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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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관광(7)
2013년 02월 21일 07시 18분  조회:8600  추천:6  작성자: 주청룡
조선관광(7)
판문점(板門店)

 
10일, 오늘의 관광은 판문점이였다. 오전 8시에 우리는 평양을 떠나 한 갈래의 고속도로를 따라 세시간 넘어 달려 개성에 도착하였는데 평양에서 개성까지의 거리는 160km였고 또 개성에서 판문점까지는 8km였다

판문점은 원래 이름도 없는 자그마한 산촌이였는데 거기에 남북을 오가는 손님들의 편리를 위해 널판자로 만든 주막과 점포가 있었으며 한자로 “板門店”이라는 간판이 있었으며 판문점이란 이름은 이렇게 지어진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나의 이름도 들어 못 보던 자그마한 산촌이 조선정전협정이 이곳에서 진행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곳으로 되였으며 지금은 국내외 광광명소로도 되고 있다.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가는데 비 무장지대가 있다. 비 무장지대에 이르자 초소가 있었는데 지도원이 내려서 관광통행증을 내 보이자 우리 팀의 세대의 뻐스는 무사히 통과되였다. 판문점 군사분계선까지 가는데 이런곳을 세번 지나야 했다. 어떤사람들은 이런곳을 지날 때마다 긴장감을 느꼈지만 나는 그런 긴장감은 없었다.

비 무장지대에 들어서자 나의 뒤에 앉았던 연길에서 온 한 관광객이 나의 어깨를 다치면서 판문점이란것이 바로 38선인가고 물었다. 이에 나는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에 있고 38선과 군사분계선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하면서 38선과 지금의 군사분계선이 생기게 된 경과에 대하여 해석하여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에 쏘련군이 북으로부터 북위 38도선까지, 미군이 남으로부터 북위 38도선까지 들어가면서 조선반도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라졌고 보통 그 경계를 38선이라고 하였으며 여기에는 북위 38도선이라는 지리적 개념이 포함되여 있으나 지금의 군사분계선은 1953년 정전협정을 하면서 당시 량쪽의 군대가 대치상태에 있던 곳을 경계로 하여 군사분계선을 그은 것이기에 지리적 개념이 내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금방 우리가 지나온 개성시도 지금은 북측에 속해 있지만 38선을 경계를 할 때에는 남쪽에 속했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것을 모르고 자기는 지금까지 남북경계를 38선이라고 하는가 하였다고 하였다.

비 무장지대 안에는 조선인민군들이 있는 몇채의 단층집들이 있었는데 우리를 안내한 집은 전문 관광객들에게 판문점과 군사분계선에 대하여 설명하는 곳이였는데 한 조선인민군 해설원이 우리에게 군사분계선과 비 무장지대에 대하여 소개를 하였다.

비 무장지대란 남북이 각각 군사분계선에서 2km 지역 내에서는 민간행사와 구제사업을 제외한 어떠한 적대시설이나 적대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되여 있고, 민간인과 군인을 막론하고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구간을 말한다고 하였다.
비 무장지대를 완충지대라고 하며 이 안에 들어와서 주의 할점들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는 벽에는 비 부장지대에 대한 도해(图解)를 가리키면서 설명을 하였다.

다음으로 다른 조선인민군 해설원이 우리를 데리고 그리 넓지 않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남쪽으로 더 가더니 나무들이 꽉 들어선 곳에 두채의 단층집이 있었는데 한집은 정전협정 담판회의장이고 다른 한집은 정전협정조인장이였다.

정전담판회의장으로 들어가는 길옆에는 “정전담판회의장”이라고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기념사진 한장 남기였다.

사진(1): 정전담판회의장
 

정전담판회의장 안에는 담판회의 석상이 있었는데 담판은 1951년 7월부터 진행되여 2년간 끌어오다가 1953년 7월 27일에야 정전협정이 체결되였다고 한다. 담판과정에 조선인민군측에서는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 지원군측에서는 중국인민지원군 총 참모장 해방(解方), UN군 측에서는 미군 륙군중장 W.K 해리슨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담판회의장에서 나와 우리는 좀 큰 집으로 갔는데 그 집 문앞에 “정전협정조인장”라고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사진(2): 정전협정조인장 기념비
 

정전협정조인장 안은 아주 넓었으며 록색의 모포 (毛布)를 펴놓은 커다란 상이 세개 놓여 있었다. 들어가면서 첫 상우의 유리상자안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가 꽂혀져 있었는데 조선인민군 대표의 자리이고 제일 안쪽 상우의 유리상자 안에는 UN국기가 꽂혀져 있었는데 UN군 측의 자리이고 가운데 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협정서를 교환하는 상이라고 한다. 1953년 7월 27일 10시에 조선측에서는 남일대장, UN군측에서는 W.K 해리슨 중장이 정전협정서와 기타 관련 문서에 조인하고 그날 저녁 10시에 김일성원수는 평양에서, 련합군 사령관 크라크는 한국 문산에서 정전협정서에 조인하고 이튿날 지원군 총사령원 팽덕회는 개성에서 협정서에 조인하였다고 한다.

조선전쟁 “정전협정”의 맨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서명이 있다.
朝鲜人民军最高司令官
朝鲜民主主义人民共和国元帅 金日成(签字)
中国人民志愿军司令员 彭德怀(签字)
联合国军总司令美国陆军上将 马克·克拉克(签字)
出席者:
朝鲜人民军与中国人民志愿军代表团首席代表
朝鲜人民军大将 南日(签字)
联合国军代表团首席代表
美国陆军中将 威廉·凯·海立胜(签字)

사진(3): 정전협정조인장
 

해설을 다 들은 다음 관광객들은 너도 나도 조인석에 앉아 기념사진을 남기였다. 나도 남일장군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기념사진 한장 찍었다.

사진(4): 남일대장의 조석에서
 

정전협정조인장에서 나와 우리는 뻐스에 앉아 군사분계선 련합안전구로 갔다. 정전후 조한 쌍방은 이곳에 직경이 약 800m의 “련합안전구”구를 앉히고 24채의 건물을 앉히였다고 한다. 북측에서는 “판문각”, “통일각”, 남측에서느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을 앉히여 각기 북과 남의 쌍방 련락기구를 설치하여 대화의 장소로 하고 있다.

“련합안전구”의 군사분계선 우에는 낮다란 단층집이 7채가 가지런히 앉아 있는데 가운데 하늘색 나는 세채는 판자집이다. 이 구간의 군사분계선은 너비 30cm 높이 10cm 의 콩크리트 격리대로 되여 있다. 군사분계선의 총 길이는 248km, 1291개의 황색 패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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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회담실로 들어가는 관광객들
 
사진(6): 군사분계선
 

가운데 판자집이 바로 쌍방의 회담실이다. 회담실은 대략 40m²되며 한 가운데는 긴 상이 가로 놓여 있는데 록색의 모포가 덮여 있고 상우에는 4대의 마이크가 놓여 있으며 그 상이 바로 군사분계선 우에 놓여 있다. 회담을 할 때에는 각기 이 가로 놓인 상에 마주 앉아서 담판을 진행한다고 한다. 회담을 진행할 때에는 엄숙하게 경계선을 넘지 못하지만 평시에는 이 집안에서만 마음대로 오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그날 그 집안에서 남북경계가 없이 마음대로 자리를 찾아 앉아서 해설원의 해설을 들었다.

사진(7): 회담실
 

나는 의식적으로 남북분계선을 건너 남쪽에 가 앉았다. 그 분계선을 건너는 순간 텔레비죤 화면에서 본 로무현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건너는 장면이 떠 올랐다. 로무현대통령이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것은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여 모든 백성들이 이런 경계선이 없이 남북을 마음대로 오갈수 있도록 하려는 그의 념원념을 표달한 것이 아니겠는가고 생각되였다.

사진(8): 군사분계선을 건너는 로무현대통령
 

또 그곳의 규정에 의하면 북측에서 관광객이 그 안에 들어왔을 때에는 남측에서 못 들어오고 남측에서 관광객이 들어왔을 때에는 북측에서 못 들어 간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날 우리 관광팀은 남측에서 들어 오기 전에 먼저 들어가느라고 길을 재우쳤던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판문각에 올라 군사분계선과 비 무장지대를 내려다 보았다. 비 무장지대는 60년간 사람의 손이 닿지않은 곳이여서 풀과 나무숲으로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이곳은 각종 동물들의 서식지로 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분계선을 보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란 이 사람을 경악하게 하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22만평방키로메터의 그리 크지 않은 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여 우리민족이 이렇게 서로 래왕할수도 없는 리산가족으로 가슴을 찢고 눈물을 흘리며 갈라져 살고 있지않는가?

1975년 유엔총회 제 30차 회의에서는 《유엔군사령부》를 해산하고 한국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데 대한 《조선문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되지 못하고 한시도 시름을 놓을수 없는 전쟁위험이 존재하여 있다.

내가 언제면 이 분계선이 없어지고 남북이 통일되여 마음대로 서로 래왕하면서 혈육의정을 나눌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멀리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안내원이 인제는 갈 시간이 되였다면서 모두 내려 오라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마음도 무거워졌고 판문각을 내려오는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사진(9): 판문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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