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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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여성시대 프로> 특집 댓글:  조회:5867  추천:48  2010-11-13
             <여성시대 프로> 특집                               중앙인민방송국 조선말 방송                                  강설화기자와의 인터뷰    기자: 연변조선족 자치주 성립이후 자치주 여성들의 삶  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십니까?    강소장: 연변조선족 자치주 성립이후 녀성들의 놀라운 변화는 아래 몇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혼인, 생육관념의 변화입니다. 배우자 선택기준에 있어서 이전에는《정치조건, 경제토대, 가정상황, 직업》등 외적인 조건을 중시하던데로부터 점차《능력, 성격, 품성, 재간》등 내적인 조건을 우선시하며 중매나 부모에 의한 선택보다는 당사자들간의 접촉과 료해를 중요시하면서 애정에 바탕을 둔 혼인을 위주로 합니다. 이는 혼인관념의 새로운 변혁이며 진보적인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생육면에서도《다자다복(多子多福)》하다거나《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한다》는 전통적인 대가족의 관념은 점차 소실되고 부부는 자기자신의 성공과 향수를 첫 자리에 놓으며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이 하나만 키우면 만족해 합니다. 높은 소비문화와 엄청난 교육비용은 아이 하나도 힘에 부치는 일이니 민족인구의 감소는 뒤로하고 자식 하나만이라도 잘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좀 풍요롭게 지내는 것이 리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가정가치관의 변화입니다. 경제가 상대적으로 락후했던 지난날 가정의 중요한 가치는 공리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하여 가정과 자식을 위해서 부부는 서로 의존했고 서로 불쾌한 일이 있어도 그것을 쉽게 밖에 내비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조선족들의 리혼은 70년대까지만 하여도 남에게 알릴수 없는 창피한 일로, 퍽 보기 드문 일로 되였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 진보에 따라 가정의 공리적 가치는 낮아지고 심미적 가치가 높아져서 남녀 모두가 더욱 새롭고《질높은》혼인생활을 추구합니다. 특히 개혁개방이후 부쩍 많아진《제3자》현상, 《애인》현상들이 이를 충분히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는 가족이나 가문의 명예가 중요했지만 현대가정에서는 삶의 질 문제가 우선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농경사회의 대가정은 산업사회의 핵가정으로 변했으며 결손가정, 재혼가정, 독신가정, 새롭게 생긴 짝무이, 동거형식 등 생활공동체는 가정형태의 새로운 발전모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로는 자녀교양관념의 변화입니다. 우리민족 부모들이 자식을 룡이나 봉황으로 키우려는 념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그 욕망과 방식에는 질적인 승화를 가져왔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키듯이 현시대의 부모들은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 합니다. 어릴때 부터 아이의 흥취와 애호를 살리고 개성을 개발하며 그들의 다방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려고 애씁니다. 지금 부모들은 자식을 공부시켜 취직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만 된다면 석사나 박사까지라도 밀어주어 성공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아마 우리민족의 교육사에서 지금처럼 고차원의 인재가 수없이 배출되고 있는 시대는 없을것입니다.   넷째로는 직업관념의 변화입니다. 현대녀성들의 가치척도는 자아희생으로부터 자아성취로 전변했으며 단순한취직형으로부터 창발적인 사업형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대담히 시장경제의 물결속에 뛰여들어 경쟁을 벌리고 능력을 비기며 분발노력하고 악전고투합니다.《지금의 세상에는 게으른놈이 못산다》는것이 그녀들의 좌우명입니다.    다섯째로는 심미관념의 변화입니다. 오랜시기를 두고 녀성미의 표준은 오직 예쁘고 온순하며 선량한데 두었습니다. 그러나 현시대에는 독특한 개성이 있고 품위가 있으며 현대감이 넘치는 녀성이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그러자면 당연히 외모뿐이 아닌 자신의 지식을 부단히 넓혀야하고 문화수양을 제고해야하며 인격과 품위를 높혀 내재적인 미를 갖추어야 합니다. 각종 녀성학원의 새로운 붐은 이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차원의 녀성일수록 남성과 동등한 목표를 추구하며 모든면에서 남성과의 거리를 단축하려합니다. 하여 자신을 자연적인 녀성의 삶에서 사회적인 녀성의 삶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하기에 그들은 사업성공의 기쁨뒤에는 생활의 억제감과 감정의 고독감도 느끼게 됩니다. 사실상 녀성의 남성화로 남녀의 평등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것은 력사적인 착오인 것입니다.     기자: 이런 변화가 일어난 주요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소장: 녀성들의 사회참여를 녀성해방의 기본척도로 삼아온 우리나라는 일찍부터《남자들이 할수있는 일이면 녀자들도 할수 있다》,《전국의 부녀들이 일떠서는 날이자 중국혁명이 승리하는 날이다》라는 모택동 동지의 말씀에 고무되여 용약 생산제일선에 나서서 절반하늘을 떠이는 기세를 보였습니다. 하여 중국 녀성들의 취업률은 세계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자치주 성립 후 우리 조선족 녀성들은 더욱더 생산 제1선에 뛰여들므로서 가정울타리를 벗어나 용약 사회인으로 되면서 녀성들의 삶에는 더욱더 생기가 부여되였습니다.    특히 개혁개방 30여년래 조선족녀성들의 경제활동참여는 더욱 활발해졌는데 시장경제가 보편화됨에 따라 녀성들의 물질욕구는 늘어났고 가치관념은 변화되였으며 삶의 질을 제고하려는 욕망도 전례없이 제고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방식도 질적인 개변을 가져오게 되였습니다. 녀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한층 높아졌으며 자아가치의 실현은 갈수록 중요시 되어왔습니다. 이는 사회의 발전과 진보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기자: 그럼 이런 변화는 여성들로 하여금 어떤 진보를 가져오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소장: 위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애정에 바탕을 둔 혼인을 위주로 하는 혼인은 혼인관념의 새로운 변혁이며 진보적인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녀성해방에도 질적인 승화를 가져왔다고 할수 있습니다.    생육면에서 자식 하나만이라도 잘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좀 풍요롭게 지내는 것이 리상적인 삶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로하여 녀성들은 더욱 많은 시간을 가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보와 사회적 활동에 리용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교육면에서도 어릴때 부터 아이의 흥취와 애호를 살리고 개성을 개발하며 그들의 다방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려고 애씁니다. 지금 부모들은 자식을 공부시켜 취직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능력만 된다면 석사나 박사까지라도 밀어주어 성공시키려고 노력하기에 수많은 조선족 인재들이 그 어느 민족 못지 않게 비약적으로 증가되였습니다.     녀성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인격과 능력으로 자기의 인생가치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녀성군체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직업녀성들은 남성과 평등하고 독립적인 자격으로 사회에 나서고 있습니다. 남편의 성공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던 현처량모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녀성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인격과 능력으로 자기의 인생가치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가정에서의 경제적인 독립은 물론이요, 인격상에서도 독립하려 하며 감정상에서도 남편과 자식뿐이 아닌 광범한 사회적 교제를 즐깁니다. 여가시간이면 여러가지 사회교육에도 적극 참가하고 문체활동과 건강관리 등에도 중시를 돌리면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현시대에는 독특한 개성이 있고 품위가 있으며 현대감이 넘치는 녀성이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그러자면 당연히 외모뿐이 아닌 자신의 지식을 부단히 넓혀야하고 문화수양을 제고해야하며 인격과 품위를 높혀 내재적인 미를 갖추어야 합니다. 각종 녀성학원의 새로운 붐은 이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자: 시대와 사회의 발전에 따른 여성들의 삶의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추구에 따른 진보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이로인한 문제점 또한 적지 않을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주로 어떤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소장: 례하면 생육관의 변화에 따른 근 90%에 달하는 독신자녀률은 조선족인구의 마이너스 성장을 불러왔고 혼인, 가정관의 개방은 리혼률을 력사상 최고수치로 끌어올렸습니다. 시장경제바람으로 인한《도시열》,《한국열》은 또한 많은 리산가족과 결손자녀들을 만들어 사회의 불안전요소를 산생하고 있습니다. 하여 현시대의 조선족 리산가족 어린이들은《문제 많은 세대》, 《사랑 없는 세대》, 《비극적인 세대》로 부모의 사랑을 잃은 사회의 불행아라고들 말합니다.  또한 전통적인 효도관념은 점차 사라져 웃어른의 권위는 낮아지고 부모중심의 가정은 자녀중심의 가정으로 전변되고 있는 것입니다.     녀성을 잃으면 가정을 잃고 가정을 잃으면 사회를 잃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민족사회에 나타난 이런 현상들은 바로 녀성들의 삶의 변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자: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강소장:  시대와 사회의 발전에 따른 이런 변화들은 물론 인간의 질적인 삶의 추구에 따르는 진보적인 현상이지만 이로인한 문제점 또한 신속히 극복하여 가지 않으면 안될 일입니다.      개혁개방이래 조선족의 제3차 대 이동으로 인한 리산가족문제는 산업화, 정보화, 세계화로 나아가는 현 시대 사회발전의 필연적인 추세로 되고 있고 어쩌면 우리 조선족들의 위기이자 기회로도 되여 그 리해와 득실도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실제적 조치가 뒤받침해 줄것이 수요됩니다.       그러면 이런 사회적 조건에서 우리 녀성들은 어떤 노력을 하여야 할가요? 아래에 몇가지만 라렬해 봅시다.            우선 녀성은 가정을 튼튼히 지킴과 동시에 자신의 고정적인 사업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현대인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관념입니다. 녀성이 사회에서 남성들과 경쟁하려면 명석한 두뇌는 물론 자신의 능력도 꾸준히 개발해야 하며 부단히 업적을 쌓아야 합니다. 자신의 지혜로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해가면서 발명창조하고 분발진보하며 게으름없는 노력을 기울린다면 성공의 기회도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녀성의 경제적 독립은 인격적 독립의 본전이지요. 자신의 두손으로 창조한 재부와 고정적인 수입이 안받침해 줄 때 녀성은 자연히 당당해지며 가정에서는 총리로 사회에서는 남을 도울수 있는 지성인으로 자신의 총명과 재질을 남김없이 발휘할수 있습니다. 금전은 만능이 아니지만 온당한 경제기초는 가정에 안녕과 평화를 가져다 주며 가족들간의 화목과 행복을 만들어 주는 기본인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령활한 생활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생활은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올 수도 번뇌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양육하는 우리 녀성들에게 너무 완벽한 생활추구는 쉽게 피로를 가져오고 권태를 느낄수 있지만 또한 너무 라태하거나 허무한 생활방식은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지혜로운 녀성은 항상 즐거운 마음과 신근한 노력으로 현대감이 넘치는 가정환경을 만들고 가정생활을 사랑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의 성장을 기뻐하면서 그들에게 온갖 심혈과 정성을 다 쏟아 넣습니다. 그들은 이런 생활속에서 삶의 쾌락을 느끼고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즐겁게 매 하루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해야 할것은 부단한 배움입니다.《영원히 살것처럼 배우고 래일 죽을것처럼 일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인생의 배움은 끝이 없으며 녀성들의 삶의 지혜도 바로 배움에서 오는 것입니다. 현대화 정보화와 세계화시대에 따라가자면 배워야 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면 배워야 하며 놀랍게 성장해 가는 자식들을 뒷받침해 주자해도 배워야 합니다. 배움은 녀성의 품위와 풍격을 높혀주며 배움은 녀성의 지혜와 매력을 더한층 가꾸어 줍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성립 58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녀성들 모두다 더욱더 아름답고 더욱더 세련되며 더욱더 건강하고 더욱더 활기에 넘치는 새세기의 신녀성으로 됩시다. 가정에서는 사랑스러운 안해로, 존경스러운 어머니로 사회에서는 능력있는 일군으로, 성공하는 녀성으로 자신을 부단히 승화시킵시다. 우리 녀성들께 이보다 더 신나고 멋진 삶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2010년 9월 3일 18.00시—19.00시                                         중앙인만방송국 조선말 방송자료                   
24    연변인민방송국 사회부《희망클럽21》프로 댓글:  조회:5716  추천:45  2010-11-08
   연변인민방송국 사회부《희망클럽21》프로        희망을 만드는 아름다운 실천          안녕하십니까? 《희망클럽21》의 김옥화입니다.      자연의 푸른 생명이 움트는 4월입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절기와 더불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도 푸른 희망으로 가득찼으면 하는 생각 가져봅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속에서도 고독에 빠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좌절과 실패속에 용기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분들이 더 힘들어하는것은 괴로워하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 답답함이라고 하는데요. 문제를 해결해달라는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나누기만 해도 좋을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것입니다.        그럼 이런 맘을 나눌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가요? 그들은 어떤분들일가요?《희망클럽21》, 오늘은 《희망을 만드는 아름다운 실천》을 하고있는분들을 만나 맘 따뜻해지는 얘기를 나누는 시간 마련해봤습니다.                                                    &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며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스트레스와 삶의 고민으로 몸살을 앓고있습니다. 인생길에서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절실한 도움을 줘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시간에는 연변대학민족문화교육원 생명열선상담연구소 강순화소장을 모시고 그들의 아름다운 실천을 통한 문제해결의 대안은 어디에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며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스트레스와 삶의 고민으로 몸살을 앓고있습니다. 인생길에서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절실한 도움을 줘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에는 연변대학민족문화교육원 생명열선, 녀성열선 상담연구소 강순화소장을 모시고 그들의 아름다운 실천을 통한 문제해결의 대안은 어디에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생명의전화》상담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하고 계시는데 우선 《생명의전화》란 어떤것인지 하는 것부터 얘기주시겠습니까?    강소장: 예, 살다보면 우리는 이런저런 고민이나 좌절을 겪을 때도 있고 실패앞에서 절망을 느낄 때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분들을 위해 그들이 고민과 방황, 좌절과 절망의 심리에서 벗어나 다시 새 희망을 가지고 삶을 정시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상담기관이 바로《생명의전화》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극단적인 심리 불안으로 자살까지 시도하는 분들도 포함하여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생명존중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하는 말그대로 생명을 구하는 희망의 전화라는 의미도 포함되였지요.     기자: 듣고보니《생명의전화》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나 고민들을 들어주고 풀어주면서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고마운 전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실제적인 어려움이나 고민같은것들을 남에게 털어놓고 얘기하기를 꺼려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나의 사생활이고 비밀이란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것을 저어하는것 같은데요. 《생명의전화》는 전화라는 이 매개체를 통해 이런분들의 맘속 응어리를 효과적으로 풀어주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런 형식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겠나 생각됩니다?       강소장: 복잡한 삶의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인간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따라서 상담자는 그들의 어려움이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이 상담이기에 상담은 개인의 일만이 아닌 사회의 문제를 치료하고 예방하는 하나의 새로운 길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생명열선, 녀성열선》》은 바로 얼굴없는 상담전화로서 상담자는 오직 래담자가 제출하는 문제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래담자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용기를 주며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기자: 그런데 이《생명의전화》란것이 외국에서 기원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부각하며 도움의 손길을 보내기 위한 사랑의 실천으로 시작된것이 아닙니까?    강소장: 예 그렇습니다. 전화는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가장 경이로운 기구중의 하나로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필수품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당연한것으로 생각하여 그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한통을 잘 받지 못하여 결국 자살시도를 막지 못한 침통한 사실로 하여 호주 시드니의 알랜워커라는 목사는 1960년대에 벌써 생명을 살리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여 오늘날 국제 생명의전화로 발전되였고 금년에 이르러 한국은 34년(1976년에 개통), 우리 연변은 15년(1995년에 개통)이라는 력사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기자: 다같이 오늘을 살아가고있는 우리인 만큼 삶에서 느끼는 갈등이나 모순, 고민같은것은 누구나 있을수 있지 않습니까? 특히 무한경쟁사회를 살아가고있는 오늘날에는 이런저런 스트레스들도 갈수록 많이 늘어나고있는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주변에도 이런분들에게 보낼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연변도 보면 개혁개방의 물결속에 출국붐이 일면서 많은 면에서 대변혁이 일고있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모순이나 문제들도 속출하고있는데 이런 실정에서 우리에게도 소중한 의미를 담고있는 《생명의전화》같은 상담기구는 매우 절실하게 수요된다고 봅니다?      강소장: 중국이 개혁개방에 들어서면서 우리들의 삶에도 천지개벽이 일어났지요.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간의 가치관념을 변화시켰고 이에따라 도시열, 한국열, 외국으로 향한 대거 이동은 많은 리산 가족과 단친, 무친 자녀들을 만들어 가정은 불안전하고 사람들은 고민과 방황으로 모대기게 되였습니다. 이런 현실속에서 전화상담은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습니다.    기자: 객관적인 환경의 수요와 사랑의 맘을 지닌분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생명의전화》상담연구소가 우리 연변에도 세워지게 됐는데 이미 15년이라고 하셨지요?   상담연구소가 연변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십여년이라면 짧지 않은 시간일 텐데 주로 어떤 설립 취지와 목표를 가지고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강소장: 가정의 행복을 찾고 인간관계가 더 밝아지게 하는 일에 좀더 전문적인 지식과 사랑을 불어넣어 우리 사회가 보다 조화롭고 안정되게 함에 우리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저 하는 것이 우리 상담원들의 의무이고 바램인 것입니다.《연변생명열선, 녀성열선》은 바로 이러한 취지로 하여 개통되였고 1995년 8월부터 현재까지의 10여년동안 사회 방방곳곳에서 걸려오는 혼인가정문제, 가정법률, 청소년교육, 심리건강교육 등을주요내용으로 한 수백여통의상담전화를받아왔고전화상담과 사회교육, 국내외 유관단체들과의 문화교류, 정보교환, 사랑과 나눔의 자원봉사활동들을 진행하고있습니다.       기자: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이런저런 실패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힘과 용기를 가지게 하는《생명의전화》가 있어 많은이들이 다시 희망을 가질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사랑의 맘으로 힘든이들을 돕는 상담기관으로서《생명의전화》상담연구소는 어떤 성질의 조직입니까?    강소장: 비영리성을 띤 사랑과 봉사의 조직으로서 사회 각 분야의 일정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지성인 상담원들이 무상으로 사회를 향해 복무하는 기구인 것입니다.       기자: 이런 취지와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상담연구소를 운영해오셨는데  그러면 지금 구체적으로 상담연구소의 활동범위와 내용은 어떻게 잡고있습니까?     강소장: 최근의 상담내용들을 보면 주요하게 청소년들의 교육문제, 그들의 심리적 불안감, 자녀교양문제, 혼인가정문제, 제3자 개입과 리혼문제, 부부재산문제, 취업문제 등등이였는데 래담자의 근 90%가 녀성들입니다. 이만큼 녀성들의 문제가 절실한것이 현실이지요.   "녀성이 밝아야 사회가 밝다"고 하지 않습니까? 녀성을 일컷는 "안해"란 말은 어쩌면 집안의 해(태양)라는 말인듯싶습니다. 집안의 해가 빛나면 사회는 환히 밝아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생명열선, 녀성열선 상담원들은 언제나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는 어머니처럼,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오랜 친구처럼 그 누구의 그 어떤 문제든지《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과 당신의 아픔을 나누려는 뜨거운 가슴으로》귀를 기울리고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상담원들의 따뜻한 접대는 래담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정시하고 역경을 이겨낼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삶의 지혜와 용기를 북돋우게 합니다.    기자: 그동안 단체의 조직기초 건설을 많이 틀어져 온 줄로 알고있습니다. 어떤 방면의 노력들을 해오셨는지요?     강소장: 1995년부터 15년간 해마다 연변대학민족문화교육원에서 심리상담교육 학습반을 꾸려서 이미 1000여명의 상담원들을 교육하였으며 상담수료증을 쟁취한 상담원들만도 380여명이 됩니다.    그외에도 한국상담연구소와 손잡고 2년에 1차씩 집단상담과 감수성훈련을 하였으며 해마다 열리는 한국생명의 전화 전국대회에도 이미 6차나 참가하여 50여명의 상담원들이 좋은 학습과 실천의 기회를 가졌고 국외와의 교류중 부단히 상담소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현재구성인원:  소장 1명, 부소장 2명, 상무리사 7명, 리사 50여명, 직접상담봉사자 20여명입니다.    기자: 상담연구소의 구체실무에서 보면 여러가지 형식의 상담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상담실천에서 보면 생명의 전화가 어떤 역할을 하고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그 작용도 크리라고 생각됩니다.     강소장:  오늘날 물질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최대의 편의와 복지를 가져왔지만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공허감과 피곤감을 느끼고있습니다. 로인들은 더욱더 외로워졌고 어린이들은 더욱더 영약해져 가고 있으며 어른들은 더욱더 무기력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기본적인 생존욕구가 충족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싶어합니다. 사랑은 실천할 때가 더욱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작은 실천이 큰 희망을 만들고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즐겁게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은 우리 민간단체의 힘으로 정부가 미처 하지 못하는 실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므로서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또한 조화로운 연변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저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였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자: 상담연구단체를 운영해오면서 지금까지 여러면의 성적들도 적지 않게 쌓아온줄로 압니다. 그동안 이룩한 성과들을 개괄적으로 짚어주시겠습니까?    강소장:  10여년래 해마다 사회를 향한  심리상담 무료교육을 진행하여왔고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섯차례나 와 에 참석하였으며 한국 KBS방송, 중국 중앙인민방송, 연변인민방송, 연길시방송,연변일보,연변텔레비보,현대가정신문  등 각종 매체들에 수차 우리단체의 활동들이 보도되였으며 우수단위, 의 상무리사단위 및 선진 집체 등 정부 유관부분의 인정과 표창을 수차 받아왔습니다.    기자: 그동안 지역사회에 하나의 도움이 되는 단체를 이끌어오면서 눈에 뜨이는 성과를 거두며 일하는 보람도 많이 느껴왔을겁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상담연구의 실천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이런 단체가 우리 지역사회에서 활약하고있다는것은 당당하게 자체의 존재적인 의의를 가지고있다는것이 되지 않습니까?     강소장: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분들이 상담교육을 받고 오직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다년간 《생명의전화》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동안 많은 수고를 하여 왔습니다. 그 수고와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며 많은 문제들이 우리에 의해 해결되였고  사회적으로도 그 반향이 좋은줄로 알고있습니다. 기대했던바의 사회적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직접 상담연구소를 맡고 운영해오면서 구체적인 실천속에서 얻어지는 감수들도 적지 않았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주로 어떤 면에서 느낌이 크셨습니까?     강소장: 1995년 생명의전화가 연변대학민족문화교육원에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할 때 혹자는 그 유용성과 효률성을 념려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로 어떻게 그 일을 할수 있을가? 그들은 일단 비전문가가 아닌가? 특히 심리료법이나 면접전문가의 립장에서는 비판적이였고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연변생명의전화, 녀성의전화는 수년간 바로 이런 비전문가 상담원들의 봉사에 의하여 이어져왔고 그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있는 추세입니다.      전화상담은 자원봉사 상담자를 주축으로 해서 이뤄집니다. 이들은 단순한 협력자가 아닌 집행자이고 수행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로 자원봉사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함은 이 사회에 있어서의 하나의 효시로 됩니다. 상담봉사자들이 수년을 긍지와 보람으로 그 일을 담당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들의 참여동기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인간애, 사회적 공헌, 돕는자의 보람과 기쁨, 여가활용, 자기발전의 욕구와 성취감 등을 꼽을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되여있는 허다한 문제들은 전문가의 전문적인 치료나 상담에 의해 도움을 받기보다는 많이는 비전문가인 가족이나 친구, 동료의 도움으로 충족됩니다.      비전문가 상담원들은 자신의 인생경력으로도 남을 도울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들속에 깊숙이 파묻혀있는 순수한 마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래담자들에게 많은 위로를 주며 희망을 줍니다. 그들은 전문가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보다 공감할수 있고 보다 많은 시간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래담자들을 위하여 바칠수 있습니다.      이런 기초에서 더한층 상담지식을 배우고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능력을 개발하고 갈고 닦는다면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도 능히 남을 도울수 있는 훌륭한 상담원이 될수 있을것입니다.     기자: 다년간의 상담실천에서 경험들도 적지 않게 쌓아왔을줄로 압니다. 주로 어떤 면의 경험들을 쌓게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소장: 전화상담은 그 언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즉시성, 낮설고 어색함이 없는 익명성, 래담자에 의해 통제 할수 있는 주동성으로 하여 많은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효과적인 전화상담은 기술과 인식을 필요로 하며 상담 전체 과정에서의 사랑하는 마음과 겸손한 행위, 비판하지 않고 수용하는 마음, 그리고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상담이라는것은 수준과 지식,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상담의 기본주체인 인간입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리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통창력이 있는 사람이 상담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가질 때 효과적인 상담은 이루어 질수 있습니다.   경청, 공감, 반영, 탐색, 직면, 의견제시, 의사결정 이런 상담의 기본적인 기술들은 자신에 대한 인식과 리해를 증진시키는 과정에서 부단히 실천해 가고 이해해나가야 하는것입니다.     기자: 지금까지 지역사회를 위한 유익한 상담기관을 운영해오면서 적극적인 사회적효과를 기대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오셨는데 앞으로의 발전전망을 보면 어떻습니까?      강소장: 사회가 발전할수록 무한경쟁도 갈수록 치렬해질것이고 그런 환경에서 도전하며 살아가자면 우리 모두가 갖가지 어려움이나 부딪치는 난제들앞에서 용기있게 이겨나가는 자신심이 필요하지요. 생명의 전화를 지켜가고있는 상담원들이 바로 이런 용기와 자신감을 줄수 있는분들 중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수요가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에 비추어 상담연구소도 자체 존재의 가치를 빛내가면서 계속 힘있는 발걸음을 내디디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상담연구소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무쪼록 갖은 어려움속에서 힘들어하는분들에게 사랑의 맘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며 언제나 힘이 돼주고 희망을 안겨주는 그런 사랑의 천사로 거듭나셨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봅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강소장: 예, 감사합니다.                                  ( 방송시간 : 2010년 4월 11일 일요일, 방송총길이 : 39분 30초 )                  
23    조선족 가족구조의 변동과 가정교육에 관하여 댓글:  조회:5624  추천:60  2010-11-03
                             조선족 가족구조의 변동과                     가정교육에 관하여                                          一. 개혁개방이후 조선족 가족구조의 변동    중국의 개혁개방 30여년래 조선족사회는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몇십만을 헤아리는 조선족 청,장년과 녀성로동력들이 "출국열", "도시열", “섭외혼인열”에 휩쓸려 한국, 일본, 미국, 싸이판, 러시아, 카나다, 독일, 터키 등등 수십개의 이름 모를 나라와 연해지구로 대량 진출한데서 비록 매년 국가재정수입을 초과하는 딸라들을 벌어 들여 경제생활에서의 전례없는 향상은 가져왔지만 그 반면에 이로 인한 인구의 대 이동과 낮은 출산률로 인한 조선족인구의 마이너스 성장은 민족학교의 대대적인 감축을 가져왔으며 농촌 민족 집거구의 해체와 민족교육의 위기설까지 불러 왔다. 조선족 학생이 한족학교로 많이 가므로 조선족 반과 조선족 학교가 적어지는 현상에 뒤이어 근년에 와서는 한족소학교에서 조선어과 까지 설치하였으므로 더더욱 조선족학생들을 몰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발전에 따라 산업화와 세계화의 경제과도시기에 처한 조선족이 격어 나가야 할 필연적인 도경이기는 하지만 그에 따르는 부작용 역시 홀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변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룡정시 모 진에는 9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7개 조선족소학교에 1100여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인구가 줄면서 촌 소학교들이 점차 폐교되여 2000년에는 하나의 소학교, 540명 학생이 남았었는데 최근 몇년간 또 해마다 약 70여명씩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150명이 남았다고 한다. 학교가 하나뿐이니 집이 먼 학생은 왕복 50리길을 다녀야 하므로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고 한쪽거리가 20리나 되는 18명 학생은 뻐스가 없는 날이면 학부모들이 손잡이뜨락또르로 자녀들을 학교까지 실어 와야 한다. 이것이 농촌 조선족학교들의 현실이다.      90년대초 부터 시작하여 나날이 증가되는 결손가정이 인제는 반수도 (전주적으로 2003년에 53.2%)퍽 넘어나니 조선족의 가족구조는 크게 변동되였고 따라서 가정교육은 엄중히 결여되고 있는 상태이다. 엄마, 아빠, 혹은 두 부모 모두 출국했거나 리혼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친척이나 남에게 의탁해 있는 아이들이 전체 학생의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은 력사상 그 어느나라, 그 어느 민족에게도 있어 본적이 없는 불행한 현실이다. 이는 조선족 청소년들의 심신건강과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바 민족교육의 질 향상은 물론, 우리 민족의 후대양성에도 홀시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조성하고 있다.    청소년은 조국의 미래이며 민족의 희망이다. 그들에게 정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심어 주어 나라의 기둥으로 건실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은 이 세대 부모들의 책임이자 의무인 것이다. 때문에 이런 특수한 산업화와 경제적인 전환기에 처한 우리민족 가족구조의 변동과 가정교육의 실태 및 그 대책에 대하여 우리는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二. 가정교육이 자녀성장에 주는 작용   현실 생활에서 살펴보면 어떤 애들은 생기발랄하나 어떤 애들은 우울하고 수심에 껴 있고, 어떤 애들은 례의범절이 바르고 해박하나 어떤 애들은 무뚝뚝하고 조폭하며, 또 어떤 애들은 총명하고 재간이 많고 진취심이 있으나, 어떤 애들은  비교적 아둔하고 늦되며 용속한 등 차이가 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가정환경과 가정교육의 부동한 결과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특히 결손가정과 같은 특수가정의 자녀들을 보면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잃었기에 그들의 정감, 정서 세계는 괴이하게 발전하여 내성적이고 랭랭하며 조폭하고, 주변 친구들과 교제하기를 꺼리고, 자사자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대리 부모역을 하는 부양인들의 문화 수양이 대부분 차한 탓으로 아이들의 학습에 무관심하고 따라서 그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고 행위와 규률이 산만하며 품덕이 불량한 것이다. 지어 학교를 중퇴하고 범죄의 길로 나아가는 현상까지 있는데 지난해 연길시에서 련속 세차례나 저지른 강탈사건의 주모자들이 바로 15-16세 되는 7명의 중퇴생들이였다. 학교를 떠나 가정의 교육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사실상 사랑이 고갈되여 인성까지 잃어 가는 불행아들인 것이다. 연길시 모 학교에서 결손가정 애들을 조사했는데 그들중 71.3% 학생들이 부모가 신변에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연변대학 녀성연구소에서 조사한데 의하면 전주 소학생부모 출국률이 이미 반수를 훨씬 넘어 제일 엄중한 상태였다. 즉 7세-13세사이 어린이를 가진 젊은 부모들이 그 이상인 중로년 세대들에 비해 해외진출이 더 많았고 그에따라 상대적으로 자녀교육에 대해 무책임함을 보여 주었다.   북경사범대학 교육전문가인 신도교수는:《제일 직접적으로 어린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은 흔히 젊은 부모들이다. 이는 이미 하나의 보편적인 사회문제로 되었다.》라고 지적하면서 그 무책임 행위를 다음과 같이 렬거하였다.    (1) 부부가 쉽게 갈라진다. 2002년말 공포한 최근 3년간의 전국 리혼비례 수자에서 보면 자녀를 두고 리혼한 부부가 리혼 총수의 68%를 차지한다고 하니 68%의 리혼부부 애들이 단친어린이로 되었음을 의미한다.    (2) 애들을 장기적으로 기숙시킨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몇달 지어 몇년씩 애를 찾아 보지 않으니 애가 부모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조사에 따르면 부모와 함께 있는 애들의 심리, 신체건강은 정비례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기에 장기적인 기숙은 취할바가 못되는 것이다.    (3)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다. 가정의 불화목이 어린이들에게 주는 상처는 리혼의 버금으로 간다. 소학교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89%의 학부모들이 애들 앞에서 싸우고 33%의 부모들은 심지어 애들 앞에서 손찌검까지 한다고 하니 애들에게 주는 상처는 아예 념두에도 없는 듯 하다.    (4) 애들에게 물질면의 만족을 준다. 전문가들은 애들에게 물질적 만족을 주는 것은 제일 과학적인 방법이 못된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사치한 습관을 양성할 것이 아니라 정신면으로 관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5) 범죄를 유발 시킨다. 이는 아주 심중한 화제이다. 지난해 한 보도매체에서 14살짜리가 5년간 매음한 사실을 보도했는데 이 녀자애를 매음의 길로 내몰아 간 장본인이 바로 친 엄마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부모와 애들이 함께 절도, 강탈에 참여한 사건도 적지 않다. 부모의 위법범죄는 자식까지 망쳐버리는 것이다.        三. 현실사회 가정교육의 류형     정상적인 인간으로 태여 났다면 천성적으로 나쁘고 아둔한 애는 없다고 한다. 즉 후천적 교육이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은 자녀교육의 첫 학교이고 가장은 자녀의 첫 단임 교원이므로 자녀의 정감, 행위의 배양 및 금후 능력의 형성은 태여나는 그 시각부터 부모와 가정에서 묵묵히 감화되고 형성되여 가고 있다. 때문에 가정교육은 한 사람의 계몽과 인격의 완성에 있어서 학교교육이 대체할 수 없는 특유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세상에 태여 난 후 제일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부모이고 가정이며 또 그들로 부터 감화와 교육을 받게 된다. 하기에 가정은 어린이가 사회와 접촉하는 출발점이고 성장하여 한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각종 능력의 배양기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매개 부모 자신들의 문화수양, 사상관념, 도덕수평, 교양방식이 부동함으로 하여 자녀에 대한 교육방법도 다르게 되고 따라서 자녀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면 현실사회 가정교육의 류형은 어떻게 나누어 볼것인가?    첫째는 과학적인 지도형이다. 이 부류의 학부모들은 우선 부모가 되기 전 부터 어린이 교양과 자녀교육에 유관되는 교육학, 심리학, 아동영양학 등 지식을 참답게 학습하며 자기 자녀의 특점에 결합하여 과학적인 교양방법으로 자녀를 교육하고 있다. 어릴 때 부터 책을 읽는 것을 가르키고 독서로서 천재를 키우려 노력한다. 여러 가지 지식으로 아이의 두뇌를 의식적으로 개발해 주고 지도해 준다. 이런 부모들은 어린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터 글자를 가르키고 그림책, 자연동화나 아동명작들을 볼 수 있게 지도하며 어린이가 학교에 가게 되면 또 학교와 배합하여 학생의 전면발전을 중시하고 각 과목들에 편차가 없이 기초를 잘 닦도록 밀어준다. 또한 자녀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 주며 자신의 흥취와 애호에 따라 각종 문체활동과 써클활동에도 참가하게 함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생기발랄하고 주동적으로 학습는 습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당연히 덕,지,체,미가 겸비한 훌륭한 인재로 성장되여 갈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정은 조사평의에서 보면 아직까지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는 과분한 보호형이다. 이 부류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마치 부모의 소유물인양 여기며 아이들의 능력을 전혀 믿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나 과분하게 보호하려 하고 부모가 모든 것을 도맡아 하려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여 주고 밥을 먹으면 옆에서 닭알을 까주며 학교에 가려하면 책가방에 책을 정리해 넣어 주고 돌아오면 지어 숙제까지 대신하여 써 준다. 이렇게 습관 된 애들은 공부가 마치 부모를 위한 일인양 생각되고 모든 것을 부모에 의뢰하므로 자립능력은 아예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자란 애들은 과분하게 남에게 의뢰하고 일마다 남의 손을 바라며 생활능력이 없고 독립사고 능력이 약하며 곤난에 쉽게 머리숙이고 의지력이나 개척정신의 발전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 과보호가 만들어 낸 온실의 화초는 찬 바람과 폭우에 견딜 수 없듯이 이런 가정속에서 성장된 애들은 앞으로의 복잡다단한 인생길에서 여러 가지 애로와 곡절에 쉽게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류도 조사평의 수에서 35%나 차지하였다고 하니 놀라운 수자가 아닐 수 없다    셋째는 과분한 간섭형이다. 학부모가 자녀에 대한 과분한 간섭은 아이들의 언행을 제한한다. 학교에서의 교육과 결부하지 않고 현대적인 관념으로 사고하지 않으며 그저 부모 자신의 낡은 생각과 관념, 방식에 따라 애들의 행동을 사사건건 그 틀에 맞추려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지령식, 책망식, 명령식 언어만 쓰면서 집에만 오면 아이들을 안절부절하고 어쩔바를 모르게 한다. 이런 애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부모의 욕을 먹지 않겠는가에만 명심하고 눈치를 보며 따라서 성격도 위축된다. 때문에 무슨 일이나 부모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면 되려니 하여 전혀 자체로 독립사고 하지 않으므로 형성되여야 할 지력과 개성의 발전은 억제되고 창발정신이나 비판능력이 결핍하게 된다. 이 부류의 가정도 조사평의에서 25%나 되었다고 한다.    넷째는 소위 엄격한 징벌형이다. 자녀를 교육하는 태도가 언제나 딱딱하고 언어는 거칠며 감정이 결핍하고 심지어 욕하고 때리는 것을 소위 교육으로 삼기에 아이들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꺽이고 있다. 특히 애들 앞에서 술주정 하거나 부부 싸움을 하며 망탕 욕들을 해 댄다면 애들의 눈에 이런 부모는 오직 무지막지한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므로 스스로 부모의 권위와 위망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은 지어《때리지 않으면 사람이 안된다》거나《몽둥이 밑에서 효자가 나온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이런 교육방법은 아이들의 성격을 억누르고 심리상 자비감이나 반발심을 갖게 하며 항상 숨은 밸을 참아 오기에 성격이 괴상해 지고 담은 작아지며 무슨 일에서나 자신심을 잃게 된다. 이런 소위의 교육 방식은 가정교육에서 역작용만 만드는 최대의 금물인 것이다. 최근에 적지 않게 발생하는 청소년 가출 현상을 보면 대부분이 이런 가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부류도 조사평의 수에서 7%나 차지하였으므로 결코 홀시 할 일이 아니다.     다섯째는 자유 방임형이다. 이런 가정은 자녀 교육의 주요 책임을 아예 학교에만 떠밀고 아이의 학습생활을 전혀 관심하지 않는다. 우리 조선족사회의 많은 결손자녀들이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하고 있다. 부모들은 장사요, 출국이요 하면서 돈벌이에만 신경쓰고 아이는 로인들이나 남에게 의탁하여, 공부는 잘하나마나 먹고 입고 학교에만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학하여도 관리하지 않으니 사회의 나쁜 물에 젖고 부모가 외국에서 보내 준 돈으로 과소비나하며 심지어 가출하여 PC방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공부는 뒷전이고 놀음에만 정신을 팔므로 학교에서는 문제소년, 사회에서는 위법 범죄소년으로 전락되기 일수이다. 애들을 이렇게 만들고 부모가 돈은 벌어서는 무엇하며 또 그 애들의 창창한 앞길은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 이런 애들을 가르켜 <사랑 없는 세대>, <희망 잃은 세대>, <비극의 세대>라고 까지 하지 않는가?! 우리 주위에서 무시로 볼 수 있는 가정 파탄의 사실들은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런 가정도 전국적 조사평의 수에서는 3%로 나왔지만 우리 조선족 사회에는 퍽 많은 수자로 보이고 있다.         四. 가정교육 기능의 구축에 관하여     전국 부녀련합회에서는 해마다 9월달을 <가정 도덕교양 선전실천월>로 확정하고 학부모학교에 대한 지도와 봉사를 중시하고 있는데 각지에 온라인학부모학교, 주말학부모학교, 가정교육자문소 등을 세우고 학부모들을 도와 가정교양지식과 방법을 가르키는 등 가정교육의 효과적인 조치들을 가강하고있다.      우리 주의 각 학교들에서도 이 문제들을 중시하고 학교교육 뿐 아니라 가정교육도 가강하는 방법들을 여러 가지로 연구 모색하고 실천해 오고 있다. 학부모 강습반을 꾸리고 주말 가정교양 특강을 진행하고 있으며 가정교양상식 소책자를 학부모들에게 발급하여 학습하게 하였다.          연길시 신흥소학교, 연신소학교 등 학교들에서는 또 심리상담실을 설치하고 경상적으로 결손자녀들과의 상담활동을 벌리여 그들의 애로를 해결해 주고 사랑의 손길을 보내며 결손자녀가 많은(60-70%이상) 특수반급에서는《그들에게 사랑을 주자》는 주제로 반활동을 하여 좋은 효과를 보았다.         화룡시 두도진 신민촌에서는 1998년부터 <촌학부모학교>를 꾸리고 13개 촌민소조에 청소년활동중심을 세워 하학후 풍부하고 다채로운 활동들을 조직할 뿐 아니라 방학이면 학업이 우수한 학생, 3호학생, 특장생, 우수학부모를 표창하였는데 몇 년래 중퇴생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난해 11명이 우수한 성적으로 고중에 입학하고 4명이 대학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이 촌의 학부모학교는 주 표준화학부모학교로 명명되였다.      사회 각 분야에서는 또《사랑의 집》을 만들어 결손자녀들의 안신처를 마련하였으며 연변텔레비 <사랑으로 가는 길>, <사회교육방송>등 기금의 후원으로 그들의 학습생활상의 곤난과 심리상의 고통을 풀어 주는 등 많은 노력들을 하여 일정한 성과도 거두어 오고 있다.        가정교육 기능 구축에서 학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식을 교양함에 있어서 자녀들의 심리 특점에 맞게 흥취를 발굴하고 그 토대에서 아이의 지력에 근거하여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하여 끝까지 견지할 수 있는 의력을 키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한두가지 흥취를 갖고 의력을 키우며 지력을 잘 개발한다면 잘해 보려는 승벽심이 생길 것이고 이 승벽심은 또한 완강한 의력으로 변하여 성공하려는 필사 정신을 갖게 한다. 이 성공 과정에서 두뇌는 개발되고 사업은 성취되여 나라의 훌륭한 인재로 될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어려서부터 애들이 책읽기를 즐기고 책을 많이 읽게 하므로서 세상과 접촉하고 안계를 넓이며 적극 향상하는 자신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부모가 앞장서 독서함으로서 항상 책읽는 습관을 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독서 중에서 인생을 알고 인생의 가치를 탐구하며 세상만물에 진취심을 갖고 발명창조해 보려하며 분발 노력하는 자신력을 키워가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의 15%를 차지한 유태인들의 가정교육 핵심이 바로 독서라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 화재가 된 <내 아이를 지키려면 텔레비를 꺼라>는 책에서 소개한 가정교육의 성공 사례는 독서의 중요성을 충분히 보여 준다. 다섯 살부터 텔레비를 안보도록 하고 대신 도서목록을 정해 주어 소학교 6학년까지 5000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 학생은 그 흔한 과외 교육을 한번도 안하고도 우수한 성적으로 소학, 중학, 고중에 올라갔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의 긍정적인 사유와 표양 위주의 교육 방법 또한 애들의 정서를 북돋우고 학습에서의 신심을 키워주는 훌륭한 방법임을 지적하고 싶다. 아이들의 저그마한 진보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제때에 표양하고 고무해 주며 혹시 잘못한 일이 있다면 또한 제때에 그 위해성을 밝혀 주어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이들의 심리 소질을 키워 주고 자신심을 키워주는 교육에서 더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개괄한다면 당대 사회의 가정교육은 시대의 요구에 부합되여야 하는 것이다.     즉 (1) 부모의 역할이 교육자로부터 공동학습자로 되어야 한다.         (2) 자녀와의 관계는 높고낮음이 아니라 평등하고 민주적이여야 한다.         (3) 교육의 도경은 단일한데로부터 다각적인 방향으로 전변돼야 한다.         (4) 교육방식은 봉페로부터 개방에로 전변되여야 한다.         (5) 교육의 내용은 작은 교육으로부터 큰 교육에로 전변돼야 한다.     한마디로 가정교육은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해야 하는 그 감수의 조기성, 온갖 삶의 지식을 가르키는 학과의 종합성, 부모와 자식이라는 강열한 감염성, 그리고 평생을 이어가는 장기적인 의존성, 가정마다 다양한 방법의 령활성이 있어서 한 인간이 자연인으로부터 사회인으로 발전하여 인류의 사회화를 실현하는 필수 도경이며 한 사람의 덕, 지, 체, 미, 로 등 각종 소질의 형성과 발전에 전면적이고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가정교육은 하나의 극히 간고하고 복잡하며 창조성적 로동으로서 한 인간을 배양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연변대학민족문화교육원 사회교육반                                            특강자료     2010년 9월                               
22    《혼외련》현상에 대한 몇가지 사고 댓글:  조회:5628  추천:84  2010-05-31
                《혼외련》현상에 대한 몇 가지 사고                                                                                                                                       글 / 강 순 화    《혼외련(婚外情)》현상이란 법적 부부관계가 있는 남녀가 배우자 외의 다른 미혼 혹은 기혼의 이성과 발생하고 있는 정애(情愛)관계를 말한다. 사람들이 보통《애인》관계라고도 말하는 이《혼외련》현상은 표면상에서는 마치 당사자들의 감정문제에만 국한되는것 같지만 실질상 이는 현실사회 성인 남녀들의 혼인과 애정생활에서 나타난 한개 홀시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되고 있다. 러시아 장사길에서 시작된《짝무이》(搭伴儿)현상으로 부터 한국,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림시동거》현상,중국에 드나드는 외상(外商)이나 한국《사장님》들에 의한《현지처》현상, 돈과 권력의 향락터에서 기생처럼 살고 있는《미모의 첩》들, 유흥업소 홍등가에서의 란잡한 이성교제... ...등등 이런 비정상적인 남녀관계의 존재는 이미 현사회의 경제, 문화, 생활, 도덕 등에 그 사회적 배경과 바탕을 두고있다.     사람들이 이런 현상에 대한 태도 역시 애매한바 마치 류행이나 따르듯이 점차 너그러워지거나 지어 묵과되고 있으며 그《혼외련》당사자들의 견해 또한 그 무슨《진실한 사랑의 추구》인양 놀랄만큼 파렴치하다. 그럼 아래에 소수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몇가지 견해들을 분석하여 보자.     一.《<혼외련>현상은 사회의 진보적 현상》인가?     인류력사 이래 사람과 사람지간의 관계, 특히 이성지간의 관계는 시종 존재하여 왔다.《혼외련》현상은 혼인 이외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남녀의 정애관계로서 혼인생활 외의 또 다른 제3자와의 만남이기에 필연적으로 당사자들의 혼인과 가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인류의 혼인과 가정의 력사를 볼 때 이성관계는 최초 원시사회의 혼란한 군혼(群婚)상태로부터 사회의 발전과 진보에 따라 부단히 진화되고 변화되여 왔으며 건국후에는 나라의 헌법으로 일부일처제를 규범화하였다. 이런 력사적 과정을 거친 인간의 혼인관계 속에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혼외련》현상은 그 무슨 신생사물이거나 진보적 현상인 것이 아니라 일찍 사유제사회에서 부터 존재하여 왔던 남녀 불평등과 불륜관계의 낡은 물건인 것이다. 다만 락후하고 미개하던 성 혼란의 형식과 방법이 점차 더《고급적》이고 더《개방적》이면서도 또한 더욱더 위장된 형태로 발전했을 따름이다.     가정은 사회의 세포로서 가정의 행복과 온정은 사회의 안녕과 발전의 기초이다.《혼외련》현상의 존재는 우선 당사자들이 가정과 자녀에 대한 무책임으로 부터 시작하여 점차 가정의 파괴를 조성하는 행위로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의 장애물이지 결코 그 무슨 사회의 진보적 현상은 아닌 것이다.     二. 《<혼외련>현상은 인성이 되돌아 온 (人性的回归)것》인가?    일부 제3자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론리에 의하면《정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사람들이 혼외로 성애를 찾는 것은 본능의 정상적인 표현이다. 장기간 법률과 도덕으로 혼외의 정애관계를 제한한 것은 사람의 성자유를 억압한 것이기에 인성(人性)에 대한 부정과 압제이다. 때문에 현재 류행되고 있는 <혼외련>현상은 인성이 되돌아 온 것이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성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즉 기타의 동물과는 다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 성질, 개성, 감정 등 인간성을 말한다. 인성은 여러 가지 속성의 총화로서 거기에는 인간의 자연속성, 사회속성과 사유(私有)속성이 포함된다. 사람의 성욕이나 성애는 자연속성의 조성부분으로서 사람의 본질 속성인 사회성의 제약을 받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가히 혼인관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혼외에서 마음대로 성애를 찾는다면 그것은 곧 사람의 본질속성인 사회성을 무시하고 생물성만 돌출이 한 것으로서 결국은 인성에 대한 외곡과 부정이지 그 무슨 인성이 되돌아 온 것이 아니다. 또한 사유속성은 인성의 중요한 한개 속성으로 거기에는 사람의 리성(理性)과 도덕성이 포함된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성행위를 포함하여 응당 사회, 민족, 국가가 허용하는 규범에 따라야 만이 진정한 인성을 갖춘 사회화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법률적, 도덕적 규범으로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공제하고 일정한 한계에로 조절하는 것은 인성의 부단한 완선화이며 인류가 문명한 사회에로 나가는 진보적 현상이고 발전이지 그 무슨 인간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고 말할 수 없다.      三.《혼외련》당사인들이《새것을 좋아하지만 낡은것도 싫어하지는 않는다(喜新不厌旧)》고 할 수 있는가?   《새것을 좋아하지만 낡은것도 싫어하지는 않는다》,《밖에는 채색기가 나붓겨도 집안의 붉은기는 넘어지지 않는다》하는 것은《혼외련》당사인들의 또 하나의《론리》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사람들이 혼외에서 정애(情愛)를 찾는것은 오직 일종의 새 자극과 쾌락을 위한 것이지 원래 가족에 대한 감정을 크게 방해하지 않으며 싸우지도 리혼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이러한 <평화공처>의 국면은 타인이나 사회에 모두 방해가 되지 않으므로 이런 혼외련현상은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정이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가정이란 남녀쌍방이 애정의 기초상에서 결혼하여 합법적인 부부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런 가정에서의 남녀쌍방은 모두 상대에 대하여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된다. 만약 부부중 일방이 혼외로 애인이 있다면 이는 우선 부부애정의 독자성을 파괴한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부부의 감정은 멀어지고 혼외의 새로운《쾌락 대상자》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부부지간의 권리와 의무는 그 진실한 내용을 잃게되고 대신 허위성과 기편성만이 커지게 된다. 이런 상태가 발전해 나간다면 부부는 자연적으로 모순과 충돌에 빠지고 가정의 화목은 파괴되며 혼인은 실패하게 된다. 또한 현실사회에서 혼외로 애인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요구조건이 있는바 그 조건에 변화가 생기면 그 관계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례하면 상대방의 금전이나 지위, 권리 등등이 변동 혹은 상실되여 리용가치가 적어졌거나 또는 상대의 용모, 성격, 행동거지가 싫어졌거나 하는 등등 조건들의 변화에 따라 그 관계도 점차 파렬되게 되고 새롭던《쾌락》은《낡은정》으로 변화되며 이런 당사자들의 감정은 또 새로운《목표》에로 전이되는 것이다. 때문에《새것을 좋아하지만 낡은것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은《혼외련》에 대한 괴변이고 방패이며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을 기편하는 구실에 불과 할 뿐이다.     四. 《혼외련》이 부부쌍방의 자아수양을 촉진할 수 있는가?    일부사람들은《혼외련이 생기는 것은 가정으로 놓고 말하면 일종 외재적 위협이며 경각성을 불러 일으켜야 하는 일이기에 부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대방이 만족하게끔 각 방면에서 제고하고 일정한 수양을 갖추어야 한다, 때문에 혼외련은 사람의 소질제고를 촉진한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양이란 무엇인가? 수양이란 바로 사람들이 사회생활중에서 각 방면의 신근한 노력과 배움, 그리고 부단한 자아교양을 거쳐 도달하는 능력과 수평, 품위와 기질을 말한다. 수양은 고상한 정감의 발휘와 표현이며 자각자원적인 것이다. 그런데《혼외련》은 가정에 대한 일종의 파괴적 인소이므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자기 신변에서 발생되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 하여 수시로 자신과 대방을 단속하거나 또는 자아반성을 할수 있다. 그러나 이런《제고》와 노력은 조심스럽고 눈치를 보아가며 무엇을 예방하려는 압제된 정서에서 출발하게 되므로 절대 그 무슨 고상한 정감으로 될 수 없고 자각적인 수양은 더욱 아닌 것이다. 마치 일종의 전염병이 만연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집안을 소독하고 청결하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위생을 잘하게 된 공로가 그래 전염병의 발생에 있다고 할수는 없지 않는가!     이상의 분석에서 보다시피《혼외련》현상은 그 존재의 리유나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개방이래 가정을 둔 남녀들의 해내외로의 대량적인 로무송출과 이로 인해 생긴 수많은 리산가족의 산생은 이런 현상의 사회적, 문화적, 물질적 배경을 만들어 준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현실사회의《혼외련》현상은 남녀를 불문하고 마치 그 당사자들의 권리나 부, 능력이나 조건을 보여 주듯이 자랑거리삼아 선양되고 있고 그 어떤 법적인 제재(制裁)조치가 없는것 또한 현실이다. 사람들은 이런 환경에 이미 적응이니 된듯이《애인》을 두면 그젯날처럼 망신스러운 일이거나 위법이므로 응당 처벌받아야 할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날로 엄중하게 확산되고 있고 수많은 가정들의 혼인생활에 직접적인 타격과 고통을 주고 있다.      행위문화로서의 혼인, 가정은 물질문화 그리고 정신문화의 복잡한 역동관계속에서 부단히 변화 발전한다.《혼외련》현상은 바로 시장경제가 몰고 온 물질의욕의 증장, 가치관념의 변화, 생활방식의 개변에 따라 나타난 퇴페문화의 산물이며 륜리도덕에 대한 반역이고 인간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문명시대라면 이런 오물과 흑점들을 깨끗이 없애버려야 하며 필요한 조직적, 법률적 조치들을 제정하여 엄격히 단속해 나감으로서 이런 현상의 위해가 우리사회에 지속적으로 만연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 이제는 하나의 시급한 과제로 되여야 하지 않을가 생각된다.                                                                                      2010. 5. 28                     
21    엄마의 지혜는 어디에? 댓글:  조회:4840  추천:83  2010-05-06
               엄마의 지혜는 어디에 ?                                        --- 5월9일 어머니절을 맞이하여      올해는 계절이 좀 늦어지는가 싶더니 그래도 제철은 어김이 없는 모양이다. 요지음 들어 연길거리 곳곳마다의 가로수들에는 연분홍빛과 하얀빛 살구꽃, 복사꽃들이 만발하여 사람들에게 상쾌한 새봄의 기쁨을 안겨주고있다. 그 어느해 부터인가 달력에까지 반듯이 오른 5월9일 어머니절도 어느덧 화창한 봄날과 더불어 우리곁에 사뿐 다가왔다.         이 아름답고 호화로운 계절에 우리 예쁜 엄마들은 무엇을 생각하고있을가? 자식도 남편도 가정도 사회도 한마음 가득 품고 사는 우리 엄마들,《꽃》이자《대지》라 일컫는 우리 엄마들의 삶의 지혜는 무엇일가? 어머니절을 맞는 이 시각에, 자식들의 축복속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자리에서 한번쯤은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하는것이 이 물음이 아닐가 싶다.        《엄마는 예쁘지 않을수는 있지만 지혜가 없어서는 않된다》고 우리는 늘 말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는 능력과 지혜가 있는 엄마의 역할이 우세를 발휘하고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미모로만 사람을 끄는 전통적인 시대는 이미 우리와 멀어지고 있으며 사회나 가족이 녀성이나 엄마에 대한 평가는 오직 그들이 갖추고 있는 종합적인 자질과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일가? 지혜는 재질이고 능력이며 량호한 생활습관이고 적극적인 인생태도이다. 지혜는 독립적이고 자신감 있는 인격이며 활발하고 락관적인 성격이다. 지혜는 세상을 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이며 관용과 용서를 바탕으로 하는 바다같이 깊은 도량이다. 지혜는 명석한 두뇌이며 견인분발한 의력이며 영구불변하는 매력이다.          용모의 아름다움은 늪에 비친 달빛과 같이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의 미감은 줄수 있지만 영원한 매력은 줄수 없다. 오직 내재적인 미, 기질적인 미야말로 영원한 젊음을 과시하고 있어 그 무궁한 흡인력으로 사람들에게 신성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지혜로운 엄마는 성숙의 미가 넘치고 지혜로운 엄마는 온유하고 따뜻하며 지혜로운 엄마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사업의 성공과 가정의 행복은 그 누구나 갈망하고 있는 인생의 추구이지만 그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능력이나 수준보다도 정확한 사유방식과 생활의 지혜가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혜가 있으면 자연히 흉금이 넓어지고 지혜가 있으면 그 어떤 환경에서도 두려움을 모르며 지혜가 있으면 기질도 우아해지고 행동거지가 아름다워진다.             그러면 우리 엄마들의 삶의 지혜는 어떻게 가꾸어질가?  아래에 몇가지만 라렬해 보자.        우선 자신의 고정적인 사업(혹은 하고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는 현대인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관념이다. 녀성이 사회에서 남성들과 경쟁하려면 명석한 두뇌는 물론 자신의 능력도 꾸준히 개발해야 하며 부단히 업적을 쌓아야 한다. 자신의 지혜로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해가면서 발명창조하고 분발진보하며 게으름없는 노력을 기울린다면 성공의 기회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아이들 눈에도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가장 신난다고 하지 않는가!        다음으로는 일정한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엄마의 경제적 독립은 인격적 독립의 본전이다. 자신의 두손으로 창조한 재부와 고정적인 수입이 안받침해 줄 때 엄마는 자연히 당당해지며 가정에서는 총리로 사회에서는 남을 도울수 있는 지성인으로 자신의 총명과 재질을 남김없이 발휘할수 있다. 금전은 만능이 아니지만 온당한 경제기초는 가정에 안녕과 평화를 가져다 주며 가족들간의 화목과 행복을 만들어 주는 기본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령활한 생활능력이 있어야 한다. 생활은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올 수도 번뇌를 가져올 수도 있다. 너무 완벽한 생활추구는 쉽게 피로를 가져오고 권태를 느낄수 있지만 또한 너무 라태하거나 허무한 생활방식은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기 쉽다. 지혜로운 엄마는 항상 즐거운 마음과 신근한 노력으로 현대감이 넘치는 가정환경을 만들고 가정생활을 사랑하며 자식의 성장을 기뻐하면서 그들에게 온갖 심혈과 정성을 다 쏟아 넣는다. 엄마는 이런 생활속에서 삶의 쾌락을 느끼고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즐겁게 매 하루를 보낸다.         또 다음으로는 자신을 항상 가꿀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우리 엄마도 화장을 좀 했으면 이쁠텐데 ... ...》한 소학교 설문조사에서 아이들의 말이다. 몸과 마음의 미를 알기전에 우선 외모부터 눈에 띄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금은보화로 온 몸을 장식하는것 보다 수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 현시대의 심미관념이다. 단정한 머리스타일에 자연스러운 화장을 살짝 올리고 몸매에 어울리는 복장에다 건강미까지 갖추어 진다면 이 아니 금상첨화인가? 선천적인 조건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부단히 보완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며 전통적인 관념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부단히 고쳐나가야 하는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엄마들의 지혜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해야 할것은 부단한 배움이다.《영원히 살것처럼 배우고 래일 죽을것처럼 살라.》고 하지 않는가? 인생의 배움은 끝이 없으며 엄마의 삶의 지혜도 바로 배움에서 오는것이다. 현대화 정보화와 세계화시대에 따라가자면 배워야 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면 배워야 하며 놀랍게 성장해 가는 자식들을 뒷받침해 주자해도 배워야 한다. 배움은 엄마의 품위와 풍격을 높혀주며 배움은 엄마의 지혜와 매력을 더한층 가꾸어 준다.        경인년 새봄의 어머니절을 맞이하여 우리 엄마들 모두다 더욱더 아름답고 더욱더 세련되며 더욱더 건강하고 더욱더 활기에 넘치는 새세기의 신녀성으로 되자. 가정에서는 사랑스러운 안해로, 존경스러운 어머니로 사회에서는 능력있는 일군으로, 성공하는 녀성으로 자신을 부단히 승화시키자. 우리 엄마들께 이보다 더 신나고 멋진 삶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2010년 5월 6일  
20    미국서부기행 댓글:  조회:5586  추천:72  2010-03-29
              미 국 서 부  기 행 글  /  강 순 화                                                중국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열면서부터《돈을 벌자면 외국에 가야하고 배우자고 해도 외국에 나가야한다》는 것이 거의 진리처럼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일본 등 아세아지역은 모두들 많이 다녀왔어도 서방의 발달한 나라들, 그중에서도 가장 발달한 나라인 미국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모지이며 쉽게 가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게다가 지난 몇년간 미국 부시정부가 책동한 이라크전쟁으로 인하여 미국이란 나라가 세상의 인심을 다 잃어 버려서 그곳과 우리는 평생 가도 별 인연이 없을 듯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은 변해도 많이 변했다. 글로벌화, 정보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하는 때이다. 2만리 밖에 있는 지구촌 한끝에서, 그것도 체제와 리념이 전혀 다른 태평양의 건너편 나라인 미국땅에서 중국연변에도 녀성들의 교육과 권익신장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조선족녀성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알고《문화교류와 협력》의 차원에서 우리들을 초청한 것이다. 지난 2008년 3월, 우리는 이렇게 미국 로스안젤레스에 있는 KAWA한미여성회(Korean American Women's Assciation) 의 초청으로 생각지도 못한 미국행을 떠나게 되었다.                    미국서부의 관문도시 로스안젤레스 `   북경공항에서 국제항공편으로 장장 13시간, 망망한 구름바다 우에 떠올라 태평양을 날아넘으며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비행기의 좌석에서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어려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이라면 침략자이고 제국주의자였다. 그들은 우리의 철천지 원쑤였고 그들이 살고있는 땅은 헐벗고 굶주리며 인간이 살 곳이 아닌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물밀듯 들어오는 서방나라들의 영화나 비디오, 그리고 미국을 다녀온 류학생이나 교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점차 미국이란선진국의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다. 하지만그이미지를 바꾸어 놓기에는 너무나도 피상적이고 보잘것 없는 지식뿐이였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15일 동안의 짧은 려행이였지만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서방 선진국에 대한 첫 수업이였으므로 그 감수 또한 유달리 깊었다. 저녁 9시 비행기에 탑승했으니 장밤을 자며말며 태평양을 날아 넘어 도착한 곳은 바로 불야성을 이룬 미국서부의 관문도시 로스안젤레스(Los Angelees)였다. 백인, 흑인, 멕시코인들로 이루어진 미국세관 관원들의 안내하에 손님들은 질서정연히 줄을 섰다. 한 20여분이 지나 내 차례가 되자 멋진 멕씨코 관원아저씨가 앉아 있는 창구에서 나를 불렀다. 그런데 영어로 재빠르게 묻는 그의 말을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세대로 보면 중학교시절에는 로어를 배웠고 대학에서는 일어를 배워서 영어는 겨우 인사말이나 할줄 아는 수평이라 언제 대화를 할수 있겠는가? 하는수 없이 미안한대로《노 잉그레스!》하고 말하니 그가 다시 중국어로 몇가지를 묻는 것이였다. 세계각국 손님들을 대상하여서인지 세관 관원들이 중국어도 좀 알고 있어서 영어를 모르는 우리들도 순리롭게 입국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마중 나온 중국류학생들을 따라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로스안젤레스에 있는 이였다.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들에는 눈에 띄게《꽃게랑 아구랑》,《시누랑 올케랑》이요,《종로 설렁탕》,《순천 고추장》이요 하는 재미있는 한글간판들이 걸려 있어 마치 서울의 종로나 인사동의 한 거리에 온 것만 같았다. 뜨끈뜨끈한 된장찌개, 두부찌개에 얼큼한 배추김치로 저녁을 배불리 먹고 역시 한국인이 경영한다는《뉴 서울호텔》에 가서 행장을 풀었다. KAWA 한미여성회와도 인츰 연락을 취하고 이튿날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우리 동포들이 모여 사는 로스안젤레스의 은 아늑한 고향마을 처럼 우리를 정답게 맞아주었다.   이튿날오전 일찍 호텔 경리의 안내로 택시를 불러 타고 약속지점인 JJ 호텔에 도착하니 KAWA한미여성회의 에스터김회장일행 세분이 달려 나왔다. 그녀들은 마치 오랜 옛 친구를다시 만나기나 하듯이 우리들을 반가히 맞아 주었다. 우리일행은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불고기며 아구탕으로 정성스레 차린 점심을 맛나게 먹으면서 행사일정들을 토론하였고 신문, 방송을 통해 홍보하고 대회장을 마련하는 등 일에서도 의견을 모았다. 그녀들은 또 호기심에 찬 우리들의 물음에 따라 이곳 한인들의 이민사에 대해서도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로스안젤레스는 18세기만 해도 에스빠냐인들이 차지했던 땅이라고 한다. 로스안젤레스란 이름도 에스빠냐말로 《천사의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동방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관문도시였다. 1965년 10월 죤슨대통령이 력사적인 이민법에 서명한 후부터 미국은 구라파 백인위주의 이민사회에서 비구라파, 비백인 위주의 이민사회로 성격이 바뀌게 되였고 아시아인들도 이 이민법에 따라 대거 미국에 들어올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살고있는 한인 1세들도 그때 로스안젤레스에 들어왔었다. 그들은 중국인, 일본인,필리핀인, 멕시코인, 흑인 등 유색인종들과 함께 이 일망무제한 사막지대에 길을 빼고 집터를 닦았으며 학교와 가게를 세웠다. 지금은 이 을 중심으로 한국어로 방송하는 텔레비죤방송국 2개, 라지오방송국 3개, 한글로 된 일간신문 7개, 주간신문 2개 가있다. 하여 로스안젤레스는 명실공히 미국에 있어서의 한국문화의 중심지로 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로스안젤레스는 참으로 천사의 마을이라는 이름 못지않게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였다. 워낙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데다가 백인, 황색인, 흑인에 혼혈종들까지 섞여 살고 있어 그야말로 세계의 인종전시장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마음이 쏠리는 것은 수십만의 한국인을 포옹하고 있는 과 중국 남방의 한 도시를 방불케 하는 붉은색 건물들이 즐비한 이였다.  밝고 깨끗한 한국식 거리와 울긋불긋한 중국특색의 건물들, 그리고 그 삶의 모습들은 바로 이 머나먼 아메리카대륙에 와서도 자기들의 전통문화를 끈질기게 고수하면서 모국의 풍격 그대로 집을 짓고 학교를 꾸리며 대대손손 부지런히 가계를 이어가는 근로하고 총명한 한인과 화교들의 인생 축도인 듯 싶었다.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있는 해안도시라 공기 또한 더없이 맑고 싱그러웠다.  거리와 골목마다는 온통 푸르른 잔디를 입혔고 각가지 아열대식물들이 키 돋음을 하고 있었다.  규칙있게 심어놓은 길 량켠의 종려나무들과 그 사이사이에 흐드러지게 피여 있는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은 아담한 고급주택들과 어울려 생기롭고 평화로운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2월말은 그곳도 겨울철이라하지만 거짓말 같았다. 집집의 정원마다에는 파란 참대숲이 곧게 뻗어 올라가고 있었고 오렌지나무에는 황금빛 열매가 무너지게 열려 있었다. 또 어떤 가옥들에는 붉은 장미꽃 타래가 너울같이 뒤덮여 황홀한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자란 야자수는 이상하게도 곧게 솟은 전선대처럼 허리통에 난 가지들은 말끔히 쳐버리고 머리통만 둥그렇게 피여 가지고 큰길 량옆에 늘어서 있었는데 그 모습들은 마치 그 거리를 지키고 줄지어 서 있는 키다리 초병들 같았다.                    로스안젤레스 명승지의 이모저모    다음날 KAWA한미여성회에서는 차를 내여 시교에 있는 헌틴턴삼림공원을 유람하게 하였다. 헌틴턴(HunTingTon)이라는 한 부자가 세상을 뜰 대 평생 이루어놓은 재산인 이 수백평에 달하는 정원과 진귀한 도서관을 나라에 기증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한 부자였다. 그날따라 관람객 대부분은 백인이였고 가끔씩 흑인과 황색인들도 보였다. 공원에는 또 각가지 아열대 식물들이 앞다투어 자라고 있어 마치 세계적인 식물박람회를 한눈에 보는듯 하였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근에 신축하였다는중국 특색을 보여주는 류방원(柳芳园)이였다. 중국 남방도시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푸른호수며 정교한 루각의 조각들, 거기에 또 전통적인 중국차집도 있어서 여기가 소주나 항주가 아니냐고 착각할 지경이였다. 그 외에도 일본식 다다미방이며 하얀 인공자갈밭이며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과 식물들이 이채를 돋구어주었다.   저녁에는 친구의 초대로 미국식 레스토랑에 갔는데 여러 가지 삶은 육류들을 양념에 절여서 만든 료리가 나왔다. 푸른 남새 잎으로 정교하게 포장한 서양식 음식이였는데 나이프와 포크로 이쁘게 썰어 먹는 그 맛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로산젤레스 북서쪽에 위치한 세계적인 영화의 거리인 할리우드(HOOLLY WOOD)에 갔었다. 그 곳에는 미국의 명배우들의 이름이 새겨진 오각별야광등이 거리바닥 한켠에 현란하게 밖혀 있었다. 책에서나 보았던 거리이름인지라 매 하나하나의 전성기시절의 옛건물들이며 그 호화로운벽에 그려진 여러가지 영화장면들이 신비하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쉴새없이 샤터를 누르면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사흩날에는 한미여성회 심영이리사의 초청으로 그녀가 살고 있는 바다가거리 싼타모니카(SanTaMonKa)로 갔다. 그곳의 특이한 풍경은 넓은 바다와 아름다운 주택들이였다. 바다가의 드넓은 백사장에는 이라크전에서 희생된 전사들을 기념하는 십자가가 수없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옆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숙연히 묵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어느 나라나 백성들은 모두 침략전쟁만은 똑같이 반대하는 것이였다.    다시 기분을 풀어 멀리 내다보니 푸른 바다가에 정연하게 줄지어 지어진 양옥마다는 그모양과 꾸밈새가 특이하여 마치 그곳에서 나 열리고 있는듯 싶었다. 앞뜰마다에 활짝 핀 꽃나무들이며 파란 잔디로 뒤덮인 정원, 그 한가운데는 맑고푸른 수영장까지 있어 그야말로 그림속의 에덴동산을 방불케 하였다. 여러가지 한식료리와 자연산 나물뭍임으로 정성들여 차린 저녁상에 마주앉아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이야기꽃웃음꽃을 피워가니, 그 만찬은 참으로 진주성찬에 금상첨화가 아닐수 없었다.       그 다음날에는 로스안젤레스 중심거리에 가보았다. 주민구역과는 달리 높이 솟은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길 량옆에는 푸르른 록움이 우겨져서 행인들에게 서늘한 그늘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건물 주위에는 목에 명찰을 걸고 서로 무언가를 토론하며 분주히 오가는 백인, 흑인 공무원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정말 미국에 왔구나 하는 실감을 가지게 하는 곳이였다. 전자사전을 손에 들고 영어간판들을 번역해 보면서 용케도 시청까지 들어가 보았고 반나절이나 큰거리들을 쏘다니며 길옆의 상점들마다 기웃거리고나니 다리가 아팠다. 마침 길 건너에 지하문화광장이 있는지라 우리는 긴 걸상을 찾아 휴식할 수 있었다. 시골뜨기 녀인들에게는 그곳에도 구경거리가 많았다. 죄송하지만 허리통이 마대같이 뚱뚱한 백인신사들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도 가관이지만 맥주컵을 올려놓아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괴상하게 툭 삐어져 나온 흑인녀인들의 엉덩이는 참으로 볼만하였다. 우리는 마치 아메리카신대륙에서 새 인종이나 발견한듯이 놀랍고 신기한 눈길들을 감출수가 없었다.       행사 이튿날엔 에스터 김회장이 직접 우리를 안내하였다. 그의 고급 승용차에 앉아 한시간반이나 달려서 도착한 곳은 바로 봄나무온천이라는 뜻을 가진 팜스프레이의 카지노(Casino)였다. 높은 언덕우에 솟아있는 희한한 고층건물의 대청에는 가로세로 줄지어 늘어선 도박기계들이 황홀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랗고 흰머리를 한 백인남녀들이 오색찬란한 컴퓨터 화면에 파란 눈동자들을 몰밖고 있었는데 그 화면의 수치변화에 따라 밑도 끝도 없이 동전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 관경을 보노라니 가슴이 섬뜩하였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동전을 밀어 넣어야 딸라를 벌수 있을가? 잃으면 분해서 못 일어나고, 따면 더따보려고 자리를 못뜬다는 자석같은 그 자리, 부자들이나 할 노릇이지 돈 없는 서민들이야 어찌 엄두나 낼수 있겠는가. 놀지도 않으면서 기웃거리는것이 미안스러워 얼른 나가자고 하였더니 김회장은 미안해할것 없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길가는 사람들도 들어와 보는것을 환영한다고 한다. 누구든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만 간다하여도 카지노주인한테는 무료의 홍보효과가 생기므로 그냥 들어와서 화장실만 쓰고 가도 좋다는것이다. 그야말로 상상도 못할 무서운 경영정신이였다. 말 타고 꽃구경하듯 도박판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는데 아직 오후 시간이 퍼그나 남았으므로 우리는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케티박물관에 가보기로 하였다.       케티박물관을 다녀오는것은 문명한 관광코스라고 한다. 1983년 정부에서는 산타모니카산맥의 산기슭 91만 8천평의 부지에 모더니즘건축예술가로 유명한 건축사 마이어를 모셔다가 박물관을 설계하였다한다. 그는 독특한 스타일과 전통적인 자재를 결합하여 케티의 뿌리와 현재, 미래에 대한 신념을 이 건물에 완정하게 부여하고 표현하였다. 캘리포니아 후추나무 숲의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언덕우에 우뚝 솟은 박물관이 보였는데 투명유리로 된 웅장한 건축물과 그 주변의 세련된 조경이 조화를 이루어 밝음과 개방성을 련상시키고 포괄적이면서도 미묘하고 명쾌한 기분이 들게 하였다.    풍요롭고 다양한 조경들을 감상하고 나서 미술관에 들어섰다. 본래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서방 중세 회화의 진수를 그대로 보존한 작품들을 보면서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800년에서부터 1800년에 이르는 사이에 창작된 작품들은 그 기교와 예술성, 그 재료의 화려함에 있어서 극치를 이루었다. 15세기 금박유화에서 정교한 삽화가 있는 중세기의 책, 한때 금붕어를 담았던 웅장한 샹들리야에서 반고호의 친숙한 꽃 유화에 이르기까지 그 생동하고 정밀함이 모두가 마치 살아숨쉬는 마리아의 눈빛처럼 신비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이루고있었다.                        선진국의 발달한 시스템들        닷새 되는 날 저녁, 우리는의 초대약속으로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런데 거리에는 온통 고급스런 자가용뿐이지 택시라곤 한대도 찾아 볼수 없었다. 하도 이상하여 주인집 아줌마에게 물었더니 여기는 집집이 차가 있고 사람마다 차가 있어 택시를 쓸 필요가 없으며 혹시 외지인들이 택시를 부르자면 전화 한통이면 택시가 곧바로 온다는 것이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200-1818을 누르면서 여기는 웨스턴 4거리 윌턴820호라고 하니 5분도 안 되여 까만 승용차 한대가 달려와 멈춰서는 것이였다. 마치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금세 달려온 것이다. 참으로 편리한 시스템이였다. 현지인들이 알려준대로 5딸러의 택시비에 1딸러의 팁을 얹어 6딸러를 드리니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실어다 주었다.       차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와 그 위로 달리는 각양각색의 차량들은마치 줄을 맞추고 달리는 듯 질서정연해 보였다. 고도로 발달한 시스템들이 작동하고 있는지 거리에는 경찰 한명 볼수 없었지만 모두들 교통규칙은 철칙으로 지키고 있었다. 음주운전을 했을때는 벌금 뿐 아니라 아예 영창에 잡아들이고 위법운행으로 사고를 냈다면 그 당사자들에게는 몇천 달러의 거액의 벌금은 물론, 일주일간이나 교통법을 다시 배우는 학습반에 참가해야 한다니 출근하지 못하여 직업을 떼울 위험까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밥통과 목숨이 다 걸려 있는 최대의 불이익을 알고서는 그누가 감히 교통규칙을 위반할수 있으랴? 참으로 인간을 다스리는 놀랍게 발달된 제도였다. 하기에 우리 이곳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들을 그곳에서는 찾아 볼 수도 없었다.       승용차에 앉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두루 살펴보니 그 성시에는 높은 빌딩이 별로 많지않았다. 까닭을 물으니 택시기사 아저씨가 하는 말이《로스안젤레스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므로 사람들이 사는 집들은 다 이처럼 단층집을 짓는답니다. 그리고 미국은 원체 땅이 흔하니까 땅을 넓게 차지하고 써도 무방하지요.》하고 알려주었다. 100년전 큰 지진이일어난 후 부터 정부에서는 안전을 기하기 위해 높은 집을 짓지 못하게 하였다한다. 그래서 개인 주택들은 모두가 단층이 아니면 이층으로 된 양옥이였다. 그리고 나라적으로 이웃이 같은 양식의 집을 꾸미지 못하게 함으로 주택 하나하나가 색다른 풍격으로되여 있었다. 미국에서는 국가나 개발상들이 아름다운 양옥들을 지어놓고 세를 주든지, 아니면 수년간, 지어 평생을 할부로 집값을 갚게끔 하고 판매한다고 한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몇십만 딸러에서 100여만 딸러씩 하는 가옥을 쉽게 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성들의 생활수준차를 고려하여 물건구입도 저소득층이 감당할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상점들을 따로 만들어 경영하고 있었다. 그런 삼점들은 통칭으로《99센트》라 하는데 대부분의 물건가격이 1달러 이하인 99센트이므로 아무리 수입이 적어도 능히 사서 먹고 살수 있는 가격의 식품과 생활용품들이였다. 또한 무릇 그 나라 시민이라면 65세이후 로후보장에서도 능히 생활할 수 있는 700-800딸러의 최저표준 보장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 사람의 일생동안 국가에 바친 세금과 공헌의 다소에 따라 그 이상(2000-3000달러)의 로후생활금과 저렴한 가격의 주택을 분여 받을수 있다고 하니 그 땅의 국민이라면 어찌 평생 열심히 일하지않고 그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국민의 건강의식을 제고하는 힘있는 조치였다. 매년 3월의 첫번째 일요일을 미국 전 국민의 마라톤행사일로 정한 것이다. 마침 3월2일은 일요일이라 아침 일찍부터 맑고 푸른 하늘에는 [MARATON]이라 쓴 하얀 프랑카트들이 채색풍선에 걸려 날아다니고 있었다. 주간 거리의 차량들은 모두 통제되였고 골목마다는 사람들로 명절의 분위기를 이루었다. 마라톤경기의 로정은 로스안젤레스 공항에서부터 시청까지 26마일(약42km)이라고 한다. 남녀로소나 백,흑,황색인 할것 없이 자원적으로 참가하는 전민의 운동이였다. 운동원들은 넓은 길을 꽉 메우며 달리고 있었고 길 량켠에 늘어선 관중들은 그들에게 부단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이 마라톤에 참가하려면 적어도 3년간의 체력단련은 거쳐야 한다니 평시에 꾸준히 운동해야 함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런 마라톤운동에 참가할 수 있음은 건강한 신체의 표지로 되고 매 국민의 영광으로 인정될 뿐 아니라 참가자에 한해서는 증서와 기념품은 물론 사회생활의 여러모에서 높은 우대점수를 준다고 하니 이아니 꽁먹고 알먹는 일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전 국민의 의식을 제고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하나의 훌륭한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행사 외의 짬들을 타서 우리는 백화점과 슈퍼마켓들을 돌아보았다. 여러 가지 기념품과 약품들을 사 보면서 우리는 저도 몰래《이 나라는 참으로 세금의 나라, 팁의 나라이구나》하는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모든 경영자는 물론이겠거니와 소비자에 한해서도 빠짐없이 물건값의 8-10% 이상의 세금이 지출되였었다. 세금액 규정은 물건마다 다르고 상점마다 달랐다. 중국에서는 오직 기업에서나 장사군들만이 세금을 낸다고 생각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생소한 일이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으로 공평합리한 제도임이 느껴졌다. 무릇 이 땅에서 먹고 살려면 소비해야하고 소비하는 사람은 국가에 세금을 내야하니 나라경제가 온당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업에서 소비자는 자기가 소비하는 금액의10-15%좌우를 팁으로 내야 하는데 이 팁은 가계주인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일 밑바닥에서 땀흘리며일하는 서비스일군들의 손에 나누어진다니 기분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국내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자본주의의 경영방식이며 또한 최하층 인간에 대한 존중의 표현인듯도 싶었다.                          중국조선족과 재미교포들        며칠후 우리는 중국조선족축구의 발전을 위해 거대한 기여를 한 최은택 감독님의 망명인 양평자사모님의 초대를 받게 되였다. 남편이 그토록 애써 춰세워 온 조선족 축구의 고향--연변에서 온 손님이라는 리유하나에서였다. 약속장소인《명동교자집》에 들어서니 홀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손님을 맞아들이는 아가씨가 별로 눈에 익었다. 다가가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가 그 역시 연길에서 온 녀성이였다. 참으로 우리 조선족녀인들은 못 가는데 없었다. 그녀의 안내로 양사모님과 함께 아늑한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모님이 들고 온 최감독 부부의 사진액자를 앞에 모시고 최감독님의 연변사랑이야기며 양사모님의 조선족에 대한 따뜻한마음의 이야기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누어 가면서 따끈한 교자와 졸깃졸깃한 칼국수를 맛나게 먹었다.       마침 이《명동교자집》바로 옆이 우리가 기숙하는 주인집 연변아줌마가 일하는《나루터》술집인지라 저녘식사 후 우리는 그 식당의 주방을 찾아 들어갔다. 그녀는 한창 땀을 흘리면서 물고기 튀김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의 주문과 재촉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돌아치고 있었는데 안주는 만들어지는 족족 멕시코애들의 쟁반에 담겨 손님들 상으로 옮겨졌다. 좁다란 주방에서 매일 12시간씩 펄펄 끓는 기름가마를 마주하고 비오듯한 땀을 훔치며 일하는 그 연변아줌마를 바라보니 저도몰래 코등이 찡해났다.        3월1일, 행사일이였다. 오전 일찍 행사장에 당도하니 에스터 김회장 일행도 이미 와 있었다. 마련된 대회장의 좌석들에는 멋진 재미교포 녀성들과 단정한 옷차림의 조선족녀성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신들린 사람처럼 무대 옆 텔레비죤화면에서 나오《연변중로년모델표연》과《연변녀성태권도표연》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간 비디오테이프가 방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중국에 사는 조선족녀성들의 멋지고 씩씩한 모습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회의실 주석대의 정면에는《KAWA한미여성회와 중국조선족여성회 간의 상호교류협정 의식》이라는 현수막이 유표하게 걸려 있었다. 한국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미국지사의 기자들이 촬영기를 들고 인터뷰에 분주하였다. 대회에서는 두 단체 회장의《교류협의서》서명과 내가 준비한《중국조선족과 녀성문제》라는 테마로 된 특강이 있었다. 개혁개방 후 중국조선족녀성들의 변화된 삶과 산업화시대의 새로운 이산가족의 출현 및 그 극복 대책에 포인트를 둔 이번 강연은 재미교포에게는 물론 그곳에 체류하고있는 조선족형제자매들에게도 훌륭한 내용이였기에 모두들 흥미진진하게 청취하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KAWA한미여성회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재미한국인의 력사에 대해 다소나마 료해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초기이민은 20세기초에 이루어졌는데 그때는 주로 로동이민의 성격을 가졌었고 그들은 이미 오늘날 재미한국인의 주체가 아니였다. 현재 재미한국인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은 모두 1965년이후에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망명이민이나 강제이민이 아니라 보다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또는 자녀들에게 더 훌륭한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들로서, 그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며 한국에서도 중류 혹은 상류층의 생활기반을 가졌던 엘리트들이였다. 김회장이나 한미여성회 주요리사들 역시 한국의 명문대인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를 나왔었고 지금 모두 병원이나 복장가계 등을 차리고 있어 그들의 경제생활은 보편적으로 유족하였다.       중국인 거리인 을 한나절 돌고 기숙사에 돌아오니 재미중국조선족동포련합회에서 련락이 왔었다. 신문과 방송에서 우리의 소식을 듣고 찾았다는 것이다. 정작 만나고보니 리사장이라는 40대 남성은 연변대학교법률계 졸업생이고 상담소 소장이라는 녀성도 연길에서온 분이라 금시 가까워졌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로스안젤레스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조선족은 무려 80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참으로 생각밖이였다. 수많은 우리동포들이 낯설고 물선 미국땅에서 말을 모르고 법을 몰라서 무시당하고 배척 당하며 모진 고생들을 겪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조선족동포들을 대변해 말하지 않으면 누가 말하겠습니까? 이 자유와 기회의 땅에서 열심히 일해서 모두들 부자가 되며 언젠가는 이 L.A(Los Angelees)의 땅에 을 세워서 우리동포들의 합법적 권익을 수호하고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일들을 하려합니다.》라고 말하는 강성 리사장과 김정화 소장의 당찬 모습에서 나는 재미조선족동포들의 밝은 미래를 보는것만 같아 마음이 흐뭇하였다.               세계적인 명승지 --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        3월5일, KAWA한미여성회의 초대로 마침내 본격적인 미국서부 려행이 시작되였다. 애들마냥 호기심에 들뜬 기분으로 아침 일찍 에 도착하니 커다란 관광뻐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50세 중반이 될가말가한 한인 가이드아저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그는 한국 설악산에서 수년간 산악가이드로 일했고 이 아주관광에서도 13년간이나 근무했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좋은 가이드를 만난것 같아 출발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이어 6년째나 이회사에 다닌다는 듬직하게 생긴 과테말라 출신의 기사아저씨가 운전석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 길이 13.5메터나 되고58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크고 화려한 뻐스에 43명관광객이 탑승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한국인이였다. 모두가 이 대자연의 정취와 문화의 숨결을 찾아 이곳 미국땅에 찾아 온 것이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가이드아저씨의 소개에 따르면 미국의 인구는 3억에 달하고 그 땅은 한반도의 44배에 달한다고 한다. 성조기의 50개의 별은 미국의 50개 주를 대표하며 미국의 인구밀도는 한반도의 10분의 1도 안된다는 것이다. 일망무제라는 성구가 바로 이런 곳을 말하는듯 싶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고원의 사막지대에 정,반 두 방향의 넓은 고속도로가 시원히 펼쳐져 있었다. 낮다란 가시철망으로 끝없이 이어가며 고속도로와 격리시켜 놓은 사막지대에는 이깔나무와 비슷한 수목들이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었다. 모래밭에는 가시 돋인 선인장들이 사람 키만큼씩 자라고 있었는데 떡 뻗치고 서 있는 모양이 마치 그 땅을 지키고서 있는 초병들 같았다. 멀리 나무숲 속으로 드문드문 바라보이는 인가들을 보면서 나는《저 사람들은 고독해서 어떻게 살지요?》 하고 물으니 가이드아저씨가 하는 말이 그들은 절대 고독을 모른다는 것이다. 조상때부터 세세대대로 유목민 생활을 하면서 정처없이 떠돌아다녔기에 살기 좋은 곳이면 그 어디든지 다 찾아다니며 저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평생을 한곳에만 눌러 살고 있는 우리들로는 리해할 수 없는 일이였다.       달리는 뻐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모하비사막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한나절이나 달려서 도착한 곳은 바로 캘리포니아주의 교통중심지인 바스토우였다. 영어로《코리아 레스토랑》이라 쓴 한인음식점에서 간단한 한식부폐로 점심을 마치고 오후에는 라스베가스로 향했다. 서너시간이 넘게 달리고 나니 날이 어두워지고 이어 온갖 채색불빛으로 천지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은 시내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곳이 바로 세계적인 카지노도시 라스베가스였다.      엔지엘호텔에 행장을 풀고 인츰 휘황찬란한 야경을 향해 시내관광에 나섰다. 뉴욕 맨하탄에 우뚝솟아 있는《자유녀신상》이 이곳에서도 부드러운 불빛에 싸여 손짓하고 있었고 황금빛으로 솟아오른 프랑스《에펠철탑》이 눈앞에 다가왔다. 마치 미국의 뉴욕이나 프랑스 빠리, 영국의 런던에나 도착한듯 서방 여러나라의 상징물과 유명건축물들이 곳곳에 그대로 모방, 축조되고 있어 한눈에 서방세계를 다 굽어보는것 같았다. 86개나 된다는 호텔들의 대청마다에는 최고급 카지노기계들을 설치해 놓고 세상의 부자들을 부르고 있었다. 황금빛 붕어가 뛰놀고 채색 뽀트가 오가는 푸른 강을 사이 두고 사철 꽃피고 열매 맺는다는 이 도시, 불야성을 이룬황궁같은 호텔들마다는 정녕 세상부자들의 천당인듯 싶었다. 고도의 심리전이라 일컫는 카지노 도박업이 이곳에서는 자본주의경제의 주축으로 되고 있으니 참으로놀라운 일이아닐수 없었다.       저녁식사는 호텔에서 마련한 미국식 부폐였는데 우리 동양인들이 먹을수 있는 종류는 아무리 골라 보아도 겨우 마른 빵이나 익힌 땅콩 뿐이였다. 큼직하게 삶아 썰어놓은 육류와 건 우유들은 보기만 해도 느끼한 생각이 들었다. 식사후 야경관광의 첫 코스는 호텔 옆 빌딩 옥상에 마련된 쥬빌리쇼였다. 오색찬란한 전등빛으로 정밀하게 전산화하여 제작한 화면에는 천변만화하는 천연색무대가 펼쳐졌다. 미끈한 서양미녀들이 아릿다운 미니치마를 입고 멋진 몸매를 자랑하며 사뿐사뿐 춤을 추고 있었다.       저녁 여덟시에 시작 된 는 입장권 한장에 80달러를 받을 만큼 그야말로 세계적인 무대였다. 장장 두 시간 동안 반 라체의 미남미녀들이 수시로 새로운 스타일의 복장들을 번갈아 입고 현대식 춤을 추고 흥겨운 노래를 불러 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뮤지컬로 된《타이타니커호》공연은 1912년 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한 뒤 침몰하여 1500여명의 희생자를 낸 그 력사적인 비극을 재현하였다. 현대화 설비의 작동으로 전체 무대가 마치 검푸른 파도 우에서 몸부림치는 거대한 기선의 몸체 같았다. 무대우의 배우들과 관람석의 관중들이 함께 움직이면서 아이스쇼는 크라이막스로 올라갔다. 온 장내 관객 전체가 마치 무서운 파도에 휘말려 깊은 바다속에 함께 빠져들어간듯 일제히 고함을 질러댔다. 참으로 미국땅에서나 볼수 있는 현대예술의 극치였다.      다음날의 려정은 아리조나고원을 거쳐 인디안들의 보호산으로 불리는 독수리산을 지나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그랜드캐년(GRAND CANYON)에 가는것이다. 그랜드캐년이란 웅위로운 협곡이란 뜻인데 해발 2100메터 고원지대에 있는 평균 폭이 16킬로메터이고 길이 1600킬로메터나 되는 거대하고 신비한 대협곡을 말한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것만 같은 그 웅위하고 절묘한 풍경의 붉은색 화산 절벽들은 정녕 하늘의 조화요, 신의 창조물인듯 싶었다. 1억 5천만년전 바다밑에서 올라왔다는 설, 600만년전 화산폭발로 이루어졌다는 설, 아무튼 여러가지 설이 있었다. 지질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일찍 4000년전 이 협곡에는 고대선민인 안나사시인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남아있고 그후에는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없다고 한다. 콜롬브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지 50년도 안되는 1540년 에스빠냐 탐험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1826년에는 프랑스 사냥꾼들에 의해 그 대자연의 신비가 살아 숨쉬는 계곡들을 탐험하기 시작하였다 한다. 1869년에는 미국 남북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던 외팔의 소교 웨한 위쓰리뽀위얼장군이 아홉명의 탐험가들을 데리고 이 217영리의 미지의 세계를 80여일간이나 답사했다고 한다. 그 탐험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사람은 6명 뿐 세 사람은 그 무지의 협곡세계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한다.     관광의 마지막 코스로 들린곳은 서부의 민속촌 칼리코(CALICO)였다. 유령의 도시로 불리는 이 부락은 본래 해마다 200만딸러에 달하는 은과 900만딸러에 달하는 붕사(硼砂)를 캐내던 유명한 광산이였는데 1907년에 페광되여 버렸었다. 1951년 워텔 코네트(Walter knott) 라는 부자가 그곳을 사서 민속관광지로 만들었고 1966년에 나라에 기증했다 한다. 겉보기에는 별 볼품없는 페허같았지만 길 량옆에 늘어선 옛 건물과 선물가게들에는 한때 흥성하였던 19세기 캘리포니야광산의 진품들이 숨쉬고 있었으며 당년 광부들의 삶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땅굴집과 수공으로 다듬어 진 가구들이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았다. 력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세상 사람들의 발길은 오늘도 래일도 끊기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짧은 15일의 미국서부 려행을 마친 나는 귀향길에 오르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첨단의 문명을 자랑하는 발달한 선진국 부자의 나라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의 한인들, 돈을 벌어 잘 살아 보려고 부모처자를 두고 고향을 떠나 이 머나먼 아메리카대륙에 와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있는 조선족 형제자매들, 또 거기에다 온갖 무겁고 어지럽고 힘든 일들을 운명처럼 도맡아 하고 있는 검은 피부의 사람들, 그들 모두가 그 땅에서 그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거늘 미국이란 이 초대국이 정녕 이들 모두를 껴안을 수있는 관용과 아량을 보여주었으면, 그리고 이들 모두의 꿈이 정녕 현실로 되어어 좀 더 행복 하고 알찬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게 되였다.        대형문학잡지《장백산》 2010년 제2기에 실렸음                 
19    희망을 만드는 유쾌한 실천 댓글:  조회:4783  추천:68  2010-03-28
                희망을 만드는 유쾌한 실천                                       --  생명열선, 녀성열선 상담에 관하여                                                                                                                         글 / 강 순 화       복잡한 삶의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인간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따라서 상담자는 그들의 어려움이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이 상담이기에 상담은 개인의 일만이 아닌 사회의 문제를 치료하고 예방하는 최신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연변생명열선, 녀성열선(273-9595, 296-1004)》은 바로 이러한 취지로 하여 개통되였고 그동안 사회 방방곳곳에서 걸려오는 수백여통의 상담전화를 받아 왔다. 그 내용들을 보면 주요하게 청소년들의 교육문제, 그들의 심리적 불안감, 자녀교양문제, 혼인가정문제, 제3자 차입과 리혼문제, 부부재산문제, 취업문제 등등 이였는데 래담자의 90% 이상이 녀성들이였다. 이만큼 녀성들의 문제가 절감한 것이 현실이다.      "녀성이 밝아야 사회가 밝다"고 하지 않는가? 녀성을 일컷는 "안해"란 말은 어쩌면 집안의 해(태양)라는 말인듯 싶다. 집안의 해가 빛나면 사회는 환히 밝아지지 않겠는가?! 우리 생명열선, 녀성열선 상담원들은 언제나 따뜻한 품으로 안아 주는 어머니처럼, 항상 그모습 그대로 받아 주는 오랜 친구처럼 그 누구의 그 어떤 문제든지《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과 당신의 아픔을 나누려는 뜨거운 가슴으로》귀를 기울리고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상담원들의 따뜻한 접대는 래담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 주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정시하고 역경을 이겨 낼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삶의 지혜와 용기를 북돋우게 하였다.    가정의 행복을 찾고 인간관계가 더 밝아지게 하는 일에 좀 더 전문적인 지식과 사랑을 불어 넣어 온 사회가 조화롭고 안정되게 함에 우리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저 하는 것이 우리 상담원들의 의무이고 바램인 것이다.     사랑은 실천할 때가 더욱 아름답다. 우리들의 작은 실천이 큰 희망을 만들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즐겁게 자원 봉사에 나서고 있다.                       전화상담에 관하여      전화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낸 가장 경의로운 것 중의 하나로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품으로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밤중에 걸려 온 전화 한통을 잘 받지 못하여 결국 자살시도를 막지못한 침통한 사실로 하여 호주 시드니의 알랜워커 목사는 1960년대에 벌써 생명을 살리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여 오늘날 국제 생명의전화로 발전되였고 금년에 이르러 한국은 34년(1976년), 우리 연변은 15년(1995년)이라는 력사를 가져오게 되였다.     오늘날 물질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최대의 편의와 복지를 가져왔지만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공허감과 피곤감을 느끼고 있다. 로인들은 더욱더 외로워졌고 어린이들은 더욱더 영약해져 가고 있으며 어른들은 더욱더 무기력해 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기본적인 생존욕구가 충족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1995년 생명의전화가 연변대학민족문화교육원에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할때 혹자는 그 유용성과 효률성을 념려하였다. 자원봉사자로 어떻게 그 일을 할수 있을까? 그들은 일단 비 전문가가 아닌가? 특히 심리료법이나 면접전문가의 립장에서는 비판적이였고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변생명의전화, 녀성의전화는 수년간 바로 이런 비 전문가 상담원들의 봉사에 의하여 이어져 왔고 그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전망이다.     전화상담은 자원봉사 상담자를 주축으로 해서 이어진다. 이들은 단순한 협력자가 아닌 집행자이고 수행자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로 자원봉사자들이 본격적으로 활용함은 이 사회에 있어서의 하나의 효시로 된다. 상담봉사자들이 수년을 긍지와 보람으로 그 일을 담당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들의 참여 동기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인간애, 사회적 공헌, 돕는자의 보람과 기쁨, 여가활용, 자기 발전의 욕구와 성취감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우리사회에 만연되여 있는 허다한 문제들은 전문가의 전문적인 치료나 상담에 의해 도움을 받기보다는 많이는 비전문가인 가족이나 친구 동료의 도움으로 충족된다.     비전문가 상담원들은 자신의 인생 경력으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들속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순수한 마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래담자들에게 많은 위로를 주며 희망을 준다. 그들은 전문가 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보다 공감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시간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래담자들을 위하여 바칠 수 있다.     이런 기초에서 더한층 상담지식을 배우고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능력을 개발하고 갈고 닦는다면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도 능히 남을 도울 수 있는 훌륭한 상담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화상담은 그 언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즉시성, 낮설고 어색함이 없는 익명성, 래담자에 의해 통제 할수 있는 주동성으로 하여 많은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전화상담은 기술과 인식을 필요로 하며 상담 전체 과정에서의 사랑하는 마음과 겸손한 행위, 비판하지 않고 수용하는 마음, 그리고 분별력과 자기인식이 있어야 한다.     사 랑     사랑하는 마음, 보살피는 마음은  상담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요소이다. 사랑이 결핍되였을 때 아무리 좋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상담해도 그 상담은 잘 이루어 질 수 없다. 어느 사람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의 방향으로 도울 수 있는지는 모르나 최소한 문제를 가진 사람의 아픈 마음은 위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관심, 진정한 인간 존중의 태도와 정직한 사랑은 훌륭한 상담자의 기본 조건으로 된다.     사랑과 수용으로 타인의 내부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신뢰의 분위기를 촉진하게 만든다. 사랑이 없이 상담한다면 그것은 인위적인 것으로 성실성이 결여된 것이다. 사랑을 실제로 행하면서 실천하게 되는 체험적 학습은 전화상담의 훌륭한 기초로 되어 왔다.     겸 손      상담자로서 기술과 지식과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겸손한 마음이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가지고 도움을 청하던 래담자 한사람 한사람 모두는 인격적으로 존중 받아야 할 귀한 존재이므로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을 마음대로 적용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상담원은 상대방보다 많이 알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잘못된 우월감에 젖어 있다면 래담자의 모든 정황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며 대방을 무시 또는 경시하는 오유를 범하게 된다.      만성적으로 의존적이거나 타인을 조종하려하는 래담자가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이럴때엔 강력한 지시적 상담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지시적 상담에 있어서도 거만하거나 생색을 내려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     비판적 수용              상대방을 현 상황 그대로, 인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서 그의 표현에 비평을 가하지 않을 때 상대방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된다. 모든 행위에는 목적이 있고 동기가 있다는 사실을 념두에 두고 래담자를 유일한 존재로 대하며 무비판적일 때 전화자는 이야기를 계속하게 된다. 만일 상담자가 전화 도중 어떤 신념이나 확신을 가지고 래담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경청하는 대신 성급하게 개인적인 조언을 한다면 상대방의 뜻을 탐색, 설명, 이해할 기회가 감소되게 된다. 비판적 수용과 긍정적인 지시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상담자의 삶의 태도와 성격 문제이다.      분별력     상담원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려면 우선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여야 한다.      상담이라는 것은 수준과 지식,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상담의 기본 주체인 인간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리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통창력이 있는 사람이 상담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가질 때 효과적인 상담이 이루어 질 수 있다.     대화를 청하는 자가 도움을 원하는지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러는지를 분명히 해야 하며 자기 삶의 개선을 갈망하는지 혹은 끝없는 불만을  습관적으로 토로하는지를 직관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담 중 거짓과 진실을 분간하는 통창력도 필요하다. 래담자가 도움을 받기를 원하고 진실을 말하면서 삶의 개선과 자신의 성장을 강하게 열망할 때 상담자는 래담자와 공감하면서 상담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올라 갈 수 있는 것이다.      자기인식      상담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의 상담자 자신이다. 상담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 통창력은 모두 그 사람의 인격과 수양만큼 표현되고 상담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때문에 “정서적으로 련루되지 않고 정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는 일정한 재능과 능력이 있음과 동시에 또한 우리 나름대로의 결함과 비 효률적인 경향과 혹은 어려움들을 갖고 있다. 이는 부단한 실천과 체험적 학습, 그리고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경청, 공감, 반영, 탐색, 직면, 의견제시, 의사결정 이런 상담의 기본적인 기술들은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증진시키는 과정에서 부단히 실천해 가고 이해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연변생명열선, 여성열선》상담연구소 제공                                                               2010년 3월 28일
18    직업녀성의 이중배역에 관하여 댓글:  조회:4786  추천:55  2010-03-24
                             직업녀성의 이중배역에 관하여                                                   연변대학녀성연구중심  강순화      개혁개방 30여년래의 중국의 억만 직업녀성들은 줄곧 회피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통적인 현처량모로 생활하느냐, 아니면 평등하고 독립적인 한 성원으로 사회에 나서느냐? 남편의 성공으로 자신의 존재를 체현하는데 만족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주체성으로 자기의 인생가치를 실현하느냐 하는 것이다.      2001년 전국부녀련합회에서 조직한〈전국부녀사회지위 조사자료〉에 의하면 중국의 성시와 농촌의 로동자중 녀성이 3.3억명으로서 전체 로동자 총수의 47.7%를 차지한다고 하였다. 그중 국영, 민영, 사영기업에서 일정한 경제력을 가진 녀성은 녀성로동력의 67%나 차지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녀성들의 취업정도가 세계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경제의 발전에도 홀시할 수 없는 공헌을 하였음을 설명한다.      녀성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이미 오늘날의 대세로 되였으며 직업녀성들은 이미 현시대 중국 부녀의 주체로 되었다. 하지만 취업권리와 상응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직업녀성들은 개혁개방후의 풍랑 속에서 인생의 압력을 느끼고 있으며 다다소소 이중 배역의 곤혹에 빠질 때가 많다. 조사에 의하면 현단계 직업녀성의 90%가 가사로동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80%의 녀성들이 이중 배역의 곤혹을 느낀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직업녀성들에게 직면한 보편적인 문제로 되고 있다.     개혁개방의 경제전형기에 들어 선 후 녀성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 행위방식과 가치관념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중국부녀》잡지를 통하여 전개된 “녀성의 출로” 대 토론에서 “부녀귀가(回家)론”은 부정되었었다. “부녀귀가”는 직업녀성들이 전통적인 배역에로 돌아가야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실상 녀성의 가치를 말살하는 대가로 남성의 최대가치를 실현하려는 것이므로 력사적인 퇴보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온 결론은 “사회가 녀성배역의 가치를 가늠하는 표준은 가사와 공작을 모두 잘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녀성들은 단순히 이런 결론만을 인정할 수 없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녀성들에게만 모든 것이 완미할것을 요구함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직업녀성들의 주관의식 변화를 고찰하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보아낼 수 있다.     첫째: 단순한 공작형으로부터 사업형으로의 전변이다. 오늘의 직업녀성들이 생각하는 것은 취직하여 자기 앞일 만을 잘하는 것 뿐 아니라 좋은 형세를 리용하여 더 크고 좋은 사업을 벌려 자신의 인생가치를 실현해 보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혁개방이래 수많은 녀성기업가, 녀강자, 녀장원, 녀박사 등 전형인물들이 용솟음쳐 나온 내재적 원인이다.      둘째: 자발적인 혼인이 자각적인 혼인으로 전변되였다. 오늘날의 직업녀성들은 자신이 우선 하나의 사회인으로서 가사나 자식을 기르는 일보다 더욱 중요하고 광범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한 것이다. 그리하여 “단신귀족”, “두사람세계” 현상이 점차 증가되었는데 특히 고층차 문화의 지식녀성들 중에서 더욱 보편화 되였다.           셋째: 남녀평등이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에로 전변이다. 이전의 직업녀성들은 왕왕 경제상 독립하고 가정에서 “총경리(一把手)”의 지위만 가지면 만족하였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경제상의 평등은 물론 정신상의 평등도 요구한다. 즉 남녀는 인격상 상호 존중하고 가사와 자녀교육 및 로인부양 등 가정의무에 대해 공동히 부담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상의 변화는 당대 직업녀성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전변을 의미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중국의 가정들은 현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핵심가정이 늘어나고 독신자녀가 증가 되였으며 사람들이 가정건설에 대한 요구도 제고된 것이다. 핵심가정에서 주부는 가사로동의 주요책임자이고 가정이 독신자녀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아 졌으며 자녀교육의 책임은 대부분 어머니가 맡고 있기 때문에 녀성들의 어께는 더욱 무거워진 것이다.     직업녀성에 대한 사회의 기대는 또한 직장에서 직무를 훌륭히 담당하고 현대식 조류에 바싹 따르는 사업형이다. 그런데 가정에서의 남편의 기대는 왕왕 전통적으로서 아내가 훌륭하게 남편을 공대하고 부모를 잘모시며 자녀교육 역시 잘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남성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고정관념은 성공한 녀성에 대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생활을 모르는 녀성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니 녀성이 사업상에서 성공을 하려면 반드시 가정의 희생을 대가로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외에 직업녀성들 중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완미주의경향도 배역의 곤혹을 조성하고 있다. 조사에 의하면 35~49살의 녀성들 중 “무엇을 하던지 나는 모두 완벽할 것을 요구한다.”가 92%를 점하였다. “사업과 가정을 모두 잘 돌보”는 리상적 배역이 주류로 되어 직업녀성의 배역을 한층 높은 차원에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현실생활은 그렇게 완전완미한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 사업에 대한 추구와 가정을 위한 헌신적 행동이 충돌될 때, 사회와 가정이 녀성에 대한 이중 요구와 녀성의 내심에 잠재하는 전통관념은 상호 대응하여 자책감 혹은 죄책감이 생기게 된다. 하여 녀성들은 늘 자신의 가치를 희생하는 것으로서 아내와 며느리, 부모로서의 심리평형을 바꾸게 된다.      현대녀성에 대한 배역의 기대는 사회배역과 가정배역의 내재적 통일이며 현대녀성의 인생가치는 인간의 가치와 녀성가치의 내재적 통일이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려면 우선 남성들이 인생가치와 배역기대에 대한 관념상의개변이 있어야 한다. 즉 현대 남성들도 사회배역과 가정배역의 이중 의무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녀성이 남성의 “현처량모”의 기대를 받아들일 때 직업남성도 응당 녀성의 “현부량부(賢夫良夫)”의 기대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생가치와 배역기대에서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통일이 이루어지고 남녀 각자의 인생 가치도 실현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성이 가정배역에 들어서면 아래와 같은 부동한 정황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부부의 사회배역이 동등할 때 가사를 공동이 부담할 가능성은 크다. 부부 모두다 사회에서의 공작이 있는데 가사로동을 아내가 혼자 맡아하는 것은 불공평함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쉽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가정에 끌어 들여 가사에 적게 참여하며 가족에 대해서도 높이 올라 앉아 아랫사람을 다루듯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만약 아내가 직장이 없다면 <남주외 녀주내>로의 자연분공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녀성의 취업상황과 가정배역은 직접적인 련계를 가지고 있다. 녀성이 광범하게 취업하고  또 높은 층차로 취업하게 되면  전통적인 가정모식도 점차적으로 개변될 수 있으며 남녀평등의 경지에도 능히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직업녀성 본신이 령활하게 이중배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부동한 단계에 따라 배역의 치중점을 옮겨 어느 단계에서는 한 배역을 위해 잠시 다른 배역의 요구를 낮출 수도 있다. 례하면 육아시는 자연히 정력을 가정에 두고 아이를 잘 키우고 아이가 좀 크면 다시 정력을 사회사업에 두는 것이다. 당대 중국조선족 녀걸의 년령구조 통계가 바로 그 실례로 된다. 개혁개방이후부터 최근까지의 녀성선진인물 중 40~50살 좌우가 59%를 차지하였다. 이로부터 볼 수 있는바 녀성의 황금시기는 중년이다. 이 시기 녀성들은 상대적으로 가정배역의 압력에서 벗어나 사회배역에서 자신의 총명과 재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직업녀성은 응당 열심히 가정(家庭)건설 및 가정(家政)관리에 관한 학문을 배우고 가정설비의 현대화를 실현하여 가사로동의 부담을 가능한 감소하여야 한다. 가정배역의 규률을 장악하고 가정 식구내의 인적관계를 잘 처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가정에 대한 책임성과 의무성을 가지게 하는 것도 자못 중요하다. 가족들과 함께 가사 로동에서 생활의 취미를 얻고 천륜지락을 향수하는 것은 배역충돌을 완화하는 가장 좋은 조치이다. 이렇게 한다면 직업녀성들은 현모량처의 심리만족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정배역의 무거운 압력도 감소할 수 있어 이중배역에서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직업녀성의 사회배역 압력은 주요하게 녀성들의 직업소질과 직업지위의 낮음에서 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녀성들의 교육정도는 아직도 비교적 낮은 편이고 따라서 직업지위도 상대적으로 낮다. 6천만의 녀직공을 통계한데 의하면 초중이상 문화를 가진 녀성은 동등문화 총수의 38%이고 고등교육을 받은 녀성은 총 수의 33%밖에 안되였다. 목전 우리나라 녀성들은 주요하게 공업, 상업, 복무업 등 여러 가지 체력로동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런 항업에 녀성 직공은 평균 43%나 차지하고 있다. 교육, 문화, 과학연구, 기관단체에 종사하는 녀직공은 30%로서 퍽 적은 수자이며 공정기술인원은 18.6%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길림성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정리실업당한 직공중 재취업에 성공 한 비례는 남자 28%이지만 녀성은 9.5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은 녀성이 취업에서의 성별적인 차별시를 받는 것도 있지만 더욱이 교육수준의 제한을 받았음도 홀시할 수 없는 한 원인으로 되고 있다.       과학지식은 한 사람의 소질과 능력을 개변하는 중요한 전제로서 진보와 락후의 표지이기도 하다. 중국 직업녀성의 주요임무는 우선 문화소질과 직업소질을 높여 자신의 공작능력과 사업능력을 제고하며 경쟁력을 증강하는 것이다. 나약한 보수심리를 극복하고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하여 성과를 올림으로서 사회배역에서 진정한 평등을 찾아야 한다.      직업녀성은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그들이 이중 배역에서의 조화로운 통일은 사회 환경의 화합과 통일의 기초 우에서 건립된다고 본다. 때문에 사회는 직업녀성의 이중 배역 통일을 위하여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례하면 국가에서는 립법의 형식을 통하여 남녀에게 공평 합리한 취업권리를 제정해 주어야 하고 여러 항업의 부동한 특점에 근거하여 녀직공의 비례를 규정함으로서 녀성이 취업경쟁에서 성별의 제한을 받지 않도록 담보해야 한다. 녀성들은 인구재생산과 물질생산의 이중 직능을 부담하고 있기에 국가에서는 응당 생육보상 제도를 건립하여 사회로 하여금 생육의 사회성을 승인하도록 하여야 한다. 참정방면에서도 각급 령도직위에 녀성의 일정한 비례를 충분히 고려하며 대표성이 있게 하는 것 등등이다. 이렇게 되면 직업녀성의 진보와 발전은 량호한 사회적 환경의 기초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회의 부단한 진보와 물질문명의 발전에 따라 가사로동의 사회화 정도도 제고될 것이며 전 사회의 륜리관과 가치관의 완선화에 따라 이런 시대적 특색을 가진 직업녀성의 이중배역 곤혹도 점차적으로 완화되여 나아갈 것이라고 본다.                                              (2007년 연변대학 여성학학술회 발표론문)                                <中国当代社会科学论文选粹>(중문판) 에 수록                                          
17    녀성들의 삶의 변화를 보면서 댓글:  조회:4473  추천:66  2010-03-06
                               녀성들의 삶의 변화를 보면서   《3.8국제부녀절》을 기꺼이 맞이하는 이때, 우리 녀성들의 삶을 한번 돌이켜보고 점검해 보는것도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찍 1910년 단마르크에서 열린 제2차 국제사회주의 부녀대표대회에서《부녀와 아동의 합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8시간 로동제와 부녀의 선거권을 쟁취하는》문제를 토론하였고 이 회의에서 제정된《3.8국제부녀절》도 어언간 한세기가 되고 있다. 이 기니긴 세월 지구촌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우리 녀성들도 놀라운 변화와 진보를 가져왔다.   녀성들의 사회참여를 녀성해방의 기본척도로 삼아온 우리나라는 일찍부터《남자들이 할수있는 일이면 녀자들도 할수 있다》,《전국의 부녀들이 일떠서는 날이자 중국혁명이 승리하는 날이다》라는 모택동의 말씀에 고무되여 용약 생산제일선에 나서서 절반하늘을 떠이는 기세를 보였다. 하여 중국 녀성들의 취업률은 세계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였다.   특히 개혁개방 30여년래 조선족녀성들의 경제활동참여는 더욱 활발해졌다. 시장경제가 보편화됨에 따라 녀성들의 물질욕구는 늘어났고 가치관념은 변화되였으며 따라서 생활방식도 개변되였다. 녀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한층 높아졌으며 자아가치의 실현은 갈수록 중요시 되어왔다.    녀성들의 놀라운 변화는 아래 몇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    첫째는 혼인, 생육관념의 변화이다. 최근 녀대생들을 대상으로하는 설문조사에 의하면 배우자 선택기준에 있어서 이전에는《정치조건, 경제토대, 가정상황, 직업》등 외적인 조건을 중시하던데로부터 지금은《능력, 성격, 품성, 재간》등 내적인 조건을 우선시하며 중매나 부모에 의한 선택보다는 당사자들간의 접촉과 료해를 중요시하면서 애정에 바탕을 둔 혼인을 위주로 한다. 이는 혼인관념의 새로운 변혁이며 진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생육면에서도《다자다복(多子多福)》하다거나《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한다》는 전통적인 대가족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자기자신의 성공과 향수를 첫 자리에 놓으며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이 하나만 키우면 만족해 한다. 높은 소비문화와 엄청난 교육비용은 아이 하나도 힘에 부치는 일이니 민족인구의 감소는 뒤로하고 자식 하나만이라도 잘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좀 풍요롭게 지내는 것이 리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가정가치관의 변화이다. 경제가 상대적으로 락후했던 지난날 가정의 중요한 가치는 공리성을 띠고 있었다. 가정과 자식을 위해 부부는 서로 의존했고 서로 불쾌한 일이 있어도 그것을 쉽게 밖에 내비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사회에서는 가정의 공리적 가치가 낮아지고 심미적 가치가 높아져서 남녀모두가 더욱 새롭고《질 높은》혼인생활을 추구한다. 근년에 부쩍 많아진《제3자》,《애인》현상과 밖에서 나붓기는《채색기발》들이 이를 충분히 보여준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는 가족이나 가문의 명예가 중요했지만 현대가정에서는 삶의 질 문제가 우선시되고 있는 것이다. 농경사회의 대가정은 산업사회의 핵가정으로 변했으며 결손가정, 재혼가정, 독신가정, 새롭게 생긴 짝무이, 동거형식 등 생활공동체는 가정형태의 새로운 발전모식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로는 자녀교양관념의 변화이다. 우리민족 부모들이 자식을 룡이나 봉황으로 키우려는 념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그 욕망과 방식에는 질적인 승화를 가져왔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키듯이 오늘의 부모들은 아파트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낸다. 어릴때 부터 아이의 흥취와 애호를 살리고 개성을 개발하며 그들의 다방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려고 애쓴다. 지금 부모들은 자식을 공부시켜 취직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능력만 된다면 석사나 박사까지라도 밀어주어 성공시키려고 노력한다. 아마 우리민족의 교육사에서 지금처럼 고차원의 인재가 수없이 배출되고 있는 시대는 없을것이다.    넷째로는 직업관념의 변화이다. 현대녀성들의 가치척도는 자아희생으로부터 자아성취로 전변했으며 단순한 취직형으로부터 창발적인 사업형으로 변했다. 그들은 대담히 시장경제의 물결속에 뛰여들어 경쟁을 벌리고 능력을 비기며 분발노력하고 악전고투한다.《지금 세상에는 게으른놈이 못산다》는것이 그녀들의 좌우명이다. 남편의 성공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던 현처량모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녀성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인격과 능력으로 자기의 인생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녀성군체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직업녀성들은 남성과 평등하고 독립적인 자격으로 사회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가정에서의 경제적인 독립은 물론이요, 인격상에서도 독립하려 하며 감정상에서도 남편과 자식뿐이 아닌 광범한 사회적 교제를 즐긴다. 여가시간이면 여러가지 사회교육에도 적극 참가하고 문체활동과 건강관리 등에도 중시를 돌리면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하고 있다.   다섯째로는 심미관념의 변화이다. 오랜시기를 두고 녀성미의 표준은 오직 예쁘고 온순하며 선량한데 두었다. 그러나 현시대에는 독특한 개성이 있고 품위가 있으며 현대감이 넘치는 녀성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그러자면 당연히 외모뿐이 아닌 자신의 지식을 부단히 넓혀야하고 문화수양을 제고해야하며 인격과 품위를 높혀 내재적인 미를 갖추어야 한다. 각종 녀성학원의 새로운 붐은 이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고차원의 녀성일수록 남성과 동등한 목표를 추구하며 모든면에서 남성과의 거리를 단축하려한다. 하여 자신을 자연적인 녀성의 삶에서 사회적인 녀성의 삶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하기에 그들은 사업성공의 기쁨뒤에는 생활의 억제감과 감정의 고독감도 느끼게 된다. 사실상 녀성의 남성화로 남녀의 평등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것은 력사적인 착오인 것이다.    시대와 사회의 발전에 따른 이런 변화들은 물론 인간의 추구에 따르는 진보적인 현상이지만 이로인한 문제점 또한 적지않게 나타나고 있다. 례하면 생육관의 변화에 따른 근 90%에 달하는 독신자녀률은 조선민족인구의 마이너스 성장을 불러왔고 혼인가정관의 개방은 리혼률을 력사상 최고수치로 끌어올렸다. 시장경제바람으로 인한《도시열》,《한국열》은 또한 많은 리산가족과 결손자녀들을 만들어 사회의 불안전요소를 산생하고 있다. 전통적인 효도관념은 사라져서 웃어른의 권위는 낮아지고 부모중심의 가정은 자녀중심의 가정으로 전변되고 있는 것이다.   녀성을 잃으면 가정을 잃고 가정을 잃으면 사회를 잃는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민족사회에 나타난 이런 현상들은 바로 녀성들의 삶의 변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경인년 새해도 밝았으니 우리 녀성들의 일년지계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매일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듯이 우리의 마음도 활짝 열어보자. 새해에는 우리모두 가족들에게는 지혜롭고 살뜰한 주부로, 직장에서는 성실하고 참된 일꾼으로, 남편에게는 사랑받는 안해로, 아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어머니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가꿔보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추호의 사심도 없이 오로지 남을 위하는 모성애의 힘이다.  그래서 녀성은 대지이며 또한 녀성은 꽃이라고 하지 않는가!                                                                                                                       (2010년 3월 6일)
16    21세기 장수사회 로년의 미학 댓글:  조회:4784  추천:52  2010-03-04
                      21세기 장수사회 로년의 미학                                                            강 순 화  (연변대학 녀성연구중심 연구원)          一. 한계 수명에 도전하는 21세기       “참 요즘 로인들은 나이에 비해 정정하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된다. 70, 80이 되여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례가 많고 100세이상 로인들을 만나는 것이 예전만큼 신기하고 흥분되는 일 만이 아닐 정도로 주위에 로인 인구가 많다.     통계에 의하면 18세에 불과하던 전세계 평균수명이 최근 100년동안 65세로 늘어 났으며 지난 40년간, 미국의 경우  85세이상 고령인구의 증가폭이 300%나 되였고, 일본은 100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100배나 증가했으며 한국, 중국도 65세이상 고령인구가 신속히 증가하고 있어 고령화시대가 곧 도래하고 있음이 예견되고 있다. 사실 현재의 속도로 장수인들이 늘어 난다면 미국의 경우 21세기 중반에는 100세이상의 로인 인구가 4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며 생명공학의 발달과 함께 2025년에는 인간의 한계수명이 125세까지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범세계적 고령화의 추세는 생명을 다루는 의학과학 분야가 빠르게 발달하고 있고 영양이나 위생 등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장수사회의 도래는 역시 인류가 축복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이를 옳바르게 정시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30년 후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로인 인구    인간수명의 연장과 출산력의 저하는 인구의 고령화를 재빠르게 초래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만보더라도 60세 이상의 로인인구가 1990년에 벌써 --영국은 20% , 프랑스는 19%였는데 2030년에는 각각 28%, 29%로 증가된다고 하며 일본은 90년의 18%로 부터 2030년에는 32%, 즉 거의 1/3이 로인 인구로 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인구10명중 한명이 65세이상이며 미 전국에 37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한다.  그중 85세 이상도 530민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로령화와 비례해 심각한 문제는 로인들을 위한 년금을 뒷받침해 줄 젊은 세대의 수는 상대적으로 점점 줄어 들고 있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로인 1명의 년금을 위해 로동하고 있는 인력이 4-5명 정도인데 2030년이 되면 미국은 3명, 기타 유럽국가는 2.5명으로 감소될 것으로 예산된다고 한다.    퇴직금이란 우리가 평생 저축해 놓은 돈을 로후에 찾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로동가치는 그 시기에 모두 상품가치로 전환되고 지금의 퇴직금은 현재 실제로 로동하는 사람들이 또 자신의 미래를 위해 부어 넣는 생산가치로 지불하게 됨으로 훗 세대들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퇴직금 제도도 파산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로 인정되는 일본도 날로 급증하는 장수로인들의 생활보장을 위한 년금제도를 어떻게 꾸려 나갈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비하여 선진국들은 오래도록 일하기를 권하는 사회, 정년퇴직 년령을 높이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다. 그러나 목전 선진 산업 국가들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산업사회에서 고령자에 대한 차별대우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산업사회는 높은 교육수준과 기술을 갖춘 로동인력을 수요하기 때문이다. 즉 늙으면 생산력이 떨어져 조직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청장년, 예비로인 시기의 학습과 진보를 더 박절히 요구하고 있다. 정보화와 인터넷, 컴프터화의 시대에 학습하지 않고는 시대에 뒤따를 수 없기 때문이며 배우고 가면 삶에 자신감이 있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건강하고 활동적인 상태로 장수하는 것이 바램    우리가 예견하는 장수사회는 마지막 생애의 20-30년을 병약한 상태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면서 장수하는 그런 사회인 것이다. 미국에서 실시된 조사에 의하면 65-74세사이의 로인들 가운데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취약한 로인은 11%밖에 되지 않으며 89%의 로인들은 별 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신로년학》이라는 개념이 나왔는데 과거에는 병약하고 무력한 로인들을 위해 어떻게 양로원이나 로인 보호시설을 확장하고 보건의료 제도를 가강하겠는가가 중점이였는데 현재는 이런 전통적, 부정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현재의 로인 다수는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동시에 생산적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이다.     인제는 “여생”이라는 개념에서 “인생의 재 시작” 또는 “제2의 인생”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때문에 장수사회의 로인복지를 위해서는 정년퇴직 년령을 최대로 늘이면서 능력있는 로인들은 생의 마지막까지 일할 수 있는 취업 구조와 사회 환경의 조성 그리고 매개인의 노력이 필수 되는 때인 것이다.      二 .성공적인 로년 생활의 창조       1. 직장에서는 나왔다하여 모든 일을 포기해서는 않된다.   지금 현실에는 50만 되면 직장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에 자연수명은 길어 졌지만 사회수명은 짧아진 모순 속에 있다. 그러면 어떻게 사회수명을 연장할 것인가? 여기에는 각자의 노력에 달린 것이다. 이런 장수사회에서 아무 일도 않고 안일하게 여생을 소일함은 빠른 세상에 비해 너무나 긴 시간이다. 퇴직후 짧게는 20년, 길게는 30-40년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이 시간을 더 보람있고 훌륭하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례하면 평생 쌓아 온 지식과 기술을 젊은세대들 한테 가르치면서 소득을 확보하는 길이라든지,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 주동적으로 참가하여 뜻있는 사업에 힘을 보탠다던지, 재직 때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못한 일이나 공부를 다시 해 보는것 등, 그리고 등산이나, 여러 가지 알맞은 운동 혹은 일주일 한번씩이라도 부근의 농촌에 내려가서 채소나 곡식이라도 심고 가꾸어 보는 등등 일들이다.      중요한 점은 정력과 신체가 허락하는 한 무엇인가는 실천해 보는 활동을 지속하면서 그 속에서 성취와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일본의 100세로인 마을의 생활형태를 보아도 항상 소식하고 매 하루를 로동의 하루로 보내며 자신이 가꿔 온 채소를 자신 뿐 아니라 이웃과 나누어 먹는 재미로 매일 매일을 즐겁게 보낸다는 것이다.        2. 로화의 자아의식에서 스스로 해방해야 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60이되면 당연히 로인이고 따라서 은퇴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즉 황혼기는 무력한 존재라는 편견을 우리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지적, 신체적 능력을 과소 평가하면 스스로 빠른 로화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50대 이후 툭하면 “나이가 들어서”, “이젠 늙어서 기억력이 떨어 진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등등 푸념을 하는데 이는 자신이 늙었다고 확인하면서 로화의 길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지금 시대에 50-60은 중년이고 70-80이 되여야 로년이라고 한다. 때문에 벌써부터 누구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라 항상 큰언니와 큰오빠로 살아가야 한다. 대부분 로인은 건강하시므로 정신적, 신체적 활동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관념의 부동은 생산적 활동, 건강, 장수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유지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 현재의 보건의술의 조건에서 우리들의 관념과 생활방식 그리고 삶의 태도를 바꾼다면 의존적이고 소외된 존재로부터 새로운 생산 인구로 변화시켜 갈 수 있다.        3.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자.    늙음이란?  마모리론에 의하면《물건을 오래 쓰면 닳는 것과 같이 몸도 오래 쓰면 낡아 변한다》는 것인데 새차도 오래 쓰면 중고차가 되고 더 오래 타면 페차가 되여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 축적리론인데《로페물이 쌓여서 그 독성으로 늙는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매일 쓰레기를 내듯이 우리 몸도 외부로부터 흡수한 모든 것을 에너지화 하는 과정에 땀, 소변, 대변으로 배설도 하지만 세월이 감에따라 축적도 많이 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론리로는《컴프터가 입력되지 않은 정보는 재생시킬수 없듯이 사람도 태여날 때부터 자신의 수명이나 늙음의 과정을 프로그램으로 타고 난다》는 것이다. 물론 상술한 인소가 모두 작용하겠지만 과학의 발전에 따라 조만간 늙음의 기전도 밝혀질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례외없이 늙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역시 불쾌한 일만도 아니다. 일년내내 농사를 지어 이제 막 수확을 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들판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남은 시간이 살아 온 시간보다 짧다고 느낄 때 아무렇게나 지나버릴 것이 아니라 매우 소중한 시간임을 새삼스레 느끼기도 한다.    “늙어 보세요, 재미있어요.”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한 로인이 젊은이들게 한 말이다. 삶의 궤적을 다라 가느라면 재미없는 나이가 어디 있으랴. 나의 정도마다 그 나이에 알맞은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책읽기, 글쓰기, 음악감상, 들놀이, 려행, 등산, 친구와의 만남, 사회활동  등등 젊어서 마음껏 할 수 없던 많은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는가?!     三. 즐겁고 활기찬 여가 활동       정년퇴직 이후면 직업적인 일, 의무적인 활동과 자녀 양육등에서 벗어난 시기로서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여가 시간이라고 할수 있다. 최소 20-30년의 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 로인들은 대체로 텔레비 시청, 집안일, 손자손녀 돌보기, 친척친구 방문 등 단순한 모임이나 화토, 장기, 마장 등으로 여가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여러사람이 함께 모여 활동하는 경우도 적은 편이다. 특히 학습활동이나 체육활동에 참가하는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여기에는 단조로운 일상을 당연한 듯 수용하는 무기력한 자세 역시 문제이고 또한 로인복지 시설이나 로인대학, 공원휴식터 등 시설이 다양하지 못한 현실도 중요한 원인으로 되고 있다. 우리는 여가문화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고 참된 여가문화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아래의 몇가지 활동들을 보자     문화활동       로년기는 다른 기능과 달리 문화예술과 관련된 창작력이나 종합적 판단력이 오히려 발달하는 편이라 한다. 인간 뇌의 여러 가지 기능 중 계산능력이나 기억력 같은 결정형 기능은 장년기에 들어서면서 떨어지는 반면, 창작이나 종합적 상황 판단과 같은 류동형 지능은 로년기에 오히려 최고에 달한다고 한다. 때문에 직접적 창작활동 뿐 아닌 각종 문화행사나 문화공간을 자주 접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족의 저명한 문학가 김학철선생님이 80고령에서의 창작활동과 조선족의 저명한 학자이고 교육가이신 정판룡교수의 생의 마지막 저서활동들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     교육활동    지금 로인대학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평생교육원이나 사회교육원 등 에서도 배움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연변대학 민족문화교육원이나 연변사회교육연구소, 연변대학여성기업가반, 연변녀성발전촉진회 녀성교실, 천선복중로년활동중심 등등, 사회교육분야는 다양하다.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한 교육, 지금 알고 있는 기술이나 지식을 공고히 하기 위한 교육,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 컴프터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은 글을 아는 것 만큼 중요하므로 이에 대한 교육도 받아야 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인터넷을 통하여 이메일로 자식들과 통신하고 보다 넓은 세상과 접할 수 있으며 원격진료나 홈쏘핑 등 자신의 생활도 퍽 간편하고 다채롭게 할수 있다.     체육활동    나이가 드시면 체력이 저하되고 면역능력이 약해지므로 쉽게 감기나 기타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적당한 운동은 심장과 폐의 기능 향상을 도와 주고 근육의 기능향상을 도모하는데 효과가 현저할 뿐 아니라 정신적 안정감을 갖게하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갖추는데 촉매역할을 한다. 한국 체육과학 연구원에서는 로인을 위한 스포츠활동으로 건강체조, 걷기운동, 자전거 타기, 수영, 등산 등 유산소 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이런 운동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운동량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며 상해의 위험이 적고 운동중 신심이 유쾌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건강에 매우 유리한 것이다.     닫힌 사회에서열린 사회로    80년대까지만 하여도 그 누가 려행을 다녀 왔다고 하면 돈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특수층의 전유물로만 여기고 부려움만 가질 뿐 자기는 해 보려는 엄두도 못했다.     이제 21세기는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변하여 지구촌이란 말이 실감이 날 정도이다. 세계 려행자 총수는 1년에 10억명에 도달한다고 한다. 중국의 현실에서도 단체로 려행을 조직할 경우 그 비용이 퇴직인원들로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들 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젊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받는 봉금액의 30%를 세금으로 내고 정년이 된 후이면 퇴직금이 기본 생활비를 해결하고도 1년에 한, 두차례 해외로 려행 할 수 있는 경비까지 보장된다고 한다. 로인들의 건강복지라는 관점에서 볼 때 려행이 최상의 보약이라는 것이다.    려행이야 말로 살아있는 교육 그 자체이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섰다가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환경, 새로운 풍물과 인간들로부터 여러면에서 배우고 느끼면서 생각하다 보면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사물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교실이고 교재가 되는 셈이다. 이런 새로운 견문을 통해 인간적인 성숙을 이루고 폭 넓은 인생관을 갖게 된다.    려행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리해와 협동심도 배우게 된다. 사람이 늙어가면 고집이 세 지고 못말리는 행동이 나오는데 려행은 곧 이에 대한 치료 효과가 좋다. 려행을 통하여 애국심과 향토애를 가질 수 있으며, 독립심이 강화되고, 타인을 통해 자률적 사고를 가질 수 있다. 또한 그 준비와 계획과정에 소박해 지고 겸손해 지며 인내력이 강해진다. 려행중 항상 긴장하고 움직이므로 심신이 건강해 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견문도 넓어지며, 호기심이 강해지고 탐구의욕이 높아져 즐거운 추억으로 될 수 있다.     의미있는 삶을 열어주는 자원봉사     남을 돕는 것 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으며 나이가 들수록 그 보람은 커진다. 남을 위해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봉사하는 것은 로년의 삶에 특별한 가치를 주기에 삶의 영광인 것이다.   로년기의 자원봉사 활동은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은 로후에 일상의 무료함과 고독감을 해소하고 사회적인 유용감을 갖게 하는 등 질적인 삶을 영위하게 한다. 즉 퇴직 후 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상실되였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보충해 주는 중요한 대체역할을 하며 또 사회의 련대감을 제고시키며 세대간의 사회통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례하면 “새일대 관심협회”라던가 “사회조사” “업무보조”, “가정교사” “보육교사 보조”, “교통질서 도우미”, "로인료양시설" 에 대한 자원봉사 등을 들수 있다. 즉 “봉사를 받는 수혜자”로 부터 “봉사를 하는 주체자”로 되자는 것이다. 로년기에 직면한 우리는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존재로 생활하기 위해 스스로 활기찬 로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인식하고 이를 위해 실제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래에 “제2의 인생”에 적합한 사회활동을 찾고 준비하는데 고려할 사항을 덧붙혀 둔다.   (1) 자신이 가장 원하는 욕구를 확인하라   (2)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   (3) 이러한 활동에 대한 정보, 서적, 인터넷, 주위사람, 사회단체들을 찾아보라.   (4) 이런 일을 미리미리 조금식 실천해 보면서 과연 이런 일들이 나의 삶에 적합한지를 확인한다.                 <로년세계> 잡지  2005년 3기에 실렸었고  최근에 부분 내용을 더 보충하였음)         
15    사진으로 보는 미국서부 로산젤레스 코리아타운 댓글:  조회:5471  추천:95  2010-02-26
사진으로 보는 미국서부 로산젤레스 코리아타운
14    변강산촌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 댓글:  조회:4990  추천:57  2010-01-10
                 변강 산촌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                                                                   글 / 강 순 화      젊어서는 희망에 살고 늙으면 추억에 산다더니 늙었다고 하기엔 아직은 젊은 나이인데도 지나간 옛일들을 자주 떠올리며 아련한 추억들을 더듬게 되는것은 웬일일가? 오늘도 휴식일의 짬을 타서 낡은 앨범의 색바린 흑백사진들을 펼쳐보느라니 꼭 30년 전의 그 세월 그 일들이 주마등마냥 눈앞을 스치며 그 산촌 그 사람들이 사뭇치게 그리워진다.      1968년 고중을 졸업하고 모주석의 지시에 따라 광활한 천지로 하향했던 그곳은 바로 변강산촌인 백금향 심포마을이였다. 열다섯호의 농가가 두만강변 산비탈에 오손도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을 앞에는 푸르른 논밭, 마을 옆에는 아담한 산촌학교, 큰길 너머로는 검푸른 두만강이 세월과 더불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마을 뒷산에는 살구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앵두나무들로 울긋불긋 자연과원을 이루었고 산골짜기엔 맑은 샛물이 졸졸 흘러내려 그야말로 그림속의 에덴동산이였다. 명절엔 마을에서 돼지를 잡아 일인당 한두근씩 똑같이 나누었고 떡이나 두부같은 색다른 음식은 언제나 온 동네가 함께 만들고 나눠 먹던 인품 좋은 시골 마을이였다. 장사라는 것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세월이라 뒷산에 무너지듯 열리는 갖가지 과일들도 마을애들이 뜯어 먹고 나머지는 그냥 버려져 까치밥이 되군 하였다. 사회주의 집체재산의 판매와 교환은 절대로 금지되였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2년후 나는 그 마을 향촌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다.《범이 없는 골안에 슬기가 왕》이라고 그때 66년급 고중 졸업생인 내가 그 시골에서는 최고학력자였으니 말이다. 그 시골학교는 전교학생이라야 50명도 안되였지만 소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다 있었다. 교원은 모두 합해 네명이였는데 교장이든 교원이든 관계없이 한 교원이 한어, 어문, 정치, 력사를 가르치면 다른 한 교원은 수학, 화학, 물리, 기하를 가르쳤고 학생이 적은 반급은 두반 학생을 한 교실 좌우쪽에 따로따로 갈라 앉쳐 놓고 시간마다 복식교학를 하였다.      그세월 향촌교원의 월급은 32원이였는데 시골에서 그것은 최고 수입이였다. 감농군들이 일년 내내 땀 흘려 벌어도 량식대와 생산비용을 제하고 나면 년말 총결에 단돈 100원도 손에 쥐여보기 힘든 세월이였으니 말이다. 그 월급에 손색없이 교원들의 사업열정은 아주 높았다. 과당교학에 대한 책임은 물론 하학 후에도 산령을 넘나들며 후진생들의 과외보도도 꾸준히 견지하였기에 해마다 진행되는 현급 통일고시에서 우수한 점수를 따내는 등 시내학교에 못지않은 좋은 성적들을 올리군 하였다.      늦가을이 되면 전교 사생이 도끼와 나무낫을 들고 산에 올라가 겨울 내 난로에 땔 나무를 장만하였고 일요일이면 자체로 학교의 벽을 바르고 회칠하였으며 책걸상도 손수 수리하는 등 모든것이 말 그대로 근공검학이였다. 시골애들은 시골 정기를 타고 나서인지 일도 잘하고 말도 잘들었다. 도시에서 나서 자라 시내 큰 학교에서만 공부해 온 나로서는 그 자그마하고 사랑스러운 향촌학교 교직생활이 참으로 재미났다. 세세대대로 땅을 파며 살아 온 부지런하고 순박한 농사군의 아들딸들, 그것도 일곱 살 난 소학교 1학년생으로부터 열 여섯살 초중 3학년생까지 크고 작은 남녀 애들이 매일 한집식구처럼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였었다. 점심시간 종소리가 울리면 애들은 좋아라 환성을 지르며 저마끔 싸들고 온 도시락을 책상우에 펼쳐 놓고는 누가 쫓기라도 하듯이 게눈감추듯 먹어 치운다. 숫가락 놓기 바쁘게 운동장에 뛰쳐나가 밀치고 닥치며 즐겁게 뛰노는 그 모습들은 그야말로 오붓한 변강마을의 희망이요, 산촌의 푸르른 풍경이였다.      1973년 중학반 졸업 기념으로 찍은 우리 반급의 열한명 아이들을 보라. 하나하나가 그같이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이 아닌가? 이젠 모두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여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이땅의 그 어느 고장에서 살고 있겠지... ...?      몇해 전 룡정거리에서 우연히 그 시골마을 촌장을 하고 있다는 동수학생을 만났었다.《선생님, 저를 몰라보십니까? 그 개구쟁이 동수입니다!》찬찬히 훑어보니 정말로 그때 그 아이가 옳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도 세번이나 넘게 변했으니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겨 버린 그때의 그 아이들을 어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랴!      지난 가을의 어느날 나는 갑자기 그 사랑스러운 산촌마을이 보고 싶어졌다. 지금쯤 몇분이나 남아 계실지 모르는 마을어른들도 뵙고 싶었고 더욱이 3년간이나 정들었던 그 향촌학교가 무척 궁금해났다.      토요일 나는 다짜고짜로 친구 월령이를 이끌고 길을 나섰다. 룡정에서 공공뻐스를 잡아타고 남쪽으로 100여리 길, 높고 가파른 산 사이를 꿰질러 그리 넓지 않게 포장된 큰길로 뽀얗게 먼지를 일구며 달리는 뻐스속에서 추억에 들뜬 나는 저도 몰래 마음만 설레였다. 한식경이나 지났을가, 어느덧 두만강이 보이는 향정부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또 두만강기슭을 따라 동쪽으로 20여리길을 내려가야 한다. 그젯날 향에서 회의를 하고 늦은 밤길로 돌아오다가 길옆 산우에 느닷없이 나타난 커다란 호랑이 눈불에 함께 걷던 세 녀선생이 하나같이 혼비백산하여 걸음아 날 살려라고 줄달음쳤던 그 일이 문뜩 떠오르며 저도 몰래 흠칫 몸서리쳤다. 걸어 다닐 그때엔 두시간도 넘어 걸리던 이 길이 뻐스로 달리니 어느덧 금시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산기슭에 줄지어 있던 아담한 기와집들은 오간데 없고 마을 길옆에 남아있는 서너집 굴뚝에서만 저녘 연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우선 내가 살았던 집체호로 찾아갔다. 그땐 온 동네에서 제일 크고 좋은 벽돌집 이였었는데 들어서니 마당부터 어수선하였다. 낡고 헐망해진 문을 조심스레 노크하니 웬 시커먼 한족나그네가 나오면서 누구를 찾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이전에 이집에서 살았었는데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관내에서 와서 과수부업을 한다고 하였다.      착찹한 마음을 다잡으며 이번엔 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네개 교실에 교무실과 숙직실로 되어 있던 교사가 지금은 민가로 변모하여 세가구가 들어 살고 있는 듯하였다. 발길이 닿는대로 첫집을 찾으니 그래도 다행이였다. 생각밖에 그때 우리반 인옥학생의 집이였다. 중학반 애들 중 제일 키가 크고 듬직한 언니로 불리던 그가 인젠 풍더분한 농촌 아줌마로 되여 놀라는 모습으로 그 옛날의 자기반 선생님을 반겨 주었으니 말이다. 큰애는 룡정에 가서 중학에 다니고 여섯 살 난다는 귀여운 녀자애가 방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애가 이 마을의 유일한 어린이라고 하였다. 몇해 전 두만강을 날아 넘어 온 큰 산불이 온 마을을 삽시에 태워버려 마을사람 대부분은 국가보험금 몇천원씩 타가지고 살길을 찾아 타향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젯날의 에덴동산이 쓸쓸한 길옆 주막같이 되여 버렸으니 애들도 없는 마을에 학교가 있을리는 만무하였다. 그래도 동네길 도랑 웅덩이마다에 탐스럽게 달려 있는 빨간 꽈리들과 무덕무덕 보이는 까만 감태나무, 그리고 뒷동산 과일나무들에 눈띄게 달려 있는 붉은 사과、파름한 복숭아들이 그나마 시골의 향기를 풍기며 길손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푸짐히 삶아 놓은 떡호박과 옥수수며 감자들을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맛나게 먹으며 마을사람들의 행방과 인생살이 이야기로 하루밤을 무던히 보내고 이튿날 아침 일찍 귀로에 올랐다. 그들 부부가 기어이 뻐스에 올려 주는 파아란 시골사과 두상자를 물끄럼히 바라보며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세상이 크게 변했으니 사람살이도 진작 변했구나! 그래 그들이라고 한평생 이 산골만 지키고 살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자식들을 출세시키며 더 잘 살아야지, 그때 그 시절의 환상에만 머물러 있던 내가 오히려 세월에 뒤진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의 청춘시절에 정녕 기쁨과 희망을 주었던 그때 그 아이들, 지금 그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가? 그 언제라도 한번쯤 만나보고 싶은 마음만은 여전히 달랠 길이 없었다.                                       ( 연변녀성잡지-- 2005년 제7기 )
13    현시대의 가정교육은 어떻게 할것인가? 댓글:  조회:7130  추천:72  2009-12-22
현시대의 가정교육은 어떻게 할것인가?                                             연변대학녀성연구중심   강순화                                           가정교육의 새로운 개념 시대는 발전하고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매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가정교육관념이 있다면 21세기의 가장들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 것인가? 이는 매개 부모들이 항상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사실상 현 시대는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는 만큼 우리 학부모들이 이 시대를 따라감도 힘든 것이다.하지만 우리의 가정교육이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의 사상과 관념이 우선 변해야 한다고 본다.   “부모 말이면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관념은 낡은 것으로서 그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의 부모들은 자식을 자식뿐이 아닌 친구로 보아야 하며 평등한 관계의 공민으로 보아야 한다.가정교육은 경험으로 사람을 교육하는 데로 부터 과학적으로 사람을 교육하는데로 전변되여야 하며 편면적으로 책의 지식만 중시하는 대로 부터 정확하게 인간이 되는 교육으로 전변돼야 하며 단방면 명령으로 부터 평등하게 대화하는 데로 전변되여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부모는 우선 인격적인 매력이 있어야 하며 학식이나 수양면에서 아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빈곤한 생활은 가정에서의 아이들의 의무와 책임도 있었기에 가정에 대한 애착심,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짙었었다.학교에 갔다 오면 농촌애들은 돼지풀을 뜯고 나무를 패고 터밭의 기음을 매야하고 시내 애들은 부모를 도와 애기를 보거나 채소를 사거나 배급을 타거나 청소를 해야 한다.이런 일로 부터 아이들은 무언가는 가정을 위해 공헌한다는 자호감 자신감이 생기고 가정의 희노애락을 부모와 함께 나눈다. 그런데 오늘 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애들이라면 오직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강요당하고 있으며 가정의 일체는 상관하지도 할수도 없다.때문에 아이들은 자기 중심의 개인주의가 팽창하고 고독감이 생기며 독립능력을 상실한다.다자녀의 가정교육이 독신자녀의 가정교육으로 전변된 오늘 날 우리의 가정교육은 세가지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1.학부모의 심리가 변하였다. 독신자녀에게 모든 희망을 기탁하기에 다섯가지가 과분하다.과분한 기대,과분한 사랑,과분한 관섭,과분한 보호,과분한 질책이다.이에 따라서 아이들은 다섯가지가 없는데,무정하고 무능하고 무망(无望)하고 무책임하고 어쩔 수 없어 한다(无奈). 2.아이들의 성장환경이 변했다.“아동세계”가 “성인세계”로 변한 것이다.어른들이 모든 것을 좌우지하려 하는가 하면 또 지금 현실에 아이들은 컴프터로 못하는 짓이 없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성인에 대한 의뢰심은 커지고 아이와 어른들과의 모순 역시 커지고 있다. 3.아이들의 생활내용이 변하였다.오늘의 아이들은 중국에서의 첫피로 되는 텔레비와 컴프터 앞에서 성장하는 애들이다.생활수평의 제고로 거주환경은 점점 커지지만 부모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대화시간은 점점 적어진다. 부모와 담을 쌓고 마음을 열지 않으니 자연히불량한 심리가 형성되게 된다.   가정교육에서 아이들은 전통적인 자애로운 어머니 보다 현대적인 부모를 요구하고 있고 부모들은 자식을 인재로 키우려는 무거운 사랑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대적 가정교육은 효과적인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가정교육 :    우리민족은 자고로 교육 자체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존경을 가져다 주는 자본으로 생각해 왔기에《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켜야 한다》,《먹물을 먹어야 사람이 된다》던가《글을 읽어야 출세한다》는 말들이 이미 가슴에 배인 좌우명으로 되고 있다. 때문에 시장경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장사를 하거나 음식점이나 다방 등 개체업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조선족 부모들은 자식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교육을 많이 받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종사하기를 더 바라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개혁개방이래 물질의욕의 증강과 가치관념의 변화 그리고 생활방식의 개변에 따라 《도시열》,《한국열》로 인구의 대 이동이 생기고 따라서 많은 이산가족과 결손자녀들이 생겨 사회의 불안전 요소를 만들고 있다.    연변대학 여성연구중심에서 전 자치주 조선족 중소학교 현황 선택조사를 진행했었는데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학생이 전 자치주적으로 겨우 46.8%를 차지하였다. 부모가 출국한 가정이 38.7%, 부모가 이혼한 가정이 7.9%, 한쪽 부모 혹은 두 부모가 사망한 가정이 1.65%하여 이 세가지를 합하면 48.25%나 되였고 여기에다 부모가 관내 타지방에 나가 취업하고 있는 가정을 포함하면 반수 이상의 학생들이 부모와 떨어져 있어 가정의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2005년의 조사)    4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이 수자는 더 늘어날 뿐 줄지는 않는다. 이와같은 가정환경과 가정교육의 결여는 청소년들의 심신건강과 발전,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의 교육에 엄중한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현실 생활에서 살펴보면 어떤 애들은 생기발랄하나 어떤 애들은 우울하고, 어떤 애들은 례의범절이 바르나 어떤 애들은 무뚝뚝하고 조폭하며, 또 어떤 애들은 총명하고 재간이 많으나, 어떤 애들은 좀 둔하고 용속한 등 차이가 나는데 이것은 바로 가정교양의 부동한 결과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정상적인 인간으로 태여 났다면 천성적으로 나쁘고 아둔한 애는 없다고 한다. 즉 후천적 교육이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은 자녀교육의 첫 학교이고 가장은 자녀의 첫 단임 교원이므로 자녀의 인지(認知), 정감, 행위의 배양 및 금후 능력의 형성은 태여 나는 그 시각부터 가정에서 묵묵히 감화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정교육은 한 사람의 계몽과 인격의 완성에 있어서 학교교육이 대체할 수 없는 특유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세상에 태여 난 후 제일 처음 가정으로부터 교육을 접수하게 된다. 하기에 가정은 어린이가 사회와 접촉하는 출발점이고 한 인간으로 되여 세상을 살아가는 각종 능력의 배양기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매개 학부모 자신의 문화수양, 사상관념, 도덕수평, 교양방식이 부동함으로 하여 자녀에 대한 교육방법도 다르게 되고 따라서 자녀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실사회의 가정교육에는 여러가지 류형이 존재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아래 몇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첫째는 과학적인 지도형이다. 이 부류의 학부모들은 우선 부모가 되기 전 부터 어린이 교양과 자녀교육에 유관되는 교육학, 심리학, 아동영양학 등 지식을 참답게 학습하며 국가의 교육방침과 자기 자녀의 특점을 결합하여 과학적인 교양방법으로 자녀를 교양하고 있다. 어린이가 학교에 가면 또 학교와 배합하여 학생의 전면발전을 중시하고 밀어준다. 자녀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 주며 그들로 하여금 생기발랄하고 주동적으로 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정은 조사평의에서 30%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엄마의 형상을 조사해 보았더니; 1.컴프터를 좀 알았으면2.화장을 좀 했으면 3.잔소리를 적게하고 얼굴에 항상 미소를 띄였으면 4.아이들에게 자유공간을 줄줄 알며 학습하기 즐기며 친구와 같은 엄마였다.     둘째는 과분한 보호형이다. 이 부류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능력을 믿어 주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과분하게 보호하려 하고 부모가 모든 것을 도맡아 하려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여 주고 밥을 먹으면 옆에서 닭알을 까주며 학교에 가려하면 책가방에 책을 정리해 넣어 주고 돌아오면 지어 숙제까지 대신하여 써 준다. 이렇게 습관 되면 대학에 붙혀 놓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쫓아가 침대를 펴주고 바꿔 입을 옷을 몇 가방씩 갖춰주며 이불카바를 일곱 개씩이나 씌워서 어지러지면 하나씩 벗기고 마지막 한 개가 남으면 엄마한테 알리라고 한다.     이렇게 자란 애들은 과분하게 부모에 의뢰하고 일마다 남의 도움을 받으려 하며 생활자립 능력이 없고 독립사고 능력이 약하며 개성의 발전 및 지력과 개척정신의 발전에 제한을 받는다. 이런 가정이 조사평의 수에서 35%나 차지하였다고 한다.     셋째는 과분한 간섭형이다. 학부모가 자녀에 대한 과분한 간섭은 아이들의 언행을 제한한다. 부모의 념원에 따라 사사건건 틀에 맞추려 하며 일상생활에서 항상 지령식, 책망식, 명령식 언어만 쓰면서 아이들을 안절부절하고 어쩔바를 모르게 한다. 이렇게 하면 애들은 항상 욕을 먹지 않으려 조심하고 따라서 성격이 위축되며 무슨 일이나 자체로 독립사고 하지 않으므로 개성의 발전은 억제되고 창발정신이나 비판능력이 결핍하게 된다. 이 부류의 가정도 조사평의에서 25%나 되었다고 한다.    넷째는 엄격한 징벌형이다. 자녀를 교육하는 태도가 언제나 딱딱하고 언어는 거칠며 감정이 결핍하고 심지어 욕하고 때리는 것을 소위 교육으로 삼기에 아이들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꺽이고 있다. 아이들의 눈에 이런 부모는 무지막지한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므로 스스로 권위와 위망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모는《때리지 않으면 사람이 안된다》,《몽둥이 밑에서 효자가 나온다》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교육방법은 왕왕 역작용을 일으켜 아이들의 성격을 억누르고 심리상 자비감이나 반발심을 갖게한다. 이런 애들은 항상 숨은 밸을 참아 오기에 성격이 괴상해 지고 담은 작아지며 무슨 일에서나 자신심을 잃게 된다. 이같은 소위 교육 방식은 가정교육에서 오직 역작용만 만드는 최대의 금물인 것이다. 이 부류도 조사평의 수에서 7%나 차지하였다고 한다.    다섯째는 자유 방임형이다. 이런 가정은 자녀 교육의 주요 책임을 아예 학교에만 떠밀고 아이의 학습생활을 전혀 관심하지 않는다. 우리 조선족사회의 많은 결손자녀들이 이런 상태에 처하고 있다. 부모는 장사요, 출국이요 하면서 돈벌이에만 신경쓰고 아이는 노인들이나 남에게 의탁하여, 공부는 잘하나마나 먹고 입고 학교에만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학하여도 관리하지 않으니 사회의 나쁜 물에 젖고 부모가 보내 준 돈으로 과소비나하며 심지어 가출하거나 PC방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공부는 뒤전이고 놀음에만 정신을 팔므로 학교에서는 문제소년, 사회에서는 위법범죄소년으로 전락되기 일수이다. 이런 가정도 조사평의수의 3%나 차지하였다고 한다.    각 학교들에서는 이미 이런 문제들을 중시하고 학교교육 뿐 아니라 가정교육도 가강하는 방법들을 여러가지로 연구 모색하고 실천해 왔다. 학부모 강습반을 꾸리고 가정교양 특강을 진행하며 학교에 <심리상담실>을 설치하고 사회에《사랑의 집》을 만들어 결손자녀들의 심리고통과 생활상의 곤난을 풀어 주는 등 많은 노력들을 하여 일정한 성과도 거두고 있다.    아래에 우리부모들이 할수 있고 또 해야하는 몇가지를 이야기해 보려한다.  량호한 가정교육 환경 : 가정교육의 중요한 조치의 하나는 량호한 가정교육환경이다.    환경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환경은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량호한 가정환경은 인간을 배양하는 옥토요, 인간을 육성하는 기지이다.    그러면 어떻게 가정교육의 유리한 환경을 창조할 것인가? 우선 가정교육의 객관 환경을 창조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가정을 자녀의 성장에 유리한 대 환경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하여 세 번 이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최초 집이 묘지 옆에 있으니 맹자는 죽은 사람을 안장하는 장사 법 만 배웠고, 후에 도살장 옆에 이사 가니 소나 양을 잡는 것 만 배우기에 어머니는 이거 아니다 싶어 세번째로 서당 옆에 이사 가서야 맹자는 석학들이 글을 배우는 것과 그들이 배우는 례의 범절들을 모두 따라 배웠다는 것이다. 객관 환경의 영향과 어머니의 의식적인 교육이 훗날 중국 력사상의 대 성인을 만든 것이다.     이럴 듯 가정환경의 영향은 일종 보이지 않는 교육방식으로 존재하며 아이들의 성장에 홀시 할 수 없는 영향을 가져온다. 물론 지금은 과거처럼 누구나 거의 한곳에서 몇 십년 눌러 사는 때도 아니고 붐비는 대거리, 즐비한 아파트 단지들이 아이들 성장의 대 공간을 이루고 있는 만큼 고정적인 환경보다 움직이는 환경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가정주위의 상업 시설이라던지 항상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과의 대인관계 등이 학생의 성장에 홀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면에서 부모들은 중시를 돌려야 할 것이다.      가정내의 문화적 환경 : 가정의 문화적 환경은 가정교육의 담당자인 부모가 알심들여 만들고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을 둔 가정이라면 무엇보다도 문화적인 분위기가 풍겨야 한다. 가정이라는 소 환경은 아이들이 생존활동을 하는 곳일 뿐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멋진 장식, 고급 가구에 온갖 꽃이나 장식품들만 늘여 놓을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가정서가와 함께 어린이의 작은 서가도 일찍 만들어 주어 어려서부터 애들이 책읽기를 즐기고 책을 많이 읽게함므로서 세상과 접촉하고 안계를 넓이며 적극 향상하는 자신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독서 중에서 인생을 알고 인생의 가치를 탐구하며 세상만물에 진취심을 갖고 발명 창조해 보려 하며 분발 노력하는 자신력을 키워가야 한다.     사람은 음식물로 체력을 배양하고 독서로 정신력을 배양한다.《가난한 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존귀해 진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들의 긍정적인 사유와 표양 위주의 교육 방법은 애들의 정서를 북돋우고 학습에서의 신심을 키워주는 훌륭한 방법임을 재삼 지적하고 싶다.   가정에서의 활동환경 : 그 다음으로 가정에서의 활동환경을 창조해야 한다.가정은 자녀가 성장하는 곳으로서 독특한 생활 특점이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때문에 부모는 응당 애들에게 량호한 성장 공간을 만들어 주어 아이들이 건강하게 발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계적인 대 발명가 에디손의 어머니가 이면에서는 우리의 모범이라 할수 있다. 학교에서 항상 어리석은 놈이라 불리는 아들을 가정교육의 인도하에서 위대한 과학자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에디손은 학교 과당에서《하나에 하나를 합하면 왜 둘이냐》고 괴상하게 캐 물어대는 애였지만 어머니는 이를 절대 나무라지 않고 보호하고 리해해 줬으며 실험하기 좋아하는 성격을 칭찬해 주고 그가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없는 형편에도 지하실을 내놓아 실험 공간을 만들어 줌으로서 많은 실험들을 그곳에서 성공하게 하였다.    이럴듯 가정환경의 영향과 부모의 리해, 지지는 아이들의 성장에 극히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다. 천하의 부모들이 다 그럴 듯이 자기 자식이 훌륭한 인재로 되는 것 보다 더 큰 바램은 무엇이겠는가? 부모라면 물론 따뜻한 마음으로 자식을 사랑할 뿐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이끌고 교육자의 자태로 자식을 가르켜야 한다고 본다.    위의 글이 우리 학부모들에게 저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정교육특강자료 )         
12    내가 본 미국땅의 이모저모 (6) 댓글:  조회:7509  추천:52  2009-12-20
          내가 본 미국땅의 이모저모 (6)                                                                   글 / 강순화          경기 침체의 영향:   1. 미국의 올해 재정적자는 1조달러를 넘어섰다. 법인세의 급감(57%감소)과 개인소득세의 감소(22%감소)가 그 주요 원인이다. 불황여파로《아메리칸 드림》이 시들해져 영주권 신청도 급감하였는데 2007년 13만7915건에서 2008년 4만4120건으로 3분의 2이상 급감하였다고 한다. 취업이민 신청도 2008년 4만건에서 2009년 5월에는 1만건만 남았다고 신문에 공포하고 있다. 특히 취업이민 스폰서를 찾지 못하는 류학생들이 계속 늘고 있어 취업이민 신청자는 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였다.   2. 금년 5월 조사에 의하면 경기침체 속에서 대학학위졸업 및 졸업예정자 취업률은 19.7%로 밖에 안되였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불황을 맞이하리란 공포가 미국사회에도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지독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대학졸업생들은 경험을 더 쌓기 위해 외국행이나 무보수 인턴직을 선택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미취업 대학생들의 증가는 즉각적으로 학자금 대출 상환을 이룰 수 없는 련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평균 2만7천달러의 빚을 지고 있으나 갚을 수입이 없으며 이들 중 거의 30%(2007년 기준 1천300만명)가 보험의 보장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젊은층 실업의 가장 큰 심각성은 일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3. 미국 부유층도 힘들다고 한다. 미국 전체 인구의 4%를 차지하는 년수입 25만달러 이상의 부유층 인사들을 조사한 결과 60%가량이 경기침체로 개인재산이 줄고 가계 금전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유층 조사대상의 39%는 보너스 등이 삭감됐고 29%는 정기적인 수입 자체가 줄었으며 8%가량은 직장을 잃었다고 말하였다.   4. 장기간의 금융위기와 침체로 미국인의 소비패턴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그 타격으로 세계적인 도박성시《라스베이가스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이 경제전문가에 의해 제기됐다. 라스베이가스 인구의 증가가 멈췄고 실업률도 심각한 상황이다. 소비와 부채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비뀌여 가면서 라스베이가스가 과거에는 미국경제보다 앞섰으나 이제는 뒤쳐졌다고 한다. 주요고객 래원인 캘리포니아주의 실업률이 11.6%이므로 사람들은《쓰는 일》보다《아끼는 일》이 우선시 되고 있었다.   5. 불경기로 주택시장이 침체가 계속되면서 빈 방이 넘쳐나고 있다. 맨하탄 오피스 렌트는 지난해 동기에 비해 44%하락되였고 렌트비용도 1년전에 비해 15-20% 떨어졌다고 하는데 20년만의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한인타운들도 빈방이 넘쳐난다. 쇼핑계시판의 60%가 주택 아파트 렌트, 하숙을 알리는 광고지로 가득 찼으며 렌트비는 한달에 100$씩 내리고 1년전 한달에1600$ 이던 아파트가 1400$로 주택 렌트는 260$, 500$, 900$ 등이다. 부동산 업계는 당분간 이같은 주택가격과 렌트비 추락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하였다.   6. 불법체류자 이송업무도 바쁘다. 특히 중남미 출신 불법체류자들은 가정폭력, 살인 등 중 범죄자가 많고 이 외에도 교통법 위반자와 밀입국자 등이 있다. 그들은 추방당하면서 하는 말이《미국을 오기 위해 수천달러를 지불했다. 이렇게 추방되면 너무나 허무하다. 고국으로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다. 기회를 노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겠다 》였다. 사실 그들처럼 법을 위반하지 않고 수년간 조용히 일터에 다니며 일하고 부지런히 돈을 버는 사람들은 많고도 많은 것이다. 한 택시기사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미국에 체류중인 외래인구의 30명당 하나는 불체자라고 하는데 그 수가 과장된 건지는 몰라도 불법체류자가 많은 것만은 사실이였다. 게다가 불체자 상인의 11%가 아세아계라고 한다. 오직 미국의 법률을 잘 지키고 위반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던지 일하여 먹고살 수 있는 곳이 미국땅인 것 같았다.                                                                           불쾌하고 괴상한 현상들:    1. 뉴욕 플레싱 중심거리 한쪽건물 위에는〈全球退黨服務中心〉이라는 간판이 버젓이 걸려있다. 신당인(新唐人)텔레비에서는 매일 대륙에서 얼마 얼마가 퇴탄, 퇴당했다고 그《수자》를 현시한다. 플레싱지하철 입구 한 구석에서는 삐라와 신문으로 반중공 선전을 매일같이 진행하고 있었고 지어 그들이 조직한 모임들에서는《중공당원은 이민을 신청할 권리가 없다》고 소리친다. 그런데 이런 반중공활동들을 미국 본토 국민이 아닌 중국계 사람들이 진행하고 있으니 이《정치피난자》들의 나라배반 업적은 가이 력사에 남을듯하다.    2. 맛사지팔러(안마아가씨) 대오에는 조선족녀인들까지 끼여있는가 하면 각나라 류학생들, 지어 명문대출신 녀대생들까지 끌려들고 있단다. 물론 에 기편당하여 협박에 의해 성매매에 종사하는 불쌍한 녀인들도 있다지만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자기절로 불구덩이에 뛰여 든 녀성들도 적지 않았다. 한인거리의 나 신문의 취직광고에 제일 많이 오르는 것도《예쁜아가씨》,《젊은아가씨》초빙광고이다.    이런 포르노아가씨들은 손님이 부르면 밤이고 낮이고 언제든지 달려가며 심지어 비행기까지 타고 이 성시 저 성시를 넘나들며《봉사》한다고 하니 그들의 수입이 도대체 얼마냐고 물었었다. 년봉 10만달러 란다. 일시는 고급주택에 좋은 차를 쓰고 돈을 물쓰듯 하면서 굴러 들어오는 돈뭉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하지만 그런 인간쓰레기같은 생활이 어디 사람이 할 노릇인가? 종당에는 통탄해도 후회막급 할 것이다. 일부 젊은 녀성들이 류학이나 취직의 꿈과 희망을 안고 큰 돈 들여 미국 땅에 왔다가 이런 구렁창에 잘못 들어서면 곧 절망에 빠지게 되고 지어 자살의 길에 이른 사례도 볼 수 있었다.    3. 멋진 고층건물에 문명의 성지같은 로산젤레스의 시청 앞 중심거리도 밤이면 혼자 다닐수 없는《공포의 거리》라고 한다. 100달러면 총 한 자루를 살수 있다는 미국사회에서 무시로 살인강탈의 소식이 들려옴은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이전에 영화에서 보면 총앞에서 서양인들이 동양인보다 쉽게 손을 드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미국에 가서야 그 도리를 알게 되었다. 위법시 경찰 앞에서도 인차 두손을 들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하니 사람목숨이 어디 몇개씩이나 되는가? 우리 하숙아파트가 있는 플레싱거리에서도 지난 8월 중국계 대만적인 40대의 재미《세계일보》기자가 해외임무 결속으로 환송연회에 참가하고 밤11시에 귀가하던 중 강도애들께 강탈당하고 살해된 일이 버러졌다. 물론 돈을 뺏고 차를 빼앗아 도망가다가 몽땅 붙잡히긴 하였지만 돈이 무엇이길래 그돈 몇푼 때문에 수년 고생하고 이제 곧 고향으로 돌아갈 귀중한 한 생명을 그렇게 쉽게 죽여버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4. 무료의료봉사단이 오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국민이면 무료치료가 아닌가 하고 의아해 했더니 미국 3억 인구 중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4900만명으로 국민의 6분의1이 보험이 없다고 한다. 아마 매달 내는 의료보험비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의료보험에 참가 안하면 엄청난 치료비를 내야 하는데 평민백성들은 담담키 어렵다고 한다. 치과가 제일 비싸다고 하는데 한 미국 녀성이 두차례 치과진료에 5천달러를 썻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텔레비에서 보았다. 그만하면 의료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만하기도 할것 같다.    5.《차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는 설이 돌듯이 대낮에도 차를 도둑질한다. 한 한인아저씨가 길옆에서 차바퀴를 손질하려고 빼고 있는데 어떤 흑인남정이 다가와서 다른 한 차바퀴를 자기가 빼려고 하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도둑질 할바엔 네가 하나 가지고 내가 하나 가지잔다.《아니, 이건 내차다! 》라고 소리치니 그놈은 그저 픽 웃고 가버리더란다.    6. 뉴욕시-5AV거리의 어느 한 곳에서는 매일저녘 10시부터 새벽4시까지《미인라체쇼》를 하는데 20$만 내면 온 밤을 그곳에서 감상할 수 있단다. 어중이떠중이 방랑자들은 만날 그곳에 찾아가서 한쪽으로 보면서 즉석에서 자위행동까지 한다고 하니 이 어디 인간의 창피나 양심을 론할 수 있는 곳인가. 이런 장소와 영업을 공공연히 허용하는 것도 우리와 다른 자본주의 사회의 한 어두운 측면이 아닌가 싶다.    7. 미국은 이미 비만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고 한다. 현재 미국인의 3분의 2가 비만상태이다. 지난해 조사에 의하면 50개 주에서 절반은 비만률이 상승하였고 비만률이 떨어진 주는 하나도 없었다. 보건의료비의 25%이상이 비만관련 질병(당뇨, 고혈압, 심장병)에 씌이고 있으며, 10-17세 청소년 중 30%이상이 과체중이라 한다. 아이들은 텔레비와 컴프터게임에 몸을 움직이는 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더우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 고기덩이를 삶고 구워서 칼로 베여 밥먹듯 먹는 미국인들의 음식습관이 전 민족 비만의 근원인듯 싶다.    8. 캘리포니아주 한인들의 잇달은 경찰총격 과잉진압으로 인한 살인사건은 한인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살배기 딸애를 태우고 운전하던 한인 실버녀성이 경찰의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에 뒤이어 한국계 대학졸업생(시민권자 조셉 24세)이 종교에 빠져 우울증 증상으로 3일째 단식하자 가족이 신고했는데 경찰이 출동하여 방을 부수었다. 한씨가 소형칼을 들고 반항하려 하자 경찰은 즉시 총으로 사격하였다는 것이다. 그래 부모가 아들을 살리려 했지 죽이라고 신고했겠는가? 위의 두 피해자들이 그렇게 즉시 경찰에게 총살당해야 할 큰 죄를 졌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도 힘든 사건들이였다.     9. 미국 전 사회에 만연해 있는 소송의 난발로 모두 엄청난 보험료를 지불하고 있었다. 의사들의 의료과실 보험료가 월 1-2만$라 하니 이를 미봉하려는 의료비가 자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복지센터 간호사들의 매시간 수입이 20여$로 하루 근 200$나 벌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했더니 모두 의료보험에 참가하여 제하는 비용이 엄청나다 한다.      이상으로 몇번에 나누어 내가 미국 땅에서 보고 들은 이모저모를 적어 보았다. 문학적이거나 체계적인 가 아니라 제목그대로 그저 일 뿐이다. 위 글들에서 리용된 통계수자들은 모두다 금년 3월부터 8월까지 미국 뉴욕의 신문 잡지와 려행홍보물에 출판되고 공포된 자료들임을 밝힌다. 독자여러분들이 우리와는 등지고 있는 지구 반대쪽의 또 다른 한 세상을 료해하는데 저그마한 참고라도 되었다면 이에 만족할 다름이다. 그리고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선의적인 댓글들로 많은 보충을 하고 수정도 하여 주신 해내외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E-mail : jiang1127@hanmail.net)   황금빛 찬연한 의 한 모퉁이
11    내가 본 미국땅의 이모저모 (5) 댓글:  조회:7600  추천:58  2009-12-18
        내가 본 미국땅의 이모저모 (5)                                                               글 / 강순화   상업정신: 1.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유태인이라고 한다. 미국 전체 인구의 2%(600만)가 미국 50대 기업중의 17개를 차지하고 세계 7대 메이저 석유회사 중 6개가 유태인계 소유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의 아세아계 평균 가구 소득은 6만 6.103달러로 미국내 인종그룹 중 가장 높다. 유태인들은 하루 25시간 로동하고 한국인들은 하루 26시간 로동한다고 한다. 그와같이 악착스레 일한다는 뜻이다. 1965년 10월 죤슨대통령이 새로운 이민법을 반포하여 미국은 구라파 백인위주의 이민사회로부터 비구라파 비백인위주의 이민사회로 전변되였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지금의 한인1세들은 바로 그때에 대거 이주해 온 이민들이였다. 그들은 처음 이 아메리카대륙에 건너와 말을 모르고 법을 몰라 온갖 기시와 고생을 밥먹듯하며 싸우고 일하여 오늘의 가계들을 이루어 온 것이다. 그리고 뉴욕 플레싱에서 반가웠던 것은 그 미국 땅에 우리 연길의 <진달래식당>과 <풍무꼬치구이> 집이 큰길 옆에 붉은 간판을 환히 걸고 있는 것이였다. 한번 찾아들어가 보아야지 하는데 마침 돌아 올때 친구들이 그 식당에서 나를 환송한다고 연회를 베풀어 맛있는 연변음식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음식맛이 고유의 우리맛이여서 좋았고 더우기 타향살이 설음을 안고 사는 우리 동포들의 따뜻한 사랑방이 되어주어서 더욱 좋았다. 주말이면 자연히 우리 조선족 동포들의 모임터가 되어서 한방 가득이 모여 서로 반기고 권하고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워가는 정에 넘치는 풍경을 흔히 볼수 있다한다. 뉴욕 맨하탄의 32가는 선에서 말하다시피 번창한 상업과 서비스업의 시장으로 되었다. 그런데 어쩌면 민족의 근성이라할가 한인 가계들은 서로 경쟁하고 경계할 뿐 서로 단합하지 못하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원래는 한인가계들로 꽉 찼던 플레싱거리가 지금은 중국인들에게 다 먹히고 겨우 몇 골목밖에 남겨지지 않았다. 몇해 아니면 그 골목들도 사라질듯 싶어 서 서글프다. 듣는 말에 의하면 한상들은 10년이면 흑인들 속에 들어가 장사하고, 백인들 속에 가서 산다고 한다. 흑인들은 이런 한인들을《흑인동네에서 돈을 번 노랑 병아리들이 백인동네에 가서 돈을 펑펑 쓴다》고 불만한단다. 2. 미국 뉴욕에 간 중국상인들은 대부분이 대만이나 중국남방 복건성에서 건너간듯 하였다. 거리 도처에는 대만 혹은 복건인들의 모임광고와 활동장소들이 있었고 당인거리에 세워진 민족영웅 림측서동상도 복건인들이 세웠다고 한다. 중국상인들은 우선 단결심이 강하여 한사람의 힘이 안되면 여럿이 돈을 모여서라도 한개 빌딩을 몽땅 사서 타민족가계들을 밀어내고 그 지반을 차지해 버린다고 한다. 플레싱이 한국거리에서 중국거리로 변한것도 대만과 복건상인들이 단합하여 한인거리를 점령하였기 때문이였다. 지금은 온 시내가 중국인 천지이다. 중국은행, 중국상점, 중국식당, 중국병원, 중국마켓, 중국여행사, 심지어 지하철 매표구 컴프터 장치에까지도 중국글이 들어있어 영어를 못하는 중국인들께는 매우 편리하였다. 그래서 같은 미국 땅에서라도 로산젤레스 코리아타운이 한국어만 알면 살 수 있듯이 뉴욕의 당인거리와 플레싱만은 영어 한마디 몰라도 중국인들에게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수 있는 곳인것 같았다. 3. 뉴욕관광을 하면서 나는 중국인들의 경영정신에 또 한번 놀랐다. 내가 중국여행사에 신청한 관광일이 마침 주중이라 우리 차에는 두 중국류학생과 산동제남대학에서 온 녀선생 한분에 나까지 모두 4명 관광객 뿐이였다. 중국 같으면 차가 차지않아 후에 가라던지 취소하던지 할것이지만 그들은 아니였다. 12명이 타는 소형 버스에 4명 고객 뿐 이어도 가이드는 똑같은 서비스로 수많은 관광지들을 열심히 설명해 가면서 <뉴욕하루관광>을 순리롭게 마친 것이다. 정말로《1$라도 벌려하며》적게 벌지라도 자기들 회사의 신용과 의미지만은 목숨처럼 지키는 그들의 경영정신은 참으로 탐복할만하였다. 4. 또 희안한 것은 한인 택시기사 90%가 불법 운영이라 한다. 매달 400달러씩 내야하는 영업세를 회피하기 위해서란다. 택시기사 아저씨들은 자기들의 고급 자가용차를 가지고 보증금 2000$-3000$를 내고 기사들끼리 모여서 매일 24시간 련락을 끈지 않고 영업하는데 중계료 100$를 제하고도 한달에 3000-4000$는 쉽게 번다고 한다. 한 택시기사 부부는 함께 한달에 만달러도 벌었다고 하며 하와이 같은 유람지에서는 혼자서도 한달에 만달러는 잘 번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에게 걸리면 첫번에는 400$, 두번째는 1000$의 벌금을 내야하며 세번 걸리면 차량을 압수한다고 하나 택시패쪽을 걸지 않은 수백대(뉴욕에만 500대)의 콜택시들이 밤낮으로 온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전화 한통만 걸면 즉시 달려오는 코레안택시들이 우리고객들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서비스업이 되고 있었다. 차에 앉아 택시기사아저씨들과 이야기해 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공항이 제일 불안전한 곳이라 한다. 일단 돈을 주고받는 것이 경찰에게 발각되기만 하면 붙잡히니 말이다. 그런데 마음씨 고운 당지의 손님들은 곧 알아 차리고《택시비가 아니다. 내가 고용한 운전사한테 휘발유 값을 준다.》고 하면서 변명도 해주고 녀성손님일 경우《이분은 나의 누님입니다. 공항에 전송해요.》라고 하면 경찰은 두말없이 물러간다고 한다. 그들로의 영업방식은 이미 이렇게 굳어져 있었다. 5. 근년의 한국인 무비자 입국 정책은 많은 한국 로무일군들의 미국입국을 초래하였다. 우선 허용된 3개월의 체류를 마치고 돌아갔다가 재 입국시에는 더 긴 시간의 비자가 나올수 있다니 말이다. 또 중국조선족 아줌마들과는 달리 한국녀성들은 산후조리, 맛사지, 네일 등 업체에서 여러 가지《자격증》을 따 가지고 오기에 취직에서도 조선족만 우세였다. 때문에 한국인의 미국 무비자 입국은 한국 로무인들과 극소수의 한국국적을 취득한 조선족 아줌마들에게는 좋은 기회이나 다수의 재미 조선족동포들에 한해서는 취업의 길이 더 졻아진 셈이다. 한국 베이비시터(애기보기 한국할머니)들의 매달 공자도 2000$ 좌우되니 반년이면 그 할머니들도 만달러씩은 거의 벌어가군 하였다. (다음에 계속이음)
10    내가 본 미국 땅의 이모저모(4) - 강순화 댓글:  조회:7898  추천:78  2009-12-14
     내가 본 미국땅의 이모저모 (4)                                                                                                                                              글 / 강순화    미국 뉴저지의 한 개인 자택    시장경제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   (1) 불경기를 모르는 실버 비즈니스가 인기였다. 지금 미국의 65세이상 시니어 인구는 14세 미만 인구보다 많다, 인구 10명 중 한명이 65세 이상이고 미 전국적으로 3700만명, 즉 12%가 로년층이며 85세 이상은 53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미국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의 전망이 밝았다. 례하면 노년 데어케어 센터, 차량편 제공 교통 서비스, 여가시간이 많고 경제도 허용되는 노인들에 한한 여행사업, 건강식품 판매사업, 또 대다수 로년층은 수십년 투자로 인해 재산이 많이 쌓인 상태이므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원함으로 로후를 위한 재정플랜 금융서비스도 인기라 한다. 지금은 시니어라고 컴맹으로 생각하면 실수란다. 그들의 온라인 쇼핑 년간 소비액이 70억$이며 로인들도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의 자동차를 선호하고 있었다.    미국내 로년층들은 머니마켓 계좌의 7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년간 소비액은 1000억$이고, 새차 오너의 41%가 시니어층이였다. 병원도 처방약 환자의 74%가 로년층이며, 약국 고객의 51%, 고급여행자의 8%가 로년층들이 차지한다고 한다. 하여《비즈니스는 12%의 인구를 잡아라》고 한다.   (2) 미국의 대학들이 경기침체기에 비싼 학비로 고생하는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었다. 오하이오주 우스터 대학은 올여름에 작년보다 3배 많은 200여명 학생들에게 창문닦기, 나무심기, 교내 식물원 등 일자리를 제공하여 학생들의 재정난을 해결하고 전학하거나 퇴학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다. 한인들이 경영하는 식당이나 상점들에는 시간별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이 흔하게 보였다. 한 한인 주방장의 말에 의하면 그애들이 월급보다 서비스 팁을 더 잘 받으므로 매주 몇백달러는 문제없이 번다는것이다. 방학때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4000달러 좌우씩 벌면 3만7천달러에 달하는 학비에 좀 보탬이 된다고 한다.     생활과 복지: (1) 미국 시민권자로 65세이상이면 로인아파트를 신청할수 있는데 그 렌트비는 100-300$밖에 안된다고 한다. 보통 아파트 렌트비가 1500$좌우 되는데 비해 매우 싼 가격이다. 그리고 매 사람의 평생 공적에 따라 로후 생활보조금이 나오는데 많은 사람은 2000달러좌우도 되지만 (변호사직업 같은 경우) 최저로는 700-800달러 된다고 한다. 그 돈으로 아파트 랜트비를 물고 생활하고도 나머지가 있어 건강한 분들은 자주 국내외 여행도 한다고 한다. 만약 로인들이 분배받은 아파트 층계가 가파로워 오르내릴때 넘어지기나 하면 국가에 소송하는데 거의 100%가 성공하여 2-3만달러의 보조금을 받는다고 한다. 한인 거리인 뉴욕의 플러싱에도 노인복지센터가 있어서 무료급식, 생활상담, 노래교실, 컴프터, 영어학습, 스포츠 등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2) 무릇 60세 이상이면 교통비를 40%밖에 받지 않는데 대국다운 것은 이런 대우를 자기 국민 뿐 아닌 외국인들에게도 다 허용하고 있는 것이였다. 나도 60이 넘었으므로 누가 알려 주어 기차를 탈 때면 매표구에서《시니어시리즈 디켓!(로년우대권 주세요)》하면 더 묻지도 않고 또 그 무슨 여권같은 증명을 보자는 말도 없이 우대표를 끈어 주는데 뉴욕 맨하탄에서 뉴저지 오렌지까지 본래 5$인 차표도 2$만 받으므로 주말 휴식때마다 오가면서 항상 기분 좋은 혜택을 받군 하였다.   또 의료보험에 참가한 시민권자는 무료 검진을 받을 수 있는데 의사 검진은 반드시 수일 전에 예약해야 하였고 또 수시로 부를 수 있는 개인지정 의사와 상담사, 변호사도 있었다. 장기적인 의난병은 무료검진 한다는 광고가 항상 신문에 실렸고 장애인 보험에 참가하면 평생 무료로 간호하고 치료비, 수술비도 무료로 되였다.   지난여름 미국에 신종풀루(H1N1)가 갑자기 확산될때 뉴욕시장은 직접 텔레비 방송을 통해 시민권자건 아니건 상관없이 모두 무료로 치료할테니 증상이 보이면 즉시 병원을 찾으라고 호소하였다. 이민자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고마운 목소리였다. 또 만약 시민권자가 모종 수술로 하여 일할 수 없을 때에는 병이 낳았다는 진단을 받을때 까지 매주 500$의 기본생활 보장금도 지급하고 있었다.     생육의 천국: 그 어느나라에서 왔건 미국땅에서 반년이상 거주하고 생육하면 그 아이는 무조건 미국 국적을 가질 수 있고 18세 까지의 양육비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매 아이에게 월 300-500달러의 생활비가 나오고 학교에서는 점심을 무료로 공급한다. 하여 미국 서쪽에 잇대인 멕시코 사람들은 미국을 안방나들듯 왕래하면서 애들은 5-6명씩 낳아서 그애들이 타는 생활비로 어른들이 살아간단다. 그들은 금방 국경을 건너와서는 집단수용소처럼 침대 10개씩 놓고 매인 100달러씩 받는 강당같은 건물을 세맡아 무리로 살다가 일단 짝을 무으면 따로 나가서 애부터 낳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자기세대가 불법체류로 인해 이루지 못하는《미국의 꿈》을 이미 합법화 된 다음세대에 기탁하려고《맹렬히》아이를 낳는다고 한다. 또 멕시칸들은 무겁고 어지러운 일을 가리지 않고 잘하며 인권비도 싸게 받으므로 한인 가계들에서는 그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의 스페니쉬 수자는 2003년 270만명으로부터 2008년에는 400만명으로 지난 5년간 50% 증가하여 이미 흑인수를 초과하며 거의 백인수와 동등하다고 한다   미국 뉴욕 금융중심 앞거리에서 미국의 주택: 보통 아파트의 값은 40-50만$이고 단독주택은 모두 100만$ 좌우였다. 극소수의 부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평민들은 모두 집값을 나누어 지불하고 있었는데 500평이상의 큰 단독주택들은 매달 3000$좌우의 엄청난 집값을 지불하고 있었다. 단독주택들의 집집마다는 널따란 앞뒤 마당과 뜰을 가지고 있었으며 집주위는 온통 파란 잔디를 펼쳐심고 주일마다 잔디밭을 기계로 다듬는 일이 큰 일과로 되고 있었다. 뉴저지의 산속에 위치한 별장같은 자택들에서는 사슴, 공작새, 다람쥐, 두더지를 흔하게 볼수 있었고 각가지 새들은 주인이 사서 뿌려주는 먹이를 찾아 제집처럼 날아들었다. 밤이면 곰새끼들이 쓰레기통을 뚜지고 길에 나서면 알락달락한 사슴들이 길옆에 멈춰서서 까만 눈을 때롱거리며 행인들을 쳐다본다. 아침에 일어나니 앞마당에 공작새 네 마리가 날아와서 아릿다운 깃을 부채처럼 활짝 펴고 끼륵끼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너무도 신기하여 나는 얼른 그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 이곳에서는 전혀 볼수 없는 자연과 인간이 평화로이 공존공생하는 생태환경이였다. 꽃나무속의 단독주택들은 그 다양한 모양새와 꾸림새로 아름다운 화원을 이루었고 집과 집사이가 50m도 더 떨어져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보였다.    최근에는 경기침체로 이런 고급주택들의 구매자가 감소되고 오피스 렌드도 지난해 동기 보다 44%나 하강되였다고 한다. 뉴욕지대에서 일하는 조선족 동포들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과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플레싱이라는 거리에서 집을 세맡고 있었다. 보통 일터에서 지하철로 한시간 정도되게 멀지만 집세 값이 뉴욕중심 보다 싸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는 중국계 이민자들처럼 플레싱 다운타운과 한인 노던블러바드 상권이 련결되는 지점에《중국조선족타운》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것이다. 새벽이면 아파트 옆의 넓다란 운동장에 30-40명의 조선족 남녀들이 모여서 운동도 하고 서로 일자리정보도 교환하면서 한고향 친구들처럼 지내고 있었다. 조선족들은 보통 한달에 집세 1000-1500$씩 하는 아파트를 5-6명이 함께 세맡고 침실은 나누어 쓰며 주방과 화장실은 함께 쓴다. 재미있는 것은 세맡은 사람들이 산지사방에서 모이므로 남자도 있고 녀자도 있지만 주인은 그것을 가리지 않고 받는 것이다. 처음엔 서로 좀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활에 익숙해지고 또 한집에서 살면서 정도 들고 혹은 짝도 무어지는듯 하였다. 우리 이곳에서는 볼수 없는 괴상한 풍경이다.     생활비: 미국에서의 생활비는 수입에 비해 아주 싼 편이고 특히 부식품 가격이 아주 저렴하였다. 보통 로동자의 한달 최저 수입이 2000달러 넘는데 비하면 쌀 10kg에 10여$, 밀가루 1kg에 2-3$, 소고기 1kg에 10$좌우, 닭고기 한근에 2-3$, 수박 하나에 2$, 감자 1kg에 1.8$, 고추 한 도시락 1.5$, 상추한묶음 1$, 닭알10개에 1$ 등으로 한달 생활비가 2-300달러면 충분하다고 한다. 특히 도시마다 널려 있는 99센트(nine nine cent)상점들에서는 식품을 포함한 모든 물건들이 세금까지 합하여도 1달러 좌우이므로 평민백성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었다.    주말에 고된 일터에서 돌아오면 친구들끼리 노래방에 가서는《고향이 그리워도...》,《나그네설음》등등 망향가들을 밤새껏 부르며 타향에서의 설음을 달래고 나오면 100$, 두셋이 조선족 음식점을 찾아가 채 몇개 차려 먹으면 70-80$, 된장찌개나 칼국수같은 간단한 음식은 일인분에 10-12$, 택시비는 거리내에서 5-10$좌우, 빵 하나에 2$, 커피 한잔에 1$, 광천수 한병에 1$씩 하니 미국에서의 1달러 가치는 우리 이곳의 인민페 1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것이다.                                                                (다음기에 계속)                   뉴욕 맨하탄당인거리 한골목  
9    내가 본 미국 땅의 이모저모 (2) 댓글:  조회:6026  추천:68  2009-12-05
                   내가 본 미국 땅의 이모저모 (2)                                                                 글 / 강순화     미국정세의 일각 : 대통령이나 상하원위원은 물론 지방정권 대표까지도 온 국민이 투표로 선거하는 민주선거방식은 한국과 흡사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나 지방의 정권선거경쟁에 한인들과 중국계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었고 또 성공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이였다. 2005년11월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한국계 최준희씨(34세)가 12년간 재직해 온 현직시장 후보를 1000표의 차이로 따돌리고 60%이상의 백인인구를 가진 뉴저지주 에디슨시에서 첫 한인 시장으로 당선된 것은 그 실례의 하나이다. 그 외에도 정계에 뛰여 들어 활동하는 세계 각국의 이민출신들이 적지 않다. 색다른 인종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이민대국이라는 특색을 다분히 표연하고 있었고 자본주의 선거민주화의 한면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63%의 지지률과 그 인기는 력대의 그 어느 대통령만 높았다. 특히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가 지난 8월 펴낸 현대속어사전에 오바마(obama)가 형용사로 오르기까지 하였다. 그 해석은 멋지다(cool)혹은 근사하다(rad)였다. 미국 젊은이들은《 넌 참 오바마스럽다(you are so obama)》라고 하면 최고의 평가라고 한다. 학생들은 또 오바마를《미국 최초의 힙(hip. 세련되고 유행을 선도하는)》한 대통령으로 꼽는다.    뉴욕타임스와 ABC, CBS, NBC, PBS 등 메이저 언론사 기사 1261건을 분석한 결과 오바마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기사 42%, 비판적 기사 20%인데 전임 대통령 클린턴은 우호적 기사 27%, 부시는 22%인데 비해 너무나 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하여 일부 언론들에서는 오히려 지나친 찬미가 아닌가? 비판기능의 소홀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보이고 있었다.   이밖에 힐러리 클리턴 국무장관의 유려한 연설이나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매너는 여론계의 호감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클리턴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조선 평양을 방문하고 그 행차로 인하여 4개월간이나 억류되였고 12년 판결까지 받았던 미국적 녀기자(중국계와 한국계)가 조선법정에서 석방되여 자기나라 가족의 품에 돌아오게 된 사건은 온 나라를 들성 할 만큼 국민의 흥분을 자아냈다.                 미국총통 오바마부부 밀랍형상 앞에서 기념촬영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서만 방송되고 있는 한국어 방송은 저녘 8시부터 10시까지였는데 방송의 80% 이상은 기독교 설교였고 나머지는 한국뉴스와 는 프로, 그리고 일일드라마 을 방송하고 있었다.   중국어방송은 신당인텔레비(新唐人電視)로 저녘10시부터 12시까지 였는데 법룬공에 대한 찬미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중국대륙에서의 부패한 일들이나  중국 국가지도자와 정책을 비방하는 프로들이 대부분이고 12시 이후에야 중국의 중앙방송 제4널을 전파하고 있었다.《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코큰 사람들이 사는 지구 반대쪽 미국땅에서 우리말 방송이나 중국어 방송을 듣는다는 것은 어두운 밤길에 밝은 등불을 보는것 같이 기분이 좋았고 또 중국어를 모르는 미국사람들 보기에도 신나는 일이였다. 다행이 내가 취직하여 거주했던 뉴저지《레쥬드(Ledgewood)》복지센터는 백인지구이지만 위의 텔레비프로들을 다 볼수 있었다. 나는 밤이면 시간을 맞춰가며 유익한 프로들을 골라보았고 특히 중앙방송제4채널로 대륙의 소식도 제때에 잘 알게되여 타향에서의 고독과 외로움도 달랠수 있었다.                     불야성을 이룬 카지노도시 라스베거스의 밤풍경    카지노(CaSiNo): 지난해에는 미국서부관광의 중요한 코스로 세계적인 카지노 도시 라스베가스에 가 보았고 금년 미국동부에서는 아틀랜드 시티 도박장을 참관하였다. 나이가라폭포에 가서는 또 나이아라강 맞은켠 캐나다 땅에서 불야성을 이루고 영업을 하는 카지노 고층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외국인들은 비자가 있어야지만 미국인들은 비자 없이도 캐나다의 카지노장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1978년 이후 도박이 합법화되면서 행운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밤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전국 지어 세계각국에서 모여든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카지노에서 뿜어대는 불빛으로 온 시가지 전체가 동이 틀때까지 불야성을 이룬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다가 잃으면 분해서 일어 못나고 따면 더 따보려는 부자의 꿈 때문에 일어나지 못한다는 자석같고 마약같은 자리가 바로 카지노이다.   나는 주말휴식에 한번 카지노에 가 보기로 작정했다. 나의 하숙아파트가 있는 뉴욕 플레싱에서 승차권 10$면 두시간반 거리의 카지노에 갈수 있었다. 아침 일찍 지정지점에 가니 시간마다 출발하는 대형버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차량마다 사람들이 꽉 차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둘러보니 남녀로소로 부동한 년령층 사람들이 다 있었다. 카지노에 도착하면 차에서 내릴때 구폰 한장씩 주면서 도박에 참여하게 한다. 도박에 전혀 외항인 나는 그저 카메라를 들고 사처로 돌아다니며 노랑머리 흰 얼굴 파란 눈동자들이 그 오색찬란한 컴프터 화면속에서 쉴새없이 오르내리는 숫자에 정신을 팔고 있는 관경들을 찍어대며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한 한국아저씨가 옆에 와서 놀지 않으려면 구폰을 팔라고 하였다. 나는 얼른 좋아라고 그가 주는대로 20$를 받고 팔아버렸다. 후에 안 일이지만 사실 그 구폰으로 점심도 먹을 수 있고 또 가격이 실제는 40$라는 것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뻐스에서 이야기들 나눠보니 옆좌석의 대만할머니는 500$를 잃었다하고 앞좌석의 중국청년은 400$를 잃었다 하며 건너 좌석의 한국아주머니는 돈신부럼을 왔다가 반나절 놀았는데 300달러를 땃다고 하였다. 온 차안의 40여명중 기분좋게 웃는 사람은 한두명도 안되고 모두 피곤에 지쳐 있었으니 그날도 카지노주인이야 톡톡히 딸라를 벌지 않았겠는가? 코큰 부자들이 몇천몇만 달러씩 잃고 따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겠으나 못사는 우리 조선족 동포들이 큰돈 들여 그 머나먼 아메리카 땅에까지 가서 카지노에 빠져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였다. 우리 동포들이 미국가서 처음 1-2년은 돈이 아까워 그런 곳은 념두에도 없다가 한 3년 지나면 버는 돈에 비해 카지노에서 잃는 돈이 별로 큰것 같지 않아 휴식일이면 줄창 카지노에 밖혀 산다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 함께 주숙하고 있는 한 녀성친구는 내가 오기 전 주일에 3000달러를 잃었다면서 그 돈을 도로 찾겠다고 더 정신없이 다니고 있었다. 내가《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처넣고 언제 돈을 모아 집에 가겠는가》고 하니《돈만 벌면 무슨 재미에 살겠습까?》라고 한다. 일부 남성 도박군들이 한주에 1000달러쯤 잃는 것은 보통이라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에 계속) 
8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 댓글:  조회:5272  추천:46  2009-11-17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                                                                       강 순 화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아름다운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수양에 있습니다. 즉 선천적인 조건보다 후천적으로 배양된 풍격과 지혜와 능력의 종합적인 체현이 엄마의 매력이지요. 그럼 아래에 몇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 해 볼가요?     첫째로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현대적인 것입니다.    새 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사회발전과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거대한 변화와 충격을 수시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계산기, 인터넷, 정보화, 지구화... 등등의 현대적인 감각은 우리들의 생활에 놀라운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는 격변하고 가정은 변화하며 사람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새 시대의 어머니 형상은 전통적인 것만 고수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상인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가치관으로 새 사물을 접수하며, 새 세대의 관념과 행위에 마주하여 그에 새롭게 도전는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어머니 상인 것입니다.            둘째로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드넓은 마음입니다.    새 시대의 엄마라면 우선 아이들을 자신의 자식뿐이 아닌 사회의 한 일원으로 보아야하며, 아이는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이며 엄마의 의무는 오직 아이의 특점과 사회의 수요에 맞추어 아이 스스로가 앞길을 개척해 나가도록 힘껏 밀어 주는 것입니다. 엄마의 책임은 아이에게 성장환경과 학습조건을 창조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학교뿐이 아닌 넓고 큰 사회적 공간에서 노력하고 분투하며 발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배움의 길에서 고생을 겪더라도, 또한 모종 원인으로 성적이 잠시 떨어졌더라도 아이를 책망하지 말고 항상 고무 격려해 주며 그 어디에서 넘어지면 그곳에서 다시 일어설 줄 알도록 인도하는 대범한 모성애인 것입니다.    셋째로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평등성인 것입니다.    새 시대의 엄마라면 항상 웃어른의 신분으로만 아이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태도로 아이를 대하고 아이들의 독립과 자유를 존중하며 아이들의 의견과 요구를 내심히 듣고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희망대로 자신을 발전하게끔 도와주는 것입니다. 엄마는 언제나 긍정적 사유와 발전적인 안광으로 아이를 보고 그들 몸에서 반짝이는 개성을 일찍 발견하여 키워줄 줄 알아야 합니다. 정보의 다원화와 각종 매체의 대량적인 전파는 아이들의 정보지식이 부모를 초과할 때도 있으므로 항상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그들한테서도 모르는 것은 허심히 배우는 태도를 가지며 함께 배우고 함께 진보하며 함께 성장해 가려 하는 것이 현시대 엄마의 새로운 정신 경계(境界)인 것입니다.    넷째로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지혜로운 것입니다.    새 시대의 엄마들은 자신의 매력을 가꿀 줄도 알고 창조할 줄 아는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한 부단한 학습으로 모든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지식과 방법을 배우며,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적응되는 사상과 주위 사람들의 고귀한 품성을 자신의 몸에 용화시켜 그러한 사유와 행동으로 자녀를 교육하며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터 그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훌륭한 가정환경을 창조하고, 과학적인 방법과 규률을 부단히 모색하며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능력과 지혜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강한 의지력 입니다.    엄마는 항상 자녀의 정신적인 기둥이지요. 천변만화하는 세상살이에서 사회에 어떠한 풍랑이 일던지, 가정에 어떠한 변화가 생기던지, 생활에 어떠한 좌절이 있던지를 막론하고 새시대의 엄마는 언제나 량호한 심리상태를 유지해야하며 견강한 의지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나가는 모범을 보여 줘야 합니다. 시종 자립 자강하며 과감히 현실을 초월해 나아가는 엄마의 모습이야말로 아이들한테는 가장 설복력이 있는 산 방향으로 되는 것이지요. 속담에 녀성은 약자이지만 엄마는 강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약자”는 현시대의 훌륭한 엄마로 될 수 없습니다.    여섯째로  현시대 젊은 엄마의 매력은 부단한 추구(追求) 인 것입니다.    사업에 대한 추구가 있고 없는 엄마가 창출하는 가정교양의 분위기는 완연히 다른 것입니다. 한 인간의 정조와 품덕、기질은 어려서 부터 가정의 훌륭한 분위기에서 키워지지요.엄마의 사람됨과 가치관 및 인생에 대한 태도는 아이들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사업에 대한 추구가 없는 엄마는 아이들에게 피곤한 사랑부담만 줄 뿐 인생은 오직 자신의 부단한 추구로만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엄마의 꾸준한 노력과 부단한 추구는 바로 그 어떠한 말과 행동으로도 아이들을 감화시킬 수 없는 엄마의 인격적인 매력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엄마의 아름다움이나 젊음이 못해 질수는 있으나 아이들에게 있어서 엄마의 매력은 영원한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그 매력은 더더욱 풍부한 내용으로 자녀들에게 해빛처럼 따스히 비춰주고 이슬처럼 맑게 적셔주며, 마음속에 평생 지울수 없는 락인들을 찍어 줌으로서 그들이 천진한 어린이로부터 성숙된 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 엄마의 힘인 것입니다. 새 시대 젊은 엄마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쌓여지는 소질과 수양의 전면적인 제고 및 그에 따르는 시대적 정신의 부단한 승화는 바로 엄마 매력의 원천입니다.                                    ( 청년생활잡지--2005년 제7기 )                                                                                                               
7    여성의 발전과 평생교육에 관하여 댓글:  조회:5618  추천:36  2009-11-13
        여성의 발전과 평생교육에 관하여                                                      강순화  (연변대학녀성연구중심 연구원)       들어가면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의 흐름은 평생학습의 시대를 열어주고 있다. 교육 령역이 학교교육이라는 제한된 범위에서 사회교육으로의 전파, 그리고 다시 평생교육이라는 광범하고 끝없는 광야로의 발전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바로 정보화시대의 푸른 바다 속에서 무한한 지식을 낚을 수 있는 현시대의 생활에 뜨거운 도전을 느끼고 있다.     평생교육은 태여 나면서부터 일생을 마칠 때까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언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갖도록 하는 공교육의 리념이며 또한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반성하고 개혁하려는 정신이며 더욱 보람되고 열린 삶을 살기 위한 자신의 성장과 사회의 진보를 위하는 교육정신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부지런히 배우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정보화, 세계화의 첨단기술사회에 적응하기 힘들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평생학습이 절실하게 수요되는 것이다. 우리는 배움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와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고 살아가면서 부딫치는 문제들과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一. 평생교육의 기본 개념     평생교육이란 말은 1965년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聯合國敎科文組織)본부에서 개최된 성인교육발전을 위한 국제위원회에서 이 기구의 책임자인 프랑스 --랭그랑(保羅.郞格朗)의 기조론문에 의하여 제기 되였다. 그는 론문에서 평생교육의 개념을 “교육의 전 과정의 생활화, 개인의 전 생애를 통한 계속적인 교육, 모든 형태의 교육의 통합적인 련대조직, 그리고 개개인의 출생으로부터 죽을 때까지의 생의 전 기간을 통한 수직적 통합과 개인 및 사회생활의 모든 국면을 포함한 수평적 통합을 포괄한 교육적 리념”이라고 강조하였다. 국제위원회는 그 론문을 검토한 후 현대적 의미의 평생교육의 개념을 수립하고 교육개혁의 지도 리념으로 중시하여 국제적으로 보급하도록 하였다.     그후 평생교육은 1996년 유네스코의 21세기 특별위원회 보고서에 반영되여 세계 각국의 모든 사람을 위한 기초교육과 평생교육체제로의 개편으로 기조를 삼게 된다고 하였으며 “평생학습의 개념은 21세기를 여는 열쇠이다”, 평생교육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움, 알기 위한 배움, 실천하기 위한 배움,  존재하기 위한 배움”이라고 하였다.     1995년3월18일 반포한《중화인민공화국교육법》제11조에서는 국가는“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하며 각급, 각류형의 교육발전을 촉진하여 평생교육 체계를 건립하고 완선화해야 한다” 라고 규정하였다. 특히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래 중국 특색의 평생교육체계를 가지는 것은 하나의 긴박한 임무로 되였으며 이것은 교육개혁과 발전의 방향이며 종합국력을 제고하는 관건으로 되였다.         二. 녀성 평생교육     녀성 평생교육도 위 개념에 준하여 정리하면 “녀성을 대상으로 녀성의식을 함양하고 능력과 자질을 개발하여 자아실현을 도모하며, 평등, 평화, 발전을 구현하는 사회를 이루어 갈수 있도록 하는 정규학교교육 이외의 모든 조직적인 교육활동”을 말한다.     녀성 평생교육은 녀성의식교육, 직업기술교육, 사회교양교육, 학력인정교육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어느 내용도 모두 녀성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기초적으로 우선 녀성의식을 가질 때 녀성은 자신의 직업을 탐색하고, 직업활동을 할 때도 자신감 있는 녀성으로서의 가치를 높일수 있다. 또한 녀성의식을 가질 때 사회 교양교육과 학력인정 교육의 필요성도 느낄 수 있으며 더욱 명확한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체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많은 사람들은 우리 녀성들의 삶의 현장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 질 것을 예견하고 그에 따른 대처 방안과 수행되여야 할 많은 교육과제들을 찾아 왔다. 녀성 평생교육에 관심을 두고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 연구가,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속출하였으며 또 이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녀성평생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천속에서 이미 많은 성과들을 거둬 왔다.     국내외 먼 실례를 제외하고라도 우리 신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평생교육의 성공적 실례는 너무도 많은 것이다. 우선 우리 연변대학 녀성연구중심에서 발기한《직업녀성신세기문화교육연구반》은 국외에서 의 직업녀성 평생교육의 교학모식을 도입하여 1999년10월에 개학하였는데 이미 5년이란 교학과정을 거쳐 왔고 200여명의 녀성 기업가, 공무원, 교원, 직원, 경영인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규정한 학업을 마치고 연변대학 총장이 서명한 수료증을 발급받았다. 이 연구반의 교학 내용에는 기업문화, 경영학, 민족문학, 녀성미학, 심리학, 교육학, 외국어, 컴프터, 예술교양 등 다양한 학과들로서 학원들의 지식면을 넓이고 직업녀성들의 문화적 소질을 한층 제고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다음으로 우리 연변대학민족문화교육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회교육과정도 훌륭한 평생교육의 일례인 것이다. 1995년8월부터 금년9월까지 이미 열한기의 학원, 800여명을 교육시켰으며 그중 196명이 원만한 학습과정을 마치고 연변대학 민족문화교육원 수료증을 발급받았다. 주로 특강형식으로 된 이 사회교육의 내용을 보면; 국내외 정치시사, 조선민족력사, 가정법률지식, 조선민족교육, 혼인가정교육, 녀성심리학, 음식건강상식, 청소년 성교육, 전화상담 리론과 실제 등 비교적 실용적인 주제로서 학원들의 환영과 사랑을 받아 왔다. 이런 사회교육이 바로 녀성 평생교육의 주요과제로 되여 녀성들의 사회적 위상을 부단히 높이고 있으며 녀성들의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에 새로운 변화를 부여하고 있다.         三. 평생교육의 방법     모든 교육활동은 어떠한 교육방법을 선택하여 어떻게 교육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하는가에 따라 그 교육의 효과와 성패가 좌우지 된다.      성인의 평생교육에는 성인이 갖는 여러 가지 상황, 경험과 문제의 다양성에 다라 다양한 방법들을 융통성 있게 응용할 수 있다. 그 특성면에도 교육대상이 다원적이며 년령, 학력, 직업, 직위, 경제적 배경, 학습동기, 참여 의도의 다양성,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간의 수평적인 상호관계 등이 학교교육과는 판이한 점이다. 따라서 그 방법도 부동한 것이다.     첫째, 평생교육은 교육시기부터 교육의 장소, 교육대상, 교육체제, 교육과정, 교수와 교재 등에서 학교교육의 폐쇄성과 규칙성을 떠나 보다 개방적이고 자률적이며 비 규칙적 교육요소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둘째, 평생교육은 타인의 강요나 외부의 압력과 요구에 의해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자원적 의지로 자기 주도적인 학습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학교교육은 준비교육이고 미래지향적인 속성을 지닌 것과 달리 평생교육은 현실 지향적이고 실용적이며 즉시적인 적용가치를 지니는 교육이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현재 사업과 생활 중 본인의 수요에 의해 배우는 것이 특징이다.     넷째, 학교교육이 비교적 일방적이고 지시적, 명령적 학습과정이라면 평생교육은 원칙적으로 상호학습 즉 모두가 가르치고, 모두가 배우는 인격적 교류를 통한 학습이 중요시 되는 상호학습의 특성이다.     다섯째, 평생교육은 학교교육의 성적 또는 결과중심의 교육과 달리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중시되며 성과에 있어서도 외재적 성과보다 내재적 성과, 즉 학습자 자신의 만족감과 성취감이 훨씬 중시되는 특징을 지닌다.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은 그 평가 척도를 무엇으로 정할수 없는것이다.     여섯째, 평생교육은 자발적이고 비 의무적인 참여에 의한 자원적 학습이므로 무엇보다도 학습자체가 즐거운 일이 되여야 하며 학습자에게 배움을 통한 내적만족과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학습생활의 만족감과 지적 욕구의 충족을 통한 자아성취감이 중시 되여야 한다.     四. 녀성의 위상과 역할의 변화       21세기는 녀성의 시대라고 하듯이 남성들에게만 기대여 오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녀성들의 사회적 진출의 증가는 그 지위와 위상을 날로 높혀가고 있으며 그 역할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첫째, 여성들은 가정에서의 주부 뿐 아니라 일터와 사회의 각 분야에서 당당한 주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다양한 경제활동들도 벌리고 있으므로 하여 현명한 소비자로, 유능한 관리자로, 그리고 책임있는 경제활동자로서의 가정적 사회적 이중 역할을 훌륭히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 열린 연길시 제10차부녀대표대회에서 표창받은 수십명의 녀성기업가, 녀성강자들의 감명깊은 사적들은 이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둘째, 오래 동안 남성들만의 영역인양 여겨 온 고급 과학연구 분야에서도 남성과 어께 나란히 전문인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녀성 특유의 인내력과 직관, 그리고 섬세함과 침착함 등은 정보화와 컴프터화 시대에서 남성에 못지 않는 연구성과들을 창출하고 있다.      전국 고등학교 100명 명교사 광영방에 연변대학 녀교수 채미화박사가 오르게 된 것도 훌륭한 실례가 아닌가?     셋째, “맹모 삼천지 교” 라거나 많은 훌륭한 이들의 어머니 례를 보더라도 자녀교육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그 중요성을 홀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전 사회인을 대상으로 배우고 가르쳐야하는 교육자적 역할도 녀성들은 달갑게 감당하고 있으며 또 아주 잘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조선족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한국에 못지 않는 세상의 미담으로 알려진 것이다.      넷째, 오염되여 가고 있는 환경과 파괴되는 자연을 살리고 보존시키며 가족과 이웃을 일깨워 주고 민족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주도자로서 그리고 이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녀성들은 솔선하여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교육을 위한 학부모회의에 줄쳐가는 어머니들, 토요일 등산길에서 환경보호를 위해 앞장서 쓰레기를 주어 모으는 중년 녀성들, 이들의 참 모습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다.      다섯째, 모성애와 포옹력을 지닌 녀성으로서 사회의 그늘진 곳에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돌리는 일들을 솔선하여 감당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질병으로 시달리는 늙은 부모들을 보살피는 일이나 사회 그늘에서 외로워하는 로인들을 돌보는 양로원의 아줌마들, 그리고《사랑의 집》소년 소녀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주고 있는 엄마들, 이들 모두가 천사의 마음을 지닌 녀성들이 아닌가?!     五. 녀성평생교육의 전망과 과제     미래는 단순히 다가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며, 창조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 녀성들의 삶도 “시간의 흐름에 맡겨두는 삶이 아니라 녀성들의 의지와 뜻으로 하나씩 만들어 가는 삶”이 되여야 할 것이다. “녀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것은 녀성이 주체가 되여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의도이다. 결국 녀성평생교육도 녀성들이 자신의 자존감과 주체성을 향상시켜 평등하고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녀성평생교육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회는 녀성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고 있고 녀성들도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녀성은 가정, 남성은 사회” 라는 말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관념되고 있으며 녀성들의 사회적인 정체감은 평생교육속에서 날로 이루어 지고 성숙되여 가고 있다.     현대와 미래 사회는 날로 기술이 발전되고 정보처리능력, 창의력, 기획력, 판단력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 질 것이며 업무를 자동화시키고 서비스를 중시하게 되는 등 직업구조에 큰 변화가 올 전망이다. 이에 대비하여 녀성들도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져야하며 이를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새롭게 연구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우선 녀성평생교육 관련 인력을 확보하고 전문성을 제고함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담당자와 수업자 간의 평등의식이 향상되여야 하며 교육시설 및 설비가 확보되여야 한다.     녀성평생교육을 위한 종합정보 싸이트를 구축해야하고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며 관련 조직들과의 련대를 가강하여 녀성들의 교육참여를 진일보 촉진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재정의 확보인데 평생교육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과 사회 각 부분의 협력도 시급히 요청되는 바이다.          나가면서     녀성평생교육은 녀성을 가정에서 직업세계에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의 발전은 녀성의 기능과 역할의 개발을 요구하고 있으며 또한 개인적 차원에서 보아도 인생주기의 변화와 여가시간의 증가에 따라 녀성들의 자아실현 욕구도 제고되고 있으므로 이는 평생교육의 활성화를 진일보 수요하고 있다.     “평생교육은 21세기의 생존 개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21세기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지구적인 녀성교육이 필수되는 때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평생교육은 모든 개개인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간단없는 학습을 통해 개인적 사회적 교육적 필요가 최대한 충족시켜지고, 개개인의 다양한 평생학습이 실현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뒷받침이 되여 지며 그리고 평생교육의 기획 및 제반 여건이 모든 개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는 교육 조건이다.      녀성 평생교육은 우선 녀성 자신의 발전 수요이기도 하다. 그것은 녀성 교육정도의 높고 낮음이 녀성지위의 종합 지표중 관건적 인소이며 사회적 지위 평등을 쟁취하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저명한 민족독립운동가 간디는 “영원히 살것처럼 배우고 래일 죽을 것 처럼 살라”고 하였다. 인간은 오로지 교육을 통하여 인간이 되듯이 인생의 배움은 끝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배움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와 잠재력을 확장시킬 수 있고 래일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오늘의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문화산책 (문화총서7)                                            연변인민출판사 2006년 6월
6    미국 땅에서 만난 연길아줌마 댓글:  조회:5117  추천:67  2009-07-03
            미국 땅에서 만난 연길아줌마    지난 3월초, 미국 로스안젤레스 한미녀성회의 초청으로 나는 난생처음 미국땅을 밟게 되었다. 북경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 태평양을 건느며 13시간, 2만여리를 날아 넘어 도착한 곳은 바로 미국 서부에 위치한 로스안젤레스였다. 인구가 천만이나 된다는, 미국에서는 두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생각밖에 이 도시에는 수십만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코리아타운>을 이루어 살고 있었고 연변을 비롯한 중국 여러 지역에서 건너간 조선족들도 수천여명이나 체류하고있었다.《종로설렁탕》이요,《원조할머니보쌈》이요,《순천고추장》이요 하는 한글간판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코리아프라자 마켓>이며, <나리학교>, <우리은행> 등 한국식 이름의 건물들이 줄을 이어선 거리의 모습은 마치 서울의 종로나 인사동의 한 거리를 방불케 하였다.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 중국 류학생들의 안내를 받아 우리 일행은 한식점에 들어가 뜨끈뜨끈한 된장찌개도 먹을수 있었다. 우리가 려장을 푼 <뉴 서울호텔> 역시 한국인이 경영하고 있어서 영어에 서투른 우리도 불편없이 지낼 수 있었다. 장밤을 비행기에서 자며말며 태평양을 건너 날아왔었는데 로스안젤레스에 도착하니 또 초저녁이였다. 그냥 잘수만 없어서 온밤을 이야기하며 지새웠더니 이튿날에는 흐리멍텅하여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중국과 로스안젤레스는 이렇게 16시간의 시차로 밤과 낮이 바뀌여 있었던것이다.     호텔에서《한미녀성회》와 련락을 취하고 행사일정을 잡고 있는데 우리 일행 중 친척집에 갔던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연변아줌마가 우리를 자기집에 모시려고 한다는 것이다. <미국호텔에서 하루 120달러나 되는 숙박료에 비싼 음식을 사먹으면서 지낼 건 뭐람? 우리 집에 와서 계셔도 되는데... ...> 하고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이튿날 저녘에는 호텔까지 쫓아와서 우리를 자기 집에 데려가려 하였다. 물론 초청측인《한미녀성회》에서 주식배치를 다 하겠다고 하였지만 그 연변아줌마의 따뜻한 인정이 더 마음에 끌리여 우리는 결국 그 아줌마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좁은 모양이다. 정작 만나고보니 그녀는 연길 서시장에서 떡장사를 하였던 녀성이였다. 비록 서로가 생면부지였지만 어찌나 다정하고 살뜰히 대해 주는지 우리는 어느새 언니, 동생하며 친자매처럼 마음 편하게 지나게 되였다.    《한미녀성회》에서 매일매일 빈틈없이 안배한 일정에 따라 여러 가지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보통 밤 10시가 다 되군 하였는데 그녀는 언제나 한밤중인 11시 가 지나서야 일터에서 돌아왔다. 밤은 깊어 가건만 우리는 마치 친자매가 서로 오랜 세월 갈라져 있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밤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인생이야기는 참으로 눈물겨웠다.     그녀는 가난한 농민의 딸로 나서자랐단다. 어려서부터 일로 뼈가 굳어진 그녀는 50대 초반의 나이지만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었었다. 그녀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시골에 있는 한 마을에서 가난에 쪼들리는 생활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꿈은 언젠가는 연길시내에 가서 남 보란듯이 사는 것이였다. 그녀는 스므살이 잡히자 친척의 소개로 연길시교의 한 농촌에 살고있는 운전기사이며 종가집 막내인 최씨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남편은 날마다 뻐스를 몰고 다녔고 그녀는 시가편의 두 시형과 동서를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사철 허리가 휘게 일해도 가을에 차례지는 수입은 별반 없었고 살림은 늘 쪼들리고 궁색했다. 마침내 시장경제의 세찬 바람이 불어쳤다. 망둥이가 뛰니까 전라도 비자루도 뛴다고 촌사람들도 터밭에서 나는 고추며 오이며 감자를 캐 들고 장거리에 나섰다.     <남이 하는 일을 나라고 왜 못하겠는가! 나도 돈을 좀 벌어 보아야지... ... >     그녀는 빚을 내서 서시장에 작은 매대를 임대하고 떡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날마다 한밤중에 일어나 100여근 남짓한 쌀을 씻고 찌고 떡을 빚었다. 방안에는 열기가 후끈후끈하고 시허연 김이 꽉 들어차서 온몸이 물자루가 되였다. 날이 밝으면 떡함지를 밀차에 싣고 시장에 끌고나가 팔았다. 온종일 서서 사구려를 부르고나면 두 다리가 물러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튿날 새벽이면 또다시 어김없이 일어나  이를 악물고 떡을 만들었다. 어느덧 이런 세월도 3년이 흘렀다.     그런데 괘씸한것은 남편이였다. 밤낮 다람쥐 채바퀴 돌듯 허리 한번 펼 사이 없이 일했지만 남편은 출근한답시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기만 했다. 아궁이에 불 한번 지펴주지 않았고 떡함지 한번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만 울화가 터졌다.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하는데 잘살아 보려고 아득바득하는 나를 좀 도와주면 안되는가? 내가 그래 나혼자 잘먹고 잘살려고 이렇게 발버둥이를 치는가? 모두 이 가정, 이 식구들을 위해서가 아닌가... ...>일이 고된것 보다도 남편의 처사에 더 울화가 치밀어 못살것 같았다. 그녀는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고 그만큼 남편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날마다 거친 욕설을 듣고 있느니 아예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가서 뼈빠지게 일해 먹더라도 저 꼴을 보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녀는 마침내 독한 마음을 먹고 90년대 중반에 8만원이라는 거액의 변돈을 꿔가지고 위장결혼을 해서 한국으로 갔다. 그런데 마디마다 옹이요, 갈수록 심산이라더니 한국에서 만난 상대는 감옥을 집처럼 들락거리는 범죄전과자였고 사기군이였다. 같이 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는 거액의 돈을 지불해야 했는데 그 시달림을 5년이나 견뎌내야 하였다. 그녀는 찜통같은 주방에서 온갖 어지럽고 힘든 일들을 혼자 도맡아했다. 아글타글 번 돈은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그놈의 호주머니에 다 들어갔다. 더군다나 만날 때마다 퍼붓는 욕설과 기시는 차마 들어 낼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4년만에 연변에 돌아와 보니 워낙 일하기 싫어하던 남편은 직장에서 물러나 놀고 있었다. 그는 안해가 피땀으로 벌어 보낸 돈으로 매일 흥청망청 먹고 마셨고 웬 계집을 끼고 딴 살림을 하고 있었다. 9살 때 동서에게 두고 간 아들애는 공부를 하지 않아 고중에도 못가고 엄청 많은 학비를 내야 하는 사립학교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학교는 다닌다는 명색뿐이고 날마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몰려다니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였다. 옛날의 따뜻한 가정을 이젠 더는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눈앞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억이 막혔다.     <애들은 엄마만 없으면 공부도 못하고 철도 못 드는가? 아빠라는 인간은 어쩌면 저렇게 정신이 빠져가지고 자기가정 하나, 자기새끼 하나 온전히 건사하지 못할가?>    참으로 환장할 일이였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한국에 갔다. 이를 악물고 뻗치면서 5년간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다행히 빚은 다 갚게 되었다. 하지만 그 위장결혼을 한 <남편>은 그냥 그녀를 물고 늘어졌다. 악에 바친 그녀는 <시집>에 찾아가 <남편>을 신고하겠다고 울러메도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젠 한국을 떠나는 수 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기회만 엿보고 있던 중 그녀는 한 친구의 권유로 6000달러의 거금을 내고 카나다, 멕시코 관광길에 올랐다가 용케도 미국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 정착한지도 어느덧 6년 세월이 흘렀다.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진 그녀는 그 어디를 가나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했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그녀는 얼마간 돈을 모이게 되었고 지난해는 30만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오매에도 그리던 아들애를 미국에 데려와 일식집에 취직시켰다. 지금 그들 모자는 밀입국 비용으로 낸 빚을 갚느라고 매일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그녀는 <나루터술집>의 떡시루같은 주방에서 하루 12시간씩 소고기, 돼지고기를 삶고 닭과 물고기를 기름에 튕기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천하의 엄마 마음은 다 같은지, 그녀는 날마다 그토록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항상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고 연변에 두고 온 놀부남편이지만 그래도 애들 아빠라고 한달 건너 500달러씩 꼭꼭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단다. 그동안 애를 키워준 시집도 등한시하지 않고 가끔 용돈을 보내주고 있고 동서들과도 자주 통화를 한다고 했다. 아직은 손에 쥔 돈이 별로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녀는 지금 그래도 돈벌기 좋은 미국 땅에서 뭔가를 더 해보려고 짬짬이 영어와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었다. 언젠가는 봉제사가 되여 순박한 멕시코애들을 데리고 복장업을 경영해 보는 것이 그녀의 꿈이라고 한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살이는 시장경제의 폭풍취우에 부대껴온 우리 민족 녀성들의 삶의 축도에 다름 아니다. 칠전팔기하는 그녀의 인생살이에서 나는 우리 연변아줌마의 강인한 의지과 근면한 성격을 보았으며 남성을 초월하는 드넓은 흉금과 끈질긴 모성애를 보았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조선족농사군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외화를 벌어 들여 나라의 재정수입 증가에 기여하고 있는 고마운 분들이 아닌가.    안해를 외국에 로무일군으로 내 보낸 남편들 중에 아직도 집에 앉아 마작이나 뒤섞고 술판이나 벌리며 무도장을 휘젖고 다니는 분들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라. 개도 안먹는다는 그 돈때문에 안해가 이국타향에서 참고 견디고 있는 그 험악한 모욕과 기시, 어려운 로동현장에서 흘리고 있는 그녀들의 눈물과 땀방울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매번 안해가 부쳐오는 그 외화의 무게와 가치를 깊이 헤아려주기를 바란다. 비록 지금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마음만으로라도 안해와 함께 그 아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집에 있는 우리 아이들도 잘 교육시킬 수 있을 것이고 가정도 반듯하게 지킬 수 있지 않을가, 재삼 생각해보게 된다.                                            ( 연변녀성잡지--2008년 제6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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