경주할 때, 그 사회엔 건강한 생존활동이 형성되고 평화와 안정이 깃든다. 생물학자이자 뛰어난 교육가인 데이비드 스타 조단은 이렇게 말했다. ‘지혜란 다음에 할 일을 아는 것이고, 덕은 그 할 일을 실행하는 것이다’ 라고. 솔선수범 그것은 곧 할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실천하는 덕이다.  


세 번째, ‘진정성있는 즐거움’이란 뭔가. 이것은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충족감을 주는 즐거움. 아니 희열에 가깝다. 이 사회에는 감각을 만족시키는 쾌락이 만연해있다. 이것들은 일상생활에 지치고 상처받은 인간들을 유혹한다. 음주, 흡연, 간음과 약물 등......하지만 그런 쾌락은 오래 가지 못할뿐더러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족도 주지 못해 결국은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만이 남을 뿐이다.


그런데 반해 정신적인 충족감을 주는 즐거움은 삶의 의욕을 북돋워주고 자존감을 높여서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정신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까. 문학과 예술 등 우리의 영혼을 살찌울 유익한 즐거움과 쾌락의 산물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은 성취감일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의 발행인 월터 배조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그 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라고. 위대한 문학가 앙드레 지드도 ‘행복의 비결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데 있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쾌락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삶과 인생을 성숙하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삶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즐거움이다. 한순간의 짜릿한 쾌락으로부터의 유혹을 이기고 나 자신과 시대와 인류사회를 살찌울 진정한 쾌락에 도전할 때, 우리의 삶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인격을 바탕으로 한 지식’이란,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교육문제와 직결된다. 인성교육이 선행된 지식교육, 그런 배움의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상당수가 남들보다 더 나은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공부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틈만 나면 아이들을 학원으로 외국으로 보낼 줄만 알았지, 집에서 작은 일 하나라도 기꺼이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지 못했다. 아예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사라져서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속에서는 염치와 예절을 알며 남들을 배려하는 법과 스스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운 세대는 사라졌다.


지금 이 덕목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백하다. 양심과 상식과 배려와 감사를 아는 인간성과 전문지식을 함께 갖춘 인간이 되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2세를 키우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 가지를 제안하자면 가정 안에서 공동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조금씩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가정교육, 가정문화의 새 흐름을 꽃피워야 한다.


다섯 번째, ‘소통능력이 있는 상거래’라 함은 정직한, 투명한 경제 질서를 말한다. 흔히 부정직한 거래를 암거래라 한다. 투명하지 못한 거래, 불법과 부정, 뇌물과 불합리함이 난무하는 시장질서는 상거래의 상식적인 의사소통과 재화의 흐름을 방해한다. 정직하게 땀 흘린 사람이 땀의 댓가를 받을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재화가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상거래에서의 투명성과 정직성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기업 내에서의 바른 재화 흐름, 기업과 기업간의 투명한 재화이동, 거래의 성사과정이 곧 그 사회의 도덕성과 가치기준을 형성한다. 깨끗한 상거래문화가 형성되어야 사회가 그만큼 건강해진다.   


여섯 번째, ‘영감있는 학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창조적인 학문이라고나 할까. 원리원칙을 밝히는 학문에만 머문다면 그 학문은 새장 안에 갇힌 새와 같은 것. 갇힌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이를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학문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를 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때문에 학문이라는 세계에는 이를 세상으로 인도할 영감이라는 길이 필요하다. 대학의 연구소 안에서 위대한 기술과 학문적, 과학적 성과들을 이루어내는 사람은 수천명이 넘지만 사실 이런 성과들을 세상으로 이끌어내 전기를 발명하고 비행기를 제작하며, 핸드폰이나 MP3, 인터넷, 방송망을 만든 사람들은 뛰어난 영감을 가진 몇몇 사람이 이루어낸 것이다. 뛰어난 영감, 그것이 위대한 학문적 성과와 만날 때, 인간의 삶은 한 단계, 한 단계 역사적인 도약과 진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곱 번째, ‘희생하는 섬김’. 이것에 대해 우리는 뚜렷하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일상생활에서는 가장 잘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가장 약한 면을 드러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의 예를 들어 설명해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 아무 곳에서나 마시지 않는다. 아무 종류의 커피를 마시지도 않는다. 콩의 종류도 가려가며 마신다. 자기 입에 맞는 커피를 만들어 주는 카페를 찾아가기 위해 커피값의 몇 배나 되는 석유값을 투자하며 차를 몰고 간다. 가는 동안은 아무리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참는 인내를 발휘한다. 비싸도 꼭 그 집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과 마음과 육체적 인내라는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결코 힘들어 하지 않는다. 십대들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쏟는 헌신은 거의 경탄스러울 정도다. 팔천원짜리 헤어컷을 하기 위해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미용실을 찾아가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의 옷을 부모가 사줄 때까지 단식투쟁을 하는 아이도 많다.


그에 반해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정작 그 만한 희생과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공하고 싶다. 가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라가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원하면서도 심지어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성공을 위해, 가정의 행복을 위해, 나라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위해 구체적이고도 치열한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이 한 잔의 커피보다, 일 년이면 유행이 지날 브랜드의 옷보다 더 못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쪽에선 은근히 ‘운’과 ‘부모의 재력’과 ‘배우자의 사회적 능력’과 ‘인맥’을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희생이 없는 섬김. 희생이 없는 숭배. 희생이 없는 신앙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간디가 자신의 평생을 인도독립과 비폭력무저항주의의 실천을 위해 희생했듯이, 요한 바오로 2세가 육신을 괴롭게 하는 갖가지 질병을 안고도 백 여개국을 순방하는 치열한 희생으로 종교간, 이념간의 벽을 허물었듯이. 희생은 얼핏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게 보이지만, 그것만이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되고, 정체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 대상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라. 그것이 희생이다. 그리고 그 희생위에서만 세상은 평화와 희락과 안정이라는 열매가 풍성이 열리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도 인도의 간디기념공원이나 바티칸에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념관에는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순례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들의 삶을 추모하고 그들이 이 땅에 남긴 위대한 족적을 기억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 그들이 일생을 바쳐 남긴 지혜가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을 힘써 지켜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행렬이 지구 끝까지 이어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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