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때 부르면 슬픔이 되고, 기쁠 때 부르면 기쁨이 된다”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전통민요이다. 아리랑의 ‘아리’는 고운이라는 뜻의 옛말이고 ‘랑’은 님을 가리킨다 해서 아리랑을 ‘님을 그리는 사랑 노래’라고 하지만 ‘민족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라고도 한다. 아리랑이 옛날 억울한 죽음을 당한 밀양 사또의 딸 아랑을 애도한 데서나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을 기리는 데서 또는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백성들이 세금 독촉을 듣기 싫어했다는 뜻의 ‘아이롱(我耳聾)'이나 부역 온 인부들이 부모처자가 있는 고향을 생각하며 부른 ‘아리랑(我離娘)'에서 유래했다는 각종 설을 듣고 보면 두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민요는 민속성을 가지면서 공동체의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된다. 따라서 아리랑은 애원이나 한탄의 소리이기도 하지만 항거나 비판의 소리이기도 하다. 남녀간의 이별이나 그리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내는가 하면 구한말 위기에 처한 나라의 비분을 읊으며 민족의 동질성을 지탱해왔고, 일제 강점에 저항해 민족의 독자성을 곧추세우는 외침으로 노래했다. 1926년 나운규가 연출하고 주연한 무성영화 ‘아리랑’은 한국 영화를 최초로 예술적 경지에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일제에 억눌린 민족의 가슴에 아리랑의 불꽃을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했다. 님 웨일즈는 일제 때 중국 공산당원으로 가입해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한 실존인물 김산(본명 장지학)의 삶을 ‘아리랑’이라는 소설로 묘사해냈고, 1995년 조정래는 일제시대 민족의 역사적 굴곡을 대하소설 ‘아리랑’으로 써내려갔다. 이후 아리랑은 체념과 한의 노래에서 민족의 미래를 꿈꾸는 울림으로 거듭나고 있다. 88서울올림픽 때 지구촌 곳곳에 울려 퍼졌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북 단일팀 단가로 남과 북이 함께 불렀다. 이어 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부터 2001년 시드니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아리랑’은 두터운 체제와 이념의 벽을 훌쩍 뛰어 넘는 통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전야제에서 조용필이 부른 ‘꿈의 아리랑’과 개막식에 울려퍼진 ‘상암 아리랑’은 희망의 노래로 온 세상을 수놓았다. ‘생의 한 가운데’를 쓴 독일의 대표적 여류 소설가 루이제 린저는 1980년과 81년 두차례 북한을 방문한 뒤 ‘루이제 린저의 북한이야기, 또 하나의 조국’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남과 북이 통일된다면 아리랑을 국가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아리랑이 한민족의 동질성을 가장 잘 표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최고 대중가수로 꼽히는 나훈아(57)는 미국의 팝,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소네, 일본의 엔카처럼 ‘뽕짝'이나 ‘트로트'로 불리는 한국 전통가요를 가장 친숙한 단어인 ‘아리랑'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제 아리랑은 남북뿐만 아니라 중국 동북3성, 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중앙아시아, 일본, 하와이, 미주, 멕시코, 쿠바 등지에 이르기까지 한겨레를 상징하는 대표적 언어가 되었다. 이렇게 아리랑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리움으로, 한으로, 풍자로, 항거로 그 모습을 달리하며 민족의 혼으로 자리잡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이런 아리랑 속에 함축된 의미와 멋을 제대로 읽어내고 찾아내고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중국 속의 한겨레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iwbba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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