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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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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국
2022년 12월 25일 12시 02분  조회:314  추천:0  작성자: 회령
         수필
                                               나의고국
                                                                                                                회령
 
이젠 30여년전의 일이다. 그해 국경절밑이다. 서안시에서 사업하는 애골친구 만덕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국경절에 아들의(외독자) 결혼식을 하는데,  비행기표를 보내니 부부동반으로 꼭 참석해 달라. 한복을 갖고오며 자기부부의 한복과 아들 며느리의 결혼식한복도 부탁한다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복장비로 만원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임마! 돈자랑을 하는거냐?! 이 큰형님이 알아하겠으니 거추장스레 돈이니 뭐니 하지말아. 자식!” 우리는 유쾌한 마음으로 한시간 거이 통화를 하였다.
 
여기서 말이 좀 길어지지만 하고 넘어가자.
 
나와 만덕이는 연변의 큰갈매골 샘물깨라는 두메산골에서 자랐다. 나는 부모의 품에서 자랐지만 만덕이는 광복이 난 이듬해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자식이 없는 이웃집 아저씨댁에서 양자로 자랐다. 10여리 먼곳에 있는 소학교와 거이 30리가 되는 초중학교를 우리둘은 꾸준히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샘물깨마을에는 학생이래야 우리둘뿐이였다. 만덕이는 공부를 잘해서 줄곧 1등이였지만 나는 그에게서 늘 배우면서도 중간정도쯤이 되였다.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 등에서 누린내가 나게 고생을 시키면서 대학공부까지 하였다. 만덕이는 서안교통대학을 졸업한후 직방 학교의 선생으로 떨어지고 나는 뻬쮼의대를 졸업하고 성1병원에 분배를 받았다. 만덕이네는 부모를 모시고 계속 서안시에서 살고 우리는 정년퇴직을 하자 장춘시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연변 도문시로 나왔다. 나도 아버지 어머니를 장춘시에 모셔가려고 몇번 의논을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맨 한족들만 사는데서 어떻게 살아?!” 하시며 도고리를 떨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타민족을 늘 업신여겼다. 방법없이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녀동생가까이로 도문시에 모셧던 것이다.
 
우리는 국경 사흘전 오후에 만덕이네 집에 도착했다. 이튿날 오전, 신랑 신부를 불러다 한복을 입혀보니 원! 저렇게도 신통할줄이야?! 의포단장이라더니 신랑 신부는 말그대로 선남 선녀였다. 만덕이부부의 옷도 흠잡을데가 없었다. 우리는 큰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입는법을 잘 몰라서 우리는 한바탕 웃으며 부산을 떨었었다.
 
만덕이는 우리의 여러가지 궁금증을 쉬원히 풀어주었다.
 
아들은 시정부판공실에서 사업하고 며늘애기는 시부련회에서 사업한다고 하였다. 애들은 대학에서 사귀기 시작했는데 며늘애기집은 상해에 있고 무남독녀, 아버지와 어머니는 상해복단대학의 교수인데, 신기한건 그들이 연변 훈춘의 어느 조선족마을 집체호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족인 딸애가 조선족 총각과 련애를 한다고 하니 특대경사라고 기뻐하며 “련애경비”로 6천원짜리 카드를 딸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신혼집도 기어코 함께 마련하고 자가용도 함께 마련했다는 것이였다. 약혼식은 사돈네가 먼저 서안으로 날아와서 허혼(허락)을 해달라고 간청을 해서 말을 떼고 불이 번쩍나게 거행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한바탕 유쾌히 웃었다. 나는 한편 그사돈네 거동이 우습기도 했다. 그리고 규수가 한족이라고 하니 마음이 좀 아쉬웠다.
 
사돈네는 묻지도 않는 말을 신나서 하더라고, 그대로 외운다면서 만덕이도 신나서 말하였다.
 
우리는 조선족을 한족보다 더 잘 안다. 우선, 깨끗하고 선량하고 무던하고 너그럽다. 례모가 아주 바르고 경우시비, 도리가 명백하다. 인정이 많고 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총명하고 근로하고 용감하다… 그러면서 집체호의 땔나무, 온돌수리, 회칠을 때를 맞춰 해주고 명절이면 집집이 불러가고, 김치를 해주고, 토장국, 두부찌개를 가르켜 주고 옷이며 신을 기워주고 누가 앓으면 서로 자기집에 데려다 보살펴 주고… 침이 마르게 찬양이 끝이 없더라는 것이였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만덕이네 아들잔치가 서안시를 들썽하게 인기를 끌었다. 신혼행차가 시내 여러곳을 돌며 촬영을 했는데 말그대로 구경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서안사람들은 문명하고도 열정적이였다. 이르는 곳마다에서 사람들은 “당신들의 행복을 축하한다!”(한어로.)고 하며 박수갈채와 함께 이구동성으로 열창을 하여 주었다. 잔치는 상해에 가서도 굉장히 하였다. 우리도 동참하였다.
 
우리는 만덕이네가 자꾸 붙잡아서 보름거이 유람하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기전 어느날, 나는 만덕이에게 넌짓히 물었다. “손군을 낳으면 호적에 무슨민족이라고 하겠는가?” 만덕이는 한족으로 올린다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왜서냐고 더 물으니 주체민족이 아니냐고 하였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하는 잔치구경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다가 아버지가 가장 관심사인듯 물었다.
“그래, 신부는 어디 뉘집 딸이던가? 거기두 조선사람이 많은가?”
이대목은 사실은 나도 말하기가 달갑지 않아서 아직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될수록이면 범상하게 좋도록 이실직고를 하니 아버지는 대뜸 “엥이! 한족새기 더냐?!”하며 더 들을맛이 없다는듯 돌아앉으며 담배대를 쥐는것이였다. 어머니도 시무룩해 하였다.
 
나의아버지는 젊은시절에는 조선팔도를(해삼위, 일본, 중국도) 꽤 돌며 노가다판을 찿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광복세해전 일터에서 크게상하고 샘물깨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무식하고 비천한 백성이였지만 민족자존심만은 본능적으로 굴뚝같이 높았다고 한다. 하여 “민족전쟁”(민족간의 패거리 싸움)도 여러번하며 우두머리였다고 한다. 나는 음으로 양으로 아버지 영향을 받았는지, 유전인지, 본능인지… 민족자존심이 퍼렇게 살아있었다. 물론 아버지처럼 막무가내는 아니였다. 어느나라 어느민족이나 무릇 사람이 있는곳이면 상, 중,  하가 있는법이다. 무턱대고 타민족을 깔보면 안된다. 어느민족이나 다 우점 장점이 있다. 서로 따라배우며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이런관점이면서도 감정상에서는 세상에서 우리배달민족이 제일 훌륭하다고 주장하고 싶고 그렇게 인정했다.
 
그간 함께 지내보니 만덕이네는 한족과 다름이 없었다. 한족물감독에 빠진 그들이 한족이 되지않고 따로 뭐가 되겠는가! 장춘에서 오래동안 생활한 우리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 리해할수 있었고 접수할수 있었고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사람은 누구나 다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적응하는 법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민족자존심이 살아있어 며느리, 사위를 다 우리민족으로 맞았다.(아버지 어머니의 엄명을 받들며, 힘으로 하며) 순우리혈통인 친손군 외손군을 일곱이나 보았는데 손자가 셋이고 손녀가 넷이다.
 
우리가 연변으로 와서 도문시에 자리잡은후 세월은 어느덧20여년이 흘러갔다. 만덕의 부모는 손자 잔치전에 이미 작고 했고 나의 부모는 손자 손녀의 잔치도 다 보고 그들이 첯애기(증손)를 낳아 키우는 것도 다 보고 작고를 했다.
 
지금 나의손군들은 모두 결혼적령기다. 그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취직을 했거나 연구생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아들 딸들과 때를 놓치지 말고 애들의 혼인대사를 잘 행사하라고 자주 당부를 하며 손군들과도 우리민족 대상을 찿으라고 자주 말한다. 그러나 나 자신이 신심이 없다. 보아하니 한족친구를 더 좋아하는것 같다.
 
중국대지에서 연변은 세상이 다 알다싶히 우리 중국조선족의 고향이다. 그러나 연변의 조선족은 인구의 40프로정도라고 한다. 지금은 연변에서도 조선족간부 들은(촌장, 촌민소조조장까지도) 한어가 상용어로 되고 조선문 신문, 잡지의 발행부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조선말방송, 텔레비는 조, 한 언어와 문자를 아주 자연스레 사용하고 있다. 어느 조선족소학교에서는 한문교재로, 한어로 교학을 한다고 한다. 많은 군중들이 한어를 알아듣고 한어를 애용하며 의사표달을 능숙하게 한다. 한복은 년중 특별행사에서나 한두번 혹 입는 이들이 있고 찰떡과 김치는 대부분 집들의 설잔치상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죠즈(만두)가 중심으로 되였다. 우리집에서는 일년에 세번 대잔치가 벌어지는데(설, 우리부부의 생일) 가급적 식구들이 다 참가하고 가까운 친척친우들도 끼우다 보니 보통30여명이 되는데 그때는 한족말세상이 된다.(한족은 한명도 없다.) 요구에는 공무원들이 조, 한 두가지 언어로 군중을 접대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지금은 군중이 조선말을 하면 “한어로 말하시요.” 한다. 인구가 감소하고 마을이 줄어들고 조선족유치원, 학교가 없어진다…
연변의 많은 중국조선족들은 관내로, 세계각지로 과감히 뛰쳐나갔다.
 
위축되는 조선족사회를 놓고 학자와 언론인들이 밤낮 부흥방략이요 방침이요 설계요 대계요 대책이요… 하면서 고견을 목이 아프게 력설하지만 나의귀에는 미안하지만 한마디도 들어오는게 없다. 나는 중국조선족사회의 현황을 서글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긍정하며 광명하게 본다.
 
중국대지에서 소수민족은 한족과의 동화를 피면할수 없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서로 따라배우며 함께 생활하는중 저도모르게 이미 많이 동화가 되였다. 절대로 나쁜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민족자존심은 불가항력적인 현실앞에서 때론 슬프고 울적함을 어쩔수 없다. 그럴때마다 나는 두만강변으로 자주 나간다. 두만강변으로 나가면 마음이 쉬원히 열린다. 머리를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저기는 조선이고  멀리 저 남쪽은 한국이다. 삼천리금수강산, 삼천만백의동포라고 하던 나의 고국이다! 지금은 분단으로 부끄럽고 슬프고 불행한 나의 고국이다. 어느때고 통일은 올것이다! 해외의 모든 백의동포들은 이구동성 일심동체로 고국의 평화통일을 성원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본다.
 
이세상의 2000여개민족이 서로 동화되고 동화되여 두세개 민족으로 된다해도 그중의 하나는 꼭 우리배달민족, 단군의 자손들일 것이다! 그것은 고국이 있기때문이며 거기에는 총명하고 지혜롭고 례절바르고 사리밝고 원칙성과 정의감이 강하고 근로용감한 우리배달민족이 살고있기 때문이다…
 
중국대지에서 우리는 사라지고 연변은 사라져도 나의 고국에서 우리 배달민족은 길이길이 번영창성할 것이다… 나는 이런마음으로 여생을 편안히 살고있다.
 
                                                                                                                          2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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