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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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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이야기(11)
2022년 12월 21일 14시 09분  조회:177  추천:0  작성자: 회령
           실화
                                              모택동의 이야기(11)
                                                                                                                       회령
 
일상 세절에서 본 모습
 
모택동은 세계적인 위인이여서 보통백성들의 안목에는 거룩하고 신비한 형상으로 보이며 우러르게 되여있다. 마치도 우리가 부처님, 보살님이나 하나님을 상상하듯 눈부시기만 하다. 그러나 재료를 보면 모택동의 인간모습이 더없이 친절하고 익숙하고 곁에 있는것 같다. 여기서 모택동의 일상모습 몇가지를 보자.
 
모택동은 집중력이 비상히 강하였다.
그이는 어떤일에 몰입하면, 골몰하면 다른것은 흔히 잊었다. 정강산 투쟁시 전쟁판 구석에서 골똘히 책을 본 일, 연안에서 재료를 쓰실때 발에 신은 솜신을 여러번 태운일, 중남해에서 사업하실때 련속 밤낮을 새우며 끼니를 잊어버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한번은 입에 구운토란을 문채 잠들어 경위원을 당황케 하였다. 또 한번은 신문을 보며 식사를 하였는데, 젓가락을 쥔 손은 기계적으로 빈접시에서 채를 집어 연속 입에 넣고 씹는 동작을 하는것이 였다. 정신은 온통 신문에 가 있고. 하여 경위원은 고소불득이였다고 한다.
 
모택동은 매우 근검소박하였다.
연안시절 그이가 기운옷을 항상 입은 사실은 그때의 상황에서 그럴수 밖에 없었겠다고 리해가 가지만 건국후에도 그이의 근검소박은 사람을 경탄치 않을수 없게 한다. 버릴수밖에 없다고 하는 신을 여러번 수리해서 신은일,  27곳이나 기운 잠옷과 와의샤쯔, 양말, 수건 가루치분, 치솔, 고뿌… 그이의 일상용품은 너무도 백성적이 였다. 그는 자기가 사용하는 집도 꼭 필요외에는 새롭게 수선하지 못하게 하였고 뜨락이거나 빈땅에 화초를 심지못하게 하고 채소를 심었다. 새와 관상용 물고기는 종자도 없었다.
모택동은 담배는 지독한 골초였지만 술은 혹간 특별히 아주 많이 마여야 홍포도주 한잔이였다. 그이는 연회를 싫어했다. 때론 손님초대도 자기의 명의로 다른사람이 하게 했다 모택동의 식사는 아주 백성적이 였다. 그는 홍조미, 좁쌀, 흑두로 지은 잡곡밥을 주식으로 했고 4채1탕은 바싹 말리운 매운고추 한접시, 썩두부 한접시 채소 한접시와 고기점 한접시였다. 탕은 채를 하고 쟁개비를 가신물이 였다 모택동은 훙쏘뤄를 그것도 비계쪽으로 특히 즐겨했다. 그리고 참대젓가락을 시용했다. 그는 식사시 상에 밥이나 채소를 흘리면 꼭 그걸 주어 잡수셧다. 그외에는 다른 특수함이 없었다.
 
훙쏘뤄에 련관이 되는 이야기가 한가지 있다.
항미원조전쟁이 끝나서 어느날이였다. 련거퍼 텿십시간 사업하고 있는 모택동께 경위원 리은교가 말했다.
“주석님! 삼일이나 제대로 식사를 하지않았어요.”
“그랬나? 응. 배가 고프구나. 좋아. 한끼를 제대로 먹자.”
“서의사(보건의사 서도)가 식단을 이미 짜 놓았으나 잡술기회가 없었어요.”
“나는 무슨식단같은건 필요없고, 훙쏘뤄만 한사발 하여다오.”
리은교가 주방으로 가는데 마침 손에 책을 든 강청이 자기침실에서 나왔다. 강청은 리은교를 보자 손을 흔들어 불렀다. 그는 낮은목소리로 물었다.
“주석께서 식사를 하셧는가?”
“잡수시겠답니다. 훙쏘뤄를 하래요.”
“하지말아요. 훙쏘뤄보다 좋은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닭고기나 물고기가 더 좋아요. 여러날 제대로 식사를 안했지요? 어제는 무얼 잡쉇나요?”
“어제는 맥편죽을 두고뿌만 잡수셧어요.”
“그제는?”
“그제는 우동을 잡쉇어요…”
“동무들은 정말로 일할줄 모르는구만! 내가 이제 어느때 동무들의 그 전기곤로와 고뿌를 내다가 버리지않나 봐요. 서도가 이미 식단을 짜지않았나요? 주방에 가서 의사의 식단대로 하라고 해요. 서의사가 말하기를 이미 일주일의 식단을 짜 놓았으나 동무들은 세번도 제대로 하지못했다며?”
“주석께서 싫대요. 그이는 훙쏘뤄를 하랍니다.”
“잔말말아! 내가하라는 대로 해! 훙쏘뤄를 하지말아. 무슨 좋은거라구. 시골뜨기야. 농사군버릇을 못고쳐…”
 
강청은 영양에 대하여 좀 연구를 해서 아는것이 있는데, 성시로 들어온 후에는 지식이 좀 더 늘었다. 그는 매일 7시면 깨여나서 호사가 우선 전신안마를 해주고 그담 일어났다. 하루세끼는 꼭 제시간을 지키고 식전과 식후에는 산보를 하며 일년 4계절 꼭 오침을 했다. 식사는 영양과 맛을 다 갖추어 했는데, 가히 “미식가”라고 할수 있었다. 그의 음식은 알뜰하고 보드럽고 청담담백이 위주였다. 모택동은 아니였다. 모택동은 맵고 쓰고 기름진것을 좋아했다. 장기적인 간고한 환경에서 사업하고 생활한 모택동은 강청의 생활습관을 곱게보지 않았다. 섬북에서 혁명할때도 강청은 모택동을 시골뜨기ㅡ촌놈이라고 모욕해서 모택동이 성질을 내기까지 했다
 
식사를 할때 리은교는 일체 책임은 강청이 감당하겠으니 하고 좀 마음을 놓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모택동이 신문을 보면서 참대젓가락을 쥐자 강청은 얼른 반찬접시에 물고기를 집어 놓았다. 모택동이 상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훙쏘뤄는?”
모택동이 련거퍼 두번이나 물었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긴장할대로 긴장해진 리은교는 강청이 설명하기를 조급히 기다렸으나 강청은 모르는체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할수없이 리은교가 대답하였다.
“하지 않았습니다…”
“왜서 하지않았니? 교대한 일을 왜서 하지않았니? 말해봐라. 내가 다만 한사발의 훙쏘뤄를 요구한것이 과분한 것인가?”
리은교는 머리를 수그리고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강청은 여전히 모르는척 하였다. 리은교가 울자 모택동은 그만하자고 하면서 일어섯다. 자기전, 모택동은 다시 리은교에게 왜서 교대한 일을 하지않았는가고 물었다. 리은교는 주석님께서 다 아시면서 왜 기어코 내가 말하게 하는가고… 네가 실사구시적으로 네입으로 말하라고… 리은교는 전후사연을 솔직히 말하였다. 모택동은 불쾌해 하면서 말했다. “강청은 양뜨기고 나는 시골산골촌놈이고 농민의 아들이다. 이제부터 모든것은 내식대로 내요구대로 하고 강청은 살관하지 못하게 하라!”
그때로부터 모택동과 강청은 생활에서 따로따로 였다.
모택동은 자기가 교대한 일은 꼭 실천되여야 한다는 고집이 강하였다. 훙쏘뤄 마찰후 모택동은 다시한번 리은교와 교대한 일은, 결정한 일은 꼭 실천해야 한다면서 하지않으면 꼭 추구해야한다고 말하였다. 이 관례를 어기면 않된다고 하였다. 그이는 매사에서 행동을 분명히 할것을 요구했다.
 
아래의 몇가지 이야기는 모택동의 또 다른 모습이다.
1959년 려산회의후 모택동은 긴장히 중요문건을 작성하고 즉시 발급하기위하여 기요비서까지 겸한 고지를 기다리게 하였다. 고지는 그때 지나친 피로로 기다리다가 저도모르게 잠들었다. 모택동이 여러번 불러서야 고지는 깨여나서 황급히 그에게로 뛰여갔다. 모택동은 한마디 짜증도 없이 고지를 얼마나 힘든가고 무척 가슴아파 하셧다.
 
어느해 모택동은 항주에서 갑자기 소흥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곧 준비하라고 하였다. 비서는 매우 당황했다. 그것은 주석신변의 공작인원들이 모두 항주 거리구경을 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석께서 낮잠을 쉴시간이 되였기에 마음놓고 거리로 구경을 갔던것이다. 비서는 주석께 사실대로 회보했다. 모택동은 그럼 기다리자고 하였다. 주석의 신변을 마음대로 떠난것은 엄중한 규률위반이였으나 모택동은 한마디 나무람도 없이 그들이 돌아온후 유쾌히 소흥으로 갔다.
 
1958년 상해간부구락부작은례당에서 “백사전” 경극을 볼때다. 모택동은 배가 크기에 자리에 앉을때 허리띠를 풀어놓았다. 경극의 원통한 장면에서 모택동은 엉엉 울기까지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혁명을 하지않으면 되겠는가?! 반란을 하지 않으면 되는가?!”
그순간 바지는 훌렁 벗어져 발목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곁에 있던 비서가 급급히 춰 입히고 주변사람들은 모택동과 함께 한바탕 유쾌히 웃었다.
 
모택동은 조사연구와 실사구시를 극히 중시하였다. 그이는 다른사람들이 실제사실 대로 자기에게 말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는 경위원들이 휴가로 고향에 갈때마다 보고들은 실제사실을 서면으로 조사보고를 해야한다는 임무를 주었다.
1957년12월 한 경위전사는 고향에 갔다와서 조사보고와 함께 검고 땅땅한 겨떡을 모주석께 드리면서 고향사람들은 이런것도 하루 한개밖에 먹지못한다고 하였다. 모택동은 그걸 떼여 먹으면서 “우리농민들의 식량이다. 모두 먹어 보아라.”고 하면서 겨떡을 경위전사들에게 넘겼다. 그리고 눈물을 주루루 흘리셧다. 또 한전사는 보고에서 합작사의 어느간부가 중한 병으로 앓으면서도 군중을 이끌고 일하더라고 하였는데 이에 모택동은 그간부에게 자기의 문안을 꼭 전해달라고 하면서 후에 고향에 가면 꼭 그간부를 찿아보라고 당부 하였다.
 
                                                                                                                    2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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