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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를 버린 사연
2018년 05월 22일 14시 41분  조회:463  추천:3  작성자: 회령
     수기
                                      청진기를 버린 사연
                                                                                                               회령
병원에서 우리부부는 화제인물이 되였다. 그것은 내과주임의사인 나와 총호사장인 안해가 갑자기 내부퇴직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규정대로 하면 61살이 되여야 퇴직을 하는데, 우리부부는 쉰살 밖에 되지않으면서 내부퇴직을 신청했든 것이다. 내부퇴직이란건 단위에서 자체로 만드는 규정인데, 남 50세 녀 45살이면 신청할수 있다.

병원에서 이번에 내부퇴직을 단행하게 된것은 직원수를 감축하기 위해서 였다. 퇴직후의 대우는 상당히 후하였는데 우리같은 고급기술인재인 경우에는 신봉전액을 그대로 받을수 있었고 매인당 자녀 1명을 국가직원으로 취직시킬수 있었다.

우리집에서는 막내딸이 직업이 없어서 놀고 있었다. 그래서 안해가 내부퇴직을 신청하게 되였다. 그래놓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도 나비처럼 사뿐사뿐한 안해가 집에서 그저 논다는 것이 답답하고도 불쌍한 노릇이였다. 하여 나도 아예 함게 퇴직하고 개인진료소를 꾸리기로 작정하였다. 하나는 의사고 하나는 호사니 안성맞춤이 아닌가. 그리고 이 고장에서 명성도 꽤 좋은편이니 진료소가 잘 되리라 신심이 있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로 간부처에서 동의하지 않았고 병원령도에서도 도리를 떨었다. 리유는 기술골간이 나가면 병원사업에 영향이 크다는 것이였다. 거금으로 초빙해 모셔도 모자랄 판에… 그들의 태도는 아주 완강하였다.

어덯게 할 것인가?

우리는 통용되는 방법인 “뢰물공세”를 하였는데 그 방법이 듣던바와 같이 효험이 신통했다. 나는 그때 참으로 얼굴이 뜨거웠다. 하지만 궁여지책으로 그방법을 쓸수밖에 없었다.

92년 7월, 우리부부는 생각대로 내부퇴직을 하고 막내딸은 랄랄랄 노래부르며 성수나서 국영단위로 출근하였다. 한달후 우리는 시위생국의 비준을 받아 개체진료소 개업을 하였다.

우리부부는 학교졸업후 30여년을 즐곧 국가병원에서 사업하였다. 우리는 사업기간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재능과 정성을 남김없이 바치며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천직으로 알았고 저도 모르게 그것이 체질화 되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인민군중들의 호평을 받았고 중앙, 성, 지구의 표창도 여러번 받았다.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된후 우리고장에서도 우후죽순마냥 개체진료소가 생겨나고 국영과 사영이 경쟁하는 국면이 조성되였다. 의료기술과 설비를 놓고 광고열이 일어났는데 목적은 환자를 더 많이 끌어 한푼의 돈이라도 더 벌기 위한 것이였다. 사회에는 가짜광고, 대포광고, 명의명약광고가 란무하고 가짜저질약품이 범람하여 환자는 물론이고 의사들 까지도 우려하게 되였다. 그리고 돈의 충격으로 병원과 의사들의 직업도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사태에 고도의 경각성을 높히며 자기의 의료도덕과 작풍을 시시각각 명심하였다. 우리는 세가지를 지키며 견지하였는데, 약품구입은 반드시 국가의약도매 부(의약공사)에서 하며 약품가격을 공개하며 처방은 복사지를 대고 두부를 써서 한부는 환자에게 주었다.(거기에는 수금명세가 밝혀져 있다. 침구, 주사비, 작은처치는 면비.)

우리고장에서는 나처럼 하는 개체진료소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광고경쟁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환자가 늘 많았다. 밤이건 낮이건 시걱때건 우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환자를 맞아주었다. 왕진을 거절함이 없었고 중병환자는 주동적으로 가정방문을 하였다.

그런데, 3년철이 되던해 날벼락이 떨어질줄이야?! 그것은 지구정부에서 개체진료소를 대폭 정리 축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우리고장에서는 아예 없애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국가병원이 두개나 있기에 개체진료소가 필요 없고 국영의 수입에 영향이 크기에 취소한다는 것이였다.

개체들이 떠들고 일어났으나 날쥔 놈이 자루쥔 놈을 당할수 있는가?! 나는 통지를 받는 즉시 간판을 뜯어 버리고 개체진료소를 걷어 치웠다. 환자들이 찿아오면 무료로 진찰을 해주고 처방을 써 주었다.

개체진료소를 취소한후 얼마되지 않아 변상적인 개체진료소가 륙속 생겨났다. 그들은 관계인원을 삶아서 “ ^^병원분원”이라는 간판을 번듯히 내걸고 영업을 했다. 그런 분복이 없는 자들은 아예 “지하진료소”를 하였다. 따라서 명의명약광고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으로 가관이 였다. 이사람이 자기는 아무리 중한 간경화라도 제꺽 치료한다고 하면 저사람은 국내외에서 치료할수 없다고 하는 뇨독증환지를 직접 만든 약으로 백퍼센트 치료한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누구의 제자라는둥, 무슨금질상을 받았다는둥, 백혈병을 비롯해서 모든 암증을 국제적 돌파를 했다는둥, 맹장염(란미 염)을 약 세첩이면 말끔히 치료한다는둥, 침 한대면 곱사등이가 허리펴고 앉은뱅이가  뛰여다닌다는둥… 맨발의사, 맨발위생원이든 사람이 지어는 농촌아낙네가 박사, 교수라고 둔갑을 하고… 그야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기막힌 사태였다.

나는 의료위생계의 기풍과 동료들의 소행에 경악을 금치못하며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들의 타락에 나는 내가 의사라는 것이 창피하기까지 했다. 어떤사람들은 우리를 관심해서 “뒤문치기”를 하라고 했지만 나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너곳의 초빙도 다 사절 했다. 그러는중 지방정부와 군중들의 요구에 의하여 원단위 에서 우리를 초빙하자고 했는데 이건 거절할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내가 올린 수입에 따라 보수를 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나는 그런것을 따지지 않겠다고 명확히 표시하였다. 나는 다시 청진기를 잡은것이 무등 기뻤다.

전문가진찰실에 출근하면서 나는 환자들에게 자아치료방법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게 하고 딱 필요한 부분만 병원치료를 받게 하였다. 하다보니 점심시간을 거르고 늦게 퇴근하며 환자를 많이 보았지만 병원에는 목돈을 벌어주지 못했다.

어느날, 원장이 나를 보자고 하였다. 내가 원장실로 가니 그는 반겨 맞아주며 문부터 잠갔다. 무슨 중대사가 있는게로군. 나는 이렇게 직감하며 자리에 앉았다.

“병원수입이 올라가야 직원들의 장금도 오르고 선생님의 수입도 오르겠는데… 좀, 무슨 방도가 없을가요?”

원장은 뜸을 들이며 서두를 떼고는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나는 의아해 하며 원장을 쳐다 보는데 그는 시물시물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이를테면 말입니다. 처방을 좀 크게 떼며 말입니다. 감기약에 영양제며 보건품을 섞어 준다든지, 기장단위, 공비치료에 기계검사, 화험항목을 넣고 가족의 약도 떼 주고… 이렇게 하면 환자도 좋고 우리도 좋고 선생도 좋은일 아니겠습니까. 조금만 생각하면 방법이야 많지요. ㅎㅎㅎ.”

“그게 그러니까 일거삼득이구만. 그런데 여보, 원장나리! 나는 의사는 할줄 알지만 돈벌이는 전혀 할줄을 모를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흥취가 없어서… 거, 미안하지만 않됐소.”

나는 격분하여 원장실을 나와 버렸다. 그후부터 나와 원장의 사이는 껄끄러워 졌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나의 인생항로가 바뀌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어느날, 200리도 더 되는 먼 곳에서 늙은 농민이 7살이 되는 손자를 데리고 나를 찿아 왔다. 옛날 우리부모와 한마을에서 산 농민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이가 잘때면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성 병원 오관과로 갔는데 주임의사가 말하기를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데 5ㅡ6천원을 준비해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는 것이였다. 일년수입이 잘 돼야 천원이 되나마나 한데 5ㅡ6천이라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오관과에 대해서는 전공이 아니다 보니 농민을 데리고 지구병원 오관과 주임을 한 옛동창을 찿아 갔다. 그는 전문가문진실에 출근을 했는데, 아이를 자세히 검사한후 수술할 필요가 없다면서 약을 처방했는데 백원도 들지 않았다. 약을 쓴후 한달도 되지않아 아이의 코골이는 말끔히 나았다. 나는 의료계에 대하여, 의사들의 직업도덕의 타락에 대하여 격분과 안타까움으로 심각한 고민을 하지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무슨 독야청청 고매한 인격자는 못된다. 그러나 현실상황이 천만금을 준대도 의사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보이는건 비렬하고 가증한 꼬락서니고 들리는건 분노가 치솟는 악행과 원성이였다. 나는 의사들의 “령혼”을 구하지 않으면 않될 절박한 시점이라고 인정하며 의료계를 떠나리라 결심하였다. 30여년, 나의 청춘과 정열을 다 바쳐 아니, 나의인생 전부를 바치다싶히 하며 노력하고 분투해온 분야에서 떠나려니 마음이 서글펐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굳게 가다듬으며 애착하던 청진기를 땅바닥에 힘껏 메여쳤다. 그리고 의사들을 “치료”하는 것이 긴박한 급선무라는 일념에서 필을 틀어 쥐었다.

 나는 북받치는 격정을 쏟아가며 의료비리에 대한 조사보고를 한편 또 한편 썼다. 나는 의사들의 량심에 백의천사로 돌아갈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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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회령
날자:2018-06-05 10:46:59
어느선생의 댓글인지, 댓글이 뜨지 않아 볼수없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얼마전부터 나의 컴에 이런 고장이 생겼는데 지금도 해결못해서 이렇습니다. 옆의 작은란에 첯머리만 뜹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1   작성자 : 진언
날자:2018-06-04 17:14:31
문체가 그 사람이라 한다면 글은 곧 그 사람의 인격력량의 총체를 반사한다고 할수 있다. 이 글은 화려한 필체는 아니고 진실한 수기로서 실감이 나는 좋은 글이다. 이 글에서 작자의 인격의 고상함과 도덕의 청렴성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가슴에 공명을 불러일으키고 진한 감동을 주는 훌륭한 내용을 감히 세상에 내놓는 그 작가적정신도 높이 우러를 바이다.
지성인의 지성에 넘친 납함이 메아리칠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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