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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모택동의 이야기(24)
2023년 10월 14일 10시 47분  조회:271  추천:0  작성자: 회령
       실화
                                           모택동의 이야기(24)
                                                                                                                    회령
 
모택동의 첫 안해
 
1936년 섬북에서 모택동은 에드가와 스노(미국 기자)의 채방을 접수할때 다음과 같은 한단락의 말을 하였다.
 
“내가 14살때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20세의 처녀를 안해로 정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종래로 그와 함께 부부생활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안해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생각지도 않았다.”
 
모택동이 말하는 이 녀자가 곧 그의 첫번째 안해로서 이름은 라일고라고 한다. 모택동과 라일고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07년 모택동은 14살이 였는데 당시 농촌에서는 성인으로 인정 했다. 당시 그는 학교를 접고 집에서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아버지(모순생)를 도와 회계 장부를 하였다. 그때 그의 어머니(문칠매)는 신체가 줄곧 허약했는데, 집에는 녀자가 없고… 하여, 가무일을 잘 할 수 있는 녀자가 급히 수요되는 형편이였다. 약삭빠른 모순생은 이에 큰아들 모택동을 장가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가 선택한 며느린즉 바로 라일고다.
 
라일고의 부친은 라합루라 하는데 향촌에서는 지식분자인 셈이였다. 하지만 그는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았다. 라일고의 어머니 모씨는 소산충 모씨가문의 사람이였다. 당시 농촌에서는 친척에 더 친척이 되는것을 제창하였다. 그때 라일고는 20살의 처녀로서 예쁘게 생긴 실팍한 처녀였다. 그리고 집일을 잘 하는 처녀였다.
 
라일고는 모순생의 마음에 너무도 딱 들었다. 그러나 모택동은 이 혼인을 아주 싫어 했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과 친척들의 면목을 존중해서 이듬해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기까지 했다.
 
라일고는 시집온후 인차 시어머니의 훌륭한 일손이 되였다. 동시에 그는 남편인 모택동을 끔찍히 섬겼다. 그는 또 모택동의 제수인 왕숙란(모택민의 처)과도 매우 사이가 좋았다. 하여, 시부모들은 라일고를 무척 귀여워 하였다.
 
하지만, 모택동은 몹시 고민을 하였다. 비록 혼례까지 치뤘지만 모택동은 부부동침을 한번도 하지 않았고 농사일과 회계장부만 골몰하였다. 그리고 그는 기갈이 든 사람같이 소산충의 책이란 책은 다 빌어다 보고 학습을 하였다. 이러는 과정에서 모택동은 많은 사회문제를 사고하기 시작했고 나라의 전도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가지기 시작했다.
 
라일고는 시집온후 신체가 줄곧 좋지않았다. 하여 본가에 가서 조금씩 휴식하기도 했다. 1910년 정월 초이튿날 라일고는 세균성리질로 불행한 혼인에서 영영 떠났다. 겨우 23살이였다.
 
1910년 가을, 라일고가 죽은지 반년 남짓해서 모택동은 친척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끝내 설복하여 상향동산고등소학당에 입학하여 학습하게 되였다. 이때로부터 그의 인생은 새로운 페지를 시작한다…
 
모택동은 기실 라일고를 매우 동정하였다. 라일고의 죽음은 그로하여금 봉건혼인을 몹시 증오하게 하였다. 다음의 사실에서 우리는 모택동의 심정과 사상을 충분히 보아낼 수 있다. 1919년 11월 14일, 장사 남양가 안경방에서 일하던 21살 조오정은 부모의 독판치기 봉건혼인에 불복하여 여러번 반항했으나 아무 쓸모도 없는 상황에서 시집 가던날 가마안에서 목을 베여 자살하였다. 이 사건은 사회의 강렬한 반향을 이르켰다. 극도로 격분한 모택동은 호남의 여러 큰 신문에 10여편의 평론문장을 발표하여 여러면에서 봉건혼인제도의 불합리성을 질타 하였다.
 
모택동은 비록 라일고와의 혼인을 승인하지 않았지만 모씨가문에서는 가족으로 인정하였다. 족보에 라일고를 모택동의 첫배우자로 기록했고 양개혜와 낳은 셋째아들 모안룡을 라일고의 이름 아래에 기록하기까지 했다. 모택동은 라일고가 죽었지만 그의 본가와의 정을 부인하거나 끊어버리지는 않았다. 반대로, 긴세월동안 정은 더욱 풍부해 지고 승화되기까지 했다.
 
1925년 2월부터 8월사이 모택동은 소산에서 농민운동을 할때 여러번 라합루의 집을 방문했다. 어느 한번 모택동은 라합루, 라립방(라합루의 동생.), 라석천(라합루의 조카.) 등에게 반제, 반봉건 혁명사상을 선전하면서 제국주의와 지주계급은 서로 결탁하여 가난한 농민들을 압박착취하기에 우리는 일떠나서 반항하여야 하며 그래야 살길이 있다고 거듭 말하였다. 이에 라립방은 “윤지선생! 당신이 우리를 일떠나서 반항하라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패가망신을 하게 되는게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모택동은 젓가락 한개를 들고 젓가락 한개는 꺽기 쉽지만 한묶음은 꺽을 수 없다고 생동하게 혁명도리를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깨도가 되여 머리를 끄덕였다.
 
모택동의 지도하에 라립방, 라석천은 얼마후 농민협회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그해 겨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7년, 마일사변후 소산충은 백색공포에 휩싸였다. 국민당반동파들은 라합루의 집을 수색하고 라석천을 체포하여 갖은 학대를 하였다. 하여 50여세의 라합루는 가정을 이끌고 동정호 부근으로 도망하고 라석천은 많은 벌금을 하고 겨우 감옥에서 풀려 났다…
 
1940년, 라석천은 모택동에게 편지를 보내여 연안으로 가서 혁명을 하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 모택동은 당지에서 비밀조직을 세우고 지하투쟁을 하라고 답복해여 주었다. 그러면서 얼마의 돈과 쌀 200근을 지원해 주기까지 했다…
 
새중국이 성립된후 모택동은 라합루에게 편지를 보내여 북경에 한번 유람을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감하게도 라합루는 1943년 12월에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하여, 라석천이 라씨가문을 대표하여 북경으로 왔다. 당시, 모택동의 많은 친척들이 북경에 오고파 했으나 모택동은 다 사절하고 라석천만 초청하였다. 이는 모택동이 라일고에 대한 미안의 사과라고 볼수도 있겠다.
 
1950년 5월 모택동은 장자 모안영을 고향에 보내여 친척들을 만나보게 하였다. 그때 모택동은 라석천을 꼭 만나보라고 특별히 당부 하였다. 모안영은 고향에 간후 라석천을 만나 아저씨라고 친절히 부르며 차엽과 돈 20만원을(구 화페) 드렸다. 당시 라석천은 이미 61세로 여러가지 병으로 고생했고 식솔이 많아 생활은 십분 어려웠다. 이런 정황을 안 모안영은 그의 아들 하나를 데리고 가자고 하였다. 이에 라석천은 농사도 해야하거니와 지방에도 공작이 있다면서 나라에 시끄러움을 끼칠 수 없다면서 극구 사절 하였다. 라석천의 자세한 소식을 들은 모택동은 즉시 300만원의 돈(구 화페)을 보내여 급한대목을 넘기게 하였다. 훗날 왕숙란이 북경에서 고향으로 가서 초대소 사업을 할때 모택동은 그에게 특별히 라씨네 집을 자주 찾아 보라고 당부 하였다. 왕숙란은 모택동의 당부를 명심하며 라씨네 집을 자주 찾아뵙고 쌀이며 콩 등 량식을 보탬하여 주었다.
 
모택동은 일세의 걸출한 위인이시다. 그러나 그이에게도 일반 백성들과 같은 접품과 인정이 있었다. 그는 력사를 존중하며 친척의 정을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이점은 측면에서 그이의 위대함과 넓은 흉금을 돋보이게 하였다.

                                                                                                               2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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