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일 때는 일부 여자가 잠자리 거절했지만 대통령이 되니 한명도 거절 않더라
이성훈 특파원의 파리산책
프랑스 대통령들의 화려한 여성편력
지난 10일 주간지 클로저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여배우 쥘리 가예와 비밀연애를 해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기사 속 사진에는 올랑드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었다. 보도 직후 올랑드가 보인 첫 반응은 “사생활 침해”라는 것이었다.
결별 위기를 맞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왼쪽), 프랑수아 올랑드의 새 애인 영화배우 쥘리 가예(오른쪽)
사실 이 발언은 지극히 프랑스적(的)인 반응이다. 만약 다른 나라였다면, 일단 발뺌을 하거나 최소한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여성 스캔들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프랑스는 달랐다. 많은 대통령이 외도를 했지만, 문제가 된 적이 별로 없었다. 프랑스 사회와 언론이 모두 개인문제라며 묵인했기 때문이다. 올랑드도 그런 반응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까지 동거녀 신분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온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가 계속 엘리제궁에 머물러야 하는지, 올랑드와 가예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프랑스 사회도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의 이성(異性) 문제를 공적인 이슈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의 여성 편력
프랑스의 현재 정치 제도가 시작된 제5공화국(1958년) 이후 올랑드는 9번째 대통령이다. 약 한 달간 임시 대통령을 지낸 알랭 포에르를 제외하고 8명의 대통령 재임기간 가운데,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 집무 공간)은 늘 스캔들의 중심이었다. 이런 소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샤를 드골이 유일하다는 평가다. 군인 출신인 샤를 드골은 평소 사생활에도 엄격했다. 아내였던 이본 드골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내조에 전념했다. 비서 1명만 두고 생활하며 자동차도 손수 운전할 정도로 검소했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퍼스트레이디 이본 드골과 샤를 드골(위),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다니엘 미테랑과 프랑수아 미테랑(아래)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은 아내 클로드 퐁피두가 스캔들에 휘말렸다. 1968년 유명배우 알랭 드롱의 경호원이던 마르코빅이라는 남성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살해된 이유가 당시 총리였던 퐁피두의 부인 클로드의 외도 사실을 마르코빅이 알고, 이를 외부에 발설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실제 마르코빅의 살해범과 살해 이유는 밝혀진 것이 없지만, 퐁피두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관련된 소문은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퐁피두에 이어 대통령직에 오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공인된 바람둥이였다. 파리에 있는 살롱의 수만큼이나 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내가 장관이었을 때는 일부 여성들이 나를 거절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여배우 마를렌 조베르의 집을 방문해 밀회를 즐긴 후, 손수 페라리 자동차를 몰고 엘리제궁으로 들어가다가 우유배달차와 추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지스카르 데스탱의 자동차 옆자리에는 조베르가 있었다는 소문이 확산돼 나갔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대놓고 ‘두 집 살림’을 한 경우이다. 열혈 사회당 당원이었던 다니엘과 결혼한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미술사학자인 안 팽조와 외도를 했고, 1974년에는 딸 마자린을 낳았다. 1981년 취임 후에도 팽조와의 관계는 계속됐다. 미테랑은 실제 재임 기간 중 대부분의 밤을 엘리제궁이 아닌 팽조의 집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테랑의 외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부 매체가 이를 보도했지만, 주요 언론들은 이것이 사생활에 관한 것이라며 보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르 몽드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직무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한, 대통령의 외도는 국민의 알권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자크 시라크는 혼외자 소문이 따라다녔다. 일본 왕실과 관계가 있는 여성과 비밀 연애을 하며 딸을 낳았다는 풍문이 있었다. 실제 시라크는 거액이 예치된 일본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딸과 함께 생활하기 위한 자금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또 모로코 여성과의 사이에 아들을 두고 있다는 소문도 지금껏 따라다니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현직일 때 이혼과 재혼을 한 대통령으로 기록돼 있다. 2007년 취임 당시 부인이었던 세실리아 아티아스는 사르코지가 파리 근교 뉘 쉬르 센느 시장일 때 결혼식 주례를 선 신부였다. 하지만 이후 이 사르코지와 세실리아는 맞바람을 피웠고, 실제 대선 당시 세실리아는 선거운동을 거의 돕지 않았다. 결국 취임 몇 달만에 두 사람은 갈라섰다. 이혼 후 사르코지가 새 퍼스트페이디로 맞아 들인 이가 이탈리아 출신의 모델 겸 가수였던 카를라 부르니였다.
대통령 재임 중 결혼한 카를라 브루니와 니콜라 사르코지.
올랑드는 국립행정학교(ENA) 동기생인 세골렌 루아얄과 약 30년간 동거하며 4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들은 정식 부부관계는 아니었다. 정치적 입지는 루아얄이 더 탄탄했다. 루아얄은 2007년 대선에 사회당 후보로 나서 사르코지에 패했다. 올랑드는 당시 사회당 총재로서 루아얄의 선거 운동을 돕기는 했지만, 이미 그 때 정치부 기자 출신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루아얄이 대선에서 패배한 지 몇 달되지 않아 올랑드는 루아얄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트리에르바일레르와 공식적인 동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도 올랑드가 여배우 가예와 밀애를 즐겨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종착역으로 향하는 분위기이다.
프랑스 정치인에는 불륜도 경쟁력이다?
유독 프랑스 정치인 사이에서 이성과 관련한 스캔들이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개방적인 성(性)문화를 꼽을 수 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이른바 ‘양다리’는 도덕적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에는 관대하다. 이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남녀 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정치인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그 동안 정치인의 스캔들을 사생활로 묵인해 온 언론의 탓도 있다. 프랑스 언론은 영국이나 미국 언론과 달리 정치인의 이성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대통령의 여성 편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이를 정면에서 다룬 적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고위 공직자의 사생활은 공적 영역에 속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요 언론들도 이번 올랑드 스캔들은 비중있게 다루었다.
좀더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2006년 프랑스에서 ‘섹서스 폴리티쿠스(Sexus Politicus·섹스형 정치인간)’라는 책이 출판됐다. 두 명의 탐사전문 기자인 크리스토프 뒤부아와 크리스토프 들루아르가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해서 역대 대통령과 주요 정치인의 여성 편력을 다룬 것이다. 그 동안 시중에 떠돌던 풍문까지도 모두 기술했다.
저자인 뒤부아는 프랑스 정치인의 여성 편력이 유별난 이유를 권력욕에서 찾았다. 그는 “권력을 쟁취하는 것과 여성을 획득하는 것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전통이 프랑스에 있다”며 “많은 여성과 관련한 무용담은 정치적 성공과 같이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적었다. 또 성적인 매력이 있는 남성이 여성을 쟁취하고, 결국 유권자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했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부진한 편이다. 정부와 기업의 주요 직책을 대부분 남성이 장악하고 있다. 결국엔 고위직 남성의 여성 문제에 대해 일반인들은 관심을 갖지 말라는 무언의 합의가 프랑스 사회에 존재한다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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