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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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주고 받은 사랑 이야기
2009년 07월 03일 00시 14분  조회:3676  추천:49  작성자: 강순화
         시어머니와 주고 받은 사랑이야기

                                                                              글 /  강 순 화

    인생이란 워낙 생면부지이던 사람들이 서로 연분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며 희노애락을 함께 하거늘 이런 삶의 길에서 부부간, 고부간에 미운정 고운정 쌓아가는 것도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반평생 넘어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이 어찌 한두가지랴만 시어머니와 주고 받던 사랑이야기들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 갔다가 다시 연길에 돌아와 맥주공장에서 림시로 출근하던 그때 나는 작업반장 리아주머니의 소개로 전기기계공장 기술원과 결혼하게 되었다. 시집에는 80고령의 외할머니와 60되시는 시어머니가 계셨는데 시어머니는 스물다섯 꽃나이에 남편을 객지 목재판 사고로 잃고 유복자로 된 외동아들 하나에 평생을 걸고 살아오신 분이였다.
  
    아들애가 일곱 살이 되여 학교갈 나이가 되니 한 아녀자의 힘으로 농사를 지어서 가정생계를 유지하고 아들애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세월이였다. 시어머니는 큰 마음을 먹고 얼마 않되는 가장집물을 묶어서 이고 지고 아들애 손목을 이끌어 소영촌에서 연길시내에 있는 공신촌으로 무작정 들어오셨다고 한다. 50년대 초기라 금방 해방직후인 그 년대에 그처럼 담찬 행동은 아무나 쉽게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공신채대에 낡은 집 하나를 얻어 가지고 생계를 위해 아들을 위해 시어머니는 소갈데 말갈데를 가리지 않고 뛰여 다녔다. 남새밭 삯기음도 맷고 길거리 청소도 했으며 공장의 림시공으로 학교식당 취사원으로 못해본 일이 없었다. 좀 더 벌어보려고 춘하추동 하루도 쉬지 않고 밤낮 일하며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외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킨 것이다.
  
    어데 그뿐이랴. 열여덟살에 일본놈에게 맞아 정신병에 걸린 친정 오라비를 마흔살이 되어 운명할 때까지 집에서 거두어 주었으며 병환에 계시는 친정부모님까지 모셨으니 그 고생은 이루다 말할수 없는 것이였다.      
  
    하늘나라에 가신지도 어언간 20년이 되어 오건만 그 자애롭고 사리 밝고 부지런하던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좋은 세상 더 보지 못하시고 고생에 고생만 하신 일들이 가슴 아프고 잊지 못할 추억의 에피소드들로 마음이 무거워지군 한다.
  
    연변대학인쇄공장에 정식으로 취직되여 통계, 출납 업무를 맡은 나는 거이 날마다 은행을 드나들어야 했다. 공가차도 택시도 없는 그 세월에 제일 좋은 교통도구는 자전거였다. 그날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은행가는 길에 직장에서 멀지 않는 집에 피뜩 들리기로 생각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대문을 열고 보니 시어머니는 항창 손자를 등에 업은 채 불볕에 앉아 닭모이를 쫒고 계셨다. 나는 그 사이라도 어머니가 좀 허리 펴고 일하실수 있게 하려고 애를 받아 업고 은행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 일로 큰 사달이 날줄이야. 돌아오는 길에서 애한테 얼음과자를 사 먹인 외에는 어데도 들리지 않았는데 집앞에 당도하니 자전거 핸들에 걸어 놓은 헌겁 들가방이 오간데 없어졌다. 은행문서와 현금 200원까지 몽땅 잃어 버린것이다. 80년대 초 200원이면 그당시 나의 석달 월급도 더 되니 그 가치는 지금의 열배도 넘는 큰 돈이였다.
  
    정신이 아찔해났다. 다급히 되돌아가며 찾고 또 찾아도 그 어디에서 찾으랴!  언녕 자취를 감춘것을. 후에 안 일이지만 집으로 굽어드는 골목의 올리막 길에서 내가 등에 업은 아이를 돌아보며 정신을 팔 무렵 가방이 땅에 떨어졌는데 동네 아줌마가 멀리서 볼라니 웬 밀차군이 지나다가 길에 떨어진 가방을 밀차에 던져 넣어 가지고 가더라는 것이였다.

   《어머니 은행에서 찾은 돈 200원을 몽땅 잃어 버렸습니다.》
   맥없이 문을 밀치고 들어가며 나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새파랗게 질린 나의 얼굴을 놀란 모습으로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얼른 애를 받더니 나무람 할 대신
   《괜찮소, 애를 업고 갔는데 그래도 운수땜을 했다고 생각하기오. 더 큰 일을 막은셈 치고... ...이제 집을 팔면 그까짓 돈 갚으면 되지.》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그때 우리집은 공신대대의 초가집이였는데 집터가 꽤나 넓었기에 집 옆에 벽돌집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낡은 집을 팔아야 2000원도 안될 때인데 붙는 불에 키질은 커녕 그렇게도 너그럽게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너무도 고마워 그만 눈물이 났다.
  
    허나 그때 그 200원은 정말로 그까짓 돈이 아니였다. 며칠동안 보위과 일군과 함께 온 시내 200여대의 밀차군들을 살피다 못해 결국은 찾기를 포기하고 그 후엔 나의 매달 월급에서 얼마씩 제하여 근 2년이 되어서야 겨우 그 돈을 다 갚았으니 말이다.
  
    그 이듬해 어느날 내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부엌에서 불을 때는 시어머니의 기색이 말이 아니였다.《어머니 무슨 일이 있습니까?》사연인즉 배급소에 량식타러 가서 줄을 섰는데 차례가 되어 돈을 물자고 보니 바지호주머니의 돈지갑이 어느새  없어졌더라는 것이다. 긴 줄을 서고 있는데 뒤에서 웬 사람이 자꾸 밀더니 깜쪽같이 훔쳐간 것이였다.

   《어머니, 괜찮습니다. 래일 내 월급이 나오면 배급을 타지요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러자 시어머니의 기색은 대뜸 밝아졌다.
   《에구!  우리 독보조 노친들이 나보고 며느리한테서 쫓겨나겠다 하더니 우리 며느리 하는 소리를 보오! 》라고 하며 기뻐하시는 것이였다.
  
    사실 어머니한테서 배워서 말했을 따름인데... ... 나는 얼굴이 뜨거워 졌다. 이렇게 서로 리해하여 주니 고부간의 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나는 새 직장에 정식으로 출근하여 탄 첫달 월급을 몽땅 넣어 회색털실 두근 반을 사가지고 짬짬이 정성들여 어머니 쟈켓트를 떠 드렸다. 난생처음 이렇게 좋은 옷을 입어 본다고 기뻐하시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헌데 생활이란 워낙 복잡다단하기 마련인가?  바로 시어머니 회갑때 일이다. 집안 친척과 아들 며느리 직장의 손님들은 청해야 하겠는데 어디 지금처럼 식당에서 몇상 차리면 될 때인가?  집에서 밤도와 콩나물 녹두나물도 키워야 했고 낮에는 떡가루도 내야 했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는 탁주까지 빚으려 하시니 애를 등에 업고 이 모든 일들을 하시기엔 너무나도 무리였다.
  
    우리는 잠시 얼마간이라도 애를 직장의 유아원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할머니 손끝으로 금쪽같이 키우던 애를 유아원에 처음 보내 놓고 나는 한시도 안심할 수 없었다. 중간휴식시간이 되기 바쁘게 뛰여가 유리창문으로 애를 들여다 보군 했는데 그날은 마침 간식시간이라 선생님이 검스레한 밀가루 만두 하나씩을 애들한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난 이런거 안 먹겠슴다. 이팝 먹겠습다. 》
   《안먹겠으면 그만둬! 》울먹이는 애를 향해 처녀선생은 꽥 소리치며 만두그릇을 탁 빼앗아 창턱에 놓아 버렸다. 그 관경을 들여다 본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와락 문을 밀치고 들어가 애를 안고 나와 버렸다. 애를 등에 업고 집으로 가며 나는 내내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니 할머니 세분이 가마목에 모여 앉아 한창《쓩이야, 몽이야!》하면서 윳을 치고있지 않는가?
   《애는 울어 죽겠는데 무슨 쓩이고 몽입니까?》나는 앞뒤도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에구, 애 보다 에미가 더 울었구만, 어서 가져오오, 밥을 먹이게... ...》하고 일어나 아이를 받아 안으시는 것이였다. 순간 나는 저도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온종일 일하신 어머니가 동네 로인들이 놀러 와서 잠깐 허리쉼을 하면 어떠랴?!  너무도 철딱서니 없는 행패로 하여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물론 애는 다시 유아원에 보냈고 그 후엔 내가 그렇게 집착하지 않아도 유아원 생활에 잘 적응해 갔으며 유아원의 소반, 중반과 대반에서 줄곧 반장까지 하였다.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한 10여년간 나는 이렇게 울며 웃으며 싸우고 배우면서 고부간의정을 쌓았고 시어머니는 이 며느리가 언제나 믿고 의지하는 산같은 분으로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여 집에 오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짐작이 가서 얼른 자전거를 돌려 타고 원예농장 쪽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가 닭모이로 솎은 배추를 꽉 눌러 넣은 마대를 등에 짊어진 채 밭머리에서 끙끙거리며 일어나지 못하시고 있지 않는가!

    《뭘 이렇게나 많이 담았어요?》
     나는 어머니를 나무라며 얼른 짐을 벗겨 함께 자전거에 실어 올린 후 집까지 밀고 돌아왔다. 마당에 쏟아 놓으니 산더미 같았다. 이렇게 어머니가 애쓰시며 10여마리의 닭을 울안에서 키웠기에 우리집은 매일 닭알 한바가지씩 거둬들였고 그 닭알로 애들한테 과일과 얼음과자를 바꿔 먹이군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이튿날 새볔,  잠결에 볼라니 아직 어슴프레한 새벽인데 어머니는 벌써 일어나시여 마당에 닭사료 가리러 나가신다는 것이였다. 항창 잠많은 젊은 때이라 날이 환히 밝아서야 아침하러 일어나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었다. 불길한 예감에 급히 문을 열고 내다보니 글쎄 어느때 그러셨는지 어머니가 마당에 쓰러져 있지 않는가?!  황급히 안궁환을 찾아 대접하고 마을에 달려나가 밀차를 빌어 시립병원에 모셔가니 뇌출혈이란다.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청천병력이였다. 밤낮으로 링겔주사를 들이대니 그저 쉴새없이 소변으로 자리만 적실 뿐 정신은 차리지 못하였다. 본래 몸집이 좋으신 분이 맥을 다 버리니 그 몸이 천근같아 갸냘픈 내 힘으로는 도저히 다룰 수가 없었다. 아예 침대우에 올라서서 몸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하신을 씻어 드리고 기저귀를 바꾸군 하였다.
  
    몇일째 밤낮으로 정성껏 호리하는 모습을 보고 옆 침대의 환자와 가족들은 효녀가 따로 없다고 칭찬했지만 사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라 효성할 딸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럴때엔 정말로 자식 여럿인 집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며칠동안 정신을 못차리시던 어머니가 닷새되던 날 불현듯 눈을 뜨시더니《아! 아!》하며 손을 저었다. 분명 손자를 찾는 것 같았다. 이제는 일어나시려는 모양이구나 하고 기뻐하며 급히 애를 데려다 침상앞에 앉혔다. 어머니는 눈물을 가득 머금고 가까스로 손을 들어 손자의 머리를 쓰담더니 다시 천천히 눈을 감으시는 것이였다.
  
    그런데 이것이 영별일줄이야!  어머니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침상에 누운지 딱 아흐렛만에 총망히 저세상으로 가시고 말았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 그 귀한 손자 한번 더 보시고 아들 며느리 한테도 인젠 더 부담 주지 않으시려고 한시 급히 떠나신 모양이였다.
  
    시어머니와의 인연이 내 인생에서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 추억은 오늘도 나를 울린다. 당신이 추울세라 더울세라 만날 등에 없고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 키워 오던 그 손자가 이제는 명문대의 경영학 석사까지 졸업하고 어엿한 청년이 되여 예뿐 손주며느리감까지 데리고 왔으니 어머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가끔 고인이 된 시어머님을 생각하면 생전에 더 효도하지 못한것을 후회하며 조선왕조의 옛시인 송강 정철의 시조를 떠올려 보군 한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달프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어느덧 이 며느리가 또 시어머니로 돼 버린 오늘,  존경하는 나의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열두치마폭 같은 너그러운 마음씨와 하해와 같은 자식사랑, 그리고 인생의 스승다운 그 가르침에 이 며느리가 셈이 들고 성숙해 왔음에 하냥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 연변녀성잡지-- 2005년 제11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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