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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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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진비래
2014년 01월 02일 16시 19분  조회:2324  추천:2  작성자: 회령
                    실화
                                                 흥진비래
                                                            ㅡ백성들의 부정부패 점경
                                                                                                               회령
 
    세상의 만물, 만사란 흔하면 첯째로 돈값이 없고 둘째로는 희끔하지 않다. 소위 열점화제라는 부정부패를 놓고 봐도 그럼을 즉각 알수 있다. 어느 현장나부랭이가 백만원을 횡령해 먹었다 해도, 몇억대를 꿀꺽 했다해도 막밀어 열넉량 금새로 “그느마새끼 잘 먹었군.”하며 지금 사람들은 시큰둥해한다. 똥돌이네 돼지새끼가 똥물을 싼다는 소리보다도 회끔해 하지 않는다. 여개방차로 어느 성장이 첩을 열개를 했다해도 “흐흐흐 그새끼, 신기가 좋군.” 어느 서기가 매관매직으로 돈도 벌고 집도 벌고 별장도 네댓개 있고 자가용도 대여섯대 굴리고 첩도 너덧개 얻었다 해도 “그럴내긴데… 뭘!” 하며 사람들은 띠끔해 하지 않는다. 치매류행병이 돈것도 아니고 한국 드라마처럼 기억력상실증, 불감증에 모두가 걸린것도 아니고 도대체가 왜서 이모양 이꼴이냐?! 전기진들에 궁둥이가 찔린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껑충 뛸줄 알았는데… 코방귀도 뀌지않으니… 제길, 싱겁지 않은가. 부정부패 화제는 이젠 인기가 한물 건너간지가 한참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즉슨인즉 “흔하기 때문이다!”
    당정간부들 속에서 부정부패분자가 륙속 꾀여나서 당정간부들의 형상을 흐리워 놓는것은 사실이다. 하여 사람들은 흐린면을 보고 간부대오를 마치도 까마귀 무리처럼{검은것들} 인정하며 시들해 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사실대로 말해서 개차반 같은 망나니 부정부패간부는 필경 한줌이다.
    그건 그렇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정부패 하면 그건 간부들 일이거니 하던것이 지금은 백성들 속에도 부정부패분자가 있다고 하니… 이거 대방향이 틀리는거 아닌가?... 자고로 백성은 사회의 가장 최하층 인생들로서 제한몸 추스리기도 바뿐데 어느여가에, 무슨힘으로 부정부패를 해 먹는단 말인가. 단돈 몇원을 도둑질 하거나 사기를 쳐도 “에끼, 이눔! 불상놈 같으니라구. 백주에 남의 피땀을 횡령해?! 몽둥이 맛을 좀 봐야것다.”하며 벙거지사령{경찰}들이 입을 씰룩이며 눈알을 히번득 거리였다. 백성은 엄히 다스린 것이다. 하여 백성들은 도덕과 법을 범보다 더 무서워 했다. 량심에 꺼리끼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극한에 몰려 악이나면 벌떼같이 일떠서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온순하고 정직하고 순결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 졌다. 그들속에도 가증스럽길 짝이 없는 부정부패분자가 있는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사실이다. 어데서 배워먹은 못된 버릇이냐?!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고 들보가 구불면 연목가지가 삐뚤기 마련이다. 백성부정부패분자의 쓰푸(선생)는 간부부정부패분자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일단 배우기만하면 사생관계가 대뜸 “거멀”(형제), 정부(첩)관계로 급변한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일심동체가 된다. 텔레비에서 나오는 말과 같이 도적배에 올랐으니 죽으나 사나 함께하는 수밖에. 수밖에가 아니라 달갑게 그전날의 령도와 피령도(군중)가 한전호속의 친밀한 전우가 되여 생사고락을 함께 하게 된다.
    50대의 허영숙은 농촌처녀로부터 소위 성공했다는 아낙네다.
    문화대혁명 때문에 초중공부도 바로 못했지만 그에게는 당돌한 면이 있었다. 어린계집애가 홍위병완장을 끼고 사내애들과 섭쓸려 다니더니 얼마후에는 시가지에 가서 무슨 반란패 맹장이 되였는데 4인패가 거꾸러지기 전해 국경절날 배가 볼록해 가지고 반란패전투대 대장인 시병원 보이라공 청년한테 시집을 갔다. 잔치후에도 그는 계속 혁명을 하고 싶었지만 소위 친밀한 전우라든 남편이 주먹질 발길질을 들이대면서 억눌렀고 배속의 약진패가 또한 발버둥질을 했다. 그리고 항상 소태씹은 벙어리 상통을 하고 찡그리며 부정한 물건짝을 보듯하던 시부모들은 너들끼리 살라면서 내쫓았다. 주객관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는 열중하던 혁명을 아쉽게도 할수 없었다. 하여 공산주의를 위한 혁명전선에서 부득불 생계를위한 생활전선으로 “전업”을 했다.
    그때로부터 그의 “창업”은 시작 되였다.
    영숙은 몇년간 혁명을 한답시고 생산대(마을) 집체로동을 안 한 것은 말할것도 없고 집에도 바로 오지 않았지만 년말 민식(량식)분배에서는 한톨 적을세라 이악스레 제몫을 따지였다. 지어는 돼지고기 추렴에서 두번이나 제몫을(두냥) 주지 않았다고 애비벌 되는 정치대장과 한바탕 행패질까지 하였다. 그것은 림표가 죽은해 추석과 설에 마을에서는 몇년만에 어쩌다가 돼지를 잡았는데 영숙이가 외지에 있다고 추렴에서 빼놓았다. 그때 비위장판인 그의 어머니가 영숙이 몫을 달라고 하였다가 마을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든 것이다. 이리붙이고 저리붙이는 영숙이 궤변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 혁명세월에는 미운대로 그의 민식을 주는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혁명이 아니, 4인패가 거꾸러 지자마자 인심이 쓱싹 변해 버렸다. 사람들은 반란패를 특히 맹장으로 날뛰던 사람들을 똥묻은개 보듯 꼴사납게 보기 시작했고 지어는 증오까지 했다. 마을에서는 영숙이 민식을 줘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여론이 짜ㅡ 했다. “일하지 않는자는 먹지 말라.”고 레닌께서 교시 했다고하며 영숙이를 즉각 마을로 돌아와서 대채건설의 위대한 혁명에 참가케 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민식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치들은 이죽거리며 “그래서야 쓰나… 하기사 모주석이 ‘본단위에 돌아가서 혁명과 생산을 틀어 쥐라.’고 언녕 최고지시를 내렸지만 그간 영숙이야 강청을 따라 외지에서 혁명하며 수고 했는데… 어디 그뿐인가! 반란파 후대까지 만드느라 고생도 했겠는데 민식을 전부 입쌀로 줘야 한다니. 영양보충을 하게스리…”하고 킬킬거리며 빈정대기까지 하였다.
    이듬해 1월, 총결분배 직전 생산대에서는 올해부터는 량식대를 현금으로 갔고 와서 비로동력 표준으로 민식을 타 가라고 통첩을 하였다. 원래는 농망기(파종 모내기 기음 가을 탈곡)에는 생산대에 와서 꼭 로동에 참가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는데 정치대장이 반대를 해서 그조목은 취소했다. 가히 말해서 생산대의 결정은 너그럽고도 인성적이 였다. 그때세월에 생산대 사원으로서 외지에 가서 놀면서 민식을 타 먹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였다. 현장, 성장의 녀편네래도 농민이라면 적어도 농망기에는 생산대 일에 참가해야했다.(당의 정책규정임.) 돈만내면 량식을 주는것이 아니였다.
    그때의 군중(백성)들은 령도요 권력이요 보복타격이요 하는걸 두려워 하지않았다. 아니, 몰랐다고 말하는것이 더 적절할것같다. 지금군중들처럼 눈치를살피며 겁나하며 참으며 당하기만하며 지어는 무감각하며 이러지 않았다. 그때의 군중들은 우둔해서(정의감이 들끓어) 범 무서운줄을 몰랐다. 령도가아니라 하내비래도 틀렸다고 인정되거나(탐오 등 위법행위 즉 부정행위) 괘씸하다고 보면(오입질 등 부도덕행위 즉 부패행위) 마구 줄욕을 퍼붓고 두드려박죽을 했다. 즉살통을 먹인것이다. 지금군중들은 그렇지 않다. 겁쟁이라 할가 서울놈보다 더 약아빠졌다고 할가 하여튼 먼저 자기의 리,해,득,실부터 계산한다.
    곁가달로 말이 나간바에 한두마디를 좀 더 한다면 모택동시대의 음특한간부들은 상하가 서로 눈치를 살피고 무서워 하고 감추며 개별행동을 했다. 그리고 군중의 눈, 입, 귀를 제일 무서워 했다. 그들의 눈에 나고 말밥에 오르면 큰코 다치기에 말하자면 군중의 감독을 항상 느끼며 조심했다. 이를테면 “자률성”이 높았다. 지금의 부정부패간부들은 꼬장(검거적발 밀고)과 매체를 무서워하고 “쌍규”를 제일 겁나한다. 여럿이 함께 해 먹거나 서로가 쪼간을 알기에 말하자면 심지배명(마음이 알고 배안이 밝다.)하기에 서로 꺼리지 않는다. 군중이고 상급이고 나발이고 든든한뒤심(인맥)만 있으면 조선에서 만든 원자탄을 두어개 차고나 있는듯 “나 세상에서 두려운것 없어!”하고 코를 힝! 힝! 거세게 분다. 하지만 든든한뒤심이 어디 그리 흔한가?! 하여 재수없는 놈은 끝내 사달을 치고야 만다.
    객적은 잡소리는 그만하고 영숙이 민식을 계속 말해보자. 전투대대장으로 죽을둥 살둥 모르고 날뛰던 남편은 4인패처럼 하마트면 감옥으로 갈번했다. 검사교대서를 몇번 써서 바치고 공안국에도 몇번 갔다 오더니(총문제때문에) 기가 아주 죽어서 담이 콩알만해 졌다. 그간 두어달은 영숙이를 안지도 못했다. 후에 반란패두목 둘이 잡혀가고 남편은 무사 했으나 사람들을 꺼리고 겁나 하였다. 자기가 때린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쳐들어 온다며 전쟁히스테리처럼 악몽을 꾸기도 했다. 혼자서 매일 똥빼주를 마이고(생피주를 제일 좋아하지만 돈이 없어 못먹었다. 혁명시절에는 잘먹었다.) 영숙이를 닥달질하기가 일수였다. 그는 무슨벼슬을 한자리 할줄로 알았는데 그것이 갑자기, 철저히 개판이 되고 오쟁이를 뒤집어 쓴것이 마음속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내려간다기보다 점점 더 살아나서 수시로 속이 부글거리였든 것이다. 영숙이가 펄네(바람쟁이)인줄 알면서 건드린 것이 그만 아이를 배고 결국은 녕악한 영숙이를 떼쳐 버리지 못했다. 산다는것이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였다. 시교 농촌마을에서 코구멍만한 헛간을 그저빌려 사는것이 다행이긴 했으나 10여리를 자전거를 삐거덕거리며 출근하는것이, 그리고 쥐꼬리만한 월급은 눅거리 재탄(석탄가루)도 절약해야 했다. 생산대의 통첩을 아버지 편지로 전달받은날 영숙이는 정신이 아뜩해 났다. 저녘에 시래기장물을 놓고 강술을 마이는 남편에게 편지를 보였드니 네량식대는 네힘으로 해결하라는 통첩을 하는 것이였다. 시집도 본가도 도와줄 처지가 못되고 세상천지에 구걸할 곳도 없었다. 모주석의 기정방침대로 한다고는 했지만 문화대혁명은 끝나버렸다. 입살이 아무리 드세도 쓸모없었다. 영숙이는 아이를 안고 얼음장같은 구들에 모로누워 쿨쩍쿨쩍 울었다. 그해 민식은 사정과 악다구니를 겸용하여 걷곡으로 겨우 300근을 탔다.(조 벼 강냉이. 쌀로는 200여근 됨.) 영숙이는 “대부분이 량식대빚을 지는판에 나라고 왜서 빚을 지지 못하겠는가?!”하고 생산대 간부들과 행악질한것이 그래도 은을 냈다고 생각 했지만 그것이 아니였다. 간부들과 마을사람들은 아이를 업고 다니며 울고불고 사정하는 영숙이를 불쌍히 여긴 것이다. 정치대장은 “사람을 굶어 죽으라 할수 있는가!”하며 마을사람들을 설복 했다.
    량식대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해 봄부터 영숙이는 장마당에 매달렸다 자산계급간상배를 낳는 자본주의꼬리라고 죽게 욕은 했지만 시가지 사람들은 장마당이 없으면 하루도 살수없다. “파4구”(낡은사상 문화재 풍속 습관을 때려부쉬는것)후에 때려부수다가 그만둔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지 영숙이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 영숙이는 아이를 업고 남편이 얻어다 준 낡은밀차를 끌고 채소장사를 시작 하였다. 공부골은 없어도 장사골은 터서 영숙이는 남편보다 얼마씩 더 벌게 되였다.(남편의 월급은 30원) 그는 채소장사에다 김치, 물고기까지 품목을 늘였다. 장마당에는 장세 받는 간부와 위생비 받는 간부가 하루를 거를세라 나와서 돈을 받아 갔는데 집법이 어찌도 철저한지 세투리 두어근, 닭알 여나무개 갖고 온 촌 할머니에게도 사정이 없었다. 영숙이가 보건대 어떤 촌 로친네들은 장세값도 버는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우연히 볼라니까 간부어른들이 어떤장꾼들앞은 슬쩍 지나가는게 아닌가! 영숙이는 대뜸 깨도가 되였다. 그는 김치포기나 고구마 몇개로 간부를 친했다. 그후부터 장마당은 그의 집마당이 되였다.
    영숙이는 이 간단한 동작에서 커다란 “학문”을 터득하였는데 그때는 “뒤문치기”라며 너절하고 비렬한 짓거리로 치사스럽고 더러운 것으로 보았으나 그것이 사실은 지금 널리 보급되고 활용되는 “관계학”이라는 대단한 학과의 분과였다. “관계학”에는 “정관계학”과 “부관계학”이 있는데 영숙이는 처음부터 “부관계학”을 배웠다. 학자들은 1장 1절하며 왕바신 신바닥 두께만큼 두터운 저작을 써 내지만 영숙이는 수영중에서 수영을 배우듯 실천속에서 배우며 연찬하고 제고 하였다. 하다보니 그는 “부관계학”인지 뭔지한 그런건 듣도 보도 못했으나 그것의 기본내용인 부정부패 수단은 상당히 알고 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것은 작으마한 개장집을 세맡아 경영하면서 부터다. 개방정책이 방금 내려온 초기여서 개장집은 두세개 뿐이고 영업은 불이나듯 대호황이였다. 그는 손에 밑천이 있게 되자 담이 대뜸 커지였다. 은행돈을 꿔서 개장집을 늘이고 술집 노래방 카페 사우나까지 경영항목을 확대해 나갔는데 어느것이나 경기가 호황을 이루었다. 첫볼기를 맞으라는 말과같이 초기에, 희귀할때 시작한데다가 그의 부정부패수단이 대담하고 다양해서 장사가 잘 되였다. 장사에 수요되는 사람이기만 하면 초면이고 구면이고 화끈히 들어 붙었다. 거기에는 각부문권력자는 두말도 할것이 없고 공가의 승용차운전수, 수도, 전기세 받는 사람까지도 있었다. 영숙이 관계망은 그야말로 사통팔달이였다. 장사를 잘하는 그의 능력 수단을 사람들은 창업가니 기업가니 녀성강자느니 하고 감탄을 했다. 하지만 기실 그의 비결ㅡ법보는 간단한 것이였는데 그것은 “먹은쇠가 똥을 싼다!”는 것이였다. 그것은 공짜로 먹이고 주는(궁둥이도 포함해서) 그것뿐이 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할가,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뛰여 나온것이 법제강화와 뚱딴지 같은 규률검사위원횐지 뭔지하는 밉살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짝이 였다. 시에서 제일 처음으로 교통국장이 꺼꾸러 지드니 상업국 세무국 은행 공안국 전업국 수도국 소방대 환보국 위생방역소에서까지 크고작은 부정부패분자가 잡혀 나왔다. 수두룩한 문제들은 모두 영숙이와 관련이 있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지만 다 그런건 아니고 나쁜말만 그렇다. 누구네 처녀가 음전하다고 하면 그건 주변에서나 알지만 밤중에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새벽에 벌써 시가지 절반이 훤ㅡ 하게 안다. 영숙이는 시가지가 짜ㅡ하게 뉴스인물 인기인물 명인이 되였다. 그의 사적에서 제일 불거져 방송되는 것은 바람피운 장면이였다. 사태가 이렇게 급변하자 말그대로 사처에서 아낙네들이 입을 앙다물고 찿아 왔다. 그들은 남편이 잡혀 갔거나 나떨어진것이 마치도 영숙이 때문이기나 한것처럼 모든 분풀이를 그한테 해 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네댓이 작당을 해 가지고 집으로 드달겨 처들어 오는데 아주 영숙이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언니 아재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였다. 이리저리 피하고 숨어도 용케 정찰하고 달려드는데 집은 전쟁터가 되고 매일같이 수라장이여서 도무지 살수 없었다. 영숙이는 궁여지책으로 기업을 대충 처리하고 북경으로 도망을 쳤다. 말하자면 진짜로 쌰해를 했다. 아래배 팬티속에 공상은행 목단카드를 꽂고 왔기에 배짱은 기장밥 먹은것보다 더 든든 하였다. 간경화로 앓는 나그네와 딸애는 시집이 있기에 별문제 였다. 그야말로 뒤근심이 없고 싸개통에서 빠져나온것이 영숙이는 거뿐하고도 새힘이 솟아 났다.
    그는 스스로 두번째 창업을 시작한다고 뼈무르며 조양구 어느 시장에서 매대를 내 왔다. 배운재간이 투전놀이라고 그는 채소장사에 김치 짠지 무침개 물고기까지 벌려놓고 아가씨 둘을 고용 하기까지 했다. 언물고기는 일률로 어제 한국과 조선서 들여온 생선이라며 소리쳤다. 그래서 퉁을 맞으며 망신도 했지만 지금와서 그따위는 그에게 있어서는 개구리 낯짝에 물치기 였다 장사는 그런대로 되긴 했지만 이미하던 기업과는 비교할 여지도 안됐다.
    그러던중 영숙이는 외국려행객을 상대로 약장사를 하면 뭉치돈을 곽지로 끈다는 소리를 얻어듣게 되였다. 그는 려행사를 통하여 몇개 약방을 견학한후 어느 약방에서 일하는 중년의 한족사내와 화끈하게 손을 잡게 되였다. 한족사내는 북경토배기로 관계망이 꽤나 있는치였다. 그들은 꽤 유명한 병원에 들어붙어 소위 “의료보건자문쎈터”라는 위 과실을 꾸리였다. 그들은 한국려행객들을 전문상대로 사기칠 작정을 했든것이다. 한국려행객들이 특히 약을 잘 산다고 했다. 그들은 어중이 떠중이 퇴직의사들을 주어오고 굴러먹는 조선족아가씨들을 모집했는데 의사들은 번대머리에 돋보기를 건 늙은일수록 상품이였다. 그것은 박사도사 교수 전문가로 둔갑 시키기에 편리했기 때문이다. 아가씨들은 일률로 약제사라고 포장했다. 그리고 소위 강사라는것을 두었는데 강사는 잘 불어대기만하면 된다. 려행팀이 들어오면 학생들처럼 실내에 앉게하고 대머리강사가 교수라면서 쭉ㅡ빼입고 나서서 중의학을 한바탕 광고한다. 잇따라 의사들이 진맥을 하면서 숭매뜨기를 하는데 그때 곁에붙어 앉은 약제사가 번역을 한답시며 정보를 제공해 준다. 무슨병이 있는가 술을 좋아 하는가… 이것 저것 한담하듯 하며 물어서는 의사에게 선색을 귀뜀해 준다. 의사는 상대를 보아가며 비위가 약하다느니 간열이 세다느니 신기가 허 하다느니 하며 병바가지를 씌우고 처방을 써 준다. 다음은 아가씨가 약에따라 값을 매기는데 가짜약 저질눅거리약을 10원도 안되는것을 4ㅡ5천원 7ㅡ8천원씩, 한 처방이 몇천원 몇만원 지어는 몇십만원씩 되였다. 약은 만들어다 주는 지하제약창이 따로 있는데 상표는 모두가 동인당제약으로 되여있다. 수금대는 버젓히 따로있었다. 영숙이는 이렇게 사기치기를 해서 대뜸 벼락같이 억만대장자가 되였다. 돈벌이가 이렇게도 쉬운줄을! 금광을 하고 있겠는가!...그는 너무도 꿈 같아서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때도 있었다. 이거야말로 화가 복이 되였다고 그는 어깨춤 엉덩춤을 췄다. 성수가 났다. 병원에 먹이고 원장에게 따로 먹이고 침대놀이도 해주고 무슨 허가증이며 세금이며 검사며 하는건 영숙이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대도시가 좋긴 좋았다. 살인을 해도 알것 같지 않았다. 그는 200평짜리 집을 네채나 사고 3층짜리 음식점까지 남편한테 맡겨 경영 했다. 남편의 병을 치료한건 두말할것도 없고 딸애는 영국에 류학까지 보냈다.
    그런데 또 호사다마라고 할가, 이번에는 더욱 큰 사달이 생기였다. 원장이 “쌍규”룰 맞을줄이야?! 그런줄 저런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기를 시교의 초대소에 가두고 원장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는게 아닌가! 한족사내도 그날 잡혔는데 그는 다른곳으로 데려갔다. 보아하니 단단히 파고들 잡도리였다. 케가 자기도 걸릴 판국이였다. 그먼저 한국에서 엄청난 사기집단이라 하며 몇차례 사회여론이 왁자끓었다. 한국대사관에서 중국정부에 항의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여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영업액이 떨어질뿐 별일은 없었다. 여차직하면 도망칠 준비는 해 두었으나 너무도 급작스레 달려드는 바람에 미처 몸을 빼지 못했다. 규귤검사위며 반탐국을 자기와는 상관없는 부문으로 본것이 너무도 큰 실수였다. 거기에도 관계망을 둬야 하는건데. 그날밤 새벽에 영숙이는 초대소에서 도망쳤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까지 간후 그는 도적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 갔다. 남편은 어떤 계집년과 함께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영숙이는 와락 이불을 벗기였다. 조사하는 사람들이 며칠간 외출한다고 그렇게만 집에 전화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남편은 그대로 믿었는 모양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강짜를 부릴겨를이 없었다. 집주소를 교대했으니 당장 경찰이 덮칠것이다. 그는 남편에게 대충 상황을 말하면서 가방을 부랴부랴 챙기였다. 목단카드를 팬티에 넣은후 그는 곧장 집을 나섯다. 영숙이는 그길로 천진에 있는 군사내(강사질 하든자)를 찿아 갔다. 그러나 오래 눌러있을수는 없었다. 군사내가 귀찮아 하는건 둘째로 치고 안전하지 못했다. 본댁의 눈길이 곱지않았든 것이다.
    그때로부터 영숙이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쥐새끼처럼 숨어 다닌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한국에는 갈수없고 일본은 죽으라는 말도 모르니 거기도 밀항은 안된다. 미국에 갈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밀항은 너무도 모험이 크다. 자칯하면 태평양 귀신이 된다. 공안국문앞에도 못갈 처지다보니 합법적인 길은 한발작도 없었다. 당돌한 영숙이였지만 가슴이 화들화들 떨리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증세를 어찌할수 없었다. 국가의 려행업에 먹칠하고 수십억대를 사기쳤으니 한옥희가 다 무어냐! 열번 총살맞아도 부족할 죄를 저질렀다… 공포로 긴장한 나날은 그야말로 죽을맛이 따로 없었다… 개장집이나 착실히 경영하면서 발편잠을 자기보다 나은것이 무엇인가?!... 후회막급이였다. 세상천지에는 자기를 구해줄 그 누구도 없었다. 마음편히 살수있는 곳은 그래도 훅시 감옥이 아니겠는지...
    그는 법지법대로 사는것이야말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다는것을 절실히 느끼였다. 지금 영숙이는 숨어다니는것과 자수하는 두갈래길을 놓고 선택을 망설이고 있다.ㅡ
                                                                                                                                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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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말은 제대로 했다 2013-11-29 2 3170
32 대해항행은 키잡이에 의거한다 2013-11-27 1 2835
31 대채전 2013-11-25 1 2870
30 대가 2013-11-23 2 2324
29 내머리로는 알수 없다 2013-11-20 3 1901
28 나를 격려하는 밝은불빛 2013-11-18 1 3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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